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처음부터 나는 이 책을 잘 알지 못했다. 15년 전에 이미 절판이 되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원했다는 것도 몰랐고, 이제 번역은 하지 않겠다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철칙을 깨고 번역을 했다는 것도 이번에 새롭게 복간이 되고서야 알았다. 이만하면 누구라도 이 책에 관심을 가질만 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요즘 유행하는 재밌고, 즐겁고, 행복과 위로를 주는 그렇고 그런 책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선상에 있다.

 

정말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고, 불편했다. 한 가족의 불행한 역사를 어쩌면 그리도 유려하고도 냉철하고,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을까? 그러기에 독자로서 느껴야 하는 그 같은 감정은 더욱 선명하고 또렷해 더욱 아프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전혀 새롭거나 이해 못할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몰몬교에 대해선 모르는 사람은 새로울 수도 있겠다. 

 

나는 이렇게 불행하게 몰락해버린 가정이라면 특별한 이유나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흔히 있을 수 있는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행복하고, 따뜻한 이상적인 가정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런 가정은 TV 드라마에나 나올 법하고, 설혹 있다고 해도 많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가정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저자 마이클 길모어가 살고 자랐던 가정은 우리가 이제까지 흔히 보아 온 불행한 가정의 전형처럼 보인다. 그의 아버지는 과격하고 폭력과 폭언을 일삼고, 어머니 역시 집이 싫어 도피하듯 결혼을 했지만 자신이 더 안 좋은 선택을 했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모든 것을 돌이킬 수가 없었고, 그저 나약하고 불행한 여인이었을 뿐이다.

 

폭력은 되물림 된다는 것을 길모어 가의 형제들도 어김없이 보여 준다. 그나마 그 4형제 중 첫째와 막내면서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길모어만 다소 피해간 느낌이고, 가장 큰 피해자는 둘째와 세째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저자는 형 프랭크의 남다른 기억력에 의존하여 이 책을 완성할 수가 있었다.

 

가정마다 가족의 역사와 그에 따른 가풍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물론 그것이 바람직하고 개개인을 건강하게 할만한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게 한 가족의 역사를 복기할 때마다 떠올려야했던 아픔과 상처는 얼마만한 것일지 우리는 이렇게 700페이지 가까운 책을 대하지만 다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이건 길모어 가만의 이야기는 아니며, 현재에도 너무나 많은 가정이 이와 같거나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랬을 때 파생될 수 있는 문제는 인간 파과와 범죄의 증가다. 물론 불행한 가정이라고 해서 꼭 범죄를 양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피해가지 못하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하지만 또 이것을 가정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젠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물론 사람은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고 생활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가정을 떠나 있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런 의식의 전환과 사회안전망의 확충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책이 의미하는 것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책은 그동안 첨예한 문제를 낳았던 사형제도를 수면 위로 다시 한 번 떠오르게 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저자의 형 게리 길모어가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그때까지 잠잠했던 사형제도를 부활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게리의 선택이며 그것만이 자신의 의지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남은 가족에게 아픔과 상처로 고스란히 남았고, 사형 반대자들을 자극하게 만들었다.

 

물론 책은 어떠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 쓰여진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사형을 받아야 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의 역사와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역추적해 볼 때 과연 사형이 존치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묻는 것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첨예한 문제임엔 틀림없다. 아무리 극한 죄를 졌다고 해도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 있겠느냐는 인도주의적 견해가 아니더라도, 사형이 아니라면 피해갈 수 있는 죽음 즉 법정이 오판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수도 있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죄는 그 한 사람이 졌지 가족이 지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그 가족까지 고통을 떠 안아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점에서는 사형은 없어져야 할 제도이긴 하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내 가족이 또는 이웃이 무참히 희생을 당하고, 사회에 피해를 입힌 사람이 사형 당해야 마땅한데 버젓이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을 것이다. 무기수 내지는 살아선 절대로 교도소 밖을 나올 수 없는 무거운 형기를 받은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회에 있을 때 무슨 죄를 져도 사형은 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역이용해서 범죄는 더 악랄해질 수 있고, 교도소 안에서 무슨 짓을 버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인도주의가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저자의 글을 통해 게리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최후를 맞이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는 자신의 의지의 승리를 위해 사형을 받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그렇게까지 자신을 극단으로 몰아갈 권리는 그 자신에게 없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자기 자신을 모두 다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오직 세상과 자신의 가족 특히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원망으로 감히 그런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해도 옳은 선택이 아니며 이해할 수도, 이해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음이 먹먹하고 아프다. 이 쉽지 않은 글 그래서 자칫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는 글을 끝까지 밀고 나갔던 저자에게 늦게나마 심심한 위로와 경의를 표하고 싶다. 바라기는 제발 이 세상에 더 이상 가정 때문에 상처 받고 괴로워 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니 아주 없을 수는 없을 테니 조금이나마 줄어들고, 그 고통속에서 벗어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가정이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능을 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 그것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울타리를 과감히 박차고 나오는 것도 자신이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그것이 가정의 중요성이 개인의 구원 보다 앞설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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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8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8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6-03-1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뉴스에서 나오는 아동학대 사건들도 그 가정을 나와 버렸으면 목숨만은 살 수 있는 거였지요. 그래서 님이 쓴 마지막 문장에 저도 무게를 두게 되네요.

가정 폭력 문제는 덮어 둘 문제가 아니라 자꾸 노출시켜서 그 심각성을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어요.

stella.K 2016-03-18 13:00   좋아요 0 | URL
그래서 문장을 바꿨는데 생각해 보니 언니 말이 맞더라구요.
이놈의 오탈자, 문장 맞춤법은 좀비 같더라구요. 고쳐도 고쳐도
볼 때마다 나타나요.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가정이 개인을 보호해 줄 수 없다면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신 갈수있는 곳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참...
 

 

<악스트>가 벌써 통권 5권을 냈다.

 

이번호는 특별히 파스칼 키냐르 특집이라 사 봤다. 아직 이 작가의 작품을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오래 전부터 관심이 있었고, 특별히 이 잡지는 국내 작가만 인터뷰를 하는 줄 알았더니 외국 작가도 해서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또 읽으려니 한숨이 난다. 이 작은 글씨의 책을 어떻게 읽나...? 뭐 천상 조금조금씩 여러 번에 나눠 읽는 수밖에.  

출판사는 이 문제를 별로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또 하나 불만이 있다면, 보통 여타의 잡지 책은 새 달이 되기 전 5일 내지 10일 정도 먼저 나와 판매에 들어가는데, 악스트는 지금까지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딱 1일날 발매를 하던가 그 보다 늦게 판매를 하는데, 특히 이번 호는 나오는데만도 10일이 걸렸고, 받아 보는데 만도 하루가 더 소요됐다. 진짜 도도하기가 이를데가 없다. 그나마 부록으로 달려 온 카냐르 마우스 패드 때문에 참는다.

 

특별히 난 <악스트> 이번 호를 알라딘에서 배송료 2천원을 물어가며 샀다. 그렇지 않아도 적립금이 이것을 배송할만한가 했더니 그럭저럭 됐다. 모르는 사람은 2천원 하고도 몇 백원의 월간지를 뭐 때문에 배송료 2천원을 물어가면서 달랑 그것만 사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만원 채우면 배송료도 무룐데. 하지만 말하지 않았는가? 적립금으로만 산다고.

 

또한 그것은 내가 알라딘을 대하는 나름의 방식이기도 하다.

난 솔직히 알라딘에 화가 나 있다. 그 화는 나름 꽤 오래됐고, 나도 왜 이렇게 화가나 있는지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물론 알라딘이 내가 화가 나 있다고 해서 관심도 안 가질거지만. 

그렇게 기형적인 <이달의 당선작>을 이렇게도 오래 방치해 두는 알라딘을 이해할 수 없으며, 나는 이런 서점에 내 현금 한푼도 쓰고 싶지가 않다.

 

이달의 리뷰, 이달의 페이퍼 양분하고 그것까지는 좋다. 그것에 몰아주기 행태는 바꿀 의지가 없는가 보다. 그리고 당선자를 뽑는 것을 보면 스펙트럼이 그리 넓지가 못하다. 그러니까 잘 알고 있거나 한번쯤 들어 본 사람이 되더라는 것이다. 의외로 이달의 당선작은 운영이 쉬울 수도 있다. 정직히 말해 누가 누구 보다 객관적으로 글을 더 잘 썼기 때문에 주는 게 아니다(라는 것쯤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렇다면 방법은 나와 있다. 당선의 스펙트럼을 넓혀 될 수 있으면 많은 알라디너들이 한참을 돌아 당선의 기쁨을 누리게 하면 된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글을 잘 쓰더라도 언제 또 당선이 될지 모른다. 그렇게 넉놓고 있다 어느 날 내 통장에 적립금 들어오는 거 보면 와~~! 알라딘 너무 좋아요. 대박 사랑해요!! 난리 브루스를 칠 거다. 솔직히 나도 한때 그런 식으로 낚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이 기형적인 당선작을 보라. 매달 되거나 가까운 주기로 됐던 사람이 어느 날 안되 봐라. 그 섭섭함이란 시시콜콜 페이퍼에 털어 놓지 않아서 그렇지 이루 말할 수 없을 걸. 이건 알라디너들을 마치 파블로프의 개로 만들어 놓지는 않았는가? 그들이 '어머, 이번엔 내가 안 됐어. 아무래도 나태해졌나 봐. 분발해야지.' 그럴 것 같은가?

 

아니면 아예 당선금의 단가 낮춰서라도 파이를 늘려라. 그래서 열심히 쓰는 사람한테 받게 해라.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왜 있는 부문(포토리뷰와 TTB리뷰)도 없애가면서 더 늘리지는 않고, 그 쓸데없는 권위의식은 여전히 유지하려고 하는지? 그래서 되는 사람도 불편하고, 될 법한 사람은 안 되서 섭섭해 하는 이런 형국은 언제까지 유지할 건지? 좀 개선의 의지는 없는지?

 

좋아요를 많이 받아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되고, 좋아요를 적게 받아도 되는 사람은 된다. 처음에 좋아요를 적게 받아도 되는 걸 보면서 알라딘 역시 의식있는 곳이라고 혼자 좋아라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또 언젠가는 좋아요가 높은데도 못 받고 보니 이건 뭐지? 미춰 버리겠는 거다. 누구는 그러겠지. 좋아요가 당낙을 결정하는 것 아니라고. 좋아요는 친근과 예의 표시일 뿐이라고. 아니 그래놓고 독자선정위원회는 좋아요로 표시해 달라는 건 뭐란 말인가? 최종 선정에 반영이 되는지 안되는지도 모르면서. 거 독자선정위원들 바보 만드는 거 아닌가?

 

독자선정위원회도 어느 만큼의 권위가 인정되는지도 모르면서 때마다 뽑는다. 이번에도 또 뽑는다고 공지가 올라왔더만 독자선정위원회는 알라딘의 꼭두각시인가? 좀 나와서 마이크대고 떠들어 줘 봐라. 비겁하게 숨어서 지켜나 보고, 친절한 척 온갖 가식은 다 떨고.   

 

지난 번 알라디너들 궐기하다시피 해서 이제 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 했는데, 독자선정위원회 여전히 새로 뽑는 거 보면 별로 그럴 의지가 없는 모양인가 보다.  

 

내가 이런 곳에 내 현금 10원 한 장이라고 허투로 써 가며 책 사 보고 싶은 마음 없다. 

 

어떤 곳이든 단골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단골엔 반드시 함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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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3-12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스트는 안 봐서 모르겠는데, 키냐르의 책은 강추합니다! 꼭 읽어 보세요. <은밀한 생> 한 권만 이라 도..ㅎ

stella.K 2016-03-12 13:1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은밀한 생 읽어 보겠다고 보관함에 넣어 놓고
아직도 못 봤다는 거 아닙니까?
악스트는 가격 대비 내용은 상당히 좋은 것 같은데
고놈의 글씨체가 작아서 정말 관심 가는 작가가 나오지 않는 이상
저는 아마 점점 안 읽게될 것 같아요.
그렇찮아도 잡지류에 손이 안 가는 부류라...

transient-guest 2016-03-16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다른 이야기지만, 전 작년과 대비해서 갑자기 서재에 다녀가시는 분들이 1/4정도로 줄었어요. 물론 글솜씨도 그렇고, 자주 관리하지 못하는 저도 문제가 있지만, Stella K님의 말씀을 보니 다른 이유가 있을까 괜히 의심도, 걱정도 하게 되네요. 2011년부터 열심히 가꾼 곳인데,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듯 하여 조금 서운해하고 있습니다.

stella.K 2016-03-16 14:00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1/4이나요?
의혹도 많고, 불합리한 것들도 많아요.
알라딘이 이렇게 뽑는 게 몇년 됐는데 전 시작 때부터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너무 편파적이고.
그런데 꿈쩍도 안하고 있으니...
그러고도 전 계속 여기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 거시기하긴 하지만,
제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알라디너들이 있어
그냥 써요. 그리고 솔직히 알라딘이 글 쓰기는 더 좋은데
그놈의 당선작 발표날만되면 좀 날카로와지더군요.ㅋ

2016-03-18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8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3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3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요즘 나름 재밌게 보는 드라마가 <마담 앙트완>이다. 뭐 <시그널> 보다 못하긴 하지만. 이 드라마는 임상심리학이란 독특한 소재를 두고 한예슬과 성준의 옥신각신 사랑 싸움을 보는 맛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론 한때 심리학에 심취했던 내가 지금은 왜 그리 관심이 뚝 떨어진 걸까? 회의가 들면서 극중 성준이나 장미희의 배역이 눈에 들어오긴 한다. 특히 성준의 공간이.

 

하긴, 마담 앙트완의 공간 어느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공간이 있나? 카페와 연구소가 함께 있는 건물 외관은 이름에도 걸맞게 프랑스 어느 건물을 묘사한 것도 같다.

 

 하지만 내가 또 눈여겨 보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 그건 배미란 역의 장미희다.

사실 어찌보면 한예슬이나 성준이 타이틀롤이긴 하지만 아주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도 장미희가 눈에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솔직히 난 젊은 날의 장미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연기도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특히 그 목소리와 대사가 가식 덩어리라고 생각되서 별로였다.

 

하지만 한동안 TV를 떠나 있다 다시 복귀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도 차츰 보고 있으려니 예전에 단점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지금은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온다. 도대체 나이들어서도 저렇게 교양있고, 조신하고, 우아함을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인가? 보통은 아줌마의 동의어는 펑퍼짐. 뭐 이런 거 아니었나? 그런데 이렇게 나이들어서도 고상함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점점 늘어나는 추세가 될 것이고.

 

이 드라마의 특징은 바로 이거다. 장미희를 앞세워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아들 같고 조카 같은 남자 아이를 이성으로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더구나 그 남자아이가 성격상 너무나 싹싹하고 잘한다. 그런데 그 자상한 성격이 중년의 여성에겐 이성적으로 끌리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더구나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다고 제 3자들이 더 날뛰겠지만 여기선 오히려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삑사리나는 분위기다. 물론 배미란은 고상과 품위를 유지해 선을 뛰어넘지 않을 것이며 혼자 좋아할 것을 다짐한다.

 

난 아직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상대를 좋아해 본적은 없지만 나도 살아가다 한 20살쯤 나이 차이나는 상대를 좋아하면 어쩌나 은근 걱정할 때가 있다. 그쯤되면 사랑은 육체의 영역 보단 영혼의 영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자기 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것이 또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결혼의 적령기가 없어지고 독신의 기간이 늘어나면 인간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몇 년 전 <라벤더의 연인>을 개봉관에서 본적이 있었다. 난 그저 그렇게 봤는데 같이 보러간 일행 중 남자 아이가 오히려 눈물 짓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란 적이 있었다. 아니 저렇게도 감수성이 풍부하다니.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변태라고는 이름짓고 싶지 않다.  그냥 영혼의 충돌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에 눈이 있던가? 분별력이 있던가? 분명 사랑하는 영혼이 아름다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은 경우 안타깝고 애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사랑은 가급적 안하면 좋겠지만 하게 되더라도 응원은 못할망정 쉽게 변태라고 단정 짓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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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5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미희는 어느 드라마에 나오면 캐릭터가 비슷해요.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외모와 복장을 `복사하기 붙여넣기`하는 것 같아요. 항상 조신하고, 교양 있는 중년 여성으로 나오죠. ^^;;

stella.K 2016-03-06 11:19   좋아요 0 | URL
결국 그게 트레이드마크 아니겠어?
앙드레 김 패션이 똑같은 것처럼.
근데 그게 요즘엔 아주 나쁘지 않게 보인다는 거지.
그 조근조근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남자들 삭신이 녹지 않냐?ㅋㅋ

yamoo 2016-03-10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드라마 리뷰를 읽어 내려 가면서, 이 드라마는 뭐네 대한 거쥐? 라는 궁금증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순간..

장미희를 앞세워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아들 같고 조카 같은 남자 아이를 이성으로 좋아하는 것..

이라는 한 줄로 샥 정리가 됐습니다. 아~~주 진부하지만 볼 만한 드라마라 생각합니다. 마담 앙트완..지금 하는 태양의 후예보단 재밌겠죠? 2회까지 보구서 걍 덮었습니다. 대사들이 너무 오글거려서뤼~

마담 앙트완은 한번 역주행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리뷰 아~주 좋습니다!ㅎ

stella.K 2016-03-10 12:38   좋아요 0 | URL
ㅎㅎ 아, 장미희의 에피소드는 곁다리구요,
한예슬과 성준이 주죠.
전 한예슬이 사람들 점 봐 준다면서 검은 부채 펼쳐서
보는 게 영 좀 거시기하긴 한데
사랑을 심리학이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
적어도 드라마에서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걸
작가가 했다는 게 전 마음에 들더라구요.
중간중간 여러 임상심리 사례도 보여주고.
시청률이 신통치는 않지만 전 그렇고 그런 연애 통속극 보다 좋은 것 같아
보고 있습니다.

태양의 후예는 확실히 야무님 같은 남자분은 싫어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여심 저격 드라마인 것은 확실합니다.
송중기가 죽여주죠.
아마 송중기도 일생 이런 역할 다시는 못 맡지 싶지 말입니다.ㅎㅎ

페크pek0501 2016-03-11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잘 지내시죠?

<마담 앙트완>이란 드라마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저는 요즘 주말드라마밖에 안 봐요.
<라벤더의 연인>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군요. 장미희 드라마처럼 간략히 정리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말이죠. 연상이나 연하 중 선택하라고 하면 연상을 택하겠어요. 40대 여인이 20대 청년을 사랑하는 건 응원해 주고 싶기보단 말리고 싶고 연민이 생길 것 같네요. 아픈 사랑을 하는 것 같아서요.
차라리 40대 여인이 60대 남자를 사랑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연하 남자는 그런 문제가 있지 않나 싶어요. 사랑을 하려면 존경하는 마음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연하를 존경하기는 좀 어려운 문제 아닌가요? 몇 살 아래도 아니고... 이건 저의 경우에만 해당해나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은 사랑하기 어려울 것 같거든요. 가령 외모에만 끌린다든지 해서만 사랑의 세계로 들어서는 게 불가능할 것 같거든요. 호감을 가질 순 있어도요.
물론 저의 경험 부족으로 생각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겠지요...
남들이 관심 가질 만한 소재를 잘 택하셔서 쓴 것 같아요. 재밌게 읽었어요. ^^

stella.K 2016-03-11 13:15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그래요. 젊었을 땐 연하가 좋다 싶었는데 나이들고 나니까
연상이 좋은 것 같더라구요.
근데 남자라는 동물을 존경하기는 이제 가면 갈수록 어렵지 않나요?ㅋㅋ

라벤더의 연인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청년이 어느 섬마을에 표류해요.
근데 거기에 늙은 두 자매만 사는 집에서 몸이 회복될 때까지 있는데
그동안 두 자매가 동시에 청년을 사랑하던가?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청년과 같은 또래였다면 로맨틱 코미디가 됐을 텐데
나이듦의 위대함이란 그런 것 같아요, 열정적인 사랑을 가슴에만
간직하고 있다는 것.
극중 장미희도 그렇게 하죠. 그게 또 나름 보기가 나쁘지 않더라구요.
그러고 보면 우린 나이든 여자와 젊은 남자와의 사랑을 상상하는 수준이
어떤지 알 것 같지 않습니까?ㅎㅎ
 
당신이 잃어버린 것 - 창작집단 독 희곡집 제철소 옆 문학관 1
유희경 외 지음, 창작집단 독 엮음 / 제철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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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재현은 배우나 관객이 아닌 순수한 독자로서 희곡을 읽은 게 얼마만인가라며 이 책의 추천사에서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배우 조재현이 이렇게 밝힐 정도라면 벽안의 독자인 나는 어떻겠는가?

 

잘 쓰지는 못했지만 한때 나도 연극 대본을 썼더랬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독자로서 희곡을 선뜻 뽑아 읽기에는 주저되는 게 많았다. 다른 읽어야할 책도 수두록 빽빽한데 희곡집은 워낙에 알려진 게 없으니 어떤 걸 읽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 안에 드는 출판대국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출판의 편중화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책을 고르라고 하면 소설이나 에세이, 인문 관련 책들이 선택된다. 리뷰를 읽어 봐도 이 범주의 리뷰들이 워낙 많으니 아무래도 따라서 읽어줘야만 할 것 같지 희곡을 읽는다는 건 감히 상상할 수 없고 생뚱맞기까지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연극을 보지 왜 읽는단 말인가? 그러려면 공연장까지 가야한다는 번거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연극은 종합예술인만큼 모든 그것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걸 선택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더구나 나는 예전 같은 시력이 아니다 보니 이제 눈으로 읽는 독서 행위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러니 희곡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희곡이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희곡은 시와 함께 가장 오래된 문학 형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날 희곡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정말 스스로 나에게 묻고 싶다. 희곡도 소설이나 에세이 아니면 다른 인문 도서처럼 조명을 받게 된다면 그래도 안 읽을 거냐고. 그건 명백히 아닐 것이다. 희곡도 마케팅이든, 입소문이든 나 좀 봐달라고 난리굿을 한다면 나는 못해도 일년에 한 두 권을 읽을 것 같다.

 

그렇다면 감히 말하고 싶다. 독자로서 희곡을 읽지 않는 것이 독자 자신의 문젠가 아니면 그렇게 난리굿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할 생각을 못하는 출판 관계자 및 각 언론사 출판 담당 기자의 책임인가? 왜 희곡은 소설이나 에세이 읽는 것만큼이나 독자들이 친근하게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언제 한 번 희곡이 자기 경쟁력을 가졌던 때가 있었나? 
 

연극 작품을 활자로만 읽으면 그건 다 본 것이 아니다. 3분의 1정도까지만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희곡도 문학의 한 장르인만큼 읽는 행위 하나로만 볼 때 소설이나 에세이 보다 더 간결하고 더 의미 깊게 읽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책은 바로 이것을 선언하고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 책을 읽으니 우리가 연극 보는 또는 책을 읽는 인식이 달라져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연극이 우리나라에서 공연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일년에 몇 백 편의 희곡이 쏟아져 나오겠지만 그것이 실제로 공연되는 것은 몇 십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그것도 관객의 눈에 띄고 실적을 낼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우리나라 공연계는 웬만한 큰 기획사에서 이름있는 배우들을 내세워 주관하는 뮤지컬이 독식을 하다시피 한다. 그러니 쏟아지는 희곡을 공연이 소화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극작가들의 숨통을 조인다는 게 말이나 되겠는가?

 

모르긴 해도 그들도 푸른 꿈이 있었을 것이다. 또 때로는 소설의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극작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가며 밥 먹고 살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설을 쓰는 웬만한 전업작가도 글만 써서 벌어먹고 살기가 힘들다는데 하물며 극작가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곤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나야말로 얼마만에 희곡을 읽어 본 것일까? 지면상 26편의 단편 희곡을 일일이 다 평할 수는 없지만 정말 어떤 작품은 번뜩이는 재기가 느껴지는 작품들이 꽤 있었다. 물론 또 개중엔 단편이라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마무리된 작품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9명의 작가들은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썼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희곡이 시나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독자에게 읽히려면 몇 가지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어 보인다. 우선 작가 스스로가 더 재밌고, 즐겁고, 의미 있는 작품을 기죽지 말고 써야 한다. 이땅엔 만화나 그래픽노블 매니아가 있는 것처럼 희곡 매니아도 분명 어디엔가 존재할 것이다. 요즘엔 장르와 장르 간의 교류가 워낙에 빈번해, 소설이 영화화 되고. 만화가 드라마 되기도 하고, 드라마가 뮤지컬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희곡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겠는가? 희곡은 꼭 연극으로만 만들어질 수 있다고 누가 그러던가? 

 

또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책이 좀 멋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뚝빼기 보다 장맛이라고는 하지만 책표지가 마음에 안 들면 독자는 다른 샤방한 책에 눈이 간다. 그런 점에서 이책은 표지가 그다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난 그런 취지와 여기 실린 작가와 작품을 응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급적 책으로 나온 희곡은 공연으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용을 보니 제작비를 최소화하며 꼭 공연장이 아니어도 어디에서든 공연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작품들이 앞으로도 많이 나오지 않을까? 북콘서트 개념으로도 얼마든지 할용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다. 지금까지는 일정 정도 공연으로 성공해야 출판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독자가 먼저 희곡을 접하고 공연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려면 희곡을 먼저 띄우는 적극적인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작가들도 글 쓸 의욕이 생길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도 이 책이 나왔을 것이고.

 

나는 최근 시나리오를 써야할 사람들이 소설을 쓰겠다고 했다가 이도저도 아닌 경우를 종종 본다. 시나리오로 밥 벌어 먹기가 어려우니까 소설을 써 보겠다고 하다 그런 것 같은데 그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민폐 아닌가? 소설도 시나리오 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건데 만만이 보는 저자세가 있는 것 같아 독자로서 좀 씁쓸했다. 무엇보다 그 작가가 자기 전공의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는데 과연 기대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래야 독자의 혼란도 줄어들고. 선택의 폭도 넓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이런 프로젝트가 계속 나올 모양인데 일단은 환영하고 기대를 해 본다. 잘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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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일반적인 무대극을 `연극`이라고 많이 부르는 편이라서 `희극`을 잘 쓰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희극을 낯설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희극을 읽는 작품이라기보다는 `보는 작품`이라는 인식도 남아 있고요.

stella.K 2016-03-02 12:28   좋아요 0 | URL
그니까. 소설이란 문학 장르가 언제부터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그 보다 오래된 게 희곡이야.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독서를 묵독한 역사가 얼마 안 되잖아.
그전에는 독서 하면 소리를 내서 읽는 거라고 그러고.
그렇다면 희곡을 읽었을 것 같애. 묘사나 수사는 소설이 발달하면서
생겼을 거고.
이 책 나름 내용이 좋아. 읽을만 해.
너도 기회되면 한 번 읽어 봐.^^

transient-guest 2016-03-05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곡을 읽으면서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음독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이게 꽤 어렵더라구요. 시를 읽을 때 가끔 겉멋에 배우같은 손짓을 하면서 소리내어 읽어보는데, 굉장히 좋더라구요. 희곡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냥 스토리로 읽기에는 대사와 대사사이의 공간을 메우는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stella.K 2016-03-05 14:08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러면 더 음미가 잘 되죠.
그런데 음독을 하면 시간이 더 걸린다는 단점도 있어요.
그리고 목도 금방 쉬구요. 그래서 희곡이란 장르가
쇄퇴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yamoo 2016-03-10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추천을 안 누를 수가 없습니다~
희극이라...저두 좀 읽어보겠어요~

stella.K 2016-03-10 12:30   좋아요 0 | URL
헉, 누르신 거 맞나요?
좋아요가 그대로여요.ㅠㅋㅋ

그런데 제가 전에 보통의 존재로 야무님께 실망을 안겨 드려서
이게 과연 야무님께 좋을런지 모르겠어요.
뭐 큰 기대 안하시고 읽어보시면 또 나름 읽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나름의 구성력도 있고.
우리나라 희곡 작가들도 많이 밀어 줘야할 텐데 말이어요.ㅠ

페크pek0501 2016-03-11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곡은 읽기가 어렵더라고요. 예전에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이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었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읽기가 수월하지 않아 그 다음부턴 희곡을 선호하게 되질 않더라고요.
대화체라는 게 누가 하는 말인지 확인해 가며 읽어야 하는 수고가 있어서 말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형식엔 익숙하지 않아 선호하지 않는 것 같아요.

stella.K 2016-03-11 13:18   좋아요 0 | URL
그렇죠. 하지만 요즘 희곡 작가들은 쉽게 쓰더라구요.
그래서 어찌보면 장황한 서사의 소설 보다 슬림한 희곡 읽기가
곧 대세가 되지는 않을지 기대해요.

참, 잘 지내시죠? 왜 이리 오랜만이십니까? 한참 기다렸습니다.
자주 뵈어요.^^
 
사건 치미교 1960
문병욱 지음 / 리오북스 / 201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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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이비 종교 백백교를 모티프로 해서 썼다고 한다. 

실제로 읽어보면 재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모르게 아쉬움이 남는다. 차라리 아예 백백교의 실상을 까발리는 작품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웬 있지도 않은 치미교란 가상의 종교를 만들어 놓고, 과거를 다루고 있는지 현재를 말하고 있는 건지 시점이 헷갈린다. 

 

이를테면 등장인물은 해방 직후를 살았던 사람인 것 같은데, 지명이나 동네 이름은 현대다. 그 옛날 서초구가 어딨으며, 노원구가 어디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 시절에도 있었다고 치고 보라는 건지, 아니면 과거의 사람을 현대에 끌어 와 서초구나 노원구 같은 활동 거점을 얘기함인지 잘 모르겠고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이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생각 보다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감은 확 반감시키면서 독자로 하여금 작품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실제 백백교의 교주가 곽해용인지 아니면 작품을 위한 가상의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곽해용의 행적이나 만행에 대한 묘사는 실제 백백교의 교주가 그대로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사실 그래서도 차라리 백백교의 실상을 파헤치는 소설이길 바랐던 것이다.

 

곽해용의 면면을 보면 그는 상당히 똑똑한 인물이면서 상상력과 조직력이 탁월한 인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자신의 장점을 이용해 종교를 끌어 왔고 그것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이것은 또 이제까지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이 보여준 면모이기도 하다. 그랬을 때 그들의 보여준 대범함이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람에게 끌리는 대중이다. 왜 끌릴까? 보통 사람들에겐 없는 대범함, 카리스마가 그에게 있기 때문인 걸까? 나에게 없는 그러나 있게 되길 바라는 것을 상대가 가지고 있으면 사람은 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더 생각을 해 보면, 사람은 영원을 사랑하고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 세상은 살기가 너무 힘들고, 부조리한 것들이 많다. 사람들은 누구나 차별없는 공동체를 원한다. 교주들은 바로 이점을 노리고 파고 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재산을 다 정리하고 자신들이 제공하는 안식처에서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살자고 꼬드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 이면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는 철저하게 숨긴다. 그래서 종교는 아편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책은 그런 인간의 내면을 건드려 주긴 하지만 너무 사건의 전개에만 몰두해 특별한 무엇을 새롭게 보여주지는 못하고 범작에 머문 느낌이다. 이 작품이 실제 영화화될 건지는 모르겠다. 영화화를 위해 치밀하게 썼다고 하는데 어느 만큼의 구색은 갖춘 느낌은 들지만 치밀한 건 잘 모르겠다. 치밀한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작가의 세계관이나 철학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소설이라면 말이다. 소설이 그렇게 만만한 세계가 아닌데.

 

그런 의미에서도 난 이런 소설이 독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치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이런 영화화를 위한 치밀한 스토리 전개방식이 전부인 양 하고 있으니 말이다. 차라리 시나리오를 써라. 여전히 소설로 밥 벌어 먹고 살겠다면서 소설은 영화적이어야 한다고 우기면 그건 좀 변종 아닌가? 영화화를 생각한다면 차라리 시나리오를 써라. 괜히 소설에 기생해 영화 안되면 소설이란 안전한 것만 추구하지 말고. 이래가지고 서야 한국 소설에 미래는 있는가?

(써 놓고 보니 괜히 화가 난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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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27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시나리오를 써본 경험이 있는 작가가 소설을 쓰게 되면 영화적 기법들이 이야기 속에 스며드는 것 같아요. 영화로 나온 공포소설 《무녀굴》 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stella.K 2016-02-27 18:26   좋아요 0 | URL
그건 잘 모르겠는데, 나는 소설가가 소설을 이렇게 쓰는 게 화가 나더라구.
소설 쓰는 걸 제대로 알고 영화적 기법을 쓰면 또 그것도 이해하겠어.
마치 이것이 다인 양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쓰고 있다는 게 화가 나.
사유는 없고 사건의 나열만 있잖아.
이건 소설이 아니야. 그냥 스토리텔링이지.
그럴 바엔 차라리 시나리오를 쓰란 말이지.
그리고 독자도 시나리오를 소설 읽는 것만큼 친근하게
읽어줬으면 좋겠어. 시나리오는 일반 독자는 안 읽잖아.
그러니까 이런 현상이 나오는 거라고.
만만한 게 소설이라고 소설을 호구로 알 잖아.ㅉ

yamoo 2016-02-2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랄한 리뷰네요. 흠...이런 거 아주 좋아요! 리뷰만 봐도 읽고 싶은 마음이 샥 가십니다. 이런 게 진정한 리뷰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시나리오나 써라~ ㅋㅋㅋㅋ 직격탄 인데요..ㅎ

stella.K 2016-02-28 18: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너무했나요?
꼭 심한 말은 아닌데...
이젠 독자들도 소설만큼이나 시나리오나 희곡을
재밌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출판계나 매스컴은 이런 쪽에
너무 무관심하잖아요.
작가가 시나리오로 이글을 풀었다면 차라리 인정을 하겠어요.
개나 소나 소설 쓰겠다고 하는 게 짜증나더라구요.
물론 전 한 권도 못 쓰면서. 나야 뭐 독자니까.ㅋㅋㅋ

전 단지 백백교를 알고 싶은 마음에 읽으려고 했는데
읽을수록 뭔가 미진하고 찜찜하더라구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