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기서 문학인가”… 가슴으로 읽는 이론서


“문학은 억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억압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비억압적인 것은 억압적인 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유신 시대와 5공화국 치하의 한국에서 살았던 문학 청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음미했을 문장이다. 폭압적 현실 속에서 문학이란 무엇이고,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고민에 빠졌던 문학도들에게 이 문장이 일으킨 메아리는 깊고도 오래갔다.

4·19 세대의 의식과 언어 감각을 극명하게 발휘했던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이 남긴 이 책은 문학 청년들에게 한국 문학에 대한 체계적 이해의 입문서로 통했다. 예술을 통해 억압적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전망을 모색했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은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1977년 초판을 펴낸 이 책은 김현의 타계 이후 1991년 김현 문학 전집에 수록됐다가 1996년부터 문학과 지성사의 문고본(문지 스펙트럼)으로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판매부수는 4만부. 문학 이론서치고는 적지 않은 독자를 확보한 셈이다.

김현은 불문학자였지만 국문학자 김윤식씨와 ‘한국문학사’를 함께 집필, 새로운 관점과 이론적 틀을 제공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문학사’ 이후 그는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각주가 잔뜩 붙은 논문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개설서로서 ‘한국 문학의 위상’을 펴냈다. 이 책은 한국문학사를 다루되, 통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공시적인 문제들을 탐구했다.

‘왜 문학은 되풀이 문제되는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문학은 무엇에 대하여 고통하는가’ ‘우리는 왜 여기서 문학을 하는가’ 등등의 질문들을 던진 이 책 앞에서 문학 청년이라면 누구나 설렘에 떠밀려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 “문학은 그러나 문학만을 위한 문학도 아니며, 인간만을 위한 문학도 아니다. 그것은 존재론적인 차원에서는 무지와의 싸움을, 의미론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꿈이 갖고 있는 불가능성과의 싸움을 뜻한다”는 간결하면서 힘찬 문장들은 문학에 눈뜬 젊은이들의 정신을 잔뜩 고양시킨다.

특히 김현은 이 책을 통해 한국 문학의 자긍심을 높이려고 했다.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은 한국적인 문학 이론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과 한국과 같은 후진국에서 오히려 좋은 문학이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현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 문학사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면서, 한국 문학의 근대성이 언제부터 싹텄는가를 과감하게 탐구했다. 그는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과 한글에 대한 지식인의 자의식이 일어난 17세기 후반 이후 한국 문학사에 커다란 변화의 조짐이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4·19 혁명을 이끈 한글 세대의 역사와 문화 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386세대의 문화적 자의식의 뿌리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죽기전에 본 어릿광대는 무엇일까
정진영 옮김/황금가지/전3권/각권 1만3000원


▲ 미국 작가들이 꿈꾸는 전미 도서관상을 지난해 받은 뒤 수상 연설을 하고 있는 스티븐 킹
어둠은 공포를 낳고 이야기를 창조한다. 인간의 무의식과 상상력은 어둠 앞에서 캄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어둠을 백지로 삼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어둠의 깊은 곳에서 희생자를 노려보는 누군가의 눈빛을 상상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전율에 떤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공포 소설가 스티븐 킹의 책을 펼치는 행위는 마치 그 무시무시한 어둠의 세계에 발을 푹 내디디는 것과 같다. 어둠 속에 웅크린 채 먹이를 기다리는 ‘그것’을 찾아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어보라고, 킹의 장편 소설 ‘그것(It)’이 속삭인다.

1957년, 미국의 도시 데리에 폭우가 쏟아지던 날, 여섯살 짜리 사내 아이가 처참하게 살해됐다. 아이는 도로 위로 넘쳐난 물길에 띄운 종이배를 따라가다가 배수구 앞에서 왼쪽 팔이 잘린 채 쓰러졌다. 배수구 속으로 사라진 종이배처럼 그 가여운 아이의 미소도 사라졌다. 아이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묘하게도 풍선을 든 서커스단의 어릿광대였다.

1984년, 같은 도시에서 한 동성애자가 다리 밑에서 살해됐다. 용의자로 붙잡힌 한 저능아는 결백하다고 외치면서, 어릿광대를 봤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그의 진술을 무시했다.

1985년, 한 사내가 집에서 샤워를 하다가 욕조에서 면도날로 팔목을 그은 채 발견됐다. 그런데 그는 마치 유언처럼 피로 두 글자를 벽에 썼다. ‘It(그것)’. 도대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도시 전체가 어떤 악령이나 괴물의 손아귀에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상상력에 바탕을 둔 소설 ‘그것’은 바로 그것을 찾아가는 다양한 인간들의 내면 상태를 파고드는 심리 스릴러다. 배수구에 괴물이 숨어 있다는 황당무계한 설정에 기초한 이 소설을 본격 문학의 잣대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소설가 빌은 작가 스티븐 킹의 대변자처럼 이렇게 말한다. “소설에 사회성 같은 의식이 왜 필요한 거죠?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면 그만이지 정치, 문화, 역사 이런 것들이 소설의 필수 조건이 돼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나요? 제 말은…소설을 소설 자체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그냥 재미있는 허구로서의 대중 소설로만 폄하하기는 어렵다. 우선 1800여쪽에 이르는 전 3권의 방대한 분량(원서는 1039쪽)이 웬만한 대하소설 못지않다. 공포 소설이라면 대부분 단순한 구성에 간소한 등장 인물의 배치를 선호하지만, 이 소설에는 복잡할 정도로 다양한 등장 인물들이 등장한다. 각 인물들의 개인사에 얽힌 무의식에 대한 탐사로 인해 자칫 지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 권으로 구성된 소설은 첫 권을 넘겨야 겨우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작가는 소설에 사회성이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지만, 이 소설에는 미국 중산층의 안온한 일상에 스며있는 권태와 절망이 드러나 있고, 그 근저에 숨어있는 상상의 폭력이 살인마라는 은유의 장치를 통해 묘사된다.

이 소설이 던지는 공포는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내면에 숨은 채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심리적 장애물에 가깝다. 작가의 분신은 지하실에 숨은 괴물을 퇴치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공포 소설을 쓰면서 종교적 희열에 빠진다고 고백한다. 공포 소설은 인간이 존재와 우주의 근원을 찾아가는 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이 소설 속의 살인마를 단지 ‘그것’이라고 부르는 단순 호칭은 너무나 복합적이기 때문에 적절한 대응어를 찾지 못하는 무의식의 괴물을 부르기 위해 역설적으로 선택한 단순 기호인 셈이다.

공포 소설의 전형적 수법답게 이 소설에서 두려움은 점증법을 통해 발현된다. 하나 둘씩 희생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소설 속의 도시에 얽힌 비밀스런 역사가 서술된다. 도서관의 한 사서를 통해 한 도시에 얽힌 허구의 역사가 진행된다. 1741년 340명의 마을 사람들이 통째로 실종됐고, 1930년 170명, 1958년 127명의 어린아이가 사라졌다는 것. 그러면서 개수대의 배수관으로 물이 빠지는 소리가 종종 심상치 않게 들린다. 이쯤되면 독자들이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질 만하다.

이 소설에서 ‘그것’은 당연히 맨 마지막에 정체를 드러낸다. ‘그것’은 현실 속의 인간과는 다른 종의 생물체와 같기도 하고,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상상 동물 같기도 하다. 한마디로 모호한 괴물이다. 인간들이 상상하는 난폭한 야행성 동물일 수도 있고, 살아움직이는 수렁이기도 하다. 또한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것은 늘 아이들을 배불리 먹었다. 어른들 중 상당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것의 하수인 역할을 해 왔으며, 그것은 그들 중 일부를 몇 년을 두고 먹어 치우기도 했다. 어른들도 나름대로의 공포가 있고, 그들의 분비선을 톡톡 두들겨 열어 놓으면, 공포를 담당하는 화학 분비물이 전신에 퍼져 저절로 간이 맞았다.

그러나 어른들의 공포는 대개 지나치게 복잡했다. 그에 비해 아이들의 공포는 훨씬 단순하고 강했다. 아이들의 공포는 대개 하나의 가면으로 능히 끌어낼 수 있었다… 미끼가 필요한 경우에도 광대의 얼굴 하나면 충분히 먹혀들었다. 이 세상에 어릿광대를 싫어하는 아이가 있을까?”

이런 유의 공포 소설을 혐오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소설에 난무하는 성행위와 살인, 식인 장면에 진저리를 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의 한 인물은 공포 소설을 가리켜 ‘쓰레기 같은 포르노’라고 비난한다. 그 인물은 책의 초반부를 읽자마자 책장을 덮어버린다. 작가는 이 소설을 펴든 독자들 중에서 일부는 그럴 것이라고 예상한 듯이 그런 장면을 집어넣는다. 아무튼 이 소설은 너무나 두껍기 때문에 스티븐 킹의 열렬한 애독자에게만 읽힐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 킹의 애독자는 1만명 수준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 소설은 1986년 출간 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선두에 올랐고, 1990년 TV 미니 시리즈로도 방영됐다고 한다. 킹은 1974년 소설 ‘캐리’를 발표한 뒤 현재까지 500여편의 장·단편 소설을 발표했고, 전 세계 33개국에서 모두 1억권 이상의 판매 기록을 수립했다. 킹은 이름대로 공포소설의 왕이다. 그러나 그는 문학성 높은 단편에 주는 오 헨리 문학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그 동안의 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전미도서관상까지 거머쥐었다. 엄청난 돈까지 벌어들인 작가가 권위있는 문학상까지 차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학적 공포다.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영엄마 2004-05-30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스티븐 킹 소설은 좋아하는 편인데, 언젠가 이 책을 읽어볼 요량으로 한 권 빌렸다가 도저히 진도가 안나가서 포기하고 말았던 기억이 나네요.. 인제 애들도 좀 크고 했으니 시간나면 다시 도전을 해볼까나..

stella.K 2004-05-30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실 스티븐 킹의 몇몇 작품을 빼놓고는 그리 좋아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문학성에서 대중성에서 그리고 중요한 문학상은 다 차지한 이 사람이 부러울 다름입니다.^^

진/우맘 2004-05-3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돈까지 벌어들인 작가가 권위있는 문학상까지 차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학적 공포다.
이 문장, 죽이지 않나요?^^

stella.K 2004-05-30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진우맘님. 기자는 또 어디서 이런 철촌살인의 문장을 끄집어 낼 수 있었는지 참, 이 기사 여러모로 기죽입니다요. ㅋㅋ.
 
 전출처 : readers > 가까움 느끼기

..

        ♡ 가까움 느끼기 / 詩 용혜원 ♡ 끝도 알 수 없고 크기도 알 수 없이 커가는 그리움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늘 마주친다고 서로가 가까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삶을 살다보면 왠지 느낌이 좋고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고 늘 그리움으로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까움을 느끼려면 모든 껍질을 훌훌 벗어내고 정직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솔직해야 합니다. 외로움으로 고독만을 움켜잡고 야위어만 가는 삶의 시간 속에 갇혀있어서는 불행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욱 가까워지기를 연습하며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묶어 놓은 끈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nr830 2004-05-30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맘에 와닿는 좋은 시네요^^
저 퍼가요^^
 

최종규씨의 '모든책은 헌책이다'
13년간 헌책방 순례 개성있는 40곳 소개
“버려진 책이 아니라 다시 읽힐 책이 모여”


“헌책방을 좋아하는 사람은 헌책방 이야기를 잘 안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헌책방에 있는 헌책은 새책방과 달리 딱 한 권일 때가 잦아서 남에게 알려주면 애타게 찾던 책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모든 책은 헌 책이다’중에서)


▲ 지하철 청구역 근처‘헌책백화점’을 방문한 최종규씨. 그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그곳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함께살기’제공

인터넷이며 영화 같은 영상 매체들이 젊은 영혼을 사로잡는 시절에 스물아홉 청년 최종규씨의 행로는 좀 색다르다. 고교시절 인천의 한 헌책방에서 절판된 독일어 문제집을 발견한 작은 사건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13년간 헌책방 순례를 해오고 있다.

“단순히 중고책을 싸게 사는 게 아니라 절판된 책을 보물처럼 찾아내는 맛”에 빠졌다는 그가 헌책방과 그곳에서 발견한 숨은 보물들 이야기를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 출판사)라는 책 속에 담았다.


▲ 신촌의 정은서점 약도. 최씨는 많은 사람들이 헌책방 찾기를 기대하며 책 곳곳에 헌책방 안내 지도를 그려 넣었다.
스쳐가며 보면 다 같아 보여도 헌책방은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제각각이다. “연대 앞 정은서점은 느림을 배우는 헌책방입니다.” 바닥에 쌓은 책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 볼 수 있고, 책더미 뒤에 가득한 책은 앞에 있는 책을 옮겨내야 볼 수 있다.

대형 서점 도서검색대에서 목표물을 찾아낸 뒤 곧장 책을 사서 빠져나오는 이들은 먼저 느긋하게 서점을 둘러보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용산의 뿌리서점은 ‘커피 한 잔’으로 유명하다. 주인 부부가 모든 손님에게 자판기 커피 한 잔씩을 대접하기 때문이다. 대방동의 대방헌책방은 책방 임자도 팔기 싫어하는 희소성 있는 책들을 안쪽 깊숙한 책꽂이에 숨기듯 전시하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1978년 삼조사에서 나온 ‘오상원 우화’를 발견했다”며 “이 책은 훗날 한 출판사에서 ‘임금님의 어금니’란 제목으로 다시 출간했는데 백인수 화백이 재미있는 삽화를 그려넣은 삼조사 판이 더 좋았다”고 평가했다. 홍제동의 대양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띈 1979년 7월 22일자 주간지에서 ‘가수 정태춘(26)군과 박은옥(23)양이 뜨거운 사이로 알려져 젊은 팬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고 쓴 기사를 발견하고 “옛날엔 이랬네” 하면서 빛다른 재미를 느낀다고도 했다.

헌책방에서 절판본을 찾아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대전의 육일서점에서는 1977년 까치에서 펴낸 ‘독점소수의 노예’를 만났고, 서울 서대문역 앞 어제의책 서점에서는 홉스봄의 저서 ‘의적의 사회사’를 발견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광장’처럼 수십년을 살아남은 책은, 그 초판본을 찾아내 발간 당시의 자취를 느껴보는 것도 헌책방 나들이의 즐거움이다. 헌책은 새로운 의미를 덧입기도 한다. 박몽구의 시모음집 ‘십자가의 꿈’(1986)에 적힌 ‘금서 해금일에 1987.10.20 이근후’라는 짧은 메모는 6월 항쟁 이후 금서해제라는 민주화조치를 반영한 기록이란 점에서 이 책을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권이 되게 한다.

그는 “책방 순례를 통해 서울에서만 150여곳의 헌책방을 찾아냈다”고 했다. 헌책방 문화운동을 펼치다 헌책방 모임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지난해 결혼까지 했다. 2001년부터는 ‘최종규의 함께살기(hbooks.cyworld.com)’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헌책방 정보와 답사기, 헌책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싣고 있다. 입소문을 타며 모인 회원만 3200여명이라고 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며 찍은 사진을 모아 주기적으로 전시회도 연다.

그가 찾아낸 헌책방 가운데 40~50곳이 문을 닫았다. 혼자 애지중지하던 정보를 공개한 이유도 “몇몇 사람이 즐기던 헌책방마저 줄어들고 책을 읽는 사람이 줄다 보니 이러다 헌책방이 없어지고 말겠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 위기감은 책의 말미에 마치 부고를 알리듯 따로 기록한, 사라진 헌책방 이름들에 절절이 드러나 있다. 살아남은 곳이 버텨내길 바라며 전국의 헌책방 이름과 전화번호를 안내하고 복잡한 곳은 직접 지도를 그려가며 헌책방 사랑을 호소했다.

그는 책에서 “헌책방은 버려진 책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다시 읽힐 만한 책이 모이는 곳”이라며 “헌책방이 변두리 문화가 아닌 고급스러운 문화향수 마당으로 자리잡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 집과 작년 8월 타계한 아동문학가 이오덕의 생가가 있는 충주를 오가며 고인의 유고집을 정리하고 있기도 하다.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arrysky 2004-05-30 0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제목을 보자마자 삘이 팍 꽂히더군요. ^^ 작년 <전작주의자의 꿈>에 이어 또하나의 헌책방 탐방기. 이번에는 좀더 본격적인 듯하군요. 전작주의자..에서는 뭔가 아쉬운 감이 남아 있었는데 여기서는 모든 걸 낱낱이 공개한다니 기대됩니다. 전 비록 헌책방 가서 책은 잘 안 사지만 구경하는 건 굉장히 좋아해요. 책이 많은 장소는 다 좋잖아요. ^^
 
 전출처 : naomi > 류 시화님의 '슬픔에게 안부를 묻는다'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으로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로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때 이곳에 울려 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 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 치며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타고 이 겨울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