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느와르 M>이 끝났다.

오랫동안 수사 추리물을 본적이 없어서일까? 이 장르에 대한 비교가 불가능하긴 하지만 난 이 드라마를 매회 감탄하면서 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치밀하고 정교한지. 특히 무대 세트가 마음에 들고, 음악 역시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만하면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나왔던 셜록 시리즈 못지 않다는 느낌도 들고. 적어도 그 시리즈를 연상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까지 김강우의 매력이 뭔지 잘 몰랐는데 여기선 정말 괜찮게 나온다. 약간의 날티를 풍기는 박희순과의 케미도 나름 나쁘지 않다.

 

 

 

끝나더라도 왠지 아주 끝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시즌 2를 할 건지 모르겠다. 하면 좋겠는데....

그런데 이 드라마 의와로 시청률이 저조했다고 한다. 좋은 드라마는 시청자가 먼저 아는 법인데 이렇게 괜찮은 드라마가 저조하다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MBC 휴먼 다큐 사랑>

이 프로를 항상 보는 건 아니다. 어쩌다 채널을 놀리니 눈에 띄어 본게 지난 번 안현수 선수를 다룬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편과 어제 '진실이 엄마II 환희와 준희는 사춘기' 두 편을 보게 되었다. 둘 다 보면서 공통적인 건 우리나라 사람들 진짜 못 됐다는 거다.(물론 착하고 선한 사람도 많겠지. 그런 사람 빼고) 남의 앞길 축복은 못해 줄 망정 막지는 말아야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 빙상계의 문제를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러시아로 이적한 안현수를 견제해 러시아 당국에 안 선수를 받아주지 말라고 압력을 넣다니 이놈의 나라에서 연좌제의 망령은 언제나 사라지려나 싶다. 그뿐인가?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고 최진실의 두 자녀들. 그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만인의 연인이라던 최진실이 그렇게 간 것도 가슴이 아픈데 아이들에게까지 악플을 쏟아 붓는 벌레 같은 인간들이 있다는 게 화가난다. 그것 때문에 그 둘은 미국 유학까지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아픔을 딛고 밝게 자라 준 것만도 대견하고 기특하지 않은가?

난 그 아이들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데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눈물이 났다. 그 아이들도 축복 받아 마땅한 아이들이다. 나는 그 아이들이 인생에서 정말 좋은 스승과 멘토를 만나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누군지 모르지만 악플이나 달아대서 남의 앞길이나 막는 그런 인간 해충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라고. ㅅㅅㅋ는 뭐하나 모르겠다. 그런 해충들 박멸 안하고.

 

<인간극장> 이번 주 분.

평소 이 프로를 잘 보지는 않는데 이번 주는 좀 볼 일이 생겼다. 

시인 고진하의 삶이 소개되서 말이지.

특별히 아는 시인은 아니지만 난 이런 문인들의 삶에 관심이 많다.

제목이 '흔하고 귀하게 잡처처럼'인가 하던거 같은데 시인 고진하 부부의 삶은 소박하지만 멋이 있다. 한 달에 100만원 가지고 살지만 가난하다고 척박하게만 사는 것이 아님을 몸소 보여준다. 소소한 것에서 멋을 즐길 줄 아는 그들의 서로 다르면서도 소꿉놀이 같은 삶이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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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6-0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까지 악플을 쓰다니... 마음 아픈 일이네요. 무슨 죄가 있다고...

제가 시청한 게 하나도 없네요. 채널이 많다 보니 다 볼 수 없어서 친구들과 얘기할 때도
공통으로 시청한 걸 찾기 힘들 정도예요. 다채널 시대라서 좋긴 하지만.

가난하지만 소박한 삶의 멋. 이것을 알아야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욕심은 끝이 없는지라...

stella.K 2015-06-03 13:19   좋아요 0 | URL
오, 언니! 반가워요.
역시 언니는 결정적일 때 나타나는 저의 수호천사 같아요. ㅎㅎ

그렇죠? 그 아이들이 당하는 슬픔이 얼마만한 건지를 알면
그렇게 쉽게 잔인하게 말 못할 텐데 이건 쓰레기 수준이 아니라
해충인 거죠. 인간 해충!!
특히 그 딸은 참 밝은 성격이어요. 웃을 때 얼굴이 정말 귀엽구요. 함 보세요.

그래도 언니한텐 저 인간극장이 맞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 않아도 아는 지인에게 가르쳐 줬어요. 꼭 보라고.
이쪽 방면을 너무 좋아하거든요.흐흐
 
상의원 : 초회 한정판 - 스페셜 스토리북(38p) + 엽서(4EA) + 아웃케이스
이원석 감독, 한석규 외 출연 / 해리슨 앤 컴퍼니(H&Co.)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이 영화는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아마데우스>와 비견될만 하다. 단지 그 영화는 살리에르의 냉혹하고도 가차없는 시전이 느껴지지만 이 영화속 또 다른 살리에르라 할 수 있는 조돌석의 한석규는 좀 더 인간적이다.

 

예술을 호구를 삼고 마침내 장인이 된 사람은 예술 때문에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사람은 밥의 문제가 해결이 되면 예술을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쫓는다. 그래서 예술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가 없다. 하지만 예술로 권력의 맛을 본 사람은 반드시 일을 즐겨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짓밟게 되어 있다. 왜? 권력이 최고의 자리에 데려다 주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다른 사람의 예술의 진정한 경지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질투와 시기를 하며 어떻게든 그 사람을 끌어내리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돌석은 어찌보면 정당한 인물이기도 하다. 예술의 진정한 경지에 오른 공진(고수 분)을 질투할망정 부당하게 대하거나 모욕하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미워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가끔 세상은 2인자 또는 패배자는 기억하지 않는다며 세상을 싸움판으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가끔 이 영화처럼 오히려 진정한 1인자였던 공진은 묻히고,  오히려 2인자였던 조돌석을 기억하게끔 하기도 한다. 그것이 어찌보면 이것이 영화 <아마데우스>와 또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살리에르는 영원한 2인자로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가지만 모짜르트는 영원한 1인자로 후세에 남지 않는가?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1인자는 정말 그렇게 진짜 1인자를 짓밟고 올라간 2인자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 영화는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에 관한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권력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 같지만 결국 추함과 아름다움의 대결이라면서 말이다.  

 

그것의 차이는 조돌석은 권력을 탐했기에 가능하지만 공진은 권력을 탐하지 않았기에 후세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가설 때문이기도 하다. 공진은 사랑만을 탐했을 뿐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면 조돌석처럼 권력을 탐하는 것이 더 현명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조돌석과 함께 공진도 후세가 기억하는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어떤 것이든 그들의 말로는 쓸쓸하고, 사랑과 권력 그건 선택의 문제지 사랑이 권력 보다 숭고하고 이름다운지는 결국 보는 사람의 몫인 것 같다. 

 

언제나 그렇지만 예술을 완성시키는 것은 뮤즈다. 누군가 사랑하는 대상이 있지 않으면 예술은 완성될 수 없다. 왕비를 사랑하는 공진의 마음이 동시에 그의 예술혼을 활활 타오르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예술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지만 대부분 사랑은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은 보는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절절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소재도 독특하지만 아름다움에도 색깔이 있고 격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잘 보여준 잘 보여준 영화가 아닌가 싶다. 섹시하고 탐스러운 것도 아름다움의 한 종류지만 결국 우아함과 청초함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얼음 같이 찬 왕의 마음도 녹일만한 것이기도 했지만 결국 왕은 스스로가 갖는 열등감과 질투 때문에 끝내 왕비와 공진을 용서하지 못한다. 결국 아름다움은 무위의 마음을 가졌을 때야 비로소 온전히 볼 수 있는 것임을 조돌석과 왕을 보면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영화를 보면 정말 조선 시대 의복이 어떻게 변천해 갔을까가 궁금해진다. 그 시대에도 아름다움과 미풍양속이 대립되고 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데 과연 그 기준이 어떤한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또한 조연 배우들의 감초 연기도 볼만하고 특히 커트로 넘겨지는 궁녀들의 왕을 유혹하기 위한 패션쇼와 그것이 성공했을 때의 짧지만 강렬한 유머 코드가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역시 영화를 빛나게 한 건 역시 조돌석의 한석규와 이공진 역의 고수의 연기 대결인데 나는 고수가 그렇게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인 줄은 예전엔 몰랐다. 이 영화에선 가히 한석규를 압도할만 하다. 

나 개인적으로 근래에 본 영화에 별 네개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이 영화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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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6-0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를 안 봐서 심심하네요.. ㅎㅎ

stella.K 2015-06-01 18:31   좋아요 0 | URL
제 글이요...? 흥! 삐짐입니다.;;
이거 드라마 아니고 영화거든요...ㅠㅋ
 

요즘 애거사 크리스티의 <사랑을 배운다>를 조금씩 읽고 있다. 

어제는 주인공 어린 로사가 나이 많은 역사학자며 다소 괴팍한 존과 친구 아닌 친구가 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걸 읽었다.

 

... 존이 말했다. "넌 책을 어떻게 읽지? 처음부터 쭉 읽니?"

"네. 교수님은 안 그러세요?"

"안 그래." 존이 대답했다. "나는 앞부분을 보고 요지를 파악한다음 끝부분으로 가서 결말이 어떤지, 작가가 뭘 증명하려고 했는지 보지. 그리고 그후에야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그가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무엇이 작가를 그렇게 이끌었는지 살펴 봐. 그편이 훨씬 더 흥미진진하거든."

로라는 관심은 있지만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작가는 자기 책이 그런 식으로 읽히는 걸 바라지 않을 거예요."

"당연하지."

"저는 작가의 의도대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 존이 내뱉었다. "하지만 넌 빌어먹을 법률가들이 말하는 제2의 당사자를 잊고 있어. 독자 말이다. ...... 작가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책을 쓰지. 작가 멋대로. ...... 하지만 독자에게도 자기가 읽고 싶은 대로 읽을 권리가 있고, 그건 작가도 막을 수 없어."

"마치 싸우는 것 같은데요." ......

"난 그런 싸움을 좋아해." 존이 말했다. "사실 우리 인간들은 노예처럼 시간에 얽매어 살지. 시간의 순서 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는 건데 말이야. 영원을 생각한다면. 우린 얼마든지 시간 속을 내키는 대로 건너다닐 수 있어. 하지만 아무도 영원을 성찰하지 않지." (71~72쪽)

 

 이 부분을 읽으니 문득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났다. 정말 해리(빌리 크리스탈 분)은 그 비슷하게 읽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는 목차를 읽은 후 바로 책의 맨 끝장을 읽는다. 결론이 끝에 나와 있는데 뭐 때문에 힘들게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있느냐며 샐리와 옥신각신 하지 않던가?

 

꼭 그렇지 않더라도 우린 끝부분부터 읽으면 김이 빠진다고 해서 바득바득 처음부터 중간을 거쳐 끝장에 도달하려 한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요즘 붙들고 있는 책중에 용케 이런 순서대로 완독이 이르는 책이 얼마나 될까? 한 권을 온전히 읽기가 갈수록 어려워 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반드시 그런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작가가 그것을 원해서라기 보다 소극적이고 (여태까지 한 번도 그 룰이 깨진 적이 없는)객관화된 방식으로 읽기 때문은 아닐까?  난 일단 이 존 교수의 방법이 마음에 들었고 끝에 그렇게 말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책에서 존은 매우 까탈스럽고 고집불통에 문제적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우린 또 그런 사람을 얼마나 싫어하는가? 생긴대로 사는 사람은 대체로 무난하지만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런 것처럼 책도 작가가 정해 준 방식대로 읽으면 지는 것이다.    

 독자여, 작가를 거슬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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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28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을 읽다가 줄거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으면 책 뒷쪽 해설을 봐요. 그 소설을 쓴 작가가 카프카에요.

stella.K 2015-05-29 15:58   좋아요 0 | URL
프루스트는 안 보고?ㅎㅎ
아무튼 역시 카프카는 어려운 작가야.
난 읽는다고 하면 둘 다 봐야할 것 같아.ㅠ

페크pek0501 2015-06-0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볼 때 뒷부분을 본 건데 어느 날 재방송으로 그 앞부분을 볼 때가 있어요.
이럴 때 참 흥미롭더라고요. 예를 들면 두 부부가 이혼한 것까지 봤는데
앞 부분에서 그들이 사랑하는 관계로 나오면 말이죠.
아, 이혼을 하긴 했지만 한때는 저렇게 뜨겁게 사랑을 나눈 사이구나, 이러면서
이혼하기까지의 과정을 흥미롭게 보게 되는 것이죠.

이런 재미를 알아서일까요? 극장에서 영화 볼 때 중간에 들어가 끝까지 보고
다시 처음부터 중간까지 보는 게 재밌다고 말하는 사람을 봤어요. 그럴 듯하지 않나요?

stella.K 2015-06-03 13:18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 전문채널을 볼 때 그럴 때가 있어요.
거긴 했던 영화를 한동안 또 틀어주고 또 틀어주고 하잖아요.
어쩌다 괜찮은 영화를 처음부터 못 볼 때가 있는데
어쩌다 저런 장면이 나올 수 있을까?
아무래도 상상을 하게 되죠.
이야기의 인과 관계를 이해하려면 처음부터 보는 것이 아니라
중간부터 보거나 아니면 아예 끝부분에서부터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전 드라마도 그렇게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직 시도해 보지는 못했네요. 확실한 공부가 될 것 같은데 말이죠.ㅠㅠ
 

 이책 나왔을 때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썼을까 좀 놀라웠다.

 

이책은 우선 소개 글에서 '맨스플레인'이란 신조어를 소개하고 있는데, 일명 남자들이 무턱대고 여자들에게 아는 척 설명하려 드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미국에서는 2010년 <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단어로 꼽혔고,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 실리기도 했다. 이 정도라면 남자들은 한 번쯤 자신도 그러지 않는가 뒤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 그렇게 말하니 나도 일생 살면서 이런 남자 솔찮이 만나 봤다. 아니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남자들 거의 대부분 이런 기저가 있지 않을까? 가까이는 울아버지가 그랬다.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몰랐던 어렸을 적 나는 아버지가 술을 자시고 늦게 들어오시는 날은 숨기 바빴다. 아버지가 술 드시는 날은 어김없이 우리를 붙들고 뭐라고 뭐라고 횡설수설 하는 날이 바빴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나름 자식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아버지 나름의 방식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걸 맨정신으로 못하고 꼭 술을 드셔야 했던 것인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건, 한 20 몇년 전 스팸 전화 한 통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땐 핸드폰이 상용화되기 전이었으니 그런 전화를 걸러낼 수도 없는 일이고, 난 늘상 그런 전화가 오면 쌀쌀맞게 관심없다고 하곤 일방적으로 끊는다. 그래야 차후에라도 그런 전화를 안 받지 않겠는가? 그런데 누군지 모르겠는데 내가 쉽게 전화를 끊지 못하도록 계속 아양을 떨고 깐족거리는 것이었다. 뭐 이런 인간이 있나 싶어 조금 심하게 해서 전화를 끊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쌍욕을 하고 끊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쌀쌀맞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성격이고 보면 그쪽도 기분은 어지간히 상했나 보다. 잠시 후 전화가 왔는데 이 인간 말하는 게 좀 웃겼다. 다짜고짜로, "야, 너 이빨에 무좀 났냐?" 그러는 것이 아닌가? 순간 하도 말 같잖아 역시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는데 약간 겁이 더럭났다. 이거 사이코 겸 스토커면 어쩌지?   

지금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넌 어지간히 재수 무좀 난 사람인가 보구나. 그러니까 알지도 못한 사람한테 성질난다고 이러고 있지?" 그랬으면 날 죽이려 들었을까?

 

나의 20대의 마지막 시기를 교회 청년부에서 잠시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성경공부 조장이 나 보다 한 살 많은 소위 말하는 교회 오빠였다. 물론 난 나 보다 나이 많다고 아무나 오빠라고 하진 않는다. 그런데 이 형제님이야 말로 맨스플레인의 전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땐 그를 함부로 맨스플레인으로 분류할 수는 없었고 조원의 이야기를 들어 준답시고 어느 정도 듣고 있다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딱딱 정의를 내려주고 문제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는데 그게 왜 교회 오빠처럼 느껴지지 않고 앞서 말한 미스터 스팸의 이빨에 무좀 난 것처럼 느껴졌는지. 그가 잘 쓰는 언어 패턴이 있는데, "뭐 뭐하면 참 좋겠어."란 말인데, 그래서 '형제님은 마음 먹은대로 그렇게 잘 사나요?'라고 묻고 싶었다. 하긴, 별로 못 사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도 그 형제님은 훗날 청년부 회장까지 했으며, 자신이 원하는 여자와 결혼했으니까. 그것도 나랑 동갑내기 같은 성경공부 조원과. 그 친구가 당시 청년부 형제들에겐 나름 인기가 있었으니  그 형제님 입장에선 챙취한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어쨌든 나하고는 잘 안 맞았다.

 

또 하나의 맨스플레인의 전형은 애석하게도 내가 여기에 가끔 소개해 왔던 나의 글 공부 선생님이다. 난 이분을 일생 두 번 만나 공부를 했었는데, 뭐든 한 번이면 족하다고 내가 이 선생님을 다시 찾아가 공부한 건 정말 나의 실수이긴 했다. 이 선생님을 다시 뵙기 전엔 좋은 점만을 기억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내 글을 보고 잘 쓴다고 칭찬했던 거라던지, 쫀득쫀득 찰진 언어를 구사하는 거라던지, 수강생과 이물없이 지내는 것에서 오빠 같은 느낌까지. 다시 뵈면 이런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나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다시 뵀을 때 분명 그런 면들이 여전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한 것들과 마주했을 때 나는 조금은 당황했다. 그건 그 선생님에게 실망했다기 보다 사람의 좋은 면만을 기억하고 있는 내 자신이 바보 같달까? 

 

선생님은 산의 정기를 받고 사셔서 그런지 기가 세셨고, 무엇보다 좌중을 압도하는 언변은 사실 알고 보면 맨스플레인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남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나를 포함한 수강생 전부는 거의 정자세로 듣고 있어야만 한다. 난 이 선생님이 이렇게 살다가 돌아가시겠구나 했다.

 

또 한 사람은 나의 한창 시절 나와 함께 연극을 같이 했던 N이다. 난 거기서 글만 썼지만 그는 스텝부터 시작해서 늦게 서울 예전을 들어가 팀장과 연출까지 담당했고 학교에선 회장도 했으니 나름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내가 정이 많아 그런지 아니면 녀석이 복이 있었던 건지 그래도 팀이 해체되고도 가장 늦게까지 연락하고 지내기도 했다.  

 

올해 봄이 막 시작될 무렵, 난 또 무슨 신기라도 들린 것처럼 갑자기 다시 연극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무렵 뭔가 연극을 다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는 길을 보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몇 명 되지도 않지만 내가 아는 인맥을 최대한 동원해서 연락을 하고 거기에 당연 N이 빠질 리가 없었다. 그동안도 그는 나만 만나면 누나가 글만 쓰면 나머진 걱정하지 말라고 한마디씩 하는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동안은 글 쓸 꺼리도 의욕도 없었으니 그런 말을 하면 그냥 고맙다고만 하고 넘기곤 했다. 그런데 녀석의 말을 지키게 해 줄 기회가 비로소 왔으니 내가 어찌 연락을 안하겠는가?

 

만나서 내 계획과 의도를 설명했더니 처음엔 흔쾌히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중엔 이런 말도 했다. "누나가 내가 싫다고 팀에서 나를 잘라버리기 전까지 저는 절대로 나 스스로 마음을 바꾸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 얼마나 신의에 찬 피도 안 섞인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인가? 그 말을 그동안 두 번쯤 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나도 감동 먹었었다. 그래 너 밖엔 없어. 너 믿고 한다. 이 정도면 세상에 둘도 없는 오누이지간 같아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그는 가면갈수록 뭔가 처음과는 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어느새 눈빛이 달라져 있었고 나를 도와주겠다는 본말과 달리 점점 꼬장을 부리는 것이심상치가 않았다. 물론 처음엔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처럼 하더니 나중엔 자기가 하려는 것이 정석인 양 거기서 한 발도 물러나지 않을 기세다. 

 

물론 그 일은 나중에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설혹 그렇게 되지 않았어도 녀석과는 같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도와주겠다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며, 그것을 본인이 인지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또한 나를 위하는 척 하면서 결정적일 때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는 그것을 보면서 내가 얘를 그동안 잊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시절 나는 그가 뭔 일만 앞두고 신경이 날카로와져 사고칠 것만 같아 윗선에 계신 분께 도움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얘 좀 말려 달라고. 마침 그때가 생각이나 그 얘기를 들려줬더니 녀석은 실실 얼굴을 쪼개며, "그래서 그때 제가 그 말을 들었던가요?"한다. 그래서 잘은 기억은 안 나는데 좀 순해졌던 것 같았다고 얘기해 줬다. 그랬더니 "내가 누구 말을 그렇게 듣고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하며 말끝을 흐리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난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녀석을 잘라버려야 했다. 물론 녀석도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그렇게 의리와 신의로 똘똘뭉친 사람처럼 잘난 척 하더니 시쳇말로 개쪽 당하고 말았으니. 연출이 작가 보다 높다고 누가 말하던가? 연출이라고 시작도 하기 전에 갑질부터 하는 것도 꼴 사나웠고, 평소 때와 일할 때가 한결 같아야 하는데 N은 그것이 일치하지 않았다.

 

문득 그를 보면서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지금 그의 슬하에서 딸이 자라고 있는데 안 그래도 보수 꼴통 성향이 다분한 녀석이 앞으로 딸과 좋은 부녀지간으로 지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세상엔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들도 많을 것이다. 전에 없었던 단어로 일반화시키는 것도 위험할 수도 있고. 하지만 한번쯤 맨스플레인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이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인지 아닌지 돌아 볼 필요는 있을 것 같고, 맨스플레인은 꼭 남자들에게만 있을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라고 본다. 여자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을 어떤 프레임으로 볼 것이냔데 저 책의 저자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본 것 같다.

 

남자들이여, 제발 듣는 귀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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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5-23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남자라고 다 그런건 아닐거에요..
아시겠지만 남자 인간들도 여자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종류가 가지가지입니다
잘 골라서 사용하세요 ㅋㅋ

stella.K 2015-05-24 18:1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데 써 놓고 보니까 좀 거칠 게 쓴 것 같군요.
그러게요. 남자들도 가지가지일텐데 너무 여성적 편향으로
쓴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무튼 말씀 새겨 듣도록 하겠습니다.^^

cyrus 2015-05-23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의 절반은 여자의 말을 귀 기울이지 않아요. 우리 아버지가 그래요. 어머니가 무얼 하라고 제안을 하면,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본인 생각대로 행동을 해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하는 제안은 거의 다 좋은 쪽이었는데 아버지가 그걸 가볍게 넘기는 바람에 손해를 본 적이 많았어요.

stella.K 2015-05-24 18:1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부인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단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라니까.
넌 이 담에 결혼하거든 부인 말 잘 들어라.^^

cyrus 2015-05-24 21:10   좋아요 0 | URL
누님 말씀하시는 거 우리 엄마 같았어요. 엄마가 아빠랑 부부싸움 하고 나면 항상 하는 얘기거든요.. ㅎㅎㅎ

hnine 2015-05-24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공부 선생님이란 S 선생님을 말씀하시나요??
저는 성질이 더 못돼서 그런지 남자뿐 아니라 가르치려는 말투로 말하는 모든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해요.

stella.K 2015-05-24 18:13   좋아요 0 | URL
네.ㅋ
저도 그래요. 거의 경멸하죠.
저 글 쓴 거 좀 보세요.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는데
그것을 반증하고 있지 않습니까?ㅋㅋ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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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읽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작가의 글 쓰기에 관한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이번엔 한창훈이다.

 

번듯한 글 한 줄 제대로 못 쓰면서 나는 매번 이런 책에 눈독을 들인다.

그런데 아뿔싸! 제목이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은 한창훈 자신의 글 쓰기론만을 온전히 담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느 에세이류는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이 책은 작가가 예전에 내놓은 <향연>의 개정판이다. 어쨌든 그동안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작가를 이제야 이책으로 조우했다. 물론 제목이 그러했던 만큼 작가의 글 쓰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긴은 한다. 

 

그가 작가가 되기로 한 동기가 재미있다.

미술은 동생이 하고 있었고, 음악은 돈이 너무 많이 들며, 연극은 한마디로 며느리시집살이와 맞먹는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독고다이류'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는 건 작가가 되는 것. 천 원어치 종이와 볼펜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직업. 문학은 고아가 하는 짓. 둘째로, 남을 짓누르고 올라서려는 종자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것. 이 원칙을 훼손당하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작가이겠구나 했단다. (8~9p)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주인공이 사회 비참과 무관심의 대상이면 독자들이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예를들어, 예전에 <아침마당>에서 헤어진 가족찾아 주기 뭐 그런 프로를 했는데 왜 재수없게 아침부터 눈물바람아냐'며 항의를 듣는단다. 순간 그는 인생이 얼마나 평안하고 즐거우면 타인의 아픔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왜 아침엔 울어서는 안 되는가? 그래서 그는 그들이 애써 알고 싶어하지 않는 당대 이야기로 그런 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라고(13~14p) 했다. 거기엔 그 나름의 분노가 서려 있어 보인다.

 

또 어느만큼 읽어가다 보면 그는 이렇게도 썼다. 

20대 중반, 직업에 대한 궁리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회사에 취업할 능력도 마음도 없고, 투자비가 거의 들지 않으면서 세상에 대한 태도로 소설가를 선택했다고(161p). 하지만 문제는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는 것. 약간은 황당해 보이기도 하다. 소설가가 되기로 했으면서 소설을 어떻게 쓰는 지 모르다니. 하지만 그의 말이 맞기도 하다. 소설은 알아도 모르겠는 게 소설이다. 매번 새 소설을 쓸 때마다 미궁속을 헤메는 게 소설가들 아닌가? 단지 목표 의식만 뚜렸하다.

어떻게 소설을 써야 하지? 답은 바로 나왔다.

잘 쓰거나 열심히 쓰거나.

무엇을 써야하지? 이것도 마찬가지.

좋은 것을 쓰거나 감동적인 것을 쓰거나 그럼 됐다.

좋고 감동적인 것을 열심히, 잘 쓰면 되겠구나.('삶을 궁리하는 방법',162p)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단어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건 '궁리'라는 단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어떻게 살 것인가를 궁리하며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뭐 본질적인 문제에 해답을 달겠다고,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라고 고민하는 햄릿형 인간 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게 훨씬 인간다워 보인다. 그러니까 비굴하게 삶에서 한 발 물러서서 관망하지 말고, 상대적 박탈감 내지는 빈곤감에 우울하거나 일희일비 하지말고 그냥 잘 살려고 오늘도 어제처럼 궁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때로 그의 글이 나를 위로한다. 궁리 끝에 선택한 직업이 소설을 쓰는 일이면서 무슨 글 짓기 대회에서 장려상 쪼가리 하나 받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나도 그런데. 장려상은 고사하고 학창시절 교지에 내 글 한 자 올려 보지 못했다. 물론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 아주 가끔 내 글이 활자화 되기도 했지만 그건 어찌보면 활자가 권위의식을 벗어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오래 전, 386 세대의 작가들이 문단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 누구는 문단계의 지각 변동을 예측했다. 이제 발로 뛰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책들을 보고 연구하고 그에 대한 결과물로 소설을 쓰고 수필을 쓰며, 연구서 비슷한 책을 낸다고. 또 그렇지 않으면 자아에 대한 깊은 고뇌와 고독 뭐 그런 책들을 낼 거라고. 그것도 작가로 살아가는 궁리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머리와 가슴은 커졌을지 모르지만 삶의 향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작가 한창훈은 지금도 어부로 일하면 글을 쓴다. 그가 고민 끝에 아니 궁리 끝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는 하지만 순수하게 글만 써서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게 작가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그래서 작가는 일종의 명예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작가는 체험이 아니면 글을 쓰지 않는다고 했는데 작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삶의 터전이 되고 바탕이 되는 곳에서부터 흘러 나온다. 비록 내가 원하는 그의 글 쓰기에 관한 부분은 그리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의 글에선 짭쪼름하면서도  비릿한 바다의 그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삶 그대로를 끌어 안은 냄새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선 남도의 걸진 욕이 튀어 나오고, 어느 부분에선 다듬어지지 않는 야성의 해학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부분에선 같은 마을에 사는 누구의 사랑을 소설로 썼노라고도 밝히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선 같은 문인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한다. 

 

적어도  한창훈 작가는 자신이 궁리한 것 중 하나는 지키고 쓰는 것 같다. 그것은 좋고 감동적인 것을 열심히 쓰는것. 작가가 그럴수만 있다면 그도 꽤 성공한 작가겠다 싶다. 그렇다면 나의 궁리는 무엇인가?

 

내가 늘 작가들의 이런 글을 읽고자 하는 건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를 알고 싶기도 하지만,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도록 만드는가를 알고자 함도 있다. 예전엔 분노가 글을 쓰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마침 박혜영 교수가 한 잡지에 '요즘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읽어보면 조울증이나 자폐증에 걸린 작가들은 쉽게 볼 수 있지만 화가 난 작가들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12p)'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조울증을 포함한)우울증은 미국의 의료사회가 그것을 키워서 진료와 약의 판매고를 높이기 위함이라고는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작가들까지 그것에 편승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제대로 분노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조울증과 자폐증이 창궐하는 문학판에 대한 분노인가? 아니면 사회의 갑질에 대한 부조리와 억압을 글로써 표현하는 게 작가의 제대로 된 분노일까? 

 

박혜영 교수의 진단이 맞는 것이라면 오늘 날 우리나라 작가는 너무 나약하다. 고작 작가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니. 반대로 작가는 누구 보다도 건강해야 하고 탄탄한 근육질로다져져야 한다. 제대로 분노할 줄 모르는 작가가 작가일 수 있겠는가? 나는 또 궁리해 본다. 

 

끝으로 작가의 생활철학이 마음에 들어 여기 적어 본다. 책의 날개에는, '사람을 볼 때 51점만 되면 100점을 주자.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어야지 꿀을 주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진심 보다 태도이다. 미워할 것은 끝까지 미워하자. 땅은 원래 사람의 것이 아니니 죽을 때까지 단 한 편도 소유하지 않는다.' '말 많은 이들과 오랫동안 술좌석을 같이하다가 터득한 것으로 '새로운 의미나 정보, 웃음, 그 외는 다물고 있자(297p)' 참고하면 사는데 두루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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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19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 나오는 작가의 생활철학은 저랑 비슷해요. 사람들이랑 대화를 하면 일단 경청해요. 진부한 대화 주제가 나오면 그저 듣기만 합니다.

stella.K 2015-05-20 11:5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구나. 실제로 작가도 그런데.
근데 넌 참 좋은 성격을 가졌네.
남자들 중엔 자기 말만 떠드는 사람 있거든.
유무식을 떠나. 그런 사람 보면 나도 가만히 듣고 있긴 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나고 싶지 않더라.
그러면서 그걸 자신은 언변이 좋다고 착각을 하고.
언변이 좋은 사람 보다 들어주길 잘하는 사람이
훨씬 좋다고 봐.
더 좋은 건 남자든 여자든 대화를 주고 받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 상대가
좋긴 하지.^^

페크pek0501 2015-05-2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리... 그러고 보니 제가 요즘 궁리를 많이 하고 사네요.
이런 때엔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궁리를 해요.
쉬운 게 없다는 게 제 결론이고요. 아무리 코딱지 같이 하찮은 일이라도
마음을 쓰지 않으면 엉망이 되고 말아서요.

이 책 읽으셨군요. 저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고 있는데 술술 읽혀서
하루에 백 쪽 이상을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뻔한 얘기인데 괜히 샀나? 이러면서도 뭔가 얻어지는 게 있겠지, 그러면서 읽어요.
좋은 글 발견하면 나중에 페이퍼로 올릴 게요. ^^

stella.K 2015-05-24 18:1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나이들면 왜 그리 궁리도 많아지고, 걱정도 많아지는지 모르겠어요.ㅠ
오늘도 하루 해가 저물고 있네요.

저도 유시민의 책은 처음 글쓰기에 관해 읽는 사람이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역시 그런가 보네요.
네. 좋은 글 있으면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