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제작년도가
1995년. 그러니까 나도 20여년 전 개봉관에서 이 영화를 본 것 같다.
그땐 정말 멋모르고
봤던 것 같다. 지루한 한편의 미국 영화.
뭐 이 정도로 밖엔
설명이 더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재미없다고
욕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를 보는 안목이 얕다고 나 자신을 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이 영화는
지루한 영화였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그렇게도 유명한 폴 오스터님께서 각본인지 각색에 참여하신 작품
이라지 않는가?
자신의 소설 <뉴욕 3부작>을 옮겼다지.
그 무렵 폴 오스터가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일본 작가 하루키와 함께.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하루키는 좀 읽겠는데 폴 오스터는 읽는데 실패했다.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한번 편견을 갖게되면 좀처럼 바뀌기 어렵다는 걸.
그래서 난 늘 폴
오스터의 어떠한 책이 나와도 관심이 없었다.
올봄이었나, 우연히
그의 <내면보고서> 읽었다.
물론 그전에 그의
인터뷰집도 읽고, <작가란 무엇인가?>에 나온 역시 그의 인터뷰 내용을
읽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책을 역시 지루하게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어쩌면 폴 오스터와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꿈꾸게 만들었다.
영화에서는 감독의 연출
솜씨를 봐야지 왜 작가를 보려고 하는 것일까?
정말 첫 번째 봤을
땐 멋모르고 봤는데, 두번째 보니까 이 영화도 나름 꽤 괜찮은
영화라는 걸 알겠다.
미국의 독특한 서정과 낭만이 베어있다.
글쎄 미국의 서정과
낭만을 한마디로 뭐라고 얘기하면 좋을까?
오래 전, 이어령
교수는 미국의 문화를 가리켜 길의 문화라고 정의한 바 있다.
난 그가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길의 문화는 곧
나그네의 문화이기도 한데, 영화도 보라. 소년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고,
오기의 동거녀가
오기의 담배 가게에 왔다가 사라지지 않는가.
거기다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허풍 또는 허세가 아니겠는가?
워낙에 역사가 그리
길지가 못하니 자꾸 영웅 신화만 양산해 내는 게 미국 아니던가.
이 영화도 그 허세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조그맣고 귀여운 허세이긴 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난 그
장면이 좋았는데, 오기 렌이 13년 동안 매일 같은 거리의 풍경을 찍어
4천 장의 사진이
있다. 매일 같은 장소의 사진을 찍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그 4천일, 4천장의
사진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의미를 만들었다.
그 사진 안엔 소설가
친구인 폴의 죽은 아내도 찍혔다. 그것을 보고 눈물짓는 폴.
인간은 그렇게
무상하게 하루하루를 살다 죽어갈 것 같지만 그 세월 중 하나가 누군가에겐
이렇게 눈물을 짓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우스운 건 그
사신을 찍게된 동기다.
자세한 건 여기 다
밝히진 않겠지만 중요한 건 오기의 사진기는 훔친 거라는 거다.
훔친 건 옳지 않으며
내 노력이 들어간 것이 아니니 가짜다. 그런데 그 훔치는 과정은 진짜다.
우연찮게 어느 눈먼
흑인 할머니의 하루 손자가 되어 가출해 몇 년만에 다시 돌아와
할머니의 그리움을
달래 드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할머니
역시 가짜 손자라는 걸 알지만 성실하게 손자 역할을 해 준 오기에게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속아 준다. 겉은 가짜지만 진심이 통하는 것이다.
어쨌든 훔친 건 옳지
않고 가짜지만 거기에 또 진실을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담으려 했다.
난 이게 미국식
이야기의 서정이고, 힘이라고 생각한다.
보고 있으면 지루하긴
한데 맨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엄지 손가락을 쳐들게 만든다.
이 별 것 아닐 것
같은 이야기에 이만한 진실을 담고 있다니!
난 이 영화를 다시
보는데 20년이 걸렸다.
훗날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땐 20년씩이나 안 걸릴테다.
못해도 5년안에 다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