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강남역 교보문고에 갔다.

사실 어제 아는 후배가 혼자 사는지라 생각나서 명절에 먹었던 빈대떡을 전달해주려고 저녁무렵 만났다. 그런데 밥을 먹는데 작은 언쟁이 있었다.

 

사실 나도 좋은 성격마는 아닐테지만, 그 후배도 직업이 교사인데다 음악 전공이라 조금은 피곤한 성격이다. 그동안은 안 부딪히려고 둥글둥글 농담 따먹기나 하며 잘도 지내왔다. 그러다 어제 잠시 미스테이크가 있었던 것.

 

구구하게 설명은 않겠지만 걔는 이 타임쯤 뭔가를 풀고 가자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좀 넘어 갔으면 좋겠는거고. 그 친구는 워낙에 자아가 강하고 한마디로 오지랖이 넓어 어느 순간 보면 내가 분명 선배임에도 꼭 학생 대하듯 한다. 그래도 그걸 타내지 않고 대충 뭉개며 갔던 건데. 한마디로 말하면 그 친구의 분석적 사고와 나의 전지적 사고가 충돌했다고나 할까?ㅋ

 

암튼 그런 일이 없었으면 바로 밥 먹고 차를 마시러 갔을텐데 뭔가의 하프타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 마침 밥을 먹었던 곳이 교보문고와 가까운 곳이라 그곳에서 잠시 기분을 풀고 가자는 것이다. 뭐 그도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아, 정말 이곳을 얼마만에 와 보는지 모르겠다. 책을 산다면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거나 중고샵을 이용할뿐 이런 오프라인 서점을 나온다는 건 거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 책 저 책을 만져보고 있는데 마침 한 서가에서 <알쓸신잡 2>에 나왔던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란 책이 눈에 띄었다. 물론 오래 전부터 한 번쯤 읽고 싶기는 하나 역시 난 살 생각은 없었다.

 

난 아무 생각없이 이 책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내 귓가에 속삭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 책 재미있어요." 짬짝 놀라 누군가 돌아보려고 했는데 어느 인상 좋은 젊은 여자가 씩웃으며 나를 스쳐지나 간다. 순간 그전까지 침체된 기분이 뭔가 구원 받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나도 좀 놀랐다. 모르는 여자의 속삭이는 그 한마디가 이렇게 기분을 좋게 만드는 줄은.

 

그렇다면 나는 그런 공중이 이용하는 서점에서 그 여자처럼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책을 낯선 사람이 보고 있을 때 다가가 속삭일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스토커라고 오해나 받겠지.하지만 그 사람이 어제의 나처럼 그런 기분이었다면 또 나 같은 기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그 책 좋은 책이라고 한마디 하고 지나갔다고 해서 놀라거나 화낼 필요는 없을 것이고, 내가 좀 그랬다고 해서 상대 역시 나쁘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 여자 인상이 너무 좋아서 한 번쯤 더 보고 싶기는 했지만 워낙에 넓고 사람이 많으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인상 좋은 여자가 지나가며 재밌다고 했으니 한 권쯤 살만도 했을 텐데 결국 끝까지 사지 않았다. 나도 독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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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8-02-23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어요.
저도 재미나게 읽었어요^^

저는 도서관에서 이런일을 종종 겪었어요.좀 작은 도서관이었기도 했습니다만 어떤 책을 빌리는데 사서분이나 책을 재미나게 읽은 사람인 것 같은 사람은 친분이 없어도 서슴없이 ‘이 책 재미있어요‘ 조언해 주는 분들이 있었어요.
읽어 보면 반은 맞고,반은 틀리긴 했습니다만...조언해 준 사람이 재밌어 한 부분이 어디였을까?찾아보는게 좀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stella.K 2018-02-24 10:55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 보면 그 여자분도 사서는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건 맞는 것 같아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ㅋ
어쨌든 그분 인상이 너무 좋아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 그런 계속되는 일상에서 그렇게 누군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툭 한 번 건드려주고 가면 그것도 조그만 활력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더라구요.^^

syo 2018-02-24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 교사님들이 보면 오해하기 쉬운 문장이 들어있네요 ㅎㅎ 오래 만나고 있는 제 여친도 교사인데다 음악전공이지만, 조금도 피곤한 성격이 아니랍니다^-^

아무리 인상 좋고 성격 좋은 사람에다, 정말로 좋은 책이라고 해도, 아무 사람 귀에다 대고 ˝이 책 재미있어요˝ 이러고 다니지는 않을 것 같아요. stella.K 님이 만만치 않게 인상이 좋은 분이셔서 그럴 수 있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그나저나 유현준 선생님 의문의 1패로군요 ㅋㅋㅋ

stella.K 2018-02-24 11:41   좋아요 0 | URL
ㅎㅎ오랜만이어요.
그럴 수도 있지요. 오해할 수도.
일종의 그 친구만의 캐릭터 일수도 있는데
음악이 수학적 사고를 요한다고 하잖아요.
수학이 또한 분석적 사고를 요하고.
그 친구가 그런 분석을 잘하죠. 본인이 그렇게 얘기를 했고.
그런 분석을 잘하는 사람이 수용력이 약하잖아요.
그래서 어떤 땐 제가 그 친구를 대하기가 힘들 때가 있어요.
게다가 항상 나한테는 힘들어 어째 하면서 늘 파이팅이 넘치거든요.
syo님이 여자 친구분과 맞는 건 아마도 코드가 맞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syo님 전에 얼핏 들으니까 이과 계통 전공하셨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음악이 감성적이기도 하지만 하는 입장에선 이성적 사고를 요하니까
항상 글을 감성과 이성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쓰는
님과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ㅋ

제가 가끔 그런 식의 스토킹을 어렸을 때부터 당하긴 했어요.
귀엽다고 넋놓고 있다 볼을 꼬집히거나 커서도 어떤 후배 녀석은 갑자기
불에 뽀뽀를 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거 요즘엔 다 성추행일 수도
있다는 거 아시죠?ㅋㅋ

syo님은 유현준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군요.
전 그냥 괜찮던데...^^

syo 2018-02-24 11:42   좋아요 0 | URL
제 글을 보고 계신 줄도 몰랐는데, 좋은 평까지.
사람 몸둘 바 모르게 왜 그러셨어요. ㅎㅎㅎㅎ

그나저나, 저도 유현준 선생님 참 좋아합니다 ㅎㅎㅎㅎ
1패는 stella.K님이 안겨주신 거죠. 결국 안사셨으니까요 ㅋㅋㅋㅋ


stella.K 2018-02-24 12:0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 건가요? 그럼 완전 잘못 알고 있었네요.
제가 이렇습니다.ㅠ
옛날 같으면 샀을텐데 알라딘 적립금이 있으니
현금 쓰기가 싫었던 거죠.ㅋㅋ

저야말로 미안하네요.
가끔 봤으면 봤다고 좋아요도 슬쩍 누르고 가고 그럴 걸.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syo님 제가 글을 올려도
안 읽으시는 것 같아 그만...ㅋ
앞으로 종종 흔적 남길게요.
syo님도 불초소생을 위해 가끔 좋아요 한방을...!^^

서니데이 2018-02-24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분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인상을 남기셨나봅니다.
어쩌면 그 책을 보고 계셔서 반가운 마음이 드셨을지도요.
stella.K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18-02-24 19:12   좋아요 1 | URL
아마도 후자였을 것 같아요.
근데 어느 틈에 저를 봤을까요?
전 그런 줄도 몰랐는데. 후후

서니님도 즐건 주말!!!^^

북프리쿠키 2018-02-24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면 뿌듯하죠ㅎ
저도 그 여자분처럼 한번씩 그런 충동 느낀답니다.~주말 잘 보내세요!

stella.K 2018-02-24 20:0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사실은 저도 그래요.
제가 보기 보단 소심한 성격이라 차마 말을 못하는 거지.ㅋㅋ

쿠키님도 즐건 주말이요!^^

페크pek0501 2018-03-01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알라딘에서 자주 봅니다. 그래서 신간인 줄 알았어요.

stella.K 2018-03-01 18:47   좋아요 0 | URL
나온 지 좀 된 걸로 알고 있어요.
혹시 알쓸신잡 2 보셨나요?
책 내용이 많이 언급됐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약간 기대감이 떨어졌어요.
그거 나름 열심히 봤거든요.
물론 저자가 좋은 사람 같아서 봐도 상관은 없겠지만.ㅋㅋ

의정부짱짱맨 2018-03-0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안 샀다는 게 반전이네요ㅋㅋㅋㅋ

stella.K 2018-03-03 18:35   좋아요 0 | URL
그렇죠?ㅋㅋ
 

이름만대면 알만한 유명 외식업체에서 일하는 둘째 조카가

이번 설 명절에 외가에 못 올 것 같다고 했었다. 

그러다 극적으로 타협이 되서 어제 언니네 가족들과 합류해

외가인 우리집에 왔다.

 

어려서부터 외할머니가 해 주는 음식은 무엇이든 좋아했던 조카들이기에

좀 늦은 점심상을 차려주니 세놈이 손가락을 쪽쪽 빨며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겨우 배 두들겨가며 쉴려고 하는 찰라 일하는 곳에서 전화가 왔다.

점장인지 메니저인지가 불러내는 것이다.

내용인즉 갑자기 몸이 안 좋아 일을 못하겠다며

대신 나와서 일을 마무리 해 달라는 것이다. 

 

와, 쉬는데 이런 전화 받으면 정말 죽을 맛이다.

그나마 휴일을 허락 받을 때도 고집을 피웠던 것도 아니다.

쉬어도 되겠냐고 마음을 비우고 물어보고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마음이었는데 

자기가 직속 상관이란 이유만으로 자기 멋대로 남의 휴식을 훼방놓는 것이다.

 

그렇다고 진짜 아픈 것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조카 말에 의하면 이런 적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란다.

지난 1월 말에 발령나서 조카와 인연을 맺었는데

벌써 이번이 세 번째란다.    

왜 아프면 꼭 남이 쉴 때 아프냔 말이다.

 

하긴 어디를 가든 그런 인간 꼭 있다.

남 뭐할 때 꼭 초치는 인간.

그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치고 올라왔을지도 모른다.

그걸 안다면 그런 경우없는 일은 하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매번 이런 식이라면 정말로 도움을 받아야 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하다면 

어쩔 것인가?

또 그 정도면 근무태만 아닌가?

 

그러자 바로 옆에 있던 큰 조카는 더 황당한 일도 말을 하는데

지면상 옮기지는 않겠다.

한마디로 부하직원은 노예인 것이다.

인격도 없고 쉴 필요도 없는.

 

이렇게 쉴 때 쉬지 못하고 쉬는 것 조차도 상사의 눈치를 봐야한다면

이건 법으로라도 규제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사생활 침해에 관한 법령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역지사지라고 했는데 이런 것조차 서로를 배려하지 못해

법을 끄집어 내야한다면 그도 문제 아닌가?

 

지금도 녀석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오늘 정말 행복했는데, 오늘 정말 행복했는데..."

이 말을 몇번을 반복하고 안 떨어지는 발을 떼며 돌아갔는지 모른다.

 

왜 안 그렇겠는가? 모처럼 쉬는 날에 외할머니가 차려주는 음식을 먹고,

본가에 있었더라면 매일 보고 놀아줬을 반려견 예삐도 오랜만에 보았으니 행복했겠지.

행복이 뭐 크고 거창할 필요 있냐고 말들은 하면서

이런 하찮은 작은 행복조차 온전히 누릴 수 없다는 게

불쌍하고 측은하다.

 

물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쓸쓸한 어떤 청춘에겐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다.

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일하고 쉴 때 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면 되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도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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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02-19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조그만 지위로 갑질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니 참 서글프네요ㅜ.ㅜ

stella.K 2018-02-19 18:12   좋아요 0 | URL
의외로 많더군요. 근무시간 외에 일 시키는 거
규제한다고 한 것 같은데우리나라는 권고사항 가지고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ㅠ

hnine 2018-02-19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 울분이!
직장에서 상관이면 뭐든, 아무때나 다 시켜도 된다고 착각하는군요.

stella.K 2018-02-19 18:16   좋아요 0 | URL
저의 큰 조카는 서점이 바로 집 앞인데
굳이 먼데 있는 조카를 불러다 심부름시키고
뺑이 돌리기까지 하면서 미안한 것도 고마운 것도
없고 오히려 운전할 때 슬리퍼 신지 말라고 충고까지 하더랍니다.
조카가 발에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거든요.
정말 욕 나오겠더군요.

2018-02-19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2-19 18:15   좋아요 0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요. 씁쓸하네요.ㅠ
과부 사정 과부가 안 다는 말은 옛말 같습니다.
성경에도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잖습니까?
아, 서글퍼라.ㅠㅠ

cyrus 2018-02-20 0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얄미운 직장동료는 자신의 일을 대신 해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지 않아요.

stella.K 2018-02-20 13:38   좋아요 0 | URL
맞아. 그럴 거야. 그래서 조카한테 그 앞에서 강한 척
하지 말라고 했어. 그렇지 않아도 약한 척 연기를 얼마나 잘
하는지 모른다고 해서 너도 똑같이 그 앞에서 그러라고 했지.
제깐엔 나름 대처한다고는 하는데 조카도 되바라진 편은 아니라
한동안 고생 좀 하겠구나 싶더군.

페크pek0501 2018-02-21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새로이 밝혀지고 있는 성추행 사건도 같은 맥락이에요. 갑의 위치에서 을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는 증거죠. 을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걸 왜 모를까요?

stella.K 2018-02-21 18:5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 문제는 더 많이 시끄러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알마나 참고 억압되어 왔는지
갑이 또는 남성들이 깨우쳐야 한다고 봅니다!!

꿈꾸는섬 2018-02-2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과 사의 구분이 모호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에요.ㅜㅜ
휴식보장 당연해야하는 거잖아요.

stella.K 2018-02-23 13:3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법적인 규제라도 있어야할 것 같고,
나중에 근무 평점에서 벌점 받도록 하는 그런 제도라도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상대가 아프다고 하니 당장 땜빵은 해야겠고
공사를 구분 못하는 게 우리나라에 정 문화가 있어서는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게 나쁜 게 아닌데 이럴 때 발목을 잡아요.ㅠ
 

 

 

영화정보: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68172

 

영화를 만든 신연식 감독은 대중에겐 잘 안 알려진 감독이다. 그렇다고 독립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설명에 의하면 독립영화와도 인연을 맺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영화로 밥 벌어먹기 정말 어려울텐데...)

 

그래서일까? 이 영화가 완성도가 높다던가 예술적으로 뛰어난 것은 아니다. 요즘 영화의 결을 생각하면 오히려 조악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얼핏 보면 K 본부에서하는 <인간극장>을 연상케도 한다. 그만큼 열악한 환경속에서 최소한의 예산을 가지고 만들었을 거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나름 볼만하다. 그러고 보면 영화는 영화의 정신이 먼저지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케 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그런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꽤 괜찮았다. 그렇게 만들었다면 배우들도 아마추어를 썼을 거란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모르긴 해도 우리가 모르는 전문 배우들을 기용한 것 같다. 몇몇은 TV나 여타의 영화에서 본 얼굴도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기독교 영화다. 기독교 영화라면 주로 순교자들이나 다루지 않을까란 편견 또한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 역시 벗어났다. 오히려 요즘 벌어지고 있는 교단내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교회와 교회끼리 서로의 담임 목사를 헐뜯고 중상모략하며 거기에 한술 더 떠 목사의 성추행까지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계의 이런 문제는 한 두해 있어온 것도 아니고, 작년이 종교개혁이 500주년이라는데 그것이 있기 전 아니 어쩌면 역사적으로 교회라는 건물과 단체가 생긴이래 있어왔던 문제는 아닐까 싶다.  비기독교인이라면 같이 욕이라도 해 주면 그만일텐데 이걸 또 영화로까지 보자니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편한 것마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 영화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만큼 민낯을 보여줌으로 교회나 교인 각자가 각성과 회개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도가 읽히기도 한다. 특히 담임 목사실에서 교회 자매를 성추행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건 한때는 유명 교회 담임 목사이면서 저명한 저술가이기도한 모 목사를 떠올릴만 했다.또한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는 교회에서 파면 당한 후 교회를 개척해 여전히 목사 노릇을 한다고 들었다. 그가 그럴 수 있는 것엔 교단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독립적으로 목회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기독교 윤리의 실종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아닐까?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목회자를 배출하는 신학교에서 기독교 윤리 과목이 사라졌거나 있어도 선택 과목으로 되있다고 들었다. 일반 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윤리나 도덕을 아예 가르치지 않거나 축소해서 가르친다고 들었다. 내가 이 말을 들었던 게 아주 오래 전 일이다. 그때 나의 모교의 교수님은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교회의 문제를 생각하면 심히 걱정된다며 혀를 끌끌 차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오늘 날 기독교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고, 사회는 미투 캠패인을 통해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 당하고 있는지가 속속들이 들어나고 있다.   

 

왜 학교에선 윤리가 푸대접을 받는지 모르겠다. 요즘 우리는 절대 가치가 사라지고 상대 가치가 팽배해신 세상에 살고 있다. 거기에 무슨 윤리와 도덕을 따지겠는가? 그런 것들은 사회가 공존함에 있어 일종의 룰과 같은 것이기도 한데 그것을 금욕적 이미지에 덧씌워 박물관에나 보내버렸음직하다.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면 법체계도 온전히 설 수가 없는 건 자명하다. 모든 걸 다 상대적으로만 판단하고 평가하는데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거기엔 온갖 편법들이 난무한다.

 

새삼 기독교 윤리가 약화된 것은 목회자의 권력내지는 권리를 교회내에서 공고히 하려고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사회 역시 남자들의 세상에서 남자들이 누려야할 권리와 쾌락을 공고히 하기 위함 아닐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 때문에 상처 받고 고통당할 사람이 있다는 것쯤 윤리적으로라도 깨달았으면 좋겠다.   

 

영화는 타교회로부터 공격 받고 있는 부순 교회 목사이며 친형이나 다를 바없는 요섭을 도와주려다 그의 성추행 사실을 알고 오히려 교단에서 파면시키는데 앞장서게 되는 기섭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어떠한 결말도 보여주지 않고 끝이나는데, 사실 그러기엔 이야기가 처음엔 의욕적이긴하나 좀 구태의연한 것도 사실이다. 어찌보면 기섭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과연 거기서 괴로워 하는 것이 맞는지 묻고 싶기도 하다.

 

물론 형처럼 믿고 따른 요섭이 그렇게 됐으니 충격도 받았을 것이고, 어쨌건 주의 종을 자신이 무슨 권리로 정죄를 하나 죄책감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한 영혼이 그것도 목사가 그런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했다는 것에 크리스찬으로서 마음 아파하는 건 옳은 태도이긴 할 것이다. 그런 것을 우리 모두의 죄악이고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주님 앞에서 가질 수 있는 태도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또 크리스찬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흔한 형태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은 크리스찬은 이것 밖에는 과연 할 것이 없나? 그런 생각도 없지 않고 그런 점에서 영화는 별로 새롭지가 않은데 그것이 오늘 날 크리스찬의 현주소라고 감독은 보발하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감독 역시도 이 정도에서 동의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요즘의 미투 캠페인을 생각할 때 기섭이 목회자의 성적 타락을 보고 파면에 앞장섰다면 모르긴 해도 여신도들과 여성운동 단체에서는 환영 받을 일은 아닐까? 그런 건 차치하고라도 기섭이 자기 감정에만 함몰되어 담임 목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친구이기도한)지민의 상처를 돌아보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건 목회후보자로서 그리 바람직한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이럴 때 기섭은 단순히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고민해야 했다. 우린 성경에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을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알고 있다. 율법은 돌로 쳐 죽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너희중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치라고 하시면서 모인 사람을 흩어버리셨다. 

 

물론 여기서 왜 간음의 주체가 여인이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여자가 남자를 간음하고 성추행해도 될만큼 대범한 시대는 아니라고 보는데 그녀를 상대했던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다. 어쨌든 예수님의 행동은 옳았다. 적어도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감독일 확률이 높긴 하지만)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 썼어야 했다. 아니 설혹 염두했다고 해도 잘못 해석했을지도 모른다. 누구든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말을 기섭은 요섭에게 적용시키는 우를 범한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지민의 상처와 괴로움 잊은 것이다. 즉 감독이 이야기의 균형을 맞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아직도 영화 시나리오에 있어서 남성중심의 사고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혁이라는 것. 혁명이라는 것이 어려운가 보다. 난 이 영화를 보고 곧 <루터>란 영화를 봤는데, 루터는 아는대로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우린 단순히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니 루터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렀는가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교회의 타락상을 봤던 것이 아니라 교회의 타락 때문에 고통 당하는 교인들을 본 것이다. 만일 그가 교회의 타락만 봤다면 그는 결코 그런 혁명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타락했다면 너는 깨끗하냐고 온갖 회유와 핍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날은 교회뿐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정치계는 적폐청산을 시도하려는데  진보와 보수가 너희는 청산해야 할 적폐가 없느냐며 서로 흡집내기만 한다면 적폐청산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누구를 위한 적폐청산이냐는 것인데 과거의 정권 때문에 억눌렸고 상처와 고통을 당한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어느 쪽에서 적폐청산을 부르짖건 그건 밥그릇 싸움 밖엔 되지 않을 것이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루터의 종교 개혁을 보면 상당히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었음을 알 수가 있다. 국정 개혁 세력이 적어도 그런 진취함과 미래지향적 태도를 갖지 않는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루터는 한마디로 생각은 깊게 하고 행동은 과감하게 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만이 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제목을 성경구절로 했는지 모르겠다. 로마서 8:37절은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고 나와 있다. 사실 그 말씀과 영화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지 잘 공감하기 어렵다.  이 영화는 끝이 애매모호한 소위 말하는 열린 결말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 괴로움을 안고 파면당한 요섭 목사를 대신해 주일 날 설교하는 기섭을 보면서 한국의 기독교는 그렇게 우유부단하게 생각만 많이하고 내면이나 수양하는 그런 종교가 아닌데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싶다. 오히려 개혁의 사명이 기섭과 교인 모두에게 있음을 힘차게 외쳐야 하지 않았을까? 하긴 외치는 것만이 개혁은 아니다. 조용한 개혁도 개혁은 개혁일 것이다. 그것을 기대해 봐도 되는 것일까? 

 

지금 교회 밖에선 한창 미투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을 교회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여자들은 그동안 성추행을 당하고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역사가 얼마나 될 것인지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다. 그것을 교회가 침묵한다면 여자들은 어디가서 위로를 받고 상처를 치유할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영화 말미에 보면 지민이 요섭 목사의 성추행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가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민은 사실을 말해야 하는 순간에도 사람들로부터 사실 증명을 위해 종용만 받았지 누구에게도 위로 받지 못했다. 옛날 초기 한국 기독교는  과부와 고아, 나병 환자를 위해 얼마나 많이 봉사하고 헌신했는가? 그런 것을 생각하면 오늘 날 교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초기 기독교 전파를 위해 희생했던 선교사와 손양원 목사 같은 순교자들은 기함할 일이다. 

 

이 영화는 작년에 개봉한 영화다. 미국에서의 미투 운동은 작년부터고 우리나라는 올해들어서 본격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감독이 이 미투 운동을 생각했다면 영화의 내용은 조금 더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감독이 그것을 인식했지만 뭔가 기독교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성경을 비롯해 저명한 기독교 학자들은 간음에 대해 성직자의 성적 타락에 대해 오래 전부터 얘기해 왔었다. 그런 것을 참작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단순히 문제제기만 해 놓으니 좀 아쉽긴 하다. 그래도 초두에 말했던 것처럼 영화의 의도는 뭔가의 각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가 느껴졌다. 다음엔 좀 더 혁명적인 작품이 나와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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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8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2-18 19:07   좋아요 1 | URL
다 그런 건 아니겠죠.
어느 특정 교회 때문에 선의의 피해를 보는 일도 많겠죠.
사실 제목을 저렇게 써 봤지만
모든 사람이 개혁한다고 하면 교회든 나라든 남아 나겠습니까?ㅎ
개혁이든 혁명이든 그건 특정한 사람이 하는 것이고
각성하고 회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영화가 그다지 새롭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에 저리 써 본 거죠.
그래도 시도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교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겠습니까?
감독이 배포 하나는 좋은 것 같더군요.ㅋ

페크pek0501 2018-02-21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투 운동이 왜 진작 시작되지 못했을까 아쉽기도 하지만
그걸로 인해 이제라도 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에 희망을 가집니다.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의 입장에서 무척 신경이 쓰이는 사안입니다.

stella.K 2018-02-21 19:0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문화 예술계 보면서 예전에 그 분야는
아예 그러려니 했던 인식이 있었잖아요.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인식인지
그쪽 종사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 한 10년 전인가? 어느 여자 연예인 성 상납 문제 때문에
자살했잖아요. 그녀가 생각나더군요.
조금만 더 버텨서 이런 미투 운동에 참여했더라면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은 미투 운동은 그때 이미 일어났어야 했던 건데 말입니다.ㅠ
 
루터
에릭 틸 감독, 알프레드 몰리나 외 출연 / 카누(KANU)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잘 만든 영화. 나름 진중하고 유려하다.
감독이 주로 종교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가 보다.
<본 회퍼>도 찍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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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2-1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18-02-15 14:12   좋아요 1 | URL
어멋, 설 연휴 첫날 저에게 새해 인사해 준 분은
서니님이 처음이어요.고맙습니다!!

오늘도 춥지 않아 넘 좋네요.
모쪼록 즐거운 연휴되시고
서니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천로역정 (양장, 조선시대 삽화수록 에디션)
존 번연 지음, 김준근 그림, 유성덕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작품은 오래 전에 한 번 읽은 적이있다.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쯤 읽게되는 작품아닐까? 세상에 책이 하도 많아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두 번 이상 읽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다시 읽게된 것은 겉표지에도 나와 있지만 조선시대 삽화가 무려 42점이나 수록되어 있다는 말 때문이기도 하며, 평양 장대현교회의 길선주 목사님이 당시 우리말로 번역된『텬로력뎡』을 읽고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이끌어 냈다는 말 때문이기도 하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사실 난 이 시기가 궁금하다. 그것은 언젠가 우연히 손양원 목사의 전기를 읽고 난 후부터였는데, 손양원 목사가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순교할 수 있는 밑바탕엔 바로 이 평양 대부흥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양 대부흥의 밑바탕엔 이 책의 영향이 있었다니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처음 읽었을 땐 이런 배경 없이 읽었는데 배경을 모르고 읽을 때와 배경을 알고 읽을 때의 느낌이 다를테니 감흥도 남다르지 않을까? 

 

장정도 최대한 옛날 조선시대 책 분위기가 나게 꾸몄다. 옛날 문자가 발달되기 전에는 '텬로력뎡'이라 썼다는 것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이 책이 처음 번역된 것은 1895년선교사 제임스 스카스 게일(James Scarth Gale)이 부인 해리엇(E. G. Harriet)이 이창직의 도움을 받아 번역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번역된 서양 소설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최초의 번역 소설이란 말은 나도 오래 전에 들은 것 같다.

 

이 책은 한마디로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가 온갖 어려움과 유혹속에서도 믿음을 지켜 마침내 천국에 이른다는 단순해 보이는 설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장면이나 이야기 흐름속에 성경 말씀을 정말도 꿰었다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도대체 성경을 몇 번 읽으면 이런 서사가 가능한지 모르겠다. 

 

사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로 하고 그 믿음을 일생 동안 믿음을 지켜 나간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중간에 믿음에 대한 회의와 위기가 오기도 하고, 그래서 믿음의 길을 떠나기도 하고 떠났다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잘 믿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포기하고, 그 반대로 살아 있을 땐 온갖 방탕한 생활을 하다 죽는 마지막 순간에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도 있다. 가끔 이를두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인간적으로 이중 가장 좋은 건 세상에서 해 볼 거 다해 보고 마지막에 예수님 믿고 턱걸이로 천국 들어가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고. 그만큼 믿음을 지키며 산다는 게 어렵다는 얘기다. 

 

믿음은 마라톤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래서 멘토가 필요하다. 더구나 100세 시대다. 옛날엔 신앙 하나면 그 모진 세월을 견딜 수 있고 핍박도 감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신앙 말고도 위로 받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무궁구진하게 많아졌다. 또한 온갖 이단 사설도 세분화되고 조직적이 되었다. 또한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교회안에서도 방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 가운데 신앙의 순수함을 잃지 않도록 격려 받는다는 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신앙을 가져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래서 천로역정은 시대와 상관없이 오늘 날에도 신앙인이라면 성경과 함께 꼭 읽어야 할 필독서다.   

 

책에 나온 기산 김준근의 그림을 처음에 보면 김홍도를 연상케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풍속화가였다. 그런데 또 자세히 보다보면 중국의 느낌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것으로 봐 기산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텬로력뎡>은「천로역정(합질)」이라는 이름으로 2017년 5월 29일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 제685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여러모로 소장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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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2-13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난 크리스마스에 아는 분의 초대로 어느 교회에서 천로역정 연극을 보았어요.
큰 내용은 알지만, 연극으로 바로 앞에서 보는 느낌은 또 달랐던 것 같아요.
한글의 예전식 표기법은 조금 더 중국어의 느낌에 가까운 것 같고, 그리고 조금 더 오래된 책 같은 느낌이 듭니다.
stella.K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18-02-13 16:51   좋아요 0 | URL
아, 연극으로 보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이 대본처럼 구성이 되어 있어서
연극하기 딱 좋겠다 싶더군요.

그런 오래된 느낌 때문에 소장하고 싶더라구요.^^

2018-02-14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4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2-14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웃겨요. ˝가장 좋은 건 세상에서 해 볼 거 다해 보고 마지막에 예수님 믿고 턱걸이로 천국 들어가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고.˝ - 저도 이런 생각을 했던 1인이거든요.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웃겨요. ㅋ

stella.K 2018-02-14 13:51   좋아요 0 | URL
ㅎㅎ 웃긴가요? 그런 생각 누구나 하지 않나요?
저는 13살 때부터 신앙 생활을 했는데요
진짜 너무 일찍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누릴 거 다 누려보고 이 나이쯤 시작해도 늦지 않을 텐데...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