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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빙 어스
캐서린 헤이호 지음, 정현상 옮김 / 말하는나무 / 2025년 2월
평점 :
우선 1부를 읽으면서 이 기후의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게 정치적 상황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책에서 언급한 기후 위기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들이 대놓고 정치적 상황으로 몰아갈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긴, 트럼프는 1기 때나 이번 2기 때도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다. (그 효력은 1년 후에 발생한다고 한다.) 1기 때 이 기후 협정을 탈퇴한다고 했을 때 좀 놀랐다. 다 같이 맺은 건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탈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공동의 목표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이건 이제까지 내가 알던 미국과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미국은 우방과 늘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오지 않았던가?
확실히 트럼프는 '무시 그룹'에 속하며, 그의 사전엔 '공동'이나 '협력'은 없으며 오직 '이익'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가 그럴 수 있는 건 그 자신의 이득과 지지그룹에 화석연료 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트럼프에 멍석을 깔아준 것 밖엔 되지 않는다. 그 이후 미국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어쩌다 미국이 그렇게 되어버렸는지.
하지만 이게 미국만 증오하고 비판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다음 문장을 보자.
인간에게 가장 좋은 온도는 몇 도일까? 그것은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도다. 우리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골디락스 Goldilocks(딱 좋은) 온도다. 그 온도에서 인류 문명이 발달했다. 그 온도에서 수자원을 배치하고, 사회기반시설을 설계하고 건설했으며, 논경지를 구획해 나누었다. 그 조건에서 우리는 사회. 경제 시스템을 개발하고, 정치적 경제를 설정했으며, 자연 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정했다. ” 88p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미국이야 대놓고 한다지만 능력을 갖춘 나라는 자기네가 원래 살던 곳이 피폐해지거나 지형적으로 뭔가 불리해지면 침략을 해서라도 빼앗고 거기에 말뚝을 박는다. 지금까지의 전쟁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살다가 가뭄이나 홍수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좋은 기후를 가진 곳을 차지하기 위한 싸울 것이다. 능력을 갖춘 나라가 좋은 땅을 선점하게 될 것이다. 힘없는 나라는 고스란히 내팽개쳐질 테고. 근데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그건 둘 다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공조하는 노력이 필요할 텐데 앞으로 점점 더 패권주의로 노 나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뭐 하겠는가? 나 하나 그런 생각을 갖는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이 책에 나와 있는 다음 말을 주목해 보자.
“ ......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지적 구두쇠'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인간은 가능하면 생각을 덜 하는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의존하기도 한다. ” 103p
인지적 구두쇠. 좀 재밌는 말 같다. 흔히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알 것도 같다. 그런데 이게 참 다양하게 작동하는 것 같긴 하다. 가스라이팅에 의해서도 그렇고,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다독이는 말에도 작용하고, 생각하는 게 싫어서 남들도 그렇게 한다며 스스로가 생각을 차단하기도 하지 않는가. 특히 환경이나 자연을 생각하는 건 막연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아서 더한 것 같다. 인간의 내면에 그러한 것이 있다니, 역시 인간은 여러모로 복잡한 존재인 것 같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우리의 적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국을 비판하고 강대국을 경계하면 뭐 하겠는가? 우리 안에 환경에 대한 안일한 생각들이 오히려 환경을 더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
“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모든 봉쇄를 통해 사람뿐 아니라 산업과 교통도 멈춰 섰을 때 세계의 탄소 배출량은 7% 줄일 수 있었다. 비록 일시적인 현상이었지만 말이다. 파리협정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그런 감축을 지속적으로 매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130p
그래. 우린 이런 말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코로나 봉쇄는 분명 자연환경에는 선물 같은 기간이 될 거라며 그때를 버틴 적도 있다. 사실은 이보다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언제든지 다시 재현될 거란 보도는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하도 많이 보도되고 있어 그러면 또 그런가 보다 한다. 또 격지 뭐. 그까이 꺼. 하지만 막상 닥쳐 봐라. 과연 그까이 꺼가 정말 그까짓 거가 될 수 있는지. 저자의 다음 말도 좀 기억하자.
코로나19는 백신 덕분에 결국 끝날 것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백신은 없습니다. 343p
이 책은 꼭 기후와 환경에 대해 암울한 전망만을 말하지 않는다. 희망적인 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 한 대가 뿜어내는 탄소가 자동차의 몇 천대 분량이라고 들었는데 과연 항공사에선 탄소 감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은 전해주고 있다.
“ 코로나19 사태 이후 환경친화적 회복이 이런 계획들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에어 프랑스와 KLM에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으려면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승객당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요구했다. 유나이티드에어라인은 2016년 이래 농업 폐기물로 만든 바이오 연료를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에 공급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베르겐과 오슬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호즈의 브리즈번, 스웨덴의 스톡홀름 등 5개 공항에서 바이오 연료 주입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 280p
그나마 다행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환경을 위하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 예컨대 2019년 셀-가장 부유한 기업 3위 이자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회사 6위-의 CEO는 런던에서 일단의 CEO들에게 제철이 아닐 때 딸기를 먹는 것과 너무 많은 옷을 사는 것은 문제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 명의 딸이 있는데, 다들 너무 패션에 민감하답니다. 그래서 저는 딸들에게 1년에 네 번 계절마다 새 옷을 갖는 것은 상당한 생태발자국을 만든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여러분들도 그것을 깨달았나요? 이게 다 기후변화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241p
'제철이 아닌 딸기'란 문장은 진짜 딸기를 말하기 보다 제철이 아닌 과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요즘엔 계절 구분이 없거나, 일찍 나와 늦게까지 먹는 과일이 많아졌다. 수입 과일도 많고. 거기에 탄소가 많이 배출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것이 농사짓는 분들과는 어떻게 이야기가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비자의 입장에선 특별히 환자거나 입덧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제철 과일을 앞당겨 먹는다고 좋아라 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언젠가 TV에서 "세상의 모든 다큐'란 프로에서 패스트패션에 관해 다룬 적이 있었다. 패션을 위해 제3 세계 하청을 떠넘기고, 거기에 소요된 어린아이나 젊은이들의 열악한 노동을 보고 어느 패션모델은 자기 옷방에서 옷을 전부 다 내다 버렸다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정말 생각이 있다면 이미 산 옷은 오래도록 입고, 앞으로 옷을 안 사거나 아주 필요한 것만 제한해서 사 입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패션은 돌고 돈다고 10년, 20년 전 옷을 다시 입는다 해도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상 잘 모를 때가 많다. 나도 예전에는 잘 안 입으면 내다 버리곤 했는데 지금은 가급적 버리지 않고 입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패션계도 고민이 많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는 중 역대 최대, 최악의 산불이 났다. 매년 되풀이되는 산불 때문에 소나무가 문제로 대두됐다. 과연 소나무 없애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가? 의문스럽기도 하다. 화재의 90%가 실화라는데 그렇다면 인간과 제도에서 문제 해결을 찾지 않고 애꿎은 소나무를...? 정책이란 게 참 빈약하기 짝이 없다. 불을 내도 벌금이 3천만 원이거나 5년 이하 징역이라는데 그나마 그것도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는단다. 어쩔.
암스트롱은 달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겼다지만, 우리는 지구에 탄소 발자국을 남겼다. 지구가 두 개면 뭐 하겠는가? 이대로 가단 그 하나 남은 지구도 똑같이 망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지구의 환경을 예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늦출 순 있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의 후손에게 좀 덜 미안하지 않을까? 지금은 산소 발자국을 남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