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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 아웃케이스 없음
김상만 감독, 유지태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감독이 누군가 했더니 <마담 뺑덕>을 연출한 감독이다. 그 밖에 몇 편의 영화를 더 연출했는데 생략한다. <마담 뺑덕>을 연출했다니 그의 변신이 좀 놀랍기는 하다. 그 영화는 좋게 말해서 퇴폐미의 극치를 보여줬다고나 할까? 그런데 비해 이 영화는 오페라의 화려함을 무기로 삼았으니.
그러고 보니 두 영화의 공통점은 또 있다.감독은 '구원'을 얘기하고 있다. <마담 뺑덕> 같은 경우 그렇게 퇴폐에 쩔었어도 한 여자에 의해 구원 받는 감독의 갈망을 드러냈다. 오죽했으면 끝까지 악녀여야 할 뺑덕이 사실은 마음의 심층 밑바닥엔 선함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래서 남자가 어떤 나쁜 짓을해도 복수하지 못하며, 선함 그러니까 여성 특유의 모성본능으로 감싸 안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그 영화의 마지막 엔딩 장면을 보면서 허탈하다 못해 헛웃음이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옆에 있었으면 작은 소리로 말해 주고 싶었다. "저기요, 나쁜 남자는 그냥 나쁜 남자예요.. 나쁜 남자를 구원해 줄 선한 여자는 없어요."라고. 자기도 구원하지 못할 자신을 누구더러 구원해 달란 말인가. 혹시 감독은 다시 유아기로 돌아가 엄마의 젖을 빨로 싶었던 건 아닌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이 영화는 일단 오페라를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봐 줄만하긴 하다. 100년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테너에게 붙이는 찬사가 '리리코 스핀토'라고 한다. 이 영화는 성악가 배재철 씨의 실화를 다룬 것이다. 그렇게 잘 나가던 테너가 어느 날 갑자기 갑상선암으로 쓰러져 하루 아침에 목소리를 잃고, 암흑 같은 시간을 보내다 좌절을 딛고 일어선다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성공신화가 주요 모티프다.
성공신화야 늘 성공 못한 인생이 수두룩한 것을 생각하면 반은 먹어주는 이야기 아닌가. 거기에 무엇으로 양념을 칠 것인가인데, 사실은 성공 신화도 너무 흔한 시대이고 보면 그 이야기가 그렇게 감동스러운 건가, 아니 성공만이 전부인가에 대해 의구심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왜 영화는, 주인공이 노래를 못 부르게 됨으로 인해서 그동안 성공에만 집착하다 그렇지 않은 다른 인생의 길도 있음을 보여주지 못하는 걸까? 주인공은 성공도 잘하고, 좌절도 잘하며, 또 금방 희망도 잘한다. 갈등은 짧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건 거의 없다. 과연 이 인물에 공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앞서 구원 얘기를 했는데, 구원은 과연 천운일까? 그런 의문도 남는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을 때, 친구처럼 지내는 일본의 오페라 기획자 코지를 통해 일본의 어느 의학자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목소리를 회복하게 된다. 물론 있을 수 있는 설정이고 동시에 흔치않은 기회다. 그래서 천운인 것이고. 이런 기회는 늘 무대에서 1000%에 가까운 기량을 뽐낼 줄 아는 사람에게나 주워지는 거지 일반인에게 주워질 기회는 아니다. 그렇게 구원은 어느 특정인에게만 주어질 것처럼 영화는 보여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원은 만인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나중에 주인공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암으로 쓰러질 때 왜 내 생명을 거둬가지 않았냐고. 난 그게 참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왜일까? 늘 아픔과 고난의 연속 속에서 그런 독백은 처절해 보이지만, 늘 성공가도를 달렸던 사람이 그러는 건 동정은 하지만 진정한 공감까지는 한참 걸려 보인다.
그런 의학적 노력도 한계는 있어 예전의 완벽한 목소리를 재현해내지 못하는데, 이 부분에서 영화는 조금이라도 인간적이길 바랐던 것 같다. 인간은 역시 완벽하지 못한 존재니 이젠 이 천재 테너의 노래를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들어 달라고 주문하는 것 같다. 그렇다. 예술의 울림은 기술이 아니라 진심이다. 진정 가슴을 열고 느껴야 예술이 되는 것이지 아무리 기술적으로 완벽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미를 담고 있는 마지막 엔딩 장면은 다분히 쇼적이다.
그래서 말씀인데, 난 이제 감독이 각본을 맡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다분히 삼천포행 영화가 됐다. 영화의 미장센이나 영상미는 외국 어느 영화에 못지 않은데 스토리는 영 맥을 못 춘다. 영화의 볼거리가 꼭 스토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박박 우기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볼 줄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런 영화일수록 속빈 강정이란 걸.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짐작은 가는데 스토리가 좋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예술은 가슴이라고 말은 하면서 정작 관객의 가슴까지는 도달을 못했다. 예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유지태도 연기를 잘하긴 하지만 내가 그다지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고, 오히려 차예련이 차분하게 연기를 잘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