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 - 500년 전 루터는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남겼는가
박흥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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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500주년이 되는 해다.

때맞춰 올해는 그 어느 해 보다 종교개혁에 관한 책들이 많이 저술되어 나오는 것 같다. 이 책도 그런 책중의 하나다. 기독교야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 개혁주일로 지내고 있으니 저 500주년이란 말만 아니면 새삼 놀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말을 하고 보니 조금 이상하다. 사실 교회로선 매년 놀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 개혁 이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덤덤하고 아무런 감흥이 없고, 권태에 찌든 종교인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사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지적은 잘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는 늘 승자의 역사다. 그래서 교회에는 종교개혁이 승리한 혁명인 줄 안다. 그래야 종교개혁이 의미가 있는 것이 되니까. 하지만 저자는 과연 역사학자답게 성공하지 못한 종교개혁에 관해서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루터의 개혁의 시발이나 의지는 좋았지만 그의 혁명은 성공한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루터에 관해선 아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이 책 덕분에 새삼 주위를 환기시켜줬던 것도 사실이다.

 

종교개혁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 책에선 면벌부라고 하는 면죄부를 가톨릭교회가 발행하므로 잘못된 신학과 그로인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게 또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선 종교의 타락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역사가 존재하는 한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거라고, 그리고 종교라는 부분이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당시 가톨릭이 국교인 독일로서는 심각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국왕과 교황과의 갈등도 만만치 않았고.

 

책은 이렇게 면벌부 문제로 촉발된 루터의 종교개혁이 어떻게 번져 나갔으며 어떤 사상적 논쟁이 있었고, 나라를 변화시켰는가를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루터의 공과는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도 나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필연적이다 싶게 뭔가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루터 같은 개혁가가 나오길 기다리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당시 힘 있는 세력가들이 그를 도와주기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또 그만큼 부패가 심각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듯 무엇이든지 개혁이나 새로운 물결은 혼자로선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를 받혀주고 도와주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당시의 종교개혁은 종교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사회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무엇보다 인쇄술의 발전을 가져왔는데 이건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터의 만인대제사장설과 함께 성경이 일반인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려면 배포가 되어야 하는데 인쇄술의 발달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루터는 자신의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자신의 사상을 널리 알려야 했다. 그가 남긴 방대한 저술 또한 인쇄술 및 출판에 굉장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종교와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걸 보면 성공한 혁명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의로운 일을 하면 반드시 시기와 방해는 있을 터. 그의 혁명을 저지하려고 당대 가톨릭 사제들과 그의 반대파들은 얼마나 그를 핍박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루터는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사제의 신분으로 결혼까지 감행한다. 가톨릭으로선 이단이다 못해 파면감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왕의 개혁이라면 정말 여기까지는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행히도 루터의 결혼은 대체로 만족스러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할까? 무엇보다 그는 농민들과 완전히 화합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의 농민이란 대중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공하지 못한 대중운동이라는 것이다. 뭐 자신을 반대하는 가톨릭과 사상적 논쟁을 하고 혁명을 하느라 거기까지는 미처 챙기지 못했고, 게다가 그는 유대인들을 박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것은 확실히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그도 인간이고, 인간에겐 누구나 편견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지나친 자의적 해석이 되려나?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런 루터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것이다. 그는 과연 개혁에 성공했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 과연 그의 개혁은 의로운 것이었나? 그 개혁은 오늘도 유효한 것일까?

 

하나 확실한 건, 그는 미완의 개혁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한 개혁가는 아니다. 그리고 미완이란 말도 그다지 적확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는 개혁을 시작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 이후로 그를 추종했던 개혁가들이 계속해서 있어 왔다. 대표적으로 요한 칼뱅 있었고 역사상 그 말고도 개혁파 신학자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무엇보다 오늘 날의 교회가 루터를 성공한 종교개혁가로만 보는 것은 성공 신학적 측면이 강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교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둔하지 않다. 오늘 날의 목사나 신학자들도 루터가 개혁에 성공하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에 대해 더 연구해 볼 문제겠지만, 교회가 방점을 두는 건 그가 개혁을 했다는 것일 게다. 만일 그가 완벽한 개혁을 이루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린 어쩌면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성공한 루터를 우상으로 섬기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우린 역사나 사람을 보는 시각이 조금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모 아니면 도. 진보 아니면 보수. 악 아니면 선. 성공 아니면 실패. 이런 시각으로만 역사와 사람을 보면 어떤 우를 범하게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피상적 알고 있는 루터에서 좀 더 다각적인 시도는 좋았지만 깊이 있게 파고들지는 못했고, 종교개혁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은 깊이 있게 다뤄주진 못했다. 그냥 아쉬운 대로 개론서쯤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또 하나 드는 생각은, 21세기에 루터가 다시 세상에 온다면 개혁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 아마도 더 어렵지 않을까? 오늘날처럼 과학이 발달하고, 사상이 많고, 진보와 보수가 참예하게 갈라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세상에서 과연 루터의 목소리가 힘을 낼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분명 그는 세기에 한 번 나올 위인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위인은 시대에 맞게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21세기는 21세기에 맞는 개혁가가 나오지 않을까? 그게 반드시 루터가 아니어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개혁은 성공하는지에 관해서 까지는 몰라도 이 시대에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인간 부패의 역사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항상 있어 왔으니까. 누가 이 썩고 곪아터진 걸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런 의로운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박수쳐 주고, 그럴 마음이 없다면 적어도 소금 마는 뿌리지 마라. 그리고 제발 자신은 뒤짐만 쥐고 있으면서 진보니 보수하는 프레임 가지고 비판하지 마라. 세상이 썩어 있다는 건 그들이 더 잘 알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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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1-1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주제문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날씨가 점점 차가워지고 있어요. 감기 조심하시고, 황사도 조심하세요.^^
stella.K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17-11-12 18:05   좋아요 1 | URL
종교개혁 지금 생각하면 참 멋진 것 같습니다.
세계사에서 어떻게 이렇게 멋진 일이 있었나 감탄이 절로 나오죠.
역시 사람은 많이 알아야 혁명도 하는가 보다 싶습니다.ㅎ

정말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습니다.
추운 건 참을 수 있는데 황사와 미세먼지는 정말 죽갔습니다.ㅠ
서니님도 조심하세요.^^

transient-guest 2017-11-15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ristianity의 초기 대두 또한 정치적인 요인과 종교/사회적인 열망이 합쳐졌다고 봐야겠죠. 그런 의미로 최근 명성교회의 세습, 아니 대형교회들의 발호를 보면서, 종교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개혁이 가능하냐는 건데, 아직은 어렵다고 봅니다. 루터가 다시 오면, 아니 예수님이 다시 와도 대형교회는 바꾸기 어려울 것 같아요..-_-

stella.K 2017-11-15 15:55   좋아요 1 | URL
명성 교회는 저도 얼마 전에 듣고 놀랐어요.
김경집 교수가 책에서 그런 말을 하더군요.
목사들이 광야에서 외치는 예언자적 목회자가 되야하는데
제사장적 목회를 하고 있다고.
아무래도 제사장은 제도에 얽매일 수 밖에 없죠.
그런데 대형 교회 소형 교회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도
문제는 있다고 봐요.
다 하나님의 교횐데 말이죠.
그 자존감을 회복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transient-guest 2017-11-22 02:10   좋아요 0 | URL
사실 문제는 교회의 사이즈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것 같아요. 다만 대형교회가 상대적으로 더 사회에, 그리고 미디어에 노출이 되어 있고 그 여파도 크니까 그런 면도 있죠. 근데 세습/돈문제는 아무래도 그 이권이랄까, 쌓아놓은 것이 많은 대형교회의 주된 이슈 같긴 합니다. 재물가는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는데 이분들의 마음은 확실히 지상에 굳건히 뿌리박혀 있네요...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니..-_-: 그래도 명성교회 건을 보면 젊은 신도들을 중심으로 반대운동도 하고 그러는데, 효과가 없으니 교회나 담임목사의 문제가 심각한 곳은 신자들이 떠나는 수 밖에 없나 싶네요.

서니데이 2017-11-15 16: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낮에 햇볕이 좋아서 따뜻할 줄 알았는데, 날씨가 5도 밖에 되지 않고, 바람불어서 많이 춥습니다. 수능한파인 모양이예요. 이렇게 추워지면 감기도 빨리 유행할 것 같은 기분이고요.^^;
stella.K님, 따뜻한 오후,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2017-11-15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6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6 0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7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급적 책을 사지 않으려고 중고샵 조차도 나가지 않고 있다. 뭐 게으름의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책 팔러 한 번에 서너 권의 책을 추려 가지고 나가면, 싼 맛에 꼭 한 두 권의 책은 업어 온다. 중고책 사냥의 재미도 만만치 않으니 이 유혹을 물리칠 수 없는 것이다. 물리치긴 왜 물리쳐? 즐겨야지. 그럴 것이 아니라면 아예 책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무리 김영하 작가가,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 놓은 책 중에서 읽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래, 사 놓은 책 읽으려고 버텨보는 중이다.

 

그런데 이 생각에 반드시 시험을 거는 책이 등장한다. 이름하여 리커버 책. 

 

그동안 잘도 버텼다. 리커버로 나온 책이 몇 권 있었고, 지금도 리커버 책이 구매 의욕을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만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더라.  

 

당장 읽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역시 책은 반드시 읽으려고 사는 것은 아니다. 

 

안 살 수 없는 것이, 저자도 저자지만 역자가 몇년 전 작고한 신영복 선생이다. 그가 직접 그린 그림과 글씨도 한몫한다. 

 

내가 이 책을 언제 읽었더라...? 교회 청년부를 다니고 있을 때 친구 한 애가 아주 괜찮다며 내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빌려주겠단다. 거절하기가 뭐해 그냥 좀 읽다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친구는 나 말고도 다음 타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빨리 읽고 돌려 달란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독서에 있어 최대의 난제는 책을 빨리 못 읽는다는 것. 400페이지 넘는 책을 그렇게 빨리 읽을 수는 없을 것 같아 친구 말대로 그렇게 괜찮다면 좀 읽다 아예 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책이 나름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던 건, 보통의 1인칭 소설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책은 각각의 등장인물이 1인칭으로 자기 얘기를 한다. 그런 소설 기법이야 지금도 가끔씩 발견되긴 하지만, 그전엔 그런 기법은 처음 본다. 바로 그 친구는 그점을 주목하여 나에게 읽어 볼 것을 권했던 것이다. 

 

친구 말대로 나름 꽤 괜찮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엔 신영복 교수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냥 번역가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책을 돌려줄 때 친구가, 괜찮지? 괜찮았지? 하며 동의를 구하는 걸 난 뭐 때문인지 꽤 시크하게 별로 좋은 소릴 안하고 돌려줘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문체나 내용도 꽤 괜찮았는데. 하나 흠이 있다면 너무 장중하고 무겁달까? 더구나 중국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도 다 모르고 있는 판에 뭐 그리 남의 나라까지 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런 기법이 인상에 남아 나중에 한 번 사 봐야지 해 놓고 세월이 흘렀다. 

 

인연이란 게 꼭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시 볼 책도 언젠가 꼭 다시 보게 되어 있는가 보다. 이렇게 리커버로 나오니 다시 사 볼 생각도 드니 말이다. 실로 몇년만이냐? 리커버의 위력이 새삼 무시 못하겠다 싶다. 뭐 그런 점에서 알라딘에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하는 걸까?

 

솔직히 리커버에 대한 불신도 없지 않았다. 괜히 리커버한답시고 가격만 올려 받는 건 아닌가?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책 활자는 요즘에 비하면 약간 올드한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못 볼 건 아니고, 어차피 리커버니까 불만은 없다.

 

아, 그런데 이를 어쩐다. 어제 책을 신청할 때, 알라딘에서 하는 1천원 적립금 특별 퀴즈를 거쳐야 하는 건데 잊어버리고 그냥 신청을 했다. 건망증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니.

 

아, 글쎄, 며칠 전엔 엄마 케모포트 제거 수술 관계로 병원측과 통화를 했는데 집전화 번호를 묻길래 가르쳐준다는 것이 그만 먼저 집에서 살 때 번호가 생각나 그걸 대줬다는 것 아닌가? 그집 떠나온지가 이제 20년을 바라보는데 말이다. 전화 끊고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 그런 거야 뭐 그럴 수도 있다지만(그도 심각하긴 하다), 어떻게 1천원 적립금 특별 퀴즈를 까먹을 수가 있니?

 

그래서 허겁지겁 주문 취소를 하려고 했는데 알다시피 주문 취소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결국 그 시간을 초과한 관계로 결국 1천원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영영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

 

이런 거 선불로 말고 책 구입 후 나중에 서비스 받는 뭐 그런 거 좀 만들어 주면 안 되나? 원래 진짜 알라딘 램프의 지니는 뭐든지 주인이 원하는 건 다 이루어주던데...

 

그런데 말이다, 나의 기억에 문제는 또 하나가 더 있다. 이글을 쓰려고 이 책의 초판 기록일을 뒤졌다. 2005년이란다. 내가 이 책을 그 친구한테 소개 받은 건 90년 대 중반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설마...? 그럴리 없을텐데... 내가 아무리 정신이 없다고 내가 읽어 온 책을 헷갈리고 할 정도로 기억력이 썩은 건 아닌데.          

 

이럴 땐 누구라도 붙들고 하소연이라고 하고 싶다. 지니야, 내 기억력을 돌려 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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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9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11-09 17:55   좋아요 2 | URL
전 리커버 정말 끌리는 책 아니면 안 산다고 했는데
저 책에 무릎꿇고 말았어요.ㅠ

아, 정말 천원 적립금 못 받은 게 왤케 안타까울까요?ㅠㅠㅠ

페크pek0501 2017-11-09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의 ˝가급적 책을 사지 않으려고 ... ˝
- 저도 그렇습니다. 가지고 있는 책이나 잘 읽자, 하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사고 싶은 책의 유혹에 굴복하고 마는 때가 오곤 하죠.

천 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 안타까우신 님의 마음이, 이 글에 써 넣음으로써 가벼워지시길... ㅋ

stella.K 2017-11-09 18:12   좋아요 1 | URL
속상해 죽겠습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ㅠ
근데 어디서 2천원 적립금 당첨됐어요.
난 전혀 몰랐거든요.
그건 좋은데 순간 정신이...
이걸 두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거죠?ㅋㅋ

니르바나 2017-11-09 18: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기억력은 전혀 이상이 없습니다. 안심하세요.
니르바나는 다만 검색할 뿐입니다. ㅎㅎ
이 책의 초판이 1991년에 출판된 걸로 나오는데요.
그때도 신영복선생님의 번역으로 다섯수레에서 출판했는데
뭔 이유로 초판을 2005년이라고 했을까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지네요.^^

stella.K 2017-11-09 18:32   좋아요 0 | URL
오, 니르바나님!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고맙습니다.

초판이 1991년돈가요?
제가 잘못 봤나 봅니다. 그럼 그렇지. 하하.
니르바나님도 이 책 읽으셨죠?^^

2017-11-10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0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11-09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다시 나온거 보고 감회가 새로왔어요. 아마 우리 20대때 한바탕 베스트셀러 광풍을 몰고 왔던 책이었고 저도 누구에겐가 선물 받아 읽었는데, 누구에게 선물을 받았는지도 기억 안나고, 내용도 가물가물해요 ㅠㅠ

stella.K 2017-11-10 14:13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이거 그때 베스트셀러였어요.
그럼 h님도 이번에 리커버 사셨나요?
이거 알라딘에서 인기가 많은가 봐요.
천부 뽑았다는데 저는 금방 절판될 것 같아
서둘러 한 부 장만했어요.^^

희선 2017-11-11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읽어보라고 한 책이어서 더 기억에 남았나 보네요 저는 몇해 전에 우연히 이 책 봤던 것 같아요 보기는 했지만 어땠는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나마 읽었다는 건 기억해서 다행이지요 어떤 때는 책을 읽었다는 것도 잊어버려요 잊어버린 건 읽었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적립금 얼마 안 된다 해도 못 받고 책 사면 무척 아쉽죠 저도 그런 적 있어요 마음이 급하면 그런 일을 저지르고 마는 듯합니다 천천히 해도 문제 없는데...


희선

stella.K 2017-11-11 13:37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면 책은 잊어버리라고 읽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다면 전체적인 이미지나 내용이지
세세한 건 기억에 남나요?
전 이 책 문체가 젤 많이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어요. 그깐 천원 상관인데 이게 포기가 안 되더라구요.ㅎ

서니데이 2017-11-1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사고나면 적립금, 쿠폰 그런 것들 나중에 생각날 때 있어요. 금액과 상관없이 아쉬워요.^^;
이 책 알라딘에서만 리커버인데, 살지 고민되네요. ^^;



stella.K 2017-11-12 18:01   좋아요 1 | URL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ㅋ
그래서 잊어버릴까 봐 항상 염두해 두려고 하는데
그날은 정말 순간적이었어요.
알라딘에서 이런 사람들을 위해 후불 적립금 제도같은 거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요?ㅠ

갈등되죠. 그래도 전 잘 넘겼는데.
이책은 추억도 있고 워낙 유명하기도 해서 그냥 샀습니다.
저는 이제 적립금이 바닥이라
좋은 책 리커버로 나와도 못 살 것 같습니다.ㅠ

cyrus 2017-11-12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은 개정판이 나오면 구판 정보를 숨길 때가 있어요. 검색하는 책마다 달라요. 구판과 개정판 모두 공개된 책이 많은 편이에요.

stella.K 2017-11-13 13:19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야. 어디 좋은 데라도 다녀왔니?
그렇긴 한가 봐.
저 책 검색하면 옛날 구판은 안 뜨는 것 같더군.
워낙 유명한 책이라 리커버 금방 나갈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더라구.
 
어리석음의 미학 - 도스또예프스끼의 간질병과 예술혼
김진국 지음 / 시간여행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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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이건 영어식 발음인 줄로 알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도스또예프스끼라고 했는데 모르긴 해도 그게 러시아식 발음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영어식 발음으로 더 잘 알려있으니 그냥 편하게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가 간질병 환자라는 건 익히 잘 알려진 바다. 그리고 역사상 위대한 인물 몇몇이 같은 병을 앓기도 해 한때 천재병(?)으로도 불린 것으로 알고 있다.

 

저자는 신경과 전문의다. 그러니 간질병에 대해 오죽 잘 알고 있을까? 간질병이 어떤 병인지에 관해선 단편적으로 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책을 보니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우선 저자의 간질병에 관한 설명을 보자.

간질병 환자들이 발작을 일으킬 때, 구덩이에 빠져 피울음을 토해내는 듯한 짐승의 소리를 내면서, 희멀건 눈을 치켜뜬 채 온몸의 근육을 쥐어짜는 듯한 긴장성 발작. ... 그 다음 간대성 발작이 이어진다. 이 시기에 몸의 떨림이나 강직이 서서히 풀리면서 발작이 멎는다. 그 이후 환자는 몇 시간씩 깊은 잠에 빠지거나, 비몽사몽을 헤매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쉴 새 없이 지껄이기도 한다. (중략) 그런데 온몸을 뒤트는 고문과도 같은, 길고도 긴 고통의 시간도 지나고, 완전히 의식을 회복한 뒤에는 정작 자신의 몸에서 일어났던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33p)

 

간질병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면 사람들은 그의 치열한 사투를 혐오스럽게 지켜봤을 테니 본인은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병을 운명으로 알고 받아들였다. 놀라운 건 발작이 일어날 때 그처럼 육체적으로는 힘이 드는데 영적으로는 현실의 찬란한 순간이 즐거운 환희의 아침으로 들려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희망이 생생한 이슬방울처럼 영혼을 적시듯 하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글을 쓰는 소재와 기회로 삼은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전반에 걸쳐 간질병이 자주 나오는 것도 다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측두엽 간질의 전형처럼 보이는데 그것의 특이점은, 중독성 글쓰기와 성욕감퇴증, 과잉종교증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의 그처럼 많은 저술은 바로 이런 증세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기도 하다. 또한 성욕감퇴증에도 불구하고 도스토옙스키는 두 번째 부인에게 서만도 4명의 자녀를 얻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니 의학적 소견이란 건 정말 소견일 뿐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평생 여성을 혐오했다고 하는데 그게 성욕감퇴증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 것을 보면 의학적 소견이란 걸 간단하게 무시할 수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책의 첫 부분에서 간질병에 대해 이런 설명을 들으니 도스토옙스키가 일생 얼마나 피곤한 삶을 살았을지 깊은 한숨이 쉬어지면서도, 사람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꽃 피우는 존재라더니 과연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겠다 싶다. 무엇보다 간질병에 중독성 글쓰기가 있다니 살짝 부럽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나도 간질병을 원한다는 건 역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단지 내가 새롭게 깨닫는 것은 인간의 질병은 반드시 해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질병에도 신의 감추어진 섭리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간질병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유로지비 즉 바보 성자다. 이 유로지비는 자신의 안락을 위하지 않고 남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존재들이다. 이를테면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나, 우리나라엔 바리데기가, 그의 작품에선 <죄와 벌>에 나오는 소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병든 세상을 헤아리고, 용서와 베풂을 실천하는 성자로 거듭나며, 그의 간질병은 신께 받은 천형이 아니라 신의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수난과 고행으로 탈바꿈 시키며, 그를 19세기 근대의 길목에 들어선 유로지비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20세기를 넘어오면서 세계 4대 강국의 반열에 드는 러시아에서 이제 더 이상 유로지비를 찾기는 어려울 거라고 말한다. 그것은 가난했던 시절 잊을만하면 찾아 와서 온 동네를 활기 있게 해 주던 각설이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간질병을 통해서 현대 문명과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오늘날의 발달된 과학과 의료 체계만이 최선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무엇보다 21세기 현대 과학과 첨단 의료로 봤을 때 도스토옙스키는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없는 불구폐질자로 너무나 쉽게 낙인찍을 것이라고 했다. 즉 그가 그처럼 위대한 대문호가 될 수 없었을 거라는 것이다. 그것은 19세기니까 가능했을 거라고.

 

특별히 그의 주 무대가 러시아가 아니고 유럽이었다면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은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동안 광인과 비정상인을 감금하고 화형에 처하는 광기의 역사가 지배했던 시대였다. 또한 현대의 의료체계를 가장 먼저 도입해 고흐처럼 일찍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했던 유로지비들은 마녀 사냥의 먹잇감이 되거나 정신병원에 감금되었을 것이고. 그것을 도스토옙스키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의 작품에 그런 유럽을 조롱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이 부분을 읽는데 순간 아찔했다. 도대체 문명의 발달 특별히 현대의 의료 체계가 인간을 살리기보다 죽일 수도 있다는 걸 감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린 그것이 최선인 양 그것에 맡기는 걸 주저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만든 질병 분류에서 조금만 비껴나가도 환자 딱지 붙이기를 서슴지 않고, 그것이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구제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우울증으로 내몰고 그들의 자살을 방조해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아픔이나 질병의 고통을 견뎌내는 인간의 인내심을 고갈시켜버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간질은 뭐란 말인가? 도스토옙스키는 그것을 묵묵히 견디며 예술혼을 불태웠는데 그냥 아픔을 해결해 줘야할 환자로만 보았다면 우린 평생 도스토옙스키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아찔하지 않은가?

 

문득 요즘에도 그런 작가가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도스토옙스키와 같지는 않지만 한 세기 전 우리나라의 이상이 그랬다지. 그의 천재성은 처음부터 발현이 것이 아니다. 폐에 병이 들고 죽기까지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는 천재란 소릴 들을 만큼 심오한 작품을 쏟아냈다고 했다. 그만큼 인간의 고통은 때로 숭고할 수 있는데 그걸 현대 의학은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차단해버린다면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도스토옙스키가 평생을 걸쳐 주장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전통이다. 전통으로의 회기. 전통으로의 복고. 그는 어쩌면 그것을 위해 그처럼 많은 글들과 말을 쏟아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신경 뉴런 하나로 인간을 규명하려고 하는 오늘 날의 과학을 부정하려하지 않았다. 우주의 삼라만상과 무한 광대한 인간의 정신세계를 과학의 공식과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과학자들의 녹슨 경박한 물질주의의 상투를 잘라내 버리고 싶어 했다.

 

저자는 말한다. 문명의 빛이 퍼지면서 어리석은 인간들이 무릎을 꿇고 손 모아 머리를 조아리던 거룩한 존재들은 힘을 잃고, 그에 따라 믿음조차 시장에서 거래되는 산업으로 변질되었으며, 예술의 정신도 변패되어 미가 투자와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한 채 과학만 득세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고. 그리하여 과학과는 무관한 어리석은 사람들의 맑은 영혼이 빚어낸 고졸(古拙)의 아름다움도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나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나는 왜 이 세대를 의심하려 하지 않는가? 왜 비판하지하지 않는가? 그러면 그런가 보다 무관심, 무감각으로 일관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과학이 득세하니 종교에 대해, 신앙에 대해 나 스스로 입을 닫아버린 건 아닌지? 도스토옙스키의 신앙이 그저 그의 간질병의 증상중 하나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얼마나 그를 무시하고 무례를 범하는 것이 되는 것일까. 그리고 새삼 다시 한 번 글의 힘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또한 자신의 병을 내치지 않고 끌어안으며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켜 나갔던 도스토옙스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사실 처음 책이 다소 어렵고 산만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저자의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상당한 애정과 경의가 느껴졌고, 그러기 위해 선택한 텍스트를 미처 따라 갈 수 없었던 나의 일천한 지식이 부끄러워졌다. 결코 읽기엔 만만치 않았지만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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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2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11-03 14:2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사람은 뭔가의 결핍이 있어야 위대한 일을 해내죠.
늘 잘 나기만하고 아무 걱정이 없으면 발전이 없죠.
저는 이 책 읽기는 쉽지 않았지만 나름 유익했어요.^^

2017-11-04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6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8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11-07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해가 지는 시간이 되었어요. 날씨가 차가워지고, 해도 일찍 지고, 저녁이 빨리 찾아옵니다.
한시간 전과는 공기가 다른 느낌이예요.
stella.K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따뜻한 시간 보내세요.^^
 
뉴스가 위로가 되는 이상한 시대입니다 - 뉴스룸 뒤편에서 전하는 JTBC 작가의 보도 일기
임경빈 지음 / 부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제목이 좀 묘하다 싶다. 뉴스가 위로가 되는 이상한 시대라니?

뉴스는 그러면 안 되는 건가? 그게 언제부터라곤 정확히 모르겠는데 암튼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뉴스는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나는 내 주위에 일부러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뉴스가 희망을 전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안 좋은 소식, 이를테면 정치인들의 싸움과 비리. 그것은 경제인들도 마찬가지고, 온갖 사건과 사고만 전달해도 한 시간이 빠듯할 정도다. 그 소리가 단순히 시끄러워서가 아니다. 매일 그런 소리만 듣는다고 해 봐라. 가위 눌린다. 그래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스가 무슨 죄인가? 뉴스는 그저 있는 사실을 전달할 뿐인데. 문제는 그런 사실을 영산해 내는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문제 아닌가? 그런데 뉴스도 반성할 필요는 있다. 그것만이 보도 거리는 아니지 않는가. 좀 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것들도 찾아보면 많을 텐데 왜 그리도 우중충한 소식만 전하는 건지. 그게 또 어떻게 보면 뇌의 작용인지도 모르겠다. 나쁜 것, 부정적인 건 잘 잊히지 않는 것. 그래서 분명 좋은 뉴스도 전달했는데 그것을 잊는 것이다. 기자로선 각인될만한 걸 취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순환을 하는 것은 아닌지.

 

그랬던 뉴스가 언제부턴가 조금씩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생활밀착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뉴스 할 시간이면 TV 앞을 떠나 있거나 다른 채널로 돌렸던 것도 언제부턴가 오히려 그 시간이면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효과를 얻었다.

 

글쎄, 뉴스가 위로가 되는지 어쩌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유감스럽게도 난 저자가 팩트체크에서 일한다는 JTBC의 뉴스룸을 보지 않으니까. 그건 일부러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할 시간에 난 아직 TV를 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뉴스룸에 팩트체크가 만들어지고 나서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뉴스를 볼 맛이 난다고 칭찬을 듣곤 한단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세월 뉴스하면 지상파 3사가 독점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공영의 의무를 다해야할 지상파 방송사들이 정부의 하수인 노릇을 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해 왔다.

 

그것을 극적으로 잘 보여준 예가 세월호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었다. 이런 중요한 사안을 지상파 3사들은 늑장 보도를 하거나 아예 보도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에 비해 뉴스룸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보도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받았다. 바로 이 알 권리를 충족시켜 줬다는 점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생각을 못했다. 이런 뉴스 뒤에 작가들이 있다는 것을. 뉴스는 당연 기자들이 만든다고 생각했다. 자료 화면은 물론이고, 보도 멘트까지. 그런데 나 같은 경우 그 뒤에 숨은 작가가 있을 수 있다는 어렴풋이 알게 됐던 건 우연히 책 <탄핵, 헌법으로 체크하다>의 독자와의 만남에서다. 거기에 공저자들이 공교롭게도 그 유명한 뉴스룸 기자와 작가로 이루어진 제작진들이다. 그중 한 명이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하고.

 

무엇을 쓰는 작가든 작가는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자기가 드러나지 않는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 것은. 왜냐하면 작가는 문자로 말하고, 작품으로 말하는 존재들이니까. 그런 점에서 뉴스 보도 작가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뉴스 보도 작가들이 뭘 할까? 기껏해야 기자들이 취재해 온 것을 입에 맞게 다듬어 주고, 자막 다듬고 뭐 그런 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책을 보면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거의 기자 못지않게 현장을 누비고 뛰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뉴스 보도 작가는 거의 대부분 프리랜서로 일을 한다.

 

프리랜서. 멋진 말이긴 하다. 중세 시대 용병에서 나온 말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돈만 주면 대신 싸워주는 사람. 즉 다시 말해 일 해주는 사람.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놀고 싶으면 언제든지 노는 사람. 하지만 이것이 어느 나라, 어떤 집단에서 쓰이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의미와 대우가 달라질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빛 좋은 개살구고, 전문직이긴 하나 비정규직이란 카테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리랜서가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또 있다. 방송사들이 말이 좋아 외주 제작이지 말하자면 자기네들 손쉬운 방법으로 하청을 주는 것이다. 그게 훨씬 직접 제작하는 것 보다 비용이 싸게 먹히니까. 그리고 하청은 어떻게든 시스템이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 재하청을 준다. 거기에 끼어서 일하는 사람이 프리랜서이고 하청인의 다른 말인 셈이다. 계속 그러다 보면 비용 단가만을 생각할 뿐 그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뒷전인 것이다. 다 먹고 살자는 취지라는 걸 알지만 그렇게 하청만 돌리다 보면 우리나라는 하청 산업 구조를 면할 수가 없다. 물론 이것을 탈피해 보겠다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모색하고 있긴 하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는지.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프리랜서란 지위가 보장되지 않는 계약직이고, 비정규직의 곁가지라고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만큼 저평가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여타의 나라에선 비정규직일수록 페이가 쎄다고 하는데 말이다. 저자는 방송 작가도 계약직인 만큼 4대 보험이 안 되고 여러 가지 수당을 생각할 때 못해도 월 300은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웬만한 베테랑이 아니고선 그러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놀라운 건, 자신이 20년 전 초보 작가 때 받았던 임금을 여전히 받고 있는 곳도 많다고 한다. 그동안 물가상승률이 얼만데. 그나마 최근에 작가 유니온이 생겨서 점점 좋아지고 있기는 한단다.

 

사실 이렇게만 말하면 이 직업에 별로 희망이 생기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저자는 시사 보도 분야에서 일한지가 20년이다. 자신의 프리랜서로 일한 경험을 살려 자신의 지위를 어떻게 높여 갈 것인가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그러한 선배들이 있기에 후배들이 닦아놓은 길과 터 위에서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은 방송 작가로서의 애환, 방송 작가가 하는 일, 방송 작가의 비전과 전망 등을 나름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하지만 왠지 흥미롭기 보단 뭔가 모르게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이 분야에 대한 책은 나로선 처음 접하는 것이긴 한데 아직도 정착이 안 된 분야다 보니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한 책을 읽었는데, 어떤 것이 문제가 되면 그 분야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와 줘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갑질이 문제라면 그 사건을 보도하는 단편적인 뉴스에만 의존하지 말고, 갑질이 왜 문제인 건지, 갑질을 어떻게 고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전문적이고도 총체적으로 다룬 책들이 많이 나와 사회적 인식을 새롭게 하는 개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그처럼 방송 작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랬다고, 이렇게 뉴스룸이 인기고 그에 따라 방송 작가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려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들을 어찌 알겠는가? 하청 산업 구조가 문제고, 그에 따른 삶의 질적 저하가 문제라면 그것을 적극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잘 모른다. 자리는 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드는 거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 작가를 사회적으로 알리지 않으면 그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려면 이런 책들이 더 많이 나와 줘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만 기억하자.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건 하나다. 일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제발 그런 날이 나도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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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1-01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리랜서라는 단어가 용병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을 들으니, 창을 들고 이번 **에서 싸우는 걸로 하고 계약하는 군인이 생각났어요. 전에는 프리랜서라는 직업이 외국어라서 그런지 조금은 좋아보였는데,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잘 모르지만, 어쩐지 그 분야 전문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stella.K님, 저녁이 되니 바람이 없어도 공기가 차가워요.
저녁 맛있게 드시고,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stella.K 2017-11-01 18:53   좋아요 1 | URL
뭐 일반 비정규직 보단 다소 고급져 보이긴 하죠.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 보다 저평가 되어 있으니
비정규직과 나을 것이 없다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일하기 좋은 세상이 돼야
살맛도 날 텐데 그렇지가 못하니 걱정입니다.ㅠ

2017-11-01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11-02 14:01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면 외주 하청 문제 생각 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책에서 가짜 뉴스 감별법에 관해서도
언급하긴 했는데 방송국들 정말 반성 많이해야겠는데요?
이렇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떠들어 주지 않으면
우리 같은 사람은 잘 모른다구요.
알아도 내 문제가 아니니까 대충 뭉개고 넘어가구요.
아, 정말 구제불능입니다.ㄷㄷㄷ

페크pek0501 2017-11-02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어느 지방의 뉴스 앵커와 말을 나눈 적이 있었는데 원고를 다른 이가 써 주고 자기는 그것을 읽고 말하기만 하는 것이라고 해서 놀란 적이 있어요. 뉴스 앵커가 직접 원고를 써서 말하는 줄 알았거든요.
팟캐스트 빨간책방에선 이동진 진행자가 오프닝 멘트를 하고 나서 이거 잘 쓴 것 같다고 오프닝 멘트를 써 주는 작가를 대놓고 칭찬해서 놀랐죠. 그것마저 남이 써 주다니...

님의 글이 우리가 모르는, 무대 뒤의 진실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시네요.

stella.K 2017-11-02 14:05   좋아요 0 | URL
토크쇼는 작가가 따로 있다는 건 알고 있었죠.
근데 시사는 모르겠는데 뉴스는 오해하기 쉬운 것 같아요.

근데 이 책은 뭔가 의도는 좋은 것 같은데
내용면에선 뭔가 좀 아쉬운 느낌이 들더군요.
그림도 너무 많구요.
물론 덕분에 눈은 덜 피로하긴 했지만.ㅋ
 

 

어제 우연히 유튜브를 뒤지다가 <공범자들>이 있는 것을 보고 냉큼 보게 되었다.

이 필름은 알다시피 지난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와 그에 대한

저항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걸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엊그재까지만 해도 취재 현장을 함께 뛰고

방송사에서 한솥밥을 먹었을 사람들이 권력에 시녀 노릇을 하느라

남의 밥줄을 끊어놓고 나몰라라 한다. 

그러므로 혈압에 이상 있는 사람은 안 보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

 

이걸 보면서 지금 MBC와 KBS의 장기 파업에 대해 뭐라고 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든다.

모르면 특히 KBS 같은 경우 시민들의 시청료 받으면서 왜 방송 정상화 안하나,

우린 언제까지 재방송이나 봐야하는 거냐고 볼멘 소리를 할 수도 있을텐데,

안다면 그들의 파업에 같이 동참해 주진 못할망정 돌을 던져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다보면, 방송사 간부들이 그런 말을 한단다.

늬들 없어도 방송은 돌아간다고.

해직  기자들, 우리들 없으면 안 된다는 자존심 하나로 발로 뛰는 사람들에게

그 말은 거의 인격모독은 아닐까?

 

MBC와  KBS는 공영방송이지 국영방송이 아니다.

방송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있어야지 어떻게 이 나라 권력의

시녀노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참 알 수 없는 건 역시 사람의 마음이다.

이런 와중에도 오히려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지들이 잘못해 놓고 이제와 누구한테 뒤짚어

씌우냐며 좌빨이란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보낸 낙하산 사장들을 옹호하고 나선다.

 

이는 또 박근혜를 옹호하는 세력과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래. 나도 그러리만치 지난 정부가 깨끗하고 정직하게 국정을 잘 운영했더라면,

방송의 독립성을 오래 전부터 보장해 줬더라면 그들 편에 설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는가?

국정을 농단하고, 방송의 질을 저하시킨 그들이 전혀 책임질 의향이 없는데

내가 뭐 때문에 정부를 옹호하는 시민이 되길 자처하겠는가?

 

그래도 난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비난할 생각이 없다.

우리나라는 민주국가니까.

100%란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럼 그거야 말로 공산당 독재지.

 

보면서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이 지은 죄가 참 많구나.

어떻게 개인의 권력을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하고,

방송을 사유화 할 수 있을까?

이를 어찌할꼬, 한숨이 나온다.

이러고도 이 나라가 이렇게 건재할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랍기도 하다.

이 사실에 대해 자기 식의 해석을 할 사람도 있을까?

 

어쨌든 그래도 보면 좋겠다.

해직 기자들, 방송사 관계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는지 보면 좋겠다.

기자들을 가리켜 기레기들이라고 욕들 하지만,

그래도 방송의 독립성과 진실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무한 응원과 신뢰를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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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10-3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한 번 형식적 민주주의의 폐해
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현재 혹은 과거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은
후과를 현재 혹은 미래에 지불해야 하는
것이죠. 문득 유시민 선생의 후불제 민주
주의가 떠오르네요.

stella.K 2017-10-30 15:18   좋아요 0 | URL
앗, 후불제 민주주의!
그렇군요!

저는 이거 보면서 지금 KBS 진행자들
다 옛날 사람들이 나와서 하잖아요.
그게 시위의 의미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하잖아요.
노조는 노조대로 운동하고. 협업체제로 말입니다.
근데 어쩌면 노조 운동 반대해서 늬들 아니어도
방송진행한다는 의민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서니데이 2017-10-30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 너무 춥습니다.
stella.K님, 따뜻하게 입으시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17-10-31 13:10   좋아요 1 | URL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이 오려나 봅니다.
금욜날 비오고 기온이 급격히 내려간다면서요?
겨울에 먹는 따뜻한 음식들 생각하고 먹으며
또 한 겨울 나야겠죠.
서니님도 따뜻하게 보내시길...!^^

서니데이 2017-10-31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금요일에 다시 비가 오면 더 추워지겠네요.
계절이 갑자기 한 달쯤 빨리 오려나요. 왜 이렇게 급하게 추위가 오는지 모르겠어요.
오늘이 꼭 11월 말 같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stella.K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오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