서재질 초기 때 책을 읽으면 꼬박꼬박 리뷰를 썼던 것 같다. 물론 이건 서재가 없던 시절엔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블로그가 생기고부터는 좋은 습관 하나 들여볼까 해서 리뷰를 하기 시작했는데 요즘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왜 그리도 리뷰를 못하고 있는 걸까?
우선 다른 글을 쓰느라 그렇다. 열심히 쓰는 것도 아니면서 어쨌든 그걸 쓰고나면 전엔 팔이 아팠는데 이젠 손가락까지 아프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너무 좋은 책은 오히려 리뷰를 못하겠더라. 최근 내가 읽은 책 두 권의 책이 그렇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리뷰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그런 책 가끔 있지 않나?

오랫동안 작가를 외면했던 것도 사실이다. 글쎄, 왜 외면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지금보다 조금 일찍 작가의 작품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 지하철을 타고가다 늦게 상담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그러다 작가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상담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교재로 쓰인다는 걸 알았다. 대단한 책은 대단한 책인가 보다 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했을 뿐 선뜻 읽어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인연이 있다면 읽게 되겠지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올초 오프라인 중고샵에서 이 책 1권을 발견했다. 물론 발견했다고 해서 당장 사 볼 생각은 없었는데 집에 와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며칠내로 근처에서 누굴 만날 일이 있어 다시 들렀을 때 있으면 사야지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책은 거기 여전히 꽂혀 있었다. 그렇다면 인연이겠다 싶었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건 내가 살아 온 시대와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나 보다는 연배가 조금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읽고 있노라면 금방 전이가 되고 공감이 된다. 그리고 그 신산한 세월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까? 마음이 무거웠다. 또 그런만큼 작가의 문체가 결코 가볍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 따라선 읽다가 덮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에밀 졸라의 <작품>이란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 보다는 가벼우니 이왕 읽기로 작정했다면 가급적 끝까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실제로 난 읽는 동안 자꾸 침잠해 들어가는 것 같아 사이에 잠시 다른 책을 읽기도 했는데 숨통이 트이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읽을만 하다. 특히 문학을 업으로 할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은 읽어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알다시피 작가의 자전소설이다. 자전소설을 다른 말로는 교양소설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얼핏들으니 여성 소설가는 잘 쓰지 않는 분야라고 그래서 이 책이 대단한 거라고 추켜 세우기도 했는데, 나는 바로 이 대목에 꽂혔던 것 같다. 그렇다면 김형경 작가는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과연 교양 소설을 여성 작가들은 잘 안 쓴다는 게 과연 맞는 말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뭔가 여성 작가를 비하하는 것 같아 조금은 불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틀리진 않을 것이다. 여성은 어느 분야에서든 소외당해 온 것도 사실이니 아무리 작가라고 해도 교양 소설을 쓴 작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아무튼 그런 말을 떨궈내더라도 정말 이 책은 정말 교양 소설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그리고 작가가 될 거라면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문학이란 이 거대한 숲을 헤쳐나가야 할지 가르쳐 주는 것 같다.
사실 문학은 권할만한 것이 못 되는 것 같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작가라면 누구든지 다 하는 말이다. 김형경 작가도 이 책 말미에 그런 말을 잠깐 언급하기도 한다. 문학은 이렇게 살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우리를 위로한다. 작가는 책 말미에 이런 말을 한다.
... 그 여자를 키운 것은 팔 할의 친구나 이 할의 문학과 음악이 아니라 세월이었다고. 바위에 끊임없이 부딪치는 파도처럼, 그 여자를 향해 몰아오던 그 세월이다. 파도가 바위를 쪼아대듯, 세월은 그 여자를 깎고 쪼아서 둥그스름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파도가 바위에 오묘하고 아른다운 형상을 새겨 넣듯, 세월은 그 여자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의 결을 형성해 주었을 것이다.
그래, 그 여자를 키운 것은 십 할의 세월이다. 그러므로, 그 여자의 인생에서 배운 단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세월 앞에 겸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여자가 지금도 일관되게 어른들을, 노인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오직 그것 하나다. 세월의 부피와 질량의 웅장함에 대한 존경이다.(2권, 519p)
이 책은 작가의 유년 시절부터 30대 초반까지를 조명하고 있는데, 지금 작가는 50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30대 저런 고백을 하고 있고, 그런 고백을 하기까지 삶이 어떠했을지는 책을 직접 읽어보기 전까지는 읽어 본 자가 전달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사실 문학은 권할만한 것이 아님에도 권하게 된다. 무엇보다 문학은 잰척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재다. 야, 살아보니까 이런 사람의 이런 일도 있어. 넌 어떻게 생각해? 그냥 묻기만 하고, 생각할 거리만 던져줄 뿐 도무지 답이라곤 해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각자가 알아서 생각하시라가 결국 문학인 것이다.
이 책은 작가의 문학의 보고이기도 하다. 요즘은 작가든 독자든 자신이 읽은 책을 대놓고 밝히기도 하는데 이 책은 자신이 읽은 책을 보물찾기하듯 여기저기에 숨겨 놓는다. 그것을 찾아가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다. 또한 그러면서 자신은 책에 속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살을 하고 싶다면 자살을 하면 되는데 자살에 관한 책을 읽게되고, 사랑이 하고 싶다면 하면 되는데 꼭 사랑에 관한 책을 읽더라고. 그 부분을 읽고 나도 키득키득 웃었다. 아무튼 이 책은 책에 대한 관음증을 만족시키기도 한다.
김형경의 <세월>을 읽는 중에 잠시 외도해서 읽은 책이다.
아, 정말 이 책은 뭐라 형언하기가 어렵다. 물론 저자가 신문사 종교 담당 기자라 글도 좋지만, 그가 다룬 우리나라 24명의 기독 영성가들은 확실히 압도하는 뭔가가 있다.
표면상 그들이 선택한 종교는 기독교이긴 하지만, 그들은 기독교에 머물러 있지 않다. 기독교 이상의 것, 초월적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놀라웠던 건, 원래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해질 때 그때까지 있어왔던 유교적 전통과 바탕에서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토착화라고도 하는데, 어느 나라나 한 종교가 전파되려면 그때까지 지배하고 있는 문화와 종교, 사상이 한데 융합되어져서 뿌리내리곤 한다. 그것을 토착화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기독교는 보수주의를 앞세워 그런 토착화를 우려하기도 하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 보수주의는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사실 그건 알고보면 미국이나 영국의 제국주의적 기독교일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그 나라의 전통을 우상숭배라고 몰아부치며 대신 자기네 나라 기독교의 우수성을 널리 전파하고, 배타성마저 보이고 있으니 한국의 기독교가 한편으로 욕을 먹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무엇이 진리이고, 진정한 신앙인가를 찾아가는 것이라면 보수주의를 꼭 나쁜 거라고 몰아부치는 것도 문제는 있어 보인다. 그럴 땐 차리리 순수주의라고 해야하는 걸까?
저자는 우리나라 영성가를 소개하지만 동시에 서술하는 과정에서 한국기독교사를 직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 역사 중 구한말 또는 일제강점기라고 하는 시대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이 시대는 국가적으로 봤을 때 암울한 시기였지만 한국 기독교 역사로 볼 때 여명기이기도 하다. 이건 확실히 아이러니이긴 하다. 우리나라 독립선언 작성인 33인 중 3분의 2가 기독교인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바다. 우린 가끔 이걸 단순하게 자랑스러워하곤 하는데 이건 한국기독교만이 지니는 독특함이 숨겨져 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기독교를 초월한 영성가로는 함석헌이나 다석 유영모가 대표적일 것이다. 유영모는 몰라도 함석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함석헌은 이 책에서 다루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영성가들 중 잘 안 알려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했다고 밝힌다고 했다. 그러니 함석헌은 제외됐을 것이다. 하지만 함석헌은 이 책에도 나온다. 그만큼 그가 미친 영향력은 크다.
이 책에 소개된 영성가들의 하나같은 공통점 보면 우선 극도의 금욕주의자라는 것이다. 어차피 어떤 종교를 선택하든 금욕은 피해갈수 없는 것 같다. 이런 것을 볼 때 오늘 날 탐욕을 숭배하고 권장하는 세상에 은근 신경 쓰이고 불편했을 것 같다. 또한 그 시대는 워낙에 없이 살았던 시대라 저절로 금욕이 됐을 법도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금욕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아이러니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들의 신앙과 금욕이 나라를 구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처음 기독교가 전파됐을 때만해도 초월적이었다는 점에서 오늘 날 개교회주의에 경종을 울릴만 하고, 신학은 자유주의로 갖되, 신앙은 보수주의 아니 순수하게 하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곱씹게 되는 좋은 책이다.
어제 검색을 하다 발견한 책이다.
지금의 4,50대 이상 팝송 좋아하는 사람치고 10대, 20대 시절 김기덕과 김광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도 그들중 한 사람이다. 김기덕의 '두시의 데이트'와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은 하필 같은 시간대에 해서 호강이면 호강이고, 불만이면 불만이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호강이라면 둘 다 들을 수 있으니 좋은거고, 그 시절은 다시듣기가 불가능했으니 둘 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불만이었을 것이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고나 할까?
유명도에 있어 나는 김광한 보단 김기덕이 조금 앞서지 않나 싶었는데, 이 책을 보니 김광한이 우리나라 DJ 1호란다.
그가 지난 2015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난 20대 말이되고 30대에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두 사람의 방송을 듣지 않게 됐는데, 난 안 들어도 이들의 방송은 언제나 계속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그도 원로란 소리를 듣게되고 방송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세월이 야속했다. 그것도 부족해 김광한은 세상을 떠났고, 그와함께 이종환 아저씨도 떠났다. 모두 나의 힘든 고난의 10대를 위로해줬던 사람들이다. 그나마 지금은 김기덕 아저씨가 1세대로선 거의 유일한 것 같은데 이분만이라도 오래 장수하셨으면 좋겠다.
이 책은 김광한의 미망인이, 고인이 죽기전까지 음악 자료를 모아두었던 것을 정리해 펴낸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확 빨려들 것만 같다. 아직 읽지 않아 뭐라고 리뷰하기가 어렵다.
가끔 그런 책들이 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