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한담 - 오래된 책과 헌책방 골목에서 찾은 심심하고 소소한 책 이야기
강명관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런 책에 한번쯤 관심을 가질 법도 하다. 사실 이 책은 책 자체 보단 독서 행위에 관한 고찰 내지는 우리나라 책의 역사를 대략적으로 훑어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나 개인적으론 읽기가 수월하지마는 않은 느낌이다. 그것은 꼭 저자의 글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저자의 전공이 한문학이고 보면 옛 고서에 관한 이야기나 옛 선비에 관한 이야기가 주가 되는데 내가 이쪽 세계에 대해 관심이 많거나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렇지도 않거니와 저자의 평이한 문장이 약간은 지루하게도 느껴진다.

 

그래도 그런 점을 감안하고 읽으면 나름 얻는 지식도 있고, 옛 선현들이 책을 어떻게 다루고 생각해 왔는가를 엿볼 수도 있어 과히 나쁘지마는 않다. 이 책을 통해 나의 독서는 어떤지 반성도 하게 되고. 특히 이태준이나 이덕무의 일화는 나름 흥미도 있고 새겨 볼만하다. 이태준은 자신이 읽지 않은 책을 빌리려 하는 사람을 질투한다고 했다.

... 또 그 책을 다 읽은 친구가 책에 대한 평을 하면서 돌려주면 그 책에 대해 아주 흥미를 잃어버린다고 고백한다. 흡사 그 사람은 마치 내가 사랑하되 아직 고백을 하지 못한 여인에게 먼저 접근해 그 여인의 마음을 훔쳐간 연적과 같다!(59p)

과연 흥미로운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여인의 마음을 훔쳐간 연적이라니. 책을 아무리 좋아해도 과연 이런 마음까지 품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에도 책을 아는 사람에게 빌리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책도 많이 흔해졌고 도서관만 가도 웬만한 책은 다 손쉽게 빌려 볼 수 있으니 남에게 빌리는 걸 구차스럽게 느낄 것도 같다. 또한 빌려주는 사람도 돌려받으면 다행이고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또 꼭 그러치만도 않은 것이 책도 개인별로 등급이 매겨질 것 같다. 어떤 책은 귀해서 있는 티도 못 내는 책도 있을 것이고, 어떤 책은 빌려주긴 하되 반드시 돌려받아야 할 책. 어떤 책은 돌려받으면 좋고 못 받으면 별로 아쉽지 않은 책도 있다. 어떤 책은 쓰레기 같아서 누가 가져간다고 하면 두 말 않고 들어 내줄 책. 이쯤 되면 옛날 처첩 거느린 어떤 남자 마누라 갈아 치우기와 맘먹는 거라고 말하면 좀 심한 말이 되려나? 이게 다 이태준이 그렇게 말을 꺼내서다. 아무튼 그도 대단한 책탐가(책을 탐내는 사람). 또 그만한 탐욕이 있었으니 알아줄만한 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건 또 약과다. 국어학자인 이숭녕 선생은 더 한다. 이 분은 어찌나 책을 사랑하는지 책을 빌려달라는 사람이 교양 없게 손에 침을 발라넘기면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빌려주면 마치 어디 먼 나라로 자식을 인질로 납치하는 심정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책 빌리는 것을 거절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들으면 섭섭하고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좋은 거라면(그것이 책 아니야 다른 물건일지라도) 빌려주지 마라. 빌려 받는 사람도 불편하고 빌려주는 사람도 욕을 먹어 나중에 의를 상하는 수도 있다. 그는 사치(四癡) 즉 책을 빌려주는 네 가지 어리석음에 대해 말했다. 빌리는 것이 일치고, 빌려주는 것이 이치며, 빌리고 돌려주지 않는 것이 삼치고, 빌렸다가 돌려주는 것이 사치라는 것이다. , 그래서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했나 보다. 또한 그래서 책은 빌려주는 것이 없어야하는 것이고. 책을 빌려주기 싫은데 안 빌려주면 괜히 나쁜 사람으로 찍힐까봐 걱정인 사람이 있다면 참고해서 대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독서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인물이 있다면 이덕무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살던 집은 구서재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구서. 즉 아홉까지 독서 방법을 뜻하는 것이다. 독서는 책 읽기다. 간서는 책 보기. 말 그대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기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서와 간서를 왔다 갔다 하지 않을까?) 장서는 책을 소장하는 것. 초서는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뽑아 적는 것(박웅현 같은 사람), 교서는 책을 교정하는 것(오탈자 귀신 같이 뽑아내는 사람있다), 평서는 책을 평하는 것, 저서는 책을 쓰는 것, 차서는 책을 빌리는 것. 폭서, 책을 햇볕에 쬐는 것. 맨 마지막 것을 제외하면 우리도 흔히 행하는 방식이다. 단지 우리의 독서행위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름 지어진다는 걸 별로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의미 있어지지 않을까?

 

이렇듯 책은 욕심내고 읽을 때마다 몇 번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좋지만 더불어 내가 정말로 책을 잘 간수하고 있는가, 어떤 마음으로 모으고 있는가. 항상 돌아보는 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은 예지(叡智)있게 서재를 몇 종류로 분류한다. 첫째, 응접실 보다 화려한 기구를 차려놓고, 가난한 학자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간수해둔 경우. 그럴 때 장서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을 경우가 많다고 한다. 둘째, 책이 저장되어 있을 뿐 전혀 읽히거나 이용되지 않는 경우. 이는 돈만 모으는 수전노와 같다고 했다. 첫 번째 부류보다 낫긴 하지만. 셋째, 책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대개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경우. 이 서재야말로 이른바 서적과 대결하려는 학자의 전쟁터라고 했다.

 

뭐 꼭 같은 경우는 아니겠지만 나 같은 경우 전에 책을 사다 놓기만 하거나 예전에 어떤 이유로든 독서를 보류시킨 책을 다시 보는 경우가 생겼다(물론 독서 보단 간서인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때 확실히 책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가 모은 책이 앞으로 어떻게 읽힐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보물을 찾는 기분이겠구나 싶다. 모름지기 책은 이런 마음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 밖에도 저자는 여러 부분에서 생각할 거리를 주지만, 우리 책의 일본 반출기나 전근대적인 학맥 때문에 우리나라 지식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것 등은 좀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12-02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03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2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태준의 심정 이해할 수 있어요. 특정 책을 다른 사람보다 늦게 읽는 상황이 애서가 입장에서는 자신이 다른 애서가들보다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stella.K 2016-12-03 13:31   좋아요 0 | URL
책을 좋아하려면 정말 이태준 정도는 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페크pek0501 2016-12-0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빌려 주고 돌려받지 못한 적이 몇 번 있는데 참 싫었어요. 빌려 갈 땐 꼭 돌려주겠단 말을 하고는 그렇게 하더라고요. 저는 책 도둑에게 관대하기 싫어용. ㅋ

stella.K 2016-12-09 14:4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전 다시 돌려받지 않아도 될 책만 빌려줍니다.ㅋ
 

 

 언제부턴가 먹는 것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게 되었다. 식욕이 없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굳이 맛 있게 먹으려고 애쓰지 않는단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먹방이니 쿡방 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거 다 쓰잘떼기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당장 그걸 먹을 수가 없는데 무슨 대리만족인가. 그런데 이게 인간사 에피소드와 연결이 되면 한편의 영화가 된다. 정말 이 영화 이상하게 묘한 마력을 발산한다.  

 

 

 

실제로 이런 식당이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작가가 아무리 상상력을 가지고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없는대서 쓰기란 불가능하고 일본 번화가에 어울리지 않게 저런 조그맣고 허름한 식당이 있을 것도 같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실내포장마차쯤이 되지 않을까? 거기선 주문을 받고야 비로소 요리를 하는 주인겸 주방장이 있다. 손님도 거의 대부분 단골 손님들이다. 그렇게 주인과 손님이 이웃처럼 격이 없고 친근한 식당 하나쯤 알고 있는 것도 혼자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중요한 생존전략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저 주방장 아저씨 저렇게 밤에 장사하는 거 오래 안 했으면 한다. 물론 저 아저씨 보면 그냥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밤에도 잠 못 자는 사람을 위해 일종의 위로와 힐링이 되라고  밤이면 저렇게 장사하는 것 같긴 하다만 저러다 지레 건강을 해칠 수 있을 것 같다. 밤에 일하는 게 얼마나 몸이 축나는 일인데...

 

일본이 또 이런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것 같다. <카모메 식당>을 비롯해 일련의 영화들이 생각나는데 잔잔하게 좋았다. 우리나라도 음식을 주제로한 영화가 없진 않은데 생각 보다 그렇게 많이 감동스럽진 않았던 것 같다. 왜 우린 이렇게 못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영화가 먼저인지 TV 시리즈가 먼저인지 알 수가 없다. 작년에 한국판 심야식당을 TV 시리즈로 본 적이 있는데 나름 가능성 있게 잘 만든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성적이 저조했는지 모르겠다. 호응이 있었다면 시즌2도 나왔을 텐데 별 말이 없다. 아무튼 이 영화 뭔가 헛헛한 마음이 들 때 보라. 뭔가 마음을 채워 줄 거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nan 2016-12-01 19: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키모메 식당도 재미있게 봤구요~ 한국판은 김승우가 마스터로 나오더군요. 그래도 심야식당은 일본판이 나아보입니다~

stella.K 2016-12-02 06:50   좋아요 1 | URL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저도 이의는 없는데 저는 자막을 볼 필요가 없어서인지
한국판이 좀 보기가 편하더라구요.
내용만 좀 달랐다뿐이지 일본판 그대로 가져왔잖아요.

yureka01 2016-12-01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에 심야식당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ㅎㅎㅎ

Conan 2016-12-01 22:07   좋아요 1 | URL
심야식당 차리는거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 있습니다... 혹시 언젠가 하게 될지도^^

stella.K 2016-12-02 06:54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 안 됩니다. 그러면 주량이 더 늘 것 아닙니까?
건강을 위해 밤엔 일찍 주무십시오.ㅎㅎ

코난님, 그러다 건강해치면 어쩌시려고...

cyrus 2016-12-02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려하면서도 손님을 많이 들어올 수 있는 넓은 식당일수록 좋다’라는 편견 때문인지 소규모 식당이 우리나라에 성공하는 사례가 드물어요. 동네서점이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도 그래요. ^^;;

stella.K 2016-12-02 13:04   좋아요 1 | URL
그게 함정이야. 그런덴 솔직히 사람만 많이 받을 줄 알지
음식은 별로인데가 많거든.
메뉴표 많이 붙은 곳 가지 말라잖아.
허름하고 몇 가지 안 되더라도 그게 진짜 맛집일 확률이 높지.^^
 

 

남자와 개의 공통점 다섯 가지

 

첫째 털이 많다,

  

둘째 먹이를 일일이 챙겨줘야 한다,

 

세째 시간을 내서 놀아줘야 한다,

 

넷째 버릇을 잘못 들여 놓으면 평생 고생한다,

 

마지막으로 복잡한 말을 알아 듣지 못한다.

 

                                          -박웅현, <책은 도끼다> 중에서-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6-11-30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긴 한데, 이런 표현이 남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어요. 예외도 있어요. 확실히 네 번째 내용은 맞아요. 저도 복잡하게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

stella.K 2016-11-30 16:09   좋아요 0 | URL
웃자고 하는 얘긴데 뭐. 근데 뺄건 없어 보이는데...

하긴 네 말마따나 예외가 있어 둘째와 세째만이라도
해결되면 여성해방 반은 이루어지는 거지. 안 그래?ㅋ
특히 난 마지막 말에 격하게 공감해.
그리고 너도 털 많잖아.ㅋㅋㅋ

[그장소] 2016-11-30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저도 웃음 뿜고 갑니다! ^^

stella.K 2016-11-30 16:10   좋아요 1 | URL
웃기죠? 저도 한참 웃었어요.ㅎㅎ

hnine 2016-11-30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째 항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자 몫이군요 ㅠㅠ

stella.K 2016-11-30 16:10   좋아요 1 | URL
그니까요. 저게 여자 몫이 안 되는 날이 여성해방의 날
아니겠어요?ㅠㅋㅋㅋㅋ

yureka01 2016-11-30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세끼만도 못한 놈도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닙니다.^^


[그장소] 2016-11-30 17:46   좋아요 0 | URL
아이구야...격한 걸요. ㅋㅎ 푸하핫

stella.K 2016-11-30 17:57   좋아요 1 | URL
역시 유레카님은 화끈하십니다.ㅋㅋㅋㅋ
 
[블루레이] 곡성
나홍진 감독, 곽도원 외 출연 / 기타 제작사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모처럼 심장이 쫄깃거리는 영화다. 흔치 않은 괴기와 피로 잘도 버무려놨다. 옛날 같으면 장르영화라고 해서 마니아만 봤을지 모르겠다. 이제 관객은 장르를 굳이 따지지 않는가 보다. 그냥 나홍진이란 이름만으로도 봐줄 마음이 있으니 말이다. 그가 전작인 <추격자>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열광(?)했었다. 이 영화는 전작 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게다가 귀신이 나오지 않았는가? 요즘 같은 세상에 귀신 이야기가 여전히 먹힌다는 게 신기하다. 아니 그래서 이 영화는 마니아나 좋아할 영화로 취급될만한데 대중이 좋아하게 만든 건 아무래도 이야기가 주는 탄탄함과 비주얼한 디테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겉으로로는 아이를 구하려는 아버지의 부성과 믿음의 문제를 다룬 역작이라고 시부리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됐구요, 이 영화는 한편의 잘 만든 킬링 타임용 오락영화일 뿐이다. 까짓 거, 영화 별거 있어? 재미있으면 그만인 거지. 영화에 무슨 철학이니 하는 거 난 몰라. 딱 그렇게 분류될 수 있는 영화인 것이다. 예전에 그런 영화는 좀 조악했거나 수준 낮은 영화로 취급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엔 쉬 무시할 수 없는 영화적 디테일이 있다는 거다. 어떻게 이런 영화에 무지막지한 디테일을 부여할 수 있을까? 뭐 피가 튀어도 그냥 튀지 않고, 사람이 죽어도 그냥 죽지 않고, 귀신이 장난을 쳐도 그냥 치지 않는다. 그래서 감독을 미친 놈이라 욕하고도 쉬 무시할 수는 없다. 그걸 프로라고 해야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미쳐야 미친다고 사람들 누구나 마음속 아닌가엔 미친 욕망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지 않나? 그걸 기어이 표출하는 사람이 있고, 여러 가지 사회적 제약이나 에너지의 문제로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 뿐이다. 그런 점에서 감독은 확실히 전자에 속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영화에서의 그 유명한 대사 "뭐이 중헌지도 모름서..."가 나오는 거 아니겠는가?

 

모르긴 해도 감독은 여러 사람에게 욕은 얻어 먹을지언정 영화인으로 그 작업에 있어서만큼은 원도 한도 없을 것 같다. 감독이 지금의 임권택 감독 정도의 나이가 되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때쯤 어떤 평가를 받을지. 인생은 생각 보다 길다. 나에 대한 평가는 나만이 내릴 수 있다. "나는 다른 거 필요읎어. 그냥 영화를 영화답게 잘 만든 거 하나면 족햐." 뭐 이런 거라면  나 감독의 작품도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관객으로서 아쉬움은 남는다. 이렇게 심장이 쫄깃거리고, 러닝타임 2시간 반이라면 좀 맨 마지막에 가서 귀신이 누구라고 확실히 밝혀주고 끝날 일이지, 말이 좋아 열린 결말이지 화장실에서 화장지 안 쓰고 나오는 그 기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런 킬링타임용 영화에 무슨 철학적 고민을 하라고 말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믿음의 문제를 말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귀신한테서 무슨 썪을 믿음이란 말인가. 귀신은 사람을 홀리고 교란만 할뿐 믿을 가치도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인간은 또 인간인지라 믿으라고 하면 믿고 싶어하는 약한 존재가 아닌가. 감독은 아마도 이런 인간을 조롱하기 위해 이 무지막지한 영화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배우는 역시 아무나 맨정신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닌 것 같다. 소리를 지르고 피를 토하며 죽는데 아무리 주어진 역할이 그래도 그렇지 과연 맨정신으로 이게 가능할까 싶다. 주인공 종구의 딸이 빙의들린 모습도 그렇고. 사건의 전말을 다 파악할 무렵 종구는 마을의 남자들을 규합해 삽이며 각종 연장을 들고 귀신을 떼려 잡으러 가는 장면을 보면, 감독은 날 것 그대로의 수컷성이 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더구나 그것이 부성과 연결이 될 땐 어떤 폭발력을 보여주는지를 감독은 그 아수라장에서 잘도 보여준다. 그동안 곽도원은 비중있는 조연 정도만 맡아 왔는데 이 영화에선 주연으로 부족함 없다. 조금 좋아질려고 한다. 

 

가끔 나는 진정의 의미로 '피나게'란 말을  쓰곤 하는데, 이 영화 정말 피가 나서이기도 하지만, 정말 재미있어서도 피난다. 아직 안 본 사람에게 이 영화 피나게 추천한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11-2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사람들은 당연히 ‘곡성’ 줄거리가 궁금해서 극장에 찾아가 보게 되는데, 저는 무한도전 ‘귀곡성’ 패러디를 이해하기 위해서 영화를 봤어요. ㅎㅎㅎ

stella.K 2016-11-25 18:06   좋아요 0 | URL
무한도전을 안 봐서...
근데 이 영화 진짜 재밌지 않나?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군.ㅋ

북프리쿠키 2016-11-2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쟝르를 뒤섞어 놨는데도
따로 놀지 않는 끈끈함 덕분에
수준있는 열린결말로 마무리할 수 있었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악취나는 소재를 이렇게도 깔끔하게
연출할 수 있단 느낌도 받았구요ㅎㅎ
그래도 역시 텔라님은 점잖으셔서
˝피나게˝로 표현하시다뉘..
새롭고 독특한 표현입니다^^

stella.K 2016-11-25 18:08   좋아요 0 | URL
기가 보통 센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 내는 거겠죠?
저는 기가 약해서 피나게 이 정도로 밖에
표현 못하겠슴다.ㅋㅋ

북프리쿠키 2016-11-25 17: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싸이러스님과 댓글 찌찌뽕~

cyrus 2016-11-25 20:08   좋아요 0 | URL
진짜네요. ㅎㅎㅎ

반딧불,, 2016-11-26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전 정보 없이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아무런 정보도 없이 보러 그것도 혼자서 보러 갔다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무서워서 덜덜덜 떨다 나왔어요. 중간에 나오고 싶은 것을 참고 끝까지 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봤던 데블스애드버킷이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천우희의 비중이 좀 작아서 서운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곽도원의 부인 역할하신 분 연기도 좋았었다 싶네요. 저는 넘 무서웠던 기억이 강해서 두 번은 보기 싫어요. 킬링타임용 오락영화.동감.

stella.K 2016-11-26 17:56   좋아요 0 | URL
저도 옛날에 이런 영화 봤으면 무섭고 기분 나쁘다고 했을 거예요.
사실 지금도 유쾌한 건 아니죠. 혹시 밤에 꿈에 나타날까 봐 겁도나고.ㅋ
그런데 스토리를 어찌나 잘 엮는지 감독이 대단하다 싶더군요.

맞아요. 천우희가 의외로 분량이 적어서 좀 아쉬웠어요.
음..말에 의하면 곽도원과 그 와이프로 나왔던 배우 실제
연인 사이란 말도 있던데 증권가 소식지는 맞을 수가 없어서리...

반딧불,, 2016-11-29 13:42   좋아요 1 | URL
네..이견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연출력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추격자도 눈과 귀를 가리고 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입니다.

곽도원과는 실제로 연인사이라는 글이 있긴 하더군요. 그 배우는 역린에서도 좋은 연기였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최근엔 안투라지에 나오더라구요.이상하게도 이름이 안 외워지는 배우입니다ㅠㅠ
 

영화 중, 고등학생인 몽규에게 명희조 선생 묻는다. 

국가의 3 요소뭐냐고. 

그러자 몽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천천히 대답한다.

국토, 국민, 주권이라고. 

그러자 선생은 맞다고 한다

하나 지금 조선은 국토도 있고, 국민도 있지만

주권이 없다고 말한다. 

 

문득 그 장면을 보면서, 나 또한 묻고 싶어졌다. 

지금도 이 주권은 살아 있느냐고.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이고, 

                            대내외적으로 그것을 대표하는 사람이기도 한데

                                    어떻게 국민이 생전 알지도 들어 보지도 사람에게 

                           이것을 저당잡히고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는 건지.      

                            대통령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국민의 주권 보다 앞설 수 없음을

                         이때야 말로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