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 백작 주주
에브 드 카스트로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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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몇 년 전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난쟁이 말고 '축소형 인간'으로서의 난쟁이가 TV에 나온 적이 있다. 미국인가 그랬고, 여자아이였다. 그때의 키가 약간 큰 인형 정도랄까?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은 거의 숙녀가 다 돼있지 않을까? 아무튼 그런 보도를 접해 봤으니 이 전기 소설의 주인공 유제프 보루스와스키의 실존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더니 그의 초상으로 보이는 그림 한 점이 보인다.

정말 작다. 역자의 설명대로 유제프 보루스와스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연골 무형성증의 탈비례 난쟁이'가 아니라 신체의 비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체구만 작게 발달한 '축소 비례 난쟁이'인 것이다.   

그는 1739년에 태어나 백 살에서 2년이 모자른 98세를 살고 삶을 마감했다. 그를 본 의사는 20년도 채 살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그에 몇 배에 해당하는 삶을 살았으니 사는 것에 있어서는 여한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옛날 시대에.

그러나 그 세월을 사는 그 조그만 어깨 위에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가 얼마만 한 것인지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하기가 어렵다. 비장애인도 세상을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건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는 이보다 훨씬 더 무겁고 커 보인다.

그나마 타고난 배경이라도 남 보다 유리하다면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유제프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이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버지는 우물에 빠져 죽고, 그의 형제들은 병으로 죽거나 가난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졌으며, 어머니는 귀족 친구에게 유제프를 맡긴 후로 다신 만날 수가 없다. 그뿐인가, 훗날 그 자신도 자신의 첫째 딸을 양자로 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 

아무튼 유제프는 그때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몸소 터득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됐다.

무엇보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귀족들 앞에서 춤과 재롱을 피워야 했다. 그리고 그건 유제프란 본래의 이름 보다 장난감이란 뜻의 주주로 더 많이 인식이 되었고, 당대 귀부인들 사이에선 행운의 마스코트쯤으로 여겨졌다. 물론 그 덕분에 일생 육체나 정신적으로 학대받은 적은 없다. 귀족을 상대한다는 건 그들 앞에서 재롱을 피워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더불어 그들은 유제프를 지켜주는 울타리도 되니까.

실제로도 그는 두 번의 양어머니가 바뀌는 동안 나쁘지 않은 사회적 대우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여기서 유제프가 당대 주류 사회에 섞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이 가기도 하지만, 더불어 그 시대 귀족들이 무작정 난쟁이 같은 장애인들을 어떻게 대했을까를 짐작해 본다. 어느 정도는 너그럽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없는 사람끼리 서로 보살피며 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있는 사람이 더 인색하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광에서 인심 난다고, 있는 사람이 베푸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책에는 그런 언급이 나오진 않지만 귀족 교육 중엔 노블레스 오블리지에 대한 교육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해줘야 하는지를 나름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유제프에 대한 귀족들의 환심은 딱 거기까지다. (실제로 그런지 아니면 그렇게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구도 그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사회적 약자니 돌봐줘야 하는 건 당연한 거지만 그러니만큼 사람들은 그를 장난감과 호기심의 대상으로 여겼으며 유희만을 얻으려 했다. 바로 이것에 유제프의 고독이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사랑을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 이잘린을 만나기 전 잠시 직업이 배우인 여자를 만나고 나름 서로 진지한 사랑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서로 진실하지 못했고 뭔가 어긋나 있어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잘린은 달랐다. 그녀만큼은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잘린이 자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하려면 지금까지 두 번째 양어머니 집에서 누렸던 호사를 뒤로하고 그 집을 나와야 한다.

그 선택에 유제프는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다. 과감하게 집을 나왔고 신혼 때 잠깐의 행복을 제외한다면 그의 삶은 매번 산 넘어 산이었다. 매번 고비의 순간이었고, 망하고 파산할 것만 같은데도 망하지 않고 파산하지 않는다. 그게 또 어찌 보면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도 그러지 않는가?

그리고 난 책을 다 읽어나갈 즈음 그의 삶에 진정한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부자로 생을 마쳤든, 가난하게 마쳤든, 짧던 길던 우리의 삶이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마지막엔 다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그만큼 살아오기가 쉬웠겠는가.

물론 유제프는 그렇게 힘들 게 살지 않아도 되는지도 모른다. 육체적으로 온전치 못하니 양어머니 그늘에서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아도 될 것이다. 사랑도 굳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해 뭐 하겠는가. 그 때문에 그는 평생 먹고사는 문제와 애증의 문제로 고통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가 양어머니의 집을 나오고,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을 사랑한 걸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담대한 자기 선언이었고, 자기 선택이었다. 물론 그렇게 하므로 인해 닥칠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일생 사는 동안 후회하지 않았다.

사람은 언젠가 꼭 한 번은 자기 선언과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람이지 어떻게 주워진 환경 속에서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짐승도 아니고 장난감은 더더욱 아니라면 말이다. 그 욕망은 유제프로선 더 강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정말 인간의 삶이란 책의 한 구절처럼, 모든 것을 가졌으나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런 삶의 자조는 가지지 못한 사람 보다 가진 사람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또한 인생은 나그네 길 이랬다고 유제프는 양어머니 집을 나온 순간 나그네로서의 대로의 삶이 펼쳐졌다. 책을 읽어보면 그는 어느 한 군데 말뚝 박고 살았다는 말이 없다.

물론 그래서 그는 훗날 회고록을 세 번이나 고쳐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당시로선 교통도 그리 발달하지 못했으니 어딘가를 옮겨 다니며 살아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유제프의 몸으로서는 더더욱. 그러나 그런 감행이 있었기에 저자는 유제프의 회고록을 접했으며 우린 또 이렇게 그의 손끝에서 당대 유럽의 역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제프는 인생 어느 지점에서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만이 모든 수모를 감내하며 살아갔던 것이 아니라는걸. 자신이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살았다 뿐이지 사람들 저마다 삶의 짐을 가지고 다른 식의 수모를 감내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삶을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미에 보면, 누구도 죽고, 누구도 죽고, 누구도 죽었다며 당대 최고 권력자들의 명단이다. 사람은 그 인생의 시작은 다 달라도 그 끝은 비슷하다. 이것을 깨달으며 사는 것이 또한 인생 아닌가? 집채만 한 삶의 무게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 겁이 나 미리 죽음에게 자신의 생명을 양도해버리는 건 또 얼마나 슬프고 어리석은 일인가?

소설이 나름 꽤 훌륭하다. 어찌 보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클래식 버전을 보는 것도 같고(이 작품은 조만간 영화로 나오지 않을까?), 저자의 유려한 문체와 풍부한 비유가 읽는 내내 즐거웠다. 꼭 읽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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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2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형의 역사》라는 책에 난장이 사례가 나옵니다. 이 책에 유제프가 나오는지 확인해봐야겠어요.

stella.K 2017-04-12 21:24   좋아요 1 | URL
오, 그런 책도 있었구나.
이 책 정말 괜찮아. 재밌어.
너도 기회되면 읽어 봐.^^

cyrus 2017-04-12 21:57   좋아요 1 | URL
방금 전에 《기형의 역사》를 살펴봤는데요, 정말로 유제프 보루스와스키에 대한 내용이 있어요. 이 소설, 꼭 읽어봐야겠어요. ^^
 
내 책상위의 천사 - [초특가판]
제인 캠피온 감독, 케리 폭스 외 출연 / 기타 (DVD)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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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오래 전 <피아노>를 끝까지 다 보지 못한 기억이 난다.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첫 인연을 잘 맺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그 다음도 기약할 수 있는 법인데 또 그런 의미에서 제인 캠피온은 나와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무슨 바람이 낫을까? 이 오래된 영화를 지금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주인공의 머리가 인상적이라는 걸 대뜸 떠올릴 것이다. 어마무시한 곱슬머리! 지금이야 일부러 그런 가발을 만들어 쓸 정도지만 주인공이 나고 자랐을 193, 40년대는 한마디로 구제불능의 머리였을 것이다. 더구나 머리색도 빨간색. 옛날 같으면 마녀라고 했을 것이다. 주인공만해도 3명이 등장한다. 유년과 소녀, 숙녀로 나눠 각각의 시절을 연기한다. 

 

주인공의 소녀 시절 어디쯤에 왠지 나의 모습도 중첩되는 느낌이다. 주인공처럼 빨갛지는않지만 구제불능의 곱습 머리는 하나다. 나이들면 머리숱이 줄어든다고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 구제 받지 못한 머리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래서 왠지 주인공의 머리 얘기가 나오면 남의 얘기하는 것 같지가 않다. 아는 사람들이야 관심있어 한마디씩 하고 만져주고 한다지만 그것도 왠지 내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아 편치가 않다. 그 시절 누구라도 네 머리는 개성있다고 해 줬으면 용기를 갖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내 머리가 누구를 불행하게 만든 것도 아닌데 괜히 주눅들어 있었다. 그러다 가수 인순이가 데뷔 초부터 파격적인 머리를 하고 나왔을 때 내가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그녀의 머리보단 내 머리가 좀 낫긴 하지. 누구는 도진개진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해 맑은 것은 아니지만 악한 곳이라곤 전혀 없는 주인공의 다소 어눌한 연기가 능청스러우리만큼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뉴질랜드의 국민작가 자넷 프라임의 자전 소설을 제인 캠피온이 영화화한 것이다. 그녀가 자국내에선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는 우리로선 가늠할 수가 없다. 그 나라가 우리를 볼 때 제 3 세계라고 하겠지만, 우리 역시 뉴질랜드가 미국이나 일본만큼 익숙한 나라라고는 볼 수  없을 테니. 

 

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건 정신분열증 즉 조현병에 대한 지식이 저 시대에 그렇게도 없었나 놀랍기도 하다. 물론 난 아직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영화의 주인공 자넷 프라임은 다소 정서가 예민하고 대인 기피증이 있어서 그렇지 조현병자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의사의 오진으로 한 때 조현병자로도 살고 병원신세도 졌다. 

 

사실 어찌보면 그녀의 불안한 정서를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영화엔 잘 표현이 안 되있는 것 같기도 한데 오빠가 간질병이고, 두 언니가 각각의 시차를 두고 익사한 것도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인을 기피하고 책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넷은 그녀만의 문학의 심연을 퍼올렸을 것이다.

 

문학. 그것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풍요와 만족속에선 결코 존재할 수 없고, 인간의 온갖 억압과 부조리함 속에서 피어나는 꽃 같은 것은 아닐까?  그것을 꺾어 갖는 순간 신기루는 사라지고 그것의 시녀가 되서 그 실을 잣는 사람이 작가가 되는 것이겠지.

 

작가는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글로 쓰길 원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한다. 그것은 거의 본성에 가깝다. 아니 작가에게 글을 쓰는 것이 본성이라고 한다면 자서전을 쓰는 것 역시 본성이다. 그래서 자넷 프라임은 <내 책상 위의 천사>란 자전 소설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만이 그러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상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이름을 남긴다는 게 뭔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자기 얘기 한 번은 하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책 10권은 나온다고 떠든다. 그러나 정작 단 한 페이지 아니 단 한 줄도 못 쓰는 게 대부분이다.

 

자넷 프라임의 시대에 자서전은 아무나 쓰는 장르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회고록을 포함)자서전을 쓰는 행위가 흔해졌다. 이걸 두고 우려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서전이 누구를 헷고지 할 목적이나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고백의 차원에서 또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정리하는 차원에서라도 꼭 한 번은 어떤 식으로든 써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객관화하는 작업을 위해서라도. 물론 쉽진 않겠지만 꼭 그것을 써서 돈을 벌거나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욕심을 버린다면. 누구의 인생도 이유없는 인생은 없고 이해 받지 못할 인생은 없다. 그것을 가장 잘 정리할 수 있는 건 글로 남기는 것 밖에 없다.

 

문학에서 고백이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다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글쓰기에서의 황금율은 정직함, 솔직함이라고 하지 않던가? 자넷 프라임의 자전 소설이 출판되었을 때 자국내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감추고 싶은 개인의 내면을 얄짜 없이 보여주지 않는가. 사실 그게 생각 보다 쉽지가 않다. 그래서 자기 인생 이야기 책으로 쓰면 10권은 되는데 단 한 권, 한 줄도 못 쓰는 건 무엇보다 글을 못 써서가 아니라 여기서 걸리기 때문이다. 이것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무슨 글을 쓸 수가 있을까?

 

영화 장면에서 보면 누가 자넷에게 그런 말을 한다. 작가로 성공할 생각하지 말라고. 그건 그저 취미로 하고 살 길 찾으라고. 그런 말은 지금도 작가들 사이에선 심심찮게 하는 말이다. 그만큼 작가는 하나의 온전한 직업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자넷은 귓등으로 듣고 열심히 글을 써서 어느 출판사와 계약을 맺으면서 아파트를 하사 받는다. 뭐 영원한 건 아닐지 모르지만 작가로서 작업실로 쓰일 아파트를 하사 받는다는 건 대단한 것이다. 협회 같은 곳에서 유럽 곳곳을 여행해 볼 수 있는 자격도 얻는다. 그만하면 작가로서 최고의 대우 아닌가. 작가가 직업이 되고 안 되고는 역시 작가에게 달려 있는 것 같다. 

 

참고로, 자넷 프라임의 자전 소설은 현재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영화 본 것을 기념해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하필 출판사가 문제가 있는 출판사다. 불매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거기서 나오는 책을 사야 할 것이냐, 말아야 할 것이냐  갈등하거나 편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현실이 좀 그렇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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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0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자서전을 써봐라고 제안한다면 제대로 못 쓸 것 같습니다.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서 글로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아요. 대학생 때 참 특이한 과제를 많이 해봤어요. 그 중에 자서전 쓰기가 있었어요. 정말 난감한 과제였어요.

stella.K 2017-04-10 19:56   좋아요 0 | URL
거 교수님이 누군지...ㅎㅎㅎ
당연했다. 나도 20대 때 꿈도 꿔보지 않은 일이야.
아마 지금의 네 나이도 난감할 걸?
그런데 30대 후반이 되고 40이 넘으면 뭔가
내 인생을 반추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내 인생에서 좋은 건 뭐였고 나쁜 건 뭐였는지,
아쉬운 건 뭔지 왜 아쉬운지 말하고 싶어진다는 거지.
일종의 손익계산서 같은 거랄까?
그러면 앞으로 남은 인생은 조금 더 이익이 되는 삶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무슨 글을 쓰던 쓴다는 건 인내하는 과정이야.
그건 틀림없어.ㅠ
 

엊그제 ocn을 틀으니 마침 이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뭐 주연 배우도 주연 배우지만 나 같은 경우 감독 때문에 이 영화에 관심이 갔다. 감독이 <멋진 하루>를 만든 이윤기 감독이다. 도시적이면서도 대사를 절제하는 것이 좀 멋있는 것 같아 보기 시작했다.  

 

영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긴 하지만 비교적 전개 부분에 해당하는 지점이라 그냥 보기로 했다. 어차피 11시가 좀 넘으면 잘 생각을 했으니까 끝까지 볼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결국 끝까지 다 봤다. 그렇다고 영화가 끝까지 다 볼만큼 좋았냐면 그렇지도 않다. 중간에 TV를 끄고 자기도 뭐해 그냥 어영부영 다 본 셈이다.

 

그러니만큼 영화는 전작에 비해 크게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도시적으로 치자면 전작인 <멋진 하루>보다 더 하거나 적어도 그만큼은 한다. 하지만 도시적이라고 해서 영화가 좋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대사도 여전히 절제미를 발산하긴 하지만 한마디로 도시 유부남, 유부녀의 약간은 불안하면서도 쓸쓸하고 고독한 사랑을 그린 영화라고나 할까?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둘 다 상대 배우자에게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자녀가 문제가 있는 경우다. 그러니 동병상련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두 남녀는 권태로운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더구나 낮선 필란드에서의 만남은 얼마나 신선했겠는가. 시간 가면 잊혀지려니 했는데 잊을만 하면 나타나 서로의 정염에 불을 지핀다.

 

                     

 

하지만 영화는 딱 거기까지다. 기존의 그렇고 그런 치정 멜로 영화에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여기서 관전 포인트는 아무래도 베드씬일 것이다. 공유의 벗은 모습을 본다는 건 그 배우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나름 좋아할만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공유를 나름 좋아라 하는 배우니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남자 배우의 베드씬은 잘 모르겠다. 어차피 베드씬은 남자 보다 여자 배우를 위한 건 아닐까?  남자는 받혀주는 정도고. 마치 발레에서 발레리노가 발레리나를 번쩍 드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여배우 중 베드씬을 제일 잘하는 배우라면 난 단연 전도연과 조여정은 아닐까 싶다. 전도연 같은 경우 <해피 엔드>였나? 거기서 보면 섹스를 끝내고 상대의 음모를 입에서 떼어내는 장면이 있었다는데(물론 이것은 나중에 편집이 됐다고 한다) 물론 연출의 디테일이겠지만 전도연은 그만큼 몰입도가 좋은 배우인 것 같다. 보통 베드씬을 소화해 내는 배우들 결혼하면 그걸 좀 멀리하던데 그녀는 별로 가리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영화가 새롭지 않고 뻔해 보이니 왜 사람들은 정상적인 부부관계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이렇게 허락되지 않은 관계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 걸까? 누군가는 정상적인 부부관계에서도 이런 진한 베드씬이 가능하다는 걸 좀 보여주는 감독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누가 아는가, 그 영화를 본 부부들 그날 밤이 좋아질런지.ㅋ 

 

상민(전도연 분)이 어느 순간 남편에게 자신이 바람 피운다는 걸 굳이 감추려 하지 않자 남편에게 하는 대사가 있다.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고. 자신도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겠으니까. 이런 대사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대사라 이제 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은 감기 같은 거라고 했다. 특히 유부남과 유부녀의 사랑은 더더욱. 그래서 옛날이면 모를까 요즘엔 불륜이라고 해서 바로 이혼하고 하진 않는다. 그런 것을 보면 감독이 감각이 예전만 같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더구나 같이 불륜해놓고 여자는 이혼하는데 상대남은 이혼하지 않는다는 설정 또한 진부하지 않나? 뭐 그것도 남녀의 법칙에 따른 거라고 할 텐가? 그것도 웬지 불온해 보인다.        

 

같은 감독의 영화 <어느 날>이 4월에 개봉 한다는데 이런 스코어라면 개봉관에서 보긴 좀 억울할 것도 같다. 난 김남길을 몰라도 천우희는 좋아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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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31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 감기를 마지막에 걸린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몸살을 동반한 감기는 쓸데없이 자주 옵니다. ㅎㅎㅎ

stella.K 2017-03-31 17:55   좋아요 0 | URL
ㅎㅎ그럴 땐 초고용량 비타민 C를 먹으라는군.
훨씬 짧게 앓는다는고.
근데 책은 그만 읽고 사랑 감기 좀 앓아라.ㅎㅎㅎ

knulp 2017-03-31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름 의미 있게 봤습니다. 가족, 사랑, 불륜 등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계기도 됐었죠.

stella.K 2017-03-31 18:21   좋아요 0 | URL
앗, 그러셨군요. 저도 뭐 나쁘진 않았는데 뭔가 모르게 좀 아쉽더라구요.ㅎ

moonnight 2017-04-01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벌써 티비방영하는군요^^; 아직 못 봤는데 ocn틀어봐야겠네요^^

stella.K 2017-04-01 14:23   좋아요 0 | URL
네. 한 번 방영 시작하면 집중해서 다시 틀어주니까
잘하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로메로 - [초특가판]
영상프라자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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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때 보지 못했던 영화를 이제야 보게 됐다.

무엇보다 주인공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배우의 이름이 라울 줄리아다.

그의 이미지가 독특한데 우직한 남성미도 있지만

어린 아이같은 순수함도 있다.

거기다 실제의 로메로를 연구했을까?

깊게 눌러 쓴 돋보기 안경도 이미지 구축에 한 몫한다.

길게 늘어트려 팔랑거리는 신부복도 나름 우아함을 더하고.

 

1970년대 말 살바도르의 불안한 정치와 정부군과 게릴라 간의

혈전이 예전 우리나라의 광주 사태와 오버랩 된다.

또 작년 말부터 터져나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인해 첨예하게 갈린

현상황들을 보면서 설마 저 지경을 또 격게되는 건 아니겠지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종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정부군의 양민학살과 이로인한 양민들의 불안을 어떻게 달래 줄 것인가?

악과 어떻게 맞설 것인가?

사람들이 한낱 살덩어리로 죽어나갈 때 사제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님 어디 계시냐고 절규하는 것 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인다.

영화에서 로메로의 고뇌가 충분히 보여졌는가?

그랬던 것 같다.

 

문득 내가 썼던 손양원 목사를 떠올리게도 한다.

나는 그의 고뇌를 충분히 그려내지 못한 것 같다. 

난 그저 그가 순교했다는 것에 온통 마음을 뺏겨 

이것을 어떻게 하면 극대화 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만 골몰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새로 원고를 쓰게 된다면 순교 보다 고뇌 쪽에 포커스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암살 영화가 그렇듯 정부군이 주도했다면 군복 입은 군인이

로메로를 죽일 것 같지만 의외로 사복을 입은 순진해 보이는 양민 하나가

툭 튀어나와 죽인다.

즉 지금까지와 상관없어 보이는 새로운 인물이 죽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로메로가 죽으면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 시대 영화 기법이 그랬던 것도 같다.

지금 이 영화를 새롭게 만들면 그런 식의 엔딩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될까?

참고로 이 영화는 1989년도 작이다.

 

영화가 굉장히 사실적이다.

정부군의 학살로 죽어간 양민들 하나 하나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하다못해 정부군은 신까지 부정하며 예수 십자가상에 총질을 해 대지 않던가?

 

국가의 존립의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한쪽에서는 가난한 국민들이 배를 움켜쥐며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 것을

찾는데 배부른 사람은 더 없는 호화판이다.

이런 나라는 불안하고 정의롭지 못하며 국민을 불행에 빠트릴 수 밖에 없다.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건 전적으로 있는 사람과 권력자들이 책임이다.

 

그런 가운데 종교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난하고 고통 당하는 자를 위로하며

그들을 보호해 줘야 한다.

물론 미약해 보일 수 있다. 그래도 종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일이어야 한다.

지금의 각 종교계의 우두머리들 그들이 나라가 어려울 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그들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보기가 괴롭긴 하지만 좋은 영화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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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8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3-28 13:30   좋아요 0 | URL
저도 얼마 전 들었습니다. 그 나라에도 지혜로운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야할 텐데요.
국가가 개인을 지켜줘야할텐데 오히려 국민을
가난으로 내몰고 있으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아 심난해지더군요.
암튼 이 영화 참 충격적이었어요.ㅠ

cyrus 2017-03-31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시민 씨가 나오는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방송 보셨어요? 그 프로그램에 나온 오상진 아나운서가 ‘애국심이 흔들렸던’ 과거 경험담을 들려줬어요. 오 아나운서가 네팔에 머물고 있었는데 하필 그곳에 지진이 났어요. 오 아나운서가 외교부에 연락했답니다. 그런데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미국과 중국은 네팔에 비행기를 보내 자국민들을 신속히 탈출시킨 반면에 오 아나운서는 가까스로 중국을 경유해서 한국으로 귀국했답니다. 정말 웃픈 일 아닙니까? 세월호 사고 났을 때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정부만큼이나 심각한 문제입니다.

stella.K 2017-03-31 17:59   좋아요 0 | URL
악, 그런 일이...?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정부 참 담대해.
뭐 어떻게든 살 사람을 살 테니 알아서 와라. 그런 뜻인가?

차이나는 클라스는 하는 걸 알고 있는데 안 보게 되네.ㅠㅋ

북프리쿠키 2017-03-31 19:18   좋아요 0 | URL
차이나는 클라스 보고 있는데요.
4강이 최고 감동적이었네요.
유시민을 보면, 나도 저렇게 이야기해봤으면 하는 부러움이^^;

stella.K 2017-03-31 19:24   좋아요 0 | URL
헉, 쿠기님 부러우면 지는 건데...ㅋㅋ
그게 그렇게 재밌나요?
전 TV를 본다면 주로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편이라.
아무래도 함 봐야겠군요.

참, 쿠키님 드라마 <초인 가족> 보시나요?
안 보시면 함 보세요. 웃기고, 재밌고, 나름 교훈과 감동도 있어요.ㅋ

cyrus 2017-03-3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으로 JTBC 온에어 시청할 수 있어요.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긴한데 화면 크기 확대 안 되고, 화질이 안 좋아요. 저도 본방 사수 못해서 재방송을 보려고 하는데 그것마저도 못 봐요. ^^;;

stella.K 2017-04-01 14:25   좋아요 0 | URL
아, 어제 올레 티비로 1회 방송 보려고 했는데
졸려서 결국 못 봤어. 다시 보려고.ㅋ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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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어느 날부턴가 사람이 싫어졌다고 했다. 그것은 인간이 수치스럽고 쪽팔려 서란다. 홀로코스트, 십자군 전쟁, 몽골군의 바그다드 함락, 난장 대학살, 상대성원리와 게놈의 비밀을 이해하려는 호모사피엔스가 어느 날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인간 대신 책을 선택했고 몇 년 동안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저자의 사춘기적 이야기다. 그리고 그맘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렇게 거창한 역사적 사건을 가지고 무모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하진 못했지만, 비슷한 나이에 인간이 시시해서 책을 붙들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어쨌든 이 책은 그렇게 읽어나간 저자의 책과 사유의 기록이다. 쉽게 말하면 서평집 같은 거다. 하지만 알다시피 저자 김대식은 전문 서평가가 아니라 뇌과학자다. 뭐 뇌과학자라고 해서 서평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저자의 서평 쓰기가 좀 남다르긴 하다. 보통 그렇게 책에 대한 책을 쓰는 작가들은 한 권의 책을 집중 분석하고 자신의 감상이나 사유를 쓰는데 반해 이 책은 어느 생각 깊은 철학자의 단편 에세이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평소  두 권 정도의 책을 같이 읽는 경우가 많은데 마침 이 책과 함께 읽었던 책이 활자가 좀 빽빽한 책이었다.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3백 쪽이 넘어 두 권을 같이 읽어주려면 눈 꽤나 아프겠군 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쪽수만 많지 의외로 여백이 많아 읽는데 부담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겹쳐서 읽게 되는 경우 좋긴 하지만 이 책 자체로 놓고 볼 때 뭐 이렇게까지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게 종이 낭비가 심해 보인다. 요즘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본다'라는 개념에 맞게 활자보단 여러 가지 다양한 이미지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 걸 좋아하는 독자도 있긴 하겠지만 나는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는 활자 활용도가 많은 책이 좋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는 못했다.

게다가 김대식하면 우리나라 지식계 아이돌은 아닐까? 뭐라고 부르던 그가 엄청 똑똑한 사람이란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러니 외국어는 얼마나 잘 알겠는가? 사실 나는 지금까지 알아주는 작가의 서평집 서 너 권은 읽어보긴 했는데 이렇게 미출간된 책까지 섭렵하고 쓰는 사람은 김대식이 처음은 아닐까 한다.

물론 뭔가에 대해 말하는 것에 있어서 출간된 책이면 어떻고 미출간된 책이면 어떻겠는가? 그런데 나도 한국 사람이긴 한가 보다. 우리나라 사람들 지식에 대한 열등감이 그렇게도 많다는데 외국어 하면 거의 까막눈 수준이면서 저자가 미출간된 책 가지고 논하고 있으니 뭔가 모를 넘사벽 같은 위화감이 확 느껴진다. 차라리 열등감이면 나았을까? 설령 그 책이 번역되어 나와 있어도 내가 사 볼 확률은 그리 높지는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이미 번역된 책 가지고 얘기하는 것과 이렇게 번역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언제 번역될 거라는 기약도 없는 책 가지고 논하고 있으니 작가와 독자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이 전문 서적이라면 또 그럴 수도 있다고 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누가 봐도 대중서로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런 책에 미출간이 웬 말이냐!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런 거 가지고 선동할 나는 아니지만 글쎄... 전반적으로 보면 조금 달라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감동하리만큼 특별해 보이진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질문'은 필요해 보인다. 남들 하니까 나도 하고, 남들 사는 것만큼 나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못 벗어난 우리들이기에 '어떻게'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왜'라는 존재적 질문에는 취약해 보인다. 그래서 우린 또 너무나 쉽게 허무주의로 빠져들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 우리들에게 다소 도전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명인이 썼다고 해서 무조건 감동할 준비부터 하고 읽기 시작한다면, 뭐 사람마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는 생각 보다 별로네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한 번쯤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도로 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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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27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속담에 모난 돌 정맞는다는 말이 괜히 생겼겠습니까요..
뭔가 달라 보이면 처막을 각오해야하는 ..
그래서 남들과 비슷하게...
평범하게 하는 말에는 상당히 폭력이 숨어 있는건 아닐까 싶더군요..
남들하고 다르게 보이면 맞을 수 있다라는 압박..

혹시나 다르게 보이면 이세끼 필시 역모를 꾸밀지도 몰라 라는....

당연히 모두 다른데 읽는 사람도 사람에 따라 다른 것도 나쁘지 않는 정도라는
마지막 문장에 느낌표 딱 박히네요~~~~~

stella.K 2017-03-27 18: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 정치를 보는 시각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편파적이고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지면 역적으로 몰고,
정치로 분노하고 한을 풀을려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좀 너무 한다
싶기도 하더구요. 물론 뭐 따지고 들면 한도 없고 끝도 없는 거지만.
이쪽이나 저쪽이나 왜 내 말만 옳고 남의 말은 조금도 듣지 않으려고 하는지.

암튼 이 책은 김대식 팬이라면 좋아할 것도 같은데
저는 좀 그랬습니다.ㅋ

cyrus 2017-03-31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100자평 봤어요. 저자가 국내 미번역한 책 몇 권 소개했다고 불평을 하는 독자도 있던데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다 읽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예요. 저자가 읽었던 책을 알고 싶어서, 또는 그 책들을 읽으려고 저자의 책을 골랐다면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stella.K 2017-03-31 18:03   좋아요 0 | URL
ㅎㅎ 그니까. 거 참 묘해.
근데 난 이 책 기대를 너무 많이해서 그런가?
생각 보단 좀 별로였어. 여백이 너무 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