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밤, 영화 전문 채널에서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들었다. 솔직히 예전에 이 영화를 보려다 엎은 적이 있다. 나는 대체로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유독 이 <전우치>만큼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보다가 말았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을 듣고 영화를 다시 본다면 좋지 않을까 했다.
아, 그런데 이 영화는 나와는 아직 인연이 없던 걸까? 하필 같은 시간에 다른 방송에서<중경삼림>을 하는 거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해는 1994년. 그런데 우리나라에 상영된 건 1995년이다.
그것을 내가 기억하는 건, 그해 나는 창작을 배우러 학원을 다녔었다. 나는 그때 창작을 가르치는 사설 학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전까지 그런 건 대학교에서나 가르치는 줄 알았다. 덕분에 난 거기서 나의 꼰대 선생을 알게 되었다. 당시 그 선생님은 소설가로 우리에겐 창작 전반에 관한 강의를 하셨지만 (아마도)같은 날 저녁 때는 H 문화센터에서 시나리오를 가르치셨을 거다.
그때만해도 우리나라에 왕가위 감독은 그다지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다. 모르긴 해도 이 선생님이 최초로 알린 장본인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은 어디서 또 이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이 우리나라에 상륙할 거란 정보를 입수하셨을까? 하긴, 선생님은 시나리오 강사로도 활동을 하셨으니까 그 바닥의 소식을 빠싹하셨겠지. 선생님이 왕가위 감독을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우리나라 극장에 곧 걸릴 것이니 그때 꼭 보라고 거의 침을 튀기며 강요하다시피 했다.
우리야 뭐 모르는 영화를 접하는 것이 나쁠 건 없다만 어찌보면 취향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한편 마음이 묘하게 편치는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정말 이 영화를 하는 것이었다. 난 그때 같은 수강생이었던 선과 함께 이 영화를 언제 볼까를 정하고 있었다. 다음 주 무슨 날 몇시에 만나서 보자 거의 날짜와 시간까지 정했는데 왠걸, 꼰대 선생님이 중간에 끼어들어 급하게 점심을 먹고 바로 그날 영화를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과의 약속은 무엇이고, 이 영화가 상륙하거든 꼭 보라는 선생님의 침 튀김은 뭐란 말인가? 결국 이렇게 같이 볼 거면서. 이 선생님 좋게 말하면 강단있고, 나쁘게 말하면 무대뽀다. 그저 단지 수강생과 이물없이 영화를 볼 생각을 했다는 선생님의 태도가 좀 신선해 보였다고나 할까?
물론 그럴 경우 보통은 과외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표를 대신 사곤 하던데 그건 역시 코흘리게 시절 이야기고, 그때 우린 이미 다 큰 성인이었으니 오히려 선생님의 표까지 사 드려야 할 입장이다. 그때 누가 선생님의 표를 대신 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선생님은 대머리도 안 되고 지금까지 잘만 사신다. 아무튼 그렇게 보기 시작한 이 영화는 글쎄.. 영화를 참 독특하게 찍었다는 것 외에 무엇이 좋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를테면 임청하가 노란머리 마약밀매자로 나오지 않던가? 자신을 배반한 떨거지들을 총으로 죽일 때 영상이 특이했다. 그때까지 그렇게 영화를 찍은 감독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거를 빼면 뭐가 좋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유명한 흘러간 팝송 마마스 앤 파파스의 노래를 영화에서 멋지게 복원해 냈다는 것 외에는.
확실히 선생님은 취향을 강요하고 계셨다. 영화가 끝나고 뭘 봤는지 얼떨떨해 하는 사람이 모르긴 해도 나 말고도 적어도 한 명은 더 있지 않았을까? 단지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고, 선생님 덕분에 좋은 영화 봤다고 기분 좋게 헤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20년이 흘렀다. 그리고 난 혼자 조용히 이 영화를 보며 그때를 반추해 본다. 그때 예정대로 같은 수강생이었던 선과 함께 봤더라면 분명 뭐 생각 보다는 별 로다라고 입맛을 다셨을지도 모른다. 그건 지금 봐도 그랬을 것 같다. 영화 내용 자체가 딱히 사랑을 이룬 것도 이루지 않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금성무와 임청하가 나오는 첫번째 에피소드는 확실히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30개나 되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는 금성무는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호텔인지 여관방에서 임청하의 신발을 벗겨주려면 좀 일찍 벗겨줄 일이지 새벽 동이 터올 무렵 방을 나가면서 벗겨줄 건 또 뭐란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자기 엄마가 여자는 신발을 신고 자면 발이 붓는다고 했다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경찰관이 마약밀수에 살인까지 하는 여자를 사랑하다니? 말이되는가? 하긴 별로 사랑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저 사랑할 줄 모르는 고독한 영혼을 그렸다고나 할까? 아, 그리고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느냐는 이 선전문구 같으면서도 드라마틱한 대사는 금성무의 대사였구나 싶다.

그래도 두번째 에피소드는 첫번째에 비해 다소 밝고 깜찍한 느낌마져 들긴 한다. 하지만 영화 중간중간에 보이는 양조위의 하얀 난닝구에 빤스 바람은 어딘가 처량맞아 보이긴 한다. 이렇게 멋진 배우를 이토록이나 처량맞게 만들어 놓다니. 왕가위 감독은 확실히 나빴다.
하지만 왕페이는 확실히 사랑스럽다. 사랑을 이룰지도 모르는 그 순간 용기가 없어 한발 물러서고 도망가는 그 마음을 일견 이해할 것도 같다. 그래서 하얀 난닝구에 빤스 바람인 양조위가 더 처량맞아 보이는 거겠지. 노래 가사말마따나 한 발 다가서면 두 발 물러서는 고독한 사랑을 전혀 우울하지 않게 다룬 것을 보면 확실히 왕가위 감독은 난 사람이긴 한가 보다. 왜 나의 꼰대 선생이 침 튀겨 가면서 이 사람 영화는 무조건 봐야 한다고 했는지도 알 것 같고. 그래서 또 이후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심심찮게 봐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영화 별로였던 것 같다고 말할 선은 이제 없다. 언제부턴가 회자정리가 되서 종무소식된지 오래다. 가끔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면 옛 생각이 떠오른다. 이맛에 영화를 보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엔 유통기한이 있어도 역시 추억엔 유통기한이 없다.
그나저나 <전우치>는 언제 또 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