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생각한 것을 이 영화에서 맞닥뜨려지는 기분이다.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랑을 할까, 왜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잘 생기거나 예뻐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라면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상대의 뭔가의 특징과 기능이 자신과 연관성이 있을 때 사랑은 증폭되지 않을까? 그런데 또 드는 생각은 그런 이유 때문에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온당한 것일까? 다시 말하면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불온해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에게서 그것이 없다면 사랑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영혼 없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고 우긴다면, 그건 한창 달아오른 불같은 열정을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확실히 불온한 존재다. 가끔은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니까. 가장 흔한 예는 친구의 애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구한말 우리나라 가요사와 결합하여 나름 장대한 서사시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특별히 우리나라 가요에 있어서 잊힌 창법 정가를 복원했다. 아마도 이 정가는 이 영화에서 처음 접해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 기교가 얼핏 중국의 경극에 나오는 창법을 연상시킨다. 아니면 일본의 게이샤들이 불렀을 법한 창법이 혼합됐으려나? 아무튼 거기서 발전해 트로트가 탄생되기도 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배경은 가수 이난영이 한껏 자신의 존재를 드높이고 있을 때다. 그녀를 좋아해 따라하려는 당시의 가수지망생들과 조선 권번 출신 기생들도 많았을 것이다. 사랑도 시대를 잘 타고 나야하는 것일까? 점점 시들어져 가는 정가를 완벽히 구사하는 소율(한효주 분)과 당시 새로운 창법에 희망이 되는 연희(천우희 분)는 잘 나가는 권번의 둘도 없는 동무다. 이난영의 작곡자로 유명한 김윤우는 원래 소율을 사랑했다. 기교로 보나 기량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무엇 하나 빠질 것이 없다. 그러나 말했다시피 정가는 지는 창법이고, 연희는 정가를 버리고 새로운 창법에 탁월한 기량을 뽐내며 그 존재감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혹시나가 역시나가 된다고 윤우는 연희의 노래에 매혹돼 결국 소율을 배신하고 만다.

 

윤우에게 배신당한 소율이 당시 일본 경무국장의 애첩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윤우와 연희에게 휘두르는데, 한을 품은 여인의 서릿발이 제법 영화의 몰입도를 끌어 올린다. 이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연희는 소율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헤어진 윤우를 찾으러 다친 몸으로 비오는 밤 소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선다. 그때 소율이 빗속에서 외친다. 나에겐 아무도 없다고. 우정도 사랑도 다 네가 가져갔다고. 그러자 연희는 반박한다. 네가 그렇게 된 것은 너 자신이라고.

 

보는 나는 그 지점이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너를 그렇게 만든 건 너라닛! 그처럼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는가? 친구의 애인을 뺏어 놓고. 물론 그건 온전히 연희의 책임은 아닐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하면 죽일 놈은 윤우인지도 모른다. 사랑할 땐 언제고 뭐 사랑할 사람이 없어 내 친구를 사랑하냐고,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하니까 재밌냐고, 내가 소율이라면 따져 묻고 싶은 대목이기도 하다. 설상가상으로 윤우와 연희가 조선을 떠나 이태리로 떠나려고 한 것을 알고, 그나마 일말의 동정심을 베풀려고 했으나 그 마음을 접은 채 연희를 더 어려운 곤경에 빠뜨리고, 결국 그 비 오는 밤 일본 헌병의 총탄 세례를 받게 한다. 나중에 윤우 역시 석방되지만 연희의 뒤를 따른다.

 

이 영화는 굉장한 비극적 서사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남자의 사랑의 배신이 한 여인을 얼마만한 불행으로 몰아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예의 없이 한 여인의 마음에 불쑥 들어와 놓고, 떠날 때 역시 예의 없이 떠났다. 소율이 원래 그렇게 냉혹한 여인이 아니었다. 떠날 때 미안하다. 그동안 행복했노라고 진심어린 말 한마디 했더라도 그렇게까지 불행을 자초했을까? 그게 나 아닌 내 친구였더라도 말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

 

그러나 사랑은 확실히 마법 같은 거다. 특히 소율과 윤우가 한창 좋았을 사랑은. 마법의 시간은 언젠가 반드시 깨게 되어있다. 영원한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인생이란 큰 과정 속에 사랑과 이별도 거쳐야만 할 과정은 아닌지? 우리 인간은 원래 사랑도 서툴지만 이별은 더 서툴다. 그래서 이별을 해 놓고 다시 사랑은 못할 것이라고 엄살을 떨기도 한다. 내가 어떤 식으로 사랑을 했는지를 알면, 어떤 식으로 이별을 하는지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사실 윤우의 사랑은 그렇게 차원이 높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소율도 연희도 누구하나 진정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다. 사랑한 것이라면 그 두 여인의 재주를 사랑했을 뿐이다. 거기에 조선의 마음어쩌고 뇌까리는 건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연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화 종반에 소율이 반쯤 미쳐서 윤우가 작곡한, 사랑, 거짓말이란 노래를 읊조리는 것은 진실이 되어버린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덕목을 많이 갖춘 영화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던 우리나라의 잊힌 창법 정가를 복원했고, 당대의 음반계를 엿볼 수가 있으며, 무엇보다 여인의 심리를 충실하게 표현했다. 그것은 오늘 날 이기적이고 시크 함으로 무장한 도회적 여성상과는 대조적으로, 소박하고 부끄러움으로 애인에게 어필하고자 했던 여인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정말 20세기 초반의 모던한 여성들은 그랬을 것만 같다. 무엇보다 사랑과 우정 그로인한 냉혹과 배신 소율 역을 맡은 한효주는 별 무리 없이 잘 소화해 냈다. 하루아침에 친구와 애인을 읽고 쓸쓸히 나이 들어간 소율의 캐릭터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노래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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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된 영화를 보게되는 경우는 드물다.

벌써 영화의 방식이나 정서가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보기가 버거운 것이다.

이 영화의 제작년도는 1955년. 그나마 개봉년도는 2010년이다. 

왜 이런 영화가 60년도 더 돼서 보게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솔직히 이 영화도 제목이 특이해 선택되긴 했지만 보다가 마음에 안 들면 안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끝까지 봤다. 그것은 영화가 오래도록 잊고 있던 기독교 신앙을 전면에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날 영화에서 신앙의 부분을 다룬다는 건 아주 오래 전에 잊혀진 방식임에 틀림없다. 혹 다룬다고 해도 풍자나 희화된 것으로나 다룰뿐이다. 또 다룬다면 너무 선교 마인드로만 다룰려고 하기 때문에 관객들로부터 외면 받기 쉽다. 

 

그런데 영화는 시종 순수하면서도 진지하다. 이게 믿음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되게 지루하고 진부할 수도 있는데, 신앙인들에겐 오래도록 잊혀진 신앙에 대한 감수성과 진지함을 건드려줘서 과연 오늘 날에도 이런 방식의 영화가 먹힐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마져 보게 만들었다. 영화 진행 방식은 좀 지루하다. 그냥 작가주의 영화 계열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분노의 날>은 17세기 마녀사냥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글쎄.. 영화의 구성상 전반부는 마녀사냥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하나의 예시를 보여주는 것 같다.

 

노르웨이 한 마을에서 벌어진 한 초로의 여인을 마녀사냥의 희생양으로 삼았던 재판에 가담한 엄격한 목사 압살론. 그에겐 젊은 후처 안느가 있다. 이들 부부는 애정없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신학교를 다니는 아들 마틴이 잠시 집을 다니러 와서는 안느와 사랑에 빠진다. 안느는 마틴을 사랑하면 할수록 남편 압살론이 죽기를 바란다.

 

그런데 앞서 마녀 재판에서 그렇게도 살기를 바랐던 초로의 여인이 죽으면서 그에 대해 저주를 쏟아 부어서일까? 또는 애정 없는 아내의 독한 말 때문일까 압살론은 아는 사람의 임종 예배를 다녀 온 후 심장마비를 일으켜 갑자기 죽고 만다. 한편 손자와 새 며느리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을 알게된 압살론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례식에서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 새 며느리를 마녀로 몰아 재판에 넘기려 한다.   

 

이 구도를 보면서 감독은 누구를 위한 마녀재판이냐고 묻는 것도 같다. 얼핏 보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집안 싸움처럼 보이기도 하고, 언제나 그렇듯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걸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이 영화를 낮게 보는 것이고, 마녀사냥을 통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희생 되었는가를 돌아보게 만들고, 종교의 허울로 압살론이나 그의 두 여인이 보여준 사랑과 동정없음. 사랑은 없고 권력만 있는 종교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영화는 잘 보여준다. 더구나 영화는 누가 마녀인가를 더불어 묻고 있기도 하다. 그건 역시 관객의 몫이다. 전편 <오데트>는 따뜻한 인간애를 담고 있지만 이 영화는 다소 무거우면서 묵시적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잔 다르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한 둘이 아닌가 보다. 내가 처음으로 본 영화는 뤽 베송이 연출한 것을 오래 전 보았고, 얼마 전엔 잉그리트 버그만이 언제 이런 영화에도 나왔나 호기심에 보기도 했다. 두 영화 모두는 잔 다르크의 일대기를 다뤘다면, 이 영화는 잔 다르크의 재판 과정에 온전히 포커스를 맞춘다. 더구나 영화는 무성 영화고, 대사는 그다지 많지 않으면서 음악으로 채운 당시로선 꽤 실험적인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잔 다르크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재판 내용은 짐작으로도 알 수 있으니 생략하고, 뭐 그런 독설과 허위로 가득찬 재판에서 신앙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죽어간 어찌보면 순교자 잔 다르크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점은 달리해 보면,  그녀는 남자들에 의해 죽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시골출신의 조그만 소녀가 신앙 하나로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그 사실 자체가 남자들로선 꽤나 굴욕적이었을 것이다. 재판 역시 남자로만 이루어져있고 온갖 중상모략이 난립한다. 그중 잔 다르크에게 동정을 보내는 이성적인 남자도 없지는 않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녀를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그저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연민이 그 나머지를 채우고 있는 듯하다. 또 뱀 같이 혀를 날름거리며 어서 그녀가 죽기를 바라는 남자들의 표정이 굉장히 사실적이다. 

 

물론 잔은 화형을 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구차한 목숨 하나 구한다고 있던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종신형이다. 그럴 바엔 위증을 한 것을 자백하고 죽어 하나님 품에 안기겠다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대단한 신앙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감독은 종교란 관점에서 인간의 허위 의식을 까발렸다는 점에서 영화계의 종교개혁가, 존 칼빈이나 루터를 연상케도 한다. 요즘 우리나라 영화에선 종교을 희화화 하는 경향이 간혹 보이곤 하는데, 그건 안 다루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옛날 영화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드레이어는 영화 철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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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3 16: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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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3 16: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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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3 16: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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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3 16: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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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3 16: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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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3 16: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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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13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

stella.K 2016-09-14 13:16   좋아요 0 | URL
그래. 너도 추석 행복하게 보내라.^^

페크pek0501 2016-09-13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도 받으시고...ㅋ 축하드려요.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stella.K 2016-09-14 13:1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언니도 즐거운 추석 되세요.^^
 

 

 

 

 

 

 

 

 

엊그제야 나는 비로소 내 책을 봤다. 그냥 급한대로 한 권만 가져왔다. 원래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을 보는 것을 지독하리만치 싫어하는지라, 책도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저녁을 먹고 2차로 생맥주집을 갔는데, 가는 동안 내 책을 가슴에 안고 길 가는 누구라도 붙들고 "제가 책을 냈어요!"라고 자랑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꾹 참았다. 

 

어제는 그냥 '글쓴이의 말'만 읽고 습관처럼 어딘가에 꽂아 두려고 했다. 이미 원고만으로도 3번인가, 4번을 봤으니 또 봐질 것 같지 않았다. 근데 이게 또 생각과 같지가 않다. 그렇게 '글쓴이의 말'을 읽고, 결국 첫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아무리 내 글이더라도 원고 상태로 보는 것과 책으로 보는 게 또 다르다. 좀 낯설게 보인다. 이 상태에서 내 문장이 어떻게 읽히는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읽고 보니 내 문장은 좀 과잉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쳅터 하나 하나에 너무 많은 의미를 담으려고 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좀 여백이 있고, 물 흐르듯이 편하게 읽혔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소양이 부족해 보인다. 

   

게다가 오탈자는 정말 징글징글하다. 이건 나도 보고, 교정자도 보고, 편집자도 봤는데 그러고도 부족해 이렇게 또 발견이 됐다. 그걸 보고 어떻게 빨간 표시를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남의 책의 오탈자는 시크하게 잘도 넘어가더만 내 책에 오탈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물론 이제 와 누구를 원망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냥 체크해 두는 것이다.  

 

또한, 한끗 차이더라도 단어 하나, 문장의 어미 하나를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문장 공부를 해 두는 것이다. 이 문장의 어미와 단어가 원래 내가 쓴게 맞는지, 편집자의 편집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공부해 놔야 다음 번 글을 쓸 때 참고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이유 하나가 더 있는데, 어제 경인방송에서 연락을 받았다. 책과 관련해서 방송 출연을 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TV 방송 출연이면(뭐 그럴 깜냥도 못되지만) 거절했을 텐데 라디오 방송 출연이라 허락했다. 그것도 녹음 방송이란다. 나중에 인터뷰 질문지를 보내주겠다는데 어떤 질문이 걸릴지 예습은 해 둬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뭐 자평을 하자면 내 책은 100점 만점에 75점은 줄 수 있지 않을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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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8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오탈자가 있었어요? 저는 못 봤어요. 경인방송 라디오 방송 검색해봤는데 누님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이영철이 만난 사람과 책>이겠군요. 경인방송에 ‘보이는 라디오’라는 서비스가 있었어요. 라디오 프로그램이 생중계 형태로 공개되는 거예요. 그런데 ‘보이는 라디오’ 공개 시간대가 오전 9시부터 새벽 4시까진데, <사람과 책>은 토요일 오전 7시부터 시작하는 거라서 ‘보이는 라디오’ 중계방송이 없어요.

stella.K 2016-09-08 17:25   좋아요 0 | URL
그게 말이다 남은 못 보고 나만 보이는 거란다.

그래? 난 KBS 클래식 FM 세상의 모든 음악 밖에는 안 들어서...
나중에 내 목소리 듣고 깜짝 놀랄까 걱정이다 얘.ㅋㅋ

아이리시스 2016-09-0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라디오도 화이팅♥

stella.K 2016-09-08 16:52   좋아요 1 | URL
아이님, 제가 책에 아이님 댓글 인용한 거 있어요.
그런데 딱 아이님이라고 안 밝히고 어느 님이라고 했어요.
나중에 혹시 모르겠거든 저한테 물어보세요.
그럼 갈켜 드릴게요.ㅋㅋ

페크pek0501 2016-09-08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탈자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봅니다. 어느 책이나 그럴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잘못된 인쇄다, 라고 편히 생각하셔요.

큰일을 치르셨습니다. 좋은 성과가 있길 바랍니다.
저는 책 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stella.K 2016-09-08 16:57   좋아요 0 | URL
알아요. 그런데 이게 책 내는 사람한테는 엄청 신경 쓰이는 거더라구요.

근데 언니, 언니도 아이님과 마찬가지로 언니 댓글 책에 인용한 게 있어요.
나중에 혹시 읽게되시어 모르겠거든 저한테 물어 보세요.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8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면 문화 셀럽입니다. 허허... 그동안 좀 바빠서 책을 못샀는데 오늘 종로 갈 일 있어 책 사들고 와야겠네요..겹겹사 겹치는군요..

stella.K 2016-09-08 17:24   좋아요 0 | URL
셀럽은요... 출판사 사장이 발이 좀 넓은 사람이라
여기저기 홍보했나 봐요. 대단한 책이 아니라 뭐 연락이 오겠나 싶어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폭탄 맞은 거죠.
월욜날 인천 가야되요.ㅠ

아, 종로에 무슨 큰 서점 있나요?
광화문 교보엔 갖다 놓은 것 같은데 웬만한덴 없을 수도 있어요.
혹시 없다고 하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blanca 2016-09-0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참 귀엽네요.^^ 참, 라디오 방송은 언제 주파수가 어떻게 되나요? 꼭 들어볼게요.

stella.K 2016-09-08 17:20   좋아요 0 | URL
제가 그걸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 알게되면 갈켜 드릴게요.^^

yureka01 2016-09-08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 책 읽고 있다가 바쁘니 잠시 소강 상태중입니다...
읽고 리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stella.K 2016-09-09 12:21   좋아요 1 | URL
아유, 천천히 하십시오.
제가 숙제를 내드린 것도 아닌데요 뭐.
그냥 그렇다고 쓴 것 뿐입니다.^^

책읽는나무 2016-09-09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도 얼른 희망도서 신청 해야겠군요!!
라디오방송 잘하세요^^

stella.K 2016-09-10 13:40   좋아요 0 | URL
아이고, 희망도서로까지...?!
고맙습니다.
방송 잘 해야할 텐데 떨려서 어버버거릴 것 같아요.ㅠ

나뭇잎처럼 2016-09-09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자기 책에 빨간펜 들고 오탈자 표기하는 심정 어떨까요.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은 아니신 것 같네요. ㅋㅋ 자신의 문장이 과잉이 아니었나 담담하게 돌아보는 건 다음 쓰기를 위해 아주 좋은 자세인 것 같아요. 잉크냄새 확 번지는 새 책. 나의 첫 책. 그걸 처음 안았을 때의 느낌. 어떤 건지 알 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느껴보지 않은 느낌. ㅎㅎ

stella.K 2016-09-09 12:25   좋아요 0 | URL
지금은 그냥 하는 건데 하면서 아쉬운 마음만 커지는 것 같습니다.
뭐 책은 이미 나왔고.ㅠㅠㅠ
뭐든지 첫 것이 주는 감동이 있잖아요.
그런 거죠. 두번째는 이렇게 호들갑 떨겠습니까?ㅋㅋ

2016-09-10 14: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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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0 15: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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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0 16: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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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0 16: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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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0 17: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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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0 18: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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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3 14: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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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3 14: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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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9 2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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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10-03 12:55   좋아요 0 | URL
헉, 제가 댓글 단 줄 알았더니 안 달았네요.
미안합니다.ㅠㅠ
요즘에 부쩍 저의 깜빡이가 자주 작동합니다.
그러려니 하십시오.^^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상영관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그때는 프랑스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을 때였고, 무엇보다 남세스러운 장면이 많아서 눈을 어디다 둘지 몰라 그저 빨리 끝나주기를 바라면서 본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교회 청년부 친구들과 본 것 같은데, 거기엔 형제들도 끼어 있었다. 그래서 더 더욱 영화가 빨리 끝나주길 바랐고, 끝나고 뒤풀이에서도 영화 얘기는 많이 못했던 것 같다.

지금 같았으면 어땠을까?

 

 

지금은 카운터 테너란 음역이 있어 거세할 필요는 없게 되었지만 옛날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다시 보기 시작을 하면서 문득 당대의 여성들이 파리넬리의 노래를 듣고 쓰러질 정도라면 우리나라 사극에 내시들을 그렇게 그리는 건 희화됐을 거란 짐작은 충분하다.

 

왕의 승은을 입은 건 좋긴 하지만 왕의 밤은 늘 한정되어 있고 그 외로운 숱한 밤을 왕의 여자들은 어떻게 보냈을까? 정사에는 없으나 야사에는 있을 법한 상상력이 건드려진다. 음양의 법칙에 의해  이성에 끌리도록 되어 있다고는 하나 이성도 이성 나름이고, 취향 나름일 것이다. 거세를 했어도 여성성이 많은 남성이 여성에게 어필되지 않을 거라고 누가 말하겠는가? 그러니 그 옛날 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보니 이 영화는 한마디로 예술과 에로시티즘의 절묘한 교합이란 생각이 든다. 윤리니 도덕을 따질라치면 결코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고, 18세기 유럽이 지금보다 성적으로 깨끗했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예술은 원래 에로시티즘을 업고 발전해 오지 않았는가. 

 

역시 영화의 압권은 파리넬리가 헨델의 '울게 하소서'를 불렀을 때가 아닌가 한다. 파리넬리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객석의 여자들이 쓰러졌다는 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근데 뭐 여자는 한 장의 편지에도 쓰러지는 위대한 존재가 아니던가. 예전에 레이프 가렛이었나? 클리프 리처드 내한 공연 때였나, 너무 열광한 나머지 속옷을 벗어 휘날렸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데 18세기 여인들이 쓰러지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 그런데 그가 노래를 부를 때 딴청을 했던 여자가 뒤늦게 감동을 받는다는 설정이 어딘가 모르게 작위적이란 느낌도 든다. 파리넬리가 '울게 하소서'를 불렀을 때는 나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파리넬리가 진짜 역사적 인물이었는지 허구인지 의문이 갔다. 그의 형이 마약으로 아픈 동생을 낫게 해 줬다는 것도 왠지 석연찮고, 엔딩 때 파리넬리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동생을 대신하여 임신을 시켜주고 떠나는 장면도 웬지 구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 봤더니 파리넬리는 카를로 브로스키의 예명이고, 실존 인물이다. 

 

실제로 이탈리아엔 카스트라토 양성 학원이 있었다고 한다. 거세된 남성은 보통의 남자 보다 몸이 크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거세된 남성이 카스트라토로 성공하는 건 아니고, 수술의 비위생적 환경 등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교황청에서 패쇄를 명령해 이후 사라졌다고 한다.  

 

영화는 프랑스 영화가 아니라 프랑스, 벨기에 등이 합작한 이탈리아 영화라고 봐야할 것 같다. 감독도 이탈리아 사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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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7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7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07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창 시절 음악 수업 시간에 많이 틀어주는 영화 : 파리넬리, 아마데우스, 불멸의 연인

중고딩 시절 음악 수업 시간에 파리넬리, 아마데우스 중 한 편이라도 본 사람들 많을 걸요. ^^

stella.K 2016-09-07 17:17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앞의 두 편은 나도 봤는데 불멸의 여인을 봤는지
안 봤는지 기억이 안 나네. 봤나? 그거 베토벤 이야기 아냐?ㅋ

cyrus 2016-09-07 18:02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이 세 편 영화를 음악 시간에 다 봤어요. ㅎㅎㅎ

yureka01 2016-09-07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멜로디가 떠 오르네요....^^.

stella.K 2016-09-07 18:40   좋아요 1 | URL
네. 그 노래 슬프기도하고 몽환적이기도 하고,
뭔가 빠져들게 만들죠. ㅠ
 
허랜드 - 여자들만의 나라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5
샬롯 퍼킨스 길먼 지음, 황유진 옮김 / 아고라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표제작 <허랜드>를 읽으면서 새삼 내가 한 번이라도 여자들만의 세상에 대해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내가 고작 생각한 건 이 세상에 남자가 없다면 동성애가 만연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 생각하는 수준이 바닥이다.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여자들이 사라진 남성들의 세계는 더 끔찍하지 않을까? 하긴 내가 여자들만의 세상에 살아 본 적이 없으니 상상불허다.

 

좀 우스운 얘기 같긴 한데, 시나리오를 공부했을 때 조 편성을 했다. 어찌하다 보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여자 수강생들이 몇 명 있었는데 거기에 나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결국 그렇게 남겨진 사람들이 하나의 조가 되었다. 난 원래 학교 때부터 조 운이 없긴 했지만 속으로 이건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모르긴 해도 다른 조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여자가 더 잘 아는 법이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놀리듯 막 배정된 우리들에게 아마조네스란 조명을 하사하시려 하는 걸 거부하고 다른 이름으로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가 무엇으로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수강 기간 내내 우리가 서로 못 지낸 건 아니다. 나름 잘 지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 다른 조의 사람들은 우리 조를 나름 꽤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남자 수강생들이야 뭐 여자들의 모임을 동경할 테니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여자들은 남자들과 썩어 놓으니 불편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자들끼리 있으면 더 끈끈하고 재밌지 않겠냐는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서로 남의 떡이 더 클 거란 상상을 하며, 자기가 속한 조에 대한 불만을 그렇게 표현하는 모양새였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결국 남자들은 어디를 가나 인기가 없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 되는 지도 모르겠다. 같은 남자들끼리도 재미없고, 여자도 싫다고 하니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니 새삼 그때 붙이려다만 아마조네스가 생각이 났다. 아마조네스와 허랜드는 다 여자들만의 세상이란 점에선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 둘의 성질은 판이하게 다르다. 아마조네스는 여성 무사족을 뜻한다. 여성을 무사로 만들기 위해 활쏘기 좋으라고 어려서 오른쪽 가슴을 도려냈다고 하니 좀 무시무시하다. 그들은 자손을 번식시킬 때에도 일정기간 이웃 나라의 남자들과 통정을 하고, 아들을 낳으면 버리거나 죽였다고 한다. 아무리 신화라고는 하나 배면에 완전히 남성을 배제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아마조네스는 진정한 여성 사회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남성화된 여성성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런데 비해 허랜드는 아마조네스 보다 훨씬 더 고도화되고, 치밀하며, 설득력 있다. 무엇보다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해 이웃 나라로 원정을 가는 법이 없다. ‘처녀 생식을 통해 아기를 낳으며 낳는 아기마다 딸이다. 그러므로 아들을 낳았다고 잔인하게 죽일 필요도 없다. 또한 그 사회는 철저하게 모성애와 자매애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해 생각할 것은 아마조네스 여성의 무사성과 허랜드의 모성애다.

 

사람은 어떻게 키워지느냐에 따라 결국 운명이 결정되기도 하는데, 날 때부터 무사로 키워지는 것과 어머니로 키워지는 것이 어떻게 다르겠냐는 거다. 무사로 키워진다면 무엇을 위한 무사겠는가. 적들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남성 무사와는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조네스의 여성 무사들은 누구를 적으로 삼았을까? 당연 남성이었겠지. 여성들만이 사는 세상이니 남성들은 얼마나 그 세계가 궁금할까. 만만히 보았을 것이다. 남성성에 정복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지 않은가. 그것으로부터 자기네 부족을 지켜야 하니 당연 더 많은 힘과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허랜드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물론 그 나라에도 무사들 내지는 군인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건 국가를 이루는 많은 요소 중 하나로 존재할 뿐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그녀들은 그리 많이 여성스럽지 않고 오히려 중성에 가까우며, 보통 여자 보다 약간 큰 편이라고 한다. 여기서 작가의 상상이지만 깊은 혜안이 느껴진다. 양성의 사회에선 여성성의 원형이 온전히 지켜지기가 어렵다. 그것은 여성이 남성 주류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성을 변형하나 왜곡시키며 발전해 왔을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선 여자 혼자 자신을 지켜나가기 힘들기 때문에 자기를 지켜주는 남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이제이인 것이다. 폭력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안 그러려면 남자 보다 몇 배는 더 영리하고 남자다워져야 한다.

 

하지만 허랜드는 기본적으로 모성애를 전제로 하고 있고, 남자들이 없기 때문에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관능이 발달되지 않고 오히려 퇴화되었을 것이다(나는 여자가 힘도 세면서 여성다움을 잃지 않은 건 남성적 사고가 반영된 거라고 본다). 양성의 사회에서는 여성성을 대표하는 것이 관능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여성성엔 그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성애도 있으며 어찌 보면 관능은 상대적인 것인 반면, 모성애가 원형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양성사회에서 모성애를 발휘하며 사는 건 어렵고 점점 축소되어져 가는 느낌이다. 그게 단순히 여자가 아기를 낳기 싫어하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엔 이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걸 의식으로든, 무의식으로든 알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내 아이를 이렇게 위험하고 오염된 세상에서 키우고 싶은지. 그렇다면 양성 사회에 사는 사람이 허랜드의 사람이 관능이 없다고 안타까워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모성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더 염려해야 하는 것이 맞다.

 

작가는 허랜드에 표류한 세 명의 미국 남자를 통해 허랜드와 자기네 나라의 여성의 실체를 대변하며 의식을 깨운다. “... 그렇다. 그녀들은 어머니들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무기력하고 비자발적인 다산의 어머니들, 모든 땅을 사람으로 가득 채우도록 강요받고, 아이들이 서로 끔찍하게 싸우며 고통 받고 범죄를 저지르며 죽어가게 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지각을 가진 어머니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모성애는 잔혹한 열정, 즉 개인만을 위한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였다.

그들의 모성애에는 우리가 너무도 믿기 힘들어했던 그들의 단결성을 바탕으로 한 무한한 자매애가 포함되어 있다. (121p)“

이것은 단순히 저자가 허랜드의 이상을 설명하기 위해 현대 양성 사회의 여성성을 비교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진정한 여성성을 꿰뚫고 있으며, 그런 만큼 현대 여성들의 그것을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가를 역설하는 것처럼 보인다.

 

허랜드는 완벽한 이상 사회를 구현하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분업화가 잘 이루어졌다. 단적인 예로 양성사회에선 오로지 여자만이 육아를 담당하지만, 여기선 그것의 담당이 국가다. 그것에 대해 표류하게 된 세 명의 미국 남자들은 당황해 하지만, 독자는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고 보면 19세가 말의 사람들이다. 그때 무슨 육아 시스템이 발달이 됐겠는가? 그러니 작가가 19세기 여성으로서 얼마나 앞선 생각을 가지고 허랜드를 그렸을지 놀랍다.

 

선진국의 조건을 여러 가지로 말하기도 하지만 그중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게, 여권과 아이의 양육이다. 그만큼 발달된 나라일수록 육아는 개인이 아닌 국가가 담당한다. 그런 점에서 요즘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유치원 교사 폭행 사건이나 예산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교사 선발은 갈수록 더 엄격해져야 하고, 고급 인력으로 양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들의 근무 환경이나 재교육의 기회가 봉쇄되어 있으니 그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이 소설은 하나의 허구만으로는 읽혀지지 않았다. 19세기에 쓰인 이 소설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미래에 가능성이 있다는 말기도 하다. 어느 때부턴가 여군이나 여경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힘으로 나라가 지켜진다면 여자들이 남자에게 자신의 안위를 맡기는 일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또한 역대로부터 모든 전쟁이 남자들에 의해 자행되어 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결정권을 더 이상 남자들에게 맡길 수마는 없다고 할 때가 올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볼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와 노인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분별력이 없고 힘이 없으며, 노인은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전쟁의 위협에서 가족을 지킬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될 것이다. 허랜드에서의 처녀 생식이란 것도 오늘날의 시험관 아기의 은유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지금의 남성성을 가지고는 설 자리가 가면 갈수록 좁아질 것이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 또 남성성을 어느 정도 무력화해야 세상의 평화가 유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좀 놀랍다. 그렇게 오래 전에 쓰였음에도 세월의 흔적을 하나도 느낄 수가 없다. 그런 작가의 필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할 정도다. 여성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과 문체에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다. 요즘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는 잘 살아 볼 생각은 안하고 이상한 싸움 양상을 보이고 있는가 본데 그런 쓸데없는 소모적 싸움은 그치고 이런 책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문제작이고 수작이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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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4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9-05 13:44   좋아요 0 | URL
ㅎㅎ 무슨...
정말 가능할 거 같다니까요. 남자들 정말 정신 차리고
여자들한테 잘 해야해요. 안 그러면 쫓겨나요.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복적인 상상력이군요. 여자들만 사는 나라라...
이 책 재미있겠네요.. 이 리뷰, 뭔가 정성을 들여 쓴 느낌이 듭니다..

stella.K 2016-09-05 13:54   좋아요 0 | URL
이거 이벤트에서 받은 거라서 리뷰를 써야하는데
정말 어떻게 써야하는지 고민 많이했어요.
왜 그렇게 안 써지는 ...
그나마 쉽게 쓰려고 하다보니까 써지는데
가끔 책 내용이 너무 좋으면 리뷰는 못 쓰겠더군요.
뭐 좀 달리 생각해 보던가, 뭔가 까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이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인정을 해 버리게 되거든요.

이 책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 볼려구요.
빌려 드릴까요?
그냥 사서 보세요. 곰발님은 책 같은 거 빌려 볼 것 같지는 않아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5 14:48   좋아요 0 | URL
안 읽은 책이 산더미여서 아직 책은 사지 않아도 됩니다.
다, 2년 이상 예약된 상태라.. 이 책 읽으려면 2년 후에나.. ㅎㅎ

cyrus 2016-09-0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해경이라는 중국 신화 모음집에 여인국을 소개하는 글이 있어요. 여인국과 아마조네스는 여자만 사는 유토피아에 대한 남자들의 동경과 판타지가 투영되었어요.

stella.K 2016-09-05 14:13   좋아요 0 | URL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마조네스는 여자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지.
근데 허랜드는 완벽해.
어떻게 19세기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줄 쫙쫙 치면서 읽었는데 정작 리뷰에선 하나 밖에 인용을 못했어.ㅋ

니르바나 2016-09-0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지안님^^

첫 저서 <네 멋대로 읽어라>가
알라딘 서재 대문에 금색 트로피를 수상하고 있네요.
블로거 베스트셀러 종합 1위 등극을 축하드립니다!!!

2016-10-15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