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 자넷 맥티어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늘 한나 아렌트와 로자 룩셈부르크를 같은 사람으로 혼동하곤 한다.

이 영화를 발견했을 때도 난 로자 룩셈부르크를 생각했다. 만일 내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전기 영화를 본다면 한나 아렌트를 생각 하겠지.

 

알다시피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 내용을 보며, “악의 평범성을 개념화시킨 철학자다. 영화는 바로 이것이 나온 전후 배경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전기 영화는 잘해야 본전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봐도 나쁘지 않고, 안 봐도 그다지 섭섭할 것 없는 장르다. 우린 그 사람의 생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니.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는 재미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한나 아렌트다. 발견한 이상 예의로라도 봐 줘야 한다.

 

           

영화가 역시 좀 아쉽긴 하다. 악의 평범성을 발견한 한나 아렌트를 조명하기 위한 거라면 나쁘진 않는데, 악의 평범성을 이해시키기엔 다소 모자라 보인다. 뭐 당연한 것 같긴 하지만. 놀라운 건, 한나 아렌트가 이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당대 학계나 지성계에 주목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차가운 냉대와 비판을 견뎌야 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한나가 무엇을 해 주길 바랐던 걸까? 그것은 당시론 듣보잡이거니와 만일 당시의 홀로코스트가 이것을 인정한다면 그들이 나치 독일에 받은 박해와 수모 역시 평범한 것이어서 약화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그녀가 홀로코스트를 옹호하거나 최소한 조용히 있어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한나가 여자기 때문에 더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러므로 해서 2차 세계대전 같은 비극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악의 평범성은 한나 아렌트가 아니어도 그 누군가는 발견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대의 홀로코스트 이후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민중 대학살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홀로코스트의 아픔을 쉬 떨쳐버리지를 못하는 것이다. 하긴 전범재판이 먼 과거의 이야기도 아니고, 그 시대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것인데 거기서 악의 평범성을 논한다는 건 미친 짓일 것이다.

 

그런데 비해 한나가 가르치는 대학의 학생들은 그녀를 지지한다. 그 대조가 인상적이다. 뭐든지 그 분야가 발전을 하려면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이런 한나 아렌트의 후학들은 또 악의 평범성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갔을까? 악의 평범성을 너머 정당성을 확보해 나갔을지 모를 일이고, 악의 평범성이 있다면 선의 평범성도 있다고 본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영화는 역시 이미지다. 나름 지적인 영화긴 한데 토론하고 논쟁하는 장면이 영화의 전체를 차지하고 있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담배 피우는 장면이 영화 전체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뭐 지성과 흡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같긴 하다만 담배 피우는 장면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긴 한다. 특히 한나가 어찌나 담배를 맛있게 빨아대는지 만일 나도 옆에 담배가 있었다면 끌어 잡아 당겼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에 들은 얘기지만, 어떤 남자는 여자가 담배 피우는 모습에 매료되어 청혼을 했다고도 하는데, 그게 그렇게 매력적인 건지 담배를 안 피우는 나로선 믿거나 말거나한 얘기다.

 

솔직히 그렇게 건강을 부르짖으면서 왜 피우면 피울수록 건강해지는 담배는 못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랬다면 나도 분명 피웠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영화의 종반 한나 아렌트가 사람들의 비난과 냉대 속에서도 자신의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 담배를 피우면서 타이핑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예전엔 담배를 구름과자라고도 했는데 정말 그녀의 책상에 담배와 재떨이 대신 과자 한 봉지 놔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새우깡. 그리고 어느 광고 문구처럼 그분의 책상에 새우깡 한 봉지 놔드려야겠어요.”하고 싶다. 빼빼로가 나으려나?

 

갑자기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언제고 그녀의 평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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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28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흡연과 지성은 무관합니다..

stella.K 2016-07-29 13:11   좋아요 0 | URL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전 그냥 이미지를 얘기했을 뿐인데...

cyrus 2016-07-29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흡연을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담배에 들어있는 주요 성분을 빼면 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겠지만, 문제는 담배 특유의 맛과 느낌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담배 회사가 담배 속에 들어가는 유해물질을 포기하지 못하죠.

stella.K 2016-07-29 13:1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인간이 못 만들어내는 게 뭐가 있어?
인공장기도 만들어내는 마당에.
몸에 좋지는 않아도 무해하게는 만들 수 있잖아.
옛날에 담배는 구수한 냄새가 있는데 요즘의 담배는
냄새부터가 강하잖아.

2016-08-07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8-08 14:14   좋아요 0 | URL
한나 아렌트의 다큐 영화도 있나 보더라구요.
보진 못했지만 그게 좀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이건 극영화라...
 

엄마가 대장암을 앓게 된 후로 집안일의 거의 대부분은 내 차지가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차츰 회복 중이시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암은 왜 밤이 되면 그렇게 고통스럽게 사람의 몸을 조여 오는 걸까? 그런 밤이 엄마에게 한 달 넘게 지속이 되었고 그 때문에 아침엔 종종 녹초가 되곤 하셨다. 그런 엄마에게 집안 일 하나라도 대신 맡아주길 바란다는 건 근래 난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엄마는 성격상 가만히 있는 것을 못 견뎌하시는 스타일이라 당신이 할 만한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시는 편이고, 나 역시도 모른 척 가만히 지켜보기는 하지만 예전만큼 마냥 편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지는 않는다. 건강할 때 집안 일 중 빨래는 엄마가 담당할 때가 많았다. 그런 것을 어느새 난 그 일까지 점령해버리고 만 것이다. 하긴, 엄마가 건강하셨더라도 이 일은 진작 내 일이 됐어야 했다. 늙은 어미 일하고 있는 모습을 간단히 보아 넘길 자식이 얼마나 있겠는가. 물론 건강할 때도 빨래 중 3분의 1은 엄마의 몫이고, 3분의 1은 나의 몫이며, 그 나머지는 세탁기가 할 일이었다

 

엄마는 늘 빨래를 온전히 세탁기에 맡기지 않으셨다. 늘 애벌빨래는 당신이 직접 손으로 하셨지만 기계엔 영 적응을 못하셨는지라 그 어머니의 그 딸이라고, 역시 기계치인 나는 그나마 헹굼에서 탈수까지의 기계 작동 정도는 가능해 이 모든 기능이 완료되면 너는 것까지가 내 담당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가 언제 빨래를 하건 엄마는 상관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어제는 이른 아침 내가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도둑빨래라도 할 모양이었던지 당신이 먼저 서두는 것이 아닌가. 정말 근래에 없던 일이었다. 엄마는 속옷만큼은 세제 푼 온수에 담가놔야 때가 잘 빠진다고 완고하게 믿는지라 이것을 거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 동생이 샤워를 하고 더운물이 남아 있을 테니 그것을 이용해 빨래를 하려는 것이란다. 아유, 깜짝도 하셔라. 더운물은 조금 있다 나도 필요한데 그때 보일러 틀어 해도 되는 것을 그새를 못 참고 일을 벌이다니. 물 어라도 봤더라면 알려 드렸을 텐데.

 

사실 그때 나는 날씨가 더워서인지 요즘 연일 잠을 설치는 바람에 밀린 독서를 하고 다시 아침식사 때까지 잠시 눈을 붙여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일에 차질을 빚게 생긴 것이다. 그래도 당신으로선 건강만 했더라면 본래 해 왔던 일이기도 하고, 그동안은 딸이 해 왔으니 이번만큼은 쉬게 해 주고도 싶으셨으리라. 그런데 기계를 쉬 작동하지 못하니 오히려 딸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도 그렇지. 짜증난다고 차마 대놓고 부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말이 나갔을 리는 없었다. 그러자 엄마는 세탁기 어떻게 설정하는지 가르쳐 주면 그대로 할 테니 너는 들어가 잠이나 자란다. 앓느니 죽지 그 설명을 또 언제 하겠는가.

 

어쨌든 기계작동은 내 담당이니 잠시 후 나는 헹굼과 탈수를 설정해 놓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 그런데 또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잘 돌아가던 세탁기가 멈추는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엄마는 내가 설정해 논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직접 해 보겠다고 세탁기 앞에 어리둥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엄마가 기계작동을 아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머릿속에 정확히 입력이 안 돼서 그렇지. 대충은 아신다. 그나마 빨래를 오랫동안 안하셨고, 긴급하게 세탁기를 작동할 일도 없었으니 아예 그쪽으론 퇴화가 되어버리셨던 것이다. 그런데 난 또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이했으니 역시 이번에도 짜증을 안 냈을 리 만무하다. “오늘은 왜 그러는데?”

 

난 그저 엄마가 이런 시간에 빨래를 하겠다는 게 낯설었다. 엄마가 굳이 신경을 안 써도 다 알아서 할 것을. 모든 일의 질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아무리 전에 했었다고 이렇게 다시 비집고 하려고 해도 맡아서 일을 해 왔던 사람의 무의식이 그것을 쉽게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근래에 보기 드물게 빨래를 깨끗이 빨아 너니 그도 한갓지고 좋았다. 평소 같으면 이제 막 시작했을 시간에 빨래를 마쳤으니 시간을 공으로 번 것 같았다. 나는 조금 아까 엄마 앞에서 예쁘게 말하지 못한 죄도 있고 해서, “아유, 얼마만이야, 이렇게 일찍 빨래를 마쳐 보기는. 일찍 하니까 좋으네. 하하.”하며 그렇지 않아도 없는 아양을 떨어 본다.

 

그런데 나는 머리가 나쁜 아이였을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 그것도 그나마 새벽에 통증이 없으니까 할 수 있었던 거지, 통증이 있었어 봐라. 이 시간에 어림도 없어.”하는 것이다. 그랬구나. 내가 귀찮게 여겼던 시간이 엄마에겐 그리도 되찾고 싶었던 시간인지도 몰랐다. 건강했을 때 여름 아침이면 일찍 빨래를 마쳐놓고 엄마는 종종 나와 비슷한 말을 하곤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언제부터 엄마가 빨래를 하며 살았다고 저렇게 수선을 피우는 걸까 짜증부터 냈으니. 엄마에겐 축하받아 마땅할 일을 나는 한갓 귀찮다는 생각 따위로 누르려 했던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나만 아는 아이로 자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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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7-19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르셨을 몸으로 밤마다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 상상하니 뭐라고 해야할지. 저의 아버지도 밤에 주로 고통을 느끼셨는지 언제나 웅크리고 계셨었어요. 암이 무서운 건 고통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어머님께 그냥 푹 쉬시라 하세요. 딸 좀 부려 먹으시지. 암 이전의 일상이, 평범했던 일상이 그리울 것 같기는 합니다. 스텔라님도 힘드시겠지만, 우리 평범한 일상에 감사해야 할 것 같아요.

stella.K 2016-07-19 18:3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요즘엔 그래도 고비를 넘기셨는지 요즘만 같아도
살 것 같다고 하시네요. 더 이상의 통증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앞으로 어떨지 모르겠어요.
정말 아플 때 제일 그리운 건 일상인 것 같아요.
건강할 땐 하나도 좋지도 않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것이
아프면 이것도 못하나 얼마나 서럽던지.

기억님 아버님도 암이셨군요.
저의 엄니 보니까 이게 이젠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더군요.
건강이 최고여요.^^

yureka01 2016-07-19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시고 싶은대로 보조 맞춰 드리세요...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려하는데 말리면 스트레스거든요..

내 마음같아선 그저 빨래는 잊고 당신 자신의 몸과 마음이나 추스리련만,

엄니 마음이 또 그렇지가 못하거든요.

건강 찾으셨음 좋겠습니다.....

stella.K 2016-07-20 14:01   좋아요 2 | URL
그게 그렇더라구요. 제깐엔 엄니 신경 쓰지 않게
지금까지 군소리 않하고, 귀찮다는 내색도 안하고
하느라고 하는 건데 꼭 요런데서 삑사리가 나는 거죠.
요즘만 같아도 엄마가 편안해 하시니 저도 마음이 편합니다.
이게 좀 앞으로 길게 갔으면 좋겠어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슴다.^^

페크pek0501 2016-07-21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나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함은 우리에게 늘 있는 일 같아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나면 후회할 일이 생기지요.
그래서 인간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면 좀 기분이 나아진답니다.
옥신각신하는 소리도 어쩌면 행복한 잡음일지 모릅니다.

stella.K 2016-07-22 14:10   좋아요 0 | URL
맞아요. 행복한 잡음!
오늘도 빨래를 또 하셨습니다.
전 이상하게 엄마가 빨래하는 걸 그냥 못 넘기는 것 같습니다.
내일쯤 해도 되는 걸 오늘 기어이 하셨으니.
당신이 먼저 나서서 하시려 하는 걸 보면
그만도 건강이 많이 회복된 건데
저는 이러고 있습니다. 흐흐
 

정지돈의 <내가 싸우듯이>를 읽으면서, 새삼 내가 우리나라 작가 특히 젊은 작가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다는 것과 그러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생경함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 생경함을 다소나마 완충하기 위해서라도 읽어줘야 하는 것일까를 또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난 이런 결심을 섣불리 할 수 없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나 자신하고라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의 방침이다. 결심한 바를 지키지 못해 나 자신을 자책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책이란 모름지기 좋아서 읽고, 호기심으로 읽는 것이어야 하지 않는가. 충격을 줄이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정지돈을 좋아하는 독자도 있다. 당연한 거다. 내가 싫다고 남도 싫어하리란 법은 없다. 내가 좋다고 남도 좋으란 법도 없고. 다 취향의 문제이긴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을 읽고 내가 느끼는 건 세대 차이에서 오는 문화 충격 뭐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걸까?

 

그런데 그렇게만 얘기할 수 없는 건, 누구의 분류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지돈의 작품을 소설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에세이나 그가 작가의 말에서 그리도 강조해마지 않았던 것처럼 비소설로 분류했더라면 이 책은 독자들로부터 비판을 피해갔거나 덜 비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왜 굳이 소설에 분류시켜 문제를 야기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는 왜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썼다 비소설로 전향한 외국 작가의 예를 굳이 들었던 것일까? 그냥 그렇게 쓰고 싶다면 쓸 일이지 자신을 이해시켜야만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걸까? 게다가 작가의 말이 왜 그리도 어려운 건지 한 편의 논문을 연상시킬 정도다. 이는 추측컨대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자신의 소설이 들 끊을 것을 예견했거나, 이러한 장르도 있다며 무지한 독자를 일깨워야겠다고 생각했던가.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시대가 외면한 불운한 소설들. 당대엔 이게 무슨 소설이냐고 질타를 받았지만 결국 시대를 뛰어넘은 작품들. 이를테면, 자신의 작품이 그렇게 되길 또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어쨌든 소설의 지경이 넓어져야 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평론가들은 어땠을까? 어쨌든 정지돈의 이번 작품은 평론가들에게도 새로웠을 것이다. 젊은 소설가들이 새로워봤자 얼마나 새로울 수 있을까? 그 밥에 그 나물이건 평론가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젊은 소설가들에게 기대하는 건 실험적이라는 건데 내가 얼마 전 그의 작품을 읽고 제목에도 썼지만 정지돈의 작품은 명백히 소설이 아니다. 그런데 평론가들은 자신이 특별하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굳이 소설이 아닌 작품에 실험적이라는 이유로 소설임을 자처했던 것은 아닐까? 비소설도 소설이라 우기면서. 그러면서 우리 평론가들도 소설을 보는 눈이 이만큼 넒어지고 달라졌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아닐까? 만의 하나 그렇게 생각하는 평론가들이 있다면 그는 지진아거나 벌거벗은 임금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평론가가 자기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을 말한다면 그게 어디 평론가란 말인가.

 

그래서 말인데 이제 우리나라 문단계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고, 소설의 안경을 쓰고 비소설을 논하고자 한다면 그것처럼 소모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소설은 소설이고, 비소설은 비소설이다. 그것은 소설이 문학의 왕좌의 자리라도 꿰찬 양 여간해서 비소설을 허락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비소설을 소설 보다 못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소설은 무엇이고, 비소설은 무엇이며, 에세이는 또 뭐란 말인가? 소설이 아니면 에세이로 보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리뷰에도 썼지만) 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현재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다.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에세이가 아닌 비소설 같은데, 왜 정지돈은 소설로 분류하면서 비소설이라고 하고, 왜 이석원의 작품은 그렇지 않은가? 이석원의 작품도 어느 정도 일정 수준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한데 에세이라고 보기엔 덜 정제된 느낌이다. 내가 알기론 에세이는 꽤 고급한 문학 형태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게 불러주기엔 그건 또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면 비소설이어야 맞는 거 아닌가. 그러기엔 또 이 나라 문학계가 비소설을 서자 취급해 온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문학은 정리가 안 된다. 문학에 서자가 어디고, 적자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차별은 존재하는 것 같긴 하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서로 형태는 달라도 비소설을 쓰기는 이석원이나 정지돈이나 같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시선이 다르다. 이석원을 알다시피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그러니까 예능인이고, 정지돈은 문학 그것도 창작을 전공하고 영화까지 전공한 재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석원은 딴따라고, 정지돈은 귀공자라는 것이지. 그리고 평론가들은 당연 이석원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라이선스를 가진 정지돈만을 주목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작가에 대한 편 가르기도 그들의 세계에선 있을 거라는 걸 나는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내가 비소설을 허하라는 건, 평론가들이 비소설을 논하지 말고 비소설가과 독자들이 비소설을 논하도록 하라는 것이고, 비소설 작가들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며, 비소설에게도 문학의 자리를 내주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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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7-1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소!

기억의집 2016-07-18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제가 이십대초반에 밀란 쿤데라 소설 읽는데 너무 신선한 거에요. 아마 쿤데라가 에세이형식의 소설인가 그런 스탈로 소설을 썼던 것 같아요. 프라하의 봄이나 불멸. 저는 불멸 읽고 신선한 충격울 받아.... 제가 천주교를 다니며 아네수란 세례명을 수여했울 정도로요, 한동안 쿤데라 소설 좋아했어요. 소설의 형식은 가보지 못한 길, 이라 해도 좋을 듯 싶어요. 여러 형식을 만나고 다양한 형식이 인정 되어야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혹 메탈리카라는 구룹 아세요. 제가 한때 좋아했던 메탈 구룹인데 거기 리더인 보컬 제임스 핫필드가 이번에 물리학 박사 학위를 땃다고 하더라구요. 전문이 양자역학인지 어느 분야인지 모르겠지만 메탈 구룹이라고 딴다라라고 배척하지 않고 박사 학위 딸 정도로 밀어준 물리학계 사람들이 대단하더라구요. 참고로 메탈리카 한 해 수입이 왠만한 중소기업 저리 가라입니다. 수백억 할 겁니다. 그런 사람이 다른 분야에 도전해서 학위 딸 정도면, 우리도 이석원이든 딴다라든 그 누구라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고 장르의 벽을 넘어 고급/ 저급의 가치를 없애야 많은 이야기들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stella.K 2016-07-19 12:57   좋아요 0 | URL
와우, 기억님은 참 젊게 사시네요.
메탈리카는 들어보긴 했는데 팝송을 안 들은지가 하도 오래돼나서
가물가물하네요. 그런데 리더가 물리학 박사를 땃다니 대단하네요.
사실 이석원이 대중적이기도 하고, 글 역시 대중적이기도 해요.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겠지만 공감의 글은 정지돈 보다 훨씬 잘
쓸 수 있다고 보고봐요.
정지돈은 문학판 꼰대들이나 좋아하겠죠.
우리나라는 아직도 시야가 넓지가 못해요.ㅠ

yureka01 2016-07-18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옳소..!~~
소설이면 어떻고 비소설이면 어떻습니까.

젊은 친구들이 시쳇말로 그러더군요.
취존하십니다.이렇게 ^^.

stella.K 2016-07-19 12:58   좋아요 1 | URL
헉, 취존이 뭐죠?ㅠ

yureka01 2016-07-19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취향 존중이라고 하더군요..~ㅋ

stella.K 2016-07-19 14:39   좋아요 1 | URL
아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알 것을...ㅎㅎㅎ

전 이번에 정지돈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나라 문학계의 쓸데없는 권위의식에 배가 꼴리더군요.
대중과 소통하고 더 존중받는 문학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ㅋ

수이 2016-07-2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 3000퍼_입니다.

stella.K 2016-07-20 13:58   좋아요 1 | URL
와우, 300도 아니고 3000퍼요?
고맙습니다.^^

syo 2016-07-2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 읽고 쓴 제 글이 부끄러웁네요;;
전 이 책속의 글들이 당연히 소설임을 전제로 깔고 생각하고서는 스스로 나는 참 소설장르를 수용하는 폭이 넓구만, 그러고 오만하는 중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좁게 보고 있었네요ㅎㅎ

stella.K 2016-07-26 16:16   좋아요 0 | URL
아유, 그 무슨 말씀을...
생각하는 바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자책하지 마시길...^^
 

방금, 누가 나에게 그런다. 나는 양비론자 같다고.

진보도 틀렸고, 보수도 틀렸다고 한단다..

내가?

나는 얼른 얼버무리듯 내가 뭘 몰라서일 거라고 대답했다.

뭘 알면 한 가지로만 갈 텐데 하면서.

 

그런데 그것도 솔직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진보가 어딨고 보수가 어딨냐?

그렇게 말하는 게 웃기는 거지.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다.

그래서 양비론자라면 그건 맞는 말 같다.

 

얼마 전 TV를 보니 우리나라 여자 아이들 중에

생리대 살 돈이 없어 학교를 못 가거나,

생리 기간동안 단 하나의 생리대 가지고 버티거나,

심지어 운동화 깔창 가지고 버티는 아이들이 있단다.

생리대 같은 건 생활필수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생리대 하나 가격이 미국이나 일본 보다 비싸단다.

331원. 다른 나라들은 2백원이 채 안 되는데.

우리가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다.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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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7-15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비론자일 수 밖에 없는, 복잡하고 다변적 가변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양쪽 모두 틀렸다는 말은 곧 양쪽 모두 일리있는 면도 있다와 상통하기도 하겠고요.
아직 굶는 아이들도 있는 이 나라에, 생리대는 언감생심일지도 모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stella.K 2016-07-15 17:26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예요. h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양비론은 양시론과 일맥 상통하는데
전 제가 황희 정승 같아 너도 옳고, 너도 옳다는주의인 것 같은데
남들은 절 양비론이라네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걸 좋아하지 않잖아요.
뭔가 이거 아니면 저거여야 하잖아요.
안 그러면 회색분자라고 몰아부치기나 하고.ㅠ

cyrus 2016-07-15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의 입장의 약점을 공격할 때 제일 많이 쓰는 방식이 진보, 보수 언급하는 거예요. 그런 소리를 들으면 내 입장이 진보에 속할까, 보수에 속할까 혼란스러워져요. 여기서부터 꼬이는 거죠. 이념의 단어에 한 번 씌워지는 순간, 서로 대립하는 양쪽 입장의 차이를 서로 좁히지 못해요.

우리나라도 생리대 역사가 오래된 편인데, 여전히 생리대라는 단어를 금기시하는 인식이 남아서 그런지 이런 생리대 문제와 관련된 토론이 펼쳐지지 못하는 것 같아요.

stella.K 2016-07-15 17:3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이게 다 정치하는 것들이 자신을 위롭게 하기위한
술수잖아. 우리라도 이런 진영 논리 타파해야 하는데.
그래서 저들의 술수에 놀아나지 말아야 하는데...ㅠ

그게 e지식채널에서 보여준 건데 그래서 생리대 지원 사업을 검토중이라나
뭐라나 그러는 것 같은데 아직 이렇다할 보도가 없네.
정말 쪽팔리다고 생각해서일까?
그거야 말로 극빈자 아이들을 개 돼지로 만드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겠니?
걔네들도 좋은 생리대 쓸 권리가 있는데 말야.
책임을 통감하지 않고 오히려 민중을 폄훼하는 거 정말 없어져야 하는데...ㅠ
 
내가 싸우듯이
정지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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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20여 년 전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 나왔을 때, 앞으로 우리나라 소설가들은 이렇게 소설을 쓰게될 것이라고 했다. 즉 소설을 쓰기 위해 발로 뛰어 다니지 않고 그렇게 책상에 앉아 텍스트를 보고 상상력을 더해 글을 쓸 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지돈의 소설집을 보니 그 예견에서 한 발 더 진화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작가는 소설은 40대 이전에나 읽을 수 있는 장르라고 했다. 그에 비해 정지돈의 이 책 어디쯤 고다르는 그 보다 앞당겨 30대라고 했다. 그러니까 소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잘 안 읽는 장르라는 것이다. 난 그 말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소설을 아주 안 읽는 건 아니지만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한때는 소설가를 꿈꿨던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가장 큰 이유는 눈이 나빠져서다. 눈은 앞으로 계속 나빠질 것이고, 다른 안 읽는 책도 많은데 소설에까지 내 시력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TV만 틀면 화면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비주얼과 스토리 좋은 영화나 드라마가 많은데 굳이 소설 하나 가지고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무엇보다 나이가 들면 공감능력은 좋아지는 것 같은데, 순간 판단력이나 집중력은 떨어진다. 그래서 안 그래도 책을 읽으면 잡생각이 비집고 들어 올 때가 많은데 소설을 읽다가 앞뒤 문맥을 내가 지금 잘 이해하고 있는 걸까 자꾸 의심하면서 읽는 건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점점 소설을 안 읽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이유는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면 요즘 소설에 대해 꼭 한 번씩은 말하게 되는데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그다지 긍정적이지마는 않다. 이걸 요즘 소설가들은 알고 있을까? 모르지는 않을 것 같다. 어떤 소설이든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지만, 방금 책 읽기를 마친 비소설계의 신예 작가며 후장사실주의의 창시자인 정지돈 역시 그것을 피해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내가 비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고 나서다. 이 책은 현재 에세이로 분류되고 있는데, 난 이 책이 에세이라고 보기엔 너무 소설 같고 소설이라고 보기엔 서사가 약해 보이며 개인적이다. 원래 책이라는 게 읽었을 때와 읽고 나서의 느낌이 다르긴 한데, 이석원은 그의 책이 진실성을 담보한다는 점에선 여전히 좋긴 하지만 아직 그의 문학성을 논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이석원은 문학성 같은 거 따지고 글을 쓸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독자는 자신이 읽은 책은 어떤 식으로든 분류하길 좋아하는 족속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 작가가 문학 판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지 지켜보고 싶어진다(하긴, 그런 분류가 뭐 그리 중요한가? 무엇이 됐건 재밌고 감정이입만 잘 되면 되는 거지). 그런데 같은 비소설로 정지돈은 이석원 보다 한 수 위로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데, 그것은 그가 영화를 전공하고(이론 쪽인 것 같기도 하다), 문예창작을 공부했다는 것이 작용해서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이 소설집은 누가 봐도 소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지는 이걸 굳이 소설에 끼워 넣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소설의 생명은 서사에 있다고 보는데 이렇게 서사가 없는 작품을 소설에 끼워 넣고 문학상을 줄 수가 있을까? 어쩌면 정지돈이 10년만 일찍 작가가 되었어도 입상 자체가 불가했을지 모른다. 이걸 두고 문학이 권위주의를 벗었다고 말해도 좋은 것일까?

 

정지돈을 소설에 배치해서 하는 말인데, 그 보다 한 세대 앞선 작가들 중엔 독자들로부터 이것은 내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라는 말을 듣기 위해 쓰는 작가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감정이입. 공감 뭐 이런 것을 중요시 여긴 작가들이라면 말이다. 물론 정 작가와 같은 세대 작가들 중 그런 작가는 지금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작가를 좋아한다. 독자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작가. 내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은 대신 말해주는 작가. 나는 그런 작가는 자신의 작가됨을 확실히 아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지돈에게는 이런 잣대를 댈 수 없다.

 

그의 작품들을 읽어보라. 어느 한 작품이라도 이건 내 얘기를 하고 있군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있는지. 뭔가 여태까지 접해 보지 않은 것이라 신선하긴 한데 대체적으로 좀 부산스럽다. 그리고 이런 작품을 소설로 분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문학이 개인의 사적인 경험과 생각들을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빨리 개인주의화가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그리고 동시에 자기 동굴 안에서만 놀고 태만해진 것은 아닌지 의구심도 든다. 확실히 세대가 달라지긴 했다는 걸 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전 세대 작가들은 뭔가의 치열함이 있는데 요즘 작가들은 확실히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것 같다. 문학이란 게 과연 뭔지 아득해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이렇다 할 서사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었던 건 내가 모르는 예술가들의 삶과 뒷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다. 난 이게 항상 흥미롭다. 읽으면서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할 정도로 작가의 정보력은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작가가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기본인데 그 점에 있어서는 그는 가히 합격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글쓰기의 법칙 중 하나가 빙산의 일각이란 법칙이 있다. 알면 안다고 해서 그걸 다 써 먹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굳이 이것을 숨기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알면 아는 대로 자신이 메모한 것들을 압축 정리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소설이야 싶은 것이다. 그래서 후장사실주읜지는 모르겠다만.

 

그 후장사실주의라는 것도 사전에는 없는 말로 내장사실주의를 패러디한 일종의 정 작가가 말의 유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존의 문학계가 서사에만 매달리고 그것만을 문학으로 인정하는 것에 대한 반발과 저항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런 정신이라면 독자인 나도 일단 환영이다. 그래서 보다 다양하고 새롭고 자유로운 문학 형태가 나온다면 그도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후장사실주의에 찬동하는 일군의 작가들이 있단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다. 한국 문학이 서사에만 매달렸다고 언제부터 오해를 받아 온 걸까? 요즘 나온 소설 중에 제대로 된 서사를 갖추고 있는 소설이 과연 있었던가? 겨우 스토리라인만을 갖추고 온갖 폭력과 섹스 묘사 등에 탐닉하며 그것이 일종의 자아의 깨달음인 양 해 오지 않았던가? 어쨌든 이렇게 서사는 약하면서 묘사에만 치중한 오늘날의 문학을 반성하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일군의 작가들이 있다는 걸 볼 때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다소 어패가 있어 보인다. 단지 묘사에 충실한 작품을 서사로 착각하고 그런 작품에 문학상을 주고 문학이라고 봐 온 우리나라 주류 문단계가 잘 못이겠지.

 

하지만 묻고 싶다. 기존의 문학도 그렇고 이 후장사실주의라는 것도 그렇고 도대체 독자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고. 이례적으로 정지돈 같은 작가에게 상을 수여했다는 건 괄목할 만 하긴 한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건지 독자인 나로선 도무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후장사실주의가 (유희로 나왔든 저항의 의미로 나왔든)나왔을 때 그 생경함도 생경함이지만 우려스러움도 없지 않았다. 이건 작가와 독자를 나누는 또 하나의 벽이 되는 건 아닐지. 이건 그저 작가가 듣고 아는 얘기를 전달해 주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데 왜 이게 나에겐 생경한 걸까? 적어도 이걸 소설의 범주에 넣지만 않았어도 그 생경스러움은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문학계가 바보가 된 건지 독자인 내가 바보가 된 건지 헷갈린다. 그래놓고 문학계는 한국문학이 다양함을 시도했다고 자위하겠지? 이런 생경함이 독자를 또 한 번 외로움 내지는 냉소주의에 빠뜨린다는 것도 모르고.

 

작가는 뭐하는 사람일까? 자기들만의 성을 짓고 그 안에서 희희낙락, 독야청청 하는 게 과연 작가인가? 그리고 어느 땐가 외로워지면 독자들이 너무 자기네들을 이해 못한다고 역시 작가는 고독해 하며 한숨이나 짓는 게 고작인 건가?

 

아무튼 난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작가가 뭔가 하나는 버리고, 하나는 취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후장사실주의 그도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 이상의 것을 말할 수 없고 보여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아는 척 하지 않고 딱 자기가 아는 것만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 새로움은 좋을지 몰라도 내가 앞에서 말했던 이 소설은 나를 말해주고 있군요.”란 말은 듣지 못할 것이다. 이는 곧 일부 독자에게 새로운 유희는 안겨줬을지 몰라도 소통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게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어떤 작가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글로 독자를 일깨우고 그들을 이끌 수 있다고. 그게 얼마나 무모하고 자신을 고립시키는 말인지 깨달을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 작가는 시답잖은 작가정신은 좀 그만 들이댔으면 좋겠다. 고독한 영웅의식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는 독자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고통이 무엇이고, 표현되지 못한 언어와 감정을 대신 표현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를 외롭게 하고 무슨 고독한 영웅인 척 하는 것인가.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는 좀 더 민중적이고 친근해졌으면 좋겠다. 어설픈 작가정신 같은 건 개에게나 줘버리고 차라리 배우정신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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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나 실험적인 구성인가 보죠 ? 가끔 꽁트를 소설이라고 우기기도 하죠.. 김중혁처럼..
처음에는 눈여겨본 작가인데 계속 그짓하니 실망스럽더군요..
피카소의 데생 실력이 꽤 훌륭하다고 하죠 ? 그 바탕 위에 지금의 화풍이 만들어진 것인데
소설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사와 묘사가 탄탄하고 나서 실험적인 구성을 선보이는 것은 좋은데
몇몇은 대놓고 실험적 구성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stella.K 2016-07-12 17:53   좋아요 0 | URL
차라리 실험적이면 낫게요? 이건 뭐 어느 잡지에 실릴만한
딱 그만큼의 글을 가지고 소설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소설이
마음이 너그러워진 건지, 정신이 나간건지 그걸 모르겠어요.
읽기는 그럭저럭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래가지고 한국문학의 미래를 얘기할 수 있을까?
한숨이 나오드라구요. 아휴~

아이리시스 2016-07-12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비슷한 이유로 한국소설을 끊은 것 같아요. 도서관에서 가끔 빌려와도 앞만 뒤적이다 다시 반납합니다. 그래도 최근에 <종의 기원>을 샀고 <붉은 소파> 선물받았는데.. 안 가진 한강 소설을 사모으려다 시기를 놓쳤습니다. 나만의 신예작가 발굴보다 신경숙,공지영,김인숙,정유정,한강 등 신작나오면 기대없이 들추는 정도로만 한국소설에 관심있어요. 그렇게 되어버렸는데 까먹고 있었네요. 그런데 저는 대학때도 그랬던 것 같고.. 그러면 안되지만 너무 재미 없어요. 어쩌면 외국소설만 찾는 게 타언어를 신격화한데서 오는 감정인가 싶어서 반성도 해보는데, 비소설도 일단 해외저자인 경우 관심이 먼저 갑니다. 그렇지만 글을 재밌게 잘 쓰면서 인기도 많으면 좋죠. 수준만 따지기보다는.. 좀 깐깐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게 좋은거지 싶고 돈 많이 버는 작가 부럽고.. 실험도 필요하지만 제가 한국문학계에 갖는 생각이야말로 완전 상업화되어버린 듯해요. 스텔라님 잘 계시죠? 아, 그리고 더 좋은 책, 재밌는 책, 유익한 책만 골라 읽어요. 시간은 부족하고 책은 많은데..

stella.K 2016-07-12 18:30   좋아요 0 | URL
와우, 오랜만이어요. 잘 지내죠?
한국소설 어쩔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에서만 그러는 걸까요?
언젠가 한류 어쩌고 떠들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설
해외에서 주목 받는다고 소설계도 한류 바람 분다고 어쩌고 떠들면
어쩌나 걱정되더군요.
솔직히 채식주의자 번역자도 너무 좋아서 번역한 건 아니라잖아요.
그런데 그게 어떻게 떨거덕 맨부커상을 받고.
영국 사람들은 뭔가 이국적이고 별스러운 것에 너그러운 민족 같아요.ㅋ

기억의집 2016-07-12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인화가 저런 언급할 때만해도 한국소설 많이 읽었어요. 어느순간 한국소설은 안 읽게 되더라구요. 딱 저 이유때문에요. 앉아서 텍스트 찾아서 머리로 짜집기 하는 순간부터요. 한국 소설 안 읽게 되니 일본소설이 눈에 들어오면서 일본소설 읽는데, 일본작가들이 더 현실에 대한 순발력 있다고 해야하나. 분명 그들도 책상에 앉아 머리로 소설 나부랭이 쓸텐데,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읽었을떼,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을 읽었을 때, 남쪽으로 튀어를 읽었는때부터 뭔가 한국소설하고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쪽으로 발걸음이 서서히 움직여 지더니 이젠 한국문학은 들여다보지도 않게 되었어요. 아 진짜..갖다부치기는 후장사실주의... 아하, 스텔라님 말에 동감하며 후장사실주의 운운에 웃고 갑니다. ㅠㅠ

stella.K 2016-07-12 18:12   좋아요 0 | URL
더 웃긴 건, 언젠가 후장사실주의 잡지가 나왔었다네요.
뭐 신형철, 금정연을 비롯해서 정지돈은 물론이고 젊은 작가들이
주축이 됐다는데 2호는 언제 나올지 자기네들도 모른데요.
아주 지네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피리 불고 난리도 아닌가 봐요.
그놈의 후장이 뭐길래.
한국문학 정신 좀 차려야 하는데.
저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외국소설이 더 끌려요.
그게 꼭 외국에 대한 동경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국소설 뭐 읽을 게 없잖아요.ㅠ

전 같은 비소설이라면 차라리 이석원이 훨씬 낫다고 봐요.
그건 감정이입이라도 할게 있지
정지돈은 난 이만큼 알고 있어.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웃음만 나와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8:06   좋아요 0 | URL
공감. 언제부터 소설이 학술적으로 변했습니다. 대중적이지 않다고 지적하면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라는 말을 들을까봐.. 저도 한국 소설 잘 안 읽습니다.

기억의집 2016-07-12 18:17   좋아요 0 | URL
뭣이 중한디!!! 를 모른다니깐요. 울 작가들. 왜 우리는 부동산 투기 몰락을 이야기할 때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소비에 대해선 화차를 예로 들어야할까 싶습니다. 몇달전에 장정일이 시사인에 다 박유하편을 들면서 우리 나라 소설가들이 위안부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위안부는 강제가 아니였다고 하더라구요. 이 무슨... 전 우리 엄마한테도 울 외할머니가 일제시대때 잡혀가지 않으려고 숨어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사람인데.. 단지 작가들이 위안부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고 위안부는 강제가 아니였다는 논리를 갖다대는데.... 놀랐습니다. 솔직히 이상이나 김동리나 기생치마폭에서 살다 그 세상를 묘사한 게 우리 나라 근대소설 아닙니까! 쪽팔리죠. 장정일식이면, 태평양 전쟁때 징집되어 끌려간 우리 나라 청년들, 수십만명은 다 허구인가요. 소설가들이 소재를 안 삼아서. 맨 머릿속에서만 실험정신 운운하며 후장사실주의 운운하니. 현실의 소재는 유치한가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8:24   좋아요 0 | URL
장정일도 어느 순간 꼰대가 되어 있더라고요.
초기의 총명함은 사라지고......


구월의 이틀인가.. 그 소설 읽다가 쓰레기통에 쳐박았습니다.
여전히 혁띠 풀어서 막 때리면서 보수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보고 참.. 후지구나 했습니다. 이러니 한국 소설 안 읽는 것입니ㅏㄷ.


그리고 기억집 님 말씀에 공감하는 게 일본작가들은 당대의 문제를 바로바로 흡수해서 내놓습니다. 아웃도 그렇고 이유도 그렇고....

근데 한국 소설가는 만날 아버지의 학대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이야기합니다.
프로이트가 굉장히 좋아할 만한 소설만 양산한다고나 할까요..

stella.K 2016-07-12 18:25   좋아요 0 | URL
헉, 진짜 우리나라 작가들 정신 나간 거 맞군요.
아니 그 똑똑한 장정일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네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것도 아니고.
옛날에 민주화 항쟁 때 작가들도 동참해서 글을 썼어요.
그 정신 다 어디로 간 걸까요?
그게 작가정신이지. 뭐가 작가정신이겠어요.
시대를 비추지 못하는 작가도 작가입니까? 진짜 통탄하고 싶군요.ㅠㅠㅠㅠㅠ

루쉰P 2016-07-13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죠 스텔라님 ㅎ 전 아무래도 한국문학은 싫어요 조정래 빼구요 ㅋ 채식주의자도 읽었는데 이게 왜 상 받았는지 원체 이해가 안 가요 ㅎ 전 1850년대 러시아에서 태어나야 했나봐요 그 때 소설만 너무 좋아요 ㅋ

stella.K 2016-07-14 16:50   좋아요 0 | URL
앗, 루쉰님! 제가 먼저 인사해야 하는 건데,
이렇게 먼저 인사도 건네주시고 황송하네요.ㅋ
조정래 작가를 좋아하시는군요.
요즘 신간이 나왔던데 관심이 많으시겠어요.
엊그제 조정래 작가가 나향욱한테 날린 말이있어
저도 갑자기 신간에 급 관심이 가요.ㅎ

마지막 말씀에서 빵 터졌습니다.
1850년대 러시아면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이전인가요?
제가 연대에 약해서 말이죠. 대표로 한 권만 소개해주시면 안 될까요?ㅋ

루쉰P 2016-07-15 00:21   좋아요 0 | URL
에이 뭐 스텔라님도 다 아시는 책들이에요 ㅋ 토...톨..톨스토이요...전 좀 덕후 기질이 농후한 가봐요. 한 작가를 여러 번 읽는 경향이 있어요. 폭이 너무 좁아요 ㅋ 고칠려고 하지만 다른 책은 잘 손이 안가요 ㅋㅋㅋ

아무래도 러시아 체질로 바뀐 듯 ㅋ 글구 전 외국 문학이 더 읽혀요. 뭔가 한국 문학은 처절하고 한스럽고 진득진득한 그런 느낌...외국 문학도 그런 류의 소설은 많지만 한국처럼 진득스럽지는 않거든요. 내가 한국 살아서 그런가? 암튼 그러네요 ㅎ

stella.K 2016-07-15 17:23   좋아요 0 | URL
아하! 맞았군요!
그런데 새삼 우리가 러시아 문학에 대해 아는 것도 참 한정적이란
생각이 드네요. 그 두 영감을 비롯해서
푸시킨, 솔제니친 뭐 이 정도가 아닐까요?

왜요, 전 루쉰님 그런 독서법 좋다고 생각해요.
책 욕심이 많으면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기가 쉽지 않잖아요.
전 정말 두 번 이상 읽은 책이 손에 꼽을 정도예요.ㅠ

한국문학에서 한의 정서를 좋아하기란 쉽지 않죠.
하지만 하도 그지 같은 작품들이 많아서 그럴 바엔
예전의 우리나라 작품이 오히려 괜찮게 돋보이는 것 같아요.
나이들면 그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요.
그래도 우리 문학을 사랑해야겠죠?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