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은 더위가 상당했고 거의 모든 것이 마비된 느낌이었다. 덥다는 핑계로 리뷰도 안 쓰고 있었고, 쓰고 있던 글도 멈췄다. 그리고 지금은 겨울의 초입이다. 밀린 리뷰를 쓰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뭔가 갈무리는 해 두는 게 좋은 것 같아 간단하게 써 두기로 한다.

 

내가 집 밖을 나가는 걸 딱히 좋아하는 성미는 아닌데 지난 여름은 너무 더워 거의 매일(?) 집 밖을 나갔던 것 같다. 그것도 집에서 3분 거리인 동네 도서관에. 거긴 에어컨을 짱짱하게 틀어주는 터라  그렇지 않으면 집에선 책 한 장 넘기기가 어려웠다. 거기 가면서 이 책을 들고 가 읽었다.      

 

제목이 근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 번역가(?)로 살아 온 저자의 책에 이만한 제목이 있을까 싶다.

 

책 내용은 주로 저자가 번역한 책들에 대한 후기 또는 번역하면서 드는 생각들을 쓴 것인데,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 답을 다는 것에서 저자의 진지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읽으니 아무래도 저자의 번역본도 자연 읽고 싶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이미 너무나 유명한 번역가라 그의 번역본 한 두권쯤은 읽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이창래 작가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는데, 이창래는 아직도 내가 접수해 보지 못한 작가 중 하나다. 언젠가 중고샵에서 그의 책을 발견하고 살까말까하다 결국 내려 놓은 걸 후회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뿐만 아니라 영화와 문학평론, 본격 에세이에도 발군의 글 솜씨를 뽐내기도 했는데 글이 우아하면서도 살짝 어려운 것이 되게 만족스럽고, 판형도 마음에 들어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책이 나왔던 것으로 아는데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을 언제 읽었을까? 막 더워지기 시작했을 때 읽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크아이즈님의 책을 평소 읽어보고 싶긴 했었다. 그런데 보기 보다 소심한 나는 평소 친하지 않은 관계로 책돌이 하실 때 나에게도 한 권 보내 달라는 말을 못했다. 

 

그런데  다크아이즈님 내 마음을 어떻게 아셨을까? 먼저 한 권 보내주시겠다고 해서 어찌나 반갑던지. 그럴 줄 알았으면 먼저 손 내밀어 보는 건데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 그제서야 난 받기만 할 수 없어 책이 도착한 비슷한 시기에 내 책 한 권을 답례로 보내드렸다. 

 

내심 사인본을 보내주시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책은 너무나 깨끗한 상태였다. 그런 것으로 봐 다크아이즈님은 무척 심플한 성격의 소유자 같다.

 

제목 밑에 '일천 글자 미니 에세이'라고 쓴 글이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난 올드하게도 만연체(?)를 선호하는 편이라 이 소제목에 조금은 의문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천 자 내외로 과연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을까? 난 숫자에 약해서 어느 작가가 몇 천자, 몇 만자 썼다고 하면 그게 감이 잘 안 온다.

 

그런데 정말 천 자 내외로도 글을 쓸 수 있구나. 그것도 아주 잘. 뭔가 에세이의 신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글의 길이는 대략 책 3 페이지를 넘어가지 않는다. 또 이게 얼마나 편하게 느껴지던지. 천 자 내외의 글이라면 깊이가 있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글 쓰는 내공이 깊다. 나도 글을 써야한다면 천 자 내외로 써 보는 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편한데 다른 사람들도 편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까지 생각만하고 한 번도 실천해 보지 못했다. 나란 인간은 참...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다크아이즈님 이전에 내셨던 소설집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언제고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이미 언급한 바도 있지만, 나는 라디오를 듣는다면 거의 유일하게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는다. 언제부터 들어왔냐면 김미숙 씨가 진행할 때부터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어느 후배로부터 소개 받고  듣기 시작했다.

 

그걸 들으면서 구성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쓸까 궁금할 때가 많았다. 매일 두 꼭지의 글을 쓰는 것도 상당한 스트레스는 아닐까 싶은데 거르는 법이 없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가 매일 두 꼭지의 글을 쓴다는 건 방송에 두 코너가 있다는 말인데, 언젠부턴가 작가는 <그 말이 내게로 왔다>는 코너의 글을 쓰기도 했고, 난 지금까지 작가가 맡은 코너 중 이게 제일 많이 기억에 남는다. 마치 감성사전처럼 한 단어를 선택해서 그 단어가 지닌 뜻과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었는데 그게 참 좋았다. 

 

보통은 이런 라디오 구성 작가들이 나중에 글을 모아 책을 내기도 하는데 그래서 김미라 작가가 내놓은 책이 몇 권 되는 걸로 알고 있다. 한마디로 꿩 먹고 알 먹고다. 나도 다음 생이 있다면 방송 작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가 <세상의 모든 음악>을 비교적 열심히 청취해 책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 알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몇 개만 기억이 날뿐 처음 들어 보는 단어나 신조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중 지면상 한 단어를 소개해 보면, '어반 뭉크족'이라는 게 있단다. 먼 곳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내가 사는 지금 이곳에서 여유와 평화를 이루겠다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시대의 허무함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보다 근원적인 것을 찾게 되는... 일명 '도시의 수도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오래 전부터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있다고 갈굼을 당하는 한 모임에 나가고 있는데, 특히 모임의 두 후배가 은근 나를 갈군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내가 일반 핸드폰을 사용한다고 놀리면서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최첨단 문명족임을 은근 과시한다. 하지만 난 거기에 꿈쩍도 안 한다. 글쎄, 그동안 내 핸드폰이 고장이 났으면 바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아직도 고장 한 번 안 났고 언제 고장 날런지 기약도 없다. 난 원래 기계치인데다가 새로운 기계를 사면 새롭게 작동법을 익히는 것도 귀찮고 싫다. 

 

얼마 전까지 배우 주윤발도 핸드폰을 써 왔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평생 모은 적잖은 재산을 기부했다는데 그야말로 어반뭉크족 아닌가? 언제고 그 아해들 또 한 번 스마트폰 사용 안한다고 놀리면 그땐 어반 뭉크족이라 그런다고 말해 줄까 한다. 역시 단어는 위대하다는 걸 이 책에서 새삼 느끼게 된다.ㅋ

 

이 책을 두번째로 읽었다. 나의 작업에 대한 욕망을 불태워 버리려고 읽었는데 역시 그 욕망 보다 앞서는 건 게으름이다. 그래도 이 책은 정말 읽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사람이다.

영국에서 태어났고, 원래는 중국 선교에 비전을 두었으나 거기서 아내를 잃고 슬픔 중에 우연찮게 중국을 드나드는 조선 상인들을 접하게 된다. 그후 조선 선교에 뜻을 두고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조선에 와 기독교를 전파하려고 했으나 선교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선 하자마자 사살되고 만다. 원래 제너럴 셔먼호가 해적선이라고 하고, 흥선 대원군 치세 아래 있었던 때라 그가 그런 뜻을 가졌다는 건 순교를 각오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 평양 대부흥운동의 초석이 되는데 난 역시 이게 참 신비롭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안 나오지만 그가 죽을 때 성경을 주변에 흩뿌리고(?) 죽었는데 그때 박 모라는 사람이 자기 집 도배지로 쓰겠다고 그 선경을 가져가 도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리 누워도, 저리 누워도 성경 말씀이 눈에 들어와 결국 기독교를 받아 들이고 그의 집이 교회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새롭게 눈에 들어왔던 건 그는 영민할뿐만 아니라 선교사로서 철저한 훈련을 받았다는 것(어찌보면 위인전기의 전형을 보는 것도 같다). 교회 생활을 하려면 교회에서 받으라는 여러 가지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는데 나처럼 훈련을 요리조리 피하고, 적당히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읽으면서 좀 찔리긴 했다.

 

불교에서는 면벽수행도 한다는데 훈련이든, 수행이든 신앙인이 된다는 건 나를 부인하는 과정 아닌가? 이게 참 안 된다. 내가 글을 자주 쓰다 중단하는 것도 이런 이유와 관련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람이 무슨 일이든 기계처럼 하지 말고 수행하는 것처럼 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이게 참 안 된다.

 

참 흥미로운 소설이다. 난 역사엔 별로 흥미가 없는데 만일 공부를 한다면 우리나라 1930년 대 전후를 공부해 보고 싶긴 하다. 이 소설도 바로 그 무렵을 다루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당대 유명했던 세 여자를 다루고 있지만 이것을 사회주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좀 올드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많이 달라지긴 했다 싶다. 다룬다면 당연히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다뤄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과거 같으면 이념을 앞세워 이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당대 유명했던 지식인과 어울렸던 여성들이라니.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 시대 여성들은 배운 것도 없이 무조건 무지하고 못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좀 잘못된 생각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소설이 다룰 정도라면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그때의 여성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을지 알고 싶어진다.

 

두 권으로 분권이 되서일까? 곧 2권도 읽겠다고 하곤 여태 못 읽고 있다. 이 책을 막 읽고 8월에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좋은 일이 생겨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고 가을을 보냈던 것 같다. 올해가 가기 전에 2권을 마져 읽어야 할 것 같다.   

 

살인적이긴 했지만 난 여전히 여름을 좋아한다. 내년 여름은 올해 같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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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2-03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겨울은 더 춥고 내년 여름은 더 덥다는데요....
스텔라님의 독서 생활에 지장이 없기를.

stella.K 2018-12-03 18:49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슴다.
그럼 내년에도 동네 도서관에서 살아야겠죠.
그때 동네 도서관이 바글바글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앉을 자리는 꼭 있었다는 게
기특하더군요. 거기선 책 밖엔 못 읽겠으니 오히려
좀 부지런히 읽게되는 것 같더군요.
제가 책을 되게 천천히 읽거든요. 저 정도면...ㅎㅎ

hnine 2018-12-0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창래 작가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랍니다. 왜 요즘 신간이 안나오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미스마플이 울던 새벽은 지난번 영국 여행갈때 가져갔는데 비행기 안에서 다 읽고 왔어요. 글 한꼭지가 길지 않아서 읽기 수월하더군요.
무덥던 여름이었지만 좋은 일이 생겼던 여름이었다니 좋으셨겠어요~~

stella.K 2018-12-04 15:2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이창래 작가 호감 가는 작간데
아직도 못 읽고 있네요. 언제고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그렇죠? 다크아이즈님 정말 글 잘 쓰시고 편안하게 읽혀 저도 좋았어요.
뭐 예전에 하던 일이었는데 그 가치를 새로 본 거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하게될 것 같은데 잘 됐으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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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대박이다.

온라인에서 이 책을 주문하는 거야 문제가 안 되지만,

오프라인에서 이 책을 찾아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나?

그냥 제목 적은 쪽지 들이대고 찾아 달라고 하는 게 그나마 낫지 않나?

어쨌든 이 책을 발견하는 순간 한참 웃었다.

내용도 웃기려나?

웃을 일 없는 세상에서 책이라도 보고 웃는다면 그도 좋겠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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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11-29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저도 아는 만화 영화 제목들을 섞어서 저런 제목을 지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데요?
<괴로워도 슬퍼도 웃기만 하는 캔디가 우주소년 아톰 같은 인공지능과 다를게 뭐야 라고 투덜대는 스머프가 나는 더 좋다> 어때요? ㅋㅋ

stella.K 2018-11-29 18:1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좋은데요? 기대하겠습니다.^^

페크pek0501 2018-11-29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개성 있네요. ㅋ

stella.K 2018-11-30 13:5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카스피 2018-11-30 0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제목의 책이네요.책내용도 책 제목만큼 재미있을지 무척 궁금하네요.

stella.K 2018-11-30 14:02   좋아요 0 | URL
작가가 뮤지컬 대본도 썼다는데
일단은 기대해 보고 싶긴 합니다.
옛 기억도 쏠쏠할 것 같고.ㅋ

후애(厚愛) 2018-11-30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긴 책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ㅎ
제목과 표지만 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감기 조심하시고,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stella.K 2018-11-30 14:0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오늘은 어제보다 약간 쌀쌀한 것도 같습니다.
예보로는 다음 주 월욜 비 오고 이후 겨울 추위가
올거라는데 이제부터 정말 겨울인가 봅니다.
후애님도 건강 조심하시길.^^

서니데이 2018-11-30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오늘은 11월 마지막날이라서 인사드리러 왔어요.
11월에 좋은 일들 많으셨나요. 11월의 남은 행운은 오늘 안에 꼭 쓰시고,
내일부터는 더 좋은 일들 가득한 12월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stella.K 2018-11-30 19:03   좋아요 1 | URL
ㅎㅎㅎ 11월의 남은 행운이요?
서니님 이렇게 저를 축복해 주시는 게
저에겐 행운 같은데요?ㅎㅎ

언제 12월이 되나 했더니 결국 되고마네요.
서니님도 남은 한달 알차게 보내시고,
따뜻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북프리쿠키 2018-12-01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스텔라님 책은 제목도 길어지는건가요..ㅎㅎㅎ 기대하겠습니다..^^

stella.K 2018-12-01 19:4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저도 길게 해 볼까요?
쿠키님 생각해서라도 빨리 써야하는데...ㅠ
암튼 노력해 보겠습니다.ㅋㅋ

푸른기침 2018-12-01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뭐 책 제목을 읽는 순간 확 땡기는데요 ㅋㅋㅋ

stella.K 2018-12-01 19: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재밌을 것 같긴해요.
잘 지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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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밥  야리

출연: 지오바니 리비시(에디 마이어스), 조엘리 리차드슨(헤밍웨이) 

 

 

엉뚱하게도 이 영화를 보고 있으려니 예전에 보았던 영화 <일 포스티노>가 생각이 났다.

그것은 그 각각의 영화가 어느 특정 작가의 삶을 다루고 있고, 남미나 지중해의 강렬한 햇빛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어느 평범한 일반인이 각각 그들을 존경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헤밍웨이 역시 정치범 비슷하게 몰려 쿠바로 망명한 것이라면 네루다와도 비슷한 상황 아닌가? 단지 좀 다르면 <일 포스티노>가 조금 더 서정적이고 네루다는 고국인 칠레로 돌아가 수상직을 수락하지만, 헤밍웨이는 영화에서 표현은 안 됐지만 어째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 그리고 네루다는 자신의 연인에게 끝까지 부드럽고 정중했지만 헤밍웨이는 그의 네 번째 부인이던가? 싸우고 폭력적이다. 헤밍웨이가 여자에게 가혹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그런데 지난 여름 <아버지는 살아 있다>란 책에 헤밍웨이의 생애에 대해 나왔는데 그게 헤밍웨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비해 아버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좀 특이하긴 했다. 보통 아들은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던데 헤밍웨이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가 권총으로 자살을 했는데, 그 역시 그렇다는 것.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는 직업이 기자였다는 것과 노벨 문학상 수상자란 명예만 빼면 그야말로 저주 받은 가문의 사람이었다는 것.   

 

 

작가의 삶은 언제나 나의 관심 사항이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가문의 이력 때문일까? 저 털북숭이 푸근한 인상 좋은 노인을 마냥 그렇게만 볼 수 없다는 게 좀 아쉬웠다.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했지만 끝내 진정한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죽어간 것이 아쉽다.

 

배우가 좀 낮설다. 주인공 애드리언 스파크스란 배운데 배우 경력이 별로 없다. 하지만 저 정도면 헤밍웨이와 싱크로율이 높은 편이다.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쿠바의 풍경과 음악이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아주 많이 재밌다거나 감동적인 건 아니지만 봐 줄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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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8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11-28 18:17   좋아요 0 | URL
그런 얘기가 있긴 하죠. 사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쓴 나이도
죽은 나이도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저렇게 털북숭이면 꽤 나이 많은 줄 알잖아요.
늙어서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도 아닌데
그는 왜 노인성을 대표하는지 모르겠어요.
안타깝죠. 그래서 마구마구 좋아할 수도 없는.ㅠ

북프리쿠키 2018-11-28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이런 영화도 있었군요.
네루다도 글코 이 영화도 글코,
자극적이지 않은 영화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데~.. 감성 돋는 날 택일해서 봐야겠네욤 ㅎ

stella.K 2018-11-29 15:06   좋아요 1 | URL
감성 돋는 날. ㅎㅎ
그런 날 보시면 좋죠.
쿠키님이 이런 영화를 좋아하시는군요.
그런데 개인적으론 일 포스티노가 조금 더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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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조폭 - 시인은 왜 조폭이 되었나?
김율도 지음 / 율도국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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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오랫동안 읽어 온 사람으로서 책을 보는 안목이 나름 높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기준이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다고 항상 적중하는 건 아니다내가 책을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는 책의 장정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것이 그 책의 선택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쯤 모르는 출판사가 있을까그런데도 이것에 위배되는 조악한 책들이 나온다.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더라도 가끔은 나의 이런 기준을 빗나가 주는 책이 있기를 은연중 바래왔던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런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나라고 항상 내 생각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열 중 한 둘은 틀려줘야 겸손할 수도 있고, 또 그런 책이 정말로 있어 준다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책의 기를 좀 살려주고, “이 책 보기엔 이래봬도 내용은 정말 좋은 책이라고 대신 외쳐주는 의기를 부려보고 싶었다이 책이 그런 책이길 나는 바라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인터넷상에서 처음 봤을 때 나는 판단을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저런 책이 실제로 보면 의외로 만듦새가 좋을 수 있고, 설혹 만듦새가 후져도 내용까지 나쁠 거라고 속단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나도 모르게 이 책에 후한 점수부터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 책에 대한 소개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어느 시인의 뜨거웠던 삶에 관한 자서전 내지는 고백록 같은 거였기 때문이다.

 

사춘기 이후로 시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시인의 자서전 아닌가? 난 본래 그런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일단은 읽어 보자 했다. 제목도 다소 엉뚱하지만 이 둘을 함께 놓은 저자의 뜻을 알고 싶기도 했고, (난 그런 장르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우리가 갱스터 무비를 보는 건 갱스터가 갱스터이기만 하면 재미없을 것이다의외의 모습이나 그들의 똥폼 잡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 것처럼 조폭이 시인이라면 그것도 멋있어 보이긴 한다. 물론 이 책의 경우 조폭이 먼저가 아니라 시인이 먼저지만

 

저자도 서문에 그렇게 썼지만, 시인과 조폭의 공통점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솔직히 난 이 책에 매료되기도 했는데, 시를 처음 접한 이후 시를 너무 좋아했다는 것이다. 아니 좋아한 정도가 아니라 시를 신앙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마치 시가 자신과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해 보인다. 그야말로 시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전폐했다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 그다지 궁금해 하지 않았던 내가 시인은 정말 이렇게 살까?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가진 의문이기도 했다. 저자는 좋아하는 시가 있으면 모조리 외우고, 뭔가에 빙의되듯 떠오르는 시구를 받아 적는다. , 시인은 정녕 이렇게 해서 되는 걸까? 살짝 부럽기도 했다.  

 

조폭이 됐던 것도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아니다. 지면상 그냥 운명이라고 해 두자. 내가 볼 때 시인과 조폭이 같다기 보단 그는 자신이 선택한 것에 있어서 결코 후회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인 것 같다자신의 선택이 뭐든 지간에 갈등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운명이 그러하다면 결코 거부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한 여자를 끝까지 사랑한다. 그런 사람이 아직도 존재한다니? 또한 조폭이긴 하지만 윤락녀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있어 성매매 금지법에 관해서도 한껏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자신의 애송시를 이자 암송 시 몇 구절을 삽입해 문장의 격을 높였다. 읽고 있노라면 영화를 보는 것도 같고, 누구든 영화로 만들고 싶어 할 것만 같다그만큼 인물 묘사가 강렬하다

 

난 이게 저자의 자전 소설에 가까운 에세이라고 생각하는데(장르가 명확하지 않다), 시를 써 와서일까? 300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자신의 일생을 이렇게 명징하게 담아내다니 과연 이야기 솜씨가 일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뒤에 가면 뭐 하나가 딱 걸린다. 그것은 작가가 몸소 겪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단면을 얘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리나라 차기 대통령 후보 중 저격당한 사건의 내용이었다. ? 그런 일이 있었어의아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은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해 이건 저자 자신의 이야기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읽었기 때문이다.

 

오죽 의아스러우면 저자에게 묻고 싶을 정도였다. 이거 실화냐고. 무슨 근거를 가지고 이렇게 쓰는 거냐, 독자를 희롱하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내용은 무슨 쌍팔년도 느와르를 연상시킨다. 뭐 그것까지는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가 저격을 당했다는 것은 도저히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거야 말로 허위 사실 유포 아닌가?

 

그러다 문득 서문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었다. 이 소설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아 맞추면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저자가 치는 뻥에 나는 넘어간 셈이고, 자신은 그것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도 읽혀지는데, 허탈하다기 보단 왜 끝까지 사실과 진실을 견지하지 못했던 걸까 불쾌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서문 첫 문장은 이제 때가 됐다며 30년 동안 묵혀왔던 이야기를 한다는 비장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란 문장에서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의심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더구나 이 책을 한국소설이라고 분류했는데, 이건 소설의 형식을 완전히 갖춘 것도 아니다. 물론 자전 소설이라고 우긴다면 그래 좋다. 그렇게 봐주자.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저자도 글 깨나 쓰는 사람 같은데 글은 정직해야 한다는 것쯤 배우고 들어갔을 것 아닌가? 어디서 진실과 허구란 말장난으로  독자를 후려칠 생각부터 하는지 지금까지 써 온 글이 아깝지도 않은가 거기에 상상력의 극대화 뭐 이런 말로 자신의 글을 정당화라도 하고 싶은가 싶다. 

 

이왕 말이 나와서 말인데, 최근 우리나라 작가들 글을 쓴답시고, 소설인지 수필인지 모를 글들을 양산하고 있다. 처음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쓰는 글에 번지수도 확실히 정하지 못하면서 무슨 탈장르를 선언하겠다는 건지 모르겠고, 뭐 그것도 작가의 표현의 자유라고 치자. 적어도 자신이 쓰는 글에 진실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솔직히 이 책 읽은 지 며칠 됐는데 감동 보다는 아직도 뭔가 속았다는 느낌에 불쾌한 느낌이 쉬 떨쳐지지 않는다. 허구를 얘기하고도 마지막 한 문장이 그것을 상쇄시키는 책이 있는가 하면, 내내 진실을 얘기하다가도 한 가지 뻔한 거짓말이 책을 망쳐놓은 경우가 있다. 이 책은 명백히 후자에 속하는 책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앞서 얘기한 독자로서의 의기. 즉 다소 보기엔 이래봬도 내용은 정말 좋은 책이라는 의기를 부려보고 싶은 기회가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라며 혀마저 끌끌 차게 만든다. 어떻기에 그렇게까지 말하느냐고? 처음 받아든 순간 쌍팔년도 무슨 중고등 학교 교지를 연상케 한다. (내가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인 관계로 요즘 교지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독자로서 이런 책을 읽었단 말이다. 소설적 허구란 게 그런 게 아닌데 저자가 과연 이걸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안 그랬다면 다음 판에선 좀 나은 옷을 입고 나오지 않을까? 요즘 인터넷 서점마다 리커버가 유행이던데잘하면 리커버로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말이다. 저자는 어쩌자고 다된 밥에 코를 빠트렸던 걸까? 그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하듯, 우리나라 책도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또 모르지. 괜찮은 표지로 나왔더라면 나의 이 마음도 다소는 이성을 유지했을지도.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지면을 통해 모든 출판사에 말하고 싶다. 표지에 신경 써라. 책이 되어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하지 마라. 독자에게 욕을 들어도 싼 책은 아예 제작부터 하지 마라. 표지가 후진 책은 누구에게 권하지도 못한다. 독자는 그런 마음이 있다. 내가 읽는 책이 누군가의 눈에 띄었으면. 그래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뭔데 라고 질문 받고 싶어 한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마지막까지 진실해질 수 없다면 차라리 안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이래도 괜찮겠지 하는 호기가 결국 30년 인생 이야기를 스스로 깎아 먹은 건 아닌지안타까운 마음에 쓴 소리 좀 했다. 불쾌했다면 용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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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6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11-26 18:06   좋아요 1 | URL
에이, 좋은 게 좋은 거려니 하면 안 되죠.
물론 제가 너무 잘 봤다가 실망해서 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건 장편소설도 아니라니까요.
문제는 문제라고 꼭 집어야 해요.
작품은 독자가 완성한다 잖아요.
안타깝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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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잃어버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가끔 가족이 들어와야할 시간에 안 들어와도 걱정을하고 불안한데 아이가 집 나가 안 들어온다는 건 생각하기조차 싫어진다. 이혼한 부부가 있고, 엄마가 차를 타고 멀리 앞서가는 것을 조그만 아이가 쫓아 오는 걸 반쯤 의식했지만 설마하며 무시했다면 그것에 대한 후회는 얼마만한 것일까? 그때 잠깐 백미러를 통해 확인만 했어도 아이를 그렇게 무참하게 잃어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가끔 우리도 그렇지 않나? 내가 의식하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해야 하는 걸 무심하게 넘겨버리다 그게 잘못이란 걸 나중에 깨닫고 후회한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람의 다각적인 이야기이다. 즉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과 그 아이를 납치한 사람의 사정을 선악의 논리로만 보지 않고 다각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아이를 납치하는 건 나쁜 일이다. 보통 그럴 때 영화나 드라마는 흔히 그 아이를 어디 먼곳으로 보내버려 인권을 유린 당하게 하거나, 아이를 매개로 돈을 챙기겠다거나 그런 나쁜 의도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아이 유괴 사건이 심심찮게 보도되지만, 중국에서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면 더 안 좋은 시각을 갖게 되는 건 왜일까? 우리나라에선 유독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가까운 일본보다 더 안 좋다. 아이가 유괴 당했으니 분명 안 좋은데 아이를 쓸 것이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런 일은 빈번할 것이라고 추측까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한 자녀만 가질 수 있는 강력한 산아제한 국가가 아닌가.

 

그런데 우린 여기까지만 생각할뿐 그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까지는 짐작조차 하지 않는다. 바로 영화는 그 지점을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영화를 보면 과연 그렇겠다 싶다. 세상엔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예를들면 사별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사별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도하지 못한다. 그런 것처럼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은 그런 사람들의 모임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사는지,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사는지 모른다.

 

문제는 또 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운 좋아 찾는다고 해도, 그 아이가 원래의 부모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의 답답하고 괴로운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기억해 보라고 종용하고 강요하는 건 아이에게 얼마나 잔인한 일이 될까? 

 

아이를 납치해서 키운 양부모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왜 아이를 납치했는지가 분명치가 않은데, 내가 알고 있기론 그들 부부도 이미 아이 하나를 납치해 키우고 있고, 이번이 두번째다. 그런 것으로 봐 아이를 못 낳는 부부다. 그런데 이 무슨 개떡 같은 운명인가? 여자는 아이를 못 낳는 줄만 알았는데, 남편을 잃고 아이도 빼앗긴 마당에 필사의 도움을 받고 싶어 남편의 후배와 하룻밤 지냈을 뿐인데 임신이 됐다. 그때까지 자신의 결함으로 아이를 못 낳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부장의 단적인 예를 보는  것 같다. 

 

그뿐인가? 중국 사회는 급격한 산아제한으로 아이를 낳으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아 부모 모임에서 한 부부가 결국 잃어버린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고 새로 아기를 낳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축복이 아니고 오히려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 얼마나 비정 사회인가? 잃어버린 아이의 생모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이미 새 남편과 살고 있는데 섹스를 극도로 거부한다. 

 

이렇게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 가는가를 영화는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중국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나라는 이 정도는 아닐테지만 아기 하나 낳기도 당국의 허가를 맡는 것 하나만 빼놓으면 무엇이 다르겠는가? 미아 발생이 한 해 몇건이나 발생하고, 그중 찾는 비율은 어느 정돈지, 그 이후 아이와 부모는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우리도 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줘야할 것 같다. 보고나면 마음이 좀 무겁긴 하지만 문제 의식은 제대로 잘 건드려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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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1-22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영화인가 보지요? 요즘 워낙 국내 영화가 강세라 예전처럼 중국 혹은 홍콩영화를 보기 힘든것 같아요.

stella.K 2018-11-23 14:2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예전 8,90년대만 하더라도 중국, 홍콩 영화가
강세였는데 말입니다. 저도 이런 영화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좀 신파는 아닐까 싶었는데 오늘 날의 중국 현실을
제대로 짚은 것 같더라구요. 무엇보다 감독이
<첨밀밀>로 유명한 진가신이예요.

비연 2018-11-23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내용만 봐도... 마음이 많이 아픈 영화인 듯 싶네요.

stella.K 2018-11-23 14:28   좋아요 1 | URL
마냥 아프진 않구요.
꽤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기회되시면 함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서니데이 2018-11-24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중국도 한 자녀 정책이 조금 달라졌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한 자녀인 가정이 많을 거예요.
그리고 자녀가 몇 명이 되든, 아이가 없어졌다는 것을 그냥 지나가는 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거고요. 포스터를 보니까 조미가 엄마로 나오는 모양이네요.
stella.K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18-11-26 13:33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중국 사람들도 예전처럼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니 그런 변화가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의문입니다.
아직 우려할 정도는 아닐테지만.

조미라는 배우였습니까? 진짜 엄마는 아니구요.
아이의 생모는 따로있죠. 조미는 아이를 납치한
양모라고 해야하나? 그래요.
나름 진지하게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18-11-25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잃는 건 만큼 아픈 일은 없을 듯합니다. 아픔과, 극도로 예민해지는 공포죠.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죠.

stella.K 2018-11-26 13:34   좋아요 1 | URL
그럼요. 가족이 연락도 없이 늦게 들어오는 것도
아찔한 일인데 말입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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