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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의 도시락
아몰 굽트 감독, 파르토 A. 굽트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전 세계적으로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가 미국일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을 능가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인도다. 인도하면 못 살고, 못 먹는 나라라서 영화도 못 만들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영화를 그렇게 많이 만드는 나라니 만드는 영화마다 잘 만드는 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인도 영화를 나름 여러 편 본 것 같은데 보고 실망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훌륭했다는 말은 또 아니다.
어찌보면 내가 본 영화들은 인도의 수백 또는 수천 편의 영화 중 외국 자본 즉 허리우드 자본이 투입된 성공작만을 엄선해서 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영화를 인도를 뜻하는 발리와 허리우드의 합성어 발리우드 영화라고 하지 않는가? 어쨌거나 내가 본 발리우드 영화들은 특징이 있고 그 특징을 발견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우선 결코 비극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절대 긍정으로 어려운 난관을 헤쳐 나간다. 어떻게 그렇게 절대 긍정일 수 있을까 비판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하도 보니(몇편 안되지만) 어쩌면 그것이 인도인의 밝은 국민성을 대변하는 것이겠구나 싶다.
또 하나의 특징을 말하라면 그건 음악이다. 음악 역시 비장하거나 엄숙하거나 슬프지 않다. 밝고 경쾌하고 가사까지 붙어 있어 보고 있으면 꼭 뮤지컬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영화는 끝나고 군무까지 춘다. 무슨 영환지 기억에 없는데, 기차역에서 친절하게 군무까지 추고 있으니 그 영화의 여운을 당분간 간직하고 싶은데 '메롱, 영화 끝났지. 늬들은 지금까지 한편의 잘 생긴 영화를 보고난 거야. 자, 이제 깨어나라구.' 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군무는 군무대로 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인도 영화 우습게 보면 큰코 다친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굳이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그리 폭력적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를 보라. 사실감의 극대화를 위에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피가 뚝뚝 떨어지는지. 그런데 비하면 본 영화는 한편의 잘 만든 동화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한편의 순수한 동화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도의 어린 아이의 값싼 노동력과 굶주림을 알리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 치고는 영화가 너무 귀엽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영화는 2009년도에서 2010년도를 넘어가는 싯점이다. 내 기억으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던 것 같은데 영화 속 어린 아이들이 그 보다 어려 보인다. 모르긴 해도 초등학교 2, 3학년 아이들로 보이는데, 과연 인도는 몇살 때부터 도시락을 싸 가지고 학교를 다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영화를 보고 있자니 옛날 나 학교 때 도시락 싸 가지고 다녔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 눈물 젖은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녀 본 사람이 아니라면 도시락에 대해 논하지 말라. 하지만 나의 도시락은 여느 눈물 젖은 도시락과는 사뭇 다른 것이긴 하다. 그날의 도시락 반찬이 무엇이냐에 따라 나를 포함한 우리 4남매는 도시락을 가져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 시절 도시락 반찬의 대표 메뉴는 쏘세지, 계란 반찬, 장조림이면 특급이었다. 그리고 콩자만, 어묵조림, 감자조림, 소금 김이 그 뒤를 이었고, 제일 없어보이는 반찬이 김치였다. 그건 못 사는 아이들이나 싸 가져가는 반찬인 줄 알았다. 물론 우리가 아주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후진 반찬을 싸 가져가야 하나? 그럴 바엔 굶거나 빵을 사 먹는 것ㅇ이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우리가 엄마도 야속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쏟아지는 엄마의 서릿발이 성성한 푸념이 아직도 귀에 맺혀 있는 듯하다. "야, 이것들아, 늬들이 부모 공경을 할 줄 알아? 이담에 효도를 할 거야? 공부를 잘 하기를 해? 도시락 반찬 아무거나 싸 주면 가져갈 일이지, 왜 김치라고 안 가져가? 아주 침치 싸 주면 독약든 줄 알아. 못 된 것들!" 물론 우린 우리대로 그 성성한 서릿발을 견디느라 고통이 말이 아니었다.
우리가 뭐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나 싸 가져 가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엄마랑 아버지랑 서로 좋아서 나놓고 이제 와 김치나 싸 가지고 가라는 게 말이나 되는가? 어떤 집 자식은 날 때부터 금수저도 해 준다더만 그러지 못할 망정 구박을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엄마는 그런 도시락이라도 새벽부터 싸 놨는데 안 가져가니 속상하고 억울했을 것이다. 공로가 없지 않은가? 그러제 누가 싸 놓으라나? 밥 한끼 굶는다고 죽거나 쓰러지는 것도 아닌데. 별 걱정을 사서 한다. 물론 난 나의 도시락 거의 말년에 가끔은 김치찌개도 싸 가지고 갔다. 그 시절 내가 김치찌개를 너무도 좋아하는 까닭에. 이만하면 도시락으로 효도한 사람은 나뿐이 없을 걸? 물론 엄마가 그걸 알아 줄리 없지만. 엄마들의 레파터리는 다 똑같지 않나? "늬들은 다 똑같애!"
그런데 이 영화 옛날 우리 드리마에서 봄직한 장면을 똑같이 재현한다. 자존심 때문에 점심을 못 싸 온 우리의 스탠리, 아이들에겐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겠다고 하곤 허기진 배를 수돗물로 채운다. 수돗물로 주린 배 채우기. 그건 세계 어디를 가니 공통인가 보다. 그래도 나를 포함한 우리 4 남매는 도시락을 안 싸 왔다고 해서 학교에서 수돗물로 주린 배를 채우진 않는다. 그건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가난하고 헐벗었다는 걸 나타내기 위한 방편이고 우린 그 정도는 아니다. 배고픈 배 물로 채워봤자 귀찮게 화장실만 다닌다.
그래도 영화속 아이들 꽤 으리있다. 스탠리가 자꾸 도시락을 안 싸오고 점심시간이면 겉돌로 있으니 그 이유를 묻는다. 스탠리는 아버지가 돈 벌러 타지에 나가 계시는데 엄마가 얼마 전 따라 가서 밥 해 줄 사람이 없단다. 그러자 반 아이들은 흔쾌히 그럼 엄마가 돌아오실 때까지 우리 도시락을 나눠 먹자고 한다. 반아이들의 그런 예쁜 생각은 언제부터 가졌던 걸까? 하지만 우리의 스탠리가 친구들의 도시락을 함께 먹는 여정은 순탄치마는 않다. 식탐대마왕이란 별명을 가진 베르마 선생의 방해와 구박이 장난이 아니다.

이 베르마 선생 벼룩의 간을 내먹지 어디 먹을 게 없어서 학생들의 도시락을 대놓고 탐을 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일견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맛 있는 음식 앞에 구미가 당기는 건 다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너 때문에 내가 먹을 수 없다는 걸 지나치게 드러내는 건 확실히 탐욕이고 졸렬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것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을 아이들이 아니다. 매번 이 탐식대마왕 선생을 따돌리고 스탠리와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는 건 쾌감이고 특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중에 아이들의 잔꾀에 속은 줄 알고 분해하는 베르마 선생은 급기야 스탠리의 따귀까지 때리고 모욕당했다고까지 한다. 그런데 잔꾀는 부릴 줄 알아도 아이들이 진짜 순박하다. 선생님의 그런 탐식에 대해 반항하거나 비난하는 아이들이 없으니. 심지어 스탠리는 이 선생님뿐만 아니라 학교 모든 선생님께 점심도시락을 대접하는 기염까지 보인다. 결국 그 때문에 베르마 선생은 선생직을 물러나기까지 했다. 스탠리의 완벽한 승리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사뭇 우리와 다른 세계를 엿본 느낌이다. 가난하고 없는 것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없어도 함께 나눌 수 있는가 없는가가 빈부를 가를뿐이다. 그리고 인도가 가난하면 얼마나 가난한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의 점심 도시락을 보면 천차만별이긴 하다. 하지만 정말 좀 있는 집안의 아이들은 찬합을 몇층으로 싸 온다. 한 사람 앞에 하나씩만 펼쳐 보아도 한 상 가득하다. 그것을 나눠먹는 맛이란 나눠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옛부터 광에서 인심난다고 영혼을 나눠먹는 맛이랄까?
요즘엔 아이들에게 그런 기쁨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나 같이 급식(그것이 무상이든 유상이든)을 하는 터라 밥도 반찬도 똑같다. 다름의 맛과 어우러짐으로 하나 되는 즐거움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 같다. 특히 요즘 아이들의 무상 급식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건 끼니를 거르는 건강이나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고 아이들의 입맛을 국가가 관장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처럼 보여진다. 그것 때문에 우리나라의 엄마들 시위하는 걸 보면 글쎄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도시락 세대라 그런지 그냥 격세지감이란 생각이 든다. 하긴, 나 때만해도 정말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급식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럼 매번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는 번거로움은 없을 것이며, 내 이웃의 도시락 반찬을 탐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그랬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어떤 것을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나의 옛 대학시절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도시락을 못 싸 갈 형편도 아니었다. 구내식당도 있으니 점심 한끼 해결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지은 죄가 있고, 성인이 됐으니 도시락 정도는 내 손으로 쌀 수도 있을 텐데 귀찮아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그러자 친구들이 이를 불쌍히 여겨 나 더러 그냥 수저만 준비해 오란다. 그래서 그 황막한 대학시절을 무사히 넘긴 적이 있었다. 스탠리가 그런 나의 과거를 알았더라면 숟깔로 내 머리통을 한대 갈려줬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밥 투정이냐고. 그래도 어쨌든 밥 나눠줄 친구가 있다는 건 스탠리나 나나 똑같지 않나? 확실히 밥은 서로 나눠야 맛이다.
요즘 요리 프로, 요리 음식이 대센데 이 영화도 못 먹는 아이들을 위한 계몽 영화라면서 지글지글, 보글보글 요리의 향연이 펼쳐지는 건 어쩐지 묘한 아이러니다. 계몽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자체는 좋다. 인도 사람들의 낙천성이 느껴지고, 보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게 하는 마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