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피겨스
테오도르 멜피 감독, 타라지 P. 헨슨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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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나쁘지는 않았다.

일단은 소재 자체가 흥미롭지 않은가? 미항공우주국 나사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흑인 그것도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거 보고 나면 역시 기분은 별로다.

모르는 사람은 억압 받은 흑인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높은 점수를 주려는가 본데

이건 전형적인 허리우드 영웅주의를 다룬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치사하게 그 영웅주의에 흑인을 이용했다는 것.

 

60년대. 물론 흑인 노예해방은 됐다지만 대신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절이다.

흑인도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그거야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거고, 여전히 가난과 범죄로 내몰리던 시절 아닌가?

 

이 영화는 온갖 차별을 이기고 똑똑함으로 미국의 주류사회에 뛰어든 흑인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좀 더 강한 고발정신을 담아어야 했다고 본다. 그런데 요즘 영화의 흐름이 전반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쇼적인 측면이 더 강해졌다. 그래서 시종 밝은 톤이다. 그 시절 흑인도 그렇게 불행한 것마는 아니라는 것을 애써 보여주려고 한다. 

 

뭐 그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케빈 코스트너가 유색인종 화장실 팻말을 망치로 떼려 부수는데 어찌나 작위적이던지 미국 ㅅㄲ들은 자신들이 흑인을 핍박해 온 역사를 이런 식으로 후려치는구나 좀 가증스러웠다. 그러면서 이제는 흑인더러 너희들이 흑인이라면 똑똑하기라도 해라. 그럼 길은 열릴지도 모른다는 걸 암시하는 것도 같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평범한 사람이 잘 사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미국은 이제 TV 시리즈지만  영화<뿌리>나 스파이크 리의 일련의 흑인 영화를 기대하면 안 되는가 싶다. 그런 영화 정신이 없다. 영화 <헬프>도 겉만 흑인 영화지 속은 백인 영화다. 두 영화 모두 그냥 초콜릿 입힌 바나나 같은 영화일 뿐이다.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그리워 하는 것 같다. 갈수록 그때의 향수가 영화에 짙게 베어난다. 그래도 출연진들의 연기는 좋다. 어쨌든 여성 영화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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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9-03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이 대체로 좋은 영화였음에도 저는 그리 좋은 느낌으로 남은 영화가 아니었거든요. 그 이유를 그저 너무 작위적이고 감동을 계획한 영화라고 밖에 속시원히 표현 못했는데 stella님은 역시 이렇게 콕 집어서 정확하게 분석을 해주시네요. 초코렛 입힌 바나나, 흑인을 등장시킨 헐리웃 영화!

stella.K 2017-09-04 13:25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근데 원작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좀 비튼 느낌이 있거든요.
기회있으면 원작 한 번 읽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근데 전 항상 그렇지만 영화에서도 보면 수학공식 같은 거
풀잖아요. 그걸 배우들은 어떻게 표현할까 싶기도 해요.
그것도 수학 전공자 따로 불러서 손 따로 얼굴 따로 찍는 걸까요?ㅎ

페크pek0501 2017-09-04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부 격차, 인종 격차, 성별 격차 등 이러한 격차가 크지 않은 나라가 좋은 나라일 테지요.

stella.K 2017-09-04 17:5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런데 그런 나라가 또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도 단군 이래로 단일민족이라고 떠들긴 하지만
빈부나 성별 격차가 심했잖아요, 지금도 여전하고.
그러고 보면 문명이 발달된 나라라고 다 행복하고
좋은 나라라고는 할 수 없는 것도 같습니다.
원시 미개한 나라라고 불행한 것도 아니구요.
정글에 사는 부족일수록 문명의 이기를 타지 않아 잘 산다잖아요.

암튼 저 영화는 배역진이나 음악, 영상 다 좋긴한데
영화 정신은 빵점입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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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여름 가고 가을이 성큼 와 버린 느낌이다.

그나마 낮엔 후텁지근 해서 가는 여름을 위로하는 듯도 한데

아무래도 가는 여름이 아쉽기도 하다.

이렇게 가면 안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좋던 싫던 9월이 됐다.

뭐 좋은 9월이 왔다고 해야겠지.

 

작년 오늘이 생각난다.

혹시 이거 아는가? 작년 오늘 인터넷 서점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뭔지?

이거 맞추는 1분께 선물하는 이벤트라도 해 볼까?ㅋㅋ

 

9월은 내 생일이 끼어있는 달이기도 하다.

오래 전, 생일 이벤트라는 것을 한 알라디너가 있었다.

나도 얼떨결에 그것을 쫓아 해 보기도 했지만

그건 역시 뱁새가 황새 쫓아가면 가랭이가 찢어지는 법이다. 

일종의 품앗이 같은 거였는데 책 선물을 한꺼번에 많이 받아

좋긴 했지만 그렇게 선물 받은 책만 읽어도 수 개월 또는 족히 1년이 걸릴 일이었다.

그렇다고 어디 그것만 읽게되던가?

그후 다시는 그런 건 하지 않았다.

 

근데 9월 어느 날 1, 2분 정도한테는 생일 선물을

받아보고 싶기도 하다.

별뜻은 없고, 알라딘에 [선물하기] 기능이 있는데 이게 나에게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아서다.

 

전에 두 분 정도한테 이 기능으로 선물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저쪽에선 보냈다는데 나에겐 꿩 궈 먹은 소식이었다.

왜 이메일 열어 확인하지 않냐고  독촉을 받았다.

이 문제 땜에 알라딘 직원분과 통화를 하기도 했는데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전에도 이런 유사사례가 보고된 적이 있었다면

알라딘 시스템을 의심해 볼 수도 있을텐데 

유일하게 나 밖엔 없다니 나 자신의 무식함을 원망하는 수 밖에.

 

그래서 뭐 하나를 수정해 보긴 했는데

그동안 내가  뭐 선물을 받으리만큼 착한 일을 한 적이 없으니

이게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는지 않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염체불구하고 이걸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고

감히 요청하는 바이다.

 

아직 내 생일이 되려면 2주 정도는 있어야 한다.

나를 아는 알라디너여, 잘 생각해 보고 나의 작은 바람을 이루어주시길.

 

내가 받아 보고 싶은 책은 북풀의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참조할 수도 있고,

아니면 원하는 책을 선물해도 좋다.

물론 그 책이 중고샵에도 있다면 그것으로 선물해 주셔도 좋다.

아니 오히려 환영이다.

 

만일 그렇게 선물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

답례로 내 책을 보내 드리겠다.

 

좋지 않은가?

이 기회에 좋은 일도 하고,

저자 사인본도 받고.

 

자, 날이면 날마도 오는 기회가 아니다.

선착순 2명!

 

이거 원, 해 놓고 보니 쑥스러워 땅이라도 파고 숨고 싶구만. 

뭐 이런 웃픈 상황이...ㅠㅠㅋㅋㅋㅋ

 

어쨌든 다시 한 번 정리 한다.

작년 오늘 인터넷 서점을 뜨겁게 달군 사건은 무엇인가?

맞춘 1분께 내 책을!

(이거 너무 쉽다.)

 

내 생일을 빙자하여 제일 먼저 [선물하기]로 책을 보내 주시는

2분께 답례로 내 책을!

이럴 때도 선물 보냈다고 댓글 남기시는  거 아시죠?

그래야 후발주자 생기는 걸 방지할 수 있음.  

 

그럼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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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 이뿌다!
    from 네 멋대로 읽어라 2017-09-07 16:09 
    며칠 전, 내 생일 달을 맞아 깜짝 이벤트를 한 적이 있었다.뭐 일종의 넌센스 퀴즈 같은 거였는데서니데이님 거의 다 맞히시고도 안 맞춘 척 겸손해 하신다.그래서 그런 게 어딨냐고,선물 보내드리겠다고 했더니그러면 생일이라니 서니데이님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난 게을러서 이달 말이나 되어야 보내드릴 것 같은데,이렇게 빨리 보내주셨다. 서니데이님 파우치나 그 밖의 소품들 잘 만드시는 거야 그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실제로 받아 보니 막상 비닐 벗겨 쓰기가 아까울
 
 
서니데이 2017-09-01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1년이네요. 그사이에.^^
stella.k님의 책인데??
했는데 저자분의 소감이셨네요.^^
그 사이 많은 분들이 읽으셨을거예요.^^
(저는 못 맞춘 겁니다.^^)

2017-09-03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3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3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3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3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1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9-03 17:5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좋은 9월입니다. 행복하게 보내십시오!^^

cyrus 2017-09-02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누님에게 책 선물을 드린 적이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책을 받은 일은 기억해요. ^^;;

stella.K 2017-09-03 17:56   좋아요 0 | URL
ㅎㅎㅎ 내가 너한테 생일이라고 선물을 받을 처지가 못 되는 것 같은데.
넌 이미 내 책 가지고 있잖아.
와, [선물하기] 잘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보기가 이리도 어렵다니.
반성하고 있어. 내가 여기서 그렇게 차카게 못 있었다는 게
여기서 증명되는군. 싸움박질이나 하고 말이지.ㅋㅋㅋㅋㅋㅋ

혹시 네가 가지고 있는 내책을 아는 누구에게 선물하고
내 사인본 받고 싶거든 시험삼아 선물해 줘.ㅋㅋㅋ
어쨌든 니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찔린다 얘.
고마워. 기특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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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터 Littor 2017.6.7 - 6호 릿터 Littor
릿터 편집부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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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운이 좋아 1년인가, 10개월치 정기구독권을 무료로 받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리뷰를 쓰지 못했다. 다 게으름 탓이겠지만 이건 또 독자로서의 예의는 아닌듯하여 늦게라도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은 지가 좀 되서 자세한 리뷰는 좀 어려울 것 같고,

전에 창간호를 산 적이 있는데 그때는 (돈 주고 사서일까) 좀 낮선 느낌에 딱히 나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호들갑 떨고 싶으리만치 좋다는 느낌도 안 들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읽을 거리도 많고 재미가 쏠쏠했다.

 

기억에 남는 건, 장강명 작가가 창간호 때부터 우리나라 문학상을 고찰하는 글을 써왔는데 그게 나름 흥미가 있었다. 이번호까지 다섯번의 연재로 마무리가 되는데 그 나머지는 단행본에서 이어질거란다. 물론 우리나라 문학상이 문제가 많지만 그게 한 권의 책으로 나올만큼 할 얘기가 많았나 새삼 놀라고 있는 중이다. 하긴 최근 어느 일본 작가가 세계적인 문학상에 대한 수다를 책으로 낸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할 말이 많긴 많은가 보다. 문학상도 문학상이지만 출판사 역시도 확실한 지명도가 있지 않으면 책을 잘 안 내려고 하니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언제쯤 정상화가 될지 모르겠다. 프랑스 같은 나라에선 작가에 대한 정보 없이 독자더러 순순하게 작품으로만 판단해 달라고도 한다는데 과연 우리나라에도 그런 날이 올까 싶다.

 

또한 릿터는 주목 받고 있는 외국 작가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번엔 미셸 뷔시를 다루었다. 누구냐면 <검은 수련>, <절대 잊지 마> 등 주로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인데 요즘 부쩍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 북 디자인이 상당히 매력적인데 특히 <검은 수련>은 뭔가 악마적이면서도 고혹적이라 나도 한번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의 인터뷰는 젊고 잘 생긴 문학평론가 허희가 인터뷰어로 나섰는데, 작가도 작가지만 그가 나섰다니 더 관심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엔터테이너적이어도 되는 건지.

 

그 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소설이다. 특히 아킬 샤르마란 젊은 인도 태생의 작가의 '모험과 즐거움이 가득한 삶' 단편은 의외로 잘 읽혔다. 이야기는 섹스 밝힘증이 있는 주인공이 이제 그만 정리하고 결혼할 사람을 만나 조신하게 있다 결혼하려고 하는데 그걸 앙큼하게 어기고 적당히 즐기는 삶을 살아간다는  뭐 그런 얘긴데 유쾌하다. 그래봤자 주인공은 섹스 머신 같긴하지만.

 

그리고 이어서 구병모와 최영건의 단편도 나오는데 웬만하면 읽으려고 했는데 못 읽었다. 왜 그리도 재미가 없던지. 어제도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읽었는데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은 이야기를 좀 재밌게 쓸 필요가 있다. 여성 작가는 재미없을 거라는 인식이 남성 작가에 비해 높다는 것이다. 내러티브가 약한 건가 아니면 크리에이티브 정신이 부족한 건가? 독자로서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을 읽은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읽을 새도 없지만 솔직히 겁이난다. 재미없고 돈만 버렸다는 느낌을 갖게될까 봐. 

 

이번호에서도 에세이스트 서경식의 글은 계속되고 있는데 그의 글발이야 뭐 이미 정평이 나있는 거고, 글중에  특별히 프리모 레비를 다루고 있어 관심있게 읽었다. 언제고 프리모 레비의 글도 읽어줘야 할 텐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이 잡지가 <악시트>보다 한 달 늦게 나온 줄로 알고 있다. 이 잡지도 작가의 인터뷰가 눈에 띄는데 <악시트>를 내고 있는 출판사는 벌써 그 부분을 따로 떼어 한 권의 책으로 내기도 했는데 이 잡지는 아직 그럴 생각이 없는지 조용하다. 따로 책으로 내도 괜찮을텐데.

 

잡지는 말 그대로 잡스러운 책이고 난 잡지에 별로 욕심이 없었는데 자꾸 보니 그도 욕심이 난다. 무엇보다 팔거나 내다버리지 못하겠다. 이런 거 잘 모아두면 나중에 괜찮은 기록물로도 남을 수도 있는데. 하지만 모아두면 짐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어쩌나 무료 정기구독 기간이 끝나도 계속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이런 선물은 안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역시 공짜는 양잿물을 마시는 것과 다를바 없는 것 같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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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9-01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9월 1일입니다. 즐겁고 좋은 시간 꽉꽉 채워서 보내세요.
어쩐지 매일 좋은 일들 많이 생기는 그런 한 달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stella.K 2017-09-01 19:4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좋은 9월, 좋은 가을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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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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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때 시를 잠시 좋아한 적이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언어의 영롱함이랄까 깊은 옹송그림이 나의 의식을 붙잡고 놔주질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못 쓰긴 하지만 직접 써 보기도 했다. 써 보면서 이게 과연 시일까?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낯간지럽고, 소름이 돋을 것도 같았다. 시를 아무나 쓰나? 시 쓰는 영혼은 따로 있는 것만 같았다.

 

후회가 남는다. 이왕 그렇게 알기 시작한 시라면 깊이 빠져 볼 걸 어쩌자고 한쪽 발만 잠깐 담그다 말았을까? 핑계 같은 예기지만 빠져버리면 헤어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고, 사랑할 용기가 없어 시작도 못하고 뒤돌아서버린 형상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보지 못했다. 내가 시를 잊은 걸까, 시가 나를 잊을 걸까? 전자가 됐든 후자가 됐든 잊힌 존재가 된다는 건 또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나는 시를 잊었다.

 

그렇게 된 것엔 나름의 이유는 있다. 우리나라가 언제 시를 좋아한 적이 있었나? 특별히 이 나라 교육이 시를 좋아하도록 권장한 적이 있었는가 말이다. 권장은 고사하고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 시를 음미하고, 좋아해야할 때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야 했고,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야 했다. 세상에 모든 학생들이 영어와 수학을 좋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시를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제도적으로 허락되지 않으니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하지 못하면 정신분열에 걸리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뿐인가? 시는 솔직히 담이 높다. 여간해서 자신의 실체를 한 번에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다. 무슨 스무 고개라도 하듯 아주 조금씩 천천히 보여주는 것이다. 몇 번씩 곱씹어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데 스피드를 중시하는 세상에서 시는 생리적으로 잘 안 맞는 장르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시 세계 전반에 흐르는 엄숙주의는 어떠한가? 홀로 고고하다. 80년 대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낙서 같은 대중시가 유행했었다. 그에 포문을 열었던 게 원태연 시인으로 알고 있는데 그의 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를 두고 얼마나 문단계와 대중이 말이 맞았던지. 나 같이 어정쩡하게 시를 좋아하다 만 영혼은 정말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난감할 정도였다. 그럴 바엔 아예 시에 냉담해지는 것이 낫겠다 싶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다. 지금은 그 시 보다 더 문턱을 낮춘 시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 시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 우리나라 문단계가 시를 더 고립시켰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린 왜 시를 읽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 그러기 전에 시인은 왜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자. 이 책의 저자 장석주는 이런 말을 한다. 이 오만한 영장류의 시대는 얼마나 지속될까? 생물학적 피폐화의 시대, 멸종의 시대는 금세기 안에 끝난다. 공생과 공존의 감각을 키우고, 그 지혜를 발휘하지 못한 채 일방적 독주를 하는 한 인류 문명은 종말을 맞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단단한 믿음에 구멍을 내고, 인류와 동물들, 문명과 자연 사이에 평화로운 공존과 균형을 찾아줄 중재자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시인이라고 월트 휘트먼의 말을 인용해 말한다(46p). 우리가 의사가 왜 필요한지, 교사는 왜 있어야 하는지, 상인과 정치가가 왜 있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하지만 작가 특별히 시인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는가? 모르는 사람은 시인을 그저 이상주의자고, 신선 같은 존재인 줄 알고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우린 시인에 대해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리와 아름다움의 주춧돌, 인간의 시간을 가로질러 넘어오는 광대함이자 인간 마음의 최대치고, 고뇌와 기쁨들을 보는 천 개의 눈을 가졌으며, 방랑자, 게으름뱅이, 판관이다. 비율과 형평을 맞추는 자들이고, 모래에서 세계를 보며, 찰라에서 영원을 보고, 언어, 징후, 신호, 상징에 민감한 사람이다. 또한 그들은 리듬의 직조이며, 노래의 적자며, 좋은 시인은 항상 생성과 소멸에 민감하고, 자기 세계의 한복판에서 산다는 점에서 농부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채고,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시인은 일상에 흔히 존재하는 사람 같지 않고,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방식이 일상적이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처럼 명징하고 묵시적인 존재가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시인이 시를 쓴다. 여기서 먼저 짚어봐야 하는 것은 시는 원래 그렇게 만만히 읽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낯설고 해독의 어려움에 부딪치며 뭔가에 가로막히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가 일상적으로 쓰는 생활 어법과 다른 어법으로 쓰기 때문이다. 위에서 난 시를 멀리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이 이유가 더 근본적이지 않을까? 시 보다 소설이 좋은 건, 소설은 논리와 합리적으로 말이 되게 풀어나가면 된다. 은유 보다 직유를 사용해 복잡하지가 않다. 가끔 내 마음도 내가 모를 때가 많은데 온갖 은유로 무장된 시에서 언제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음미한단 말인가? 그런 것은 내 취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시를 쓴다. 그들은 은유에서 시작해서 은유로 끝난다. 고양이를 밤의 야경꾼이라 쓰고, 비 온 뒤 길에 고인 물웅덩이를 길의 눈동자라고 한다. 확실히 멋진 은유다. 거울에서 타자인 자기를 찾아내는 것이 은유화라고 했고, 진정한 의미를 낳는 것이 은유라고 했다. 창조의 번뜩임이고, 언어의 가능태가 곧 은유다. 나쁜 은유, 해로운 은유는 없으며 오직 명석한 은유와 덜 명석한 은유만 있다고 했다. 그건 확실히 직유로 이루어진 소설 보다 낭만적이고 은밀하다.

 

시를 쓴다는 것은, 통음 난무하는 자들의 외침, 산모의 허공을 찢는 비명, 사물들의 속삭임, 편물 기계들이 내는 소음들, 새벽이나 황혼 같은 기후들이 내는 소리, 악마와 연인의 목소리, 얼음과 바람이 내는 소리들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이를 세계에 중계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인은 말을 모으는 자들이 아니다. 말을 채집하고 그것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말을 버려서 의미의 부재에 이르게 한다. 말의 바닥에 닿으려고 말을 지우고 빈자리를 만들고 그 빈자리에 시가 들어선다. 말의 제의로서의 시, 그 제의를 주제하는 집정관으로서의 시인. 좋은 시들은 가장 나쁜 세상에서 우리를 살아남으로 이끈다. 과연 멋지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시인가? 감각의 쇄신을 이루고, 세계의 쇄신을 의미의 살로 드러내는 것. 그것은 저를 둘러싼 모르는 세계라는 외부성에 의해서만 성립되고 의미를 품는다. 시인의 상상력은 그 세계와 부딪칠 때 동심원을 그리며 펼쳐진다. 그런 까닭에 좋은 시를 읽는 것은 세계의 확장이자 의미 영역의 확장이다.

 

그렇다면 나쁜 시는 무엇인가? 사실 보다 더 큰 진실을 담으려는 시, 큰 목소리로 외치는 시, 옳은 소리만 해 대는 시, 큰 진실, 큰 목소리, 넘치게 옳은 소리가 작은 소리, 여린 것들의 속삭임, 가냘픈 것들이 내는 소리들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쁜 시 또는 악시(惡詩). 또한 직유는 은유의 나쁜 친척이다. 오직 나쁜 시인들만 직유를 남발한다. 좋은 시인들은 이것과 저것은 같다고 하지 않고 이것은 저것이다라고 쓴단다. 좋은 시집은 빼어난 이미지들의 집이다! 좋은 시집들은 대개 좋은 이미지의 백과사전이다.

 

또한 그것은 시에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노르웨이 국민시인 올리브 하우게의 시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에서 밝힌 의미이기도 하다.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나의 갈증에 바다를 주지 마세요,

빛을 청할 때 하늘을 주지 마세요,

다만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를,

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 같이,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같이

 

그는 매일 시 한 편을 쓰고 싶다고 소박한 갈망을 표현했다. 시는 엄청난 영감이나 고매한 착상이 아니라 떠오른 생각, 일어난 일, 무언가 주의를 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또한 한 편의 시가 태어나는 데는 사소한 사건이 일어나는 찰나를 목격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것은 시는 그렇게 작은 진실만을 머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를 어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말자. 시는 늘 우리 가까이에서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고 있다. 모든 것이 명확하기만 하고 진실만을 추구하려 한다면 얼마나 피곤하고 삭막한가. 어떤 이는 말했다. 머리는 의식적이고 사회적이지만, 손은 욕망과 무의식에 가깝다. 시는 바로 머리를 뚫고 나오는 손가락 같은 것. 걸으면 벌어지고, 멈추면 닫히는 중국 치마 차파오 같은 거라고.

그렇구나. 시는 그렇게 앙큼하고 엉큼한 것이로구나. 이것을 모르고 감히 덤비려 했다니.

 

저자의 시와 시인에 대한 정의가 어찌 보면 사변적이긴 하다. 함민복 시인이 언젠가 자신의 시에서 내 시를 팔면 얼마의 돈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게 더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만 정의된다면 누가 시인을 할까? 그렇게 사회적인 의미로만 시인이 해석되어진다면 또 말하건대 세상은 피곤하고 삭막하다. 누군가는 세상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그렇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하지 않을까? 시인은 이 세상의 피곤과 삭막함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저자의 시와 시인에 대한 정의가 맞다.

 

저자는 시와 철학은 친척관계라고 했다. 시를 알려면 철학을 알아야 한다. 저자를 비롯해서 우리나라에 알만한 소설가들은 처음엔 시를 쓰다 소설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렇다고 시가 소설을 쓰기 위한 전단계로 오해하면 안 될 것이다. 시는 그 나름의 존재의 무게와 의미를 가지고 있고 평생 이 시의 감옥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장석주는 책을 알뜰하게 읽고 살뜰하게 글을 쓴다(이 책은 세 번째로 읽는 책이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문장노동자라고 했는데 그의 그런 구도자적 자세는 정말 본받고 싶다. 그런데 이 책은 읽기에 따라선 조금은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이만큼 빼어나고 진지하게 시를 인문학적으로 잘 정의할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시를 읽다 문득 시와 시인이 뭔지 알고 싶어지거든 이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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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5 14: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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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8-25 18:18   좋아요 0 | URL
그렇죠?^^

2017-08-29 15: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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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15: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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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16: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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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16: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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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16: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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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17: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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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9495473&isYeonhapFlash=Y&rc=N

 

생리대 문제가 언제부터 나타난 건데 이제야 들고 일어난단 말인가?

나는 생리가 시작된 이래 아직까지 이렇다할 부작용은 없는 편이긴 한데

예민한 사람은 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다. 

이걸 어떻게 지금까지 참고 있었을까?

제2의 가습기 사태가 될 수도 있다니 충격스럽다.

 

뭐 나같이 둔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될 건 아니고,

어쨌든 그 성분이 유해하다는 점에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가습기 사태에,

계란 파동에

생리대 사태까지

뭐 하나 믿을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구나.

대한민국은 불량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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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4 14: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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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8-24 15:1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그럴수록 사용자인 여자들이 발 빠르게
문제를 제기하고 대처하고, 시위하고 그랬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이제 목소리를 낸다는 게 넘 늦은 건 아닌가 싶어요.

유기농으로 바꾼다고 하는데
가득이나 울나라 생리대 값이 비싼 편인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래저래 여자가 봉인가 봅니다.
생리대도 여성복지 차원에서 확 내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럼 또 남자들 난리 피우겠죠?
화장지 사는데도 복지 혜택 받아야 하는 거냐?
그럼 면도기 값 내려라. 뭐 그러고 나오겠죠.
오래된 이야기지만 한때 이런 얘기 오고 갔었거든요.ㅉ

2017-09-06 14: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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