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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그릇에도 - 설우특선 2
미우라 아야꼬 지음 / 설우사 / 1976년 10월
평점 :
품절
작가인 미우라 아야꼬는 크리스챤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생활수필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를 가리켜 게으름뱅이에 의지박약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하고도 비슷한 사람인 것 같다. 내가 그러니까.
하지만 이 사람의 글을 읽고 있으면 '호기심 천국'을 보는 것 같다. 집 지을 땅을 구하고, 은행에서 융자를 내고, 살던 집을 떠나 새집을 지을 때까지 잠시 목사관에서 지내던 일, 소설을 쓰기까지의 과정 등이 "이렇게 해 볼까?" "저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것이 마치 호기심으로 가득한 어느 엉뚱한 과학자의 실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그런 것에 특별한 어려움 없어 보인다. 질투나리만큼 복 받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남편 미우라와 결혼해서의 일상의 모습과 그에 대한 단상들을 기록한 책이다. 나는 가끔, 남들이 흔히 말하는 그 '혼기(婚期)'에 적당한 짝을 만나 남들 사는 것만큼 살면 얼마나 재미없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사실 남들 사는 것만큼 사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또 남들 사는 것만큼 사는 것도, 다 그렇고 그건 틀에 박힌 삶이 아닐까?
그러나 어찌보면 필자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고방식이 특출난 것도 아니고, 사상이 심오한 것도 아니다. 지극히 평범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을 얻었고, 긴 투병생활 끝에 서른 일곱이란 늦은 나이에 그것도 2살 연하의 남성과 결혼을 했다. 더구나 남자는 그녀의 병이 낫기까지 무려 5년을 기다렸다 결혼을 했다. 그러니 이 어찌 결혼 후의 삶이 평범한 이들의 삶과 같을 수 있을까? 건강을 잃어 본 사람만이 건강을 되찾은 후에 그 삶이 소중하듯, 그녀의 삶은 애틋하고 애정 가득한 삶이었으리라.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란 어떻겠는가? 그녀의 복이라는 건, 부자가 되어서 명예가 생겨서가 아니다. 그냥 살아있는 것 자체가 복임을 하루 하루 실감하며 사는 삶인 것이다.
사람은 왜 결혼하는가?
나도 이 질문에 오래도록 답을 달지 못했다. 결혼을 안 해 본 사람으로써 이 질문에 답을 달기는 더 막막하다. 또한 실제로 우리 부모님을 봐도 그렇고, 주위의 결혼했다는 아는 친구들, 친지들을 봐도 그렇고 그들은 나에게 결혼에 대한 이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결혼의 실상을 다룬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봐도 다 고만 고만하다. 결혼에 대해 다룰 것이 이것 밖에 없을까?
얼마 전 뉴스 보도에 따르면, 카드빚을 청산하기 위해 결혼 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다고 한다. 공급이 있으면 수효가 있다고, 실제로 상대가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그 액수가 크지 않고 조건만 웬만치 맞으면 선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과연 이들이 만약 결혼을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나라가 경제적으로 이상징후를 보이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이 가정인 것 같다. 지난 IMF 이후 얼마나 많은 가장이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을 많이했던가? 이렇게 돈 때문에 결혼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깨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사람은 왜 결혼하는가?"란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달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결혼에 있어서 중요한 건 '성(性)'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답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일간지에선 일주일에 한번씩, 어느 처녀 비뇨기과 의사의 '성 칼럼'을 실어었다. 그것이 얼마나 적나라했던지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꼭 부부관계에 있어서 꼭 저렇게 해야하나 거부감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물론 다행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그 칼럼은 오래 가지는 않았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있다. 부부관계의 문제를 지나치게 성으로만 규정하고 몰아가는 세태가 문제라고. 부부관계란 동물처럼 교미의 관계로만 파악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왜 부부문제가 이토록 해결이 안되고 불륜이 여전히 난무한단 말인가?
흔히들 결혼은 홀로있는 것이 두려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고독의 문제를 피해 갈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다음의 말을 음미해 보라. '고독이 두렵거든 결혼하지 말아라.' 체홉의 말이다. 혼자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있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한다. 나의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상대의 사랑하고자 하는 또는 사랑 받고자 하는 욕구를 무참히 짓밟는다면 그 얼마나 이기적인가.
남들이 말하는 그 '때가되면 인연도 만나지게 된다'는 그 운명론 같은 '만남'도 어떤 사람에겐 더디 오기만 하고, 어떤 사람에겐 아예 오지 않는다. 이에 대해 미우라 아야꼬는, "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은 대개는 일생의 초년기가 아니다. 자신이 어른이 되어 자신의 삶의 바탕이 정해졌을 때, 그런 삶의 방식에 동조하는 상대가 바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나의 삶의 뿌리가 단단해지고 준비되지 않으면 한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일게다.
결혼을 안 해 본 사람은 결혼을 꿈꾼다. 그러나 그 조건이 인간 외적인 경우가 종종 많이 있다. 상대의 학력은 어떻고, 뭐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연봉은 얼마며, 성격은 어때야 하느니...하는 것들. 설사 그런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서 결혼하면 그것으로 다 인가? 그러면서도 운명적인 사랑은 그것 대로 꿈꾼다. 인간이란 얼마나 모순되고 불완전한 존재인가? 그리고 그런 사람 내편으로 만들기가 관심을 끈다. 사람은 그렇게 유치한 존재가 아니다. 결혼은 결혼하는 그 순간부터 서로를 도우며, 배우며, 성숙으로 향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나는 결혼도 안 했으면서, 친구로부터 결혼생활의 어려움, 부조리한 하소연들을 많이 들어왔고 또 앞으로도 들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젠 그 말에 놀라고, 속으로 '어머, 그렇게 어려운 결혼을 왜 하는 거지?' 의문을 품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그래도 결혼 안 했을 때 보다 결혼하고나서가 더 좋아 보이기도 하거니와, 하나님은 결혼을 가리켜 '이 비밀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결혼 얘기는 많이 들어서 이론적으론 많이 아는 것 같아도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해 보지도 않은 결혼을 뭐라고 판단하는 건 확실히 어리석은 짓이다.
사실 나도 결혼을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은 여느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 것만큼 상대가 원하는 사람일까를 생각해 보면 별로 그렇지도 못한 것 같다. 결국 미우라 아야꼬가 결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혼했던 것처럼(그녀는 나이도 먾고, 몸도 약해 아이도 낳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기독교에선 '은혜'라고 하는데, 나도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결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그 비밀이 얼마나 귀하고 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