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문학에 그렇게도 구애를 퍼부었던 나도 어느 순간 시들해짐을 넘어 아예 냉담해지기까지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된 원인엔 적어도 나에게 3 가지 악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토록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의 결혼과 교지에 내 글이 실리지 않은 것,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한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시작된 민주화 항쟁이 그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다. 국어 선생님 같은 경우 그 분의 결혼에 미련 같은 게 남아 있을 리 없다. 물론 잠시 아쉽긴 했지만 곧 선생님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렸고 오히려 이런 내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실연 당한 사람들 마음 아프다고 질질거리고 추태 부리고 하던데 솔직히 나도 그렇게 되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로 덤덤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1]

또한 내 글이 교지에 실리지 않은 건 좀 아쉽고, 충격적이긴 했지만 어차피 작가가 되는 건 장기전이고 결국 나이 먹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리부터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2] 하지만 그 시대가 나의 작가의 꿈을 앗아갔다는 건 부인할 수 업을 것 같았다 

TV나 신문은 연일 시위와 군부독재를 타도하는 소식으로 들끓었고 나는 그게 남의 일인 양 바라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 시절 나의 아버지 같은 기성 세대는 요즘 젊은이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시위한다고 못 마땅해 했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고, 군인은 나라 잘 지키면 되는 것이고, 장사꾼은 장사나 잘하면 되는 것처럼 학생은 그저 공부나 잘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대의 기성세대들은 결코 범상치 않은 시대를 거치며 살아왔다. 나라가 하나되지 못하고 갈라진 것은 유감이긴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좀 전쟁의 불안에서 벗어나 안정되게 살 수만 있다면 그도 다행이겠다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 같은 힘 있는 사람이 이 불안한 휴전의 시대를 버텨줄 수만 있다면 그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이루어 놓은 게 좀 많은가? 무엇보다도 잿더미 같았던 남한의 땅을 이만큼 발전시켜 놓은 건 그의 힘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기성 세대들은 잘 몰랐을 것이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이고 다양성이 공존한다는 것이 뭔지를. 워낙 수직적이고 전통적 가치관에 길들여져 왔을 뿐만 아니라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이었으니 따숩게 밥 먹고 잠자는 것 외에 그것 너머의 자유가 허락될 거라고 누가 감히 상상하겠는가? 때문에 그 시절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하는 건 기성 세대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옷과 먹을 것 등록금이 어디서 나온 건데, 다 땅 팔고, 소 팔고, 기계 기름칠해 돌려 가며 번 돈 아니겠는가? 그런 피 같은 돈과 정력을 학교에 바치지 못하고 시위현장에 바치고 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집 앞에서 교회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하필 시위가 일어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대학생 시위는 대학가 같은 번화한 곳에서 할 텐데 그런 곳과 한참 떨어진 시장 앞 도로변에서 시위를 하다니.

그 때문일까? 나는 한참 만에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를 탔지만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마침 버스 안에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어떤 아저씨 둘이 서로 초면에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버스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깥의 상황을 보고 같은 마음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사 논평에 밝은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그 광경이 나에게 너무나 극명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누가 더 자유로운 사람이었을까? 버스라는 우리 안에 갇혀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담을 나눴던 그들이었을까? 아니면 대학이란 상아탑 안에 갇혀 있는다는 것이 위선이라고 생각해 저렇게 거리에 쏟아져 나와 행진을 했던 것이 자유였을까?    

어쨌든 그들은 어쩌면 그리도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는지 나도 보면서 신기할 정도였다. 저 나이쯤 되면 저렇게 이물 없이 낯선 사람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의 호방함에 나의 소심한 성격이 유난히 쪼그라드는 느낌도 들었다.

다행히도 길은 얼마 만에 뚫렸고,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한쪽이 먼저 목적지에 이르자 그 동안 말 벗이 되어준 것이 고마웠던지 상대 남자에게 어디까지 가시는지 모르겠지만 안녕히 가시라고 먼저 인사를 했고, 상대 역시 답례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80년 대는 서로 모르는 사이도 금방 공감대를 형성하고 친해질 수 있는 사이로 만드는 처절한 세대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문학은 어디로 갔던 것일까? 그렇게 민주화로 인해 촉발된 문학은 온통 참여문학 일색아니었던가? 그래서 문학이 그런 것이어야 한다면 나는 문학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 문학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것이고, 천일야화 같은 상상력의 본체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옛날 선생님으로부터 요셉 이야기를 듣고 이 세상 어디엔가 요셉은 존재하지 않을까란 희망을 가지고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문학은 그렇게 상상력과 별을 쫓는 모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별이 손에 닿지 않는다고 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 처럼 문학을 하는 작가는 그렇게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것인 양 독자에게 끊임없이 상상력을 불어 넣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척박한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에 기름이라도 붓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끊임없이 상상력을 퍼 올려야 하는 문학이 고작 현실과 야합(?)해서 참여문학이란 그때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으로 나온 것에 나는 적잖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자고 그 시대의 작가들은 하나 같이 현실을 비판하는 글만 써 댔던 것일까? 이렇게 척박한 세상일수록 누군가는 계속 상상력 가득한 글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이대로 한 세대만 지나면 문학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문학을 멀리했던 이유가 정말 이런 이유에서일까에 확신이 없었다. 문학에 대한 내 관심 자체가 시들했던 건 아닐까? 그것을 그렇게 참여문학에 덮어 씌웠던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우리가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사춘기 시절, 인간은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나의 염세주의적 사고방식과 맥락을 같이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소설의 일회성이 나의 이런 생각을 더 부추겼다. 한 번 읽고 마는 소설에 기꺼이 돈을 지불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더구나 그 시대의 문학은 돈 내고 사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이 돈 안 되는 일에 나 자신을 투신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혼자 문학을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흐른 요즘에 와 드는 생각은 그 시절이 척박했다고 과연 문학이 문학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을 어디서 알 수 있느냐면, 나는 1982년부터 내가 완독한 책을 기록하는 손바닥만한 노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지금도 아주 가끔 들여다 보는 때가 있다(사실 내가 이 노트를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을 거라곤 나 자신도 몰랐다. 잃어버리려면 충분히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건데 말이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런 책을 읽었던가?’ 조금 놀라기도 하고, 그 책을 읽은 건 확실히 기억이 나는데 내용이 뭔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책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책들은 언제고 날 잡아서 다시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또한 문학은 항상 보면 그 시대를 풍미하거나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참여문학이던 아니든 간에 말이다. 나는 또 문학에 애도를 표한다고 해 놓고 그 작가들의 작품을 야금야금 읽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당시 문학계는 수필이 강세를 보였는데, 여류 수필가로 신달자와 유안진이, 남자로는 철학자 김형석과 안병욱이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들의 작품 한 두 권쯤은 다 읽었다독보적 지성으로는 이어령 교수가 있었고, 소설로는 박경리 선생과 박완서 선생이 있었다. 이들의 책 역시 난 몇 년간에 걸쳐 서너 권 이상은 읽었다.  

또한 외국 작가로는 <빙점>으로 유명한 미우라 아야꼬 씨의 책들을 좋아했는데, 그녀가 구사하는 작품의 정서가 우리나라의 그것과 흡사해 좋아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녀가 쓰는 작품마다 기독교 작가로서 그 특유의 영성이 돋보여 좋아했다.

서양 작가로는 가톨릭 작가로 유명한 A. J 크로닌의 작품을 좋아했다.

의 작품을 알게 된 계기는 사실 난 교회를 다니기 전 성당엘 잠시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영세(세례)를 받을 때 나의 대모[3]에게 그의 책 <인생의 도상에서>란 책을 다른 책과 함께 축하 선물로 받았었다. 그런데 아무리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고 하지만 판형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활자가 작은 편이어서 당장 읽을 맛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 몇 년간 내 방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우연히 어떤가 싶어 뽑아서 한 두 장 읽기 시작했는데 그게 또 의외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후 그의 책을 생각 외로 많이 읽었다.

그때 이미 나의 신앙은 가톨릭에서 기독교로 옮긴 상태였는데, 좀 웃긴 것은 그렇게 미우라 아야꼬와 크로닌의 작품들을 읽어서일까? 내친김에 아예 종교 문학에 발을 디뎌 볼 생각으로 집에서 한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 신사역 가는 길에 기독교 서점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가면 기독교 문학에 관한 책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날 마음 먹고  갔다.

처음으로 가 본 그곳은 내가 찾던 기독교 문학 책은 그다지 있어 보이진 않았고, 주로 신학이나 신앙 서적을 팔고 있었다. 조금 실망은 했지만 이대로 나오기가 뭐해 용기를 내 그곳 주인에게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있냐고 물어 보았다.

그 무렵 이문열의 책들이 문학계를 주름잡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그가 이전에도 책을 내긴 했지만 이 책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내가 그 책을 찾았을 싯점은 그나마 그 인기가 한풀 꺾인 때였다. 그렇게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 서점에 들어 온 이상 그 책이라도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말하는 순간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그 책을 이런 기독교 서점에서 찾고 있는 건지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그 책이 기독교 문학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던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서점을 기웃거리고 다녔으면서 하필 여기 와 그런 실수를 하다니?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나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그냥 모른 척 주인이 어떻게 나오나 지켜 보는 수 밖에.

그런데 의외로 나를 대하는 주인과 그 친구의 태도가 참 마음에 들었다. 보통은 왜 그런 책을 여기서 찾나 의아해 할 수도 었을 텐데 다소 얼떨떨한 표정 지으며 그들은 내가 찾는 책에 대해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는 것이었다. 이마에 내천 자까지 그리면서. 그리고는 그거 소설책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그제야 그들은 어떠한 결론에 도달한 듯 주인이 그건 여기엔 없으며 일반 서점에 가보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도 그 유명한 책을 읽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베스트셀러여도 그렇게 안 읽은 사람도 못지 않게 많다는 얘기다. 

나는 그런 그들의 진지함이 왠지 착해 보여 좋았다. 자칫 무안해질 수도 있는 상황을 그들은 직감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런 손님을 진지하게 대해주니 오히려 고마울 정도였다.[4]

그리고 나는 그 후 그들의 말대로 그 책을 단골 서점에서 사 읽었고, 그 책이 문학으로는 잘 쓴 작품이긴 하지만 기독교 문학과는 전혀 상관 없는 책이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그 밖에도 80년대엔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이나 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 같은 역사 소설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면서 나 역시 역사소설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바로 이런 책들이 시대의 질곡과 상관없이 80년 대를 대표하는 책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무슨 근거로 80년 대는 문학적 상상력이 부재한 시대라고 단언하고 조용히 안녕을 고하려고 했던 걸까?

그런데도 80년 대를 생각하면 그 시절 내가 읽어 온 책들 보다는<해방 전후사의 인식>의 인식이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등과 함께 이념 서적들을 떠올리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누구는 문학을 함에 있어서 그 시대의 사회성과 참여정신을 닮지 못해 괴로워했는지 모르겠다. 문학의 길은 의외로 넓고 깊다. 

시대에 저항하는 문학을 하는 것이 문학하는 자의 자세인지 아니면 그것과 상관없이 문학 그 자체의 길을 도도하게 가는 것이 옳은 건지 잘 모르겠다. 물론 그건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나 개인적인 생각은 시대를 초월해서 좀 더 예언자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문학하는 자세에 좀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언젠가 조선일보의 북세션을 담당했던(지금도 담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광일 기자가 이런 말을 했단다.

“(뜨거운 시대를 살아야 했던 작가들은 너무 뜨겁다고 전제하고)독자들은 이미 다 잊어버리고 가볍게 걸어가고 있는데 작가들은 아직 그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헐떡이고 있습니다. 짐을 올려놓기도 어렵지만 내려놓기는 더 어려운 법이지요. 그 역사의 짐을 내려놔야 새 시대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라고.

나는 기자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시대를 정확하게 읽는 것도 작가의 몫이긴 하겠지만 시대를 관통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우리나라 작가는 조금 늦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위에 열거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그 시절 나름 나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실연 당해보지 않은 인생을 인생이라 논할 수 있을까?

[2] 하지만 이런 생각은 살면서 생각해 보니 그다지 옳은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때 쓸 수 없는 글은 나이 먹었다고 써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글이란 축적의 산물이기 때문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날에 할 수만 있으면 조금씩이라도 쓰고 쌓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3] 가톨릭엔 대모, 대부 제도가 있다. 말하자면 영적인 어머니, 아버지를 일컫는 말로 내가 신앙인임을 보증해 주고, 영적으로 이끌어 주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이 있어야 영세를 받을 수가 있고, 여자나 남자나 같은 성으로만 이루어진다.

당시 나의 대모는 나 보다는 대여섯 살 위로 보이는 어느 여대생 언니였는데, 참해 보이긴 했지만 의외로 내가 그녀의 대녀인데도 잘 챙겨주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것이 형식적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나 몰라라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나는 그녀를 성당을 다니는 동안 두 번인가 세 번 밖에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제도는 정말 좋은 제도 같긴 하다고 생각했다.       

[4] 요즘은 책을 거의 인터넷에서 사는 형편이고 보면 이렇게 서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관해 할 말이 없는 것 같다.설혹 오프라인에서 책을 산다고 해도 직원들이 사무적인 친절로만 대할 뿐이니 그런 광경을 묘사할 일이 없어졌다.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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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5-08-13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참 잘 쓰셨어요.
이달의 마이페이퍼에 강력추천합니다.^^

stella.K 2015-08-13 16:27   좋아요 0 | URL
ㅎㅎ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이전에 썼던 페이퍼가 거시기 해서 가림막용으로 올린 건데
뜻밖에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5-08-13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위의 댓글 보니 웃음이 나와요. 가림막용이라니요...
그런데 저도 사실은 그럴 때가 많아요. 마지막 글 때문에 민망해라, 빨리 다른 걸 올려야겠다...
지금도 그러고 있어요. 꼭 나의 발가벗은 몸을 높은 곳에 꽂아 둔 기분이거든요. ㅋ
하지만 우리 극복해야 해요. 뻔뻔해져야 한다니까요.

참여 문학, 생각납니다. 그때 소설들은 한결같이 데모하는 장면 같은 거나 나라에 대해 고뇌하는 장면이 들어가지 않는 소설이 없었어요. 꼭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던 시대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시대를 초월한 소설이 명작인 경우도 있는 건데...

미우라 아야꼬와 크로닌의 소설, 저도 읽었어요.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비밀 댓글 : 이런 말씀 드리기 실례가 안 된다면... 님이 최근에 쓰신 글 중에서 저는 이 글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괄호 안의 글은 비밀 댓글임. ㅋㅋ

[그장소] 2015-08-13 19:21   좋아요 0 | URL
(저도 이거 비밀인데요,와...Stella.k 님 80년대를 현역으로 보내셨단 글인것..이죠? pek0501 님?? ㅋㅎ ~안뵈실까나.... )

아,그럼 세례명...스텔라...?
저도 대모님이 계셔요. 카타리나죠..제 세례명..

stella.K 2015-08-13 18:06   좋아요 0 | URL
ㅎㅎ 니르바나님 댓글에 쓴 저의 답글이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
냉큼 들어 와 비밀글로 돌려 놓으려고 했는데 결국 언니한테도
들키고 말았네요. 왜 이렇게 가면 갈수록 소극적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언니 칭찬 들으니 기분은 좋네요. 고맙습니다.^^

[그장소]님,
그러니까요. 이러면 제가 엄청 나이가 많은 것 같아 안 쓰려고 했는데
결국 누구나 나이는 드는 거잖아요. 사람이 나이가 들면 꼭 한번쯤
갈음하고 싶어하잖아요. 이글도 작년부터 써 온 글의 연장인데
그동안 게을러서 이제야 또 한편 올리네요.
또 언제 올리게 될지 모르겠어요.
제가 이 비슷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김봉석의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한번 읽어 보세요. 저와 같은 세대구요 저 보다 훨씬 글을 잘 썼어요.^^

페크pek0501 2015-08-13 18:09   좋아요 0 | URL
저, 다 봤어요, 그장소 님. 하하~~

저도 동의보감 상중하를 읽었고 사람의 아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시대에 궁금한 마음에 읽었던 1인이에요. 이렇게 옛날 사람이랍니다. 스텔라 님보다 제가 더 옛날이어요.

제 입장에서 보면 sns의 좋은 점은 젊은이들과 친구처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죠.
늙어서 안 끼어 줘,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점이에요. 오프라인이라면 분명 안 끼어 줬을 텐데, 하는 생각이...

나이가 많아도 글이 젊으면 오케이, 라는 거죠. 글이 늙었다면 늙은 대로 괜찮아 하는 공간이라는 거죠.

그장소 님, 반가웠습니다. ^^

[그장소] 2015-08-13 19:15   좋아요 0 | URL
Stella.k 님..엄청은 무슨요.제가 놀란건요..너무 동기간 같다고 하나, 격차를 못느끼니, 신기해 그랬어요.저 윗 글 처럼 작정하고 밝힌 글이 아니면 전혀 못느끼겠단..거죠..저와 같은 세댄줄 알고..그랬어요..(그치만, 전 윗 분들이 솔직히 더 편하고 좋습니다. 같은세대나 아래에는 제가 더 잘해야한단 노력이 따르잖아요..) 무리하기 싫고 ,,그저 흐르듯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면 싶거든요.따라가듯이..흘러가듯이..(저,,여우같은 거죠?! 재수없게!^^)ㅋㅋ
아..소개해 주신 책은 메모하고 꼭 읽어볼게요..고맙습니다..!!

[그장소] 2015-08-13 19:14   좋아요 0 | URL
알아서 기겠습니다 .언니님들, 그리고 pek0501 님 ,Stella.K님 왕 재수 하고 욕한번 하셔도 저, 진짜 할말 없네요..^^ 어쩔까요? 이 글들을 비밀글로 전환해요? 지우긴 우리들 흔적이 아깝고..(단 제 글방의 글은 꼭 처리하겠습니다) 원하는 분부를 내려주셔요. 대놓고 메너가없는 경우였네요. (본의아니게) 그치만..그게 뭐? 합니다..저는 ..부럽거든요..사실..그 모든, 나이도..세월도 ,지금의 위치도..

stella.K 2015-08-13 19:21   좋아요 0 | URL
아유, 왜 그러십니까?
전혀 그런 생각하실 필요 없으세요.
이리 어려워 하시면 제가 님을 어찌 대하겠습니까?
그냥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 주세요.
그래야 저도 편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8-13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심스럽게 이달의페이퍼 당선 예측해 봅니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저와는 상극이지만 ㅋㅋㅋㅋ 그래도 어떤 진실성이 엿보여서 좋습니다. 허세 가득한, 이해도 못하면서 철학자나 나열하는 것보다는 이런 글이 백 번 낫죠...

stella.K 2015-08-13 18:07   좋아요 0 | URL
곰발님이 당선이라면 당선입니다. 고맙습니다.ㅋㅋㅋㅋㅋ

페크pek0501 2015-08-13 18:21   좋아요 0 | URL
그런데 곰곰 님은 왜 새 글을 안 올리시는 건가요?
기다리고 있사와요... ^^

[그장소] 2015-08-13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튼, 그러거나 말거나, 빙점이나..사람의 아들이나,소설 동의보감,목민심서,등 저는 90년대초중반에 걸쳐 읽었거든요..(그리 따지면 별 차이가 없는겐가..?) 아니지.. 82년부터 완독한 독서노트라 하셨으니, 88 올림픽 때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다는...흠,
아,, 어쨌든 sns는 좋은 것이 세대를 막론하고 (버릇없이) 친구를 (감히...끄응..)만들어도 준다는
겁니다... 고마운 노릇입니다.. 그런의미로 꼭 이달의 페이퍼에 올라가셔야 겠어요! ^^

stella.K 2015-08-14 14:3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럼요. 그장소님과 저는 친구입니다.
오앤만에 기대해 보죠. 이달의 페이퍼.ㅋㅋ


[그장소] 2015-08-13 19:14   좋아요 0 | URL
아, 너그럽게 양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조심할게요.
(이..괄호 비밀 글이 귀염 터져서 너무 막 나갔어요)..지키는 선은 지키겠습니다.
꼭.페이퍼 이~~얍..에너지 관리공단 째...힘 퐉~~드리고 갑니다..(제 방 글 수습하러..)에고 괜찮으신지..몰겠어서..확인하고 풀어야겠어서요.. 저는 상관없지만.. 두분이 걸린 문제잖아요..ㅎㅎㅎ 괜찮으신건가요?
그냥 두어도? 그럼..오픈?

stella.K 2015-08-13 19:00   좋아요 0 | URL
네. 상관 없습니다.^^

[그장소] 2015-08-13 19:19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젤루 많이 떠든 아이 였군요! 칠판에 이름쓰고 당번 시켜야 할 !!
아,하핫..저 개인적으로 비밀글을 좋아라하지 않아서 가급적 여럿의 글에선
걍 다 놓고 쓰는 주의 라..저도 이게 좋긴합니다..덕분에 저는 속 씨원하였습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대인배셔요!

cyrus 2015-08-1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의 부제를 ‘응답하라, 80년대 문학’이라고 붙여도 좋겠어요. 제가 헌책방에 책 구경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과거에 독자들의 독서 취향이 궁금할 때가 있어요.

stella.K 2015-08-14 14:40   좋아요 0 | URL
그렇게 해도 좋긴하지.
그런데 나는 그 시대가 나같은 소시민에게도 미친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
그 시대는 왜 꼭 정치인들과 몇몇 지성인들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젊은이들의 것인 것처럼 보여지잖아.
그 시대야 말로 문학이 죽어 있는 세대라고 생각해서
한쪽으론 마음이 쓰리기도 했다.ㅋ

yamoo 2015-08-13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미리 축하드려야 겠습니다. 8월의 이달의 당선작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ㅎ

2015-08-15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0 0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0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0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붉은돼지 2015-08-21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언급하신 목록을 쭉 보니 제가 80년대 읽었던 도서목록과
거의 88%정도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요 ^^
종교적인 문제에도 나름 관심이 많아서 사람의 아들외에도
라하트 하헤렙(맞나??)같은 조성기의 소설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잠시 추억에 잠겼습니다....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5-08-22 11:14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조성기 작가의 책 저도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나요.
오늘 우연히 TV에서 DJ 김기덕 게스트로 나와 토크쇼하는
프로를 봤는데 그것도 참 새롭더군요.
이종환, 김광한과 함께 트로이카였는데 지금은 다 가고 혼자
저렇게 남았으니 그도 참...
옛날이 새삼 그리워지더군요.ㅠ
 

 엄마가 마침내 병원에 입원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그토록 병원에 안 가겠다고 버티더니 이제 당신도 버티기가 어려웠던지 작은 아들 인도하는대로 순순히 따라 나선 것이다. 그게 지난 목요일 날의 일이었다.

 

내시경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긴 한데 지금까지의 검사 소견으로는 엄마는 대장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암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엄마의 암은 같은 대장암이더라도 전이가 빠르지 않고 비교적 예후가 좋은 암이라고 한다. 그게 뭐라고 전문 용어를 쓰더만 익숙치도 않은데다 뒤돌아 서면 잊어버리는 나의 단기 기억이 그것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을 리 없다. 어쨌든 그래서 수술 밖엔 방법이 없으며 초기에만 조금 불편할뿐 삶의 질은 그렇게 많이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게 내 동생의 전언이다.

 

그런 말을 들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이것도 내시경 검사가 나오면 또 다른 말이 나올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바라기는 더 이상의 이상 소견만 나오지만 않아도 하나님! 하겠다. 물론 그럴지라도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생각하면 좀 캄캄하긴 하다.

 

엄마가 병원에 가기를 한사코 반대했던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친 검사 때문에 몰라도 되는 병까지 잡아내 사람을 겁을 준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시경 검사가 그럴테지. 딱 거기까지만 알면 좋겠는데 내시경 검사 결과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것까지 발견해내면 물론 병원측으론 병의 근원까지 확실히 알아내야 한다는 취지가 있겠지만 그게 환자로선 때론 엄청난 부담과 불편하게 한다는 것이다. 마치 병원은 병을 찾아내지 못해 안달 난 것 같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되고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무엇보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지금까지 얼마나 당신의 몸을 아껴왔는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몸의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도 어떻게든 운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왠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음식도 몸에 좋은 것만 가려 드셨다. 무엇보다 당신 몸 하나 건강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것이 자부심이라면 자부심이었는데 이렇게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으니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당신의 큰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낸 계절이 2년 전 딱 이맘 때다. 그러니 그 마음이 어떨까.  

 

젠장, 빌어먹을! 난 도무지 이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제대로 이해하는 게 몇 가지나 되겠냐마는 뭐가 까딱하고 기침만 해도 암아라는 것인지, 당뇨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뭘 얼마나 잘못하고 살기에 암이고, 당뇨라는 것일까? 난 자꾸 이게 조작된 것만 같고 이제는 아예 신화처럼 자리잡은 것은 아닐지 의심이 갈 정도다. 그래서 수잔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을 설파했던 것은 아닐까?

 

오늘 뉴스에도 이젠 당뇨가 30세 이상 성인에게서 세 사람 한 사람 꼴로 나타난다고 보도하고 있다. 암도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고. 이게 우리가 믿어야 할 신화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옛날엔 흑사병이나 폐병이 그런 것이라면 지금은 암 아니면 당뇨다. 믿을 수 있겠는가? 이거 다 병원과 정부의 짜고치는 고스톱은 아니냔 말이다. 그러면서 한쪽에선 건강 100세를 얘기한다. 우리 오빠를 비롯해, 마이클 잭슨, 하다못해 스티브 잡스도 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구만 뭐가 건강 100세라는 건지? 좋게 말하면 다 은유고 나쁘게 말하면 개 잡소리 같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요즘엔 다롱이와 함께 혼자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 아니 이제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엄마는 언제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지 장담하기가 어렵게 됐다. 물론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래도록 집을 떠나 있기는 엄마도 처음이라  많이 당황할 정도일 것 같다. 평소 소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라디오나 TV를 오래 켜놓진 않은데 어제는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TV를 보고 있기도 하고, 라디오도 일부러 오래 켜놓는다. 물론 또 그에 따라 책을 읽는 경우는 많이 줄어 들었고, 자꾸만 우울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비교적 예후가 좋다고는 하나 아버지도, 오빠도 다 안 좋게 세상을 떠났던지라 엄마마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목이 조여오고, 뼈가 녹아내릴 것만 같고, 뭔가 아찔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느낌이랄까?

 

자꾸 귀찮은 생각이 들긴 하는데 오늘은 평상시처럼 교회를 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는 지인을 만났다. 그 지인은 오래 전 엄마를 잃고, 작년엔 아버지마져 병으로 잃었었다. 그렇게 슬픈 일이 있었는데도 난 제대로 위로도 못해줬다. 그래도 동병상련이라고 1년의 시차를 두고 오빠와 아버지를 비슷한 시기에 잃은 사람과의 만남이니 짧지만 애틋했다. 그리고 서로 잘지내냐고 묻다 결국 난 엄마 얘기를 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별 것 아닌 양 "아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요즘엔 대장암 정도는 예후가 좋아서 70대 때 수술 받고 80 넘은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사는 분들 많아요."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게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사람이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더니 그 말 한마디에 천근만근 하던 마음의 짐이 다소 내려지는 기분이다.

 

그후 갑자기 만남 하나가 취소된 게 있어 이렇게 교회 나온김에 엄마 보러 병원엘 들려보려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가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펄쩍 뛰며 오지 말라고 해 무안할 정도였다.  그리고 "너 내 성미 알잖아!" 이렇게 말하면 모르는 사람은 조폭은  아닐까 의심하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엄마는 워낙 호불호가 분명한 분이라 싫은 건 싫은 거라 결국 내가 포기했다. 그리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있는 것으로 봐선 몸상태는 과히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나중엔 부모 자식지간에 내외하냐고 웃고 말았데, 모르긴 해도 내 동생이야 엄마를 병원으로 인도한 당사자니 어쩔 수 없고, 환자복 입은 당신의 모습을 나에게까지 보이고 싶어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그러니 따라 드리는 수 밖에. 나는 그래도 엄마가 어찌지내는지 한번 보면 마음이 놓일 것 같은데 말이다.

역시 사람 사는 집엔 사람 사는 소리가 나야 정상인데 이렇게 tv 소리와 라디오 소리만 나고 있으니 처량하긴 하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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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8-09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가족 중 한 분이 조직 검사 결과 기다리는 중이라 너무 힘들어 스텔라님 심정에 너무 공감가요. 세상이 비틀어져 보이고 삶도, 죽음도 다 너무 허무하고 무의미하게도 느껴지고...


제발 다음 주에 저도 스텔라님도 좋은 소식 들렸으면 좋겠어요...

stella.K 2015-08-10 15:34   좋아요 0 | URL
아, 이런... 브랑카님 마음이 많이 무거우시겠어요.
괜히 저의 글이 님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해 드렸던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제가 다음 주에 좋은 소식 들려 드리면 브랑카님 마음이 조금은
좋아지실까요?
부디 블랑카님 용기 잃지마시고 힘내세요. 꼭이요!^^

hnine 2015-08-1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시경 결과가 나쁘지 않게 나오면 좋겠어요. 결과 기다리는 동안의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할까요.
어머님께서 의지력이 대단하시네요. 저희 엄마도 그러신줄 알고 있었는데 역시 연세는 속일수가 없는지 힘든 상황에 닥치자 여지없이 무너지시더라고요. 그렇게 자식들에게 짐되지 않고자 하시고 그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계셨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할줄 모른다, 나 혼자 어떻게 하냐고 그러십니다. 누군가 옆에 계속 있어주시기 바라시고요. 왜 안그러시겠어요...
stella님댁 강아지는 다롱이군요. 제 엄마 집 강아지 이름은 아롱이. 아버지 병원에 계신 세달 동안 남의 집 더부살이 하다가 요새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어요. 엄마께서 얘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고 그러시네요.

stella.K 2015-08-10 15:0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엄마가 이렇게 아픈 것도 혹시 그동안 먼저 간 아들 때문에
참고 있던 것이 곪아 터진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엄마가 그동안은 내색을 안하고 계셨다 지난 봄에 한의원 다녀오시고
그런 말씀 하셨거든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저와 동생을 위해 살아 달라고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지고 싶은 심정이에요.
어제 그 지인의 말에 의하면 평소 몸 관리를 어떻게 해 왔느냐에 따라
예후가 달라지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의사는 아니지만 그 지인도
겪을 것 다 겪고, 볼 것 다 봤으니 믿을만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엄만 평소 건강하게 지내신 편이셨으니...

저의 어머니도 그전에 그러셨어요. 하나님 믿는 신앙과 다롱이 때문에
버티고 산다고. 나이들수록 가족이 참 소중해지더라구요.^^


페크pek0501 2015-08-13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글이에요. 인생에서 늙음과 병듦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님만 겪는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님.
어머님이 그러셔도 가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막상 가 보면 어머님도 생각이 달라지실 것 같아요.
왜 우리 그럴 때 있잖아요. 하지마 하지마 그랬다가 막상 상대방이 하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경험 있잖아요. 누가 볼까 조마조마할 때보다 보아져 버리면
편해지리라 생각되어요.
게다가 님은 어머니께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자식이잖아요. 혹시 나중에 후회되지 않겠어요?
제 생각은 그래요.

어쨌든 스텔라 님, 힘 내세요!!!

2015-08-13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응준이란 소설가로부터 촉발된  신경숙 소설의 표절 문제는 그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 문단에 고착화된 문제가 무엇인가를 더불어 알게하는 개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보면 이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작년에 읽었던 이명서의 소설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를 통해 우리나라 문단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하지만 이 책은 작년에 처음 나왔던 책이 아니고 오래 전에 나왔다 최근 개정판이으로 다시나왔다. 그러니까 오래 전부터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우리 문단을 성토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에 귀를 기울였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솔직히 나도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판도라의 상자을 연것처럼 혼란스러워 오히려 이 책을 비판적으로 봤던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나의 태도는 우리나라 문단을 잘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성스럽게 본 나의 무지의 소치였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그 세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그 세계를 동경만 하면 그런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나 같은 무지의 속박을 깬 도끼 같은 책이기도 한 셈이다. 또한 그 책을 통해 문단계도 예외없이 권위주의적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사실 난 신경숙의 표절 논란이 제가 됐을 때 신경숙도 신경숙이었지만 이 이응준이란 작가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세계도 층층시야일 텐데 그 무림고수의 세계에서 그런 목소리를 내기란 얼마만한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는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격월간지 <악스트>를 읽다가 난 또 이와 비슷한 작가를 한 명 더 발견하게 됐다. 그는 다름아닌 커버에 나온 천명관이다. 그는 이 잡지를 통해 우리 문단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요즘 신인들의 글을 보면 다들 너무 똑똑하다. 이미 등단에 나올 때부터 준비가 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렇게 써야 등단을 하고 어떻게 써야 문학상을 받는지 영악하게 알고 있다. 나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취향이 공장에서 생산된 것처럼 다 비슷비슷하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한 주머니에 다 담아도 빠져나오는 송곳하나 없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결국 선생님들의 시선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시스템이 반백년 넘게 문단을 지배하고 있다. 바깥에서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권위적이고 전근대적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봐도 나쁜 짓이다.(95p) 

 

이런 글을 읽으면 적어도 이 범주안에 속하는 작가들은 대입을 위해 논술학원을 비롯해 인성학원까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자격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다지 나을 것이 없으니까. 그리고 천명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디선가 이런 작가를 키우는 집단과 그 집단의 우두머리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이미 각 일간지의 신춘문예는 입신을 위한 신 과거제도가 된지 오래다. 어떤 문단계 문인이 작가지망생을 모아 도제식으로 가르쳐 가장 많은 신춘문예 입상자를 냈다는 말이 공공연한 말이 아니다.   

 

어쨌든 꼭 천명관의 말이 아니더라도 어쩌다 지인들과 만나 얘기를 해 보면 요즘 작가들의 작품을 선택하기가 주저하게 된다는 얘기를 심심치않게 하게되곤 한다. 재미도 없는데다 뭔가의 자의식에 빠진 듯해서 선뜻 선택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그래도 계란으로도 과연 바위가 깨어지는지 요즘엔 그나마 한 두 작가는 애정이 가기도 한다.  

 

더구나 요즘 책 값이 만만치가 않고 물가가 오르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문화비고 그중 도서구입비를 지출목록에서 아예 제외시키는 형편이고 보면 그 작가가 아무리 빼어난 문체를 자랑한다고 해도 일반독자에게 선택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그렇게 똑똑한 글을 쓴 신인작가들에 대해 뭐라고 하기가 미안한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한 주머니에 들어가건 안 들어가건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겠는가? 그리고 일반독자들의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동정론이 문학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부추겨 왔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작가들 스스로가 갖는 묘한 사고들이 문제를 크게 만들을 것이다. 이를테면 천명관은 말하는 문학을 종교로 보는 숭고한 신념 같은 것들. 근대 시대만 해도 이런 생각이 먹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서 이런 생각을 고수하기란 얼마나 전근대적인가? 그는 말한다. 문학에 숭고한 신념은 필요치 않으며 오히려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고.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캐롤 오츠의 <작가의 신념>이란 책을 인용하기를 좋아한다. "문학에 예술만 있고 기술이 없다면 개인적인 일일뿐이다. 반면에 기술과 예술이 없다면 그것은 밥벌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의 말을 더 들어 보자. 그는 이런 분위기에 일조하는 건 문학상 제도에 있다고 했다.

"대부분 단편에 주는 상인데 상은 여러 개이지만 문학상을 평가하는 기준은 획일화 되어 있다. ...... 매 시즌 문학상을 놓고 겨루는 이 리그에선 장편 보단 단편이, 스토리 보단 문장이, 서사 보단 묘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의 취향과는 괴리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 문학상에 대한 비판은 천명관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소설가 방현석도 <명작의 탄생>이란 책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요즘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들을 뽑는 기준이 아예 다 똑같아요. 특징도 없어요. 저는 그게 걱정이고 문학 발전의 저해요인이라고 봐요. 우리나라 등단제도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아주 독특한 제도이죠. 글 쓰는데 무슨 라이선스가 필요해요? 무슨 영업허가서도 아니고.(225쪽)" 

어찌보면 이 문학상에 대한 권위의식은 우리나라 문단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천명관은 말한다. 

"처음 문단에 나왔을 때 누군가 나에게 조언을 한적이 있다. 벙어리 삼 년에 귀머거리 삼 년, 시집살이 한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덕을 쌓으라 처신을 잘하고 인맥관리를 잘하라는 말이다. 한국사회가 대체로 그런 분위기라는 건 알고 있지만 문단조차 그럴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을 하고 보니 문단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을 문단마피아라고 부른다. 출판사와 언론사, 그리고 대학이 카르텔을 형성해 시스템을 만들고 작가들을 지배하고 있다. 작가는 더 이상 문단의 주인이 아니다. 선생님들이 주인이다. 이런 의견에 대해 다들 펄쩍 뛰며 노발대발할 것이다. 하지만 권력은 언제나 그 권력 자체를 부정해왔다. 십수 년 전에 문단에도 권력논쟁이 있었다. 그때도 문단의 권력논쟁은 대표적인 가짜 논쟁이라며 권력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심사 자리에 앉아 있는 선생님들의 명단을 확인할 때마다 그 실체를 경험한다. 

지금의 문단 시스템은 독자와 상관없이 점점 더 대학에 종속되어가고 있다. 문창과가 없으면 문학도 사라질거라고 얘기들을 한다. 선생님들은 모두 대학을 근거지로 삼아 물밑에서 문단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  

 

이것은 확실히 수위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지금까지는 정치 개혁, 경재 개혁이런 것에 묻혀 문단은 성역화하고 개혁의 필요성엔 둔감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것에 대한 대안은 있는 것인가? 천명관은 말한다.

"우선 작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선생님들이 먼저 숟가락을 거둬가야 한다. 편집위원이니 심사위원이니 하며 문학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과 신도들 사이에 끼어 권력을 누리던 중세의 성직자들과 같은 것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왜 선생님들의 지도편달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필요하다면 유능하고 영민한 편집자가 필요할 뿐이다. ...... 문학은 문학주의의 성채에 가둘 수 없는 역동성이 있다. 지금도 독자들은 재미있는 작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보라.  영화판은 대학의 권위를 빌리지 않아도 잘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문단도 당연히 작가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등단제도니 청탁제도니 문학상이니 다 때려치우고 문을 활짝 열어젖어야 한다. 대중 위에 군림하는 대신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평가는 당연히 독자의 몫이어야 한다." 

이것에 대해 문학의 질적저하를 우려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단호히 말한다.

"누군가 문학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말을 한다면 장담컨대 그자는 틀림없이 나쁜 새끼다. 패거리를 짓고 조직을 만들어 권력자로 군림하려는 새끼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누가 마피아나 선생님이냐고 묻자 그는,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가 바로 마피아의 일원이거나 패밀리와 커넥션을 갖고 있는 작자일 것이다.(웃음)" 

읽는 나도 웃음이 났다. 하지만 난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까발려 얘기하는 천명관의 말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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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8-08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모르셨군요. 요즘은 문창과과 국문과 교수는 자기 파워를 위해 스파르타 식으로 문청에게 집중 교육을 시킵니다. 시 등단 몇 명, 소설 등단 몇 명 배출하느냐에 따라 교수 위상이 달라지죠. 그러다 보니 당연히 등단을 하는 사람들은 이들 심사 위원 구미에 맞는 스타일대로 따를 수밖에 없죠. 그래서 다 그게그거가되는 겁니다.

stella.K 2015-08-09 18:25   좋아요 0 | URL
조금은 알고 있었죠.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제가 이 세계를 워낙에 동경했던지라 뭔가 성역 의식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cyrus 2015-08-0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부 독자들이 우리나라 문단의 현실을 잘 모르니까 성스럽게 보는 것 같아요. 책을 잘 안 읽는 독자가 한국소설을 읽게 되면 베스트셀러만 찾는 성향이 강해요. 제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제 주변에 책을 즐겨 읽지 않는 사람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칭찬하는 모습을 봤을 땐 어색했어요. 그 친구가 신경숙의 소설을 강력 추천해도 읽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고요. 저는 그 친구의 태도가 한국 문단을 너무 맹신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믿는 작가가 표절 문제 때문에 독자의 발등을 찍으면 독자 입장에서는 그 허무함과 배신감이 더욱 크게 느껴요.

stella.K 2015-08-09 18:30   좋아요 0 | URL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정치나 경제는 사범이 있잖아.
그런데 비해 문단계는 도덕적으로 잘못 됐다는 정도지
특별히 사범으로까지 몰아가진 않잖아.
그리고 문학은 일반 독자들에게 어쨌든 동경과 동정을 오가고 있으니
더 그런 것 같아. 지금이라도 자정 노력을 해야겠지.

2015-08-09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8-09 18:35   좋아요 0 | URL
본문이 너무 길어서 다 옮기지는 못했는데
천명관도 정말 작가가 되고자 원한다면 문단 안에서
길을 찾으려 하지말고 바깥에서 찾으라는 말을 하더군요.
문단에 발을 들여 놓으면 그 시스템에 매여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더군요.
확실히 새겨 볼 말입니다.

에밀 시오랑 같은 작가가 드물게는 있긴 하죠.
저도 이 작가의 책을 한 번 읽어 봐야할 것 같은데
도무지 짬이 안 나는군요.ㅠ

깜장고양이 2015-10-16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천명관에게 `나쁜 새끼`는 아닌 것 같아 안도했다는. ㅎㅎㅎ


근데요, 쓰신 글 읽는 데 오타가 걸렸습니다. 수정 부탁드립니다~

~개기가 되기도 했다.
층층시야
빠져나오는 공곳하나 없다는 게

stella.K 2015-10-16 15:50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글이 원래 오타가 좀 많습니다. 이 글 말고도...
그냥 그러려니 하시길.
고치느라 고치는데도 나중에 또 발견되더군요.
오타는 짬짬이 고치겠습니다. 그냥 이해하시길...ㅠ
 
[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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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내용 요약 같은 것은 생략한다.

그저 단지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이나 느낀 것들을 간략하게 쓰는 것으로 리뷰를 대신할까 한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문득 오래 전에 본 영화 <파이란>이 생각이 났다. 물론 내용은 이 책과 전혀 같은 것이 아니지만 영화는 남녀 주인공이 한 공간에서 잠시도 만나지 않는다. 그들에 인연이 있다면 위장결혼을 했다는 것과 몇 통의 편지를 남자 주인공이 받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도 잔잔한 감동이 어느새 관객을 압도하지 않는가?

이 작품도 일종의 그런 얘기다. 책 표지에 나왔던 대로 단 한 순간의 만남을 위해 소년과 소녀는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것도 소녀는 그나마 선청성 백내장이다. 소년은 알아 볼 수 있어도 소녀는 알아 볼 수도 없다. 스쳐지나가듯할 뿐인데 바로 이것에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작가는 의미심장하면서도 시적으로 잘도 포착해 낸다.

 

읽으면서 사람은 참혹한 전쟁과 고난 속에서도 더 단단해지고, 결속하고, 서로를 보듬는 존재의 역설이 있고 위대함이 있다. 또한 그것이 미래로 나가는 힘을 발휘하게도 된다. 작품은 그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쟁문학이란 장르에 매료 당하는 것이고. 문득 <안네의 일기>도 생각나게 만들었다.      

 

그런데,  글쎄.. 이 책 너무 기대를 하고 봐서인지는 몰라도 나 개인으론 이 작품이 생각만큼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리도 감정이입이 안 되는 것인지... 

마케팅을 위한 것이긴 하겠지만 책 겉표지에 나온 이 작품에 대한  상찬이 너무 과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이미 올해 미국의 권위있는 플리처상을 타버렸으니 이 작품에 대한 반박을 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고, 어쨌든 내 개인의 느낌은 생각 보다 좀 많이 지루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들자면, 이 책은 묘사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서사가 약하다. 이 작품은 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굳이 2차 세계대전으로 하지 않아도 될 것도 같다. 그냥 코소보 사태나 스페인 내전 뭐 이런 것을 배경으로 해도 작품은 충분히 성립이 된다. 어차피 전쟁 상황에서의 인간군상과 내면을 그렸으니까. 단지 2차 세계대전을 설정하는 건  지금까지 문학이 그것을 익숙하게 그려왔기 때문은 아닐까?

 

또한 나는 이 책의 작가가 스스로가 갖는 뭔가의 한계를 다른 무엇으로 메꾸려 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것이 지나친 서정적 묘사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론 전쟁 상황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운명이 처절할 수록 더 빛나는 뭔가가 있는 법이긴 하다. 그것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그리려 했던 것은 아닌지? 또한 그것을 인간 본성을 그렸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간 본성은 인간 서정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자가 1973년 생이란다. 전쟁을 격어보지 않은 세대다(모르지. 남의 전쟁에 참전은 했을지). 단순히 상상력만으로 이만큼 쓰기도 쉽지는 않겠지만 요즘 문학의 지적하는 바가 묘사는 있으나 서사가 부족하다는 것인데 이같은 지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도 왠지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이기도 하다. 서사가 부족하니 소설이 자꾸 진부해지고 재미없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느낌은 자유고, 나의 허접한 리뷰를 저자가 알아 볼 리는 없으니 나 혼자 맘대로 지껄여 봤다. 물론 이 책을 번역하고 출판한 출판사에 조금은 미안한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까지 리뷰를 보면 너무 칭찬 일색라, 나 한 사람 정도는 반기를 들어도 무방하리라고 본다. 물론 문체 자체는 나무랄 때는 없어 보이긴 하지만 문학을 문체로만 보는 건 너무 안일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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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06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1973년생인데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니, 특이하네요. 작가도 세계대전의 역사를 학교에서 배웠을 것이고,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읽어봤을 거예요. 그래서 작가 자신만의 서사와 표현이 나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stella.K 2015-08-07 12:38   좋아요 0 | URL
내 말이! 그런데 어떻게 이런 작품에 플리처상이라는 건지
이해가 안 가더군. 하지만 그런 생각 보단 내가 문학을 이해하는 수준이
낮은 건가? 죄괴감이 들기도 해.
그런데 내가 알기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플리처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거든. 그 작품 보면 그야말로 스펙타클 장쾌한 서사시란 느낌이
팍 오잖아. 아무리 현대문학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묘사만 있고 서사에
약한 작품에 이런 영예를 준다면 문학상은 이미 권위를 잃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ㅋ

페크pek0501 2015-08-0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
긴 책을 읽으셨군요. 저도 두 권짜리 외국소설 샀는데 모셔 두고만 있어요.ㅋ
올해 안에 읽는 게 목표예요. 책이 밀려 있어서요.

<인간의 굴레에서>1, 2는 두 권 합해 천 쪽이 넘어서 읽고 나니 뿌듯하더라고요.
그런데 소설 독서의 단점은 다른 책과 함께 읽을 수 없음, 이에요. 쭉 이어져야 하니까요.
뒷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해서 말이죠.
에세이 독서의 장점은 이 책, 저 책 맘대로 왔다갔다 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인지 에세이가 편하더라고요. 배울 점도 많고요.

민음사 출간의 신간인데 별로인 모양이군요.
맞아요. 반기를 드는 리뷰를 누군가는 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5-08-07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07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07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알라딘 통장

 

알라딘을 이용하기 시작한 이래 내 통장의 잔고가 0원인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내 기억으론 그렇다) 0원이 되었다. 자꾸만 마일리지 유효 기간이 이번 주 토요일까지라고 떠서. 그러고도 부족해 내 돈 270원을 더 추가했다.

 

자, 그럼 내 통장이 0원이 되게 만든 책을 소개하겠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독서계를 강타할 때 나도 무슨 책인가 하여 1권을 읽다 넘 재미없어서 그 후로 로마의 ㄹ자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읽어 본 사람들의 전하는 말에 따르면 다르다고 한다. 나도 그 말을 믿어 보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가시나무 새>의 콜린 맥콜로우가 아니던가?

 

모쪼록 나도 이 책이 주는 매력이 푹 빠져보고 싶다.

 

 

 

2. 사람이 나이가 먹으면 총기가 흐려지고 착각도 잘하는 것 같다.

 

요즘 니체가 독서계에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모 인터넷 서점을 가 보니 언젠가 니체를 주제로 EBS <인문학 특강>에서 강의를 한 내용이 책으로 나왔나 보다. 까이 꺼, 요즘 눈도 점점 나빠지고 있는데 책 욕심은 내 뭐하나 싶어 IP TV에서 관련 컨텐츠를 찾아 보기로 했다.

 

그런데 점점 이상해지는 거다. 내가 알기론 니체는 50살 정도 밖엔 못 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뭐가 1724년에서 1804년까지 80세를 살았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그 의혹과 함께 그 강의를 들은 지 몇 분 되지 않아 잠이 마구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니체는 그렇게 말했나 보다. <자라!투리투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그래서 난 그때 그렇게 잠을 잤었나 보다.

 

아침에 멀쩡한 정신에 생각해 보니 이런, 완전 잘못 집었다. 어제 내가 보려고 했던 강의는 니체가 아니라 칸트였다는 것. 어쩌면 니체와 칸트를 이렇게나 완벽하게 헷갈릴 수 있단 말인가!

 

나만 이런가? 칸트와 니체. 다른 사람도 헷갈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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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29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페이스북에서도 맥콜로우의 신작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역시 우리나라의 로마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요. ^^

stella.K 2015-07-29 19:04   좋아요 0 | URL
헉, 그런가?
정말 나도 이 책 만큼은 뭔가 기대가 돼.
그런데 너도 니체와 칸트 헷갈리지 않니?ㅋ

cyrus 2015-07-29 20:38   좋아요 0 | URL
저는 철학자 이름을 크게 헷갈린 적이 없어요. 고등학생 때 도덕 선생님한테 들은 우스갯소리가 생각이 나요. 어떤 유명인이 강연을 했는데 스피노자의 명언을 인용했어요. 그런데 그 유명인이 스피노자를 ‘스노피자’라고 말하는 실수를 했어요. ㅎㅎㅎ

2015-07-30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30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