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크
웨인 왕 감독, 스톡카드 채닝 외 출연 / 무비홀릭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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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작년도가 1995년. 그러니까 나도 20여년 전 개봉관에서 이 영화를 본 것 같다.

그땐 정말 멋모르고 봤던 것 같다. 지루한 한편의 미국 영화.

뭐 이 정도로 밖엔 설명이 더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재미없다고 욕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를 보는 안목이 얕다고 나 자신을 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이 영화는 지루한 영화였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그렇게도 유명한 폴 오스터님께서 각본인지 각색에 참여하신 작품

이라지 않는가? 자신의 소설 <뉴욕 3부작>을 옮겼다지.

그 무렵 폴 오스터가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일본 작가 하루키와 함께.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하루키는 좀 읽겠는데 폴 오스터는 읽는데 실패했다.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한번 편견을 갖게되면 좀처럼 바뀌기 어렵다는 걸.

그래서 난 늘 폴 오스터의 어떠한 책이 나와도 관심이 없었다.

올봄이었나, 우연히 그의 <내면보고서> 읽었다.

물론 그전에 그의 인터뷰집도 읽고, <작가란 무엇인가?>에 나온 역시 그의 인터뷰 내용을

읽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책을 역시 지루하게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어쩌면 폴 오스터와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꿈꾸게 만들었다.

영화에서는 감독의 연출 솜씨를 봐야지 왜 작가를 보려고 하는 것일까?

 

정말 첫 번째 봤을 땐 멋모르고 봤는데, 두번째 보니까 이 영화도 나름 꽤 괜찮은

영화라는 걸 알겠다. 미국의 독특한 서정과 낭만이 베어있다.

글쎄 미국의 서정과 낭만을 한마디로 뭐라고 얘기하면 좋을까?

오래 전, 이어령 교수는 미국의 문화를 가리켜 길의 문화라고 정의한 바 있다.

난 그가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길의 문화는 곧 나그네의 문화이기도 한데, 영화도 보라. 소년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고,

오기의 동거녀가 오기의 담배 가게에 왔다가 사라지지 않는가.

 

거기다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허풍 또는 허세가 아니겠는가?

워낙에 역사가 그리 길지가 못하니 자꾸 영웅 신화만 양산해 내는 게 미국 아니던가.

이 영화도 그 허세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조그맣고 귀여운 허세이긴 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난 그 장면이 좋았는데, 오기 렌이 13년 동안 매일 같은 거리의 풍경을 찍어

4천 장의 사진이 있다. 매일 같은 장소의 사진을 찍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그 4천일, 4천장의 사진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의미를 만들었다.

그 사진 안엔 소설가 친구인 폴의 죽은 아내도 찍혔다. 그것을 보고 눈물짓는 폴.

인간은 그렇게 무상하게 하루하루를 살다 죽어갈 것 같지만 그 세월 중 하나가 누군가에겐

이렇게 눈물을 짓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우스운 건 그 사신을 찍게된 동기다. 

자세한 건 여기 다 밝히진 않겠지만 중요한 건 오기의 사진기는 훔친 거라는 거다.

훔친 건 옳지 않으며 내 노력이 들어간 것이 아니니 가짜다. 그런데 그 훔치는 과정은 진짜다.

우연찮게 어느 눈먼 흑인 할머니의 하루 손자가 되어 가출해 몇 년만에 다시 돌아와

할머니의 그리움을 달래 드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할머니 역시 가짜 손자라는 걸 알지만 성실하게 손자 역할을 해 준 오기에게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속아 준다. 겉은 가짜지만 진심이 통하는 것이다. 

어쨌든 훔친 건 옳지 않고 가짜지만 거기에 또 진실을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담으려 했다.

난 이게 미국식 이야기의 서정이고, 힘이라고 생각한다. 

보고 있으면 지루하긴 한데 맨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엄지 손가락을 쳐들게 만든다.

이 별 것 아닐 것 같은 이야기에 이만한 진실을 담고 있다니!

 

난 이 영화를 다시 보는데 20년이 걸렸다.

훗날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땐 20년씩이나 안 걸릴테다.

못해도 5년안에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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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참 좋죠.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영화 내용은 좀 가물가물하네요..

stella.K 2016-07-07 17:53   좋아요 0 | URL
조만간 다시 한 번 보세요.
그래야 얘기가 되죠.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에. 조만간 다시 한번 볼 계획입니다..

hnine 2016-07-08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그 옛날 극장에서 봤어요 혼자서.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하비 키이텔인가? 그 배우가 생각나고 (다른 사람은 누가 나왔었는지 전혀 생각안나요 ㅠㅠ), Smoke 라는 제목이 연기와 동시에 허무함을 의미하는, 중의적으로 사용된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것만 떠오르네요.
폴 오스터랑 친해보려는 시도 차원에서 다시 보셨나요? 저도 친해보려고 하는데 계속 실패하는 작가가 있어요. 우리 나라 작가인데 엄청 인기있는 작가이지요.

stella.K 2016-07-08 13:31   좋아요 0 | URL
헉, 누군데요? 궁금.
그런 것 같긴 하네요. 왜 그 당시엔 뭐 이래 했던 게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다시 보니 괜찮은 거 있잖아요.
저는 폴 오스터가 그래주길 바라고 있어요.
조만간 뉴욕 3부작을 조심스럽게 읽어줘야 할 것 같은데...ㅠ

cyrus 2016-07-07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오스터의 소설(절판된 것까지 포함)을 모으는 중인데 아직 한 번도 안 읽어봤습니다. 책장 장식품 되어버렸습니다. ㅎㅎㅎ

stella.K 2016-07-08 13:34   좋아요 0 | URL
헉, 폴 오스터 안 읽어 봤나? 너 같은 독서광이...? 의외네.
영화는 봤나? 안 봤으면 봐봐. 영화는 꽤 볼만해.
폴 오스터는 가장 미국적인 작가는 아닐까 싶어.
그 전 세대는 헤밍웨이 아니겠어?ㅋ
 
글쓰기 동서대전 - 이덕무에서 쇼펜하우어까지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한정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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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러 면에서 좀 놀라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글쓰기에 관한 책은 많이 나왔다. 그리고 모르긴 해도 앞으로 꽤 오랫동안 이 분야의 책은 계속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이 분야의 책은 나름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즉 글쓰기에 대한 노하우를 저자 특유의 감각을 가지고 펼쳐 보인다는 것.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분야의 책은 여기까지가 한계는 아닐까 싶었다.

 

글쓰기의 방법과 기술에 대해선 너나 할 것 없이 가르치는데 정작 아무도 글쓰기 철학에 관해서 말하는 책이 없다. 물론 글쓰기도 작가나 강사가 달라서 고전을 섞어 가며 깊이 있게 가르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예 고전에서 글쓰기의 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동서를 아우르며 문장사라고 하는 역사를 꿰뚫기도 한다. 또한 그 범위도 세분화 하면서도 깊고, 넓다(이 책의 목차를 보라). 한마디로 문장사 개론서라고나 할까?

 

이 책을 읽다보면 문장이란 이토록이나 깊고 넓은데 왜 우리는 문장을 그저 실용적인 것에만 한정지으려 하는 것일까 반성도 하게 된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내가 깨우친 바를 정리하거나 알리려 하지 않고, 소통이란 미명하에 어떻게 하면 튀어 볼까, 어떻게 하면 관심을 받아 볼까로 한정지어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나름 반성도 해 본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문득 지금 우리나라 몇몇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지난 날 있어왔던 우리나라 문학의 카르텔과 문학상의 성토가 오버랩 된다. 우리나라 선조들의 글쓰기를 보는 시야가 이토록이나 넓고 방대한데 우리는 어느새 이렇게 제도의 틀에 갇혀 이 어항 안에서만 놀라고 하고 있는 걸까 답답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문장은 사람의 사상을 담는 그릇이다. 문장이 모여 글이 되고, 그것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된다. 누구는 그 한 권의 책으로 입신양명의 길을 열기도 하겠지만, 누구는 자신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도 좌지우지 한다(조선의 문체반정). 오늘 날 문단의 카르텔이 21세기 문체반정은 아닐까를 생각해 보게도 되는 것이다.

 

저자가 어떻게 글쓰기에 관해 이런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글쓰기는 책 읽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좋고, 나중에 이 책이 제시한 책을 따라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단지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같은 내용이 반복되기도 하는데 그 점만 가뿐하게 뛰어넘을 수만 있다면 이 책은 충분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글쓰기에 관한 생각과 고민이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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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6-07-28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 관련책을 찾고 있었는데 감사합니다~^^

stella.K 2016-07-28 14:37   좋아요 1 | URL
아, 이 책은 좋긴한데 좀 묵직해서 읽기가 버거우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고라님 취향은 잘 모르겠으나, 장석주의 <글쓰기는 스타일이다>란
책이 있는데 이 책은 어떨까 싶네요.
편하게 읽혀지면서도 깊이가 있기도 하고.^^

고양이라디오 2016-07-28 16:35   좋아요 0 | URL
묵직하긴 하네요ㅎ
목차보니깐 재밌을 것 같아요. stella.k님이 추천하신 책들 왠지 믿음이 가네요. 두 권 다 읽어볼께요ㅎ

stella.K 2016-07-28 18:36   좋아요 0 | URL
넵. 고맙습니다.^^
 

 

 

얼마 전,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을 보았다.

개봉 당시 흥행에 별 재미를 못 본 줄 알고 있다. 그래서 별 기대없이 봤는데, 생각 보다 괜찮다. 못해도 별 세 개 반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모티프로 만들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나름 좋다 싶다. 무엇보다 미장센이 뛰어나다. 예전에 보았던 <장화, 홍련>이 생각 나기도 한다. 아무튼 미장센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봐 줄만 한데 왜들 못 마땅해 씹고 나오는지 모르겠다.

 

 

 

감독이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들었던 이해영 감독이다. 그 영화라면 재밌게 본 기억이 있는데, 그 영화도 흥행엔 별로 성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왜 그럴까? 영화 잘 만드는 감독인데 너무 대중의 입맛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영화판은 정말 아무도 모른다. 어떤 영화가 흥행에 성공을하고, 실패를 하는지. 전혀 성공할 것 같지 않은 영화가 성공하기도 하고, 성공할 것 같은 영화가 실패하기도 한다. 뭐가 대중의 입맛인지 모르겠는 거다. 단지 가능성 있는 감독은 작품의 성패를 떠나 좀 밀어줬으면 좋겠다. 이해영 감독은 정말 시나리오도 잘 쓰고 가능성이 많은 감독이다. 언제고 히트 칠 날을 기대해 본다.  

박보영은 원래 좋아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요즘 박소담이 자꾸 눈에 들어 온다. 이 영화에선 박보영의 친구로 대등한 연기를 펼치기도 하지만, <사도>에선 영조의 승은을 입고 건방이 하늘을 찌르다 경을 친 역할을 무난히 잘 소화해 냈다. 엄지원의 일어는 거의 네이티브다. 일본 여자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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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7-01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영감독 영화 잘 만들죠.
동감입니다 ^^

stella.K 2016-07-02 15:56   좋아요 0 | URL
와~ 시이소오님이닷!
영화도 보시네요.
전 책만 보시느라 영화는 못 보시는 줄 알았슴다.ㅋ

시이소오 2016-07-0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제 일인걸요 ^^

stella.K 2016-07-02 18:47   좋아요 0 | URL
헉, 정말요? 몰랐어요.
어떤 일하시나요? 궁금 궁금~

2016-07-02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나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시이소오 님 혹시 영화 만드시나요 ?

stella.K 2016-07-02 18:48   좋아요 0 | URL
곰발님도 보셨군요. 이해영 감독 영화 잘 만들지 않습니까?^^

시이소오 2016-07-02 18:53   좋아요 0 | URL
저 지금 놀고 있습니다. 영화판도 약육강식의 세계자놔요.

곰발 님도 영화관련일 하시나요?

stella.K 2016-07-02 19:38   좋아요 0 | URL
헉, 우찌 그 힘든 일을. 몰랐습니다.ㅠ
시이소오님 곰발님과 한번 만나셔야겠습니다.
제가 알기론 곰발님도 한때 영화판을 구르셨다고 들었습니다.ㅋ

시이소오 2016-07-02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포기하고 다른걸 해보려해도 할줄아는게 없어요 ㅎ ㅎ

stella.K 2016-07-02 19:1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는다고 자기가 하던 일
떠나기가 쉽지는 않더라구요.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가 영화판에서 구름니까. 극장판에서 그냥 굴렀습니다. 영화사에도 잠시 있었고, 편집도 잠시 했었고, 자막도 했었고.. 뭐 그냥 노가다했습니다.

stella.K 2016-07-02 19:3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구른 거 맞잖아욧!!
노가다는 구른 거 아닙니까?ㅎㅎ
 
안녕, 테레사
존 차 지음, 문형렬 옮김 / 문학세계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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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태어나기도 잘 태어나야겠지만 죽기도 참 잘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리 의학의 발달로 백세시대를 얘기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연수를 다 채우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 살아가는 동안 무슨 일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얼핏 강간 살해 피해자의 가족과 피의자간의 법정 싸움을 그린 작품처럼도 보인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피해자의 유가족 즉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이 나올 즈음 다 아는 일이지만, 강남역에서 20대 여성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에 꼬리의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던 일련의 사건들은 차마 입에 떠올리기도 싫다. 물론 일어나지 말아야할 사건이 일어나 공분을 샀지만,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그들의 살아남은 가족은 어떤 심정일까,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은 선량해서만도 아니다. 누구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당한만큼 복수하며 살고 싶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법이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문명국 특히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일수록 예외 없이 법치국가이기도 하니 총이나 칼이 있기 전에 먼저 법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 피해자의 가족들은 어찌 보면 고통을 가중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재판에서 만족한 결과가 나온다면 그나마 법의 위로를 받는 것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 당하는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배심원 제도라는 게 있긴 하지만, 미국은 그 보다 훨씬 앞서 이 제도를 시행해 오고 있는 줄 알고 있다. 어쩌다 미국의 법정 드라마를 보면 배심원이 근엄하게 그려지곤 하는데 책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인다. 더구나 그 배심원 제도라는 게 다수결의 원칙 같은 것이 아니라 평결의 원칙 그러니까 만장일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다른 의견이 있다면 상대가 유리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만장일치의 평결을 얻어 피의자인 산자를 구형 받도록 하는데 승리하지만 나중에 항소해 다시 법정에 서는 이중의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물론 그 재판에서도 승소해 결국 산자를 최소 25년에서 무기징역을 받을 수 있고 아마도 살아선 교도소 밖을 나오는 일이 없게 만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우리나라 법은 과연 어떨까 싶기도 하다. 대체로 우리나라 법은 무르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연이은 여성 대상 범죄에 우리나라 법정은 어떤 형을 내릴지 모르겠다.

 

얼마 전, 혼자 사는 중년의 여성이 알지도 못하는 남성에게 이유 없는 괴롭힘을 당하자 경찰에 신고를 했더니 증거불충분으로 보호해 줄 수 없다고 했단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법은 어떤 경우에도 약자를 보호해 줘야하는 것인데 증거불충분이라니. 여성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데, 피의자에게 정신병이니 심신미약이니 온갖 이유로 그들을 보호해 주려고 하고 있다.

 

이 책이 범죄에 취약한 여성을 얼마나 대변해 주는 책인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의도로 쓰인 것인지 아니면 미국 내 촉망 받는 우리나라 젊은 예술가의 비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로선 공교롭게도 시의가 그렇게 맞아 떨어졌다. 그런데 제발 부탁이다. 이런 작품을 통해서라도 우리나라에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엄한 법의 구형을 적용해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물론 피의자의 가족도 못지않은 고통을 당한다는 건 알지만 그래서도 엄한 법적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우리나라엔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실력 있는 소설가다. 그러니만큼 문체가 유려하기도 하다. 하나의 문학작품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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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1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이 폭행이나 성범죄를 당하면 누군가 나서서 도와줘야 하는데, 도와준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요. 그래서 보고도 그냥 지나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단 나부터 살자는 마음인거죠.

stella.K 2016-06-19 14:01   좋아요 0 | URL
그런데 웃긴건, 또 다른 여자도 그 비슷한 일을 당했는데
얼마만에 한번씩 그집 아들이 왔다 가는 것을 알고 그 다음부턴
그런 일이 없어졌다는 거야.
여자는 남자에 의해 공격을 당하고 남자에 의해 보호도 받고,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여자는 유도라도 배워둬야 하려나 봐.
남자들 그러다 나중에 죄 받지.
선량하게 사는 남자들 조차 어떤 피해가 갈지 몰라.ㅠ

페크pek0501 2016-06-1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그의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사나, 하는 것이에요. 피해자도 그렇지만 가족의 고통을 생각할 때 남의 일 같지 않아요.

stella.K 2016-06-19 14:03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요.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죽은 거야 아쉽긴 하지만
고통은 온전히 살아 있는 가족의 몫이잖아요.
그런 일이 나한테도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고.
두루 세상 살기가 무섭네요.ㅠ

낭만인생 2016-06-22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해자의 유가족 즉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는 작품`에 눈이 가네요. 글을 참 잘 쓰십니다. 좋은 책 꼭 읽고 싶네요.

stella.K 2016-06-22 14:01   좋아요 0 | URL
저는글 잘 쓰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그저 감사할다름입니다.
이 책 좋더군요. 시간 나시면 읽어보시라고 감히 추천드립니다.^^
 

 

 

                                       

오랜만에 사회성 짙은 단막 드라마다.

비싼 대학 등록금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반값등록금 이야기가 나온지 꽤 오래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그건 대통령 선거 공략 주메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도 반값 등록금을 실현할 의지가 없는가 보다. 그 사이 대학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변해간 걸까? 그것을 상당히 밀도 있게 그렸다. 보고 있노라면 가장 아름다워야할 대학생들이 좀비가 되어 전장에서 쓰러져 가는 뭐 그런 이미지가 연상이 된다.

 

등록금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해 보고자 일종의 캐피탈 회사를 차리고 성공가도를 달려 가던 중 이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소위 잘 나가는 금수저들과 여전히 돈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 아니 돈의 노예는 차라리 양반이다. 없는 사람 무시당하고 굴욕을 견뎌야 하는 건 신 조선판 노비제도고, 인권이 이런 식으로 유린 당하는구나. 씁쓸해진다.  

 

대학을 왜 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저마다의 이유는 다 있겠지만 들어가도 돈 걱정 없이 대학생활의 낭만을 즐겨야 하는 것 아닌가? 요즘 대학가에 낭만이 있기나 한 걸까? 힘들게 공부해 대학에 들어왔지만, 돈과 스펙, 계급 의식에 내몰려야 하는 오늘 날의 젊은이들이 웬지 불쌍하고 측은한 느낌이다.

 

보면 좀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드라마 안 봤다면 한번쯤 관심있게 봐 줬으면 한다.   

 

 

                             

 

 sbs가 언제 단막극을 그렇게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IP TV에 들어가 찾아보니 그동안 꽤 많은 단막극을 제작해 왔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지금까지 단막극하면 KBS 아니었나? 예전엔 M 본부의 <베스트셀러 극장>이라는 것도 했었는데 말이다.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고, 언제 새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정도가 됐다. 방송에선 간간히 단막극을 밀어줘야 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워낙 미니시리즈에 밀리고, 블록버스터한 영화에 밀리다 보니 단막극은 거의 관심 밖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어떤 단막극은 16부작 미니시리즈 보다 나은 것도 많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작년에 방영한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이다. 2부작인데 웬만한 영화 한 편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별로 기대 안하고 봐서 그런가? 대비 효과는 정말 웬만한 영화 못지 않고 열 미니시리즈 부럽지 않다.

 

정말 내가 나의 장례식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보는 것뿐 아니라 주인공이 되서 문상객을 맞는다면 어떨까? 분명 울면서 맞아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시간내서 일부러 와 줬는데 어떻게 슬픈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또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그런 장례식에 내가 초대를 받는다면 이건 뭐 축하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슬퍼해야 하는 건가 헷갈릴 것도 같다.

 

아무튼 그렇더라도 주인공 장미수가 살아 있을 때 미리하는 장례식은 결혼식만큼이나 즐겁다. 그런 점에서 미리하는 장례식은 고려해 볼만하다. 보통의 장례식은 주인공이 이미 고인이된 관계로참석이 불가능하지 않는가? 주인공이 없는 장례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드라마가 장례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놓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도 해 본다.

 

또한 장례식은 고인을 위해 살아 있는 사람 모여서 서로 슬픔을 위로하고, 고인의 살아생전의 삶을 되짚어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제대로 행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린 고작 조의금을 내고, 영정 사진에 잠시 예를 표하고, 유가족들을 적당히 위로하고, 아는 사람끼리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다 헤어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렇게 나의 장례식에 내가 주체가 되어서 문상 온 사람들에게 너무 슬펴하지 말라고 직접 위로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살아 있을 때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행운이랴. 세상엔 사고사로 죽는 사람도 많고, 자살도 많은데 나의 죽음을 알고 미리 한다는 건 거의 로또에 가까운 행운이다. 

 

그러므로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너무 우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품속 주인공처럼 사는 날까지 마치 자신의 죽는 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즐거움과 설레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나의 삶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면 물론 당연 우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갑자기 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또한 건강할 때처럼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모든 것에 시간 계산을 넉넉히 해 두어야할 것이다. 즉 몸은 예전처럼 안 따라주고, 할 일은 많아질 테니 시간은 그만큼 더 없다. 

 

사실 이 드라마는 동화 같긴하다. 건강하다면 결코 좋아하지 않았을 학교 동창을 다시 만나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한다. 또 그 동창이란 아이가 꼭 동화속에서 튀어 나옴직한 즉 현실에선 잘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낭만돌이다. 그러므로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땐 결코 이런 드러마 같은 간지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죽음을 낭만적으로 준비하지 말라는 법다. 지금도 나의 바람은 나의 죽음이 너무 슬픈 일이 되지 않았으면, 의연하게 맞았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만 그렇지 막상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그것을 조금 실현 가능한 것으로 앞당겨 준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물론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 실제로 주인공의 현실이 나의 현실이 되면 그렇게 즐겁게 장례식을 치뤄낼 수 있을까? 특히 그 장례식에 엄마를 참석시킨다는 건 못할 짓 같긴하다. 그래도 그 장례식에 마치 시집 보내는 딸을 위해 엄마가 준비하는 이바지 음식처럼, 딸이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도 머지 않아 딸을 저 세상으로 보낼 때 훨씬 덜 섭섭할 것 같다.

 

드라마가 정말 동화 같다. 특히 주인공의 남자 친구가 염통이 정상이 아니면서, 만화 그림을 잘 그리는 캐릭터로 나온다. 그게 이 드라마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녹아지는지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인공 캐스팅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장미수 역을 경수진이 한 것도 좋긴 했지만, 미수를 좋아하는 박동수 역을 최우식이 맡았다는 건 거의 신의 한 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소위 말하는 꽃미남 배우가 아니다. 그냥 엉뚱한 조연급 배우 정도일 뿐인데 이 드라마에선 자신의 연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줬다. 안 본 사람이 본 사람 보다 압도적으로 많을 테니 꼭 보라고 강추하고 싶다. 정말 열 영화 부럽지 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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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6-06-1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드라마가 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요즘 너무 많아서...
조금 전 `가화만사성`을 중간부터 보기 시작해 끝까지 봤어요. 통쾌한 장면이 있었죠. 전 사위가 자기가 모시고 있는 회장님 편을 들지 않고 전 장인어른 편을 들어주는 장면.
드라마 작가는 이런 장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앞과 뒤가 잘 연결되게, 치밀하게 계획했겠죠.
제가 드라마 작가를 우러러보는 이유입니다.

stella.K 2016-06-19 14:07   좋아요 0 | URL
사실 단막 드라마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저력은 있다고 봐요. 옛날 베스트셀러 극장 때부터요.
우리 단만 드라마를 많이 사랑해 줘야겠어요.
놀라운 건 단막 드라마는 kbs줄 알았는데
그동안 sbs도 꽤 만들었다는 거죠.
저도 볼 것은 너무 많고 TV 보는 시간은 한정되 있고
잘 못 보게되요.ㅠ

yamoo 2016-06-30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좋은 드라마 정보 감솨합니다! 근데, 소개해 주신 드라마는 어케 봐야 하는지요..아이피티브로 볼 수 있는 건가? 브로드밴드는 에스비에스 단막극에 대한 서비스는 없는 거 같아서욤..

소개해 주신 드라마는 반드시 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요~^^

stella.K 2016-06-30 13:25   좋아요 0 | URL
와우, 오랜만이십니다. 잘 지내시죠?ㅎ
글쎄요...저도 IP TV로 봤는데 저는 올레 거든요.
아마 웬만하면 다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일단 검색창에 제목을 띄워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