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장기려 -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성자, 개정판
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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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장기려 박사의 일대기가 공연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늘 그렇듯 나는 우리나라 선각자들 그들의 이름 석 자 정도만 알 뿐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장기려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의학 박사라는 정도밖엔 알지 못한다. 그러다 언젠가 중고 서점을 기웃 거리다 이 책을 발견하고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손에 넣었다. 다소 청소년 위인전기 같은 표지가 조금 그렇긴 한데 작가가 손홍규라고 하니 더 주저할 것도 없었다. 물론 난 아직 손홍규 작가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이력은 익히 알고 있었던지라 선택해도 후회는 하지 않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유려하게 장기려 박사의 일대기를 풀어냈다.

 

장기려 박사의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와 6. 25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는 아니었을까 싶다. 난세에 영웅이 있다고 하지만 이 시기 기억하고 싶은 몇몇 의인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손양원과 주기철, 김구 등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으면 안 되는 사람들 말이다. 그 가운데 또 기억할 사람이 바로 장기려 박사다.

 

그는 일제 강점기 부자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일본인 밑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해 가난하게는 살지는 않았다고 한다. 공부도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대체로 우수한 편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진로를 고민하다 우연히 친구의 어머니가 의사 한 번 만나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의사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때는 일제 강점기였던 만큼 일본인 의대생들의 차별을 견뎌가며 그들 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 조선 최고의 외과 의사가 되기도 한다. 당시 그는 스승인 백인제 교수 밑에서 의술을 연마하며 폐암 환자의 수술을 성공으로 이끌기도 했는데 그런 이력이면 승승장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에 그 모든 걸 버리고 인술의 길을 간다. 또한 그가 그럴 수 있는 것엔 늘 희생하며 사셨던 그의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또한 보이지 않는 그림자였던 아내의 역할이 더해지기도 했고. 그는 나중에 월북해 김일성대학에서 교수가 되기도 했는데 이후에 발발한 6. 25와 그로인한 가족과의 생이별과 월남해서도 연좌제로 인한 고통 등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작가는 당시의 사회 풍경, 장기려 박사의 의사로서의 시대적 고뇌를 생생하게 복원하기도 했는데 특히 일제 강점기가 끝난 직후의 풍경도 꼼꼼하게 되짚어 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희망적이고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물론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전운이 감돌기도 하지만 바로 직전 흥청망청 대는 사회 배경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일본에 복수라도 하듯 본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일본 여성을 어떻게 농락했는지 말이다. 여담이긴 하지만 전에 이 시기의 일본 여성을 조명한 책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일본이 맹위를 떨쳤다고 해서 그 나라 여성들이 꼭 행복했던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나라 위안부는 이렇게 일본 정부에 항의라도 할 수 있지 그들은 어디 가서 항의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내가 더 이 책을 읽으려고 했던 건 그와 더불어 동시대인으로 함석헌이나 김교신과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 책을 읽는 일종의 보너스 같은 것이기도 하다. 때로 사람은 실력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바로 이럴 때다. 내가 실력 있는 사람이 되면 그런 훌륭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날은 그 목적이 변질돼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다는 것이다. 하긴 입신양명을 위한 마음이야 어느 시대고 사람의 하나같은 마음이니 그걸 무조건 나무랄 수만은 없지만 어두운 시대 장기려 박사와 시대를 함께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건 적지 않는 감동을 준다.

 

그는 자신의 둘째 아들과 월남하여 남과 북이 갈라지고 전쟁의 상흔으로 많은 정신적 고통을 당하지만 평생 신앙에 의지하며 독신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작가 손홍규는 장기려의 전기와 수상록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정말 그 이름으로된 기독교 신앙 서적이 눈에 띈다. 슈바이처가 의사면서 신학자인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한데 그도 그랬던 것 같다.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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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2-29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감각적인 문장의 손홍규 작가 책이네요! 덕분에 알아가요!^^ 한해 동안 감사했어요! 새해에도 복 많이 북 많이 ~~^^

stella.K 2016-12-31 10:56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은 우리 소설 많이 읽으시니까 손홍규 작가를
잘 알고 계시겠군요. 저도 이 책 덕분에 손혼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감사했어요. 그장소님도 새해 복 많이 받고
더욱 행복하세요.^^

[그장소] 2016-12-31 11:21   좋아요 1 | URL
아~ 네.^^ 문장이 좋아서 좋아하는 작가인데 Stella. k 님 포스팅으로 만나니 더 반가워서요!^^
새해 행복 .일. 애정 뭐든 ...희망하시는대로 이뤄지시길!!^^

북프리쿠키 2016-12-29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버지가 일본인 밑에서 조선인 노동자를 관리하는 일을 해 가난하게는 살지 않았다˝는 말이 좀 거북합니다만..

아들은 훌륭하게 컸네요~
손홍규 작가 한분 또 알고 갑니다^^;

stella.K 2016-12-31 11:00   좋아요 1 | URL
그래서 할머니가 그렇게 많이 베풀며 살았다고 하더라구요.
그걸 손자가 보고 자란 거고.
나중에 해방되고 아버지가 어떻게 됐는지는 나오지 않고 있어서
좀 아쉽긴해요. 부역자라고 고초를 당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할머니 덕에 그걸 피해가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뭐 공부는 어려움없이 한 걸 보면...
작가도 작가지만 나중에 장기려 박사도 읽어보세요.^^

yureka01 2016-12-30 0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몰랐던 위인 또 한분 만난 느낌이네요..^^..

stella.K 2016-12-31 11:02   좋아요 2 | URL
난세에 영웅이 난다지만 난세에 의인이 나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hnine 2016-12-3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이 또 바뀌었네요! 예쁜 심장 사진~ 좌심방 위에 눈이 집중적으로 쌓였어요 ㅋㅋ
한동안 장기려 박사에 대해 방송에서도 나오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이산가족 찾기 즈음인지, 민간인 방북이 이루어지기 시작할때인지...이름이 독특하기도 해서 기억하고 있지요. 손홍규 작가는 소설만 쓰는 줄 알았더니 이런 책도 썼군요.

stella.K 2016-12-31 14:3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심장으로 보니 정말 그러네요. 왜 그럴까요...?
소피 마르소는 예뻐서 그냥 잠깐 달아 본 거구요.ㅋㅋ

그랬나요? 그런데 전 왜 기억이없을까요...
정말 이름 한 번 들으면 안 잊어먹을 것 같아요.
이런 분 많이 계셔야 할 텐데. 어딘가 찾아 보면 있겠죠?
제2, 제3의 장기려...ㅠㅠ
 
연애 감정
원재훈 지음 / 박하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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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은 오래 전 <나는 오직 글 쓰고 책 읽는 동안만 행복했다>를 읽을 때부터 좋아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을 괜히 선택했나 잠깐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남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후일담 같은 건 읽어 줄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 질질거림이 싫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애초에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했을까? 그냥 연애 감정이 뭔지 단순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주길 바랐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말이다. 물론 난 작가의 이름 하나 보고 선택한 게 더 타당하지만. 표지도 마음에 든다, 그런데 다 읽고 난 느낌부터 얘기하자면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왜 초반에 질질거림이 싫다고 했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뭔가 그 사랑에 다가가지 못했고,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어영부영 멀어져간 기억들이 건드려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연애 감정은 아닐까? 지금은 그 때보다 너무 많이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유치하고, 미숙함, 미성숙 뭐 이런 단어로 설명되어질 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할 것 같아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책은 기꺼이 미숙했던 나와 마주보기를 권하고 있다. 그런데 또 하필 작가는 우리가 한때 불렸던 386 세대들을 그렸다. 물론 연배는 나 보다 조금 앞서긴 하지만.

 

지금의 386 세대는 어떠한가? 다들 50줄을 타고 있고 어떤 이는 60이 코앞이다. 아이들은 막내가 고등학생쯤 되었을 것이고 보통은 대학들을 다니고 있거나 졸업을 앞두고 있고, 어떤 이는 한번 정도 이혼을 했을 것이며, 한 가지 이상의 병들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엊그제도 송년회를 갖다 왔는데 같이 모이기로 한 사람의 형이 뇌종양 판정을 받아서 못 나왔다. 그런데 연배가 그래서인 건지 아니면 의학이 좋아져서 그런 건지 그리 놀라지도 않는다. 딱 그런 세대의 사람들이 이 책에도 나오는 것이다. 작가는 왜 하필 그런 세대의 사람을 소환한 걸까? 사람은 죽으면 모를까 사랑은 언제 어떻게든 다시 마주하게 되어 있나 보다. 아니 그 보다 자신이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산다면 정말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을 한 번쯤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이 소설은 바로 그렇게 시작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얼개도 약간 복잡하다. 두 남녀간의 (이루지 못한)사랑에 대해 올곧게 그린 게 아니라 이를테면 주인공은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동시에 저 사람도 좋아한다. 그런데 그 좋아하는 강도나 색깔이 다르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의 사랑을 지켜보기도 한다. 존경의 의미로. 누구는 순수고, 누구는 정염으로 사랑하기도 한다. 또한 그 순수함이 오히려 정염에 불을 지피는 작용을 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조금은 복잡하다. 하지만 그 글 줄기를 타고 주인공의 고뇌와 철학적이면서도 인문학적 교양과 사유가 돋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대단하다 싶다.

 

이 작품은 역동적이면서도 동시에 관망적이기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며 모자이크 기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저변엔 죽음이 깔려 있기도 한데 그래서일까? 이야기가 제법 묵직하다. 읽고 나면 우린 모두 다 온전한 사랑에 이를 수 없는 나약하고 미숙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 사실에 오히려 위로 받는 느낌이다. 주인공이 한때 좋아했고 애인 때문에 불교에 입적한 학교 선배 월명 스님이 그런 말을 한다.

산다는 게 그런 것 같아 갈증이 나는 상태가 반복되거든. 육체보다 영혼의 갈증이 더 심할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우리의 시절일 거야, 이 갈증이 사라지고 그저 습관적으로 살아가면 그땐 늙은 거지. 젊은 우리는 항상 갈증이 나거든.(201p)

 

우리들의 젊은 시절을 함축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도 같다. 갈증의 시절이니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사랑이 이르지 못하는 지도 모르겠다. 또한 누구는 사랑은 길을 잃지 않는다고도 했는데 주인공이 나영을 만나 나누는 대화가 제법 의미심장하다.

...... 어떤 사람은 그자 떠나갈 때 가장 잘 보이는 것 같아.“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다가가기 전과 떠나갈 때 가장 잘 보이는 것.”

모든 건 연결되어 있으니까. 생각의 꼬리가 자꾸 이어지는 거지. 결국 사람과 사랑은 자웅동체의 생명체야.”(238p)

 

잡지 못하고 이루지 못할 때 비로소 보이는 사랑의 실체. 과연 그럴듯한 명제 같다. (물론 인정하지 않을 사람도 있겠지만)어쨌든 그러고 나니 내 이루지 못한 사랑도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삶을 비극이라 여기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삶을 시작한다.’ 유명한 시인 예이츠의 말이다. 서문은 첫사랑을 두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사랑을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한 지 1년 되는 시점에서 교통사고로 임신한 아내를 잃기도 한다. 어찌 보면 참 사랑과 인연이 먼 사람처럼도 보인다. 그런데 그런 것조차도 괜히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말미에 가면 주인공 서문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모습이 서술되어지는데 소박한데도 장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그의 첫사랑 나영과 함께 동반 자살을 하는데 죽어야 이루어지는 사랑이 쓸쓸하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하다.

 

그렇잖아도 저자는 이 소설을 지금도 가끔 지나간 옛 연인을 생각하는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고, 그것을 아예 잃어버린 사람들이 읽는다면 더 좋겠다고 했다. 이런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들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살다가 어느 때가 되면 조용히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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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12-2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에 대한 이야기지만 죽음이 저변에 깔려있고, 묵직하다. 그나마 이런 소설류가 저에겐 좀 더 어필하는듯 합니다 ㅎㅎ 원재훈이란 작가 기억할께요^^

stella.K 2016-12-28 13:24   좋아요 1 | URL
쿠키님이라면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였으면 저도 안 읽었을 거예요.
글빨 좋은 작갑니다. 영화에 몽타주 기법이란 게 있잖아요.
일명 모자이크 기법.영화 보는 기분도 나고
엣날 기억도 나고. 아무튼 전 좋았습니다.
나중에 함 읽어 보세요.^^

2016-12-28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8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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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한 번 봐야지 해 놓고 못 읽었던 책을 선물을 받고서야 비로소 다 읽었다. 이렇게 괜찮은 책인 줄 알았으면 진작 읽을 걸. 속 보인다 싶다.

 

왜 박웅현, 박웅현(발음도 어려운 이름이다)하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역시 그의 책 한 권쯤 읽어봐야 그의 진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광고장이가 무슨 인문학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모든 건 인문학을 바탕으로 해서 나온다는 걸 그는 일찌감치 간파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의 강의는 웬만한 인문학자 뺨치는 수준이다. 어쩌면 구사하는 언어가 찰지고 쫀득쫀득한지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날 정도다. 특히 읽으면서 역시 직업은 못 속이는구나 싶었다. 언어의 구사가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다. 또한 언어를 듣지만 동시에 보는 것도 같다.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흔히 인생의 속도를 두고 10대는 10km, 20대는 20km, 30대는 30km로 간다는 말을 한다. 이러다가는 정말 인생을 후딱 살다 후딱 갈 것 같다. 언제부턴가 이 생의 속도를 늦춰 볼 수는 없을까를 생각해 본다. 박웅현이 책에서 그런 말을 한다.

‘’‘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 11시에 고양이가 내 무릎에 앉아 잠자고 있고, 제이슨 므라즈의 음악이 들리고, 책 한 권 읽는 그런 순간이 잊히지 않을 겁니다. 말씀드렸듯이 그것들은 약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기준을 잡아주는 훌륭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 대부분이 책을 씁니다. 그래서 그 책들을 읽으면서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31p) 

박웅현의 저런 간지는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겐 절대로 나올 수 없다. 지금까지는 최선을 다해 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또 어찌 보면 그게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패기 넘치는 젊은 때 한때 할 수 있는 말이고, 행동이라면 이제 젊음을 다 보낸 어떤 사람에게까지 꼭 적용해야 하는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겐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음미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하루를 48시간처럼 쓰기도 한다는데 그런 재주는 내게 없는 것 같고, 그래도 흘러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오래 붙들려면 생각 없이 살지 말고 순간순간을 생각하며 살아야하지 않을까? 그에 따라 책을 읽는 자세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박웅현의 저 말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이제까지는 남 보다 많은 지식을 쌓기 위해 책을 읽어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 삶을 사랑하기 위해 읽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정신은 의식 위에 떠다니는 특정한 대상을 포착하게끔 회로에 설정된 레이더와 같아서, 책을 읽고 나면 그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레이더에 걸린다는 겁니다. 회로가 재설정되는 거죠.(128p)

박웅현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현재 어느 나잇대를 살던 그만큼의 책을 읽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 보단 일부러 고생스럽게 암벽 타듯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인생의 속도를 늦추던 따라잡던 하지 않겠는가. 시간이 없다, 눈이 점점 나빠진다,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온갖 핑계로 책을 점점 멀리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래봤자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연말에 하는 것 없이 시간만 보냈다고 허탈해 하는 정도다. 나를 위한 삶은 솔직히 어렵고, 버겁고, 귀찮다. 되는대로 사는 게 제일 편하긴 한데 남는 것이 없다.

 

박웅현의은 사유가 깊다기 보단 스마트하고 상당히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문득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으면서 내가 읽은 책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박웅현처럼 함께 나눌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게 부끄럽고 아쉽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은 알랑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통찰을 읽을 때다. 지금까지 난 그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늘 느끼는 거지만 그는 철학자로서 소설을 얘기하지만 그 속에 철학을 얘기 해 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좀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뭔가 부담스러웠는데 이 책을 읽을 때야 비로소 뭔가 정리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책은 이렇게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을 때 좀 더 좋은 효과를 낸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것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내내 즐거웠고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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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6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12-26 17:43   좋아요 2 | URL
맞아요. 나는 책을 안 읽어도 내 자식만큼은 하는 마음 있죠.
그래도 그나마 그건 또 나은 줄도 모르죠. 적지않은 수가
책을 왜 읽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잖아요.

기억의집 2016-12-26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에 대한 여유가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에 저 이 책 읽었는데 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스텔라님 말씀대로 깊이는 없었어요. 그래서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요즘은 책이 꼭 깊이가 있을 필요는 없단 생각이 들어서 다시 읽으면 좀 더 이 책과 많은 공감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stella.K 2016-12-26 18:29   좋아요 1 | URL
참고하기 좋은 책이라고 해야 하려나요?ㅋ
아무튼 전 나름 좋았다고 생각해요.

기분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그래도 뭐 매일 뉴스 보면 매일 새로운 사건들이 터져 나오고
요즘엔 뉴스를 아예 안 보는 게 낫잖나 싶어요.
그래도 뭐 그건 그거고 우린 또 매일 매일을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마무리 잘 하시구요, 내년에 기억님도 좋은 일 많이 있길 바래요.^^

북프리쿠키 2016-12-2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햐~ 전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리뷰쓰는게 젤 어렵던데..
글이 솔직하면서 쉽고 아~주 잘 읽혀요..ㅎㅎ

˝언어를 듣지만 동시에 보는 것도 같다˝란 말 근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알랭드보통의 책이 뭔가 정리된다는 말씀 또한 반가웠구요..^^;

내친 김에 <다시, 책은 도끼다>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책은 도끼다>가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치면 1편
<다시, 책은 도끼다>2편 정도 되겠네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입니다만^^;;

stella.K 2016-12-27 14:40   좋아요 0 | URL
쿠키님이 또 선물해 주시면요.ㅋㅋㅋㅋㅋㅋ
농담입니다. 솔직히 가끔 저도 책 선물을 받긴 하는데
그렇게 받자마자 읽게되진 않거든요.
현재 읽고 있는 책도 있고 사이사이 끼어드는 책도 있고.
그런데 이 책은 도무지 궁금해서 끌고 있을 새가 없더군요.
아, 그러니까 읽기는 벌써 다 읽었는데 리뷰는 이제야 쓴 거죠.
글치 않아도 2편도 곧 읽게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제 오늘 문득 <여덞 단어>도 생각나던데
그 책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암튼 쿠키님 덕분에 좋은 책 읽었다고 립서비스만 합니다.ㅋㅋ

cyrus 2016-12-27 1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하루를 24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다는 꿈을 원한 적이 있어요. 낮에 일하고, 밤에 책 읽는 삶. 그렇게 해서 24시간 풀로 사는 거죠. 그런데 진짜로 이렇게 살면 명이 짧아질거예요. ㅎㅎㅎ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tella.K 2016-12-28 13:2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잠이 보약이라잖냐.
잠은 충분히 자야 그 다음도 기약할 수 있는 거야.ㅋㅋ
러시아 과학자 류비세프가 생각이 나.
그 사람은 자신이 하루에 무엇을 했는지 시간과 함께 꼼꼼하게
기록했다잖아.
난 그렇게 할 자신은 없고 앞으로는 안 해 보던 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 가 본델 가고, 안 해 본 습관을 들여보고,
뭐 기타 등등. 그럼 좀 인생이 알차 지려나?

고맙다. 나도 축하한다. 내년에도 좋은 글 많이 쓰고,
좋은 일만 가득가득 넘치길 바라. 건강하고. 화이팅 하자!^^

 

최근 우리나라 영화가 정말 많이 좋아졌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 말이 새삼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언제부터 좋아졌는데 그런 말을 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제까지는 상대적 개념이었다면 내가 말하는 건 거의 절대적 개념이다. 무엇보다 스토리적인면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다. 이제까지의 영화는 다소 스토리 전개가 부진했던 것도 사실 아닌가? 감독이 영상이나 이미지에만 신경을 썼지 스토리는 그것들이 커버해 줄 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닌지? 그런데 영화는 탄탄한 스토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그들은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영화가 오락적인 면에서 성공했느냐 안했냐는 러닝 타임 내내 관객을 얼마나 꼼짝 못하게 만들었느냐인데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선 일단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오래 전 보았던 산드라 블록와 카아누 리브스가 나왔던 <스피드>란 영화가 생각이 났다. 난 그때 단지 달리기만 하는 버스란 밀폐된 공간 안에서 도대체 무엇을 보여줄 건지 의문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다가 한 방 먹은 느낌을 받았더랬다. 이렇게도 긴박하고 위험천만한 영화라니.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달리는 기차라는 밀폐된 공간속에서 등장인물을 얼마나 위험에 빠트리며 관객은 또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보게 만들어 놓을 것이냐가 관건이다.

 

솔직히 이 영화의 구도는 간단하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좀비가 되기 시작했으며 그 좀비가  또 사람을 좀비로 만들려고 하고, 사람들은 좀비가 되지 않으려고 사투를 벌이며, 밀폐된 공간 여기서 저기까지를 뚫고 지나가는 게임을 한다. 그럴수밖에 없는 건 그 끝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하나 하나 좀비가 되어가고, 거의 다 왔을 때는 사람과 사람끼리 싸워야 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엔 살신성인의 마음 또는 사랑 때문에 좀비가 되어야 하는 인간의 운명(마동석과 공유)을 그렸다. 그만한 구도라면 꽤 괜찮은 그림임에는 틀림없다. 거기에  민폐 캐릭터 꼭 있다. 이 영화에선 용석 역을 맡은 김의성이다. 좀비에 의해 좀비가 되어가는 것도 모자라 그럴수록 인간끼리 똘똘 뭉쳐야할 판에 싸움을 부추기니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화가 나게도 만든다. 지금까지의 그의 필모를 봤을 때 김의성이 그 역할을 믿는 건 거의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 사람은 어쩌면 그리도 미운 7살의 어른 버전을 그리도 잘도 소화해내는지. 

 

           

원래 배우라는 게 참 피곤한 직업이고 그러자고 배우가 되기도 하지만 여기선 흔치 않은 좀비역을 감당해야 하는 수 많은 조연들 역시 꽤 피곤했을 것 같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못하면서 영화 내내 끊임없이 이상한 포즈로 꿈틀거리고 물어 뜯고 별 미친 포즈를 다 취해야 했으니. 

 

좀비는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의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영화는 그 집단 무의식에 빠진 인간을 깨우는데 좋은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영화를 어디에 적용하면 좋을까? 파벌을 만들고 그 안에서도 분열을 일삼는 오늘 날의 정치 세력들은 아닐까?

 

마지막 엔딩은 시나리오는 공학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긴 한데 보기에 따라선 너무 의도적이란 게 느껴져 효과는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어디선가 본듯하다. 공유가 좀 더 이기적인 인물로 나와도 좋았을 텐데 감독은 이 잘 생긴 배우에게 나쁜 캐릭터를 맡기기가 차마 어려웠나 보다. 아니면 원래 나쁜 사람은 없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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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5 2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12-26 13:27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근데 어떤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선
좋은 영화긴한데 조금 더 짜임새있고 스펙타클하게 보여줄 수도
있지 않았나 그런 아쉬움도 남아요.
그래서 차마 별 네 개는 못 주겠더군요.

2016-12-26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6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6-12-26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6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저는 달인 못 되었어요. ㅋ

stella.K 2016-12-26 15:5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같이 됐으면 좋았을 텐데...ㅠ

그래도 뭐 그렇게 기쁘진 않아요.
올해도 컵과 달력, 다이어리 준다는데
달력을 제외하곤 나머진 별로 거든요.
제가 한꺼번에 책을 뭉텅뭉텅 사서 할인혜택을 많이 받을 것도 아니고.ㅋ
 
안희정의 함께, 혁명
안희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또 정치의 계절이 돌아온 모양이다. 이번엔, 난데없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조기 대선이 불가피한 가운데 정치권 역시 대선 준비가 앞당겨질 모양이다. 정치의 계절을 실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언제부턴가 대선 후보들 저마다 책을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시기가 우연히 그렇게 맞아 떨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책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난 안희정 씨에 대해선 듣기는 많이 들어도 그에 대해선 그다지 아는 바가 없다. 안다면 한때 노무현의 사람이었다는 정도? 하지만 아직도 정가에서는 그 리더십이 꽤 인정받는가 보다.

 

그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 1989년 김덕룡 의원실로 출근을 하면서 제도권 정치와 처음 마주했고 이듬해 3당 합당을 하는 것을 보면서 회의를 느껴 정계를 떠났다고 했다. 그런 그가 노무현을 만나면서 다시 정계로 복귀를 했고 지금까지 이르렀다. 떠났다 다시 돌아왔으니 그 마음이나 각오가 어떨지 가히 짐작도 간다.

 

태곳적부터 정치인은 권력을 등에 업은 입신양명의 표상으로 인식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그들은 싸움의 아이콘이고, 여론 몰이의 달인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식은 늘 좋지 못하다. 그럼에도 사람이 어느 정도 명예와 돈이 있으면 여의도 쪽을 바라본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랄까. 저자 안희정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말을 빗대어 두 가지 유형의 정치인이 있다고 했다. 정치를 위해서살아가는 정치인과 정치에 의해서살아가는 정치인. 그중 정치에 의해서살아가는 정치인은 많이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뭔가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정계를 떠났다 다시 돌아왔으니 그런 식별이 남다를지 몰라도 우리네 일반인들은 누가 정치에 의한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그런 사람 있으면 증권가 정보지에라도 살짝 흘려주시라). 그게 아니더라도 언론이 정치인들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으니 누가 정말로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인지, 누가 정치꾼인지 식별이 어렵다. 게다가 늘 싸우기만 하니 혐오스럽고. 오늘 날처럼 정치인들이 저평가된 시대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안희정이란 사람도 어떤 사람인지 나 같이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사람은 알 길이 없다. 그렇게 된 것엔 나의 잘못도 없진 않으나 나는 정치와 언론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자시 쇄신의 노력이 없고, 언론은 정치적 이슈만을 쫓다보니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나는 정치인들을 실제로 만나 본적이 없는데 누구라도 만나면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긴 하다.정치는 그렇게 싸워야 하는 것인지. 싸우지 않고 정치할 수는 없는 것인지. 상생의 정치 그것의 실체는 고사하고 그림자만이라도 보여줄 수 없는 건지 묻고 싶다. 그것에 대해 저자도 모르지는 않는가 보다. 정치인들은 왜 싸우는가에 대해 그는 말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정치는 자기 지지자를 결집시켜서 51퍼센트만 얻으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하기 때문에 싸운다. 그러니까 51퍼센트의 확률의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49퍼센트의 반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싸움. 이게 정치라는 것이다. 이 싸움을 위해 반대와 증오가 넘실거리는 언어를 구사하고 과거 식민지, 분단의 기억들을 헤집어 낸다(101~102p). 내가 알기론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지배원칙이 아니라 소수를 무시하거나 소외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49%의 반대는 결코 적지 않은 수치임에도 그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51퍼센트를 먼저 장악했다고 그게 과연 잘하는 정치라고 할 수 있을까? 과거 그들은 이 51퍼센트를 위해 장외투쟁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또한 서로 싸우느라 국회 회기 동안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건수가 부지기수다. 대화와 타협이라고 해 놓고 이것을 역행했다. 이제는 좀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번에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박근혜 대통령 규탄 집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아름답고 단호한 집회라고 생각한다. 예전 같으면 결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어딜 가도 반대파는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파와도 충돌이 없다고 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100퍼센트 찬성한다면 그건 독재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린 이제 서로 틀림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 같다. 저자가 이런 말을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니 욕먹더라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게 사공이 많은 배와 같다. 그 사공들이 합의해서 규칙을 정하고, 한번 정한 그 규칙에 따라 한 방향으로 노를 저을 때, 그 배는 사공이 하나인 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안정적으로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게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다(102p).

 국민들은 이미 그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제 정치인들이 그것을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나? 이번 박근혜 하야를 누구보다도 반겨 맞이할 정치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은 국민들과 한마음이라며 같은 목소리를 내지만 훗날 그들은 또 어느 때 자기 색깔을 드러내며 아전인수 격으로 나올지 알 수 없다. 이제 이런 모사꾼은 좀 집에서 푹 쉬고 있어도 좋지 않을까? 우린 이미 그런 사람들은 너무 많이 봐왔으니 말이다. 

 

정치에 의해 살아가는 정치인은 과연 누구인지 생각해 본다. 안희정은

신영복 교수의 <담론>을 보면 우리의 지식이라는 것은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로 가는 여행이라는 말이 나온다. ... 신영복 선생은 반성적 사고를 통해 현실의 토대 위에 다시 세울 줄 아는 힘이 진정한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 정치인에게 지식이 발로 간다는 것은 땀 흘려 알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것을 재해석해낼 수 있는 힘, 또는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낼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여기서 미래상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내가 정치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 일이다(96~97p).

이게 안희정이 말하는 정치에 의한 정치인은 아닐까? 정말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 어찌 반기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 가운데 벌써 몇 주째 광장으로 모여든 시민들을 보면서 속으로라도 미소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초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어야 하는 것이 정치인들이 할 일 아닌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벌써 몇 주째 황금 같은 주말을 집회에 바치고 있으니. 그들은 평일 내내 노동을 하고 광장에서 박근혜 하야를 외치고 있다. 국민을 피곤하게 만드는 정치가 제대로 된 정치인가 묻고 싶다.

 

저자는 노무현의 사람답게 그를 회상하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비록 뜻은 이루지 못했지만 서민을 이해하려고 했던 대통령으로 이만한 대통령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롤모델이 될 만하고 안희정를 가리켜 리틀 노무현이라고 한단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는 이미지 메이킹이다. 대통령이 되려고 노무현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냥 안희정은 안희정으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해나갔으면 좋겠다. 말미에 보면 그가 했던 일을 언급하기도 했다치적을 위한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으나 새삼 드는 생각은 정치란 바로 이런 거란 생각이 들었다. 권력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나라 살림 잘 하는 것. 이게 정치다. 뭐 하나를 추진하려면 거치는 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제 정치는 51%의 장악이 아니라 49%를 위한 설득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치에 의한 사람의 자세는 아닐까? 그런 점에서 안희정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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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12-20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텔라님 정치의 정짜도 모르신담서
이 책은 어찌 만나셨는지..~
여자분치곤 (여성비하아님ㅎㅎ) 꽤 다양한 책을 읽으시는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만.
요즘 고전문학 읽기도 시간이 빠듯한 저 기죽습니다ㅎㅎㅎ

stella.K 2016-12-20 14:21   좋아요 1 | URL
아유, 대신 저는 고전을 많이 못 읽고 있잖아요.ㅠ
좀 잡식성이긴 하죠.
제가 정치의 정자도 몰라 읽은 책인데
여전히 모르겠더군요.하하.

2016-12-20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12-20 14:25   좋아요 1 | URL
정말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나라살림 잘하는 거더군요.
광역자치단체의 빚이 3000억이라니 정말 억소리 나네요.
그러니 얼마나 방만한 살림을 해왔는지 알 것도 같고.
내 빚 아니라고 그래도 되는 건지 원...
그걸 안희정이 900억으로 줄여다면 상당한 능력자네요.
썼지만 정말 누가 누가 일 잘하나 명단공개 좀 했으면 좋겠어요.
언론에선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으로만 다루고 있으니...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