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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인사이드 : 한정판 (2disc 디지팩) - PET 아웃케이스 + PET 카드(6종) + 폴라로이드 카드(7종 중 1종 랜덤) + 홍이수 명함
백감독 감독, 한효주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처음엔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나 했다. 아무리 영화라고는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뀐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래도 개봉 당시엔 나름 꽤 입소문을 탄 것도 같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 한효주가 나오니 끝까지 볼 생각이긴 했다.
그런데 이 영화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데가 있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뀌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의 사랑은 얼마나 진지해질 것인가?
매일 얼굴이 바뀌어도 나는 하나인 것이다. 그런 나를 상대가 과연 나라는 걸 알아봐 줄 것인가? 그리고 과연 사랑에 성공할 것인가가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과제일 것이다.
자신의 외모 때문에 다가갈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한 영화는 있기는 하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노틀담의 꼽추>나 <미녀와 야수>가 있다. 이 영화도 그 계보를 잇는 영화일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뀌는 사람은 아무리 외양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괴물이다. 괴물이 살아가기도 힘든데 사랑 받기는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그것을 받아 들이기엔 상대는 또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그것을 김우진의 나래이션은 담담히 전하고 있다. 그래도 그 모든 혼란을 뛰어 넘었을 때 우진은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자신도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그 희망이 너무도 희망적이어서 상대가 무너지고 있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한쪽은 희망인데 다른 한쪽은 깍이는 것이라면, 아무리 그것을 사랑은 희생하는 것이라고 해도 사랑이 아닌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할 때 나로인해 상대가 행복해지길 바라지 불행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 그래서 사랑은 하지만 떠난다는 논리가 생기는 것이다.
이수도 그럴 것 같다. 아무리 사랑은 그 사람의 외양이 아니라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해도 자고 일어나면 외모가 바뀌어 있는 사람을 감내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나마 잘 생긴 외모라면 괜찮을 텐데 선뜻 좋아할 수 없는 외모이거나 같은 여자로 바뀌어 있다면 얼마나 놀랄 것인가?
그런데 그렇게 상대가 이해되고 인정이 되면 쉽게 떠나지도 못한다. 그것에 관계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이해가 되고 인정이 되는 관계는 제 3자가 볼 때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해도 다 최선일 거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판타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해피엔딩이다. 그래서 영화는 말미에 가면 김우진에서 홍이수의 싯점으로 바뀌어 있다.
이수의 마지막 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우진은 매일 바뀌지만 자신은 어제와 똑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오늘의 내가 어제와 같은 나일까를 묻는 대사. 그리고 홀로된 아버지에게 만일 엄마가 살아 있다면 뭘하고 싶냐는 말에, 아버지는 같이 늙어 가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이유는 하나. 자신은 늙어 가는데 아내는 그대로인 게 싫어서란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그렇게 에둘러 말하는 것일수도 있고,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문득 엄마에게 그런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엄마도 오래 전 세상 떠난 당신의 남편을 다시 만나면 같이 늙어가는 것일까? 그건 아닐수도 있다. 여자들은 대체로 늙어서까지 영감 수발드는 걸 귀찮아 한다. 그러므로 단서가 붙을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기 앞가람만 잘해준다면. 칠칠맞게 옷에 김치국물 안 묻히고, 물 담은 컵 쏟지만 않는다면. 이라는 단서.
그런데 나도 살아봐서 아는데 인생은 뭐든 한 번이면 족한 것 같다. 그래서 아쉬운 거고 나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거지. 두 번 반복이면 그건 족쇄다. 엄마가 또래 노인 보다 다소 젊어 보인다는 게 그나마 축복인 거지 다 늙은 남편 보는 게 뭐 그리 좋으랴. 엄마 기억 속에 아직은 늙지 않은 남편으로 남아 있는 것이 남아 있는 엄마에게나 먼저간 아버지에게나 다 좋은 일이 아닐까.
그리고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을까는 확실히 사람을 성찰하게 만든다. 환경에 따라, 처해진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하루에도 120번도 넓게 바뀌는 나. 그런 나는 누구란 말인가? 그런 나를 한결 같은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 주는 상대가 있다면 괴물 아니야 괴물 할아버지어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제각각이어도 사랑하는 영혼은 하나라는 은유인 셈이다.
사실 이 영화는 다소의 논란이 있어 보이긴 한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설정 자체도 황당하기도 하거니와 아무리 매일 사람이 바뀐다는 설정이긴 하지만 너무 사람이 많이 바뀐다. 누구는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을 오래도록 사랑한다는 건 생각하기에 따라선 지루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너무 자주 바뀌면 나라도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고는 못 버틸 것 같긴 하다.
누구는 또 그렇게 많은 김우진이 나오지만 결국 사랑을 고백하고 러브씬은 결국 잘 생긴 김우진일 때만 가능하지 않느냐고. 그렇다면 외모지상주의를 꼬집기 위해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위배되는 것 아니냐고. 그점은 나도 유감이긴 하다. 결국 이 영화는 영화의 법칙에 충실한 영화일 뿐이다. 그것이 문제라면 여자 주인공을 한효주로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이 영화가 그나마 영화의 법칙을 살짝 비껴간 것도 있다. 그 수 많은 김우진 중에 실제 배역에서 주로 악역으로 나왔거나 빛나리 아저씨로 나왔던 배우들을 기용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익숙한 배역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역할을 맡긴 것은 어찌보면 실험적이다 못해 파격적이기까지 한다. 그랬을 때 그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진지했고, 선했다. 사랑을 하면 그런 걸까? 그렇다면 이 실제의 세계에서도 사랑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즉 김우진의 외모는 제각각이어도 그 영혼은 하나라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는 것이다. 외모가 다소 떨어지더라도 못 생긴 외모 때문에 사랑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므로인해 자기 인상을 만들어 가야하는 것이다. 사랑은 꼭 잘 생긴 사람의 전유물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감독의 그런 시도가 나름 좋았다. 배우에게 정해진 틀 그 이상을 뛰어 넘도록 했다. 하지만 단점은 그들의 역할이 크지 않았다는 거다. 괜찮은 대사와 역할은 모두 여전히 잘 생긴 배우들의 몫이었기에 그런 지적을 받는 것이다. 이왕 하는 거 좀 통 큰 실험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나는 항상 그것이 불만스럽긴 했다. 왜 사랑하는 건 예쁘고 잘 생긴 배우들의 몫이어야 하는 거냐고. 그리고 못 생긴 배우는 악역 아니면 코믹으로나 보여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꽤 세련됐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대사도 좋고. 특히 등급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섹스씬이 절제되어 있어 오히려 아름답다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여러모로 감독이 가능성이 많은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영화 이외 공인의 연좌제 논란이었다.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 한효주는 현재 자숙중이라고 한다. 하루속히 연좌제의 오명을 벗고 다시 복귀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