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톨트 곰브로비치 장편소설 | 윤진 옮김 | 민음사 | 464쪽 

성숙과 미성숙, 완성과 미완성의 대치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해온 폴란드 작가 곰브로비치<사진>의 대표작으로, 국내에 첫 소개되는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나치에 의해 금서로 묶여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50년대 이후 프랑스에 번역 소개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실존 철학과 소설의 만남을 추구한 작가는 카프카와 견줘지며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폴란드 하원은 작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2004년을 곰브로비치의 해로 정하고 연극제와 음악회을 비롯한 행사를 열고, 기념포스터와 우표를 제작하는 등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소설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삶과 모든 계획이 무가치하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서른 살의 작가인 주인공이 한 교사에게 납치되어 열여섯 살 소년들의 세계로 돌려보내지면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머릿속은 어른이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로 납치되어 성장기를 다시 겪는다는 설정은 환상소설이자 성장소설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실제 세상에서는 일어날 법하지 않는 이러한 상황을 제시하는 작가의 전략은 무엇일까? 열여섯 살로 다시 돌아간 소설가의 눈으로 본 세상은 성숙과 미성숙의 대립으로 점철되어 있다. 성숙의 세계는 미성숙을 형식의 껍질 안에 숨겨놓고 싶어한다. 미성숙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작가는 소년의 시신을 통해 성숙한 세계, 질서 잡힌 체계의 허구성과 폭력성, 비인간성을 드러낸다.

소년 시절로 납치되어 돌아간 교실은 ‘순진함’을 주입시켜 모두를 어린애로 만드는 것을 교육철학으로 삼고 있는 학교였다. 미성숙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주된 내용은 성인들의 틀, 정상인의 기준, 기성의 체계를 강요하는 시스템일 따름이다.

불합리와 폭력으로 특징 지어지는 성숙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미성숙의 자유로운 힘을 캐치하는 것이 이 소설의 감상 포인트다. 작가는 성숙이 미성숙을 끊임없이 지배하고 통제하려드는 것은, 미성숙한 존재들의 반항은 성숙의 기반 자체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립은 에로스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육체의 각 부분의 길항작용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머리는 명령하지만, 엉덩이, 넓적다리, 장딴지의 아우성도 들린다. 특히 엉덩이는 미성숙의 근원, 코흘리개 애송이들만 갖는, 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갑자기 소년 시절로 돌아간 주인공은 정돈된 어른의 세계에 잠입하여 질서를 전복시키는 젊음의 힘을 발산한다. 그 세계는 큰 것은 작아지고 작은 것은 기괴하게 커지는 부조리한 세계, 한마디로 기존의 사고체계나 가치가 뒤죽박죽되는 혼돈의 세계다. 작가는 이를 통해 진실함과 성숙됨의 참된 모습을 모색한다.

“정상이란 비정상의 심연 위에 늘어뜨려진 곡예사의 줄에 지나지 않는다. 일상적인 질서 속에서도 언제나 광기가 섞여 있는 것이다!”라는 구절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무력화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단초를 선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점에서는 ‘망치의 철학자’로 불리는 니체적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시작할 때는 내 적수를 누를 만한 날카로운 풍자 정도나 써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가 쓴 말들은 순식간에 격렬한 춤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고, 제멋대로 사납게 날뛰면서 그로테스크한 광기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 갔다”고 회고했다.

이 소설의 제목도 아무 뜻이 없다. ‘페르디두르케’라는 인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작가가 즐겨 읽은 미국 소설가 싱클레어 루이스의 작품 ‘배빗’의 등장인물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작품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 자체로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가장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려는 작가의 ‘비틀어보기’는 마지막 문장에서도 나타난다.

“그대들이 원한다면 나를 따라 달리라. 낯짝을 두 손으로 감싸고 도망가는 내 뒤를 따라 달리라. 이제 끝이다. 트랄랄라. 이 책을 읽을 사람한테 한마디하자. 제기랄!”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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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5-25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붙잡고 싶게 만드는 책이네요.^^
 

독일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세 명의 자녀를 둔 아빠 그가 조선일보 독자들에게 매달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 독일 베스트셀러 작가 보도 섀퍼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을파소)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보도 섀퍼는 독일의 이름난 경영 컨설턴트이자 세 명의 자녀를 둔 아빠다. 그가 어릴 때부터 돈과 경제에 대한 합리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신 열여섯 살에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돈의 중요성과 그것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돈과 집, 자동차에 미친 사람은 아니다. 자녀교육 측면에서 그가 최근 내놓은 ‘도넛츠’이론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중심에 관한 것이다. 중심이란 한 사람의 인성이며 가치관을 뜻한다. 매달 조선일보 독자들에게 보도 섀퍼가 띄우게 될 한 통의 편지는 ‘도넛츠’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다.

부모들은 자녀의 부족한 면을 찾아 개선해주고자 애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과연 바람직한 걸까? 아이가 학교에서 성적표를 받아 왔다고 하자. 미술, 음악, 체육 점수는 아주 탁월하다. 영어 점수도 좋은 편이다. 생물, 역사, 화학은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하지만 수학 점수는 기대 이하다. 이때 성적표를 받아든 부모는 제일 먼저 어떤 과목에 대해 언급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중요하다.

현재 세계 대부분의 학교가 다양한 과목의 기초를 쌓게 하는 데 교육의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교육제도하에서는 모든 과목을 동시에 두루두루 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와는 다른 교육 방법을 옹호하는 학자, 교육자, 부모가 생겨났다.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방법으로는 기껏해야 평균적인 인간을 양산할 수 있을 뿐이다. 잘하는 부분을 북돋워줄 때 아이고 어른이고 자신만의 개성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며, 더 행복하고 성공하는 사람이 된다. 아이를 행복하고 부유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으면 잘 하는 부분을 키워주어야 한다. 돈을 잘 버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복잡한 계산문제를 실수 없이 잘 풀어내는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다. 평균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은 평균적인 임금밖에 받지 못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모든 아이 속에는 천재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이며 특별한 재능을 최소한 한 가지씩은 타고난 사람들이다.


▲ 왼쪽부터 스티비 원더, 올리버 칸 그리고 영화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 이들은 장점을 키워 성공했다.

어떤 눈먼 소년이 있었다. 친구들도 함께 어울려 주지 않았으므로 소년은 늘 외롭고 힘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소년의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사건이 찾아왔다. 수업 중 교실에 쥐가 한 마리 나타났는데 어디로 숨어 들어갔는지 도무지 행방이 묘연했던 것이다. 그때 선생님이 눈먼 소년에게 그만의 특별한 청력을 사용하여 쥐가 어디에 있는지 맞혀 보라고 했다.

눈먼 아이는 귀를 기울였고 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었다. 쥐 소리는 교실 구석의 벽장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쥐는 쉽게 잡혔다. 수업 후 선생님은 눈먼 아이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넌 우리 반의 어떤 친구도 갖지 못한 능력을 갖고 있어. 네겐 특별한 귀가 있잖니.” 그 말은 소년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소년은 음악을 좋아했다. 이제 맹인이라는 사실도 방해거리가 될 수 없었다. 탁월한 청력이 있었으므로. 이 소년이 바로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라는 곡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스티비 원더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약점’을 아이의 몸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처럼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두려움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약점이란 우리로 하여금 목표를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부분이다. 나의 목표를 이루는 데 별 지장이 없으면 약점이라고 할 수 없다.

아이들의 ‘약점’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이 있다. 우선 아이의 부족한 부분이 아이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것인지를 분명히 생각하라. 확신이 안 설 때에는 일단 부드럽게 나가는 것이 좋다. 강점이 부각되는 곳에서 약점은 쉽게 힘을 잃는다. 위대한 인물들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아주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던 사람들이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그들이 지녔던 ‘약점’을 한탄하는 사람은 없다.

도무지 지는 걸 싫어하는 남자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아이는 유달리 승부 근성이 강해 게임 같은 걸 할 때면 이를 악물고 싸웠고, 지면 엄청나게 화를 내었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는 것도 배워야 해.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함께 어울릴 줄 알아야지.” 그러나 그토록 지기 싫어했던 꼬마 소년은 현재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한 축구 골키퍼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올리버 칸이다.

어떤 방랑자가 산길을 걷다가 불상을 조각하고 있는 사람 곁을 지나치게 되었다.

조각가는 커다란 나무 기둥을 놓고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형태는 아직 분간할 수 없었다. 며칠 후 방랑자는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길을 지나치다가 나무 기둥이 멋진 불상으로 변신해 있는 것을 보았다.

조각가의 솜씨에 감탄한 방랑자가 조각가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렇게 멋진 불상을 만드는 비결이 뭡니까?” 그러자 조각가는 “나의 비결은 나무 기둥 속에 들어 있는 불상에상처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고 대답했다.

(보도 섀퍼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키라와 확대경’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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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5-25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점 키워주기... 음 나는 아이 단점만 팍팍~ 찍어서 잔소리 해대서 있는 장점도 사라지게 만드는 엄마인데.. 이런 글 많이 읽으면 많이 반성해서 좋은 엄마의 길에 발가락이라도 하나 들어 놓을수 있으려나?

stella.K 2004-05-25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나중에 한으로 남습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울 엄마도 칭찬보단 잔소리를 많이 하시더라구요. 나도 좋은 점 많은데 왜 엄마는 잔소리만 할까? 아쉬울 때가 많더라구요. 물론 제가 결혼에서 아이가 있으면 그땐 엄마를 이해할 겁니다.^^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디카로 보는 책] 책으로 보는 트로이 전쟁

 <트로이 전쟁>, 패드라익 콜럼, 비룡소

비룡소 클래식의 8번째 권. 아무래도 이번 주에 개봉하는 영화 [트로이]를 겨냥해 낸듯하다. 그렇다고 급하게 만든 책은 아니니 안심하시길. 어제 책을 받아 읽어보는 데 정말 반했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그 방대한 고전을 오디세우스를 중심 인물로 내세워 이야기를 썼다. 이야기의 시작은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오디세우스가 돌아오지 않는데서 부터다.

1부에서는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 즉 <일리아드>가, 2부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오는 고단한 여정, 즉 <오디세이아>가 펼쳐진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오늘 날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문어체의 소설이 아니다. 이 이야기들은 귀로 들어 입으로 옮기는 구조로 전승되었기 때문에 설명 부분도 시나 노래같다. 그리고 각 등장인물들의 어마어마한 독백이 이어진다. 그런 구조를 콜럼은 충분히 대화를 통해 되살렸다. 특히, <트로이 전쟁>의 백미라고 할만한, 트로이의 노왕이 맨발에 거지처럼 차려입고, 자신의 자식을 죽인 자에게 무릎을 꿇고 아들의 시체를 구걸하는 장면은 눈시울이 뜨겁다. 영화 [트로이]에서도 이 장면이 멋있다고 하니 비교해서 보면 좋겠다.


책의 앞면이다. 표지는 <트로이 전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트로이의 목마. 허나, 저 속에 그리스 군이 숨었다고 하는데... 다리가 너무 길다. 도대체 어떻게 숨은 것일까? 인간피라미드라도 했나? 밤새도록 저 안에 있었다고 하는데... 다리가 너무 길다.

흠.. 나의 추측은 이렇다. 다리는 엘리베이터(로마 시대에도 엘리베이터가 있었다고 하니, 그리고 이것은 신화 시대 이야기가 아닌가. 계단이라고 하면 그리스 병사가 너무 불쌍하다)이고, 그것을 타고 올라가면 방이 펼쳐진다. 거기서 그리스 군사들은 한손에는 창, 한손에는 카드를 들고 놀고 있지 않았을까? ㅎㅎㅎ

 


뒷면이다. 전차를 타고 전투에 입하는 장군의 모습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그림을 따와 전차에 붉은 색깔만 입혔다.

깔끔한 느낌. 전체적으로 비룡소클래식은 왠지 옛날 계몽사 전집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나만 그럴까?

 

 

 

 

 


 

 

세워서 펼쳐보았다.

파란색의 책등, 책제목부분은 금박이다.

이쁘고나...

 

 

 


 

펼친 모습.


 

 

 


1부의 첫 장.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마다 부제가 있다. 1부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아 배를 타고 떠난다. 텔레마코스가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에게서 트로이 이야기를 듣다."

 

 

 

이 책의 삽화는 그리스 시대 토기에 그려진 그림의 느낌이다. 옹골찬 느낌의 선으로 모든 형태를 느껴준다. 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담백한 판화의 느낌.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가 나오는 1부의 마지막 장이다.

 

 


 

목마사진을 좀더 가까이.

저렇게 깎은 나무 목마가 하나 가지고 싶다. 각이 살아있는 몸통, 얼굴, 다리가 멋지다.

 

 

 

오디세우스를 유혹했던 칼립소가 베를 짜고 있다. 그 옆에 서 있는 신은 헤르메스겠지? 날개달린 신발과 머리에 쓴 관을 보면  헤르메스인 듯 한데... 칼립소의 명대사.

"인간을 사랑하는 신에게는 슬픔이 찾아오는구나. 다른 신들이 늘 그런 사랑을 질투하기 때문이다."

치마 주름이 너무 예쁘다.

 

 

이 책과 함께 로즈마리 셧클리프가 쓰고, 앨런 리가 그림을 그린 <트로이아 전쟁과 목마>(1997, 국민서관)도 권하고 싶다. 로즈마리 셧클리프의 글이야 너무도 훌륭하고, 특히 앨런 리는 <반지의 제왕>의 삽화를 그린 사람이다. 웅장하면서도 신화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일러스트가 일품이다.  알라딘류화선(yukineco@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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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5-24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큼 퍼갈래요! ^^

플레져 2004-05-25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했다...... 사야징~
 
이 질그릇에도 - 설우특선 2
미우라 아야꼬 지음 / 설우사 / 1976년 10월
평점 :
품절


작가인 미우라 아야꼬는 크리스챤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생활수필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를 가리켜 게으름뱅이에 의지박약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하고도 비슷한 사람인 것 같다. 내가 그러니까. 

하지만 이 사람의 글을 읽고 있으면 '호기심 천국'을 보는 것 같다. 집 지을 땅을 구하고, 은행에서 융자를 내고, 살던 집을 떠나 새집을 지을 때까지 잠시 목사관에서 지내던 일, 소설을 쓰기까지의 과정 등이 "이렇게 해 볼까?" "저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것이 마치 호기심으로 가득한  어느 엉뚱한 과학자의 실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그런 것에 특별한 어려움 없어 보인다. 질투나리만큼 복 받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남편 미우라와 결혼해서의 일상의 모습과 그에 대한 단상들을 기록한 책이다. 나는 가끔, 남들이 흔히 말하는 그 '혼기(婚期)'에 적당한 짝을 만나 남들 사는 것만큼 살면 얼마나 재미없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사실 남들 사는 것만큼 사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또 남들 사는 것만큼 사는 것도, 다 그렇고 그건 틀에 박힌 삶이 아닐까?

그러나 어찌보면 필자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고방식이 특출난 것도 아니고, 사상이 심오한 것도 아니다. 지극히 평범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을 얻었고, 긴 투병생활 끝에 서른 일곱이란 늦은 나이에 그것도 2살 연하의 남성과 결혼을 했다. 더구나 남자는 그녀의 병이 낫기까지 무려 5년을 기다렸다 결혼을 했다. 그러니 이 어찌 결혼 후의 삶이 평범한 이들의 삶과 같을 수 있을까? 건강을 잃어 본 사람만이 건강을 되찾은 후에 그 삶이 소중하듯, 그녀의 삶은 애틋하고 애정 가득한 삶이었으리라.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란 어떻겠는가? 그녀의 복이라는 건, 부자가 되어서 명예가 생겨서가 아니다. 그냥 살아있는 것 자체가 복임을 하루 하루 실감하며 사는 삶인 것이다.

사람은 왜 결혼하는가?

나도 이 질문에 오래도록 답을 달지 못했다. 결혼을 안 해 본 사람으로써 이 질문에 답을 달기는 더 막막하다. 또한 실제로 우리 부모님을 봐도 그렇고, 주위의 결혼했다는 아는 친구들, 친지들을 봐도 그렇고 그들은 나에게 결혼에 대한 이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결혼의  실상을 다룬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봐도 다 고만 고만하다. 결혼에 대해 다룰 것이 이것 밖에 없을까?

얼마 전 뉴스 보도에 따르면, 카드빚을 청산하기 위해 결혼 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다고 한다. 공급이 있으면 수효가 있다고, 실제로 상대가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그 액수가 크지 않고 조건만 웬만치 맞으면 선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과연 이들이 만약 결혼을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나라가 경제적으로 이상징후를 보이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이 가정인 것 같다. 지난 IMF 이후 얼마나 많은 가장이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을 많이했던가? 이렇게 돈 때문에 결혼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깨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사람은 왜 결혼하는가?"란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달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결혼에 있어서 중요한 건 '성(性)'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답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일간지에선 일주일에 한번씩, 어느 처녀 비뇨기과 의사의 '성 칼럼'을 실어었다. 그것이 얼마나 적나라했던지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꼭 부부관계에 있어서 꼭 저렇게 해야하나 거부감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물론 다행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그 칼럼은 오래 가지는 않았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있다. 부부관계의 문제를 지나치게 성으로만 규정하고 몰아가는 세태가 문제라고. 부부관계란 동물처럼 교미의 관계로만 파악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왜 부부문제가 이토록 해결이 안되고 불륜이 여전히 난무한단 말인가?

흔히들 결혼은 홀로있는 것이 두려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고독의 문제를 피해 갈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다음의 말을 음미해 보라. '고독이 두렵거든 결혼하지 말아라.' 체홉의 말이다. 혼자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있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한다. 나의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상대의 사랑하고자 하는 또는 사랑 받고자 하는 욕구를 무참히 짓밟는다면 그 얼마나 이기적인가.

남들이 말하는 그 '때가되면 인연도 만나지게 된다'는 그 운명론 같은 '만남'도 어떤 사람에겐 더디 오기만 하고, 어떤 사람에겐 아예 오지 않는다. 이에 대해 미우라 아야꼬는, "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은 대개는 일생의 초년기가 아니다. 자신이 어른이 되어 자신의 삶의 바탕이 정해졌을 때, 그런 삶의 방식에 동조하는 상대가 바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나의 삶의 뿌리가 단단해지고 준비되지 않으면 한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일게다.

결혼을 안 해 본 사람은 결혼을 꿈꾼다. 그러나 그 조건이 인간 외적인 경우가 종종 많이 있다. 상대의 학력은 어떻고, 뭐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연봉은 얼마며, 성격은 어때야 하느니...하는 것들. 설사 그런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서 결혼하면 그것으로 다 인가? 그러면서도 운명적인 사랑은 그것 대로 꿈꾼다. 인간이란 얼마나 모순되고 불완전한 존재인가? 그리고 그런 사람 내편으로 만들기가 관심을 끈다. 사람은 그렇게 유치한 존재가 아니다. 결혼은 결혼하는 그 순간부터 서로를 도우며, 배우며, 성숙으로 향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나는 결혼도 안 했으면서, 친구로부터 결혼생활의 어려움, 부조리한 하소연들을 많이 들어왔고 또 앞으로도 들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젠 그 말에 놀라고,  속으로 '어머, 그렇게 어려운 결혼을 왜 하는 거지?' 의문을 품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그래도 결혼 안 했을 때 보다 결혼하고나서가 더 좋아 보이기도 하거니와, 하나님은 결혼을 가리켜 '이 비밀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결혼 얘기는 많이 들어서 이론적으론 많이 아는 것 같아도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해 보지도 않은 결혼을 뭐라고 판단하는 건 확실히 어리석은 짓이다.

사실 나도 결혼을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은 여느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 것만큼 상대가 원하는 사람일까를 생각해 보면 별로 그렇지도 못한 것 같다. 결국 미우라 아야꼬가 결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혼했던 것처럼(그녀는 나이도 먾고, 몸도 약해 아이도 낳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기독교에선 '은혜'라고 하는데, 나도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결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그 비밀이 얼마나 귀하고 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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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박사 2004-05-25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번에 제가 결혼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는데 깜박했습니다. 이 글을 보니 생각이 나는군요. 저는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은 별로 안해봤습니다. 나름대로 생각만 조금 해봤구요. 결혼하면 어떤 면에서는 삶이 좀 더 복잡해지고 피곤해지는게 사실인 듯 합니다. 아직 결론내리기에는 이르지만요.. 사랑이라는 마약을 맞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좀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

stella.K 2004-05-25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인은 그럴지 몰라도 인류애에 많은 공헌을 하는 것 같아요. 결혼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을 비교해 볼 때, 물론 꼭 그렇지는 않아도 대체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마음 씀씀이가 좀 다르더라구요. 좀 넓다고나 할까? 전, 지구상에서 <결혼>과 <가정>이란 말이 사라지거나 파괴됐을 때 가져 올 인류의 엄청난 파탄을 상상해 보곤 하죠.
그런 의미에서 설박사님을 비롯한 가정을 건재하게 이끌어 가시는 분들, 전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Hanna 2004-05-25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삶의 바탕이 단단해진 후에 그 삶에 동조해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말, 너무 멋지네요. 정말, 그런것 같아요! 그 때까지, 서두르지 말고, 사회의 어떤 편견에도 흔들리지 말고, 차근차근 내 삶을 정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저도 합니다. 삶에 정답이란 없잖아요!

stella.K 2004-05-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브리즈 2004-05-2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있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지내다가 보면, "혼자"가 어려울 때도 있고, 어떨 때는 "혼자"가 "같이"보다 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가끔씩 드는 생각은 고독도 친구, 행복도 친구라는 평범한 진리인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을 알아가는 데 있어 허영이랄까 욕심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죠.

리뷰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같아요..

stella.K 2004-05-27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옴표 안의 말에 브리즈님 말씀이 함축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합니다. 혼자 있는 고독도 벗하고, 혼자 있는 편안함도 벗하며, 같이 있는 즐거움도 벗하고, 같이 있는 불편함도 벗하며 사는 것.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이를테면 중용의 도. 뭐 그런 거 아닐까 합니다. ㅎㅎ.

카를 2004-06-0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독신도 결혼도 모두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혼을 꼭 해야한다는건 어쩌면 우리 자신의 집착인지도 모르죠....어느날 제가 [원하시면 독신의 은사라도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지금의 배우자가 나타났다면 믿으시겠어요?

stella.K 2004-06-02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카를님, 정말 신실하시군요!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도하셨을 때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셨다면 독신의 은사는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떻게 배우자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 자신을 생각해 보면 전, 독신의 은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남들도 그렇게 말하구요. 단지 전 결혼에 대한 어떠한 확신도 용기도 없이 어정쩡한 독신을 유지해왔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독신보다 결혼하는 것이 몇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언듯 드네요. 이것도 위에 계신 분이 정하신 뜻이라면 순명으로 받아 들이고 그 길을 가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가능하다면 카를님과 이런 얘기 더 나누고 싶은데 어렵겠지요. 제가 아는 카를님은 필요 이상의 말씀은 안 하시는 분 같아요.

카를 2004-06-03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은 배우자와 자녀를 위해 더 많이 섬기도록 부르시는 것이고, 독신은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도록 부르시는 것이겠지요.

stella.K 2004-06-0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요. 독신하는 사람은 실상 자기 밖에 모르고, 결혼한 사람은 남을 배려할 줄 안다구요. 이를테면 부모된 마음도 알고 자녀 사랑하는 마음도 알고. 하지만 결혼한 사람이 빠질 수 있는 우는, 자기 자녀만 아는 거라고도 보여집니다.
그래요. 결혼을 하든, 독신을 하든 그 모든 것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면 카를님 말씀처럼 섬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확장에 이르는 것이 될거구요.
전 자꾸만 위에 계신 분을 축소시키고 나에게 맞게 제단하려고 하는 것 같아 부끄러워지네요.

2021-04-13 0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보슬비 >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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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5-2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때는 정말 미안했어요. 가슴아프게 해서,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