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
유카와 유타카.고야마 데쓰로 지음, 윤현희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하루키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책을 아예 안 읽으면 모를까 책을 읽는다면 언제 어느 때 한 번은 마주하게 될 작가가 하루키일 것이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봤더니 이 책 말미에 나오는 서지적 연보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는 30세에 문단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책을 한 번도 내지 않은 때가 없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번역물이든 뭐든지 간에 지치지 않고 꾸준히 책을 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거든 그 사람 눈에 자주 띄어라는 말이 있다. 이건 꼭 연애의 법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열심히 책을 내는데 어떻게 하루키의 책 한 권쯤 읽지 않을 수 있을까.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책장에 그의 책 한 권은 반드시 꽂혀있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하루키는 어마 무시한  작가라는 것 아는 알아두자. 처음엔 그 문체의 독특함에 끌렸다 노골적인 성 묘사에 질려 하루키 볼 거 뭐 있어? 하고 방구석에 처박아 두고 등한시한 사이 그는 그렇게 거대한 작가가 되어 있었다.

하루키가 이렇게 유명한 작가가 되니 여기저기서 그를 연구한 책들이 나오고 있다. 연구서라기보단 그에게 보내는 팬 레터의 의미는 아니었을까? 나도 몇 년 전 그를 분석한 책을 읽기도 했는데 뭐 나름 흥미는 있었지만 용두사미가 된 느낌이라 좀 아쉬웠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보다는 확실히 튼실해 보인다. 아무래도 하루키가 일본인인 만큼 자국 내 평론가와 저널리스트가 썼으니 좀 더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애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책은 두 지은이의 대담집이다.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놓고 논할 땐 그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총망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하루키가 1979년 30세에 데뷔한 이래 65세이던 2014년까지 좀 많은 책들을 내놨겠는가. 모르긴 해도 두 지은이는 그것을 꼼꼼히 읽었을 것이다. 이 대담집을 내기 위해 어느 한 기간 몰아서 읽었을까? 읽다 보면 왠지 그랬을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언제부터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 왔을지 모르지만 한두 해 자료 조사 가지고는 이런 대담이 나올 것 같지 않다. 그래서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단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독자인 나에 대해서였는데, 사실 난 하루키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잠깐 흥밋거리로 책을 읽고 꽤 오랜 세월 관심 없이 지냈었다. 그러다 최근 하루키의 글쓰기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다시 그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그동안 읽지 않은 책들이 너무 많아 이들의 대담을 쫓아가기가 조금은 버거웠다. 물론 하루키의 문학이 그렇듯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내용도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다는 아니어도 그의 굵직 굵직한 작품들은 어느 정도 읽어줬더라면 이 책이 조금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하루키의 작품들을 낮게 평가했었다. 그래봐야 맨 섹스 이야기 아니냐고. 하지만 인정해야 하는 건 그의 글을 쓰는 자세에 있어서만큼은 범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기 위해 자녀까지도 포기한 사람이다. 요즘에도 그런 작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가 한창 젊었을 7,80년대만 해도 그런 마음을 먹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더구나 그가 외아들이라지 않는가. 동양적 사고방식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건, 대담도 대담이지만 두 지은이가 하루키를 분석한  각자의 글이 내겐 더 흥미로웠다. 물론 대부분은 파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긴 하다. 그가 음악광이라는 것. 챈들러를 비롯해 몇몇 미국 작가들을  지극히 애정 한다는 것, 마라톤과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 등등. 그런데 이 책엔 (나쁘게 말하면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좀 더 자세하고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 해 놨다. 가히 '하루키 기호학'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런 것을 읽다 보면 그전부터도 그런 의문이 들긴 했는데 하루카는 슈퍼맨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이 한 가지 일도 잘하기도 힘든데 이번에 새롭게 안 것은 그는 영화광이기도 하다는 것이다(물론 소설가가 영화를 사랑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음악 듣고, 세세 영화도 보며, 언제 글 쓰고, 언제 번역도 하며 달리기는 언제 하는 걸까? 잠은 잘까? 밥은 먹나? 화장실도 안 갈 것 같다.  

하루키가 그렇게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물론 그는 글 쓰는 것을 너무 좋아해 매년, 매일 그렇게 열심히 쓰는 것에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의 사생활도 공유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그의 모든 것은 글을 쓰기에 최적화 되도록 맞혀져 있다. 거기엔 어떤 흠이나 티가 없다. 어찌 보면 문학계에도 성직자가 있다면 하루키는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점은 그렇게도 갑질 논란이 많고, 성적인 타락을 비껴가지 못한 우리나라 문단계가 좀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루키는 자신의 글쓰기를 위해 제자도 키우지도 않는다지 않는가. 우리나라 작가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존재가 인정을 받거나 정점에 서게 되면 너무나 빨리 자신의 글쓰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대학 강단 자리를 넘보거나 어느 문예지 편집자 자리를 노린다. 뭐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그 이면에 그들 나름의 불안이 존재해 있기 때문은 아니겠는가. 자신이 글 쓰는 행위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점에서 좀 전사(戰士) 다운 정신이 아쉽다. 그러면서도 이 책처럼 누군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가지고 대담해 주고, 평가해 주길 바라는 것은 아닌지. 또 그러느니만큼 하루키에게선 사무라이 정신이 읽히기도 한다.            
 
하루키가 어느 때부턴가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있다. 난 처음에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것을 반대했다. 물론 나 하나의 의견이 그것을 좌우할 리 없겠지만 그건 어찌 보면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를 반일 감정 때문일 수도 있고, 섹스 얘기나 하는 사람한테 뭐가 아쉬워 노벨 문학상이 하루키한테 수여되겠느냐는 저평가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그게 아니더라도 노벨 문학상은 대중성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에게 상을 줄 리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키는 이미 노벨 문학상 전단계에 해당한다는 카프카 상을 수상 바 있다. 그는 그 상을 받고 수상소감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남겼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순기능적인) 일들이 있을 수 있을 텐데 작가로서 가장 멋있는 순간이 아닐까?    
 
이 책도 그렇지만 독자로 하여금 기꺼이 작가를 쫓는 모험을 아끼지 않게 만드는 작가. 이런 작가가 진짜 작가는 아닐까? 한때는 좋아서 그 작가의 작품을 꼬박꼬박 사 모으기도 했는데 어느 때부턴가 독자와 멀어져 요즘 그 작가 뭐 하냐고 묻게 만드는 작가. 뭐 아예 독자의 뇌리에서 잊힌 작가 보다야 낮겠지만 차라리 절필 선언을 했으면 모를까 그런 작가도 썩 좋은 작가 같지는 않아 보인다. 자신이 과거에 무슨 작품을 썼노라고 그것 가지고 우려먹으려 하지는 말자.

모르긴 해도 하루키는 죽는 날까지 글을 쓸 것 같다.  그것에 비난을 받던 찬사를 받던 관계없이 계속 쓸 것 같다. 독자로서 그런 작가 한 사람쯤 알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우리나라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난 요즘 하루키에 대한 애정이 다시 생겼다. 그의 작품과 함께 나이 먹고 늙어갈 것을 생각하니 그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오래오래 작품을 쓰는 작가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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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3-25 19: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하루키가 위 문구를 자신의 묘비명으로 하고 싶다고 어느 책에선가 썼습니다. 너무나 하루키와 어울리는 묘비명입니다^^

stella.K 2017-03-25 20:01   좋아요 2 | URL
엇, 그런 말이 있었습니까?
멋진 말이군요.
정말 하루키는 쓸데없이 멋있습니다.ㅎㅎ

북프리쿠키 2017-03-25 2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텔라님 하루키에 공감하셨다니 반가울 따름입니다ㅎ 사실 하루키의 성묘사도 허무감이 짙게 배어있어 나름 오리지낼러티에 일조한거같구요.
자기 입으로는 천재성이 전혀 없다지만 그건 아닌거 같구요. 성실성이라면 <달리기에대해내가말하고싶은것들> 에세이 추천드립니다^^;

stella.K 2017-03-26 18:22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말씀하신 책도 읽어봐야 할 텐데 말이죠.
노력없이 얻어지는 천재성은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입증한 사람이 하루키가 아닐까 싶어요.^^

transient-guest 2017-03-26 0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자기관리도 대단하고 꾸준한 글쓰기 여행 술 음반 영화까지 뭐든 계속 해나가는 건 더욱 대단한 것 같습니다 말씀처럼 조금 유명해지면 술 여자 명예 강단 등 글이 아닌 다른 걸로 나가는 한국 문단의 모습과 비교됩니다

stella.K 2017-03-26 18:25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도 하루키 같은 사람이 나와줘야 할 텐데...
또 찾아 보면 없지 않겠죠. 단지 그 작가가 대중성이 없어서
우리 같은 독자가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정말 우리나라 문단은 개혁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봐요.

페크pek0501 2017-03-26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루키 책을 서너 권은 읽은 것 같아요.
어제 동아일보에 실린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 이란 제목의 칼럼을 읽었는데
선인세 ‘판권 계약금‘이 2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니
놀랍게 하는 작가임에 틀림없어요.

10년? 가량이던가 일본을 떠나 장기간 외국 생활을 한 것이 그를 일본 틀에서 벗어나게 했고
보편적인 글을 쓰는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외국 문화를 흡수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속에서 산 작가였으니.

그가 좋아하는 마라톤처럼, 열심히 끈질기게 달리듯 글을 쓰는 작가를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20억원 소문이 날 정도의 작가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stella.K 2017-03-26 18:27   좋아요 0 | URL
어마어마하군요.
김훈이 인세가 나름 높은 걸로 알고 있는데
뭐든 성실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는데 참 성실해진다는 게
쉽지가 않아요.ㅠ

해피북 2017-03-26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에겐 무척 궁금하고 호기심 많은 작가인지라 그의 책을 마구마구 읽고 싶은데 어쩐일인지 호기심만큼 책이 안읽혀지는 작가가 아닌가 합니다. 방금까지 <개인주의자>를 읽었는데 문유석님 글에도 하루키 이야기가 나왔어요. 잊을만하면 한번씩 나오구 여러 책과 북플에서 이어달리기처럼 나오구 자꾸 호기심은 커지고 궁금한데 당췌 손은 안가구 ㅎㅎ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 책 써주신 글 읽어보니 이 책부터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ㅋㅂㅋ~~

stella.K 2017-03-27 12:53   좋아요 0 | URL
무슨 조화. ㅎㅎ
그런 책 있죠. 저도 하루키가 아주 잘 읽혀지는 작가는
아닙니다. <1큐84>는 문체가 어려운 건 아닌데
그렇다고 진도가 팍팍 나가진 않죠.
그래도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저는 처음에 단편에서 매료되었습니다.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인가 하는 책이 있죠.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 하루키를 다시 대하면 이 사람은
단편 보단 장편이 월씬 좋다 싶어요.

이 책은 썼다시피 어느 정도 작품을 읽고 난 뒤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루키 자체가 다작한 작가고 그것을 가지고 대담을 한
것이니 따라가기가 버겁지 않을까요?
가장 좋은 건 하루키 자체를 읽는 게 젤 좋은 것 같습니다.
남들이 하루키에 대해 쓴 책은 사이드로 참고만 하시구요.^^

고양이라디오 2017-03-31 16:42   좋아요 2 | URL
<해변의 카프카> 읽어보세요ㅎㅎㅎ 제가 처음으로 하루키를 접했던 책입니다. 하루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피북 2017-04-01 10:59   좋아요 1 | URL
아핫. 지난번에도 함 말씀 해주신거 같아서 책 구입 했어요 ㅋㅋ 원래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고 했는데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책이 많이 낡았더라고요~~IQ84는 거의 폐기 수준으로 가고 있고요 ㅋ 무튼 좋은 추천 정말 감사합니다. 즐겁게 읽어볼께용~~^^

고양이라디오 2017-04-01 12:37   좋아요 1 | URL
제가 감명깊게 읽었다고 해서 해피북님이 좋아하실거란 보장은 없지만ㅜ 아무튼 즐겁게 읽으시기 바랍니다^^b 전 그 책을 읽고 고양이를 좋아하게 됐어요ㅋ

stella.K 2017-04-01 14:26   좋아요 1 | URL
헉, 원래 고양이 좋아하시는 거 아니었어요?ㅋㅋ

고양이라디오 2017-04-01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수때 <해변의 카프카>보고 그 이후로 고양이가 좋아졌어요ㅋ
 

예전엔 적립금이 있어도 웬만해서 잘 안 썼다. 잘 모셔뒀다가 꼭 사야할 책이 있으면 그때 가서 사곤했다. 어떤 땐 적립금 소멸되니 빨리 쓰라고 독촉을 받기도 했다(그런 건 또 알라딘이 1등이다. 요 옆동네는 그런 것도 없더구만.ㅠ). 다 중고샵이 활성화되기 이전의 얘기다.

 

지금은 이상하게 금단현상을 겪는지 수시로 인터넷 중고샵을 드나들면서 쓸데없이 책을 사게 된다. 물론 필요한 책이 마침 중고로 나온 것이 있어 사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벼르고만 있었던 책이 눈에 띄어 사게 되기도 한다. 

 

특히 요즘엔 다시 하루키에 꽂혀서 중고샵에서 하루키 책만 보면 심장이 두근두근 손이 떨린다. 이건 작년에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은 후 나타난 현상인데, 암튼 그것 때문에 오래 전에 사 놓고 읽지 않은 <1Q84> 1권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3권까지 읽으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나는 바로 얼마 전 <해변의 카프카>를 사고 말았다. 이건 또 얼마 전 <카프카의 일기>를 읽었던 탓이기도 한데 알다시피 이 작품은 그 유명한 카프카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니 안 사고는 못 베기겠더라. 뭐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한 얘기를 하겠지만 하루키는 바로 이 섹스만 거두면 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하루키의 작품을 저평가하는 건 옳지 못한 것 같다. 요즘엔 하루키 보다 더한 작가도 많지 않던가.

 

이 책 역시 내가 벼르고 있었던 책이다. 이윤기의 책을 기회가 없어서 못 읽으면 모를까 그의 책을 읽고 실망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은 이러 저러한 책들 때문에 기회가 없어 못 읽고 있어서 그렇지 그의 책은 늘 나의 관심 대상이다. 그의 저서건 번역서건 간에.

 

글쓰기에 관한 책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은 정말 꼭 읽어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뭐 그건 그렇다고 치자.

 

 나는 바로 어제 <강규찬과 평양 산정현 교회>와 고종석의 <어루만지다>를 Y 중고샵에서 사고야 말았다. 앞의 책은 좀 필요할 것 같아 사고, 내가 나름 고종석을 애정하는 지라 보는 순간 안 살 수가 없었다. 

 

얼마 전, 모 알라디너가 책을 하도 사 들여 어머니 보기가 민망하다고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책 좋아하는 사람은 어쩔 수가 없구나 싶었다. 나도 그러니 말이다. 나는 그 알라디너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엄마 보기 민망한 건 따로 있다. 바로 우리집 다롱이 때문이다. 누가 왔다하면 온 집안을 뒤집어 놓는 통에 어떤 땐 엄마가 짜증을 내며 택배 좀 자제하라고 하는 것이다. 솔직히 내 책 때문마는 아니다. 택배 이용하기는 내 동생이 더 심한데 나도 이렇게 택배 이용을 하니 덤으로 말을 듣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봄이라서 내 깜빡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걸까? 어제 그렇게 책을 받고도 무슨 정신이었는지 알라딘 중고샵에서 책을 또 사 버리고 말았다.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책은 정말 내가 몇 년을 벼르고 별러서 산 책이다. 생각해 보면 이 책을 왜 그렇게 못 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범사에 때가 있다고 보는 순간 더 이상 늦추면 안 되겠다 싶었다.  

 

조승연은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셀럽중 한 사람은 아닌가 한다. 이 책이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궁금하긴 했다. 그가 말빨 못지 않게 글빨도 좋은지 궁금했던 것이다. 책 표지가 좀 중고생을 위한 책 같다는 느낌도 든다. 

 

이렇게 두 권이면 중고샵에선 2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2만원 이상이어야 배송비가 빠지니 어쨌든 이 액수에 맞추려고 장바구니에서 책을 뺐다 넣다를 얼마나 많이했는지 모를 것이다. 어떤 땐 배송비를 무르기도 했다. 솔직히 내 방은 책이 포화상태라 꼭 필요한 책이 아니면 안 사는 게 좋은데 그놈의 배송비가 뭐라고 이렇게 갈등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옆 동네는 만원 이상이면 배송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구만, 알라딘은 이 제도를 개선할 생각이 없는가 보다.ㅠ

 

아무튼 그러던 중 어제 새로운 방안을 찾아냈다. 바로 <불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을 새 책으로 산 것이다. 알다시피 이 책은 3천원도 안 되는 파격적은 가격이다. 알라딘은 가격이 얼마가 됐든 새 책을 끼워 넣으면 중고책 2만원 액수에 맞추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책 한 권만을 산다면 배송비를 물어야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새 책을 주문하면서 이 책 한 권만을 주문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어쨌든 그러다 보니 세 권에 만 8천 얼마 밖에 들지 않으면서 배송료는 당연 무르지 않았다. 앞으로는 이 방법을 적극 활용해 봐야겠다. 찾아보면 새책이면서 아주 저렴하게 나온 책들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악스트 잡지다. 이것 역시 3천원이 되지 않으면서 중고책을 필요 이상으로 사지 않으면서 잡지도 볼 수 있으니 나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자, 그럼 이 주문한 책을 어떻게 하면 엄마의 눈을 피해 받아 볼 수 있을까? 물론 며칠 전 그 알라디너처럼 편의점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나도 오래 전 그 방법을 쓰긴 했는데 그땐 주문 빈도수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귀찮아 이용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있긴 뭐가 있겠는가. 그냥 운에 맞기는 수 밖에. 마침 수요일은 엄마가 교회에 가는 날이다. 이렇게 엄마가 집에 없는 틈을 타 택배가 오면 좋겠는데 핸드폰 문자를 보니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 배송하겠단다. 물론 다소의 오차가 있겠지만 그 시간에 온다면 엄마가 집에 도착하고도 남는 시간이니 어쩔 수 없이 또 한마디 듣겠구만 했다. 

 

아, 그런데 웬일인가. 고맙게도 엄마가 집에 들어오기 전 책이 먼저 도착했다. 그러니까 엄마는 어제 오늘 연타로 내 책이 왔다는 걸 모르고 계시는 거다.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새 식구 맞으려고 오전엔 책 몇 권을 추려 집 앞 주민센터에 기증도 했다. 해 봐야 표도 안 나지만.

 

누군가는 그랬다. 자신은 적립금이 생기면 그 즉시 탈탈 털어 책을 산다고. 난 그때만해도 성격 한 번 꽤 급하시네 했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 지경이 됐다. 이게 다 중고샵이 생기고 난 나의 변화다. 중고샵이 나의 행동 패턴도 바꿔놓을 모양인가 보다. 

 

사실 이제 와 고백하는 거지만, 나는 지난 번 옆동네가 1년에 두 번하는 파워문화블로그 모집에 응모하지 않았다. 물론 응모해도 꼭 된다는 보장은 못하지만 되기만 하면 부지런만 하면 6개월 동안 5만원의 활동비를 지원 받을 수 있다. 만일 된다면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주로 책을 사는 것에 쓰게될 것이다. 지금까지 산 책은 어쩌고 책만 사 들인단 말인가. 그래서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때도 얼마나 갈등했는지... 난 지금 할 수만 있으면 책을 살 수 있는 모든 루트를 차단해야 한다. 물론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쯤되면 잘라라, 책을 주문하는 그 손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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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3-2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들이 눈에 띄네요~ㅋ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7-03-23 12:38   좋아요 1 | URL
ㅎㅎ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책 좋아하는 사람은 책만 보이죠?
클났습니다.ㅋㅋ

고양이라디오 2017-03-31 16:43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ㅠㅋㅋㅋ 어딜가나 책 밖에 안보입니다. 특히 요즘은 북플이 있어서 정말 언제 어디서나 책이야기를 접할 수가 있네요^^

기억의집 2017-03-22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공감 무한대! 진짜 자르고 싶어요~~ 저도 일큐팔사 다시 읽을까 하고 있어요. 삼권을 안 읽어서. 지난 번에 3권을 사긴 샀는데 앞 이야기가 기억이 안 나서 다시 읽어야겠다, 이러고 있어요 ~ 저는 남편한테 좀 눈치가 보여서 주말에는 절대 주문하지 않아요. 스텔라님은 어머님 눈치 보시는군요. ㅋㅋ

stella.K 2017-03-23 12:43   좋아요 0 | URL
오~~ 기억님!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한동안 기억님 볼 수 없어서 얼마나 궁금했는데요?ㅠㅠㅠ
잘 지내죠?
<1큐84>가 나름 흥미롭고 잘 쓴 작품이긴 한데 진도가 잘
안 나가죠?
전 이번에 1권만 두 번 읽었는데 두번째 읽으면 진도가 빠를 줄 알았는데
안 그러더군요. 그래도 2, 3권도 마져 읽어야죠.
읽으면서 하루키 좋아하신다는 기억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ㅋㅋ

2017-03-23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3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2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3-23 12:48   좋아요 1 | URL
와, 일주일에 두 번이면 엄청 나신데요?
너무 자주 와서 죄송합니다.ㅋㅋㅋㅋ
미안할 땐 박하스가 최고죠!ㅎㅎ

해피북 2017-03-22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동안 그런 경험이 있었거든요~ 자꾸 책장이 비어있으면 아쉽고 채워야할거 같고 좋아하는 작가 책이 보이면 무조건 사야할거 같구요 ㅎ 그러다가 정말 책 한 권 넣을 자리가 없는 포화상태에 이르고나서야 자제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요즘엔 도서관에서 책을 왕창 가져와서 읽고있어요 ㅋㅋ 아무래도 저는 평생 못고칠 고질병인가보다고 생각 했어요 ㅋㅂㅋ

stella.K 2017-03-23 12:5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책 좋아하는 사람들 증세가 다 똑 같은 것 같아요.
불치병이죠. 불치병.
그래도 건강하고 건전한 불치병 아니겠슴까?ㅋㅋ

cyrus 2017-03-23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부터 책 주문할 때 편의점 배송을 선택하려고 해요. 당일 배송이 아니더라도 좋아요. 일단 책을 내가 직접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제가 일하는 평일에 책이 집에 도착하면, 집에 계시는 어머니가 박스를 개봉해요. 그래서 제가 주문한 상품을 먼저 개봉하는 기회가 많이 없어요.

이런 방법도 괜찮아요. 책 상품이 도착하기 전에 택배직원이 먼저 연락 오면, 집 근처 다른 슈퍼마트에 맡기면 됩니다. 그런데 단점은 손님의 택배 상품을 믿고 맡길 슈퍼마트가 잘 없는데다가, 거기 가면 예의상 마트 물건 사줘야 해요. ^^;;

stella.K 2017-03-23 18:07   좋아요 1 | URL
ㅎㅎ 그렇지. 예의상.
그런데 꼭 편의점이 아니어도 되는구나.
어쨌든 나도 이쯤되면 택배 말고 편의점을 이용하는 걸
신중히 고려해 봐야할 것도 같아.
그런데 나는 거기까지는 안 나가고 싶다.
그냥 가끔씩 받고 싶은데 문제는 늘 결제 버튼이야. 그지?ㅋㅋ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 [초특가판]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 더스틴 호프만 외 출연 / 아이씨디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아서 밀러의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영화지만 상당히 연극적이다.

장면 역시도 연극 무대를 연상케 하고

약간의 판타지도 섞여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을 보면 정서불안을 느낄만큼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아직 원작을 읽어보지 못해 확인불가지만 과연 등장인물이

저럴 필요가 있나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또 어찌보면 등장 배우들의 웅축된 감정을 잘 뽑아 냈다 싶다.

특히 윌리 역의 더스틴 호프먼과 큰 아들 비프 역의 존 말코비치와의

연기 대결은 볼만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이상적이지 못하다.

아버지는 늘 아들에 대한 기대와 이상적인 아버지가 되야한다는 사이에서

갈등한다. 거기다 경제 공항의 타격으로 한때는 잘 나가는 세일즈맨이었지만

가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늘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족뿐만 아니라 그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극과극의 감정을

교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건 꼭 미국의 경제 공항 시대의 아버지만을 대표로하지 않는다.

오늘 날에도 아버지의 역을 맡은 사람들은 늘 불안할 것이다.

치솟는 물가. 늘 제자리인 경제 상황 그럼에도 지출은 늘 지속적이다.

돈을 못 벌면 그만큼 안 쓰며 살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최근 아는 지인도 국민 연금을 포기했다.

지금 연금을 부어봤자 탈 때는 용돈 정도 밖에 안 되고

지금은 그 연금조차 붓는 것이 버거워 포기했다.

그것이 왠지 이 작품과도 겹쳐 보인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가정을 지키고 싶어하는데 과연 그 바람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마지막 윌리의 처가 윌리의 무덤가에서 읊조리는 대사가

처량하고 의미심장하다.

한 가정을 이끄는데 드는 모든 빚을 이제 다 청산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는데 당신은 어디갔냐고 비극적으로 뇌까리지 않던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끌며 사는 게 돈이 다가 아닐텐데

이것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는 현대인을 슬프게 대변해 주는 것도 같다.

 

1985년도 작이다.

더스틴 호프먼이 60년 대 초반의 노인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그 특유의 엉거 주춤한 걸음걸이와 몸동작이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보여진다.

큰 아들 역의 존 말코비치와 실제 나이 차이가 얼마나지 않을 것 같은데

존 발코비치가 아들 역을 잘한 건지 아니면 더스틴 호프먼이 아버지 역을 잘한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원작을 얼마나 잘 해석해 놨는지 

또 다른 타 작품과(이 작품은 오래 전부터 여러 감독과 배우들에 의해

리바이벌된 작품이다) 어떻게 차별화가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사와 감정 부분이 다소 섞연치 않은 것만을 뺀다면 그럭저럭 볼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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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19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현재 한국의 가구 상황이
자산보다 부채가 더많은 한계가구가 200만 세대랍니다.
그럼 200만 세대의 아버지들은 지금 어떨까 싶은 현실이네요....

stella.K 2017-03-20 14:53   좋아요 1 | URL
굉장하네요. 그러니 아버지의 어깨가 얼마나 무겁겠어요?
저의 아버지도 살아생전에 술을 잔뜩 드시고
괴로워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전 그때 어려서 뭐 아버지가 저러나 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그 모습이 자주 떠오르곤 하더군요.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요즘도
아버지나 엄마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란 생각을
문득 문득할 때가 있습니다.

cyrus 2017-03-20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생 때 이 작품, 수업시간에 배웠어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가 무척 다양한데, 제가 배운 교과서에는 이 작품이 있었어요.

stella.K 2017-03-20 18:18   좋아요 0 | URL
그랬구나. 좋은 때 좋은 책 가지고 배웠구만.ㅋㅋ

페크pek0501 2017-03-2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 유명한 작품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는 못 읽었어요.ㅋ 영화로 보면 좋을 것 같군요.
게다가 더스틴 호프만 출연이라니... 내용은 알고 있는데...
실제로 그런 죽음으로 추정되는 지인을 알고 있어요. 소문으로 들었는데 자신이 암에 걸려 가족에게 보험금을 타게 하려고 차를 몰고 추락사 했다는...
지금도 반복되는 일들이 이미 오래전 누군가에 의해 씌어졌다는 걸 생각하면 작가의 위대함에 새삼 감탄하게 되지요.

stella.K 2017-03-21 13:13   좋아요 0 | URL
앗, 그런 내용인가요?
뒷부분이 그냥 죽음을 암시만 하는 것이어서
추락사일 거라곤 짐작을 못했네요.

그래서 진짜 능력있는 작가는 예언자적 작가는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니면 왜 옛날 작품이어도 오늘 날에
읽혀도 그게 전혀 어색하지가 않고 현대적 의미로
읽혀지는 작품. 대단하죠.

2017-03-22 0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2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03-21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원작도 유명하다 들었는데, 영화도 좋은 모양이네요.
유명한 배우들도 많이 나오고요. 언젠가 기회되면 한 번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stella.K,님, 좋은 저녁 시간 보내세요.^^

stella.K 2017-03-21 20:42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더스틴 호프만과 존 말코비치가 당대 유명한
배우란 거 아시나요? 좀 옛날 배우라 잘 모를 수도 있는데...
그러고 보니 제가 서니데이님은 너무 모르고 있는가 봅니다.ㅠㅎㅎ

서니데이 2017-03-21 20:46   좋아요 0 | URL
네, 두 사람이 유명한 분인 건 알 것 같지만, 이 영화는 아직 못 봤어요.^^;
80년대 영화는 이름은 들었지만 잘 모르는 영화가 많네요.^^;
 
사랑의 생애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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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의 작품이 읽기가 쉽지 않다는 건 오래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작가의 작품을 읽은지가 꽤 되고 그동안 나름 독서 내공을 키워왔으니 이쯤해서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더구나 사랑에 관한 소설이 아닌가? 그런 마음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연애를 잘하는 방법한 책엔 애저녁에 관심이 없다. 그나마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가 또는 같은가에 관한 책엔 관심이 가지만 그것도 내 주된 관심사는 아니다. 사랑을 심리학이나 인문학적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도 뭐 나름 나쁘지는 않겠지만 사랑이 과연 그렇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일까? 솔직히 인간은, 사랑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어서 그 무엇으로도 증명될 수 없고, 손끝에 닿지 않는 그런 신비스러운 것이길 바라오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사랑은 답이 없는 것. 오직 현상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의 이런 다양한 현상을 가장 잘 표현하고 그 과업을 성실하게 이행해 온 건 소설과 영화는 아닐까? 그것들은 해답을 내놓을지는 몰라도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 역시 그것에 아주 성실해 보인다. 이승우 작가의 작품의 특징은 대개는 육화되기 보단 관념적이고 사변적이란 느낌을 갖는데  이 작품도 그 예견을 빗나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무슨 사랑에 대한 철학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소설을 가장한 묵직한 에세이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난 이 말을 칭찬의 의미로만 쓰지는 않는다. 물론 이것이 작가에겐 이룩하고자 하는 문학적 성과에 어느 정도 도달했겠지만 독자와의 소통엔 어느만치 근접해 갔는지 그건 좀 의문이다. 물론 소설가가 꼭 독자와의 소통을 늘 의식해야 하는 것이냐라는 것에 꼭 어떤 책임 의식 같은 건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이 작품에서 오히려 지켜보게 되는 건 사랑이 뭐냐라는 질문 보단 작가의 성찰적 언어가 돋보인다고나 해야할까?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을 위해 그때 그때 떠오르는 단상을 메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어떤 작가가 그러지 않겠는가). 그래서일까? 정말 읽다보면 그랬을 거란 흔적이 느껴진다. 또 그래서 일까? 언어의 질깃질깃한 힘줄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단어나 문장도 그냥 헛투로 쓴 건건 없어 보인다. 언어의 미묘하지만 어떻게 알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는 곡예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군데군데 받는다. 또 어쩌면 단어의 라임을 이용해 언어의 유희를 모색하는 것도 같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작품은 쉽게 읽혀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은 어디서 와서 누구의 가슴에 머물며 어디로 가는지 인간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도 그것을 말하려고 하고, 증명하려고 하는 건 인간의 미련 때문일까 아니면 지혜를 갈구하기 때문일까? 이 세상 모든 이야기에 사랑이 안 들어가는 것도 있을까? 이야기는 곧 사랑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는 애증은 아닐까? 이 세상 모든 이야기는 애증에 관한 이야기란 말이다.  

누구는 사랑을 끝내려고 하고, 누구는 그 끝에서 사랑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며, 누구는 자기 집착을 사랑이라고 우기고, 누구는 자유연애를 사랑하는 사람의 대표로 여기기도 하며, 신 앞에 맺어진 사랑만이 진실하고 거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생각해도 사랑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태도만큼은 분명해야 하지 않을까?

분명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생각만큼 그렇게 간단하고 낭만적인 것마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랑하기를 거부하거나 미성숙을 보이지는 말자. 물론 사랑 끝에 남는 것이 이별의 아픔이 될지 더 성숙한 사랑으로 나가는 것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자아의 완성을 위한 것임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정복의 대상 또는 작업의 완수여서 더 이상 이룰 게 없다고 보는 건 상대를 더 이상 인격으로 보지않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인간으로 아니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사랑에 대한 모험과 수고를 아끼지 말았으면 좋겠다. 다른 동물이나 식물도 그럴진데 사랑을 지능적으로 이용하는 종은 인간밖엔 없는 것 같다. 아니면 아예 너무 어렵고 두렵다고 시작조차 못하는 인간은 또 얼마나 불쌍한 존재랴.

이 책은 단 한 번의 독서로 끝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훗날 다시 한 번 정독해 봐야할 것 같다고 숙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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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3-16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념적이고 사변적에서 숙제로 남긴다 까지 읽으며 내겐 좀 어렵겠네 싶다가도 이 궁금증 참을 수 없는 호기심도 슬금슬금 올라옵니다 ㅎㅎ 저는 아직 이 작가님의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는데 혹시 ‘식물들의 사생활‘이란 작품의 작가님은 아니실런지요. 아직 이 작품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라는 책에서 프랑스 작가님이 이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라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어요~^^

stella.K 2017-03-17 13:49   좋아요 0 | URL
이전에 제가 읽은 건 ‘생의 이면‘ 딱 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이것도 억지로 읽어서 거의 기억엔 없구요.
그래도 이승우 작가가 꾸준히 책을 낸 덕에 지금은 꽤 팬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분이 좀 무섭기도 해요.
오래 전에 이분에게서 잠깐 배운 적이 있었는데
제 워크샵 작품을 보고 어찌나 뭐라고 하시던지 무안해서 혼났습니다.
유머 감각 거의 제로고 오직 외골수로 소설만 바라보고 사신 분인데
그런 거 생각하면 존경할만 하죠.
독자와 소통하는 글을 쓰면 좋을 텐데 한마디로 소설에 순정을 바치신 분
같습니다. 한 번 슬슬 읽어 보시죠.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서
얻는 것이 있을 수도 있잫아요.^^

2017-03-16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3-17 13:56   좋아요 1 | URL
맞아요. 왜들 작가나 철학자들은 사랑을 어려운 것으로
표현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배풂, 포용, 아량만하는 것도 평생 다 못할 텐데 말입니다.
백날 천날 말로 글로 치대는 사랑 밀가루는 열정이란 행위가
들어가지 않으면 빵이 안 된다...!
과연 지당하시고 훌륭한 말씀입니다.^^

페크pek0501 2017-03-21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 제가 열광하던 작가였어요. <생의 이면>을 읽고 반해 버려서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었어요.
여행을 가서도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재우면서 재독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낡은 책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그의 작품 <지상의 노래>를 구입해 읽을 책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보다 <사랑의 생애>를 더 읽고 싶군요. 아마도... 사랑에 관해 새로운 경지를 보여 줄 듯 기대되네요.

님이 쓴 이 리뷰는 청소되어 반짝이는 마루를 보는 듯 깔끔한 글솜씨가 느껴집니다.ㅋ

stella.K 2017-03-21 13:01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브리핑으로 언니 글을 읽는데
한때 언니가 작가라고 하시는 줄 알았어요.
요즘 눈이 안 좋다보니 이렇게 착각하는 게 많아요.ㅠㅋ

이승우 작가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좋아하는가 본데
저는 아직 뭐가 좋은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어렵기만 하던데...

사실 리뷰도 어떻게 써야하나 좀 막막했는데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성경공부 멤버인 박 집사님이 지난 주머니 장례를 치르고 어제 모임에 나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 목요일이었던 터라 주일 날 있는 모임에 나올 수 있을까 약간은 우려된 상황이었는데 비교적 밝은 얼굴로 나왔다. 어머니가 워낙에 고령이신데다 마침 그 전 주에 아무래도 다음 주쯤 돌아가시지 않을까 한다고 했는데 그 시기를 거의 정확하게 맞쳤다. 인간의 죽음도 정확하게 맞추는 현대 의학에 새삼 경의를 표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런 건 다 저절로 알아지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호상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박 집사님이 그런 말을 한다. 어머니 장지에 뭍으면서 그동안 냉장고에 보관했던 우리 치치도 같이 뭍어 줬다고. 아마도 가시는 길 치치가 있어 외롭진 않으셨을 거라고.

 

치치는 박 집사님 집에서 키웠던 반려견으로 지난 여름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그 치치를 해결을 못해 그동안 냉장고에 보관했었단 말씀...?  순간 나를 비롯해 거기 모인 멤버들이 다 같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분한테 이런 엽기적인데가 있었다니.

 

그러자 우리의 박 집사님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지금 무슨 상상들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치치 화장하고 보관 중인 뼈가루. 그거 엄마 옆에 뭍어줬다구."

그러자 우리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리도 고상하신 분이 아무리 키우던 반려견이 좋다고 그렇게까지...ㅎㅎ  설명인즉,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아드님이 치치가 죽을 무렵 조만간 귀국하면 자기가 직접 묻어 주겠노라고 그때까지 냉장 보관을 부탁했단다. 그런 걸 최근 취직에 성공해 앞으로 당분간 한국 나올 일이 없어져 버렸다. 그런 걸 이번에 그런 식으로 처리하게 된 것을 듣는 사람은 듣는 사람대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었으니. 치치의 뼈가루라봤자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것을. 그동안 우리가 TV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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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13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튼, 끝까지 들어 봐야 합니다.^^..
중간만 듣고 예단하면..오해발생하는 ㄷㄷㄷㄷ

우리나라 어순은 서술어가 뒤에 오니까 그런가 싶습니다.ㄷ

stella.K 2017-03-13 16:25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요즘 요런 소소함에 삽니다.ㅋㅋ

북프리쿠키 2017-03-13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아지도 화장하는군요.
아름답습니다.^^;

stella.K 2017-03-13 16:41   좋아요 0 | URL
ㅎㅎ 네. 요즘엔 사람과 똑같답니다.
그런데 전 아직 한번도 안 해봤어요.
오래 전 우리집 앞마당에 묻어준 적은 있지만...

hnine 2017-03-13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깜짝이야...^^

stella.K 2017-03-13 18:28   좋아요 0 | URL
놀라셨죠?
아까 낮에 울엄니한테 얘기했더니 엄니도 얼마나
놀라시던지 웃겼어요.ㅎㅎㅎ

hellas 2017-03-13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순간 같은 생각을..... 영화를 너무 봤나봐요 ;ㅂ;

stella.K 2017-03-13 20:0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