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tella.K > 음악을 듣는 귀를 키워라!

 우선 강연회장에 도착하니 오디오와 스피커가 눈에 띈다. 그곳은 전에도 두어 번 가 본적이 있는 어느 북카페였는데 그 전에도 그 오디오와 스피커가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있었던 것도 같고, 없었던 것도 같고. 아무튼 뭔가 준비된 강연회 같아 기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턴테이블과 LP판 눈에 띈다. 이것은 또 얼마만에 보는 물건인가? 몇년 전 턴테이블과 LP판이 복고 열풍을 타고 다시 제작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막상 실물을 보니 반가웠다. 그리고 오디오 시험 방송(?)을 위해 틀어 준 음악은 말러의 교향곡1번이다. 저자는 바로 이 말러를 얘기하는 것으로 그날의 강연을 시작했다.

 

사실 그 시간은 저자의 두 번째 강연시간으로,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첫째 시간은 참석을 못하지 못했고 이렇게 <쇼팽과 리스트: 피아노가 부르는 밤의 노래>에 참석했다. 저자는 강연 초반에 요즘엔 클래식 대중화 바람을 타고 여기 저기서 클래식 강의를 많이 하는데 너무 쫓아 다니지는 말라고 한다. 그것은 클래식은 많이 듣는 것이 중요하지 학습하려고 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무엇이든 즐기기 전에 학습부터 하려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성을 경계하는 말일 것이리라. 하지만 나 자신 좀 띄아해진 것도 사실이다. 나는 클래식을 학습할 생각은 없는데 사실 클래식이 여간해서 즐겨지는 분야가 아니고 보면 이런 강연회장이라도 기웃거려 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도 학습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하지만 또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이런 기회가 계기가 되서 오히려 더 열심히 클래식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은가? 

 

저자는 요즘은 중년층 이상에서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그것은 아마도 들을 만한 대중음악이 없어서는 아닐까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모름지기 노래란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하는데 4, 50대 만해도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가 없다. 정서도 다르고. 하지만 말했다시피 클래식은 다소 어렵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이런 강연이나 강의를 들으러 다니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기 보단  똑같은 음악을 여러번 반복해서 듣고 연주회장을 다니면서 음악을 듣는 근육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그러고 보면 요즘 유행하는 대중음악이나 클래식이나 음악이란 장르는 스스로 귀를 여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클래식도 그 시대는 대중음악이 아닌가. 

 

그런데 문득 나는 정작 저자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정보도 없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건 또 저자에 대한 결례는 아니었을까? 뒤늦게 나마 저자에 대해 알아 보니 그는 모신문사 문화부장을 지낸 기자 출신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강연내내 음악에 대한 조예가 상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클래식에 얼마만한 열정이면 저런 강연을 할 수 있는 걸까 감탄할 정도였다.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쇼팽에 관한 부분이었다. 물론 당연한 것이긴 하겠만 사실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으로 그는 주로 피아노 독주곡을 많이 썼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초기 협주곡도 썼다. 그러면서 저자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 주었는데 아무래도 초창기였던만큼 완숙기에 썼던 작품과 차이가 남을 설명한다. 그 과정을 베토벤과 박완서에 대한 예를 들기도 했는데, 베토벤이 위대한 것은 그의 작품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함에 있다고. 그러면서 저자는 데스크 기자 시절 이런 저런 명사들에게 원고 청탁을 하는 때가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명사들인만큼 완벽하고 좋은 글을 보내 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그들의 글은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놀랄 정도로 형편없기도 한단다. 그래서 결국엔 신문에 실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그들의 글이 수준이하여서라기 보단 신문의 원칙 중 하나는 지면이 한정된만큼 무엇을 더 할 것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뺄 것이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원칙 때문에 실을 수 없는 것이라고.  그런 와중에도 소설가 고 박완서 씨의 글은 완벽해서 문장 중 뭐 하나를 빼면 글 전체가 무너질 정도라고 한다. 과연 박완서구나 싶다. 그러고 보면 고 박완서 는 한국 문학계의 베토벤이었나 보다싶다.(난 이렇게 문인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그런만큼 저자는 베토벤과 박완서의 예를들어 완벽함이 무엇인지를 말하며 쇼팽의 초창기의 작품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하려 한 것이다. 그런 설명을 듣고 막상 쇼팽의 완벽하지는 않지만 풋풋하고 의욕에 앞선다는 협주곡 1번을 들었다. 그런데 왠걸, 난 귀가 무뎌서 그런가 도대체 뭐가 풋풋하고 완벽하지 않다는 것인지 당황스러웠다.  내가 들은 협주곡 1번은 테크닉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더구나 그곡의 연주자는 그 유명하다던 루빈스타인이다. 그는 원래는 힘있는 연주 스타일로 유명했으나 말년에 힘을 많이 빼고 연주한 것이란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저자가 거짓말을 한 것처럼 오해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나는 클래식 초짜나 다름없으니 이곡을 들으면 이곡이 좋고, 저곡을 들으면 저곡도 좋다. 그러니까 무엇이 무엇과 어떻게 다른지를 구별하고 판단하리만큼 변별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오류 아닌 오류를 범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스스로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 그 한 시간 그 음악을 듣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솔직히 그런 자리에서 음악을 들으면 작곡자나 연주자의 생애를 듣는 건 기본이다. 우리는 저자가 이끄는대로 그들의 생애를 듣고 어느새 음악 용어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영화 이야기를 듣고 또 어느새 문학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그만큼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워낙에 풍부하고 방대해서 다 받아 적을 수가 없다. 그러지 않아도 저자는 자신의 하는 말을 노트할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하긴 이 시간을 즐기러 왔지 노트하러 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저자의 말을 듣고 싶다면 책을 사서 읽으면 된다). 

 

사실 그날은 강연의 제목도 제목인만큼 쇼팽뿐만 아니라 리스트도 다뤘어야 하는데 쇼팽만큼 리스트는 그리 많이 다루지 못했다. 리스트는 원래 '헝가리 광시곡'으로 유명하지만 최근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란 소설로 한 번 더 유명해진 음악가이다. 하루키가 리스트의 '순례를 떠난 해'에서 제목을 따와 그렇게 붙였으니 말이다. 하루키가 제목을 그렇게 짓지 않았더라면 리스트의 곡 중에 그런 곡이 있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것 말고도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 <1Q84>에서 '야나체크의 심포니에타'를 소개하므로 야나체크를 세계에 알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저자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음악을 사용하려면 그렇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써야 한다고 한다. 잘 아는 곡을 써 봐야 작품에 그다지 많은 도움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일리가 있는 말이다. 소설을 통해 음악이 뜨던가 음악을 통해 소설이 뜨던가 해야되지 않겠는가? 물론 소설과 음악 두 분야의 공조의 문제일테지만. 영화는 익숙한 음악을 써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어느 날 택시를 탔는데 마침 라디오에 야나체크의 음악이 나왔다고 시작되는 <1Q84>의 첫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오버 같긴하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만 하긴 하다. 하루키는 확실히 영특한 작가다.  

 

보통 저자들의 강연은 1시간 반을 넘지않는데 이날은 두 시간을 넘겼다. 그런데도 저자는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의 1/5을 했을까 말까란다. 정말 시간이 아쉬웠다. 그러면서 우리는 리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안녕을 고했다. 사람들 모이는 것을 감안한다면 너무 일찍은 시작 할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예정된 시간 보다 10분 내지 15분 정도는 일찍 시작했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어째든 그날의 강연은 꽤 유익한 시간이었다. 나는 나오면서 새삼 '클래식 초짜'란 말을 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초짜로 살 것인가? 라디오를 듣거나 어디선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들어 본 곡이군 하며 스스로 만족할 줄도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이 글은 지난 5월 7일 <더 클래식 둘> 문학수의 클래식 Talk 콘서트를 다녀 온 후기다. 유려한 강연과 좋은 음질의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 저자와 주최측에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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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4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5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5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6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5-05-1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위 막귀라고하죠....그 막귀가 뚫리면 감당 안되죠.^^.

stella.K 2015-05-18 15:25   좋아요 1 | URL
ㅎㅎ 막귀! 그걸 그렇게 부르는군요.
마치 조직의 2인자의 별칭 같아요.ㅋㅋ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 보다 말았다. 야하다기 보단 퇴폐적이어서. 감독 때문에 보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폴 버호벤 아닌가? 그런데 그가 유명하다는 건 알겠는데 정확히 무슨 영화를 만들었는지가 생각이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봤더니 <원초적 본능>을 만들었던 감독이다. '아, 원초적 본능!' 하지만 또 이 '원초적 본능'을 봤는지 안 봤는지 기억이 없다. <토탈 리콜>은 본 것 같은데 이것 역시 기억이 안 나고.

 

이 영화 퇴폐적이긴 한데 나름 스토리 층위는 잘 쌓아 간 영화이긴 하다. 춤도 볼만 하고. 대체적인 반응은 기대 안하고 봤는데 나름 재미있었다는 건데 나도 그 점은 인정은 하겠다. 

★★★

 

본지가 비교적 오래되긴 했다. 그런데 이 영화 뭔지 모르게 좋다. 그냥 아련하고 서글프고, 사랑은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어쩜 기억의 문제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치매는 아니고 인간의 기억을 관장하는 뇌에 문제가 있어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도 어느 특정인을. 그런데 그게 하필 남편일 줄이야. 아내의 기억을 살리려는 남편의 노력이 가상한데 별 효험이 없다. 그런데도 5일 날 돌아 간다는 남편의 편지를 기억하고 매달 5일이면 어김없이 기차역에 남편을 기다리는 펑. 그러고 보면 여전히 남편을 사랑한다는 건데, 사랑하지 않고 서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이들의 사랑은 좀처럼 만나지지 않는다.

 

펑 역을 맡은 공리의 새삼 불안한 표정 연기가 이 배우는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그녀의 노쇄해지는 모습도 좋았고. 특히 햇빛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장면을 만들어 간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도 돋보인다. 

모처럼 별 ★★★★

 

배우의 연기는 좋은데 스토리는 그것에 못 미치는 안타까운 작품.

<타짜>에 나온 탑(최승현)은 글쎄, 조승우와 비교되서 일까? 그냥 보통의 연기였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 작품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냉혈한과 우수 어린 눈빛의 적절한 조화가 돋보였다고나 할까? 왠지 제임스 딘도 생각나고. 아무튼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동창으로 나온 한예리와의 케미도 좋은 편이다. 개인적으로 난 이 한예리란 배우가 왠지 기대가 된다. 약간 못 생긴 듯 하면서도 연기를 잘 한다. 

 

남파공작원 명훈(최승현)이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여 놓고도 자유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는 여지가 뭔가 있어 보이는데 왜 남한에서도 북에서도 살 수 없다고 죽어간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감독이 명훈을 죽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설득력 없이 죽게 만든 건 아닌지? 이쯤되면 감독은 각본에서 손을 떼고 전문 시나리오 작가가 썼어야 했던 건 아닐까? 우리나라는 감독이 자기가 쓴 시나리오 자기가 찍어야 한다는 이 강박에서 좀 벗어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포장마차를 하는 할머니 이주실이 나오는 부분이 좋았는데 2년 동안 북한에서 이렇다할 지령이 없다가 그 2년만에 겨우 받은 지령이 명훈에게 밥 먹는 거란다. 그 별 것 아닌 지령에도 감격해 하고 감정을 절제하면서 명훈에게 밥을 챙겨 주는 장면이 좋았다. 가끔 신앙과 북한의 주체사상을 빗대기도 하는데 긴장 없는 바람 빠진 신앙인들은 늘 긴장하고 사는 북한의 그 종간나 아새끼들의 태도는 배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이 영화 보면 감독이 김민정을 정말로 좋아하는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김민정이만 띄워주고 나머지는 어떻게 되도 상관 없는 개념 없는 영화. 이렇다할 내용도 없고. 너무 빤해 보여서 끝까지 보지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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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5-13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어쩜 기억의 문제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 잘못된 기억력 또는 잘못된 해석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 같단 생각을
이 문장을 보고 했습니다.

감독이 주연 배우를 정할 땐 남자가 되든 여자가 되든 일단 감독의 눈에 매력적인 사람으로 정할 것 같아요. 아무 매력이 없는 사람을 정할 리 없으니까 말이죠. 감독 자신이 좋아할 만한 배우래야 관객도 좋아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아요.

영화 많이 보셨군요. ^^

stella.K 2015-05-13 19:30   좋아요 0 | URL
ㅎㅎ 근데 그게 너무 티가 나잖아요.
관객은 영화에 몰입을 못하겠는데...ㅠ
우리 영화가 전반적으로 영화가 스토리가 약해진 것 같더군요.
배우에게만 의지하는 영화가 대부분인 것 같아 아쉬워요.
5일의 마중 안 보셨으면 보세요. 그건 언니한테 추천해 드릴 수 있어요.^^
 

 

나는 이 책을 언제 사놓고 여태 읽는지 모르겠다.

작년인가 올초에 알라딘에서 마일리지 소멸 예고를 받고 허겁지겁 산 책이다. 젠장! 읽어야 할 책도 많은데 이걸 사면 또 언제 읽나? 그렇다고 소멸될 것을 그냥 지켜 볼 수도 없는 일이고. 마일리지 소멸 제도 이런 거 좀 없으면 안 되는 건가? 툴툴거리며 질렀다. 그나마 알라딘이 좋은 건 마일리지 상한제가 없어지고 마지막 10원 한장도 적립금으로 탈탈 털어 쓸 수 있다는 거다.

 

이 책 처음엔 별로 좋은 줄 몰랐다. 무엇보다 소개된 책을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런 책 읽는다는 게 무슨 의밀까? 오히려 자존심만 상하는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진짜 이동진, 김중혁은 확실히 재담가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렇게 말들을 잘 하시는지. 다룬 책들 외에 다른 풍성한 정보와 그에 대한 해석 등이 정말 말의 정찬을 보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동안 이런저런 책을 읽느라 놓고 있다 어제 또 다시 붙든 부분은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물론 난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 지난 도서정가제 피날레 때 이 책을 살까 말까하다가 결국 포기한 책이다. 그런데 도서정가제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할인을 폐지한 이후 책값이 그다지 싸졌다거나 내지는 현실화가 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도서정가제를 정착시키는 공약중 하나가 지나치게 부풀려진 가격을 안정화 시키면서 독자들이 좀 더 합리적인 가격에 책을 사 볼 수 있게 하겠다는 뭐 그런 거 아니었나? 그런데 그런 게 체감되지 않는다. 도서정가제, 너 뭐니?

 

어쨌거나 이 <호밀밭의 파수꾼> 다른 외국어 번역판 이름이 재밌다. 이탈리아에선 '한 남자의 인생'이란다. 김중혁은 고작 사흘간의 이야긴데 '인생'이 거창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도 그렇지만 '한 남자'라니? 주인공이 이제 막 가슴에 털 나기 시작했을 텐데 그런 제목 쓰기 부담스럽지 않을까? 

 

그런데 비해 일본에선 '인생의 위험한 순간'이란다. 이것도 좀 아이러니하다. 김중혁은 스릴러스럽다고 했는데. 노르웨이는 진짜 압권이다. '모두들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악마는 최후의 순간을 취한다' 이게 뭔 뜻이란 말인가? 노르웨이 자기네들도 알아 먹을 수 있는 말인지 모르겠다. 스웨덴은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구원자' 덴마크는 '추방당한 젊은이' 독일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호밀밭의 남자' 네덜란드는 '사춘기'란다. 재밌다.

 

특히 이 작품은 영화화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론 굳이 영화화 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들이 눈 앞에 펼쳐지듯 상세한 묘사에 있고, 아무래도 영화화되면 이미지가 고정되서 더 이상의 상상을 불허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엔 문학작품을 영화화 하는 경우가 흔해져 예전엔 이 작품이 영화화되면 얼마나 멋있게 만들어질까 나름 기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원작과 어떻게 다를까 내지는 좀 짖궃은 마음에 어떻게  원작은 영화에서 말아먹나를 확인하기 위해 보는 것도 같다. 정말 이 책 말마따나 다른 것은 영화화되도 이 작가의 작품들만큼은 영화화되지 말아야할 목록들이 있는 것 같다. 그것으로는 이동진과 김중혁이 말하는 하루키의 작품들이 그렇다. 하지만 하루키의 작품 <상실의 시대>는 영화로 만들어지는 불운을 겪었다. 또한 쿤데라의 작품도 그렇지 않나 싶다. 그의 작품들이 어려워 누구도 선뜻 영화화하겠다는 감독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립 카우프 만은 그의 작품에 손을 댔다가 고배의 잔을 마셔야 했다. 물론 그가 만든 <프라하의 봄>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는 한다. 하지만 쿤데라가 영화를 워낙 싫어했으니 카우프 만에게 좋은 소리했을 리는 없고, 언제나 그렇듯 문학작품 보다 뛰어난 영화는 찾아 보기가 쉽지 않으므로 이제 영화는 문학과의 동침을 그만 꿈꾸고 자기 살 길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물론 또 일부 자기 작품을 영화화될 것을 기대하고 글을 쓰는 작가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런 사람들하고 잘 지내 보던가. 

 

아무튼 독자들 중에 문학작품은 문학작품으로 보존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대한 단적인 예로 어떤 작가가 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이어 받아 <60년 후>란 작품을 썼는데 결국 출판 금지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의 표현의 자유 또는 상상의 자유를 보장해 줘야하는 자유로운 미국에서 이례적으로 출판 금지 명령을 받았단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나름 그럴 듯하다. "작가의 예술적 구상에는 작품 속 인물의 특징을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독자들이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게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이것은 김중혁 작가의 말대로 그 작품이 영화화되지 않은 것과 맥락을 같이 하기도 하지만 상상을 누가하느냐 바로 상상주권자의 권리가 작가에게 있지 않고 독자에게 있다는 점을 감안한 이례적 판례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셀린저도 대단하고 독자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과연 이 <60년 후>란 작품은 내용이 어떤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검색을 해 보니 다시 빛을 못 볼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번역이 되어 출판이 되어었고 또 어느새 절판이 되었다. 이 작품은 영국에서 2009년도 5월에 처음 출판된 책인데, 미국 법원에서 출판 금지를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출판 연도는 2010년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영향이 있었던 걸까? 2010년이면 비교적 최근 출판인데 벌써 절판이라니. 미국에서 출금 당했다고 우리나라도 출금이어야 하는 건가? 그 이해관계를 알 수가 없다. 

 

형만한 아우 없다고 작가는 호기롭게 홀든 콜필드의 60년 후를 그렸다 오히려 독자의 철저한 외면을 당한 건지 이 책의 운명도 예사롭지는 않다. 그냥 셀린저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봐 주면 안 되는 거였을까?         

 

셀린저가 세상을 세상을 떠났을 때 추모의 의미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유투브 같은 매체에 올리기도 했다니 과연 그 명성이 대단하다 싶다.  

 

참고로 셀린저도 쿤데라 못지 않게 영화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물론 영화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개인의 취향이긴 하다. 나 역시도 영화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도 짧지 않은 세월 은둔의 삶을 살 확률이 높은 내가 영화조차 볼 수 없다면 삭막해서 어떻게 살까 싶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관심은 유지할 생각이다.

 

매년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수위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조만간 한번 읽어주긴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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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5-06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스텔라님 페이퍼로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네요. 특히 <호밀밭의 파수꾼> 제목의 여러가지 버전이 참 흥미롭네요. <60년 후>는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요. 읽을 수 없다니 더 읽고 싶어지는 이 기분이라니. 김중혁과 이동진은 환상의 콤비인 듯. 그냥 이야기하는 것 듣기만 해도 저는 재미있더라고요.

stella.K 2015-05-06 18:35   좋아요 0 | URL
헉, 전 이거 블랑카님 읽으신 줄 알았어요.
전에 이 책 가지고 이달의 당선작 되신 줄 알고 있는데
안 읽으셨군요.
이 두 사람 나누는 얘기 재밌어요. 그죠?
저도 어제 <호밀밭의 파수꾼>읽고 몰랐던 걸 알았다니깐요.
<60년 후>는 중고샵에선 살 수 있는 것 같더라구요.

빨책은 저도 전에 한번 들었는데 재미있더라구요.
모르긴 해도 이 책 시리즈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데
저는 듣는 것 보다 읽는 게 아직은 좋더라구요.
모아두면 좋을 것 같아요.^^

blanca 2015-05-06 18:49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읽었는데 저 까마귀고기 먹은 건가요? ㅡㅡ 다 이 책에 나왔던 내용인데 다 새롭게 들리는 이 기분은... 저 찬물 세수좀 해야 겠습니다. 책을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잘 곱씹고 내면화하는 작업도 해야 겠어요. 스텔라님 댓글에 정신이 번쩍 드네요.

stella.K 2015-05-06 18:5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렇다고 무슨 찬물에 세수는...?
그럴 때 있어요. 충분히 이해해요.
복습하고 좋죠 뭐.ㅎㅎ

cyrus 2015-05-06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영화로 나온다면 원작의 느낌을 살리지 못한 졸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캐스팅이 중요한 것 같아요.

stella.K 2015-05-07 11:2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누굴 캐스팅 하겠냐구?
제임스 딘은 이미 죽었고. 이동진이 무슨 말 끝에 그나마 한 사람 있는데
디카프리오라고 했는데 이 작품을 두고 했는지 가물가물하네.
뒤돌아 서면 잊어버리지라...ㅠ
 
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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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러모로 독자를 자극한다. 우선 이 책의 저자가 그 이름도 유명한 줄리언 반스라는 것. 굳이 그의 책을 읽던지 안 읽던지 셜록 홈즈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니 그를 탄생시킨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게다가 굳이 하나를 더 얹자면, 코난 도일이 살았던 시대 배경이 빅토리아 여왕 즉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시대라는 점이 아닐까? 우리나라 역사 소설가들이 조선 시대를 즐겨 다루는 것처럼 영국의 소설가들은 바로 이 시대를 다루길 즐겨 할 것이다. 

 

사실 난 게으른 탓에 지금까지 줄리언 반스의 작품을 접해 보지 못하다 이 작품 그것도 이제 겨우 1권을 읽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줄리언 반스의 작품 중 독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작품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 특히 그 작품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독특한 구성을 언급하곤 하는데 하나 같이 말미에 가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고 왠지 다시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르긴 해도 줄리언 반스는 상당히 지능적이고 똑똑한 사람일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갖도록 만들기가 쉬운가?

 

소설을 다 읽었을 때 갖는 독자의 반응이란 크게 두 가지 아닌가 싶다. 좋다. 잘 썼다. 괜찮네. 그런 긍정적인 반응 아니면 뭐야? 무슨 말 하려는 거야? 이런 거라면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게 하던가. 그런데 딱 덮고나서 왠지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건 또 뭘까? 나름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일을 해결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오는 순간 또 들어 가고 싶은 심정 뭐 그런 걸까?

 

사람은 나이가 들면 소설이 멀어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면 소설은 대체로 앉은 자리에서 완독을 하기가 쉽지 않다. 끊어 읽게 되기 때문에 다시 읽으려면 지금까지 읽은 내용을 다시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어떤 소설은 비교적 상기가 쉬운 작품도 있지만 어떤 작가의 작품은 내가 기억하는게 맞나 되집어 만든다. 그런 책은 당장 읽을 때는 약간은 번거로울 수 있겠지만 긴 치매 예방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치매 예방을 위해 책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나에겐 이 책이 좀 그랬다. 

 

읽으면서도 내가 지금 맞게 읽고 있는 것인가?  남의 나라 역사 배경과 추리 기법을  사용한데다 영국 작가의 특유의 장중하면서도 우아함이  나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아서 코난 도일의 일대기라고 하지 않는가? 어찌보면 경의라도 표하는 의미에서 내가 지금 제대로 읽고는 있는 것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읽어 본 바에 따르면 애석하게도 나의 이런 마음 자세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그걸 또한 잘 모르겠다. 이 책의 1권은 나쁘게 말하면 변죽만 올렸다고나 할까? 언제나 그렇듯 전략상 1권은 항상 이런 식이다. 이제야 비로소 뭔가 보여줄 것 같은데 거기서 끝을 맺고 있으니.    

 

그런데 문제는 2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2권을 읽고 싶은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나 개인으론 1권 읽기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건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왜 어떤 소설은 사건의 흐름과 전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소설은 꼭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나머지가 가능한 소설이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은 후자에 속한다. 지금까지는 전초전 내지는 배경 설명을 다룬다. 더구나 아서와 조지는 한번 스쳐지나 가듯 만날 뿐이지 말도 섞지도 않고, 아서는 아서대로 조지는 조지대로의 삶을 보여주다 끝나 버린다. 그것도 끝에 가서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조지 에들러라는 이름이'하며. 요는 지금도 약간은 지루했는데 과연 2권은 1권의 지루함을 상쇄시킬만큼의 재미 내지는 반스가 이랬었구나 하는 나름의 감동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책에 대한 느낌은 여러가지여서 명성 그대로 나에게 감동으로 전해 오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확실히 좋은 책이긴 한데 감동까지는 잘 모르겠다는 책도 있다.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건 전자의 책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읽는다. 

 

프란츠 카프카는 말했다.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고. 책을 읽는 도중 갑자기 카프카의 이런 말을 떠올린다면 독자는 기꺼이 그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굳이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사람의 다른 저작도 읽고 싶다는 충동을 받거나. 요는 나는 이 책 2권에서 이런 느낌, 이런 충동을 받게 되길 바란다. 그래서 허겁지고 다시 1권을 들처보게 되거나 역시 반스구나 하며 다른 책도 보고 싶어지거나. 솔직히 반스는 너무도 유명해서 왜 이렇게 1, 2권으로 나눠 읽어야할만큼 길게 썼냐고 불평할 수도 없다. 덜 유명했더라면 그랬을까? 사실 1권만 보더라도 (조금 지루해서 그렇지)막힘없이 그 시대를 거의 완벽히 복원해 내고 있을뿐만 아니라 (번역자의 문투를 감안하더라도)문장 또한 유려하다. 이런 작품이 흠을 잡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사실 난 앞서 엄살을 부려 보긴 했지만 2권을 읽긴 읽어야 할 것 같긴 하다. <예감은...>처럼 다시 읽기의 충동이 가능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반스의 이 소설은 기꺼이 읽기의 수고로움과 모험을 감내할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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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05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메트로랜드>를 읽어보셨어요? 저는 <메트로랜드>를 읽었는데 지루했어요. 그렇지만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는 재미있게 읽었어요.

stella.K 2015-05-05 18:10   좋아요 0 | URL
아니. 그것도 반스건가?
그래. 10 1/2장으로는 재밌다고 하더라.^^
 

 

 

언제부턴가 먹방이 대세다. 어떤이는 먹방이 대세인 것은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혼자 먹기는 싫고 대리만족을 위해 먹방을 보는 것 같다고 진단한다. 그럴듯한 말 같긴 하지만 나는 먹방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어차피 먹지도 못할 음식 본다고 대리만족이 될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시신경을 자극해서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보지 않는다. 설혹 본다고 해도 따라 해 먹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장은 언제 볼 것이며, 언제 다듬고, 씼고, 볶아서 언제 먹을 것인가?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길들여진 고정된 입맛이 무의식 중에라도 남아 있어서 아무리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했다고 해도 결국 우린 옛맛으로 회귀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솔직히 5성, 7성급 호텔 수석주방장이라고 해도 그들이 집에서 먹는 건 잘 익은 배추김치에 된장찌게면 밥 한 그릇 뚝딱이라고 하지 않는가?  무엇보다 난 먹는데 시간들이고 공들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사서 맛있게 먹는 거라면 모를까.  

  

그러는 가운데 지난 달부터 <식샤를 합시다 2>가 종편에서 방송되기 시작했다. tv 보는 것을 아주 많이 좋아하지 않는 나는 당연히 <식샤를 합시다 1>은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지금의 2편이 1편 보다 더 좋은지 안 좋은지 난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식샤를 합시다 2>는 솔직히 별점으로 치자면 5개 만점에 많이 줘도 두 개 반 밖엔 줄 수 없는 좀 한심한 드라마다. 아무리 만화가 원작이라지만 어쩌면 캐릭터 연구를 그렇게 안 할 수가 있을까? 캐릭터 연구를 음식 뽀샵질의 반만 했어도 이 드라마는 꽤 괜찮은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대장금 버금가는. 하지만 매회 보면서 짜증 작렬이다. 솔직히 이런 드라마는 나는 두 번도 많다. 한 번 딱 보고 접었을 드라마다. 그런 내가 지금까지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보고 있다. 먹방의 위력이 새삼이다.

 

그나마 이 드라마는 윤두준과 캐릭터는 후저도 배우들의 먹는 연기 때문에 봐 줄만 하다. 보면서도 내가 어떻게 이 드라마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나 나 자신도 놀라며 보는 중이다. 그러면서 새삼 먹는 게 이렇게도 중요한 것이었구나 한다. 솔직히 밤에 불 끄고 그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묘하게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배우들의 후루룩 쩝쩝거리며 먹는 모습을 보면 정말 당장 먹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긴 한다. 이 충동을 잘 조절하면 좋은데 실패해서 방송에서 먹는대로 먹으면 비만은 따논 당상일 것이다. 그만큼 이 드라마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예를들면 지난 준가, 지지난 주에 주꾸미 요리를 먹는 장면이 나왔다. 주꾸미 요리가 어디 한 가진가? 처음 주문은 한 가지로 시작해서 어느새 3종 세트를 롱샷으로 보여주는데 맛있어 보이긴 하지만 등장인물 셋이 저 많은 음식을 실제로 다 먹었다고 치면 그들은 코가 아닌 어깨로 숨을 쉬어야 할 것이며 모르긴 해도 소화제는 기본으로 먹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지난주 같은 경우 실연의 아픔을 먹는 것으로 승화시킨 백수지를 보면서 지금까지의 짜증은 짜증도 아니었다. 배우를 탓하기 전에 작가나 연출이 누군지 정말 이렇게 밖에 못하겠냐고 항의 편지라도 쓰고 싶었다. 요즘 누가 실연 당했다고 그걸 먹는 것으로 풀까? 그거 한 가지만 지적했다고 해서 이 총체적 문제의 인물이 나아질리는 없겠지만, 솔직히 이건 여자에 대한 모독내지는 비하며 모르긴 해도 이런 식의 먹방 드라마는 앞으로 지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실연의 아픔을 먹는 것으로 승화시킬 수는 있다. 그건 개인의 취향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방송에서까지 그것을 자세하게 쪽쪽 소릴 내가면서 먹는다는 게 뭔가 좀 안 맞고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마치 실연 당하면 먹는 것으로 풀라고 일부러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까지 먹은 것도 부족해 백수지는 그 자리에서 라면을 삶아 먹는 기염까지 토했다. 그나마 구대영(윤두준)과의 케미를 위해 라면을 끊이는 방법에 관해 티격태격 싸우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장면 한 가지만 나왔다면 모르겠는데 이젠 백수지가 혐오스러워지려고 한다. 이런 총체적인 소화불량 드라마가 어딨을까 싶다.

 

이 드라마가 방송하고 있을 때 또 어떤 방송에선 다이어트에 관한 방송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은 이 드라마가 단순히 질 낮은 후진 드라마라고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보여주려거든 좀 더 스마트하게 지능적으로 잘 보여줬어야 한다. 벌써 시즌 2 아닌가? 그러면 좀 똑똑해져야 할 텐데 무조건 한상 떡버러지게 차려놓고 배우들이 어떻게 먹나 구경 시키고 따라 먹게 하다 비만에 일조하는 그런 드라마가 된다면 이건 그야말로 낙후다. 청소년의 건강을 위해 학교에 청량음료 자판기가 없어졌다. 드라마에선 흡연 장면을 없애거나 안개처리를 했다. 비만을 이젠 국가가 관리한다고 하는 마당에 이런 드라마가 언제 심의에 걸릴지 모를 일이다. 아무리 욕하면서 보는 게 드라마라지만 내가 그럴 줄은 몰랐다.ㅠ   

 

 

덧;) 나는 평소 라면을 그렇게 즐겨 먹는 편은 아닌데 먹더라도 계란은 잘 넣어 먹질 않는다. 간혹 가물에 콩나듯 넣어서 먹는다면 계란을 풀지 않고 익혀 먹는 편. 계란을 풀어서 먹을 것이냐 그대로 익혀 먹느냐는 확실히 취향의 문제다. 백수지는 계란을 풀어야 계란의 고소함이 면에 베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건 맞는 얘기긴 할 것이다. 하지만 국물맛이 좀 텁텁할 수 있다. 그런데 비해 계란의 고소함과 국물의 깔끔함을 선호한다면 당연 구대영처럼 계란을 터뜨리지 말아야겠지. 

그런데 난 라면을 먹을 때 무조건 채소를 많이 넣는다. 우리집의 채소란 채소는 눈에 띄는대로 처음부터 잡아 넣고 끊이는 것이 나의 방법이다. 그러면 국물을 훨씬 시원하고 건강하게 즐길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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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03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인의 결핍을...
먹으면서 풀라는 자본주의적인 계략.ㅠ.ㅠ
소득이 낮을 수록 비만율이 올라가는 이치랑 비슷할거예요.

잘봤습니다.
(밥 한공기에 한시간 걸어 땀내야 하는 고역을 알면 ㅎㅎㅎ먹기가 두렵..)

stella.K 2015-05-03 15:30   좋아요 1 | URL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님의 해석이 탁월하십니다.

근데 전 드라마 잘못 만들면 왜 그렇게 욕하고 싶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안 보면 되는데 그만큼 아쉬움이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ㅠ

yureka01 2015-05-03 15:36   좋아요 0 | URL
그또한 일종의 욕망 아니겟습니까.
한편에서 열받으니 보지마라.한편에선 그래도 땡기니 봐라...
시청하게 되는 것이 아마 후자가 이긴 결과겠지요.
드라마에는 상업적인 고도의 전략이 꼭 숨어 있는 경우가 많겟죠.
그런 드라마 제작자.작가.스탭...돈이 안들어가면 나올리도 없고요.
문제는 그런 자본의 투자가 좀 긍정적이라야 하는데 비만을 유발하고
건강을 헤치게 된다는 점이죠.
아마 그 드라마 보면서
몇몇 시청자는 배달의 기수에게 빨리 배달을 요청했을 겁니다...아니 확실합니다.아니면 하다 못해 야식 라면이라도 끓일려고 물올리고.ㅎㅎㅎ

stella.K 2015-05-03 15:4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그 생각해요.
이 드라마 보면서 배달통, 요기요 불나지 않을까
생각하면 이 드라마는 결코 건강한 드라마는 아니죠. 이런 식의 드라마가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진다면 분명 심의한다고 할거라니깐요.ㅠ

cyrus 2015-05-03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TV를 보면서 누님 생각과 조금 비슷하게 생각했어요. 먹방에다가 요리사들이 자주 TV에 나오면서 대중들의 식욕을 자극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채널 몇 개 돌리면 유승옥 같은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이런 사람들을 보면 대중은 몸짱에 대한 열망에 다이어트 욕구가 생겨요. 우리가 보는 TV의 세계는 모순적이에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TV에 눈이 먼 대중의 모순적인 욕구가 투영되어 있어요. 그 방송 프로그램에 요리사 백종원, 웨이트 트레이너 예정화가 개인 방송을 하고 있잖아요.

yureka01 2015-05-03 21:56   좋아요 0 | URL
한쪽에서는 다이어트 방송.또 한쪽에서는 먹방과 요리사들 요리 프로그램이 공존하죠.
많이 먹는 것도 다 돈이요..빼는 것도 핼스 산업의 요체입니다.
먹고 찌고 또 빼고....다만 니들은 돈을 내면 다 먹고 다뺄수 있다는 자본의 보이지 않는 계산이 치밀하거든요.
저적하신 백종원...프랜차이즈 사업가요...숀리라는 다이어트핼스매너져..거치면 식스팩만든 연애인 나오는 이유.다 그게 그거예요.

stella.K 2015-05-04 15:02   좋아요 1 | URL
모든 양면성은 다 있는 거긴 하죠.
그것을 아예 까놓고 보여 주는 게 tv고.
시청자들 알아서 취사 선택해서 봐라. 그런 거겠지만
눈은 죄가 없다고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다 보죠.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보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다고 했지만
현대의 선악과는 역시 tv를 대표로하는 모든 영상 매체 같아요.
거식증과 폭식증의 진앙지는 tv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하는 줄은 알았는데 그게 그런 프로그램이었구만.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