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The 25th Hour (25시)(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DVD-R)
Warner Archives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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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5시>를 읽었던 건 학창시절이었다. 조금 읽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TV에서 이 영화를 방영해 줘서 본적이 있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하루아침에 남편이 행방불명이 되서 아내가 경찰서장인가 하는 사람을 찾아가 남편의 신원을 얘기했더니 심각하게 받아 적는 듯 하는데 사실은 꽃 그림을 그리는 것과 마지막 엔딩 장면. 카메라 앞에서 웃으면 웃을수록 슬퍼지는 주인공을 맡았던 안소니  퀸의 얼굴. 그리고 얼마만에 이 영화를 다시 봤던 걸까? 다시 보니 역시 명작이란 생각이 든다.

   

                              

웃픈 영화 몇 편이 있다. 뭔가 웃기고 어처구니 없지만 슬픈 영화. 아마도 대표적인 영화가 채플린의 일련의 영화들이 아닐까 싶다. 뭔가 영화는 웃긴 것 같긴한데 보고나면 (아니 보는 중에도) 뭔가 썩소를 짓게 만드는 영화. 그래서 채플린을 천재라고 하지 않던가. 

 

웃겨서 웃는 건 그냥 코미디나 개그다. 근데 슬픈데 웃게 만들거나, 웃기는데 슬픈 건 드라마다. 하긴 난 웃겨서 웃는 코미디나 개그도 웬만해서 잘 웃지 않는다. 똑같은 패턴이 보이면 별로 웃을 게 없는 이유도 있지만, 청중에게 웃음을 주기위해 망가져야 하고, 때로 자신의 치부가 될만한 것도 웃음거리와 맞바꾸는 것을 보면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에겐 역으로 모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개그맨이나 코미디언들에겐 웃음만이 전분데 이렇게까지 망가져 주는데 웃고 있지 않다니. 모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묘하게도 <인생은 아름다워>와 겹쳐졌다. 그 영화도 시종 밝음을 유지하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슬프지 않는가. 또 같은 나치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도 그렇고. 그런 것을 보면 인류 역사에 나치 시대가 있었다는 건 불행하긴 하지만, 불행한 것을 불행하게만 그리지 않는 인간의 창의력은 가히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를 조금도 폄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인간의 모순과 그 시대를 통렬히 비판한다. 

 

우리나라는 좀 이런 걸 적극 배울 필요가 있다. 지금도 간간히 만들어지는 일제 치하와 광주사태 같은 이야기는 그것의 일면을 액면 그대로 그리려고만 하지 아직 그런 작품성은 뚜렷히 보이지 않고 있다.

 

안소니 퀸이 연기한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루마니아인이고 유대인도 아니면서 영문도 모르고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한때는 유대인으로 또 한때는 독일인으로 또 어느 땐 독일인이 아닌 것으로 살다가 세월이 한참 흐르고 그리운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그로선 어처구니 없지만 보는 사람은 웃음이 난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건가? 나라가 (힘이 없으면) 개인을 지켜 줄 수가 없다. 그의 인생 유전은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오로지 살기 위해 이 사람도 됐다 저 사람도 됐다. 그건 또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일까. 하지만 영화는 또 그다지 자존심 상하는 것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장 큰 정체성은 엔딩 이후의 요한 모리츠의 삶이 아닐까? 집을 떠나 올 때 그의 슬하의 두 아들은 이제 막 발을 떼기 시작한 꼬마거나 갓난 아기였다. 10년 넘게 떠돌다 가족을 보니 아이들은 소년으로 자라 있었다. 아이들의 중요한 순간에 아빠가 있어줘야 하는데 그 세월의 갭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 본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남자들 자기 아내될 사람 너무 미인이냐 아니냐 따지지 마라. 물론 소설이나 영화니까 그럴 수 있겠지만 모리츠의 아내가 경국지색이다. 그러다 보니 모리츠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받아야 할 때 받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는가. 모리츠가 그렇게 집에 없는 것을 틈타 아내를 겁탈하는 늑대가 더욱 기세가 등등해지는 것이고. 물론 미인은 누가 지켜주겠는가를 따지면 모리츠 같은 짐승남이 지켜줘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만. 

 

아무튼 이 영화는 진짜 명작이다. 한번쯤 보면 좋겠다.

소설도 읽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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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4-29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도 좋아요 ^^

stella.K 2017-04-30 18:10   좋아요 0 | URL
h님도 읽으셨군요.
영화 본 김에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지더라구요.^^

yureka01 2017-04-29 2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선명하게 남는 장면..맨 마지막에 안소니 퀸의 웃는듯 우는듯한 묘한 미소...이게 뇌리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영화~로 기억합니다~

stella.K 2017-04-30 18: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근데 참 그 사진 기자 안소니 퀸한테 너무 잔인한 거
아닙니까? 물론 그의 인생유전을 알 리 없겠지만
그래도 잠작은 가잖아요.
언론이 문제입니다. 언론이...ㅉ
 
여혐민국
양파(주한나) 지음 / 베리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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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떤 사람(물론 남자)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그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지지 광화문 촛불집회가 거의 종반을 향해 가고 있었던 때였다. 그는 촛불집회 초기 때부터 참석했었고, 나는 그때까지 탄핵은 지지했지만 아직 한 번도 참석을 못했기 때문에 집회도 참석할 겸 만나기로 한 것이다. 약속을 정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가 되면 내가 안 됐고, 내가 되면 그가 안 되고. 아무튼 그렇게 어렵게 잡은 약속인데 느닷없이 일방적으로 약속이 뒤집어진 것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 이유가 좀 걸작이다. 그때 내가 무슨 말 끝에 그날 맛있는 것 사 주세요.”라고 했는데 그 말 한마디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이다. 순간 어찌나 어이없고 당황스럽던지.

 

그런데 왜 나의 그 말 한마디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일까?

(그것도 나중에 알았던 건데) 그의 말이, 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서 쉬지도 못하고 추위를 무릅써 가며 참석하고 있는지, 하다못해 몸이 불편한 장애자조차도 들것에 실려서까지 참석하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그렇게 (속편하게) 맛있는 거나 사 달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에게 나는 그리 친하지도 않은 남자에게 맛있는 거나 사 달라고 아양이나 떠는 개념 없 여자였던 것이다.

 

말이란 원래 앞뒤 문맥을 잘 따져봐야 하는 것이고, 같은 말이더라도 남자와 여자가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 있다는 걸 그때 난 새삼 깨달았다. 앞서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밥 먹고 집회에 참석하자고 하기에 난 그저 마무리조로 그 말 한마디를 보탰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개념 없는 여자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다. 부모가 돌아가 곡을 해도 밥은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그 힘으로 곡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에겐 현 시국이 밥도 편하게 못 먹을 시국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밥 소리나 하지 말지. 모르긴 해도 이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려다 못 구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때 그는 자신의 말에서 내가 무엇인가를 깨달아 주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인 내가 느껴야 했던 건 (애석하게도) 그가 바랐던 것과 일치하지 않았다. 아니 일치할 수 없었다. 원래 상처 주는 사람은 잘 모른다.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지 안 주는지. 주면 얼마나 주는지. 받는 사람만 아는 문제다. 만일 정 내키는 것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액면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를 찾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난 참혹하게도 그에게서 맨스플레인을 보았으니까.

 

이 사람뿐이 아니다. 남자들은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페미니즘을 옹호하든 그렇지 않든 맨스플레인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들이 그 상황에서 그 사람처럼 반응하는 것도 아니다.

 

또 그런 그의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어떤 의미로든) 자신과 같은 생각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겠다는 뭔가의 결기 같은 것도 느꼈는데,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뒤집으면 상대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왕 말나온 김에) 알다시피 같은 시간 서울역에선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죄상이 이렇게 명백한데 어떻게 탄핵을 반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한 가지 깨달았던 건, 모든 것엔 절대적이라 건 없고 선택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죄상을 바라보는 시각조차도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상대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선택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선택을 강요하는 건 얼마나 위험한가? 그것은 또 너와 내가 같은 생각이 아니면 배타적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탄핵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것에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며 한 가지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이 서로의 다름을 우린 얼마나 인정하고 포용하며 사는 걸까?

 

어쨌든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는 지인을 만났다. 그녀는 공교롭게도 탄핵을 반대하는 쪽이었다. 그녀는 비교적 확고해 보였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자신도 언젠가 한 번 탄핵지지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지지자들 중엔 정말 지지해서라기 보단 알바들이 대거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등 뒤에서 불평과 앓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그것이 사실이라면 탄핵 반대 측에도 그런 알바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건 아무래도 정치꾼들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람이 생각이 났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그 사람도 알고 있는 걸까? 문득 그의 나를 향한 맨스플레인도 그렇지만 약속을 뒤집을 만큼 탄핵을 지지했던 그의 투쟁이 숭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좋은 의미는 아니다.)

 

나의 지인은 또 한 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여자여서 당하는 설움도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건 거의 절대적여 보였는데, 자신이 여자로 일하면서 남자들에게 당했던 설움을 그런 식으로 투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건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정을 농단한 죄가 가벼울 수 있다는 걸까? 그래서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런 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역대 대통령들은 국정을 농단한 적은 없는가? 이 질문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는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정 비리를 바로 잡기 위해 박근혜가 필요했다면 그것을 피해갔던 전직 대통령을 다시 소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추위를 무릅쓰고, 장애자로서 들것에 몸을 의지하면서까지 광장으로 모여들었을 때 과연 그들은 어디 있었는가.

 

탄핵 지지자들 중엔 역대 전직 대통령의 천문학적이고도 역사적인 비리와 농단을 생각하면 박근혜를 감방에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다못해 그냥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가택연금 정도도 괜찮은 거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탄핵 반대자들은 아직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러는 건 너무 심하다는 건 당연한 거고. 그밖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면상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나는 정치에 관해선 별로 아는 바가 없어서일까?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보면 좀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어떻게 저렇게 확고할 수 있을까?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옳기도 한데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선택을 하고 노선을 정하는지 모르겠다. 그래. 대다수의 바람대로 박근혜는 구속이 됐다. 그러면 된 건가? 나는 아직도 마음이 복잡하다.

 

그러던 중 나는 며칠 전, 오랜만에 어떤 책의 저자와의 만남에 다녀왔다. 그것은 이번 국정농단과 탄핵 과정을 최초 보도한 한 명의 방송 기자와 두 명의 작가로 구성된 공동 저자들과의 만남의 자리였다. 내가 그 모임에 참석했던 건 거리상 가까워서이기도 하지만 위에서 밝힌 것처럼 난 아직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이 책을 읽고 있어서일까? 왠지 모르게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부조리한 것들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시종 진지함과 유머를 잃지 않았으니 그만하면 훌륭했다고 본다. 공동저자 3인방은 스마트함은 물론이고,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나에겐 아주 좋아 보이지만은 않은 건 뭐 때문일까?

 

그들은 자기네들만 소개 받는 것이 멋쩍었는지 두 명의 저자가 더 있다며 젊은 여성 작가 둘을 더 소개했다. 그들이 같은 테이블에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모르긴 해도 보조 작가였나 보다. 물론 나이가 그 3인방 보다는 어렸으니 같이 앉아 있기가 뭐했나 보지. 자리도 비좁고. 또 어떤 부분 나대지 않는 겸손의 미덕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래서 일의 강도는 그 테이블의 3인방 보다 덜 했을까? 이것도 짐작이지만, 그렇지는 않았을 거다. 단순히 여자고 나이가 젊었으니 그러고 지나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식으로 언제나 여자는 보조 역할이다.

 

그들은 그 책을 쓰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유머와 여유로움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특별히 정부수립 이후 현직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헌법에 관련된 책들은 모조리 훑었다는 말에 과연 그들의 열정과 노력은 인정해 줄만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이번 기회에 헌법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는 겸손함도 잊지 않았다.

 

그런 것을 보면 그들이 이번 국정농단과 탄핵에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또 방송에서 한 치의 오류도 없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전달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이번 국정농단을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그 시간 조금이라도 떨어버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깊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건 지금의 혼란스러움은 아무래도 국정농단과 박근혜를 같이 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국정농단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누구도 이것을 피해 가거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여자라고 해서 봐줘야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법과 제도는 누가 만들었는가? 하다못해 한 나라의 엄중한 헌법조차도. 탄핵 반대자들 중에 그들이 결코 놓지 못하는 프레임 중 하나는 박근혜가 바로 남성들에 의해 만들었을 이 법과 제도에서 작두(?)를 탓다는 것일 게다.

 

물론 이 말을 간단히 무시해도 좋다. 여자이기 때문에 동정을 받아야 하는 건 여자인 나도 원치 않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짚어 들어가면 정의란 아예 존재치 않는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우린 헌정 사상 그 유래가 없는 일을 겪으면서 (겨우) 헌법의 엄중함을 깨닫는 기회를 가졌다. 어떻게 갖게 된 기회인가? 그것은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도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촉구한다. 어물쩍 덮어갔던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의 재임시절 국정 비리와 농단사건을 헌법이란 이름으로 재수사 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공평한 것 아닌가?

 

,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을 재수사하는 것이 합당하냐 하지 않느냐를 위해 또 헌법 책을 뒤져야하는 것이 두려운가? 오늘 날 한국의 페미니즘은 그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공동저자 3인방)은 이번 대통령 투표 팁도 더불어 알려줬는데 간단하다.

사실 헌법은 A4 용지 열 몇 장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중 헌법 전문은 한 장도 되지 않는다. 누구를 뽑을지는 그 전문을 읽어보고 그것에 적합하거나 조금이라도 근접해 있는 후보를 찍으라고 한다. 쉬운 일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이번 대선에서 100%는 아니지만 98% 이상은 남자가 대통령이 될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 그리고 이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국민으로 하여금 헌법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니, 적어도 그것을 바로미터 삼아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며 국정을 잘 운영하고 있는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내 기대엔 좀 못 미쳤다. 사이다 같다고 했는데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페미니즘이라고 해도 좀 진보적인 느낌이 들어 어느 부분 나도 여자지만 약간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부분도 있었다.

 

가끔 지하철을 이용할 때가 있다. 타 보면 노약자와 임산부 보호석이 따로 지정되어 있다. 물론 그게 없는 것 보단 있는 것이 낫긴 한데 설마 이런 것 가지고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라고 보는 일은 없겠지 싶다. 솔직히 진짜 복지 국가가 되려면 이런 구분은 없어져야 한다. 왜 그런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좌석이 노약자 보호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건 장애자와 비장애자가 언제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물론 나는 여성을 장애자로 비유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 여성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여성학의 전제는 언젠간 없어질 학문이라고 해서 정식 학문이 아니라고 했다. 진짜 페미니스트가 들으면 화날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성학이란 학문이 학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면 이거야 말로 여성 소외 아니냐며. 하지만 언젠가란 미래형 전제가 있다. 그건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될 때를 말한다. 물론 요원한 일이니 여성학은 웬만해서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제는 언제나 유효하다.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때로 급진적이고 전사적인 행동도 취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다 보면 아직도 만연한 반페미니즘과의 충돌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 인간 삶의 대전제는 남자와 여자의 조화와 평화로운 공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비록 이 책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워할 수는 없다.                     

 

미소지니(misogyny)가 여성혐오라고 번역되었는데, 번역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한국어로 받아들이면 오해하기 좋은 어감이다. 그러나 미소지니는 실제로 혐오 보다는 ‘차별‘이나 ‘멸시‘에 가까운 의미를 담는다. 따라서 여자가 일삼는 여성혐오란 곧 자기혐오이며, 자기멸시인 것이다.(52p)

딜브레이커(deal-breaker)라는 단어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진짜 아니다., 라며 포기하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딜브레이커가 있다. 날 호구로 보고 이용해도 되지만 내 외모를 가지고 놀리면 안 돼. 혹은 술 마시고 날 때리는 건 괜찮지만 바람 피우는 건 받아들일 수 없어 뭐 그런.
대선 후보에게도 당연히 딜브레이커는 있고,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이회창의 경우는 ‘군대‘였다.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 한국 유권자에게는 딜브레이커였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은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반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최순실이 딜브레이커였다. 아무리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싶어도 대통령이 저렇다면 지지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기준선이다(118~1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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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7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4-28 14:18   좋아요 1 | URL
탄핵을 보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더군요.
님의 생각도 맞는 얘기죠.
근데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도 생각이 든다는 거죠.^^

꼬마요정 2017-04-28 14:30   좋아요 1 | URL
아, 그냥 제 관점이구요 ㅎㅎ 폰으로 쓰다가 잠시 딴 일하고 와서 중간 문장 빠졌어요ㅠ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요거 진짜 중요한 문장인데 없어졌네요 ㅠㅠ

cyrus 2017-04-27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급진적이든 점진적이든 페미니즘이 실천하는 방식이 다르더라도 다 같은 목표로 향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점진적 방식을 선호하지만, 상황에 따라 급진적 방식을 선택할 겁니다.

stella.K 2017-04-28 14:38   좋아요 0 | URL
나도 그렇게 생각해.
급진은 그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지.

와, 근데 다시 봐야겠는데?
상황에 따라 급진을 택하겠다니.
네가 페미니스트였다는 걸 잊고 있었네.흐흐

cyrus 2017-04-29 06:53   좋아요 1 | URL
저를 페미니스트로 바라보지 않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 시선에 신경쓰지 않지만, 페미니즘 관련 문제를 인식하는 태도와 사회를 개선하려는 과정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야! 페미니스트인지 의심된다‘ 식으로 나오는 반응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stella.K 2017-04-29 15:34   좋아요 0 | URL
그건 그렇지.
그런데 언제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나?
내가 모르는 뭔가가...?!

cyrus 2017-04-30 16:02   좋아요 0 | URL
별 일 아닙니다. ‘남성 페미니스트’라면 겪게 되는 상황입니다. ^^;;

stella.K 2017-04-30 18:14   좋아요 0 | URL
뭔지 짐작이 간다.ㅠ

페크pek0501 2017-04-29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치적으로 (아주 예민하게) 열을 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님이 쓰신 다음의 글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겠다는 뭔가의 결기 같은 것도 느꼈는데,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뒤집으면 상대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 좋은 글입니다.

stella.K 2017-04-29 15: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평소엔 아무 일 없는 것 같다가도 정치 얘기만 하면 돌변하는.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가 부분데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더군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거에 대해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봐요.
한 가족 내에서도 지지하는 후보가 똑같아야 한다는 거
좀 심한 거 아닌가요?
 

눈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안경을 마쳐야지 해놓고 해를 넘기고, 달을 넘기고 있다.

눈이 나빠지니 내가 앞으로 책을 몇 권이나 더 읽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뭐가 어떻게 될 것도 아니고 눈이야 노화에 따른 것이니 슬퍼할 것도 없다. 이 나이 먹도록 안경 안 끼고 살았으면 잘 산 거 아닌가.

 

작가 보루헤스옹은 그의 지독한 독서 때문에 시력을 잃었다. 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보루헤스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무슨 사고를 당하지 않고 또 혹사시키지만 않는다면 나의 눈은 나의 노화와 함께할 것이다.

 

하긴 보루헤스는 독서로 시력을 잃었지만 그 반대의 케이스도 있다. 중국의 어느 교수는 자기 집 부엌에까지 책을 쌓아놓고 해가 져 깜깜한데도 불을 킬 생각도 안하고 책을 읽었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다른 것을 할 때 해가 떨어졌다면 그도 어둡기 전에 불을 켜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런 어둠속에서도 책을 읽은 것을 보면 그건 확실히 무아의 경지였을 것이고, 그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일 것이다.

 

며칠 전, <생활의 달인>을 보니 순 옛날 방식으로 수의를 만드는 9순의 할머니가 소개되었다. 나이가 9순이니 눈이 얼마나 안 좋겠는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직도 누구의 도움 없이 손수 바늘귀에 실을 꿰어 바느질을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할머니는 며느리와 PD 셋 중 가장 먼저 바늘귀에 실을 꿰는 기염을 토하기까지 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사람은 어느 경지에 오르면 육체의 감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모르긴 해도 그들은 그 일만 잘 하지 않을까? 어둠속에서 책을 읽으라면 읽겠는데 바닥에 떨어진 밥숟가락을 찾으라고 하면 못 찾을 것이고, 9순의 할머니도 바늘귀에 실을 꿰라면 하겠는데 머리카락을 주우라고 하면 못 줍지 않을까?

 

어쨌거나 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니 그런 신선 같은 재주는 없을 것 같고, 이제부터는 (시간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눈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읽어야 할 책 목록이라도 만들어야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요즘 작가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요즘에 나오는 신간은 웬만해선 눈길이 가지 않는다. 사춘기 때 미처 다 읽지 못한 또는 이미 읽었더라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고전에 마음이 간다. 학교 때 고전을 읽으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랐건만 그땐 정말 귀 밖으로 들었다. 그땐 세상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케케묵은 고리짝 책을 읽으라는 건가 한심하게 들었다.

 

한다하는 독서 고수들은 말한다. 그런 책들은 적어도 200년 이상 시간을 견디며 살아남은 책들이다.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그러니 고전을 읽으라고 일축한다. 그런데 이 시대 낭만 호사가 김갑수는 그의 책에서 고전을 아주 간단하게 정의했다. 재미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특히 제인 오스틴 같은 책은 너무 재밌다는 것이다. <작업인문학>에서). 과연 그도 그렇겠다 싶다.

 

적어도 200년 전, 사람들은 무엇으로 재미를 추구하며 살았겠는가. 뭐 사랑을 추구하며 산다지만 잘 알다시피 사랑의 유통기한은 6개월에서 길어야 1년 내외다. 스포츠도 내가 좋아야 하고 재능이 있어야 한다. 그 시절 볼만한 영화있었겠는가?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하고 추구하는 존재라고 한다. 그러니 그것은 아무리 추구해도 물리는 법이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순전히 상상력에 의존에서 썼을 테니 그 시대의 작가들의 상상력과 구성력이란 요즘의 기고, 뛰고, 나르는 어떤 작가 보다 고도화되지 않았을까. 거기다 오래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역사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니 고전이 된다는 건 아무 거나 되는 것이 아니겠지. 그 가치를 시력이 나빠지고서야 깨달으니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눈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읽어야할 책목록을 만들어야 한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러다 나도 눈이 더 나빠져 보루헤스옹처럼 골로 가던가 아니면 신선이 되던가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내가 그렇게 책목록을 만들고 죽을 때까지 실천한다면 지금부터 읽는 나의 책읽기는 역전의 책읽기.

 

눈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읽어둬야 할 책으로 제일 먼저 고른 책은 <장 크리스토프>. 중학교 무렵에 같은 반 아이가 이 책을 가지고 있어서 처음 알았다. 얼핏 베토벤의 생애를 다뤘다고 알고 있어서 마침 난 그때 예술가의 생애와 삶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언제고 꼭 한 번 읽어봐야지 해 놓고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다. 당시로도 5백 페이지가 넘어 !” 소리가 나올 정도였는데 이 책은 두 권 다 합쳐서 그것의 3배쯤 된다. 물론 억억!” 할 것 같지만 그러다 턱이 빠질지도 몰라 안으로 삼키고 그냥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이책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또 지금도) 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출판사에서 작년에 새판을 찍었는데 만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있다.

 

그런데 난 이책을 못 살뻔 했다. 사실 난 1권을 어제 늦게 Y 서점에서 샀는데 원래 예정대로라면 수요일 날 받아볼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한 달 전쯤 그런 얘기를 했지만, 요즘 은근 나의 책 구입을 탄압하는 엄마 때문에 그것을 피할 수 있는 확실한 날이 수요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화요일 오후에 주문을 해야 하는데 그만 인터넷이 고장이 나 주문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되면 이것저것 행사로 그러모은 한 장에 천 원 하는 상품권 3장 중 하나를 그냥 날려버리고 만다. 물론 아직 2천원의 상품권이 남아 있으니 8천원에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잘 알지 않은가? 우리 같은 서민형 장서인들은 1천원에 웃고 우는 거. 이건 아무래도 이번엔 책을 사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구입을 미루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뭔가를 착각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고치고 다시 보니 사멸되었을 줄 알았던 상품권이 아직 유효했다. 게다가 오늘은 엄마가 병원을 가는 날이다. 이는 잘만 하면 엄마가 없을 때 책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 그렇게만 돼 준다면.....

 

그런데 오전에 병원 가신 엄마가 오후 1시 무렵이 되자 돌아왔다. 아무래도 이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으려나 보다 했다. 그리고 나는 조금은 허탈하게 엄마가 옷을 갈아 입으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이번에도 한 소리 들으려나 보다 했다. 그런데 또 이게 웬일인가, 그 절묘한 타임에 택배가 우리집 문을 두드리고 내 책을 두고 갔다. 당연히 엄마는 옷을 갈아입느라 물건을 받을 수 없었고, 나는 다롱이를 내 방으로 몰아넣고 냉큼 그 책을 끄잡아 들였다. , 책 구입하기 정말 어렵다. 이번 주 초에 책을 받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절묘해지지 않아도 되는 건데. 이 정도면 나의 책 구입은 거의 전생의 업보요, 원죄에 가까운 일은 아닐까? 아무래도 전생에 엄마가 내 딸이었나 보다. 책을 무척 좋아하는. 그래서 내가 구박을 엄청 하지 않았을까? , 주여, 주님은 어찌하여 저를 시험하시나이까? 흑흑.

 

어쨌든 오늘도 무사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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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0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입니다. 이 책의 글자 크기가 작아요. 이 책을 계속 보면 눈이 피로해요. 얇은 분량의 책을 밤에 읽어도 잠이 올 정도예요. ㅎㅎㅎ

stella.K 2017-04-21 14:24   좋아요 0 | URL
난 보고 싶어도 못 보겠구나.
몇년 전까지만 해도 누워서 책을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거의 못 보겠더군.
누워서 책 보면 눈이 더 안 좋아진다는 말도 있고 해서.ㅠ

cyrus 2017-04-22 16:42   좋아요 1 | URL
오랫동안 배 깔고 누워 있는 자세는 허리에 부담을 줘요. 그래서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어요. 그런데 문제는 목이 거의 책이 있는 아래로 고정되니까 목이 아파요..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자세가 없어요.. ^^;;

stella.K 2017-04-22 18:0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보고 있는 걸 보면
집념이 대단한 거야.
그런데 뭘 해도 사람은 한 자세로 오래 있을 수 없는 것 같아.
편하게 누워서 TV를 보는 것도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게 마련이거든.ㅋ

moonnight 2017-04-21 0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읽어야할텐데 하는 조급증이 제게도 있습니다. 지금껏 늘 시력이 좋았었는데 이제는 ㅠㅠ;;
장 크리스토프가 베토벤의 생애에 관한 책이었군요;; 저도 보관함에 넣습니다^^;
저는 요즘 택배는 소화전 안에 넣어(숨겨-_-)달라고 부탁드려요. 그렇게 겨우 잔소리를 면하게 되었답니다. ㅎㅎ;;

stella.K 2017-04-21 14:30   좋아요 0 | URL
오, 소화전!
거기도 책을 둘 수 있는 공간이 있나 보죠?
동사무소에서 여성들을 위한 사물함 대여를
해 준다는데 좀 알아보고 신청해 보는 건 어떨까요?

<장 크리스토프> 아까 오전에 조금 읽어 봤는데
재밌을 것 같더군요.
사실 베토벤의 생애를 다뤘다는 건 반은 맞고, 반을 틀린 말이어요.
거기에 작가 자신의 정신을 이상화했다는군요.
언제 다 읽을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도 전 두꺼운 책을 선호하니 문제요.
문나잇님도 그러신가요?^^

북프리쿠키 2017-04-21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베스트셀러나 신간에 손이 덜 가는것 같아요.
전 ˝소설˝분야는 되도록이면 고전문학 읽을려고 합니다~텔라님 말씀처럼 재미도 있구요ㅎ

stella.K 2017-04-21 14:31   좋아요 0 | URL
쿠키님은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7-04-22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헷갈리네요. 제가 읽은 게 몬테크리스토 백작이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베에토벤의 생애를 다룬 것도 읽었는데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어요.
기억력도 노화되고 있겠지요. 이젠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에 자신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어요.

시력은 노안 안경을 사시면 해결됩니다. 글을 볼 때만 쓰시면 됩니다.

몰래 하는 사랑이 짜릿하다고 하는데,
책도 몰래 사야 하니 짜릿하시겠는걸요.
하긴 저도 책이 배달될 때 되도록 식구들이 없을 때 받고 싶더라고요.
또 책이야? 그럴까 봐서요.ㅋ

stella.K 2017-04-22 18:47   좋아요 2 | URL
몬테크리스토는 다른 건데요.
베토벤의 생애라면 장 크리스토프가 맞을 것 같구요.
그런데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릴만한 것 같아요.

ㅎㅎ 짜릿하진 않아요.
그런데 그걸 사랑에 비유하시다니 언닌 낭만이 살아있네요.ㅋ
사실 장 크리스토프는 오래 전부터 함 읽어야지 벼르고 있었어요.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더군요.
하긴 이미 사 놓은 책도 못 읽고 있고
그만 사야지 해 놓고도 사면 왜 그리 좋은지 모르겠어요.
이래서 쇼핑 중독 이해할 것 같아요.
아주 춥거나 아주 더우면 엄마가 외출을 잘 안 하시는데
그안에 열심히 책을 사 둘까봐요. 흐흐

2017-04-26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6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랑스 시노그라퍼 - 1975-2015 공연.영화.전시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들
뤼크 부크리스 외 지음, 권현정 옮김 / 미술문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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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가물에 콩 나기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가는 때가 있다. 조명이 켜지고 배우가 등장할 때까지 그 무대는 온전히 하나의 공간을 보여준다. 그게 어느 집 거실일 수도 있고, 을씨년스러운 어느 바닷가 모레 사장일 수도 있으며, 19세기 어느 귀족의 집이나 중세 어느 성당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런 공연물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런 무대장치가 극이 진행됨에 따라 어떻게 쓰이고 변화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공연물(오페라도 마찬가지겠지만)은 종합예술로서 한마디로 예술에 관한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되는 된다. 그러니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가 없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위한, 또한 누구를 위한 작품이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작가로 연극에 참여해 본 사람으로서 작품의 가장 첫 작업을 맡은 작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뭐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그런 생각도 그리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작품이든 그 작품이 결국 맨 마지막에 도달해야 할 대상이 누구냐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건 온전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 물론 작품이 추구해야 하는 작품성, 예술성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긴 하겠지만 그것의 완성은 결국 배우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써도, 연출가가 아무리 뛰어난 연출을 한다고 해도 배우가 온전히 그 작품과 배역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건 완전한 작품이 될 수가 없다. 물론 그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배역을 잘 할 수 없다면 그것을 잘할 수 있는 배우를 섭외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최악을 상황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는 프로라는 관점에서 각자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할지를 유기적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결론은 그렇게 나올 것이며 그래야 관객이 감동하는 결론도 나올 것이다. 그래서 연극은 배우를 위한 예술이라고 했는가 보다.

시노그라피는 한마디로 말하면 무대디자인 또는 무대장치 등으로 설명될 수 있는 단어다. 그리고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시노그라퍼라고 한다.

흔히 우리는 그런 공연물을 볼 때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무대 디자인을 얼마나 눈여겨보는지 모르겠다. 물론 눈여겨 보긴 할 것이다. 아무리 배우가 중요하다지만 어떤 무대에서 공연하느냐에 따라 그 배우가 빛나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당장 요즘의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그렇다. 배우도 배우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무대 세트를 보면 눈을 빼앗길만하다. 그러나 처음에만 그렇지 결국 우리의 관심은 이내 배우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물론 조금 더 관심의 영역을 넓혀서 누가 연출했는지, 누가 작품을 썼는지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하나의 예의가 되었다.   

이 책은 비록 프랑스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시노그라퍼들의 대략적인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보니 나는 무대 디자이너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분야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분야에 대한 대중서가 나왔다는 건 확실히 흥미롭긴 하다. 하지만 과연 대중에 관심을 끌 수 있는지는 지금으로선 판단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프랑스의 시노그라퍼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흥미로울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나라 무대도 못지않게 화려하고 창조적이어서 그것을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 책은 1975년에서 2015년의 작품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시대를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게 옛 시대의 작품들도 요즘에 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 책은 글은 최대한 절제하고 각각의 시노그라퍼들의 대표작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시노그라퍼란 무엇인지 또는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가를 인터뷰식으로 간략하게 소개해 놨다. 대답이 여러 가지이긴 하다. 누구는 드라마트루기의 관점에서 작품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을 넓혀 가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연출가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작업을 한다고 했으며, 어떤 시노그라퍼는 배우를 많이 생각하며 작업을 한다고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연출을 겸하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대답은 여러 가지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공연이란 커다란 작품을 앞에 놓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겠는가. 관계자들 외엔. 그들은 기꺼이 공연에 녹아들고 스며들어야 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자인한 존재들이었다. 공연이 끝나면 없어져야 하는 무대장치다. 공간 예술이라 어디에 영구 보존하기도 어렵다. 장소를 대여하는 것이니 대여 기간이 끝나면 어쨌든 철거를 해야 한다. 보존을 하려면 사진 같은 기록물로 보관하던가 아니면 그 작품이 레퍼토리화해서 어디선가 계속 공연이 되면 그에 따라 그 무대디자인은 함께 갈 수도 있겠지.

이제 좀 시노그라퍼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도 쳐줄 박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작품은 웬만한 미술작품 못지않다. 그리고 상당히 매혹적이다. 이런 무대에서 공연하는 배우는 절로 연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감탄할 정도다. 이왕 연극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작가 같은 거 하지 말고 배우를 하면 좋겠다. 이렇게 배우를 위하는 사람이 많은데 배우는 정말 축복받은 직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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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화가들도 전업 화가가 되기 전에 무대 디자인 일을 한 적이 있고, 화가가 돼서도 무대 디자인 일을 했어요. 화가의 손길을 닿은 무대 디자인도 예술로 인정해야 합니다.

stella.K 2017-04-16 18:42   좋아요 0 | URL
정말 사진 보면 그림이야.
그 그림속에서 사람이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해 봐.
진작 그림을 배우지 못하고 무대 디자인을 못 배운 것이 아쉽더군.
이 책에 나온 사람과 그의 시노그라피는 빙산의 일각이겠더군.
우리네 같은 사람은 새끼 손가락으로 쿡 한 번 찍어
맛 본 것에 불과해.ㅠ
 

얼마 전, 김대식의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 대한 리뷰를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은 역시 후회하는 존잰가 보다.

 

방금 전, <알림센터>의 메시지 하나가 떴다. 확인해 봤더니 내가 <릿터> 정기구독권에 당첨됐다는 것이다.

 

2017-03-06 ~ 2017-03-31
2017-04-11
릿터 정기구독권

 

캬, 이럴 줄 알았으면 리뷰를 좀 잘 쓰는 건데.

난 그 책이 이벤트 중이라는 것도 모르고 좋은 평도 하지 못했다.

뭐 솔직한 게 가장 좋은 평이라는 걸 이벤트 주최측에서도 아는 거겠지.ㅋ

 

암튼 태어나서 정기구독의 호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닌가 한다.

원래 잡지는 나에게 사치라고 생각했다.

뭐 이왕의 행운이니 앞으로 1년 동안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읽어 주겠다. 음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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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4-12 17:51   좋아요 1 | URL
ㅎㅎㅎ 덕은요...ㅠ
요즘 알라딘이 저한테 이상해진 것 같습니다.
지난 번에 책을 자꾸 사게 된다고
책을 주문하는 손을 잘라야 한다고 했더니
오히려 더 열심히 주문하라고 당선작으로 뽑아주질 않나.
암튼 올 4월은 저에게 그렇게 잔인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ㅋㅋ

후애(厚愛) 2017-04-12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첨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오후 되세요.^^

stella.K 2017-04-12 18:05   좋아요 0 | URL
앗, 고맙습니다.^^

22c 2017-04-12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소에 쓰는 리뷰와 이벤트라는 걸 알고 쓰는 리뷰에.. 차이가 있나요?

stella.K 2017-04-12 18:40   좋아요 0 | URL
ㅎㅎ 아무래도 이벤트 당첨 목표로 쓴다면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건 아무래도 쓰는 사람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당첨이 되는 걸 보면...^^

서니데이 2017-04-12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기구독권 당첨되셨군요. 좋은 소식이네요.^^

stella.K 2017-04-12 20:04   좋아요 1 | URL
아, 네. 고맙습니다.^^

cyrus 2017-04-12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이번 달에 누님한테 기쁜 일들이 한꺼번에 왔네요. ^^

stella.K 2017-04-12 21:27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야. 난 대체로 홀수 년이
짝수 년에 비해 좀 안 좋은 경향이 있어
사리고 조심하고 있는 중인데
이런 일도 있네. ㅎㅎ
그런데 넌 이번에 아무 것도 안 됐나?
너도 응모했었잖아.

암튼 고맙다.^^

2017-04-12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2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2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7-04-12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부럽습니다 축하합니다^^

stella.K 2017-04-13 16:5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