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들이 다 나온다.

임수정은 물론이고, 한예리, 정은채, 정유미까지.

 

영화를 왜 보느냐고 묻는다면 그때 그때 답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어떤 사람은 스토리가 궁금해서, 어떤 사람은 감독이, 영상이 좋아서 등등) 이 영화만 놓고 보자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와서 본다고 하겠다.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이 영화는 특별히 감독이 그것을 배우에게  한껏 양보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만큼 배우의 감정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 정말 저예산이다. 동선도 없고, 고작 커피나 홍차를 마시면서 상대와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어쩌면 이런 영화에 익숙치 않은 사람은 뭥미하며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대화에 따른 배우의 감정이다.

첫번째 나오는 한 쌍은 남녀는 사랑이 식어져 헤어졌다 다시 만난 사이다. 남자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고, 속물스럽다. 여자는 그동안 잘 나가는 배우가 되어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났을 때 반갑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역시 긴장감은 없고, 다소 권태롭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옛정은 남아 있어 앞으로 그럭저럭 만남을 이어갈 것처럼 보인다. 

 

두번째로 테이블을 마주 앉은 사람은 막 관계를 시작하려고 하는 남녀의 떨림과 어색함이 잘 드러나있다. 특별히 둘은 어느 싯점 좋아질뻔 했는데 돌연 남자가 해외 여행을 가버리는 바람에 잠시 소원해졌다 갑자기 다시 만난 사이이기도 하다. 여자는 그동안 겪었을 감정을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먹는다. 그때의 여자의 복잡한 심경을 감독은 잘도 포착한다.

 

세번째는 한 쌍의 남녀가 아니라 결혼을 앞둔 젊은 여자와 가짜 모녀 연기를 해야하는 어느 중년 여자와의 대화다. 처음엔 역할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오고 가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왠지 의뢰인에게서 진짜 딸같은 묘한 감정을 발산한다.

 

마지막 네번째는, 결혼을 앞둔 옛 애인에게서 결혼 후에도 밀회를 갖자는 앙큼한 제안을 거절하기까지의 대화 과정을 포착했다. 

 

대화로만 이루어져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 오고 가는 인간의 감정은 훨씬 다양하고 풍부할 수 있음을 감독의 카메라는 잘 보여주고 있다. 보고나면 네 편의 옴니버스 단편 소설을 보는 것 같고, 감독에게 왠지모를 무한 신뢰감이 느껴진다. 뭔가 색다른 형식의 영화를 보고 싶다면 감히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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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12-23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일 영화 보러 갑니다. 큰애가 표 사 놨는데 제목을 듣고도 까먹었어요. ㅋ

그리고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박수 짝짝짝!!!

stella.K 2017-12-24 09:28   좋아요 1 | URL
ㅎㅎ 우리 나이가 그래요.
듣고 돌아서면 가물가물해 진다니까요.ㅋㅋㅋ
무슨 영환지 모르지만 재밌게 보고 오세요.

서재의 달인은 언니가 올해도 안 되셔서 아쉬워요.ㅠ
올해도 언니가 계셔서 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구요, 내년에도 변함없이 좋은 글 부탁드려요.^^

프레이야 2017-12-25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좋지요. 성탄과 연말 따스하게 보내세요 스텔라 님 ^^

stella.K 2017-12-25 11:26   좋아요 1 | URL
아, 이 영화 보셨군요.
저는 이 영화보면서 사람이 가만히 앉아 얘기만 할 뿐인데
이렇게도 많은 마음들과 생각들이 표현되고
그 파장들이 흐르고 있었다는 게 새삼 놀랍더군요.
참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만들었어요.

프레이야님도 남은 연말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위대한 서문
버크.베카리아.니체 외 27인 지음, 장정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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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교적 어릴 때부터 독서를 시작했지만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서문은 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에 정독 스타일인데다 책을 오래 읽다보니 본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러니 안 읽어도 되는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럴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이 서문을 뛰어넘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책에 관한 정보를 어디선가 얻고 이미 읽기로 마음먹었는데 굳이 서문을 읽어야 할까 싶었다. 즉 서문은 그 책이 어떤 책인지 모를 때, 내가 읽어도 되는 책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읽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는데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서문은 대충이라도 읽는 편이다. 왜냐하면 저자의 생각을 정확히 알려면 안 읽는 것 보단 읽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왜 저자가 이 책을 써야만 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마침 이 책을 엮은 저자도 이런 말을 하고 있다.

...... 수영장에서 아무 준비 없이 곧바로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이 있듯이, 서문을 생략하고 곧장 본문을 읽는 독자도 있다. 그러나 그런 독법은 비유하자면, 아무런 목표도 정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과 같다. 어쩌면 그러한 여행이 더 극적일 수도 있으나, 그러한 독서는 독자를 오독으로 인도할 수 있다(11p)

 

물론 독자들은 자신이 선택해서 읽은 책에 관해 각자의 느낌과 생각을 자유로이 가질 필요가 있다. 하다못해 오독 조차도 온전히 독자의 것이라며 이미 저자의 손을 떠난 저자의 책에 더 이상 왈가왈부 못하도록 한다. 더구나 요즘 비판적 책읽기는 얼마나 그 효용가치를 극대화 시키고 있는가? 마치 독자가 최고인 양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디까지 독자의 비위나 맞추라는 것인가? 회의가 들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건 저자의 눈높이와 독자의 눈높이를 같이 하므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일단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은 있다는데, 일명 저술의 변은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 유용한 게 바로 이 서문인 것이다.

 

물론 실제로 대부분의 독자는 저자 위에 군림하려하지 않는다. 저자의 책이 무엇이든 간에 한 번 읽기로 했다면 뭐 하나라도 건지려들지 처음부터 책을 왜 이따위로 썼느냐, 이것도 책이냐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비판적 독자가 있기 전에 성실한 독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 같은 서문 불성실 일독자는 거의 없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어떤 책은 굳이 저자 서문을 읽거나 안 읽거나 크게 차이를 못 느끼는 책도 있다. 그걸 경우는 독자가 서문을 이해 못한 다기 보다 저자기 서문의 중요성을 못 느껴서는 아닐까? 그러므로 서문의 1차 책임은 저자에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건 서문은 일종의 본문의 맛보기?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로 치면 예고편 같은 거. 똑똑한 저자라면 서문에서 있는 거 없는 거 다 보여주고 독자의 혼을 쏙 빼놓는 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세 번째로 실린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 로테로다뤼스, 일명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세의 성직자겸 철학자 에라스무스의 <격언집>은 독자의 혼을 쑥 빼놓기에 충분하다. 얼마나 긴 서문으로 되어있느냐면 이 책에 실린 쪽수로만도 거의 50쪽에 달한다. 그 정도라면 서문만으로도 얇은 소책자나 팸플릿을 만들어도 좋을 듯하다. 무엇보다 그것을 읽는 동안 여간 중세의 작품을 사랑하거나 저자를 존경하지 않으면 아, 읽지 말아야겠구나로 마음을 굳힐 것만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저자 재량이지만 말이다.

 

서문을 쓸 뻔한 적이 있다. 결국 서문을 못 쓰고 저자후기로 썼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쓸데없는 오지랖은 아니었나 싶다. 그냥 쑥스러웠다. 그렇다고 독자들이 나의 쑥스러움을 알아줄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당당하지 못했을까. 물론 그렇다고 저자후기가 그 책의 격을 떨어지게 하거나 반대로 꼭 겸손함의 미덕을 보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 저자의 재량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저자의 입장에서 저자후기가 서문 보다는 좀 더 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문은, 내 책은 이런 책이야 하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바로 본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서문에서 길어져 버리면 앞서 말한 에라스무스의 <격언집>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비해 저자후기는 일마치고 수다 떠는 기분으로 쓸 수 있으니 훨씬 편하다. 하지만 일장일단은 있을 것이다. 서문을 피했으니 뭔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내지는 지루하다고 하는 독자도 없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면 그런 독자는 서문을 썼다고 한 들 더 나은 느낌을 가졌을 거라는 보장은 못할 것 같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런데 문득 저자들은 서문을 정작 언제 쓸까 궁금해졌다. 그렇게 순서대로 서문을 먼저 쓰고 본문을 쓰고 그럴까? 그렇게 쓰다보면 서문에서 밝힌 책의 의도와 조금은 빗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 서문을 빈칸으로 남겨두고 본문부터 들어가 차츰 정리된 생각들을 서문으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찌됐던 서문은 글을 쓰는 저자에게 꼭 필요한 것임엔 틀림없다.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 먼저 시놉시스를 쓰고 쓰는 것처럼. 안 그러면 배가 산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이 책을 엮은 장정일은 말한다. 서문의 역사는 곧 책의 역사라고. 부실한 서문치고 뛰어난 명저는 없다고. 그래서 저자들의 고민은 더 깊어지는지도 모르겠다. 독자로 하여금 질리지 않고, 건너뛰게도 만들지 않으며, 책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 무사히 본문으로 들어가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서문을 써야하는 작가의 숙명이기도 하다.

 

사실 엮자 장정일도 그런 얘기를 하지만 이런 시도는 그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많은 작가나 또는 작가지망생들이 글쓰기 연습으로 또는 취미삼아 모아두기도 한다. 그러므로 난 독자의 입장에서 굳이 이 책을 사 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장정일 작가가 자신의 책에 들이는 공력에 비하면 이건 좀 거져 먹기 식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이만큼 엮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난 적어도 그가 왜 이것을 위대한 서문으로 뽑았는지 그 특유의 리뷰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각 책에 대한 저자와 책에 대한 간략한 설명만 있고 서문만 쓰여 있다. 서문은 영화로 치면 조연 같은 것인데 덕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 호강한다 싶기도 하지만 독자가 볼 땐 너무 성의가 없다는 느낌도 든다. 책 읽기 좋아하는 우리의 장 선생님 이런 책도 읽으셨겠군. 확인하는 정도는 아니었을까?

 

그래도 이 책에 별 세 개를 주는 건 그야말로 위대한 서문에 대한 예일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무슨 책을 읽든 서문을 반드시 챙겨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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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2-19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문이 너무 길면 독서 몰입도가 떨어져요. 10~15쪽이 읽기 편한 적당한 분량이라고 생각해요. ^^

stella.K 2017-12-19 13:1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야.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에라스무스 옹 너무 심했어. 그지?ㅋ

서니데이 2017-12-1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에는 서문과 후기, 그리고 목차를 안 읽을 때도 많았는데, 그래도 요즘은 한 번은 읽어보게 되네요. 어쩐지 서문과 후기는 본문을 다 쓰고 나서 쓰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 같아서요.^^
stella.K님, 오늘 날씨가 추워서 길이 얼었어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17-12-19 15:10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 책 후기에 주저리주저리 썼잖않요.
서니님 안 읽으셨구나! ㅎㅎ
나름 심혈을 기울여 쓴 거랍니다.
나중에 꼭 읽어주세요.^^

서니님도 미 투!!

서니데이 2017-12-19 15:15   좋아요 1 | URL
읽었답니다. 그 책의 후기.^^
그치만 갑자기 생각하려니 기억이 안 나요.;;;

stella.K 2017-12-19 15:19   좋아요 1 | URL
기억 안하셔도 되요.ㅋㅋㅋ

페크pek0501 2017-12-20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문과 후기, 목차 모두 꼼꼼히 봅니다. 뭔가 중요한 걸 내가 놓칠까 봐서요.
다 읽었다고 할 수 있어야 독서 노트에 기입하는 습관이 있어요.ㅋ

장그르니에, <섬>에 쓴 알베르 카뮈의 서문이 빼어난 문장이라고 해서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문장이, 아직도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가 부럽다는 문장입니다.
너무 좋은 책을 읽고 나면 아직 안 읽은 독자가 부러워지는 경험, 저도 있습니다.

stella.K 2017-12-20 15:34   좋아요 0 | URL
와, 카뮈가 그런 서문을 썼단 말입니까?
저 그르니에 아직 안 읽었어요.ㅠㅋㅋ

역시 언니는...!!!

프레이야 2017-12-2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문과 후기에 저자의 의도와 진심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아 읽는 편이에요 저는. 서재의 달인 추카해요. 저는 몇 년 째 빠지고 있어요. 예전에 한창 몰두해서 소통하던 날들 생각나요. 그때의 그분들은 다 어디에.

stella.K 2017-12-25 11:29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분들은 다 어디로 가셨을까요...?
모든 건 다 흘러가는 거죠.
어느 때가 되면 프레이야님도 저도 흘러갈지 몰라요.
그래도 또 다시 만날 분은 다시 만나죠. 우리처럼.ㅎ
자주 뵈요.^^
 

지난 금요일 책 팔러 장마당에 다녀왔다.

꼭 그날 그곳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귀찮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요즘들어 잠자리를 따뜻하게 하고 자서 그런지 밤에 잠을 잘 자고 일어나는 편인데 그런 날은 하루종일 피곤하지도 않고 컨디션도 제법 좋은 편이다. 그런데 하필 그날은 전날 이상하게 잠을 좀 설쳤다. 그래도 굳이 장마당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 건, 귀찮은 생각이야 늘 드는 생각이고, 그나마 추웠던 날씨속에 반짝 기온이 영상으로 오른다고 해서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몸이 안 좋을 땐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더구나 이런 추운 계절은. 최대한 몸을 움크리고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가지고 나간 책은 다 필긴 팔았는데 장마당 두 곳을 다 둘러보아도 딱히 정말로 사고 싶은 책이 골라지지 않았다. 물론 사 두면 좋을 책들이야 많지. 하지만 늘 얘기하지만 내 방은 책으로 포화 상태라 정말 이건 꼭 사야 돼 하는 책이 안니면 절제하는 중이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역시 그 책을 살 걸 그랬다 싶은 책이 있었다. 

 

 

 

 

 

 

 

 

 

 

 

 

 

 

다 내가 한번쯤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내가 대체로 역사에 좀 약하긴 한데 그래도 역사 소설은 읽어 줄만하지 않은가? 김탁환의 소설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더구나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은 역사 소설도 부족해 추리 형식까지 담고 있다. 평점도 높은 편이고 리뷰 반응도 좋다. 

 

아직 김형경의 소설을 못 읽어 봤다. 여기저기서 김형경의 작품을 칭찬하는 사람이 많고, 어느 학교 내지는 교육 기관에선 그녀의 소설을 교재로도 사용하는가 본데 말이다. 그런데  <세월>은 하필 1권 밖에 없었다. 두 권 다 있었으면 샀을지도 모른다.

 

책을 고르다 화장실을 가기도 했는데,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들어갈 땐 갔다와서 좀 다 보다 가겠다고 했는데 나오고 보니 다시 서점 안으로 들어 가기가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그날따라 다리도  뻣뻣하고. 얼른 들어가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난 거의 인사불성이 되도록 잠에 골아 떨어졌는데 알고 봤더니 그게 감기 시초였다. 난 해마다 요맘 때 감기를 앓곤 하는데 심한 건 아니지만 올해도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 걸리려면 알 걸릴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역시 나아가 들면 면역력이 떨어지긴 떨어지는가 보다.. 

 

나는 감기가 어떻게 내 몸을 덥치는지 안다. 작년 같은 경우는 다용도실 문을 여는데 바람이 나를 훅하고 덥쳤다. 그런 후 감기에 걸렸고, 이번엔 무리한 외출을 감행했다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조심한다고 한건데. 이렇게 나는 감기가 어떤 경로로 오는가를 기억하려고 하는 건, 그걸 알아야 예방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독감은 주사로 예방한다지만 감기는 예방약이 따로 없다. 조심하는 것 밖엔. 하긴 그 두 경로는 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를 배면에 깔고 있긴 하다.

 

아무튼 덕분에 난 책을 팔기만 하고 사지는 못하고 들어왔는데, 처음엔 안 사고 들어왔다고 나름 속으로 쾌재를 불렀더랬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후회가 남는다. 다음에 가서도 이 책들을 다시 본다면 그땐 인연인 줄 알고 꼭 데리고 돌아오겠다. 그러나 없다면 이때도 아닌 것을 그때라고 인연이었을까 하며 못 산 후회를 훌훌 털어버려야지. 그러므로 서점에 가고도 책을 안 사거나 덜 살 수 있는 방법은 컨디션이 안 좋은 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팔아야하는 서점의 입장에선 그건 좋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날 처음 깨달은 건데, 책을 팔야하는 서점의 입장에선 화장실은 가급적 가까운데 두라는 것. 그점에 있어선 알라딘이 한 수 위였다. 그곳은 화장실로 통하는 문이 따로 있었는데 출입문을 통해 나가려면 다시 서점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구조다. 엘리베이터도 서점안에 있고. 그런데 비해 예스24는 인테리어는 좋긴하지만 엘리베이터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화장실을 가려면 한층을 더 내려가 극장에 딸린 곳으로 가야한다. 그러니 다시 들어가기가 귀찮은 것이다. 대신 알라딘은 화장실이 낡고 깨끗하지가 못하다.

 

그날 두 곳이 다 좋았던 건, 책을 받아줬던 직원이었다. 물론 그들은 대체로 다 친절하다. 하지만 유독 그날 내 책을 받아줬던 이름모를 직원은 친근감이 느껴지게 했다. 얼굴은 그리 잘 생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생김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지.

 

예스24도 만만치 않았다. 친근감은 비교적 떨어지긴 했지만 대신 좀 매력적이었다. 내가 가져간 <해저2만리>를 꼼꼼히 살피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던지 넋을 잃을 뻔했다. 물론 난 포커페이스를 했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진지함이 느껴지기도 했고.

 

저 책이 생물 가격은 꽤 나가는데 팔면 정말 X값에 가깝다. 그래도 파는 게 날 것 같아 팔아버렸다. 특별히 이달은 20%를 더 얹혀 준다고 해서. 그런데 막상 팔았더니 너무 낮은 가격이라,

"20% 더(쳐 준다고 해서)......"

그랬더니 이 직원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말한다. 눈이 먼저 말하고 입으로 얘기했던가...?

"네. 그 가격으로."

더 이상 할 말도 없었지만 그 태도의 진지함에서 이미 나를 압도했다. 잘 해야 20대 중후반 정도 됐을 것 같은데. 그들에게도 특유의 진지함이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고나 할까? 하긴 내가 요즘 병이 있긴 하다.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예쁜지. 보고만 있어도 좋다.어떤 땐 가슴이 두근두근 하다. ㅋㅋ 아무튼 그날은 대체로 괜찮은 날이었다. 나의 감기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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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7-12-17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는 초반에 잘 잡으셔야 해요. 언능 회복하시길요.

stella.K 2018-06-30 11:14   좋아요 0 | URL
감기는 그저 많이 쉬어주는 게 최고더라구요.
많이 쉬어서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17-12-17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매일같이 추워요. 감기 빨리 나으세요.^^

stella.K 2017-12-18 13:0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나갔다 들어왔는데
정말 춥더라구요.
그런데 밤에 눈이 올 줄은 몰랐는데 다행히도 지금은
그다지 춥진 않아요. 밤부터는 추워진다더군요.
서니님도 조심하세요.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7-12-17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안 사는 방법이 감기 걸리는 거라면 저는 책을 사고 감기에 안 걸릴래요.ㅋ
김형경의 사람풍경, 좋게 읽었어요. 심리에세이.
심리학 공부를 많이 한 듯 느껴졌지요.

stella.K 2017-12-18 13:14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과연 언니의 입담은 알아줘야겠군요.
그냥 그런 방법도 있더라는 거죠.ㅋㅋ

김형경 작가 심리 공부를 많이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몇년 전 지하철을 탔는데 한무리의 여사님들이
거 작가의 소설 중 가장 긴 이름의 소설 (뭐더라...새들은 숲에 가서 운단가...? 암튼) 그거 읽고 리포트 내는 뭐 그런 얘기를 주고 받더군요.
그러고 보니 제 친구 한 애도 상담학 공부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책 교재로 썼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소설은 여성학에서도 많이 다루지 않을까 싶네요.^^

2017-12-17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12-18 13:15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전 감기 걸렸다 하면 모든 걸 작파하고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죠.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17-12-18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알라딘에 책을 주문하면 중고서점 픽업 배송 서비스를 이용해요. 편의점 배송 서비스도 이용하긴 한데, 아예 택배 서비스를 안 하는 편의점이 있어서 조금 불편해요. 퇴근하고 난 뒤에 서점에 가서 주문 상품을 받아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 와서도 서점에 있는 책 몇 권을 더 사요.. 서점에 가도고 책을 안 사는 날은 절대로 없어요. ^^;;

stella.K 2017-12-18 13:19   좋아요 0 | URL
아, 그런 거 있는 것 같긴하더라.
그런데 그걸 이용하리만치 내가 책을 많이 사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아쉬웠어.

낚시꾼 고기 잡는 손맛이 있다잖아.
책도 앉아서 인터넷으로 사는 것도 편리해 좋긴 하지만
그런 중고샵에서 직접 사 보는 맛도 남다르긴 하지.

나는 안 사는 날 있다. 할렐루야지.ㅎㅎ
 
이상 시집 - 오감도와 날개 그리고 권태 윤동주가 사랑한 시인
이상 지음 / 스타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였을까? 시를 잊고 살았다. 꽤 오래된 것 같다.

앞으로도 시를 잊지 않고 살겠다고 그 누구한테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약속할 수가 없다. 나란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인간이니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세 시인이 있다. 백석과 이상과 윤동주.

왜 그들을 가슴속에서 잊지 못해하는 것일까? 그들 이전에도 시인은 있었을 것이다. 그들 이후에도 시인은 있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들 세 명의 트로이카를 잊지 못하고 머리를 조아리길 주저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이 단명했다는 것과 고독을 숙명처럼 안고 그것을 노래했기 때문은 아닐까? 백석은 몰라도 이상과 윤동주는 그랬다.

 

이상의 시를 언제 한 번 읽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을 기억한들 뭣하겠는가? 너무 난해해 단 한 줄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것을.

 

하긴 남의 시를 이해하려 한다는 건 기실 언어도단인지도 모른다. 이상의 시들은 여간해서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나도 그런 작가의 글은 독자로서 읽어줄 수 없노라고 작파했을 것이다. 지금도 누구라도 겉멋 든 작가가 있으면 누구기에 독자에게 수작질이냐? 독자를 무엇으로 보느냐? 결국 독자로서 할 수 있는 복수라는 건 그 작가의 작품을 읽어주지 않는 것이 고작이다. 이상의 시절에도 그랬을까?

 

지금이야 칭송을 받지만 한 자도 읽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글에 초야에 묻힌 독자는 침을 뱉었을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그 시대의 문맹률을 생각한다면 이상은 더 고독했을지도 모른다. 누구 하나 공감 해줄 사람 없이 아픈 폐를 부여잡고 그냥 자기 멋대로 글을 쓰지 않았을까?

 

또 모를 일이다. 문맹률이 낮았으니 진짜 시를 읽을 줄 아는 사람만이 이상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가 글을 쓰면 당대의 문단과 문학잡지가 들썩했다. 독자는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앞에서는 욕을 할지 몰라도 결국 작가에게 무릎 꿇고 마는 존재. 다는 아닐지언정 누군가는 그 앞에 무릎 꿇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이상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말았다. 특히 그의 소설 <날개>. 시는 너무 어려웠지만 이 교묘한 소설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 소설을 다시 읽다니! 처음 읽었을 때는 20대 중반 무렵이었던 것 같다. 도무지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마치 뽕이라도 한 대 맞고 쓴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 서야 어떻게 현실에 발을 내리길 한사코 거부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쓸 수 있단 말인가. 다시 읽은 지금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는 왜 아내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가? 왜 저항하지 않고, 화 내지 않으며,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지 않는가? 그래서 주인공이고,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무 평범해지는 것 아닌가? 필시 이 작품의 작중화자 는 이상 자신이었을 것 같다. 그가 한때 기생과 동거를 했다지 않은가? 그때를 회상하며 에피소드를 만들어 쓰지 않았을까? 그러리만큼 문체와 묘사의 생경함과 생생함이란...

 

지금도 의문인건, 그리도 똑똑했던 그가 왜 한낱 기생과 동거를 했느냐는 거다. 그리도 나긋나긋했을 금홍이 좋았더란 말인가? 아니면 자신이 얼마 못 살 거라는 걸 알고 누구한테라도 자신을 던져버릴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예술가의 치기 같은 거였을까? 금홍은 어떤 여자였을까? 비록 몸은 팔아도 그 누구에게도 마음 주지 않는 콧대 높은 기생이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이상을 만나고 사랑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 뻔한 스토리 아닌가? 그런데 이 소설을 보면 왠지 금홍은 흔하디흔한 작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녀가 폐병쟁이 이상을 만난 건 행운인 동시에 불행이었을 것이다. 이상은 건강했다면 금홍을 사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당대 최고의 시인과 살았다면 훗날 뭐 하나라도 남지 않을까?

 

이 작품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건 아내를 연구했다는 것과 종잇장만 하게 그의 방에 들어선 햇빛이다. 왜 아내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고 하지 않고 연구했다고 했을까? 종잇장만 하게 자신의 방을 비춘 햇빛은 아픈 에게 희망 보다는 가망 없는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 쓸쓸하다. 차라리 아픈 사람에게 외로움이나 불안 같은 건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뭔지도 모르는 삶을 하릴없는 연구나 하며, 남들은 뻔히 아는 것을 자신은 모르며 삶을 추적하다 어느 날 날개가 돋아나 이 세상에서 날아가 버리면 그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이상은 다음 생에선 새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다음 생이 있다면 난 절대로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새로 태어나면 좋겠다고 몇 번을 생각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는. 죽을 때가되면 스스로 행방불명이 돼서 자기만 아는 곳에서 생을 마치는. 그러기 위해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문체 자체로만은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희망적인가.

현실은 언제나 작품속의 처럼 모호하고,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다. 그런 세상을 날아가 보는 것.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보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문학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학이나 화학처럼 뭐하나 딱 떨어지는 것이 없으며, 이것 같으면 저것 같고 저것 같으면 이것인 것 같은 그 모호함. 알 수 없음. 그 알 수 없음의 자유를 유영하는 뭐 그런 어떤 것.

 

문학이 희망을 말한다는 건 거짓인지도 모른다. 문학은 거짓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어쨌든 살라고, 살아 보라고 말하는 뭔가의 알 수 없는 코드로 된 텍스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생겨 먹은 문학을 사랑하고, 그렇게 생겨 먹은 작가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독한 이상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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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12-14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감도, 날개, 권태. 다 한 번은 읽었을 것들이네요. 이 밖에도 많이 실렸겠지요.
권태를 읽으며 신선하게 느꼈던 게 생각나네요.

새로 태어나고 싶다니요. 저는 사람으로 그것도 여자로 태어나고 싶은데... ㅋ

stella.K 2017-12-14 18:54   좋아요 0 | URL
ㅎㅎ또 여자로요?
언니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언니를 형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세요. 네?ㅋㅋㅋㅋㅋㅋㅋ

hnine 2017-12-14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동주는 예전부터 좋아하던 시인이었지만 이상과 백석은 최근 들어 좋아하게 된 두 사람이랍니다. 이상의 날개를 다시 읽고 왜 그를 천재라고 하는지 이제서야 와닿게 되었어요. 백석의 시집은 최근에 구입해서 읽어보고 있는데 심지어 혼자 소리내어 낭독하여 스마트폰에 녹음까지 해보는, 안하던 짓까지 하게 만든 시인이지요 ^^
문학이 희망을 말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회의적이어요. 수학이나 화학처럼 딱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운 유영을 가능케 한다는 (이 말씀 멋있습니다!) 말씀엔 공감!

stella.K 2017-12-14 19:22   좋아요 0 | URL
와, 백석에 푹 빠지셨군요.
그리도 좋으셨습니까? 저도 얼른 읽어야겠는데요.ㅋㅋ

고맙습니다. 공감해주셔서!^^

승주나무 2017-12-15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니 유정 생각이 나네요. 유정과 이상이 절친이었다고 하는데, 하루는 유정이 너무 힘들어서 이상한테 같이 죽자고 했다고 하네요. 그날 서로 끌어안고 서러움에 펑펑 울었다는 일화가. 시는 백석, 소설은 김유정인데 이상은 둘 사이를 가른 것 같아요~

stella.K 2017-12-15 14:12   좋아요 0 | URL
오, 그런 일화가 있었구나.
알려줘서 고맙다.

근데 드디어 따끈따끈한 너의 책이 나왔나 봐.
대문 사진 너 옆에 계신 분 어머니 맞지?
암튼 수고했고 대박나라! 홧팅!!^^

cyrus 2017-12-15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김윤식 교수의 《이상 연구》를 샀어요. 워낙 귀한 절판본인데다가 중고서점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상 연구서라 안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오랜만에 이상 전집을 읽어보려고 해요. ^^

stella.K 2017-12-16 17:59   좋아요 0 | URL
와우, 대박! 그런 책이 있었구나.
나도 어제 중고샵에 갔었는데. 그런 건 안 보이더군.
감기만 살짝 들려서 왔어.ㅠ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 -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성교육
페기 오렌스타인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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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왜 미국의 10대 아이들이 그토록 오럴 섹스에 집착하는가를 추적한다.

한마디로 그들은 오럴 섹스를 섹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섹스도 단계가 있을 것이다. 좋으면 손잡고, 손잡으면 키스하고 싶고, 키스하면 섹스도 하고 싶을 것이다. 바로 이 키스와 섹스 사이에 오럴 섹스가 위치하는 것이다. 뭐 섹스는 아니지만 (적극적인) 애무쯤 될 것이다.

 

사실 미국 같이 성이 개방되고 진보적인 나라에서도 10대들의 성은 문제인가 보다. 그것을 그들도 모르는 바는 아닌지라 진지한 성행위는 부담스러운 것이다. 진지한 성행위를 할 경우 그 후에 책임져야할지도 모르는, 즉 콘돔이 찢어지거나 원치 않은 임신 등에서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그럴 때 오럴 섹스는 좋은 대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내 보수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10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즉 보수적인 신앙을 가졌으니 성에 대해서도 얼마나 보수적일까? 거의 금욕적일 것이다. 그들 사이에선 꽤 오래 전부터 순결 서약이라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지금도 그것은 유효해 보인다. 말 그대로 결혼할 때까지 섹스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당연 비기독교 진영에선 코웃음을 사겠지만 오히려 그것을 역으로 뛰어 넘으리만큼 힘 있는 운동이 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조차도 오럴 섹스만큼은 예외로 두고 있어 순결을 지키는 것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러한 채로 그들의 부모조차 자신의 아이들을 순결 서약에 동참시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 이 책이 페미니즘을 표방 하니만큼 이런 만연된 사고에 문제점은 없는가를 저자는 짚어낸다. 즉 오럴 섹스는 서로가 서로에게 해 줄 수도 있지만 많은 부분 여자가 남자에게 더 많이 해 주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상당 부분 친밀감을 위해서란다.

 

보통은 16세 이전에 오럴 섹스 경험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자연스런 현상이라기 보단 뭔가의 강박에 의한 것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그 나이까지 그런 것도 안 해 봤냐며 어린 아이 취급 받을까봐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하는 것이다.

 

사실 미국의 10대들이 이렇게 오럴 섹스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건 빌 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의 섹스 스캔들 때문이기도 한데, 그 문제가 붉어졌을 때 클린턴 대통령은 구강 섹스 밖에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 후 과연 오럴 섹스가 섹스냐 아니냐로 열띤 토론도 있었다고 하니,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대략난감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섹스에 갖는 양가감정은 생각 보다 엄청났다. 여자 아이들은 성에 눈뜰 무렵 왁싱을 한다고 한다. 왜 그런가 했더니 남자 아이들이 털 많은 여자를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토할 것 같다면서. 그렇게 한껏 오럴 섹스를 즐기면서 뒤에 가서 걸레 같은 년이라며 욕을 하고. 뭐 미성숙의 소치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오럴 섹스는 오럴 섹스대로 하고 있으니 모순 아닌가? 게다가 여자만이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건 확실히 불평등해 보인다. 사실 이 체모라는 것도 있을 만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없을 경우 건강에 해롭다는 건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이것을 한다. 물론 요즘엔 남자도 왁싱을 한다고 하는데 여자만큼은 많이 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털은 남자다움의 상징으로 보기도 다음 때문에 해도 소극적이다. 이것 역시 평등은 아니다. (사실 이것은 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동양권에서는 여성이 체모가 너무 없어도 오히려 안 좋게 보는 시각도 있다)

 

항문 섹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건 여자에겐 고통이 수반 되는데 (나는 이것만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섹스가 됐든 오르가슴을 느낄 수 없다면 고통이 따르긴 할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에도 반영되기도 하는데, 포르노는 말할 것도 없고 섹스 장면이 나오는 거의 모든 영화는 확실히 남성 편향이 많다.

 

이건 또 태어날 때부터 깊이 뿌리박힌 남근 사상과도 연관이 깊은데, 남자 아이는 버젓이 남근을 드러내지만 여아는 성기를 감춘다. 그러므로 성교육과 매스컴이 이 드러난 문제만이라도 바로 잡아준다면 여성 문제의 대부분이 해결되지 않을까?

 

나는 특별히 동성애에 주목하는데, 그것은 내가 동성애를 옹호하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왜 동성애에 빠지는가에 대해선 알고 싶었다. 그런데 그 단서가 될 만한 이야기가 이 책에 나온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 믿을만한 조사에 따르면, 여학생들은 성관계 파트너의 육체적 쾌락을 자신의 만족에 대한 잣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만약 상대가 만족했다면 저도 성적으로 만족해요라는 말을 한다. 그에 비해 남학생들은 반대였다. 자신의 오르가슴을 척도로 사용한다. (한편 파트너의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여성들의 성향은 상대의 성별과 큰 관계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성보다는 동성 성관계에서 오르가슴을 느낄 가능성이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121p).

 

나는 여기서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예전에 동성애의 비율이 여성 보다 남성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섹스를 더 능동적이니까.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여자 동성애자들의 비율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이 이유와 관련이 많을 것이다. 이성과의 섹스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소외된 결과다. 그런데 비해 동성은 아무래도 더 여유롭고 편하게 느껴지니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한 가정의 고통으로 남기도 한다. 부모는 내 아이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이해하거나 용납하지 못한다. 그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포기를 했을 뿐이다. 더구나 미국에선 이미 동성애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되기도 했으니 무슨 수로 이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물론 진보적인 페미니즘이라면 동성애는 옹호되어야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 보단 저자가 주장하는 건 섹스에 있어서 남녀의 조화와 평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아이들이 섹스 자체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자신이 왜 섹스를 하는가를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한 섹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호기심 또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성급함 때문에 뭣도 모르고 섹스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반대급부로 보수적 기독교 단체에서는 그렇게 순결 서약도 하는 것인데 어느 쪽이든 크게 의미는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성급히 섹스를 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자위를 해 보라고 권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10대들이 자기 몸에 대해 너무 무지한 상태에서 (오럴) 섹스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만 할뿐 진짜 성행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위는 미국이나 동양권인 우리나라나 그렇게 환영 받거나 적어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 같다. 미국은 워낙에 성 개방의 나라니 그만큼 성적인 허세도 많아 그건 뭔가 덜떨어진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금욕적인 것도 뒤섞여 더더욱 의미 없는 것으로 취급되기도 하고. 그러나 저자는 자위야 말로 자신이 어떨 때 오르가슴을 느끼는지 실험해 볼 수 있는 유용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순결 서약을 결혼할 때까지 지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냐. 반문한다. 그렇다. 우리는 종종 비본질적인 것 때문에 본질적인 것을 간과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파생된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지면상 여기에 일일이 옮길 수는 없을 것 같다. (궁금하면 읽어 보시든지)

 

이렇게 여성은 성에 대해 주체적인 생각을 갖지 못하고, 그런데 비해 남자는 너무나 주도적이니 강간이 끝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자신이 강간이나 성희롱을 당했는지를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주로 술 취한 상태에서 모르는 사람보단 아는 사람에게서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그럴 때 우리는 대체로 어떤 반응을 취하는 가다. 여자들에게 술 마시지 마라. 술 취한 남자를 피하라고만 하지 남자에게 술 마시지 말라고 하지는 않는다. 술로 인한 피해가 어떤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얼마 전부터 미국에서는 허리우드 유명 여배우를 중심으로 <미 투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즉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성폭력 피해자임을 말하는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게 묵인되고 방관되어 왔는지 알 수가 없다. 그 허리우드 여배우들에 의해 호명되어진 수컷들은 적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이런 운동이 시작됐다는 것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고 보면 미국이란 나라도 성 개방만을 외쳤지 그것으로 인해 파생된 문제들에 대해선 방관하거나 미온적이었나 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성 개방이었을까?

 

우리나라는 또 어떤가? 직장 내 성폭력이 그렇게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인사상의 불이익이 있을까봐 누구 하나 나서서 대신 말해 주는 사람이 없으며, 스스로가 문제 해결을 하려고 법에 호소를 해봐야 진술 과정에서부터 불이익이 되고 직장 내에서도 왕따를 당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성교육과 성폭력에 관한 법체계는 어떻게 달라져야할까? 이 책이 과연 미국의 예라고만 볼 것인가? 성을 개방했더니 거기서 파생된 문제들이 많아 금욕주의 성교육을 실시해 봤지만 성과가 없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네덜란드의 성교육을 주목한다.

네덜란드 정부는 22세 모든 여성이 부모의 동의 없이도 무료로 골반 검사, 피임, 낙태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중략) 또한 네덜란드에서는 친밀한 신체 접촉을 할 때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자위와 오럴 섹스, 동성애, 오르가슴을 공개적인 토론 주제로 삼았다. (중략) 네덜란드 정부는 성교육 커리큘럼에 상호작용기술을 추가하여 어떻게 하면 기분 좋은지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하는법과 분명하게 경계선을 긋는 법을 가르쳤다. 그 결과 2005년에는 네덜란드 청소년 다섯 명중 네 명이 첫 번째 성경험은 자신이 한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즐거웠다고 답하게 되었다.(351~352p)

 

어떤 면에선 다소 파격적이긴 하지만 이건 확실히 우리나라도 주목해 봐야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청소년이나 우리나라나 아직도 성교육은 영화가 해준다고 생각한다. 30년 전부터 있어 온 얘기다. 우스갯소리겠지만 이건 또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사고이기도 하다. 성교육을 왜 영화가 하는가? 학교가 해야지. 이건 우리나라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다. 학교에서 바로 가르쳐야 여성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부디 우리나라도 자각되길 바란다.

 

책이 워낙에 사례 중심이어서 읽기에 다소 벅찬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 실태에 관해선 그 전파속도가 다소 늦다 뿐이지 우리가 미국과 다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혐과 여혐이 나뉘어서 서로 싸우고 있다. 그들 싸움에 끼어들어 봤자 크게 얻을 소득은 없다. 성 교육을 바로 세우면 많은 부분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이렇게 싸우는 것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없기 때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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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12-1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므흣 - 진지 - 공감...^^

stella.K 2017-12-12 11:58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희선 2017-12-12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교육도 하려면 이것저것 많이 생각해야겠네요 학교에서는 그런 건 별로 마음 쓰지 않죠 말하기 어려워서 그렇겠습니다 그런 것도 전문으로 하는 선생님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한다면 보건 선생님이 해야 할까요


희선

stella.K 2017-12-12 12:01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우리나라 성교육이 어느 정돈지 모르겠더라구요.
옛날 보다 많이 나아졌는지...? 나아졌다고 해도 꾸준한 학습과
관리가 필요할 것 같은데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ㅠ

2017-12-12 0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12-12 12:08   좋아요 1 | URL
저도 이책 읽으면서 미국에서의 혼전순결 서약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 많이 다르겠구나. 좀 충격이었지요.
오럴 섹스도 그렇고.
그런데 이런 생각이 한국에 곧 퍼질거란 아니 어쩌면
시작됐겠구나를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걱정이 되더군요.
특히 한국은 남자들이 콘돔 사용을 아직도 기피한다더군요.
그럼 외국 여자인 경우 한국 남자들은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도
안전한 섹스를 할 수 있는 기술이 따로 있나? 뭐 그런 생각을 한다더군요.
외국 여자나 우리나라 여자들이나 성의식이 조금 더 철저해야 할텐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강나루 2017-12-12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충격 깊은 생각이 밀려오네요

stella.K 2017-12-12 13:31   좋아요 0 | URL
처음엔 저도 충격이었는데 가면 갈수록 깝깝하더군요.
미국이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는...?!
포르노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큼 의식있는 성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해야할 텐데 구성애 여사가 많이 그립더군요.
옛날 같이 방송에도 나오고 그러지...

강나루 2017-12-12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 성교육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네요

stella.K 2017-12-12 13:33   좋아요 1 | URL
ㅎㅎ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같이 고민해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