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여름 2021 소설 보다
서이제.이서수.한정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첫 번째로 실린 서이제의 <#바보상자스타>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

옛날 유리 가가린과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에 관한 이야기와 가족 문제에서 파생되는 친척간의 관계가 그리 연관성이 있어 보이진 않지만 묘하게 잘도 엮었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차마 형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사촌 재호에 대한 화자 겸 주인공인 진호의 묘한 질투와 열등감을 구시렁거리듯 썼는데 오랜만에 킥킥대며 읽었다. 둘은 어찌하다 보니 학교를 같이 다닌 적이 있는데 그때 재호는 진호 보다 공부도 못하고 한마디로 비실이다. 그런 재호가 Y2K란 아이돌의 멤버가 되고 돈도 많이 버는 이미지 좋은 연예인이 됐다. 그러니 어찌 질투가 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진호가 짝사랑하는 사람이 끼어들 때 그것은 더욱 증폭된다.


그렇게 되니 화자인 진호가 본의 아니게 찌질이가 된다. 이게 이 소설의 포인트 겸 재미다. 찌질이가 되니 얼마나 구시렁이 많겠는가. 읽고 웃음이 난다면 언젠가 한 번은 주인공 같은 때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만큼 작가가 심리 묘사를 잘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것. 가족, 있으면 불편하고 없으면 외롭고 그런 존재 아닌가. 그걸 시치미 뚝 떼고 잘도 구시렁대는 것이다. 아버지를 원망하며.


드라마든 소설이든 원래 주인공은 그렇게 멋있는 사람이 아니다. 어딘가 모자란 모지리다. 그래야 공감이 된다. 잘난 영웅은 흔한 인물은 아니지 않은가. 거리감도 있고. 한마디로 캐릭터 설정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기대되는 작가다.


하지만 인터뷰는 좀 아쉬웠다. 뭐 인터뷰가 그렇게 어렵고 애매한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 작품을 잘 알아야 겨우 알아먹을 것 같은 내용이다. 처음 접해 보는 나 같은 독자를 생각해 인터뷰도 좀 알기 쉽게 하면 좋지 않을까.


이서수의 <미조의 시대>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슨 착한 TV 드라마 특집극을 보는 듯하다. 서울에서 전셋집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옛 구로 공단이 디지털 단지로 바뀌는 과정과 함께 수채화같이 그렸다. 잘 살아보겠다고 산업화를 하면서 오히려 없는 사람은 점점 더 밀려나고 소외되는 문제를 설득력 있게 그렸다.


제목이 그런 만큼 미조가 개천에서 용 나고 자수성가하는 그야말로 70년대 새마을 운동 같은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이제 개천에서 용이 안 나오는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암중모색하는 듯도 하다. 다른 건 폐일언하고, 이야기의 결말은(이거 얘기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알고 지내는 마음씨 좋은 수영 언니 덕분에 결국 이사하고 그 이사한 집은 어머니가 살고 미조는 수영과 함께 살기로 하고 훈훈하게 마무리한다. 그걸 보면서 우린 정말 개천에 물이 말라 더 이상 용이 나오지 않는 시대를 살지만 대신 연대의 방법을 모색해 보자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자신은 현실을 외면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이고, 지금도 쓰지 않는다고 결연하게 말했다. 그래서일까 어찌 보면 뻔한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글이 단단하고 뭔가 현실에 매몰되지 않은 결연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언젠가 작가가 집 구하는 문제로 고민하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과거를 얘기하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더 이상 집 구하는 문제가 문제가 아닌 시대 말이다. 인구는 점점 감소하고 주택 물량은 자꾸 늘어나는데 아직도 정착할 집이 없어 떠도는 사람이 있다는 걸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을 정치 지도자들이 쟁점화하는 것이 아니라 부끄럽게 느껴줬으면 좋겠다. 산업화로 인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정작 있는 사람의 배만 불려주는 양극화의 문제에 대해 통렬하게 반성하고, 어떻게 하면 소외된 자를 끌어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밤새도록 토론해 줬으면 좋겠다. 문득 우리나라 정치가들은 <82년 김지영>과 그 맥을 같이하는 소설을 얼마나 읽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왜 대통령 후보들은 선거철엔 손이 마르고 닳도록 시장이며 온갖 곳을 악수하고 돌아다니면서 청와대를 입성하건 안 하건 시즌만 끝나면 그런 걸 더 이상 안 하는지 모르겠다. 평소에도 그렇게 시민들 만나는 걸 즐거워하고 꼼꼼히 살피면 다음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뽑아 줄 수도 있을 텐데. 그래서 선거는 계절성이다. 목소리를 어떻게 높이냐에 따라 당락의 운을 가르는.


한정현 작가의 <쿄코와 쿄지>는 과연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할만하다. 가장 인상에 남는다. 그러면서 뭔가 작가에게 빚을 졌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미 오래된 이야기지만) 한때는 모처에서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하면서 작가의 길을 모색했었다. 하지만 돌연 그 길이 막히면서 대신 어느 창작 학원으로 기어들어 갔을 때 그곳은 의외로 신천지였다. 무엇보다 그곳의 원장님 자체가 민주화 운동의 투사였고, 나를 가르쳤던 강사분들 역시 직간접으로 연관이 있는 분들이었다. 이게 뭐지 뭐지 하다가 민주화 운동에 겨우 실눈을 뜰 수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땐 민주화 운동이 시들하고 바야흐로 문화의 시대였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 문학은 한때는 참여 문학이더니 이젠 후일담 문학이냐는 식의 자조가 있었던 때였다. 즉 참여 문학의 피로가 후일담 문학으로 이어지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좋게 말하면 문학의 과도기였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니 그때 너무 쉽게 후일담 문학에 혀를 끌끌 차는 게 아니었단 생각이 든다. 광주 5. 18에 대해 제대로 밝혀진 게 뭐가 있는가. 그 일의 최초의 발포자가 전두환이라고 알려지고 있는데 그는 끝까지 그걸 인정하지 않고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한정현 작가는 80년대 생이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태어났지만 민주화 운동과는 별로 상관없는 환경에서 자라고 공부했을 것이다. 그런 작가가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광주 5. 18의 전후를 다룰 줄 몰랐다. 그래서 빚을 졌고 부끄럽다는 얘기다. 나는 민주화가 한창이던 시절에 글을 쓰지도 않았지만 참여 문학엔 거의 관심도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소시민으로 당대를 온전히 살아내지 못했다.


한정현 작가는 이 짧은 한편의 소설을 위해 참고했던 자료들이 어마어마하다. 작가의 원고 한 장이 책 한 권과 같다고 하던데 과연 그런 것 같다. 참여 문학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광주 5. 18를 밝히는 건 사학자나 법조인이 할 일이라고 뒷짐지는 건 위험하다. 오히려 자꾸 기억해야 한다. 인간은 머리가 나빠서 자꾸 떠들지 않으면 잊어 먹는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 민주화 항쟁은 광주 5.18은 언제든 다시 재현될 수 있다. 그 일은 작가가 해야 하고 교육자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민주화 운동의 당사자며 동시대 작가가 쓰는 것과 세대를 거스른 작가가 쓰는 건 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 더 객관적으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작가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다.


피해자를 더 피해자로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그 어떤 누구도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섣부르게 판단하고 재단하면 피해자는 그 피해 속에 영영 갇혀버리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게 설사 연민에서 출발했다 할지라도 판단이 개입되는 순간 동정이 되어버린다고 느꼈습니다. 그 누구도 다른 이의 삶을 함부로 동정할 권리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게 반드시 소설이나 연구의 소재나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듣고 보고 읽는 것인데요. 제가 시간을 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걸 굳이 꼭 글쓰기의 소재로 쓰겠다는 생각을 버리려고 노력해요. 존중해야 할 타인의 삶, 이라는 자각을 붙들고 있으려고 합니다. 그 어떤 삶도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211p

작가가 꽤 성숙한 의식을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 참여 문학을 했던 작가들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을까를 생각해 본다. 적어도 크게는 두 부류가 있지 않았을까. 분노하며 피를 토하듯 썼거나 아니면 정말 이야깃거리가 되겠다 싶어 쓰거나. 어떤 마음이든지 간에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을 테니. 작가는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30년은 지나야 가능하지 않을까. 한정현 작가 같은 의식이 요즘이나 되니까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선 이작가 같은 생각을 하는 작가는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만큼 이런 작가적 거리와 시선을 갖기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난 작가가 이런 자세를 갖고 있는 한 좋은 작가가 될 거라고 믿는다.


문득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아들 곁으로 갔다. 모르는 사람은 그저 아들 잃은 어머니가 고생만 하다 갔나 보다 하겠지. 누군가 평전이라도 남겨주면 좋겠는데 이런 자세로 덤덤하게 써줬으면 좋겠다.


어찌하다 보니 이 시리즈를 세 권째 읽었다. 지난 2021 가을 편은 나쁘진 않은데 뭔가 아쉬워 약간 툴툴거리는 리뷰를 썼다. 이번에 역주행하듯 여름호를 읽으니 그 아쉬운 마음이 싹 사라졌다. 어쩌면 글을 하나같이 잘 쓰는지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역시 우리 젊은 작가들 글을 잘 쓰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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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1-12 22: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잘난 사람보다는 모지리이자 찌질한 사람이 훨씬 많으니 당연히 그가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자신이 잘 나지는 못해도 찌질해지지 말고 좀 대범하게 살자고 다짐하지만 어느새 찌질하게 행동하는 저를 만나곤 해요 ㅎㅎ
스텔라님의 소설에 대한 설명이 명쾌하고도 재미있어요.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한때 민주화 투사들이 논술 입시학원으로 많이 들어간 일도 불현듯 기억납니다~~

stella.K 2022-01-13 19:03   좋아요 3 | URL
다시 읽으니 문득이란 단어를 왜 그렇게 많이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꽤 다듬어서 올린 건데도 다음에 보면 다듬을 게 또 나와요.ㅠ
그래도 잘 읽어 주셔서 제가 고맙네요.
맞아요. 그 시절 작가 투사들은 논술 학원으로 빠졌다는 말
저도 들어 본 것 같습니다.
이제 그 일은 후배 작가들이 이어서 해야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물론 그 시절처럼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땐 고문도 당하고 유치장에도 들어가고 그랬잖아요.
지금은 그때 비하면...!ㅠ

책읽는나무 2022-01-12 23: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서이제 작가꺼 재밌죠?? 저는 좀 킥킥거렸던 기억이 나네요..좀 귀엽게,통통 튀는 느낌이었달까요?^^
이서수 작가꺼는 한국 소설, 그것도 딱 젊은 작가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구요.나쁘진 않았었구요.
저도 세 번째 <쿄코와 쿄지> 아~~정말!!♡
저는 좀 찡~해서 눈물 찔끔 했었네요.
이 작가, 곧 대성하겠구나!! 싶더군요.
이미 대성했나? 이름이 좀 낯익기도 하구요?
여기 실리는 작가들은 어느 정도 입지도가 있는 작가들이 대부분인 듯 하더군요.
암튼 감동이었어요.
여름 호는 세 작품 모두 잘 차려 놓은 밥상 같았습니다^^
스텔라 케이님의 리뷰도 넘 좋네요~
당선되셨음 좋겠습니다.
책이 많이 홍보가 되었음 싶은 예쁜 시리즈 책이에요^^

기억의집 2022-01-12 23:19   좋아요 4 | URL
진짜 글 잘 쓰셨어요!!!

stella.K 2022-01-13 19:13   좋아요 2 | URL
이 시리즈는 계절에 한번씩 알만한 문예지에 실린 것중에
가려서 다시 단행본으로 나오는 거더라구요.
그러니 그거 뽑는 일도 만만치 않겠더라구요.
어떤 출판사도 이 비슷하게 내는데가 있더라구요.
제목이 <시소>던가? 거기에 서이제 작간가? 암튼 똑같은 게
실렸더라구요. 이런 것도 좋은 기획 같아요.
한정현 작가는 의외로 책이 몇권 되더군요.
처음엔 무슨 얘기지 하다가 빠져들더라구요.
잘 됐으면 좋겠어요^^

2022-01-12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3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1-12 2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시리즈군요~! 저는 한권도 안읽어봤는데 스텔라님이 쓰신 글 보니 절로 읽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

stella.K 2022-01-13 19:33   좋아요 2 | URL
이 시리즈는 무엇보다 가성비가 좋은 것 같아요.
가끔 중고샵에도 뜨는 것 같은데 그럼 더 저렴하죠.
다른 책 사시면서 혹시 눈에 띄면 확 나꿔 채세요.ㅋㅋ
새파랑님 속도로 읽으시면 앉은 자리에서 한두 시간이면
뚝딱 읽으실 거예요. 참고로 전 4일 걸렸습니다.ㅋㅋ
죽겠습니다.ㅠㅠ

mini74 2022-01-13 00: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배은심여사 돌아가신 날 대구 모 신문사들이 전두환관련 찬양 광고를 실었죠. 정말 인간에 대한 예의라곤 모르는구나 싶어서 화가 났던 기억이 ㅠㅠ 요즘 아이들 현대사는 제대로 배우지 못해 걱정도 큽니다. 모 회사에선 전태일평전을 읽는다는 이유로 해도하기도 하고 ㅠㅠ 한정현 작가 기억하겠습니다 ~

초란공 2022-01-13 10:16   좋아요 3 | URL
예의라는 표현도 아까운듯 했습니다. 그저 천박함의 끝판왕을 보는구나 했어요. 저는 박민영 저자의 <반기업 인문학>을 다시 읽어볼까봐요...ㅋ 더 많은 젊은 작가들이 어디선가 부단히 사회를 관찰하고 글쓰기를 하고 발표했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22-01-13 19:41   좋아요 3 | URL
와~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 사람네들이 그렇게 하는 근거가 뭔지 궁금하기도 해요.
어떻게하면 그럴 수 있는지.
아직도 전태일 평전 읽는다고 해고를...? 무슨 지금이 80년대도 아니고.
충격입니다. 하긴 독일은 지금도 신나치주의 망령이 떠돈다던데
뭐 그런 거하고 똑같은 거죠.
아이들이 현대사를 못 배우는군요. 하긴 우리 학교 때도 근현대사는
잘 못 배웠던 것 같아요. 삼국시대와 조선시대만 딥따 배웠지.
걱정입니다.ㅠ

stella.K 2022-01-13 19:47   좋아요 3 | URL
오, 초란공님 요런 책이 있었군요.
괜찮은 것 같은데요? 일단 보관함에 넣었습니다.ㅋ

저도 젊은 작가들 그렇게 되길 바라봅니다.^^

희선 2022-01-14 0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집은 많이 짓지만 집이 없는 사람도 그만큼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짓기만 하고 거기 사는 사람이 없는 집이겠습니다 돈 없는 사람은 집도 못 구하고 한국에는 전세가 있었는데 그것도 없어질 것 같아 보여요 코로나19로 더 힘든 사람 많겠습니다 지나간 일이라고 해서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자꾸 말해야 잊지 않고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겠네요


희선

stella.K 2022-01-14 11:49   좋아요 1 | URL
외국에는 아예 전세라는 개념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대신 장기 임대주택이 있을 뿐이지. 우리도 그 추세로 가는 것 같긴한데 그 기현상은 언제쯤 해결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역사교육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2022-01-18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8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정한 작가이길 원하거든 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한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고, 노신은 이렇게 말했다. 불의를 비판하지 않으면 지식인일 수 없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작가일 수 없다.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어지러운 시국을 가슴 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의 말이다."
-조정래의 소설 <허수아비춤> (2010)의 서문에서
- P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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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1-12 14: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도서관에서 봤었는데 책이 엄청 두껍더라구요?
빌려 읽을 엄두가 안나더군요.
스텔라 케이님 생각 많이 났었어요^^

stella.K 2022-01-12 19:26   좋아요 3 | URL
아유, 저를 다 생각해 주시고 감사하네요.
좀 두껍긴 하죠? 이게 재밌긴한데 좀 후딱후딱 읽게되지는
않더라구요. 대출은 2주까지 밖에 안되지 않나요?
그래도 찾는 사람이 많을 것 않으니 연장해서 보셔도
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현대사와 그때 나왔던 책들에 관한 얘기가
맞물려서 읽는 재미가 쏠쏠해요.
혹시 나중에 중고샵에 나오면 그때 잽싸게!^^

청아 2022-01-12 14: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이 문장 너무 좋네요!! 저장저장ㅋㅋㅋ556페이지?!!

stella.K 2022-01-12 15:37   좋아요 3 | URL
ㅎㅎ 오늘 처음으로 북플에서 스맛폰으로 찍어서 올려 본 거예요.
처음엔 좀 어리둥절 했는데 해 보니까 편하더군요.
그런데 막상 노트북에서 보니 오타가 많네요.ㅠ

페크pek0501 2022-01-12 17: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경인일보 고정 필진으로 (몇 명이 돌아가며 기고하는) 수요 광장을 쓰고 있는 분이에요.
책이 꽤 두껍네요. 뽑아 주신 글은 제 책상 위의 벽에다 써 붙여 놓고 싶군요. 명심해야겠어요. ^^


stella.K 2022-01-12 19:31   좋아요 0 | URL
와, 그렇군요. 언니가 그분과 고정 필진이다 이거죠?
멋짐 뿜뿜입니다.^^
저는 작가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솔깃해져요.
정말 어디 걸어놔도 좋을 것 같아요.
 

                


아침에 카톡이 울렸다.

내가 속한 단체방 신호음은 오리지널음이 아니다. 

오리지널음은 주로 카*오톡에서 구독하라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건 보통은 늦은 오후에 오는 경우가 많다. 근데 이건 아침에 울렸다. 개인으로 오는 카톡 역시 오리지널음이라 분명 아는 사람이 보냈을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스마트폰을 열어 확인해 봤더니 아는 지인이었다. 생일을 축하한다며 파*바게트 시그니처 생딸기 우유생크림케이크 기프티콘을 보내주셨다. 순간 웃음 폭발!!! 사실 나의 진짜 생일은 9월인데 호적상 생일은 오늘이다. 워낙에 9월 생으로 많이 알 오늘인 줄 아는 경우는 어느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의례적으로 축하 메일 보내주는 것 밖엔 없다. 그런데 계정을 만들려니 내 호적 생일을 알렸을 것이고 나의 지인도 그렇게 해서 알았을 것이다. 사실 그 지인은 내가 속한 모임의 대빵이기도한데 거의 20년 가까이 모임을 이어오고 있는데 한번도 이런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걸 아쉬워하거나 알린 적도 없다. 일년에 한 번, 많아야 두 번 모이는 모임이니 서로 생일을 챙기고 말고할 것도 없다. 알면 카톡에서 축하 문자나 보내는 게 다다. 그냥 어느 날 모이자 하면 모여서 거한 저녁을 먹는게 다다. 물론 그때 그 모든 비용을 내시는 분이다. 


평소 때 같으면 안 챙겼을 것 같은데 코로나로 2년 넘게 모이지 못하고 있으니 대빵으로서 그게 짠하셨나 보다. 사실 난 케이크를 별로 안 좋아한다. 우리 가족도 케이크는 거의 먹지 않는다. 순간 작년 내 찐생일 때 성경공부 리더님께서 보내주신 느닷없이 보내주신 요거트로 만든 케이크가 생각났다. 혼자 먹어 치우는데 열흘쯤 걸렸던 것 같다. 이걸 또 먹어야 하나? 고민이 돼 허탈한 웃음이 나온 것이다. 


그래도 사진 보면 한 조각 정도는 먹고 싶긴하다.이름도 '시그니처 생딸기 우유생크림케이크'라니.뭔가 건강함이 느껴지지 않나? 


암튼 받았으니 감사의 전화라도 해야할 것 같아 했더니 받지 않으신다. 그래서 대신 카톡 문자를 남겼다. 케이크 싫어한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호적 생일일뿐인데 이렇게 돈을 쓰셔서 어떻게 하냐고. 그랬더니 "오늘 생일이 아니면 어때? 올해 생일있겠지.ㅋ" 한다. 하긴 찐생일이건 호적 생일이건 생일 한 번 있지 두 번 있나.


저걸 어쩌나 하다가 키프티콘의 유효기간이 4월이다. 마침 성경공부 리더님 생신 즈음이라 잘하면 성경공부 때 다같이 먹을 수도 있겠다 싶다.         

아, 난 왜 케이크를 안 좋아할까.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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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10 21: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케이크를 안좋아하시는군요 ㅋ 케이크는 맥주 인데 ^^ 20년간 모임을 이어가다니 대단한거 같아요. 호적상의 생일이시더라도 생일 축하드립니다~!!

stella.K 2022-01-10 21:51   좋아요 3 | URL
ㅎㅎ 새파랑니임~ 제가 새파랑님 구라에 넘어 갈 줄 아셨죠? 그거 섬머싯 몸 소설이잖아욧!ㅋㅋ 근데 함 먹어보고 싶기도 해요. 전 케잌의 단맛도 그렇지만 더부룩한 기름진 맛이 살 찌는 기분 때문에 안 좋아하거든요. 그게 웬지 맥주가...ㅋ
그러게요. 오래 못 갈 거 같은데 오래가더라구요.^^

청아 2022-01-10 22: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작년에 스텔라님 케잌얘기 기억났어요!!ㅎㅎㅎ 저는 케잌 엄청 좋아해서 굳이 이벤트 만들어 사먹기도하거든요.
가족들도 안좋아하신다니 쿠기등 다른 좋아하시는 메뉴로 구매하심 좋을듯해요^^* 민증생일 다시한번 축하드려요~♡♡😉💫🍹

stella.K 2022-01-10 22:13   좋아요 2 | URL
아, 다른 걸로 사도 되는 건가요? 그러면되는 것을.ㅋㅋ
저 케잌 미미님 드시와요. ㅎㅎ 염장이죠? 그래도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당.🥰
저도 미미님 생일 다시 한번 축하해요!😚

기억의집 2022-01-10 2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케익 말고 다른 거 사면 안되냐고 물으시면 된다고 하세요. 케익이 자기 매장에 없을 수가 있어서 대체품 가능해요. 저의 딸은 코스트코에 가서 요즘 핫하다는 딸기케익 사 와서 거의 다 딸애가 먹었어요!!!

stella.K 2022-01-11 10:09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러게 말이어요. 괜히 고민했어요.
요즘 딸기 엄청 비싸더군요. 명절이나 지나야 싸질거라는군요.😥

mini74 2022-01-10 2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해 생일이겠지 ㅎㅎ 대빵님 쿨하신데요 저희집은 빵돌이 빵순이가 사는 집이라 ㅎㅎ 호적상 생일 축하드려요

stella.K 2022-01-11 10:11   좋아요 1 | URL
치과의사신데 좋은 분이시죠. 고맙습니다. 대빵님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립니다.^^

책읽는나무 2022-01-11 0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생일 하신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1 년이 되었나?깜놀했어요ㅋㅋㅋ
파리바게뜨에선 그 쿠폰의 금액만큼 다른 상품으로도 살 수 있으니 빵이나 샌드위치, 거기 아이스크림도 맛있어요.
매장 꼼꼼하게 둘러 보시고 기호에 맞는 걸로 사 드세요.
호적상엔 올백이 아가셨군요?ㅋㅋㅋ
케잌 많이 챙겨 드실 수 있어 좋으시겠습니다.
모든 날이 생일 같아라!! 좋은 날입니다^^

stella.K 2022-01-11 10:17   좋아요 2 | URL
올백이아가?ㅎㅎ 첨들어 보는데요? 재밌는 표현 같아요.
저는 파바가면 늘 사는 게 정해져 있죠. 밤식빵 아님 효모빵, 마늘 바게뜨 정도. 아이스크림도 있었군요. 고려해 보겠슴다. 고맙슴다.😋

책읽는나무 2022-01-11 10:36   좋아요 2 | URL
아~~그 말이 우리 쪽 사투리인가 봅니다ㅋㅋㅋ
1월생 아이들을 보고 올 되었다고 일 년을 꽉 채운 아이니 좀 많이 영글었다는 뜻으로 쓰는 것 같더라구요. 울 시부모님이 매번 1 월이나 2 월생의 아이들 생일이면 매번 올백이라고!!!ㅋㅋㅋ
올 백이라고 쓰는 게 맞춤법상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요^^

프레이야 2022-01-11 0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처녀자리 스텔라 님 호적생일 측하드려요
일 년에 생일 두 번 하시구요. 케이크를 안 좋아하시다뇨. 저는 빵수니라 케이크도 ㅋㅋ

stella.K 2022-01-11 10:24   좋아요 1 | URL
와 너무 불공평한거 아닌가요? 그렇게 빵을 좋아하시는데 살도 안 찌시고, 하지원 같으시고. 저는 물만 먹어도 찌는 체질인데 우이씨~🤧
제가 요즘 좋아하는 빵이 따로 있긴하죠. 견과류 듬뿍들어간 궈 먹으면 입천장 까질듯한 빵. 전 그런 빵이 좋더라구요.ㅎ 축하고맙슴다.^^

프레이야 2022-01-11 12:48   좋아요 1 | URL
ㅋㅋ 스텔라 님의 매력. 우리가 생긴 건 얌전한데 은근 터프하지요. 전 며칠전 뜨거운 호빵 먹다 앙꼬에 입천장 홀라당 까졌어요. 입천장은 살살 조심요. 하 머시기는 사진의 오해로 보입니다 ㅎㅎ

니르바나 2022-01-11 1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고은 시인은 말씀하셨지요.
가장 슬픈 것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잊혀지는 것이라구요.
스텔라님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는 한 분명 스텔라님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분이십니다.
이유야 어쨌든 참 잘 사셨어요.
축하합니다!!!

stella.K 2022-01-11 11:02   좋아요 2 | URL
캬~호사입니다. 올핸 니르바나님의 고은 시를 얹은 생일 축하도 받고.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좀 인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빨간 머리카락 마담의 숙소 - 할머니의 우아한 세계 여행, 그 뒷이야기
윤득한 지음, 츠치다 마키 옮김 / 평사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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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여행은 나와는 별로 인연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말을 거의 신봉하며 살았고, 나이 들어선 기회도 없거니와(기회는 만들어야 한다고 하더만) 관절이 좋은 편도 아니어서 걷는 게 자신이 없다.(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파파 할머닌 줄 알겠다. 그 정도는 아니고.) 그래도 내 인생 가장 젊은 시절에 사람들과 어울려 몇 군데 다녀봤다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된다. 그것조차도 없었다면 쓸쓸해서 어찌할 뻔했나. 이런 내가 여행 에세이라고 좋아할 리 없다. 다 염장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당장 떠날 수 없는데 무슨 대리만족인가.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읽어야 할 책은 차고 넘친다 그런 거에 마음 둘 세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다.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다. 저자의 나이가 구순이다. 해방을 거친 세대라는 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가 좀 개화기, 구한말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아서. 말하자면 그 시대 신여성이라는 것만으로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특이한 건 저자가 분명 한국 사람임에도 일본어로 쓰고, 번역을 일본 사람이 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저자가 젊을 때 남편 따라 일본에 정착했다. 그리고 지금도 70년 가까이 일본에 산다. 해방 전에도 국어 말살 정책으로 한국말을 쓰지 못하게 했으니 한국어와는 별로 인연이 없어 보인다. 그 점은 저자도 언감생심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책은 여행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간략하고 담백하게 쓴 저자의 자서전 같기도 하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게 있다.


저자가 한마디로 당차다. 남편이 재일교포로 사업가로 결혼 초기엔 나름 떵떵거리며 잘 살았다. 하지만 곧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만다. 그땐 이해심이 많은 남편 덕에 미국의 시카고 대학 영화학과에 입학 허가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남편의 사업이 망했으니 호구지책으로 단추 디자인 일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의외로 잘 돼 삶의 기반을 다지고 슬하의 자제들도 명망 있는 학자로 키워냈다.


저자는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뭐든 마음먹은 건 해내고야 마는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2012년 우연히 TV에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성 가족 성당(사르라다 파밀리아)에서 미사 드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알다시피 그 성당은 아직도 건설 중에 있다. 그해 일부가 완성되어 미사를 드렸던 것이다. 보는 순간 저기를 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무려 여든셋의 나이에 말이다. 더구나 일본인 며느리가 저길 가야 되지 않겠냐고 부추기기도 했다. 저자는 무턱대고 성당이 있는 바르셀로나로 간다.


하지만 보는 것과 다르게 그때 드려졌던 미사는 그냥 성당 내부의 완성을 축하하는 특별 미사며 헌당식까지는 아직도 멀었다는 말을 듣는다. 순간 왜 주일 날 미사를 드리지 않느냐며 실망에 겨워 항의 아닌 항의를 하자 그곳 관계자도 좀 미안했던지 마침 주일 날 서품식 미사가 있는데 거긴 서품자와 직계 가족만 참석할 수 있다고 한다. 이 하나마나 한 얘기는 저자의 가슴에 활활불을 더 지핀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발길을 돌릴 수는 없다. 그런데 정말 궁하면 통하는 걸까. 마침 서품자의 직계 가족 한 사람이 자신은 사정이 있어 참석할 수 없으니 대신 참석하라고 한다. 여기서 교훈은 역시 되든 안 되든 질러는 봐야 한다는 거다.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말도 잘 안 통하니 일찌감치 포기하고, 기왕 왔으니 성당 앞에서 기념사진이나 찍고 주변이나 돌아보고 갔겟지.더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남에게 아쉬운 잘 못하고 사정하는 게 익숙한 체질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부러라도 질러보면 의외의 길이 열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미리부터 예단하고 가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저자가 서품식 미사에 참여할 확률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훨씬 낫은 확률이다. 0.00001% 확률도 안 된다. 하지만 이건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기적과 같은 것이다. 미리부터 포기할 일이 아니다.


저자가 얼마나 당차냐면, 1965년 나이 서른여섯에, 평소 일본에 살면서 일본에 한국의 좋은 점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해 한일협정으로 두 나라의 교류가 활발해질 거라고 생각하고, 그 유명한 도쿄 미쓰코시 백화점 6층 전층에 한국관을 한시적으로 열어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당시 전층을 빌린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 그런 만큼 언젠가 우리나라에 와서도 비슷한 전시를 했었는데, 그때 우리는 일본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 때라 (지금도 좋은 건 아니지만) 우리가 뭐 그런 쪽바리의 문화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소극적이었단다. 그랬을 때 저자는 물러서지 않고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도공들이 일본에 가서 기술을 전수한 걸 생각해 보라며 일침을 가했단다. 대단하지 않는가.


사실 그런 저자가 누구냐면, 고 육영수 여사의 영어 교사로 한때 의자매처럼 지내기도 했다. 이만하면 인생 견적 나오지 않는가. 대대로 이어 온 소위 빼대있는 양반 가문의 여식이다. 저자의 어머니 또한 예사 분이 아니다. 분명 뼈대 있는 가문의 여식으로 자라지만 아버지가 가난한 양반 가문의 집으로 시집을 보낸다.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못했고 남편의 무능함에 죽을 결심을 하지만 그즈음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고 자식의 교육과 남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 저자나 저자의 어머니나 퀄리티가 남다르다 싶다.


이 책은 여행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시차의 구애받음이 없이 자유롭게 썼다. 그럼에도 뭔가의 삶의 궤적이 느껴진다. 아무리 가볍게 말해도 참 교양인다운 삶이 느껴진다. 더구나 저자는 여행을 마칠 때마다 일본의 짧은 시 '하이쿠'를 남긴다. 예를 들면 1971년 저자의 나이 마흔둘에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굴을 먹고 이런 하이쿠를 읊는다.

   얼음덩이리

   부딪치며

  굴을 먹었네

  달팽이 가득

  담겨 서늘한

  은쟁반


또 앞서 미사 한 번 드리겠다고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고 가우디의 삶을 소개하고는,

  가우디의 꿈

 그대로 이루어진

  성당의 바람

  가을 날 햇빛

  가우디의 기도가

  이 미사에


몇 년전 이사카와 다쿠보쿠의 손바닥만 한 크기의 책 <한 줌의 모래>란 단카집을 읽은 적이 있다. (단카는 우리나라 시조 같은 것으로 하이쿠와 형식이나 분위기가 비슷하다 .) 좋긴 하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확실한 상황과 분위기를 알고 읽으니 뭔가의 감흥이 전해져 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떻게 하이쿠를 알게 되었을까. 그건 마쓰오 바쇼(1644~1694에도 막부 전기의 시인이다. 아명은 긴사쿠(金作). 홋쿠라 불린 하이쿠의 명인.)를 좋아해서 하이쿠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이쿠의 주요한 특징은 열일곱 자의 엄격한 전형의 틀에 시적 긴장감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이다. 저자는 하이쿠 선생을 직접 찾아가 배웠다고 한다. 그건 머리가 좋거나 문학적 감각이 뛰어나지 않으면 접근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때그때 사물을 관찰하는 센스가 있어야 하고, 공감 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하이쿠는 요즘으로 치면 스마트폰 카메라고 순간을 찍어두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그러면서 일본의 소화의 정서를 소개하기도 한다. 하이쿠가 소화 시대 때 꽃을 피웠으니. 저자는 소화의 정서를 대표하는 것으로는 다도와 이케바나라는 일본식 꽃꽂이와 토키와즈란 일본 전통음악 등을 빼놓지 않고 소개하기도 한다. 특히 다도 하면 센노 리큐(1522~1591)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난 이 책에서 그를 발견하고 좀 반가웠다. 오래 전, <리큐에게 물어라>(문학동네)라는 그의 전기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얼마나 좋던지. 이 책 읽어봤다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았는데 말이다. 저자는 그렇게 다도를 접하면서 우리나라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다. 알겠지만 신라시대 때부터 우리나라 도공들이 대거 일본으로 끌려가 도자기 문화를 꽃피우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사람들 한국말 못 하는 경계인들을 은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는 한국말을 잘 못했다 뿐이지 알고 보면 우리 보다 더한 (찐)한국인이다. 외국 나가살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는 건 요즘 일본과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 않은가. 역시 양국 간의 문제는 문화교류가 아니면 방법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니 나는 저자보다는 아직도 젊은데 생각은 젊지 못하구나 싶다. 여행도 여행이지만 저자의 그 꺾기지 않는 의기와 호기심에 경이와 존경을 표하고 싶어졌다. 물론 난 저자같이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살고 있고 저자만큼 여행을 다닐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과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하는 마음은 늙어서도 언제나 간직하고 싶다. 


사실 이 책은 작년에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어찌 보면 세밑이라 여러 가지로 마음이 싱숭생숭할 수 있었는데 읽을 수 있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읽는 내내 즐거웠다. 나는 이 책으로 모토가 생겼다. 그건 '늙어도 우아하게'다. 잘 살고 잘 늙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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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1-06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밑에 딱 좋은 책 읽으셨네요 ^^
저도 읽고 싶어져 담아갑니다.
윤득한 처음 들어본 이름인데 내공이 상당한 분인 것 같아요. 제목만으로는 어떤 책일지 전혀 가늠이 안 되는데 스텔라 님 리뷰로 완전 궁금해졌습니다.
예술과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을 놓지 말고 우아하고 팔팔하게 나이들어갑시다요. 수시로 전시도 챙겨 보고 여행도 가고. 센노 리큐는 들어 보았는데 리큐에게물어라,가 있군요. 그것도 찜요.

stella.K 2022-01-06 22:05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제목이 좀... 근데 내용은 정말 좋아요.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고. 편하게 읽혀요. 개화기 어머니나 저자나 양반가문에서 자랐다는데 그래도 그닥 행복했던 건 아닌 걸 보면 참 짠해요. 여자가 행복해야 진짜 좋은 나라라는데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신앙이 버팀목이었다는게...😥

기억의집 2022-01-06 2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분 대단하시네요. 나이 아흔에.. 게다가 적극적이시네요. 한국문화를 알리겠다고 홍보도 적극적이고.. 츠치다 마키는 한국어 전공 일본인인가요???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유튭 있는데.. 거기 마츠다 부장이 한국어를 엄청 잘해요. 한일 혼혈인데.. 처음에는 아버지가 일본인이라 일본 국적인데 한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서 오랜 세월 일본 살면서도 한국인같더라고요. 할머니 소개들 읽으니 마츠다부장 생각나네요!!

stella.K 2022-01-07 10:03   좋아요 1 | URL
뒤에 보면 저자가 역자를 어떻게 만났는지도 나와요. 아마 기억님이 알고 있는 게 맞을 거예요. 요즘엔 뒤돌아서면 기억이 흐릿해져서 말이죠.ㅠ 전 힘들어서 이분처럼은 못 살것 같고 이분의 정신은 참 존경할만한 것 같아요.🤩

기억의집 2022-01-07 10:11   좋아요 2 | URL
ㅎㅎ 번역가 모르는데.. 저자은 한국인인데 한국어를 못 하고 번역가 보니 일본인이라… 특이하네 생각했어요!!!

mini74 2022-01-06 2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 그림처럼 작가님 저런 멋진 패션으로 다니셨을 듯 해요 당차고 나이따윈을 시전하는 추진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

stella.K 2022-01-07 10:14   좋아요 2 | URL
그 시대에 미국 유학까지 갈 생각을 했다면 뭐. 사실 공부 때문에 결혼도 안하려고 했는데 남편이 공부하게 해주겠다고 해서 결혼한 거라더군요. 남편도 그 약속을 지키려했는데 그만ᆢ 교포로 사업가였다면 그 남편도 대단한 집이었을 것 같다능. 👍

초란공 2022-01-06 23: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든 셋에 마음먹은 걸 하는 분이라니요!!!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성격을 가지신 분 같습니다. 몸이 가벼운 분들이요. 여행 좋아하는 아내에게 보여주어서는 안되는 책이군요. ㅋㅋ 저는 집돌이...게다가 무슨 일을 하려고 생각하면 부채도사가 됩니다. 이걸 할수 있을까? 할까 말어? ㅜㅜ

stella.K 2022-01-07 10:16   좋아요 2 | URL
그니까요. 저는 관절이 안 좋아 어디 잘 못 다니는데.ㅋ
아내님껜 보여주지 마시고 몰래 숨어 읽으세요.😅

페크pek0501 2022-01-10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정신만은 전혀 늙지 않는 멋쟁이 분이시네요. 게다가 용기도 대단하시고요.
여행을 많이 다니면 좋긴 할 거예요. 그런데 점점 집 떠나기가 싫으니 문제예요.
여행 좋아하는 이들은 여행을 위해 계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중요한 건 대범해지고 그리고 용기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죠. 나이들수록 저는 소심해져가는 것 같아요. 안전제일주의자가 되어 버리고 모험을 즐길 줄 모르게 되어요.
저자 같은 분이 멋지게 사는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말이죠. ^^

stella.K 2022-01-10 19:23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이어요. 저는 다리가 안 좋아서 어디 다니는 게 자신이 없더라구요.
지난 가을에 가족 여행 간 것도 언니가 차 렌트한다고 해서
간 거거든요. 막상 떠나면 좋은데 떠나기까지의 과정이 좀 그렇죠?ㅎ
하도 안 가니까 그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게 되더라구요.
근데 생각해 보면 힘이 없어 못 가는 것 보다 돈이 없으면 못 가겠구나
싶은 생각이 더 많이 들더군요. 그 잘난 1박2일 갖다오는 것도
수억 깨졌어요.ㅋㅋ
 

리뷰를 쓰겠다고 하곤

벌써 3시간 가까이

서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결국 아무 것도 못하고

하루를 마치는구나

올해를 어떻게 살지 

환히 보이는구나.

젠장!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뭐

오늘은 휴일이고

내일부터가 한해살이의 

진짜 시작 아닌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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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02 2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맞아요. 내일이 찐입니다 *^^*

stella.K 2022-01-03 09:53   좋아요 1 | URL
힘차게 시작하십시오.🤗

페크pek0501 2022-01-02 22: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재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나름 유익한 시간이 됩니다. ^^

stella.K 2022-01-03 09:54   좋아요 1 | URL
그건 그래요. 😄

얄라알라 2022-01-02 2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 K님!! 저도 오늘 읽은 책, 정리해서 남기겠다고 서재 들어왔다가 여기저기 돌아다닌지가 한 시간 넘었습니다!

stella.K 2022-01-03 09:57   좋아요 2 | URL
저 보단 약하신데요? 정말 여기 들어오면 한두 시간은 훅 가죠. 올핸 시계부를 써 볼까봐요. 시간이 돈이라는데ᆢ🤭

바람돌이 2022-01-03 0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새해는 개학하는 3월부터입니다. ㅎㅎ

stella.K 2022-01-03 10:00   좋아요 2 | URL
ㅎㅎ 그러게요. 우리에게 3월이 있다는 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이 있다는 거죠. 솔직히 2월은 작년 겨울의 떨거지잖아요.ㅋㅋ
쉴 수 있을 때 열심히 쉬세요.🤗

hnine 2022-01-03 07: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세시간 후딱 보낼 수 있는 일도 흔치 않아요 ^^
‘아무것도 못하고‘ 대신 그 아무 것에 서재 탐방도 넣어주면 어떨까요.
저는 한 시간 남짓한 영화 한편 보면서도 끈덕지게 못보고 있답니다 ㅠㅠ
오늘이 월요일이다 보니 1일보다 더 첫날 느낌이 나기도 하네요.
재미있게, 책, 영화, 드라마 많이 보시는 한해 시작하세요.

stella.K 2022-01-03 10:0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제가 작년엔 다롱이 땜에 서재 활동을 많이 못했는데 그에 대한 여파인 것 같기도해요.
저하고 비슷한거 같네요. 제가 그래서 본방사수를 잘못 해요. 올레tv로 끊어 보고 있죠.ㅋ 그래도 열심히 볼래요. h님도 올해 좋은 영화, 책 많이 보시는 한해 되십시오. 복도 많이 받으시구요.🥰

새파랑 2022-01-03 07: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 1월 3일이 22년의 첫 시작이 맞습니다 ^^

stella.K 2022-01-03 10:08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힘차게 시작하셨죠?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