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기자는 보는 것을 말하고, 작가는 아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하지만 왠지 뉴스는 그것을 송출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욕망을 드러내고, 앵커의 목소리는 뭔가 볼멘 소리로 들리는 것은 어찜인가? 오히려 그것이 가져 올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그것들을 보면서 그동안 부정 청탁 및 뇌술수수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얼마나 있는 것들 위주로 재편되고 흘러왔는지 새삼 알겠다 싶다. 워낙 만연해 있어 그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마치 직격탄을 맞은 양 하는데 뉴스 보도를 그렇게 밖에 못하나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사실을 보도한다고는 하지만 그들 역시 부정 청탁 및 뇌물수수의 기회가 없어졌으니 그런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지난 여름, 각 언론 기자들 삼성측으로부터 받아 먹은 것이 없다고 이건희 회장 사생활이나 폭로하고 하루만에 기사 내린 걸 보면서, 삼성도 삼성이지만 이렇게 아직도 거지 근성에 생양아치 짓을 하는 기자들이 있구나 싶어 좀 놀랐다. 물론 그게 어디 거지 근성 하나만으로 말해질 수 있는 사안이겠는가? 기사도 담합하는 거 아니겠는가? 어떻게 일제히...       

 

며칠 전 아는 지인을 만났다. 그 지인은 남편과 함께 작년부터 우리가 알만한 쥬스 체인점을 운영 중인데, 얼마 전 그 브랜드가 언론으로부터 된서리를 맞았다. 가득이나 시중에 유통 판매되는 쥬스가 과당이 많이 들어갔다고 해서 인식이 안 좋은데, (파는 건 어떨지 몰라도) 실제로 과당을 쓰는 건 얼마되지 않는다고 한다. 마침 근처에 같은 체인점이 있어 들어가 그녀가 추천하는 쥬스를 마셔보기로 했다. 스몰 사이즈의 사과와 케일을 갈아 만든  쥬스다. 주문할 때 시럽을 빼달라고 부탁하란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대로 했고, 잠시 후 주문한 쥬스가 나왔길래 마셔 봤다. 시럽을 빼서 지나치게 달지도 않고, 원재료의 맛 그대로를 느낄수가 있었다. 그러고도 2천원. 그녀는 다 그런 식이란다.

 

그 쥬스 브랜드는 당시 무려 네 개 방송국을 타고 심층 보도식으로 전파를 탔는데, 순 썩은 재료 가지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설탕이나 잔뜩 넣어 판다는 식으로 방송을 하더란다. 당연 매출에 영향을 미쳤다. 과연 기자들이 그렇게 보도할 근거와 권리가 있는지 묻고 싶어졌다. 신생 기업이고, 싸게 파는 것이 죄인 것이다. 물론 그래서 주위에 잘 나간다는 커피숍 체인들을 잠식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지나치게 가격을 높게 책정해서 소비자를 우롱한 것은 왜 말하지 않고, 착한 가격에 건실한 신생 기업을 홍보는 못해 줄 망정 그런 식으로 모독을 하고 음해를 하는지, 그들이 그렇게 해서 얻는 이득이 뭔지 모르겠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대뜸, 그 회사 사장이 기자들에게 돈을 쓰지 않았군요. 당장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지 그래요 했다. 물론 그럴수도 있지만 안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것 해 봤자 당장 법정에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만 지체되고 그러는 사이 사람들 기억속에 잊혀져 갈 텐데 뭐하러 하냐며 미온적인가 보다. 하지만 체인점 점주들의 명예를 생각한다면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긴, 이제 김영란법이 시행됐으니 그런 불필요한 돈 낭비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받아 먹은 것 없다고 더 이상 그런 악의적 보도도 안할 것이고.         

 

예전에 버스 전용도로에 도로 한 가운데 버스 정류장을 만든다고 했을 때도 좀 말이 많았던가? 지금은 그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김영란법도 그러지 않을까? 그거야 공직자, 기자, 있는 기업인들이나 해당 사항있는 법이지, 먹고 죽을 돈도 없다던 영세상인들, 소시민이 무슨 해당사항이 있겠는가. 마치 나라가 망할 것처럼 그러는데 난 김영란법 환영이다. 그것도 대환영이다. 그런 법은 벌써 30년 전에 만들어졌어야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부정 청탁 때문에 짓지 않아도 될 빚을 지며, 고통속에 살아야 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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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9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9-29 17:03   좋아요 2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생양아치들이죠. 황색저널리즘.
저도 9시 뉴스는 잘 안 보는데 어머니가 TV를 보시는지라 오다가다 들었는데
보도 행태가 영 마음에 안 들더군요.
그 때문에 영세 업자들 특히 노점상인들 괜히 자릿세 물고
장사했을 거 아닙니까?
그들의 고충이 좀 해소가 됐으면 좋겠어요.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9-29 18: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일은 이런 것은 없는데 독일도 이런 문화가 정착되어 있습니다.
공무원에게 커피 한 잔만 사도 그게 법으로 걸린다고 하네요...
다 필요 없고 자기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기 돈으로 내는 문화가 제일 좋습니다.
추렴 문화가 이번을 계기로 널리 퍼졌으면 합니다...

2016-09-29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9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9 1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30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6-09-29 1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건희는 잘 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저거 터트린 곳이 뉴스타파에요. 오히려 조중동하고 기레기들이 광고 수주 안 들어올까봐 기사 다 내렸는데.... 뉴스타파 저거 터트릴 때 저는 엄청 걱정했어요..그나마 뉴스타파가 광고에 의존하지 않으니 저런 불법성매매도 보도하죠. 미드 굿와이프의 마굴리스의 남편역 크리스 노스가 성매매 스캔들로 난리도 아니였잖아요. 성매매가 유럽 몇몇 나라나 합법이지 우리나라나 미국은 불법이에요. 저도 뭘 저런 걸 찍어 폭로하나 싶긴 하지만... 대신 이건희 개쪽이죠~

2016-09-30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르케스 찾기 2016-09-29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영란법이 부정부패방지법이라 불리길 바라는,,,
말씀대로 30년이나 늦게 제정됐으니ㅋ 이익단체들의 외압에 느슨하게 예외를 만드는 일없이 엄격하게 지켜지는지 파수꾼이 되어야 겠습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stella.K 2016-09-30 19:15   좋아요 1 | URL
잘 지켜질 겁니다.
믿어야죠. 오늘도 뉴스 보니까 긍정적인 보도를 하더군요.
고맙습니다.^^

cyrus 2016-09-30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0년 전이라면 유신 시절인데, 그 당시 분위기를 생각하면 법 도입에 관한 언급조차 꺼내기 힘들었을 거예요. 박 대통령의 지원을 받은 기업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겁니다.

stella.K 2016-09-30 19:18   좋아요 0 | URL
아니지. 전두환 시절이지.
네가 말하던 때는 40년 전이고.ㅋ
이제 시작이다. 갈 길이 멀다.

cyrus 2016-09-30 19:26   좋아요 0 | URL
아... 계산을 잘못 했군요.. (머쓱) ... ;;;; 민망하네요 ㅋㅋㅋㅋ

stella.K 2016-09-30 19:3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괜찮아. 그땐 네가 태어나기 전이잖아.
그냥 아무 때나 찔러보는 거지 뭐.ㅋㅋㅋㅋㅋ
 
스틸 라이프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 에디 마산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영화는 정물화를 보는 것처럼 매 한 컷, 한 컷이 깔끔하다.

그것이 또한 주인공을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인공 존 메이는 구청직원이면서, 흐트러짐 없이 사는 

깔끔한 독신남이기도 하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사람들의 사망신고를 관리하며,  

그들의 살아생전 인연이 있었던 사람을 찾아가 부고 소식을 알려주고 장례식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망자들은 거의 대부분 고독사를 했으며,

그들의 연고자들은 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장례식 참석이 어렵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다.

그 역시 오늘 살다 내일 죽어도 찾아 와 볼 사람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다.

자살을 생각하고 평소 깔끔하고 차분한 성격에 따라 창틀에 목을 매기 위해

점검을 하던 중 연락 한 통을 받는다.

 

전에 어느 여자의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던 여자로부터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이후 다시 한 번 만나자는 것이다.

즉 데이트 프로포즈다.

그에게도 그런 날이 올 줄 몰랐다.

하지만 하필 바로 그때 그는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

이제 뭐 좀 할 것 같고, 알 것 같은데 돌연 죽음을 맞게 되는 상황.

지지리 운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놀라운 건 살았을 땐 그리도 외면했던 사람들이

그가 죽었다고 하자 장례식엔 참석하는 것이다. 

그들이 정작 자신들이 알았던 사람의 장례식엔 참석을 안하면서

주인공의 장례식엔 참석을 하다니.

아이러니다.

 

영국의 어느 마을이 배경인데, 새삼 유럽은 개인주의가 발달된 나라라

고독사하는 일이 많겠구나 싶다.

물론 고독사의 문제가 남의 나라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어느 날 나의 죽음을 알릴 사람도 없이 혼자 쓸쓸하게 죽어갈 것을 생각하면

좀 끔찍할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도 사람들은 가족이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살아서 나의 죽음을 짐지운다는 게 미안한 일이지만

혼자 죽어간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 아닌가.

 

그러고 보면 인간은 정말 문젯덩어리인지도 모른다.

사는 문제도 제대로 해결 못하면서 죽음을 남에게 짐지운다는 건

또 얼마나 내키지 않은 일인가.

그러나 영화처럼 남의 죽음을 걱정해 주면 또 남이 나의 죽음을 책임져 준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고나 할까?

 

이 작품은 죽음에 관한 영화일수도 있겠지만,

직업과 천직에 관한 영화로도 읽힐 수가 있다.

연고자를 찾을 수 없으니 구청에서 주인공이 하는 일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여기까지가 직업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끝까지 자신이 맡은 바 본분을 다하려 한다.

그래서 정작 자신의 죽음에서 자신의 하는 일이 천직이었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영화가 소박한 느낌이 들어 조금 싱겁게 끝나는 것 같은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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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9-28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독사에 따른 청소 대행업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다큐를 본 적 있는데 심란하더군요..

stella.K 2016-09-28 14:49   좋아요 0 | URL
그런 다큐가 있었군요. 진짜 심란할 것 같아요.
근데 이 영화는 나름 깔끔해요.
안 보셨다면 보기를 추천드립니다.^^

yureka01 2016-09-28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고 실제 일본에는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신 분들의 뒷처리를 대행하는 업체도 있다 하더군요.....점점 1인 가구가 늘어난다고 하니 아무도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날듯합니다..

stella.K 2016-09-28 17:43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영화를 보니 영국 같은 나라에선 장례로 국가에서 치뤄주나 보다 해요.
좋은 나라죠.

북프리쿠키 2016-09-28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어나는 순간 죽을날이 코앞인 인생사인데
다들 영원을 살 것처럼 타인의 죽음엔 무관심한거 같아요~
죽음을 예견하고 마지막 숨을 홀로 쉬고 있을 때 과연 수 많았던 인간관계는 뭐였던가...하는
허무감..느끼겠지요?

stella.K 2016-09-29 13:45   좋아요 0 | URL
아, 그렇다고 너무 비관하지는 마십시오.
영화 그렇게 허무하고 슬픈 것마는 아닙니다.
이런 영화 보면서 내가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건드려주기도 해요.
주인공이 성실하고 참 못 생겼는데 그게 참 마음에 들더군요.
함 보세요.^^

장르라고부르면 2024-06-0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은 허리띠로 목을 매려 했던게 아니고 간수에게 들었던 고인의 에피소드를 재연해보려 했던겁니다. 이로 물고 3분 30초를 버텼다던 그 일.. 이후 상사 자동차에 소변을 보는 장면도 나오죠. 그리고 ˝그런데 놀라운 건 살았을 땐 그리도 외면했던 사람들이 그가 죽었다고 하자 장례식엔 참석하는 것이다. 그들이 정작 자신들이 알았던 사람의 장례식엔 참석을 안하면서 주인공의 장례식엔 참석을 하다니.˝ 이건 마지막 장면을 잘못 보신겁니다. 아무런 추모객 없었던 주인공의 무덤에 그동안 주인공이 장례 치뤄준 무연고 사망자들의 영혼이 모인 것이죠.

stella.K 2024-06-03 20:31   좋아요 0 | URL
엇, 정말요? 하도 오래 전에 본 영화라 지금은 기억에 거의 없네요.
역시 영화든 책이든 한 번 보는 것 가지고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예전에 다니엘 글라타우어가 쓴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를 읽고 화가나 던져버렸던 적이 있다. 읽은 지가 좀 돼서 정확한 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날 여주인공의 이메일에 잘못 들어 온 어느 낯선 남자와 이메일 교환을 통해 사랑을 키운다는 일종의 연애 소설로 기억한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면서 이메일 교환을 통해 사랑을 키운다는 게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게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 것이다. 뭔가 속은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사랑에 대한 상상을 증폭시키다 영화 <파리대왕>의 마지막 장면처럼 여자 주인공의 남편이 끼어들어, 당신 여기서 뭐하냐며 여자의 의식을 깨우는 것에서 끝이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아닌가?). 그래서도 더더욱 그 둘의 사랑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게다가 불륜이기도 하지 않는가). 모름지기 상대의 눈을 보고, 숨소리 하나도 느끼며, 서로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사랑이지 이메일을 사이에 두고 이게 뭐하는 건가, 디지털 시대엔 이런 식의 사랑도 사랑이라고 봐줘야 하나 뭔가의 의문이 들었다.

 

 예전 아날로그 시대엔 펜팔이라는 것이 있어 서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도 편지 교환을 하고 사랑을 키우는 커플도 있다고 들었다. 솔직히 난 그때도 그런 사랑을 믿지 않아 펜팔이란 이름은 들었어도 어떻게 하는 건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도 그 비슷한 경험을 할 뻔 한 적이 있었다. 

 

사춘기 시절 책에 관심이 많아 모 출판사에서 독서회원을 모집한다는 조그만 문구 하나를 발견하고 거기에 간지로 끼워있는 엽서를 이용해 우리 집 주소와 내 이름을 적어 보냈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웬 모르는 남자들로부터 무더기로 편지를 받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했더니, 내 이름과 주소가 그 출판사에서 회원을 상대로 정기 간행물을 속에 새로운 회원들의 신상정보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걸 보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 준 것이다. 난  그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사람의 성격이 천차만별이라고, 편지도 제 각각이긴 하지만 하나 같이 자신을 어필하려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우습기 도 했다. 내 이름 석 자만으로도 어떻게 그렇게 상상력을 발휘하는지 인간의 두뇌가 새삼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난 갑자기 받은 편지가 당황스러워 집에 놀러온 두 명의 친구에게 자랑 반, 고민 반으로 그 편지를 보여 주었다. 그 속엔  먼 제주도에서 까지 보내 준 편지도 있었는데, 친구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며, 그 편지들을 다 읽더니 개중 제주도 청년의 편지가 가장 순수하고 좋아 보인다며 이 사람한테 만이라도 답장을 써 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끝내 아무에게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답장을 한다는 게 어색했고, 왠지 그 사람들을 훗날 실제로 만나게 된다면 나에게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중 앞서 말한 제주도 청년은 정말로 미안했는데 그 후에도 서너 번 더 나에게 편지를 보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은 답장을 보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날은 어떠한 시댄가? 오늘도 인터넷 블로그에만 들어가도 몇 년째 얼굴 한 번 보지 않고도 댓글과 선물까지 주고받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시대가 올 줄 알았더라면 그때 그들에게 성실히 답장 보낼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그 시대 나의 로망이 애인과 편지를 주고받는 거였는데, 그것의 시작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를 그렇게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지금도 어느 명사들이 자신의 배우자와 연애기간 동안 몇 백 또는 몇 천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면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것이 알고 보면 기록으로 다 남을 것들이 아닌가.        

 

 

언젠가 영화 <그녀 her>(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 테오도르가 너무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다가 우연히 인공 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영화)를 보면서, 그때 그 책을 읽다 던져버린 걸 잠시 후회한 적이 있다. 이건 뭐 한 술 더 뜨는 얘기 아닌가? 그래도 책은 온라인이란 기계 너머에 있는 사람과의 소통을 얘기하고나 있지. 이건 인간이 기계를 사랑한다는 얘기지 않는가? 그제야  새삼 내가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감지 못하고 살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으니 나의 머릿속 운영체계야 말로 아직까지 디지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또 영화의 상상력만도 아니다. 홀로 외로운 사람에게 말을 걸어주는 대화  어플이 있다는 걸 얼마 전 한 예능 프로를 보고 알았다. 그런데 이건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일본은 40이 넘어도 이성교제를 한 번도 못해 본 사람이 적지 않으며 그들을 위한 학원이 등장했다고 한다(이 보도는 10년 전에도 했던 것 같다). 인간소외가 극에 달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 인연은 한 번의 눈빛, 한 번의 옷깃의 스침만으로도 있을 수 있다고 배웠는데, 그건 옛날 순수문학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였나 보다. 

 

그 옛날 아직 디지털 시대가 오기 전, 교회 주일학교 교사 시절 아이들 사이에서 다마고치가 유행했을 때 벌써 직감하고 있었어야 했다. 그때 나는 그게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장난감 같은 건줄 알았지 인간의 감정을 대체할 수 있는 거라고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그것의 위력을 알았더라면 훗날 책을 던져버린다던가, 영화를 보고 새삼 놀라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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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9-23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 허 > 재미있게 본 사람입니다. 전 영화 속 주인공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저 옛날에 늦가을에 파리 한 마리가 방안에 들어와서 열흘 넘게 있었던 적 있는데 나중에 친구 먹엇습ㄴ다. 제가 이름도 지어줬죠. 크로낸버그`라고.... 파리 이름을 크로낸버그라고 짓고 부르니 아.. 짠 하더라고요..ㅎㅎ

stella.K 2016-09-23 12:01   좋아요 0 | URL
ㅎㅎ 크로낸버그! 이름 좋네요.
하여간, 곰발님의 독특함은 알아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ㅋㅋㅋㅋ
그런데 파리는 보통 며칠을 살까요? 정말 열흘쯤 살려나요?

사진 또 바꾸셨습니다.ㅎ

2016-09-26 1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9-27 19:3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2016-09-27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악스트 Axt 2016.9.10 - no.008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뭔가의 개선이 있기 전엔 난 앞으로 이 잡지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김연수 작가 특집이라 어떻게든 보려고 했는데, 글씨가 작고 눈이 쉬 피로해 볼 수가 없다. 눈 나쁜 사람은 잡지도 맘대로 볼 수 없는 건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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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9-22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북으로 구입했슴다~ 이북은 미치도록 글씨가 작아요^^

stella.K 2016-09-23 11:33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왜 이리 작냐고요.
미칠 것 같습니다.ㅠ
대신 민음사에서 나오는 릿터를 이제야 보기 시작했는데
나름 괜찮은 것 같더라구요. 글씨도 적당하고.^^



붉은돼지 2016-09-22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DEN 이라는 잡지를 추천하옵니다.
4050을 위하여 글자크기 12포인트를 고집한다고 하옵는데, 이른바 젠틀맨 매거진이라고도 하더이다만은 레이디께서 보신다고 뭐 고발하고 그러지는 않을듯 합니다요. 중년남성지라고 맥심류는 아닌듯하고요 제가 맥심을 보지는 못했지만서두요....

stella.K 2016-09-23 11:36   좋아요 0 | URL
오, 바람직한 잡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악스트 문학잡지라 보려고 하는 건데
제가 잡지는 잘 안 보는데 본다면 문학이나 보거든요.
젠틀맨 매거진이라니 나중에 함 봐야겠슴다.^^
 

 

얼마 전, 영화의 고전이라던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를 보았다.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별로 좋지 않아 프랑스 영화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선택이 꺼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도 보니 나쁘지 않다.

언젠가 <줄 앤 짐>도 봐줬으면서 왜 이 영화를 봐 줄 생각을 못했던 걸까.

 

누벨바그의 시조니 어쩌니 떠들어 대는 건 영화 평론가들의 몫이고, 관객들이야 결국 영화가 감동적이이냐, 아니냐로 만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니 감동은 고사하고, 영화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일단 함격점이다.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왜 400번의 구타인지는 잘 모르겠다. 소년에게 행해지는 어른의 폭력을 그렇게 은유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웬지 감독의 어린 시절을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트뤼포 감독은 어린 시절이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는 대체로 어린 아이의 악동의 이미지를 좋아하는 편이다. 어린 아이의 사악함을 밝히는 <파리대왕>이나 <케빈에 대하여> 같은 영화 보단 이런 영화가 훨씬 자연스럽고 좋다.

그맘 때 해 볼 수 있는 아이의 온갖 악행을 잘 다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른이 아이를 다루는 건 한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편견으로 대하고, 특히 무조건 왼손, 오른손 선택하게 한 후, 영문도 모르고 무조건 왼손을 선택하자 손목시계를 끄르고 왼손으로 주인공의 얼굴을 가격하는 감화원 교사와 그 가격을 당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야 하는 소년의 이미지는 우리가 어렸을 때 익히 보아온 광경이다.

 

나도 초등학교를 갓 들어가서 교실에서 신는 덧신을 운동화로 제때 갈아신지 못해 체육시간 내내 오도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서 있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덕분에 체육시간이 끝나고 어머니 같은 담임 선생님한테 얼굴을 가격당한 일이 오버랩 됐다. 그때 울지도 웃지도 못하겠고. 표정 관리 하느라 애를 먹었던 아픈 추억이.

 

그렇게 된 건 나를 너무 깔끔하게 키운 엄마 탓도 있고, 물건을 잃어버리면 엄마한테 혼날 거라는 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수해 내야했던 시간이었다. 

 

솔직히 이 세상은 나 밖에 모르는 세상으로 채워져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라고 해서 세심하게 이해 받고 배려 받는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나를 누가 배려하고 이해해 준단 말인가. 그래서 무조건 어른의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본보기로 여러 사람 앞에서 매를 맞아야 한다.

이 현실을 너무나 뼈저리게 깨닫기 최적화된 곳이 학교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개인의 이해가 불허된 곳이다. 모든 것을 도매금으로 취급 받아야 하는 곳이 학교다. 그래서 난 학교를 좋아해 본적이 없다. 

 

그 학교의 시스템을 날카롭게 포착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 공감이 가게는 보여주기도 한다. 어쨌든 영화는 잘 만들었다. 주인공의 그 나잇대 부려 볼 수 있는 객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자크를 좋아했던 묘한 대비가 잘 버무려졌다고 생각한다.  

최소 별 세 개 반은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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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9-19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00번의 구타가 아마 프랑스 속담에 나오는 이야기일 겁니다..
아이는 400번 맞아서 비로소 성장한다.. 뭐, 그런 말들.

stella.K 2016-09-19 16:01   좋아요 0 | URL
헉, 그런 뜻이었군요.
살벌합니다.
저도 400대쯤 맞고 어른이 되었을까요?
뭐 저는 여자애니까 한 200번쯤 맞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ㅋ

곰발님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9 16:05   좋아요 0 | URL
전 틔뤼포 싫어하는 감독이라서요..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봤습니다..
저와 트뢰포는 궁합이 안 맞습니다.
특히 장 피에르 레오 같은 배우 질색임... 기생오라비처럼 생겨서 말이죠..

stella.K 2016-09-19 16:10   좋아요 0 | URL
헉, 그렇군요. 괜히 물어 보았나 봅니다.ㅠ

2016-09-19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9-19 16:15   좋아요 2 | URL
그래도 요즘 그런 게 보도가 되는 건 문제로 인식되었기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정말 우리 자랄 땐 그게 폭력인지도 모르고 지내지 않았습니까?
물론 아이는 때로 엄하게 가르칠 때도 있어야 하는데
이 엄하다는 것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은 아닌가 싶습니다.
전 학교가 엄연히 돈 내고 다니는덴데 그런 폭력도 쓴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누가 폭력을 돈 내고 배웁니까?ㅉ

cyrus 2016-09-19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외군요. 프랑스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처럼 소위 ‘맞으면서 커야 한다’ 식의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stella.K 2016-09-19 19:05   좋아요 0 | URL
옛날 영화라... 지금은 안 그러겠지?

근데 새벽에 오디오 파일을 들었니?
내렸다. 이제 그런 거 없다.ㅋ

기억의집 2016-09-19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국민학교때 선생님한테 애들 앞에서 따귀 맞은 수치스러운 기억이 있어요. 이 수치심이 수 십년을 괴롭히더라구요... 하핫.

이 영화 보고 제가 프랑스 정말 안 좋아하게 된 케이스. 저는 튀르포 자서전도 읽었는데, 트뤼포가 우리 나라 나이로 15살인가(자서전에는 14살이라 적혀있어요. 이 거 읽고 팔아서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중학생 나이입니다) 첫 경험을 합니다. 완전 충격이죠. 그 후 이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나오는 여자하고 관곌 다 맺더라구요. 솔직히 지저분하긴 했어요. 이 영화 시디 있는데 지금은 시디장치가 없어 더 이상 못 보지만 튀르포 영화 이거 말고 몇개 수집했어요. 전 프랑스 영화가 안 맞지 싶어요. 고다르는 졸립고, 프랑스적 감성이 전 딱히 별로더라구요. 지금까지 프랑스 영화 좋은 게 없었다는.

stella.K 2016-09-20 12:45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저는 그 일 말고도 중학교 때
선생님 교사 수첩인가, 출석부로 맞은 적도 있는데
선생님 화난 건 그런다고쳐도 그게 그걸로 때릴만큼
중대사안인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선생님이
나름 상냥한 분이셨거든요.

트뤼포의 그 일화는 좀 유명하죠.
그 얘기 들었을 때 분명 어린 시절과 뭔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해요.
저는 또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영화가 좋더라구요.^^

기억의집 2016-09-21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등학교때 칠판에 문제 낸 수학 문제 못 풀었다고 세게 등짝도 맞았어요. ㅠㅠ 그게 한이 되서 울 애둘한테는 수학 과외 엄청 밀어줬다는......

stella.K 2016-09-21 13:23   좋아요 0 | URL
헉, 저런... 역시 학교 트라우마는 제법 오래가나 봅니다.
그런데 이걸 아는 선생님이 몇이나 될까요?
그냥 늘상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겠죠.
지금은 그런 선생님 없겠죠?
체벌하면 문제 생기잖아요.

2016-09-21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1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