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 했던 2015년이 지나고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어제 떳던 해가 오늘도 변함없이 떠올랐을 뿐인데 오늘 뜬 해는 어제 뜬 해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무래도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 것일까?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는 걸까? 우린 좋든 싫든 새해를 맞이해야 하고, 나이 한 살 먹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 들여야 할 뿐이다. 마치 쓰레기 봉투값이나 버스 요금 오른다고 호들갑 떨다가도 결국 얼마 안 있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담담하다는 건 담담하지 않기 때문에 애써 담담한 척 하다 이내 담담해져 버리는 그런 역설적 원리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작년엔 정말 힘든 한 해였다. 하는 것마다 안 됐고, 별 성과없이 주져 앉았다. 더구나 검기 몸살 외엔 건강하나 만큼은 자신했던 엄마가 생각지도 않은 암선고를 받고 어떻게 해야좋을지 우왕좌왕 했던 한 해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비교적 순조롭게 회복 중에 계시긴 하지만 그토록이나 아파했던 엄마를 지켜 본다는 건 이 엄마가 내 엄마 맞나 싶게 낮설게도 느껴졌던 한 해이기도 하다.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렇게 아픈 엄마를 두고 암판정을 받기 전까지 아무 것도 아닐 거야. 괜찮겠지를 되내이며 난 공연도 보러 다니고, 사람도 만나 히히덕거리기도 했으며, 변함없이 책을 읽고 살았다는 게. 무엇보다 당신이 괜찮다고만 하시고, 병원에 안 가시려고 이리 빼고, 저리 빼시니 그 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을까? 원래부터 병원과 친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스스로가 가겠다고 하기 전엔 선뜻 나서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아픈 엄마를 방치한  잘못도 크다. 

 

서론이 길었다. 그렇게 멋모르고 살았기에 (비록 하루가 갔지만)올해도 '내 맘대로 좋은 올해의 책'을 뽑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무작위로 올려 본다.

 

사실 난 듣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라디오를 듣는다면 <세상의 모든 음악>이 유일하다. 물론 다른 프로도 드물게는 듣긴 하지만 결국 끝까지 듣게 되는 건 이 음악 프로다. 그나마 더러는 안 들을 때도 있고. 그러니 팻캐스트를 들을 리 만무하다.

 

그래도 이동진의 <빨간 책방>은 워낙에 유명해서 이렇게 듣기를 싫어하는 나도 간혹 한 두 번은 호기심에 듣기는 했다. 음악 프로는 음악을 들으면서 무엇을 괴외로 할 수도 있지만(난 보통 그 시간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이 팟캐스트는 온전히 이것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라 듣고 있으면 재밌긴 한데 잘 안 듣게 된다. 

 

그러던 중 이 책이 나왔다고 해서 반가웠다. 이동진도 이동진이지만 김중혁을 좀 좋아하는 편이라 이 둘의 결코 밀리지 않는 말빨과 그 조화로움은 거의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싶다. 이동진은 이동진대로, 김중혁은 김중혁대로 자기 맡은 전문 분야(영화와 문학)에서 어쩌면 그리도 지식이 풍부한지. 

 

하지만 팟캐스트에서 다룬 책들의 편수에 비하면 책은 몇편 되지 않아 아무래도 2, 3권 계속 나와줘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저자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읽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이 책으로 재대로 저격당했다고나 할까?

 

글쓰기에 관한 책은 많다. 하지만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은 무슨 글쓰기 강사가 매뉴얼처럼 써낸 책도 많은데 나는 그런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굉장한 깊이를 가지고 있고, 글쓰기 책도 이토록 철학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책이라고나 할까? 깊이가 있으면서도 문체는 대체로 평이해 이렇게 쓰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존경스러운 마음마져 들기도 한다. 또한 글을 잘 쓰기를 원하는데 그럴 수 없을 것만 같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격려와 위로를 받는 것 같을 것이다.

         

나는 인터뷰집을 좋아하지만 특히 그 대상이 작가면 내 취향에 딱이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읽은다는 건 행운이었다. 오래 전부터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고, 특별히 소설을 쓰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정작 소설을 못 쓰고 소설가들에 대해서 써 놓은 책을 좋아하니, 난 아무래도 소설은 못 쓰지 싶다.

 

특히 난 그들이 어떻게 글을 쓰고 문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한데, 고백컨대 내가 이러는 건 그들에 대한 순수한 관심 보단 내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리만족 같은 건 아닌가 싶다.  

 

혹시라도 이쪽 방면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몇년 전에 읽은 원재훈의 <나는 오직 글쓰고 책 읽는 동안 행복했다>를 함께 추천한다. 이 책 정말 재밌게 읽었다. 어떤 작가는 서로 겹치기도 하는데 시차가 있으니 생각이 어떻게 변했을지 또는 변함이 없다면 어느 부분에서 변함없는 생각을 가졌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내용이 의미하는 바는 나에게 그다지 크게 다가 온 것은 아니다. 그냥 한편의 시 같은 희곡을 읽는 기분이었달까? 작가 김경주가 추구하는 것도 시극이었던 만큼 그냥 작가가 이제까지 써 온 작품 중 하나를 접해 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시면 시고, 희곡이면 희곡이지 시극은 또 뭐란 말인가? 말에 의하면 T.S 엘리엇으로부터 이 운동은 펼쳐나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성인들 지성을 깨우치는 건 좋은데 그렇게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일반인들 우왕좌왕 헷갈리게 만드는 게 그리 좋은지 묻고도 싶어졌다.

 

이렇게 이 책을 읽으며 투덜거리고 있을 무렵 한 가지 사실이 나의 뇌리를 꽝하고 부딪히고 말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작가의 활동이었다. 그는 연극 연출가이기도 하는가 본데 무대를 극장에만 한정 짓지 않고 카페든, 클럽이든 하다못해 창고에서도 공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사실 나는 3년 전인 2013년에 내가 쓴 뮤지컬 작품을 처음으로 대학로에 올리고 같은 해 말 재공연 말이 나왔다 제작자와 대판 싸우고 결별했다. 솔직히 초연도 겉으로만 성공적이었지 그속을 들여다보면 원칙은 없고 무질서 그 자체였다. 그래도 가까스로 참고 재공연이 성사가 되길 바랐는데 제작자의 그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빡이 돌았던 것이다. 결과야 뻔한 거고. 역시 돈줄을 쥔쪽이 무섭긴 무섭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정말 이대로 무너져야 하는 건가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가 이 방법도 있었구나 했던 것. 그래서 대본을 다시 고쳐 쓰고 무조건 돈키호테처럼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작년은 하는 것마다 안 됐고, 그후로 엄마의 병이 점점 더 심해져 급기야 수술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돌이켜 보면 어차피 안 되는 거였구나 싶다.

 

그러니까 내 말은 책을 읽다보면 어떤 책은 어떤 의미로든 행동하도록 만드는 책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어떤 목표에 도달하지는 못했고 잠시긴 했지만 나를 이토록 돈키호테가 되도록 만드는 책이 있다는 것에서 이 책은 나름 나에겐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고 저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난 이석원의 <언제들어도 좋은 말>이 더 실제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글을(특별히 에세이를)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 책이었고, 나도 왠지 이런 식으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뭐 누구는 사소설이 아니냐고도 하고, 누구는 불륜에 관한 이야기를 쓴 거 아니냐고 하는데, 나는 그런 형식에 관한 평가는 차치하고 무엇보다 작가의 솔직함에 방점을 두고 싶다. 작가됨의 덕목 중 하나가 솔직함 또는 정직하게 쓸 것이기도 한데 그런 점에서 작가 이석원은 충분한 자질이 있다고 본다. 

 

나는 또 이 책을 읽고 얼마 있지 않아 <보통의 존재>를 샀고 바로 어제 완독을 했다.  글쎄.. 아무리 좋아하게 된 작가일지라도 이렇게 짧은 기간내에 또 다른 책을 사서 읽기란 나에겐 좀체로 없는 일인데 그냥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받고 보니 노란색 양장이 꼭 무슨 일기장 같기도 하고 예뻤다. 나 개인적으론 형식적인 면에선 앞의 책이 더 매력적이긴 하지만,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혼 경력, 정신병 이력, 가족과의 관계 등을 적나라다 싶을 정도로 솔직히 쓰고 있는데, 읽고 있으면 자신을 떠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왜 그 사람 앞에서는 용기가 없고 해명할 자신이 없어 뒤돌아서서 혼자 자조하며 중얼대는 그런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의 말이 일견 일리가 있고, 수긍이 가는 그 생각의 독특함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읽기에 따라선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의 책을 먼저 읽었다면 말이다.

 

특별히 그는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독서는 거의 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는데 책 읽기의 괴로움을 아는 사람은 담박에 질시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그러고도 인기 작가가 될 수 있는지 하면서 말이다. 

 

책을 많이 읽을 수 없다면, 생각을 많이하고 자기 글을 성실하게 고쳐나가는 것도 작가가 되는 한 방법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 블로그에 올라 온 그의 글을 읽으니 그는 <보통의 존재>가 나오고도 책을 끊임없이 고쳐 쇄를 거듭할 때마다 글이 조금씩 다르다고 하다. 지금까지 42쇄가 나왔으니까 42번을 고쳐 썼을지도 모른다. 굉장한 인내고 성실함 아닌가? 그렇더라도 새롭게 사지는 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어딘가 숨어서 <언제 들어도...>를 고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석원의 발견을 감히 '발견 이 작가!' 라고 하리만큼 작품 보다 오히려 작가의 발견이놀랍고 반갑다.

 

그렇게 말하자면 '발견 이 작가!'에 또 하나의 이름을 올리자면 김경욱이다. 

 

솔직히 이 책은 몇년 전 이곳 아는 알라디너로부터 생일을 빙자하여 받은 책이다. 그런 것을 황송하게도 받은 즉시 읽지 못하고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다 최근에 읽게 되었는데, 정말 언제까지 읽기를 미루었다면 작가에게나 이 책을 선물한 그 알라디너에게나 실수할 뻔했다. 물론 이미 했지만...ㅠ 

 

이 책을 읽었을 때 내가 정말 요즘 작가들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걸 새삼 알았고, 김경욱이란 작가가 있다는 게 우리나라 문학계가 아주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저자가 위트있게 쓴 것도 한몫하지만 읽다보면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과가사를 알 수도 있어 유익하다.

 

특히 작가가 오타쿠적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작가와 내가 같은 세대를 살고 있어 어느 부분 그때는 정말 그랬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도 만들지만, 확실히 작가는 나 보다 두 세 걸음은 더 앞서 대중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오래도록 문화계에 종사한 사람의 자서전으로도 읽히는데, 마침 내가 이곳 알라딘에 내가 읽어 온 책들을 정리하는 글을 올리곤 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거의 손을 놓고 있긴 하지만. 글을 쓴다는 건 성실함이 8할 같다.

 

인생을 100으로 보고 반환점을 돌 때쯤 사람은 자서전을 쓰고 싶어지는가 보다. 뭔가의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모르긴 해도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엔 문학 잡지도 끼워 본다.

일단 환상적이리만치 착한 가격에 놀랐고 또 놀라우리만치 내용이 좋아서 이래도 되는 건가 의아할 정도였다. 천명관의 인터뷰도 좋았고.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창간호라는 점에서도 이 책을 뽑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아, 근데 세번째 호는 사 놓고 여태 읽지 못했다. 난 왠지 공지영이 그다지 끌리지 않는데 아무래도 그래선지 아직도 읽지 못했다. 

정기구독을 할까 하다가 그만둔다. 이제부턴 읽고 싶을 때만 사서 읽어 볼 참이다. 

 

대충 이렇게 정리해 본다. 그런데 재작년에 이런 글을 쓰면서 나는 슬쩍 베스트와 함께 워스트를 한 권 올린 적이 있다. 이번에도 좀 짖궃게 한 권 정도 올려보고 싶은데 그건 바로,

이 책이다. 정말 위험하고, 거지 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옹호하고 점잖게 말해 범신론적인 시각이 다분해 보이는데 읽다가 거의 내팽개쳐 버리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내 말을 확인해 보기 위해 이 책을 일부러 사서 읽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뭐 나름 이 책에서 은혜 받은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건 내가 보지 못한 뭔가를 봤나 보다. 하지만 이 책은 나로선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올핸 또 어떤 책을 읽게 될까? 

언제나 그랬지만 조금씩 건드려놓기만 하고 아직 완독을 하지 못한 책, 읽으려고 고히 모셔둔 책들을 좀 더 많이 읽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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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1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2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클 2016-01-02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도 즐거운 책읽기와 함께 행복하시길 ^^

stella.K 2016-01-02 11:24   좋아요 0 | URL
어머나! 정초에 야클님께서 제 서재를 친히 방문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새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데요?ㅋ
야클님도 올해 좋은 일 많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책읽는나무 2016-01-02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6년은 분명 작년보다 더 나은 해가 될 것입니다^^

stella.K 2016-01-02 11:33   좋아요 0 | URL
아, 책나무님 고맙습니다.
그래야지요. 책나무님도 올해 좋은 일 많이 있으시길
저도 기원드립니다.^^

페크pek0501 2016-01-02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행복한 새해가 되시길...

stella.K 2016-01-03 14:10   좋아요 0 | URL
네. 언니도 좋은 책들과 함께 복된 한 해 되시길
저도 기도들여요. 고맙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는데, 어떤 셰프가 음식에 폭탄을 숨겨 북극곰에게 먹여 죽었단다.

그런데 그 북극곰이 피가 낭자해 죽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찌나 충격적이던지.

북극곰은 멸종 보호종인 줄 알고 있다.

그런 동물을 누가 뭐 때문에 그런 끔찍한 방법으로 죽였을까?

 

현지 경찰은 범인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데

모르긴해도 뉴스는 여기까지가 전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늘 그렇듯 뉴스는 애프터를 잘 하지 않는다.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가 없다.

 

엄마와 나는 이를 갈며, 누군지 그 놈을 잡아다 사형을 시키되 똑같이 폭탄이 들은

음식 먹여 죽여야 한다고 했다. 

인간이 죄가 많다.

지금도 그 북극곰이 피를 머금고 눈밭을 고통스럽게 구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누군지 정말 수박씨 발라 먹을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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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환희 2015-12-26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정말 화나는 일이네요 ㅠㅠ

stella.K 2015-12-26 18:0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ㅠㅠ

cyrus 2015-12-26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킬당한 야생 고라니나 개의 시신을 보신용으로 가져가는 사람도 있어요. 또라이들이 진짜 많아요.

stella.K 2015-12-26 18:10   좋아요 0 | URL
아프리카는 부자들이 땅을 사서 사자를 방목하고
한마리 한마리씩 죽인단다.
그리고 자기가 이렇게 사자를 죽인다고 인증샷도 찍어 올리고.
그런 사자는 야생성이 거의 없어서 순진하게
사람을 따르다가 죽임을 당한다는 거야.
인간이 그런 존재야. 진짜 개또라이들 많지.ㅉ
 

어제 서재의 달인 명단에 내가 올라가 있어 좀 놀랐다.

올해 별로 열심히 활동한 것도 아닌데 웬열...! (이거 응팔에서 감탄사 비슷하게 쓰던데 그 시절 정말 이렇게 쓴 건지 아니면 응팔 차체에서 급조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근데 재밌긴 하다.ㅋ) 

뭐 생각지도 않은 일이라 기분은 과히 나쁘지는 않았다. 모르긴 해도 올해 서재의 달인 대상자를 대폭 늘인 건 아닌가 짐작해 본다. 그러다 보니 나도 슬쩍 올라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니 이는 지난 201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다. 막상 되고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난 그때 이후 알라딘을 잠시 떠나있기도 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슬쩍 다시 돌아왔고 다시 돌오긴 했지만 예전만큼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 서재의 달인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올해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서재의 달인이라니. 

 

주는 거니 받긴 하지만 서재의 달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나를 만족시키는 것은 없다. 서재의 달인이 되면 플래티넘 등급 주는 거야 서재의 달인이 처음 생길 때부터 늘 있어 왔던거고, 내가 책을 한꺼번에 많이 사는 것도 아니라 별로 해당사항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머그컵과 달력, 다이어리를 준다는데 미안한 얘기지만 좀 선물 내용이 식상하다.

 

그렇지 않아도 서점과 출판사들이 제휴해서 독자에게 준다는 게 머그컵 아니면 텀블러, 수첩이다. 그뿐이면 차라리 다행이다. 스틱 커피 한 상자만 사도 그 안에 그런 거 다 끼워 판다. 원래 집에 있었던 것과 함께 컵은 이미 포화상태다. 그래서 어느 날 마음이 착잡해지면 청소한다고 이런 것들 싹 다 정리할 날이 돌아 올 것이다. 뭐 컵이 필요해지면 또 서재의 달인되면 되는 거니까. 

 

다이어리는 메모를 잘 하는 성미가 아니라 다이어리도 잘 안 쓰게 된다. 그동안 책 주문하면 수첩도 따라 오는 경유가 있어 모아 논 것도 꽤 된다.

 

달력은? 내가 처음 알라딘을 이용했던 그해 연말에 이거 받고 좀 놀랐다. 별로 성실 고객도 아닌데 왠열. 근데 그 달력이 참 예뻤다. 이왕이면 벽걸이 달력이면 좋았을 텐데. 요즘엔 벽걸이 달력 많이 사용 안한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눈이 점점 나빠져 가는 사람들에겐.

 

내가 마지막 서재의 달인이 되었을 때만해도 알라딘은 다이어리가 아니고 만 원씩 상품권을 줬었다. 난 그게 제일 좋았다. 얼마나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선물인가. 근데 어느 해부턴가 다이어리로 바뀌었다. 이거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품권으로 달라! 아니면 상품권으로 다 못 주겠으면 다이어리와 취사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던가.

 

하지만 이런 거 다 무시해도 좋다. 내가 새해 알라딘에 바라는 거 있다. 제발 소외감 좀 느끼지 않게 해 줬으면 좋겠다. 그 잘 난 리뷰와 페이퍼에 주는 당선작 제도 바꿨으면 좋겠다. 주간 단위로 주던 걸 월 단위로 주더니, 편 수를 늘려도 부족한 판에 줄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몰아주기는 여전하다. 물론 소문나게 글 잘 쓰는 알라디너들 있는 거 안다. 하지만 리뷰에서 페이퍼에서 몰아주면 열심히 썼는데도 당선 안 된 안 되는 사람은 그들만의 리그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왜 책 많이 읽고 성실하게 글을 쓰는 사람은 안 되는 건가? 그런 사람이 되야지 어떻게 글 잘 쓰는 사람에게만 당선작을 줘야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난 지금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예전에 알라딘은 이런 마인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좋은 글에 대한 욕심이 생겼는지 글 잘 쓰는 사람에게만 당선의 월계관을 씌어줬다. 그런데 이 글 잘 쓰는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이 또한 난 도무지 모르겠다.       

 

몇년 전, (아마도 내가 마지막 서재의 달인이 됐던 그 직후였던 것 같은데) 난 이 문제를 당시 몇몇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알라디더와 함께 제기했지만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평하는 건 좀 주관적인 일이 아닐까? 편 수는 제한되어 있고, 열심히 쓰긴 했는데 알라딘을 만족시키지 못해 간발의 차이로 당선이 안 된 사람은 왜 안 된 건데? 그리고 그 간발의 차이로 된 사람은 어떻게 써서 된 건데?

 

요즘 취준생들 회사 면접 보고 탈락됐을 때 자신이 왜 떨어졌는지 알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서도 마땅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고 한다. 비슷한 일이 알라딘에서도 있지 않을까? 어떤 메뉴얼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때 이후 독자선정위원회를 매 분기마다 뽑던데, 처음 난 이것이 생기고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 것 같아 나름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이즈음 생각해 보니 이것도 참 내가 순진했다 싶다. 이 독자 선정 위원회라는 것도 알고 보면 알라딘이 당선작 제도를 공고히 하고, 선정의 공정성을 위한다는 명분만 있을 뿐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는 건가?

 

그 독자 선정위원회가 되면 한달에 3만원씩을 주는데 소위 말하는 알바비다. 하루에 올라오는 리뷰며 페이퍼가 얼마나 많은데 3만원이란 말인가? 물론 다 심사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건 누가 봐도 아니다 싶은 것도 많으니까. 요즘 책값도 비싼데 그렇게 해서 책값 벌면 그도 나쁘진 않겠지. 하지만 알라딘이 이왕 알라디너들을 위한다면 진심으로 위해줬으면 좋겠다. 어떻게 사람을 그런 식으로 매수를 하는가? 그런 것 없이도 알라디너를 위해야 진짜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지, 서로 윈윈한다는 명분하에 그래 가지고 위상이 세워진다고 보는가?

 

그리고 일개의 서점이 출판사도 아니면서 글 욕심은 내서 뭐할 건가? 물론 이렇게 말하면 서점을 비하시키는 것으로 오해 받을까 염려스럽긴 한다. 나는 알라딘을 절대로 깎아 내리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알라디너들이 글을 잘 쓰고 못 쓰고가 아니라 얼마나 성실하게 글을 쓰느냐에 방점을 둬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적립금 몰아주기를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솔직히 그렇게 평가를 한다면 글을 잘 쓰는 알라디너에게만 당선의 영예를 주면서 꼴랑 2만원, 4만원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더 많이 줘야 한다. 그 알라디너가 어디 그 한 편만 글을 잘 썼더냐?  

 

물론 지금의 모양새가 된 것엔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그렇다면 독자 선정 위원회는 누가 누가 글을 잘 쓰느냐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누가 성실하게 쓰고 누가 불성실하게 쓰는가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선정에 반영하도록 해야한다.

      

즉 절대평가가 되야하는 거지 상대평가가 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매달 10일이면 선정작을 보곤 하는데 보고나면, 이것도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의 또 다른 폐단이지 싶어 씁쓸해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알라딘이 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컨텐츠면에선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나 싶다. 가장 대표적인 건 북풀이고. 그런 좋은 것을 두고도 칭찬을 듣기 보다 욕을 먹어서야 쓰겠는가?

 

모르긴 해도 지금 반니앤루니스가 엄청난 기세로 인터넷 서점의 맹주로 떠오를 모양인가 보다. 누가 봐도 메리트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거긴 거기나름대로의 한계는 있어 보인다. 고객은 언제나 똑똑하다. 그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을지 보면 알게 되겠지. 

 

그리고 새해 알라디너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좋은 글, 좋은 댓글만 오고 갔으면 좋겠다. 얼마 전, 개그맨 이윤석이 TV에 나와서 말실수를 했는가 본데 물론 신중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걸 가지고 네티즌끼리 하차를 해야하네 말아야 하네, 또 그것도 부족해 이윤석이 종복세력이라는 둥 거의 끝간데 없이 몰아간 모양이다. 물론 그것에 대해 류근 시인이 한 방 먹이는 글을 페이스북에 쓴 걸 보고 거기선 웬만해서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는데 아마 내 기억으론 첨으로 눌렀던 것 같다. 그런 거 보면 사람들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윤석이 그렇게 공격당할 때 어떤 마음일까 헤아려 보았다. 나도 공격을 당해봐서 아는데 그거 생각 보다 트라우마가 깊고 오래 간다. 오죽하면 어떤 사람은 그것 때문에 자살까지 할까. 전에는 누군가 알라딘에서 소요를 일으키면 무조건 시끄러워 스스로 알라딘 금족령을 내리곤 했는데 이 공격 받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이젠 너무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공격하는 사람들은 어떤 반박 논리를 펴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비난부터 하고, 심하면 모독에 비아냥으로 일관하고 협박까지 하는 것도 보았다. 

 

같은 알라디너끼리 거기까지는 나가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언제부터 그를 잘 알았다고. 물론 어느 특정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과거에 경험해 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서재질을 하루 이틀 해 보는 것도 아니고. 내년에도 서재에 좋은 글 많이 올리게 되는 한 해가 되길 나에게나 서재인들에게나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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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4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12-24 18:45   좋아요 2 | URL
님, 좋아요를 누르세요. 좋아요를!ㅋㅋㅋㅋㅋㅋ

yureka01 2015-12-2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댓글 쓰느라 깜빡 ㅋ

비로그인 2015-12-24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은 다른 인터넷 서점 사이트들과 달리 대중적 인지도가 높거나 베스트 셀러 위주의 책들을 리뷰한 사람들에게 상을 쉽게 주지는 않는 듯 해 마음에 듭니다만 말씀하신 부분을 들으니 공감이 가기도 합니다. 성실한 사람에게 상을 주어야 한다는 말씀, 들을 만한 제안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 쓴 사람에게 격려의 의미가 있는 상을 (일부러 주지 않지는 않겠지만) 주지 않는다면 실망감에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올해 9번의 당선 기록을 냈지만 아쉬움이 큰 것이 사실입니다. 정말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성실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기준으로 당선작을 선정한다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직할 정도로 글을 쓰는(agalma님은 저에게 苦役의 대가라는 말을 하셨죠.) 저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궁금합니다. 이윤석 부분은 저도 글에서 한번 언급했지만 특정 지역(의 지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정당의 성격을 갖는 것은 야당만이 아니니 거론할 필요를 느꼈다면 같은 의미의 지역(의 지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정당인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지적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5-12-25 15:38   좋아요 0 | URL
저도 몇번 되긴 했습니다. 되면 뭐 나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또 누구를 누르고 됐을까? 그런 생각도 해요.
당선작도 좀 많은 사람이 함께 나누고, 재밌게 주면 좋을 텐데
대체로 받는 사람만 받는 것도 같고 그 공정성이라는 게
어디에 있는 건질 모르겠어요.
언젠가 꼭 한 번 하고 싶은 말을 이번에 했네요.ㅋ

2015-12-25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5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26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평균 1년에 9개 정도 당선 뱃지를 받는데 사실 미안한 감이 있죠,
내가 받은 만큼 누군가는 못 받으니 개인적으로 9개밖에 못 받았다고 아쉬움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당선이 안 된다고 불공평하다는 것도 약간 불평 같기는 합니다.
뭐 여기가 당선금 탈려고 글을 쓰는 사람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쓰다 보니 당선도 되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꼴이라고나 할까요.
아예 도서평가단을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매달 신간 2권이 배달되니..
근데 이것도 일종의 시간 노동입니다. 책 읽고 글 쓰고 하면 꽤 시간을 투자해야 하잖아요...
하튼 내년에는 당선 뱃지 24개 타시기 바랍니다... ^^

참고로 이 글 조심스러게 당선작 점쳐봅니더ㅣ/

stella.K 2015-12-26 18:1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이거 알라딘에서 절대로 당선작으로 뽑아 줄리 없습니다.
그건 제가 보장하죠.
글쎄요...제가 대범하지 못해서일까요?
전 지금의 알라딘 당선작 제도가 불합리 하다고 생각해요.
꼭 우등생 줄 세우기 뭐 그런 느낌 들어서요.
그런 거 아니어도 좀 더 기발한 아이디어로 당선금을 주면 얼마나 좋아요?
뭐 이를테면 그달에 댓글을 많이 쓴 사람한테 준다든지,
가장 웃기고 재밌는 페이퍼에 준다든지 기타 등등.
당선작도 몇명 안 주면서 알라딘이 갑이라는 걸 과시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이 든단 말이죠.
썼지만 독자 선정위원회도 지금의 제도에 보완이라기 보단
자기네들이 수립한 제도를 보다 공고히 할 뜻이라니깐요.

제가 무슨 수로 뱃지를 24개를 다 타겠어요?
놀리지 마십쇼. 삐질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26 18:20   좋아요 0 | URL
놀리긴요. 새해 덕담입니다 ^^

stella.K 2015-12-26 18:30   좋아요 0 | URL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 곰발님 글로 즐거웠습니다.
통계를 보니까 저의 서재에 댓글을 가장 많이 남겨주신
5인 중 한 분이시더군요.
그점도 감사드리구요.
내년에도 더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동지 하루가 지났다.

이제부터는 밤이 조금씩 짧아지고 그만큼 낮이 길어질 것이다.

신난다!

하지만 그것을 체감하려면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한다.

 

언제나 그랬지만 올해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아니라고 한다.

그에 따라 나도 언제나 그랬지만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춥고 길 미끄러우면 걱정이 되다못해 우울해지곤 하니까.

대신 올 크리스마스는 38년만에 있는 럭키문이란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때 둥근 보름달이 뜨는 게 38년만이란 말씀.

그때 달 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나 뭐라나.

 

뭐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난 잘 모르겠지만  행운을 비는 마음은 사람마다 한결같아서

지어내는 설도 그럴듯하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 럭키문을 보시거든 소원 한 번 빌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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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12-23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동지였네요. 글구 보니 달 한 번 보지 못하고 휙휙 지나갔네요.. 허,, 참...

stella.K 2015-12-23 18:12   좋아요 0 | URL
그럼 동지 팥죽도 못 드셨겠습니다.
저도 그렇긴 합니다만, 얼마 전에 먼저 먹고 낼 모레 또 해 먹어요.
저의 엄니가 그러자네요.ㅋ

cyrus 2015-12-23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은 팥죽에 칼국수 넣어서 먹으면 좋아요. 밑반찬은 알맞게 익은 김치만 있으면 충분해요.

stella.K 2015-12-23 21:42   좋아요 0 | URL
그렇지. 동치미와 함께 먹는 것도 좋을 거야.
넌 벌써 그렇게 먹었구나?ㅋㅋ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 호모아키비스트, 기록하는 사람들
안정희 지음 / 이야기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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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교회 청년부 홈커밍데이에 다녀왔다. 청년부를 떠나 온지 벌써 20년도 넘었다. 그런데 그 시절 사람들이 모여 홈커밍데이를 한단다. 학교로 치자면 동문회 같은 거겠지. 벌써 7회째인데 나는 그 모임이 처음이었다. 연락을 받기는 약 한 달 전이었다. 그 연락을 받는 순간(나에게 연락해 준 사람 또한 그 세월쯤 될 것이다. 그동안 뭐하느라 한 번도 못 만난 것인지...) 나가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고,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반이었다. 

나가고 싶은 마음은, 당시 청년부는 생년이 같은 사람끼리 모임을 갖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그것은 사는 지역이 같은 사람끼리 모이는 것 보다 훨씬 응집력이 좋았다. 아무래도 같은 또래라는 것이 친화력을 높이는 중요 요소였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시절 또래 모임을 좋아했다. 그런 또래들을 오랜만에 보는 것이니 왜 안 나가고 싶겠는가? 하지만 또 홈커밍데이란 이유로 여태까지 안 만났던 옛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할 것도 같았다. 물론 결국 옛 추억이 어색함과 불편함을 이겨 그 모임엘 다녀오긴 했지만.

막상 모임 장소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옛 추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시절 청년부에 오래 몸 담을 생각이 없어 공식 모임은 1년 정도였고, 또래 모임은 그 보다는 좀 더 오래 했다. 결론은 청년부 모임을 그다지 오래하지 못했다는 얘긴데 그래서 무슨 추억이 있으랴 싶기도 하겠지만 의외로 잊고 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난 언제부턴가 어떤 한 시절 또는 내 생애 있었던 이야기를 글로써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점점 더 강하게 한다. 그래서 난 그날(청년부 홈커밍데이)를 계기로 나의 청년부 시절을 글로 써 보고 싶었다. 사람은 왜 자서전 또는 자전적 이야기를 써 보고 싶어지는 것일까?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 되기도 하지만 그 중 또 하나를 들자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인간만이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다는 것. 이런 사람을 두고 이 책의 저자 안정희는 '호모아키비스트'라고 했다. 이는 기록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아카이브(archive)'에서 추출한 말이기도 하다. 아카이브는 원래 '정부의 기록' 또는 '공문서'를 의미하는데 지금은 '기록'이나 '기록물을 보관하는 장소'로 쓰인다고 한다.

그렇게 말을 하자면 공적인 기록인만큼 공인이 써야하므로 사견이나 주관을 배재한 기록이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개인의 기록물을 더 중히 여겨 '민간 아카이브'를 지향한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민간 아카이브의  수 많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아카이브는 왜 생긴 것일까? 저자는 말한다. '개별적인 인간은 소멸하되 기록하는 인류는 미래를 꿈꾼다'고. 그도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인간 역시 유한한 존재이기에 이 점은 동물과 같은 것이지만, 내가 이 지상에 살다 갔다는 불멸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아카이브는 발전해 오지 않았을까 한다. 그래서 문자가 없었던 시절엔 동굴 같은 데 그림으로 남겼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또 낙서에서도 발견이 된다. 지금도 그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와서 그곳 카페나 유명한 장소에 내가 이곳에 왔다 갔다고 뭔가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기록하는 습성은 인간의 본능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아무 것이나 다 기록할 수는 없고, 기록에도 반드시 형식은 존재한다. 저자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스토리텔링의 기본 요소와 다르지 않으며 단지 아카이브는 기억저장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공공성 또는 공유적이어야 한다는 기본 전제 조건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아카이브가 될 수 있을까? 어렵게 생각할 것은 하나도 없다. 인간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기록의 대상이요, 아카이브다. 가장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게 역사일 것이다. 그것도 정치사나 사회사 같은 거시적인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미시사나 일상사 같은 것이 오히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행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여행한 곳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요즘 흔히 하는 방식이다. 먹방의 세대라고 요리도 그 대상이 될 수가 있고, 카페나 레스토랑 기행도 아카이브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독특하게도 단추 모으기나 버스 승차담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는데 그런 흔치 않은 분야에 기록을 남기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기록하라는 것이다. 물론  사람 저마다 알게 모르게 한 가지 이상은 다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초등학교 때부터 늘 책에 관한 관심이 있어왔고, 인터넷 블로그가 생기고부터는 서평을 줄 곧 써 오곤 했는데 이것도 아카이브일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해서 보게 된 건 로렐 대처 울리히가 쓴 <산파일기>(57~p~)란 것이다. 사실 이건 울리히가 직접 쓴 책은 아니다. 마서 밸러드란 17세기에 살았던 산파가 무려 27년 동안 자신이 산파 일을 하면서 쓴 일기를 발견해 번역하고 그로인해 퓰리처상을 받고 하버드 교수까지된 사례를 기술해 놓았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할까? 그 내용도 별 것 아니라고 한다. 그냥 언제 누구의 아기를 받았다는 내용만 단조롭게 써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발견했을 뿐인데 그게 한 사람의 생을 그렇게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 일기엔 굉장한 의미가 숨어 있었다. 즉 그 일기를 통해 17세기 미국 여성들의 사라진 삶을 밝혀낸 것이다. 그 별 것 아닐 것 같은 일기가 미국 건국의 역사의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을 보여 준 것이다. 읽다보면 인간의 일상적인 행위 하나가 훗날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일기를 다시 써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앞에서 청년부 홈커밍데이에 참석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친김에 그 시절에 있었던 일을 글로 써 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기록에는 공공성 내지는 공유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막상 공공성을 얘기하자니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내가 이것을 글로 쓴다면 위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22세기나 23세기쯤 누군가에 의해 별견되어 우리나라 역사의 어느 시기의 근간이 되고, 한 사람을 영예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해서 아카이브로서의 의미를 지닐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예를 보면 소소한 것에서부터 대의를 불태우는 내용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이러 이러한 것들이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단점이라면 단점은, 저자가 읽은 책들을 위주로 썼다는 점에서 마치 또 한 권의 서평을 보는 듯도 하다. 특히 저자는 거의 모든 분야를 아카이브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데 하다못해 소설도 그렇게 보고 있었다. 뭐 소설도 기록이라면 기록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역사 소설이라고 해도 소설은 픽션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역사적 사실을 추론해 볼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에서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물론 그 소설을 쓴 작가에겐 하나의 기록물로 남을 수는 있겠지만, 이 부분은 저자가 아무래도 의욕이 과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늘 날은 공유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유가 흔하다 못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거기엔 역시 디지털 기술과 SNS의 발달이 압도적인 기여를 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공유는 자유로워도 아카이브는 아날로그적으로 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게 진정한 아카이브의 정신이니까. 또 그만큼 이 기록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뚝딱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지난한 작업이어서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다. 하다가 중단하면 아니한만 못하다는 옛말이 있긴 하지만, 그 말에 일침을 가하는 말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이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거기다 시작이 반이란 말도 덧붙이고 싶다.

뭔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마음에만 간직하지 말고 오늘부터 시작하라. 또 누가 아는가? 자신의 아직 있지도 않은 손자나 증손자가 보게될지. 나아가서 1세기나 2세기 후엔 나라를 구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인간만이 기록을 남기고, 기록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을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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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8 17: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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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8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9 00: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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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9 14: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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