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미용실 - 교제 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
박성신 지음 / 북오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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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본듯한 느낌이다. 장르는 범죄 수사물쯤? 이런 쪽의 장르라면 나는 당연히 영화로 봤을 텐데 책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 대중 소설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는지를 차치하고라도 지금은 대중소설과 순수소설에 대한 관심이 비등해졌거나 오히려 대중소설이 조금 더 앞서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는 아마도 지난 세월 동안 드라마 제작사나 영화사에서 지속적으로 판권을 사들이고 작업해 온 결과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한 이 방면의 소설가들이 시나리오를 공부한 결과이기도 하고.

이제 소설 쓰는 작가들은 단순히 내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바라지 않는다. 아예 쓰는 단계에서부터 영화처럼 쓴다. 그것을 난 이 책을 읽으며 확인했다. 과연 이렇게 쓰는 작가들은 언제부터 나타났으며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또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영화 제작 편수가 1년이면 몇편이나 되겠는가? 영화처럼 소설을 쓴다고 해서 다 영화화되는 것도 아닐테니 오히려 소설로 둥지를 틀기도 하겠지. 그러고보면 장르 소설은 더욱 팽창할 것이다.)


시나리오는 소설 쓰는 것보다 몇 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까 옛날 같으면 (시나리오 작가가 많지도 않았지만) 시나리오 쓰는 게 어려워서 소설을 쓴다고 해도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지금은 그 말도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창작의 세계에선 더 이상 쉬운 길은 없다.

침대만 과학은 아니다. 시나리오도 과학이다. 이것은 단순히 1+1= 2라는 말이 아니다.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영화에서 맥거핀(영화의 내용과 상관없는 장면을 슬쩍 끼워 넣는 것)이란 것도 있긴 하지만 이유 없는 결과가 없듯 이유 없는 장면은 없다. 초반에 밑밥을 잘 깔고 그것을 후에 회수하는 것도 시나리오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또 그러기 위해선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이 씨줄과 날줄처럼 잘 엮어야 좋은 작품이 되는데 그 어려운 것을 이제 소설도 해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위의 것들을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지면상 하나하나 설명할 수는 없고, 대충 풀어보면 여기서의 메인 플롯은 어린 찬서가 미장원 일을 하던 엄마가 교제하던 전탁근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후, 찬서는 엄마와 함께 살던 무산으로 돌아와 복수를 꿈꾼다(이건 복수극의 전형적인 시나리오 방법이다). 전탁근이 25년형을 받고 만기 출소해 무산으로 돌아온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 이게 메인 플롯의 과제다.

그런데 25년 만에 돌아온 무산은 환경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데 사람이 변했다. 엄마가 일하던 로라 미용실엔 웬 알지도 못하는 수상한 늙은 여자가 원장이란다. 또한 이젠 동네와 함께 늙어간 여사님들이 이곳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데 바로 그들이 마을의 정보원 노릇을 한다는 것을 깨닫는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전탁근의 둘째 아들이 일찌감치 내려와 술집을 경영하고 있는데 똑똑한 놈이라는 건 알겠는데(외과의사 면허증이 있으니),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알 수가 없다.

이상한 건 찬서는 그저 전탁근에게 복수하려는 것뿐이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미장원 원장과 엮이는 느낌이다. 그러다 마침내는 원장으로부터 탐정이 되라는 권유를 받는다. 물론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느새 미장원 바로 위층에 탐정 사무소를 차리고 사람들의 억울한 일을 해결해 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몇 개의 일을 해결하는 공도 세웠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몇 개의 일이 다 교제 살인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서브 플롯이 되시겠다. 즉 이 이야기 가는 길은 미스터리한 인물들이 어떤 정체의 사람인가, 교제 살인의 가해자들을 찬서가 어떻게 응징하는가 또한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전탁근을 어떻게 복수하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정말 읽고 있으면 영화에서 느끼는 통쾌함과 희열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살짝 갈등도 느낀다. 영화로 볼 걸 굳이 책으로 읽나 하는. 하지만 등장인물은 어떤 배우가 캐스팅이 되면 좋을까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 게다가 아직 영상화될 건지 아닌지는 미지수다 )

그런데 이 소설이 좀 특별했던 건, 이 책에선 약간의 윤색을 했는데, 꼭 60년 전인 1964년, 21세의 젊은 남자가 길에서 마주친 18살 여성에게 키스를 했다 혀가 잘린 사건이 있었다. 그로 인해 한순간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게 되었고, 여자는 성추행범이 되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고, 반면 남자는 먼저 가해를 했음에도 인정되지 않고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더 황당한 건 당시 판사가 여자에게 남자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결혼하라고까지 판결을 내렸다. 난 그때 뭐 그런 황당한 판결이 있는지 좀 놀라웠다. 우리나라 법이 단순히 무른 줄만 알았는데 미개하기까지 하구나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것도 그렇지만 일개 판사가 나서서 결혼해라 마라 훈수까지 두다니. 궁금했다. 그 판사도 자신의 여동생이나 딸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런 판결에 복종할 수 있는지.

생각난 김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동안 몇 번의 항고와 최근 2022년 재심 요청에도 불구하고 하고 기각이 되었다고 한다. 이럴 수가. 그동안 여권의 신장과 여성 법조인이 얼마나 많이 배출되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아직도 해결이 안 됐다니. (이 비슷한 사건은 그 후에도 몇 차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자 쪽의 무혐의가 인정됐다는 것. 내가 놀라는 건 이런 사건이 그때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최근까지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사간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어쩔 것인가.)

아무튼 작가는 바로 그 사건을 상기시키며 '과거에서 온 엄마의 비밀노트'란 제목으로 이 이야기를 재탄생시켰다. 실제로 그 사건의 여자가 판사의 판결에 굴복해 자신을 추행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면 결코 행복할 리가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작가가 그 여성을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그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책에 나온 몇 개의 에피소드 역시 작가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덧입혀 썼을 거라 짐작해 본다. 또한 작가가 다룬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도 아닌 빙산에서 녹아내린 물 한 방울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이 시간에도 데이트 폭력과 교제 살인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직도 인도나 중동 지역의 여성들은 남편이나 남자 형제로부터 끔찍한 살인이나 폭력을 당하고도 마땅히 말을 곳 조차없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라고 무엇이 더 나아졌는지 알 수가 없다. (얼마 전에도 10대 청소년이 같은 동급생 여자아이를 흉기로 찔렀다는 보도를 접했다. 모르긴 해도 교제하는 사이거나 미치지 않고서야 그냥 남사친 여사친 하는 사이에선 그런 일은 생길 수 없다.) 이거 무서워 어디 데이트고 나발이고 맘대로 할 수나 있겠는가.

우리의 현실은 이런 소설 한 권 읽었다고 나아지지는 않는다. 물론 기발한 방법으로 복수를 하니 어느 정도 카타르시스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이 책의 부제가 '교제 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다. 얼마나 강렬한 문장인가.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게 할 수도 없지만 설혹 가능하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 남성의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고, 나라는 피바다가 될 것이며, 서로에 대한 혐오와 갈등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소설은 나름의 기능과 쓸모가 있을 것이다. (물론 재미가 첫 번째지만) 이를테면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도 온갖 협박과 가스라이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각성과 용기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데이트 폭력으로부터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바람직한 데이트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등 지속적인 예방과 교육이 먼저 아닐까? 이야기는 통쾌하고 재밌기는 한데 이런 것만 보면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데이트를 해야 결혼도 할 것이고 나아가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는 희망도 가져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솔직히 내가 이런 소설을 기피했던 건 순수 문학만 선호하는 것도 없지 않지만 좀 어둡고 잔인해서 선택을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솜씨가 그럴듯하다. 막 잔인하다가도 끝에 가선 해피엔딩이다. 옛말에도 끝이 좋으면 다 좋다지 않은가. 역시 화제성 소설답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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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07-08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제가 굉장히 직관적이네요. ^^ 저도 동의합니다. ^^

stella.K 2024-07-09 13:06   좋아요 1 | URL
그렇죠? 바람돌이님도 기회되면 함 읽어보세요.^^

꼬마요정 2024-07-09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지속적인 예방과 교육 절실해요!! 여자가 이별을 이야기 했다고 칼로 찌르거나 황산을 붓거나 불을 지르는 건 진짜 나쁜 짓이라는 걸 확실히 해야죠. 읽는데 열불이 터지긴 했어요. 실화 바탕이라는 게 더 화가 났구요. 갑자기 그 사건도 생각나네요. 청바지는 강제로 못 벗기니까 청바지 입은 여자는 강간이 아니라 동의 하에 이루어진 성관계라는 판결요. 진짜 헐이었는데… ‘교제 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 맞아요 맞아요!!!!

stella.K 2024-07-09 13:09   좋아요 0 | URL
ㅎㅎ 역시 요정님이 가장 분개를 많이하시네요.
근데 청바지는 정말 충격적이네요.
우리나라 법이 아직도 여성을 차별하네요. 선진국일수록 여성이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울나라 선진국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ㅉ

희선 2024-07-09 0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제 있었던 일을 소설로 썼나 봅니다 헤어지는 걸 잘 해야 할 텐데... 헤어졌는데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스토킹을 하잖아요 그러다 죽이기도 하고... 지금은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이라고 아주 없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stella.K 2024-07-09 13: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고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해요!
그런 것을 가르쳐 줘야하는데 헤어지잔 말에 보복당해야 한다면
누가 이성을 만나겠어요? 분통터질 일이죠.ㅠ

물감 2024-07-09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냥 교제를 금해야 합니다 (매우 극단적) ........
그나저나 오랜만에 쓴 책 리뷰라 반갑습니다 ㅎㅎ

stella.K 2024-07-09 13:15   좋아요 1 | URL
앗, 저의 리뷰를 기다리시다닛!
이거 더 부지런히 읽고 써야겠는데요? ㅎㅎ
노력해 보겠슴다.^^

페크pek0501 2024-07-24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보다 더 쓰기 어려운 것이 드라마나 시나리오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관찰한 것들을 쭉 써도 되지만, 시나리오와 같은 작품은 인물마다 그 캐릭터에 맞는 대사를 써야 하니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런 걸 쓰는 분들이 천재들이라고 생각해요.ㅋㅋ

stella.K 2024-07-24 15:50   좋아요 1 | URL
오, 언니 이젠 소설도 그런 말 못하겠더라구요.
제가 그동안 소설을 너무 안 읽었구나 반성하고 있는 중이어요.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 정말 글 잘 쓰더군요.
단편은 그만그만한데 장편이나 장르물은 안 그렇더라구요.
정말 잘 써요. 괜히 K-소설이 아닌 것 같더군요.
저는 장르소설 휘발성 때문에 별 관심 안 가졌는데 그렇다고 그걸 폄하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일단 취향은 존중 받아야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앞으로는 가급적 장르소설 읽어 보려구요.
이래뵈도 제가 소설 쓰는 게 꿈이랍니다. ㅋㅋ
참, 언니 이미지 바꾸셨어요. 밝아보여요.^^

2024-08-14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14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좀 지난 얘기가 되지만 이 드라마가 방영된다고 했을 때 조금 설레었다. 결국 역사는 돌고 돈다더니 대중문화도 돌고 도는구나 했다. 그래서 복고니 레트로니 하는 거겠지만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난 본방사수 같은 건 거의 안하는 편이라 이 드라마 역시 한참 지나고 최근에야 한 3주간에 걸쳐서 봤던 것 같다. 총 10편에 지나지 않은 걸.


추리 수사물이지만 시대극이기도 하다. 1960년대가 배경인데 요즘 수사물도 온갖 화려한 볼거리를 장착하고도 겨우 볼까 말까인데 저 시대에 프로파일링 기법도 아직 없었을 땐데 어떻게 무엇을 보여줄 건가 좀 의아스러웠다. 하긴 그렇다고 우리가 드라마를 안 보고 살아 온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 시절 추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역시 예리한 추리와 빛나는 액션이 답이었다. 


초반엔 다소 어색한 느낌이없지 않지만 가면 갈수록 힘이 느껴졌다. 독특한 건 그 옛날 <수사반장> 오리지널 멤버들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    

    

맨 왼쪽이 김상순 배우고, 맨 오른쪽이 조경환 배우다. 이들 중 현존해 있는 사람은 최불암 배우뿐이다. 저 배우들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박영한 역을 맡았던 이제훈은 그동안 범죄 액션물에서 (모범택시1, 2) 인상적인 연기 때문에 캐스팅 된 것 같기도한데 너무 현대적인 이미지라 이 작품엔 다소 안 맞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제훈이 늙으면 어떻게 최불암이 될 수 있을까? 저 오른쪽 두번째 남성훈 배우가 된다면 이해하겠지만.ㅋ  암튼 열심히 하는 배우를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냥 그렇다고. 이번 주에 그가 출연한 영화가 출격했다던데 그는 아마 미스터리 액션 뭐 이런 쪽으로 이미지를 굳힐 모양인가 보다. 


그나저나 보통 드라마가 12회에서 길게는 16회까지 하던데 이건 10회에서 끝났다. 그렇다고 딱히 시즌2의 기미를 보인 것도 아니다. 배우들의 케미도 나름 좋던데 시즌2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위하준이 3년 전 드라마 <배드 앤 크레이지>에 나오는 거 보고 이 배우 언젠가 뜨겠구나 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 나온다고 했을 때 나쁘진 않겠구나 했다. 역시 나쁘지 않았다. 근데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앞으로 안판석 작품을 더 볼 것 같지가 않다. 2007년이었나? <하얀거탑> 보고 좋아라 했다. 그 이후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까지는 봐 줄만했다. 하지만 <봄밤>부터는 뭔가 나의 인내력을 시험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는 정해인, 한지민이 나오는데도. 


난 영화나 드라마에 인내력을 시험하게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인내하고 있지? 하면 바로 안 본다. 그런 작품은 끝까지 봐도 별로 남는 것이 없다. 어차피 드라마를 보는 행위엔 시간 죽이기를 포함하고 있다. 시간을 확실히 죽여주지 못하면 채널은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만큼 시청자의 세계는 냉정하다. 아무리 죽을 고생해서 만들었다고 떠들어도 재미없으면 끝이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안판석의 작품을 좋아할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선 매력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나이 먹어 들어가면서 좀 인생을 관조하는 작품을 만들 수도 있을텐데 만들어도 꼭 로맨스다. 그것도 연상연하 커플의. 나름 파격적인 건 <밀회>지. 그냥 연상연하가 정도가 아니라 여사님이었으니. 암튼 그러다 보니 이 사람 연상에 대한 페티쉬가 있나 싶기도 하다. 드라마가 이렇다할 극적인 전개가 없는 건 우리네 인생과 닮아있다. 그래서 약간 지루한 프랑스나 일본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뭐 인생 별거 있어 하며 볼 수도 있겠지. 시청자들이 꼭 극적인 것만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 지루하고 느른한 게 당길수도 있다. 그러면 안판석표 드라마 추천해 드려요!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나름 놀랐던 건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어에 정말 박완서 작가의 작품이 실렸냐는 거다. 모르긴 해도 설정일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드라마가 설정이어도 어느 정도 현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니까. 처음에 이 사실을 알고 격세지감은 맞지 않는 표현일 것 같고, 나름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실렸으니, 요즘 아이들은 좋겠네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건 좀 아니겠구나 싶다. 그나마 내가 학교 때 좋아했던 과목이 국어인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정말 그나마지 정말 좋았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국어 좋아한다는 아이들도 다를 바 없겠구나 싶었다. 솔직히 박완서 작가의 작품은 나이들어 갈수록 좋아지지 첨부터 좋기엔 뭔가의 장벽이있다. 특히 그 독자가 젊은 사람일수록. 나도 20대 때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그땐 작가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고, 내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라였다. 하지만 그때 작가는 주인공을 30대 말 40대로 설정했던 것 같다. 왜? 작가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난 그때 20대였으니 글을 잘 쓰는 건 알겠는데 공감하기엔 좀 버거웠다. 그걸 지금의 아이들도 똑같이 느끼지 않을까. 그렇담 이거 완전 통돌이 아닌가. 왜 우리나라 국어 교과서는 그래야만 하는 건가 싶은 것이다. 젊은 아이들에겐 그에 맞는 정서의 작품을 읽게해 줘야하는 거 아닌가? 젊은 작가의 젊은 감각의 작품도 많을텐데 하필. 그렇다면 아이들은 평생 국어는 고루하고 재미없는 과목이란 인식에서 못 벗어날 것 같다. 


하긴 문득 옛날 생각난다. 그때 2000하고도 몇년도쯤인지, 어느 알라디너가 고등학교 참고서인지 교과서가 있는데 그냥 버리기는 좀 아깝고 혹시 필요한 분 계시면 보내주겠다고 해서 내가 넙죽 손을 들었다. 그때 국어를 비롯해 사회, 도덕 같은 내가 좋아했던 과목이라 제가 읽고 버리겠다고(?) 나에게 보내주시라고 했다. 그때 받고 후회하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또 신앙인이라 내가 후회하면 후회하는만큼 보내주신 분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다. 지금은 그런 꿈은 안 꾸는데 한동안 내가 학교에 있는 꿈을 종종 꾸곤했다. 그 꿈을 그때 다시 꾸게 될까 봐 쫄기도 했다. 


최근 어떤 사람이 우리나라 수능의 문제점을 고발한 책을 냈다고 하는데 모르긴 해도 학력고사 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아무튼 우리나라 교과서는 좀 재미있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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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7-07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 때는 다른 책은 몰라서 안 보고, 교과서밖에 안 봤군요 그렇다고 재미있게 본 건 아니고 학교에서 공부 시간에만... 교과서는 재미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과서가 재미있으면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희선

stella.K 2024-07-07 19:23   좋아요 1 | URL
제 말이요. 교과서라도 재미있어야 하는데 그래 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좀 재밌으면 안 되는 걸까요? ㅠ
 

다른 건 몰라도 해마다 나의 최애 작가가 김보일 작가로 나오는데 도대체 언제적 최애 작가인지 모르겠다. 물론 내가 과거 이분의 책을 두어 권 읽었던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이후 읽은 적이 없으며 애정하지도 않는다. 한때 사석에서 몇번 뵌 적이 있긴 하지만 만나도 나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몇몇하고만 마주보고 얘기하는 것을 보고 낯을 가리는 타입인가 보다 했다. 나야 뭐 어차피 친하게 지낼 사이도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았다. 책도 내 돈 주고 산 적도 없다. 출판사에서 이벤트 하기에 리뷰한 게 다인데 최애 작가라니.


최근 몇년 간 난 김탁환이나 천명관 작가의 책을 구입한 적이 있고, 그전에는 김훈 작가를 좋아하기도 했으니 이들 작가들이라면 최애 작가라고 해도 인정하겠다. 또 그래서 말인데 내가 처음으로 읽은 작가의 책을 리뷰하면 며칠 지나 내가 그 작가의 마니아라고 한다. 어떤 건 읽지도 안고 관심도 없는데 그렇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산출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뭐 알라딘이 이 부분에 대해 해명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하면 좋고) 해마다 이런 행사를 하니 이왕 하는 거라면 좀 더 성의있고 근거있게 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어쨌든 이번에도 알라딘의 생파 재미있었다. 특별히 올해는 알라딘이 어떤 의미냐고 묻기에(전에도 물어었나?) 그냥 '만나면 좋은 친구!'라고 했다. 그게 꼭 어느 지상파 방송의 로고를 위한 것마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가끔은 알라딘의 역사가 나의 블로그질 역사와 거의 같다. 알라딘에 서재가 생긴 게 알라딘이 있고 얼마 안 있어서니까. 그동안 서재질을 하면서 느끼고, 겪고, 생각한 것들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씩 했었는데 알라딘이 올핸 그렇게 물어보니까 웬지 좀 가려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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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4-07-02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문학동네~ 생각해보니 한 권 읽었는데 ‘마니아’가 떠서 이상한 적이 많아요.

요새 책 한 권 내면 ‘작가’, 사진전/미술 개인전 한 번 하면 ‘작가‘가 되는 세상이라 아무 생각 없이 익숙하게 지냈네요. 신춘문예로 등단해야만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해도 ’작가‘라는 이름의 문턱이 너무 낮아져버려 헤프게 남용되어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stella.K 2024-07-02 21:19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사실 저도 그래요. 저도 문학동네 책을 최근에 사 본적이 없는데 계속 문학동네래요. ㅎㅎ 그나마 문학동네가 싫지 않으니까 그냥 봐준다쳐도 최애작가를 몇년째 김보일로 나오니 이렇게 맞지 않는 걸 왜 하나 싶어요.

한 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라고 한 번 작가는 영원한 작가죠. ㅎㅎ
헤프게 남용되는 건 좀 그렇긴 해요. 동감입니다. 요즘엔 블로그에 뭐만 끄적여도
작가라고 하는 시대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죠 뭐.

cyrus 2024-07-02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님은 저보다 알라딘에 오래 활동하셨는데 구매한 책이 많지 않네요. 내가 책을 너무 많이 샀나? ㅋㅋㅋㅋ

stella.K 2024-07-03 11:47   좋아요 0 | URL
ㅎㅎ 내가 몇권을 구입했는지 아는 사람 거의 없지 않을까?
그러나 확실한 건 네가 책을 좀 과하게 좋아하니 나 보다 많을 거란 건 자명하지.^^

Falstaff 2024-07-03 0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르한 파묵이랍니다. 좀 낫네요. ㅋㅋㅋ
2년 동안 책을 거의 안 샀는데요, 책을 안 사도 읽을 책이 넘쳐나는 겁니다. 다 방법이 있더라고요. 출판사, 책가게는 독자들한테 진짜 고마워해야 합니다.

stella.K 2024-07-03 11:51   좋아요 1 | URL
오, 오르한 파묵! 정말 저 보다 낫네요. ㅎㅎ
저도 오르한 파묵 정도라면 저런 글 쓰지도 않았을 겁니다.
근데 책을 안 사도 책이 넘쳐난다굽쇼? 도서관 애용하시잖아요.
그것 말고 또 다른 방법 있으시면 소곤소곤 알려주시죠^^

2024-07-03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03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감 2024-07-04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생각보다 검소하십니다, 알라딘 하신지도 오래되셨던데 ㅎㅎㅎ
저는 저 금액에서 한 절반쯤 되는데, 그것도 대부분이 쿠폰할인이에요 (뿌듯)

stella.K 2024-07-04 17:59   좋아요 1 | URL
ㅎㅎ 제가 책을 꾸준히 읽기는 하지만 좀 오래 붙들고 있어서 많이 사지는 않았죠. 옆동네에서 사기도 했고 이벤트 책도 읽고. 사실 현금 쓰는 일은 많이없죠. 그래서 사알짝 미안하기도 한데 대신 정성스런 리뷰 쓰는데 시간을 들이고 있으니 알라딘도 그렇게 손해 보는 건 아닐거예요. 안 그랬으면 25년까지 왔겠습니까? ㅋ
 


이 영화의 장르를 굳이 말하라면 폭력 액션 피 환장 환타지 뭐 그런 거 아닐까?

내가 설마 그런 장르를 좋아할 리는 없고 순전히 송중기 때문이다. 그는 외모와 달리 거칠고 선 굵은 연기를 제법 잘 한다. 그래서 이번엔 어떤 연기를 보여 줄까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 자체는 내 취향은 아니지만 영화에서의 거칠고도 고독한 연기는 일단 합격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치건 역을 맡은 송중기와 연규 역을 맡은 홍사빈 투톱이긴 하지만 그래도 홍 배우한테 좀 더 비중을 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어두운 조폭 세계의 이면을 다룬다. 어떤 이는 지옥 같은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두 남자의 운명을 다뤘다고 하는데 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긴하다. 근데 나는 나쁜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대체로 그런 것을 생각 했다. 하나 같이 불행한 가정과 개인사가 결국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은 맞는 것 같긴 하지만 난 아직 세상을 그렇게 비관하고 싶진 않다. 이 불행한 환경과 반복되는 개인사를 끊어주면 그도 얼마든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누군가 믿어주는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근데 불행하게도 그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거기서 구원의 동아줄은 비슷한 세계에서 내려 온다는 것이지. 그래서 운명을 변화시키기가 어렵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인만큼 영화를 보면서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자체는 공들여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의 에너지가 넘쳐 보이긴 한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만들었지 묻는다면 답을 찾기가 어렵다. 한마디로 병맛이다. 장면 넘어가는 것 보면 아마추어 느낌이 난다. 진행도 그런 것이 시종일관 우울하다. 원래 우울한 영화에 명랑함이 깃들고 명랑한 영화에 어두움이 베어있어야 좋은데 그런 운영의 묘가 부족하다. 연규는 한쪽 눈이 사시던데 그런 디테일은 참신하긴 하다. 엔딩 때 치건과 연규가 치고 받고 싸우는 건 좋은데 나중에 연규 손에 죽는 치건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럴 바엔 그냥 연규 손에 힘들이지 않고 깨끗히 기껏 피터지게 죽지 싸우다 죽는 건 뭐람. 



앞의 영화에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이 영화 때문에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다. 이 영화 아기자기하게 잘 만들었다. 만날 만한 운명은 어떻게든 다시 만난다는 뭐 그런 내용의 영화라고나 할까? 근데 재밌긴 하다. 유리코란 일본 여자가 전에 잠깐 알았던 한국 남자를 찾겠다고 한국에 왔다. 행운처럼 어렵지않게 만나긴 했는데 나중에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그녀가 찾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결국 다시 일본으로 돌아 가려고 하는데 이번엔 남자가 유리코를 다시 붙들게 되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만남을 이어 간다는 영화다. 소품이지만 좋다. 저 두 사람의 안정감 있는 연기도 좋고. 하지만 남주인 김다현의 다소 멍청한 연기가 조금 우습기도 하다.  


단 이 영화는 흑백이라는 것. 뭐 역시 영화는 감독을 위한 것이니 취향이 그런가 보다하면 되는 거겠지만 그래도 관객의 입장에서 흑백은 좀 과유불급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흑백이 싫지 않았던 영화는  <동주> 정도다. 이 영화는 자연 풍광도 많이 담았던데 그걸 흑백으로 보여주다니 죄악 아닌가? 감독은 이제 막 첫발을 뗀 신예 감독이다.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는. 하지만 첫번에 이 정도라면 앞으로가 기대된다. 그의 다음 작품은 무엇이될런지 지금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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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6-30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께서는 영화를 참 좋아 하시는 분 같아요.
저도 영화 좋아하는데
요즘 바빠서 그런지 잘 보지 못해요.
송중기 배우가 나오면 무조건 오케이 입니다^^

stella.K 2024-07-01 12:19   좋아요 1 | URL
페페님도 송중기 좋아하시는군요. 송중기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더 안정적이고 좋아졌다는 느낌이 있어요. 저만 그러나요? ㅎㅎ 송중기 좋아하시면 보셔야죠. 근데 썼다시피 영화는 그닥입니다.^^

물감 2024-07-01 1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화리뷰 쓰는 분들 신기해요. 생각할 틈도 없이 훅훅 지나가는 영상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기록하죠? ㅋㅋㅋㅋ 책 한권 리뷰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요...

stella.K 2024-07-01 12:36   좋아요 2 | URL
귀엽습니다. ㅋㅋ
아, 이런 표현 쓰면 실롄가요? ㅋ 그러면 뭐합니까? 전 좋아요도 별로 못 받는 아싸인 것을. ㅠㅠ
제가 처음부터 저렇게 썼겠습니까? 영화는 시각에 남고 책은 생각에 남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시각이 좀 더 저장속도가 빠르지 않을까요? 그래도 영화 보단 책 보기가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전에도 말했지만 전 책을 많이 못 보니까 그나마 영화라도 보자는 쪽이어서 그럴 겁니다. 글구 영화 리뷰 잘하는 사람은 쎄고 쎘죠. 그들의 하나같은 공통점은 말이 넘 많고 빠르다는. 막 누가 와서 입틀막이라도 할까 봐 겁이라도 나는지. ㅋ
맞아요. 전 책 리뷰 한 번 하려면 3, 4일씩 걸려요. 책 리뷰는 갈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점점 수행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4-07-01 12:51   좋아요 2 | URL
영화 리뷰만 그렇게 빠르나요?
북플에서도 신간 나오면 어찌나 빨리 읽고 리뷰 올리시는지요.
정말 책 한 권 읽고 리뷰 쓰기도 힘든데도요^^
 
그 작가, 그 공간 - 창작의 비밀을 간직한 장소 28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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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문사 문학부 기자들이 책을 내는 일은 드물지 않게 됐다. 또 그들이 내는 책들은 글쓰기나 독서 에세이인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들의 건조한 문체를 좋아한다. 저자 역시 문학부 기자인데 모르긴 해도 기자들 중 가장 많은 책을 내고 주로 문학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작가를 많이 다룬다. 그는 작가를 찾아 나선다. 작가에 관한 책들이나 기존의 문서들, 한 간에 떠도는 잡설 등을 짜깁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의 글은 팔딱팔딱 살아있다.


관건은 취재력 일 것이다. 그러려면 사전 준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작가가 어디 서울 한복판에만 모여 사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찾아가는 길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처음엔 기사를 위해 그렇게 하고 기념 삼아 한두 권의 책으로 엮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꽤 오랫동안 해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번역서도 있다. 나는 언젠가 앙드레 버나드의 <악평>이란 책을 산 적이 있는데 최근 그 책의 번역자가 저자인 줄 알고 좀 놀랐다. 상당히 부지런하고 어찌 보면 기자보단 문학인이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지난 2013년도에 나온 책으로 특별히 작가의 작업실이나 집 즉 공간에 주목한다. 그건 실제로 사무실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어떤 공간일 수도 있다. 그렇게 저자와 작가가 나눈 이야기가 제법 진지하고 인간적이다. 모르는 사람은 작가에게 작업실이 뭐 필요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자유로운 영혼인데 종이와 펜을 가지고 어디든 자리만 깔고 앉아 있으면 거기가 작업실 아니냐며.


하지만 작가를 마냥 한량으로 보면 안 된다. 누구보다도 치열해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어떤 작가는 작업실 정도 가지고는 안 되고 감옥이 필요하다고까지 했을까. 그렇다고 진짜 감옥을 들어갈 수는 없고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자신을 잡아 가둘 공간이 필요하긴 하다. 그에 가장 가까운 공간을 사용했던 사람은 소설가 김태용은 아닐까 싶다. 그곳은 다름 아닌 고시원이었다. 그것도 창문도 없는. 얘기만 들어도 폐소공포증에 걸릴 것만 같다. 실제로 김태용 작가는 처음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가장 흔한 방법은 집안에 방 하나를 서재로 꾸며 놓는 것이 아닐까. 전에 얘기를 들으니 어떤 작가는 집이라도 공간을 분리해서 쓴다고 한다. 즉 글쓰기 작업을 할 때 아예 옷까지 사무복으로 갈아있고 회사원처럼 정시에 서재로 출근해서 똑같이 퇴근 시간에 맞춰 나온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은 뭘 그렇게까지 할지 모르지만 그 마음 알 것 같다.


요즘엔 카페나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흔해졌다.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카페를 차 마시며 수다 떠는 공간으로만 인식하는데 최근엔 그 풍경도 많이 바뀌긴 했다. 요즘엔 노트북 하나면 어디서든지 업무가 가능하니 카페를 사무실 삼아 쓰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러니 글이라고 못 쓰겠는가. 문학촌이나 레지던스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게 글 쓰는 작가들에겐 최고의 공간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미국의 어떤 작가는 평생(?) 호텔에 머물면서 글을 썼다지 않은가. 얼마나 돈이 많으면 호텔에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하루 삼시 세끼 밥 차려 먹을 신경 안 쓰고 글만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비록 호텔은 아니지만 그것을 일반 작가도 문학촌에서 누릴 수 있으니 세상 좋아졌다.


이도 저도 할 수 없으면 자기 쓰는 책상이나 하다못해 식탁을 자기 공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알지 않는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로 데뷔하기 전 재즈 바를 운영했고 매일 문을 닫으면 거기서 글을 썼고, <해리 포터>의 작가 롤링도 매일 밤 아이를 재워 놓고 식탁에서 몇 시간씩 글을 썼다고. 그러고 보면 이 공간 확보에 대한 인간의 노력은 치열하면서도 진화적이란 생각도 든다.


하긴 우리도 어렸을 때 혼자만의 공간을 얼마나 원하며 자라왔던가. 책상 밑이나 장롱은 기본이고 누구는 세탁기 통에도 들어갔다던데 그맘땐 왜 그렇게 구석진 곳을 좋아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엄마의 자궁에서 나온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공간은 핑계다. 저자는 작가가 머무는 공간보단 역시 본 업무인 문학 얘기를 더 많이 한다. 이를 통해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꽤 오래전에 구입하고 한 번 읽기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요 근래야 비로소 완독했다. 또 그러길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온 작가들 두 세명을 제외하고 다들 한 번씩은 책을 읽거나 귀동냥으로 들어 알게 되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모르고 읽으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조금이라도 알고 읽으니 읽는 맛이 난다.


또한 그동안 저자가 다룬 작가 중 유명을 달리한 작가들 있다는 걸 볼 때 만감이 교차했다. 김윤식 교수는 그렇다고 해도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이외수 작가가 고인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도 문학촌을 운영하고 TV에 나와 싱거운 농담에 서투른 살림 솜씨를 보여주곤 했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중 김윤식 교수의 대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저자가 취재했을 때만 해도 신인 작가였던 백수린 작가를 많이 칭찬했고, (우리나라 소설은) 장편보단 단편을 더 많이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에겐 둘 다 뜬금없긴 했다. 내가 기억하는 작가는 성석제나 김영하 정도까지만이다. 나에게 백수린 작가는 아직도 젊은 작가인 줄만 안다. 그런데 돌아간 김윤식 교수가 입에 올렸다면 그도 더 이상 신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동안 내가 참 무심하고 맹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장편보단 단편이라니. 내내 들어왔던 건 우리나라 작가들은 단편만 쓰려고 하지 장편은 잘 안 쓰려고 한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작가의 안일함과 게으름을 꼬집고 나아가서는 인문정신이 없음을 비판했다. 장편도 뭔가 인문학적 지식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단편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점점 소설을 읽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세상에서 정말 장편이 의미가 있는 건가 회의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알지 않은가. 단편이 장편 보다 쓰기 어렵다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김윤식 교수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도 없다. 앞으로 소설은 어디로 갈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난 이 책의 백미는 맨 마지막 챕터인 저자 자신의 공간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 나는 저자 후기가 왜 이렇게 길지 했다. 그런데 자신의 사무 공간을 조근조근 설명하는데 빠져들었다. 기대하지 않은 관음증을 만족시켜 준다. 내가 애초에 이런 책을 좋아하는 것도 작품 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고 돌려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관음증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어느 때부턴가 아주 훌륭한 인테리어 감각을 자랑할 목적이 아니면 자신의 공간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은 이제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진으로까지 찍어 보여주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저자가 더 친근하고 뭔가 초대받은 느낌이다.


기자가 작가 얘기하면 폼 나 보이긴 한다. 이 책을 펴낼 때만 해도 저자의 자제가 군 복무 중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났으니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을 것이고, 저자도 은퇴를 했거나 준비 중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본격 작가로의 저자의 활약상을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이런 기자가 있어 한국문학은 외롭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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