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심부름으로 세금도 낼겸 마트에서 필요한 물품 몇 가지를 사고,

그 앞 분식점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순대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세금 고지서 액수는 17만 얼마쯤 되서 20만원 중 거스름 돈이 2만 얼마쯤 될 것이다.

천원짜리 몇장이 지갑에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이놈의 돈을 집에 와 추스르는데 만원짜리는 없고,

천원짜리 몇 장과 동전 몇 개가 전부다. 

중간에 D님께 내 책 보내드리려고 미리 준비한 돈으로 부친 게 전분데,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이제 돈도 흘리고 다니나?

 

찝찝하다. 

이걸 누구에게 말도 못하겠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다.ㅠ

 

 

책을 읽은 건 아니고, 내가 보는 올레 TV에서 일드로 방영해 주는데 서비스가 이달 말로 종료한다기에 부지런히 챙겨봤다.

총 10부작이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게 현지에서 방영하기는 무려 2010년이다.   

 

처음엔 한 두 편만 보다가 말아야지 했다. 그런데 보다보니 5, 6편을 보게 되었고 이왕 보는 거 끝까지 봐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국내 드라마 같으면 그렇게 오래된 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 약간의 중독성이 있다. 일본의 아기자기한 문화도 엿볼 수가 있고, 무엇보다 범죄 수사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즘도 깔려있다.

 

그들의 수사기법이란 게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장면은 우리나라가 더 앞서있지 않을까? 꼭 옛날 수사반장을 보는 것 같다. 순전히 주인공 가가 형사와 수사팀의 직관과 추리로 범인을 잡는 형식인데, 현실이라면 좀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뭐 그냥 드라마니까 봐 줄만 하다.

 

재밌는 건, 일본에도 붕어빵이 있었다는 사실. 그렇다면 이 붕어빵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건너 온 걸까?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 간 걸까?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선 포장마차나 어느 가게 한 귀퉁이에서 팔지만, 일본은 전문 가게로 운영되고 그것도 줄 서서 사 먹는다는 것. 물론 그 가게가 유명해서인지도 모르고, 벌써 8, 9년전 일이니 지금도 줄 서서 붕어빵을 사 먹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렇게 줄 서서 사 먹는데 막상 사는 양은 그렇게 많지 않다. 주인공 가가 형사의 경우 하난가, 두 개를 사려고 지폐도 아닌 동전을 세고 있었다. (그의 캐릭터가 엉뚱하고 우습기도 한데, 돈을 세다 모자라니 조카가 꿔 주겠다고 하는데 굳이 은행에 가 돈을 찾아 올 테니 자리를 봐달라고 한다) 그것도 꼭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가게 주인인지 종업원인지가 꼭 그 앞의 손님까지만 주문을 받고 영업 종료를 선언하는데, 딱 한 번 성공하던가? 우리나라 같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악성루머 퍼트리지.ㅋ

 

아무튼 괜찮은 드라마였다. 이달 초무렵부터 보기 시작해서 이달과 함께 완방한다. 정말 저질체력이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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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5-29 16:15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제가 칠칠맞게 어디 가 돈을 흘리고 다닐 사람이 아닌데.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그런 일이 생기면 꽤 찝찝해요.
그렇다고 역추적이 가능한 상황도 아니예요.
좀 지나고 보니까 생각나더라구요.
그냥 없는 셈 쳐야죠.
그렇지 않아도 동생이 미안했던지
거스름 돈은 됐다고 했거든요. ㅠ

cyrus 2018-05-29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살 수 있다는 마음에 너무 기분이 up되어 있다가 지갑을 열어 보고 돈이 부족한 걸 깨달았을 때 깊은 절망감이란.. ㅎㅎㅎ 진짜 그 상황이 되면 OTL입니다.

stella.K 2018-05-29 19:0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맞아. 깊은 절망감이지.ㅠㅠㅠㅠ
그런데 그건 책을 살 수 있어도 마찬가진 것 같아.
방금 중고샵에서 정말 사고 싶은 책 한 권 발견했어.
그런데 난 얼마 전에 책을 샀거든.
그래서 이달 치 할인 서비스는 다 받았거든.ㅠ

아, 그건 그거고, 왜 만원짜리는 흔적도 안 보이느냔 말야.ㅠㅠ

서니데이 2018-05-29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만원 한 장 없어졌어요. 계산을 하려는데, 없는 거예요.
그래서 카드로 결제를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가 없어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어쩐지 칠칠맞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없어질 게 아닌데 없어져서요.
요즘 만원 실종을 겪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요.
저는 못 찾았지만, 나중에라도 그 때 그 만원 다시 찾으시면 좋겠어요.
stella.K님, 오늘 저녁부터 밖에 비가 꽤 많이 오고 있어요.
빗소리 들리는 편안한 밤 되세요.^^

stella.K 2018-05-30 11:02   좋아요 1 | URL
이거 왠지 동병상련 같아 저는 좀 위로가 되는데요?ㅎㅎ
저도 그런 생각했어요.
어디선가 나오던가 아니면 그때 내가 이거했었지 하며
깨달음을 얻던가.
괜찮아요. 칠칠 맞기는요. 살다보면 다 그런 거죠.
남은 그 보다 더한 돈도 사기당하고 그러는데요 뭐.
그렇게 생각하자구요.ㅋ
비는 매주 오네요. 가물지 않아서 좋은 것 같습니다.^^

비연 2018-05-3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참자.. 재미있죠. 아베 히로시가 묘한 매력이 있고...
그나저나 돈... 어디로 간 걸까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

stella.K 2018-05-30 11:05   좋아요 0 | URL
참, 비연님 추리소설 좋아하시죠?
재밌더라구요. 정말 아베 히로시 독특하면서도
힘들이지 않는 자연스런 연기가 좋더군요.

괜찮아요. 할 수 없죠.
그냥 계산을 잘못 했겠거니 합니다.
대신 이런 일 다신 있지 말아야죠.ㅠㅋㅋ

희선 2018-05-31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붕어빵은 어디에서 먼저 만들었을까요 그래도 한국은 붕어빵이라 하지만 일본은 다이야키라고 해서 다이는 도미(생선 이름은 알지만 먹어본 적은 없군요)를 나타내요 붕어빵 예전보다 비싸지기는 했지만 일본에서 파는 다이야키가 더 비쌀거예요 원작소설에는 그런 부분 없었던 것 같기도 한데, 드리마에는 재미를 주려고 넣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가가는 다른 사람이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는 걸 잘 보려고 하지 않나 싶어요


희선

stella.K 2018-05-31 13:0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군요. 사실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 붕어빵이 있기 전 풀빵이란 게 있었어요.
70년대 초반에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
빵틀은 지금의 붕어빵과 크게 다르지 않죠.
그런데 워낙에 기술이 없어서 정말 풀 같이 질척하다고 해서
풀빵인 거죠. 그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진화해서
지금의 붕어빵이 되지 않았나 해요.
희선님은 책으로 읽으셨군요.
드라마가 매력적여서 책으로 읽어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곽재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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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한 책은 가급적 읽지 않으려고 했다. 요즘 그런 책이 얼마나 많이 나와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물론 읽어서 나쁠 리 없다. 하지만 읽으면 뭐하나? 중요한 건 내 글을 써야지. 그래서 글쓰기 강사가 될 것이 아니라면 가급적 안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왠지 끌렸다. 제목이 길기도 하지만, 뭔가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는 책 같아서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지난 날 글 쓰다 엎은 적이 어디 한 두 번이랴? 왠지 그런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책인 것 같아서였다.

 

제목에서 풍기듯 이건 글쓰기 생초보를 위한 책은 아닐 거라고 지레 짐작한다면 걱정은 붙들어 매시라. 생초보라도 읽을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표지 중앙의 그림에서 느껴지듯 이건 어려운 책이 아니라는 것쯤 빤히 알 수 있다. (고양이를 그려 넣을 생각을 하다니.)

 

(여러 번 밝혔지만)나의 꿈은 작가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꿈을 이룬 것도 같다. 오래 전교회에서 대본을 썼고, 2년 전엔 책도 냈으니. 하지만 인생이 어디 내 뜻대로만 되던가? 이건 내가 원하던 그림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그림은 소설로 데뷔하는 거였다.

 

사실 내가 교회에서 대본을 쓴 것도 소설을 써 보고자 하는 뜻에서 시작한 일이다. 책에서도 저자가 지적하지만, 글 쓰는 일이 지난한 것도 있지만 지지부진한 것도 많아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대본 쓰는 일이 그랬다. 소설이야 혼자 하는 작업이니 지지부진해질 누가 뭐랄 사람이 없지만, 연극이란 장르가 워낙에 여러 사람과 협업으로 해야 하는 것이니 대본은 잘 쓰든 못 쓰든 제때 나와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것은 작가가 마감에 맞추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저자도 그런 말을 한다. 기왕이면 마감에 맞추는 작가가 되라고. 마감에 못 맞추면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다. 그러나 마감에 맞추면 출판사나 잡지사로부터 신뢰를 얻고, 그 다음을 도모할 수가 있다. 나는 바로 이 훈련을 대본 쓰는 것으로 했기 때문에 겹쳐서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마감에 맞추는 일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그런데 저자는 책에서, 전업 작가가 좋으냐, 아니면 자기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좋은가 했을 때, 당연 후자에 손을 들어준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업 작가는 아마도 신이 내려준 직업일 것이다. 글만 써서 집세 내고, 공과금 내고, 생활비 한다? 이건 정말 꿈같은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배우자를 잘 만나거나, 부모님 집에 그야말로 잠만 자고 밥만 먹는 입주 가사도우미가 되어, 눈물에 밥을 말아먹을지언정 절대로 부모님 그늘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꿈같은 이야기지만, 본인이 금수저이거나.

 

결국 작가는 훌륭한 직업이긴 하지만 현실을 생각할 때 거의 수익을 보장할 수 없으니 겸업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소리다. 그렇게 생각하면 서글프긴 하다. 직업이 뭐가 됐든 그것은 자아실현과 경제적인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작가란 직업은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작가는 여타의 직업과 겸직을 하게 되는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저자는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때로는 자신의 직업이 무엇이든 직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소재로 삼을 수 있으니 좋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니, 화학자 출신이고 그래서 그런지 전작들도 과학적 요소가 많기도 하다.

 

아무튼 나도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나는 오래도록 교회에서 글을 썼으니 오죽 겪고 본 일이 좀 많겠는가? 그걸 책으로 써도 책 몇 권은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겸직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작가에겐 어쩌면 축복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어느 작가도 편의점에서 일한 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그러고, 우리나라 어느 법조인은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써서 그게 현재 TV 드라마로까지 방영되고 있다(말에 의하면 작가가 직접 각색까지 했다고 하는데 무슨 복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정작 원하는 소설을 안 쓰고 있다. 아니 못 쓰고 있다. 역시 저자가 지적하기도 했지만, 작가로 살아남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 두 권의 책을 내 본 것으로 작가 딱지를 달았으니 거기에 만족하는 것이다. 거기엔 작가의 의지의 문제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야말로 생업이 발목을 잡아서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좀 복잡하다. 그렇게 대본을 써 봤으니 소설도 금방 잘 쓰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대본 쓰는 일과 소설 쓰는 일은 결코 같은 게 아니다. 그동안 내가 대본을 쓰면서 소설은 안 써 봤겠는가? 그런데 꼭 실패했다. 어떤 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가당치 않다고 생각할 때도 많았다. 그야말로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작가란 꿈은 가져서 이런 생고생을 하나? 차라리 없었던 것으로 하려고 발버둥쳤던 때도 있고, 글 쓰는데 매번 실패를 하니 일부러 팔짱끼고 있다가 뭔가 내 안의 욕구가 빵빵해져 더 이상 못 견디겠다 싶을 때 써 보는 것은 어떨까 하던 때도 있었다.

 

이 책은 애석하게도 그런 심리 상태를 진단해 주는 책은 아니었다. 즉 왜 실패하는가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계속 쓸 수 있는가를 모색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해 본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저 저자는 베껴 쓰기가 얼마나 고역인지를 털어놓는다. 사실 베껴 쓰기는 창작을 공부할 때 빠지지 않는 수련 과정 중의 하나다. 그것에 대해 저자는, ...... 아닌 게 아니라 어떤 글을 찬찬히 베껴 쓰면, 그 글의 특징과 구조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기회가 될 때도 분명 있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에는 베껴 쓰는 일에만 몰두하다가 정작 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일을 방해할 때가 많고 소모되는 힘과 시간도 너무 컸다. (162p) 그 뒤 저자의 설명은 그냥 기계적으로 무의미하게 베껴 쓰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고, 글을 쓰면 내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일에서 내가 뭔가를 했다고 만족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건 나 역시도 동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왜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나 그것을 가르치는 선생들은 하나같이 필사가 중요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저자의 의견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솔직히 난 내 글 쓰는 것만으로도 어떤 땐 팔이 떨어져 나갈 지경이다. 베껴 쓰느라 에너지를 쓴다는 건 너무 힘들다.

 

대신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이 있다. 이건 나도 언젠가 한 번 해 보고 싶은 것이기도 한데, 베껴 쓰기를 아주 안 할 수는 없으니 괜찮은 영화나 드라마를 자기 식으로 베껴 써 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설로 옮겨보는 것이다. 그것이 소설이면 시나리오나 대본으로 옮겨 써 보는 것이다. 그냥 베껴 쓰기는 단순하지만, 이 작업은 상상을 해야 하고, 문체를 다듬기도 해야 하니 좀 보람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등장인물의 심리가 어떤지 글로 표현해 보기도 하고.

 

저자는 그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거기서 개작을 해 보라고 한다. 즉 모작을 해 보라는 것이다. 나라면 이 작품 또는 이 장면을 어떻게 해 볼 것인가를 써 보는 것이다.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구조를 바꾸고, 구성을 바꾸고 하면서, 새로운 창작물로 나갈 수만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

 

또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은 데서부터 글을 써 보라고 한다. 이건 꼭 소설이나 시나리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수필이든 일기든 지간에 전체 쓰고 싶은 글에서 가장 쓰고 싶은 부분부터 쓰는 것이다. 그 부분을 읽으니 갑자기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생각이 났다. 거기서보면 해리는 책을 읽을 때 맨 끝 페이지를 먼저 읽은 후 첫 페이지부터 읽는 버릇이 있다. 그러자 샐리는 왜 그렇게 하냐고 묻는다. 해리는 첫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하면 혹시 자신이 심장마비나 사고로 죽기라도 하면 맨 마지막 페이지는 못 읽게 되니 그러는 거라나 뭐라나.(워낙 본지가 오래라 정확히 옮기는 건 불가능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기가 막힌 장면을 염두에 두어두고 있는데 갑자기 죽게 된다면 이건 영구미제로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모든 컴퓨터엔 워드 기능이 있다. 이것은 자유로운 편집이 가능하다. 아주 오래 전,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는데, 마르셀 프루스트였는지, 제임스 조이스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암튼 원고를 보여주는데 그야말로 누더기였다. 노트에 메모를 길게 늘여 붙였는데 왜 그랬는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날은 그렇게 글을 쓰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나도 발단 쓰고, 전개 쓰다 정작 중요한 부분을 못 쓰고 중단했던 적이 너무 많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은 귀도 얇아 남의 말은 잘 듣는 편이다. 과거 나를 가르쳤던 글 선생님은 한 번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베껴 쓰기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고 했고, 어느 한 장면을 위해 앞뒤로 무엇인가 살을 붙이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난 이 책에서 이 두 가지만을 아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움이 느껴졌고, 당장이라도 해 보고 싶어졌다. 하긴, 글쓰기에 왕도가 어디 있겠는가? 내 나름대로 쓰면 그게 내 길인 거지.

 

그런데 작가는 또 말한다. 그렇게 못 쓰겠으면 쓰지 않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그래도 계속 쓰서 어떻게든 끝을 보는 것이 좋은지. 둘 다 나름에 일리는 있는데, 결국 저자가 내린 결론은 그래도 계속 써서 끝을 보라는 것이다. 안 쓰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글이라도 어떻게든 완성하면 후에 고칠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건 맞는 얘기다. 고칠 것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희망이 있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더불어 기억할 말은 그렇게라도 완성한 후에 그 다음에도 또 쓰고 싶어지냐고 묻는 것이다. 만일 또 쓰고 싶어지면 작가가 되는 것이고, 쓰고 싶지 않으면 작가는 내 길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고, 나의 사부가 했던 말씀이다(왜 그 말이 생각이 나는 것일까?).

 

아무튼 글쓰기에 관한 책은 정말 오랜만에 읽어보는데, 나름 알뜰살뜰 유용하게 잘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기력보충용으로 비타민 먹듯 한 번씩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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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5-26 19:10   좋아요 0 | URL
ㅎㅎ 이런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시다닛!
알겠습니다. 한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슴다.^^

마태우스 2018-05-26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용. 저도 겸직작가설에 동의합니다. 작가가 제일 잘 쓸 수 있는 건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쓸 때거든요. 교회소설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감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안팔리는 책을 마구 낼 때는 마감 정말 잘지켰어요. 근데 지금은...ㅠㅠ 1년 2년 늦는 건 일도 아니더군요. ㅠㅠ초심을 잃은 걸까요.

2018-05-26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7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5-26 1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괜찮은 영화나 드라마를 자기 식으로 베껴 써 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설로 옮겨보는 것이다.˝
- 이것 좋은 방법 같습니다. 저도 해 보고 싶군요.

˝책을 읽을 때 맨 끝 페이지를 먼저 읽은 후 첫 페이지부터 읽는 버릇이 있다.˝
- 제가 이미 종영된 드라마를 재방송 해 주는 채널이 있어서 시청할 때가 있는데 재미가 있더군요. 만약 부부의 이야기라면, 아 저렇게 해서 처음 만났구나 또는 저런 일이 있어서 헤어지게 되었구나 하고 끝 장면과 연결해서 보는 특별한 재미가 있더라고요.

˝베껴 쓰느라 에너지를 쓴다는 건 너무 힘들다.˝
- 저의 경우엔 필사를 많이 하지 않고 며칠에 한 문단 정도 베껴 쓰기를 한 적이 있어요. 지금도 신문의 칼럼을 읽고 맘에 드는 문단이 눈에 띄면 그 문단만(5~6줄) 필사해 둡니다. 그렇게 조금씩 해 놓아도 1년이 되면 꽤 많은 글 필사가 됩니다. 티끌모아 태산이 되어요. 힘 빠질 정도로 필사하는 건 저도 반대입니다.

stella.K 2018-05-26 19:34   좋아요 0 | URL
저는 벌써 정했습니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로 해 보기로.ㅋㅋ

정말 좋은 글만 베껴 쓰기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책 전체를 베껴 쓴다는 건 그냥 의무에 매여서 뭐가 좋은지 모르겠더군요.
제가 또 팔 힘이 약해서 서너 시간만 글을 써도 팔이 빠질 지경이라 꾸준히
할 자신도 없고. 저도 매일 조금씩이라도 해 봐야겠습니다.^^

서니데이 2018-05-27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손글씨를 매일 조금씩 쓰고 있는데, 글씨 쓰는 것에 신경을 쓰면 내용은 잘 기억이 남지 않는 것 같아요. 좋은 글을 필사해서 두면 나중에 읽어보면 좋다는 점은 있겠지만, 손글씨 쓰는 것이 시간도 많이 걸려서 워드로 작성하거나 아니면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필사하는 것을 하시니까, 아마도 제가 알지 못하는 좋은 점을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stella.K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편안한 하루 되세요.^^

stella.K 2018-05-27 18:37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그래요. 더구나 요즘엔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지라.
과연 필사가 필요한 건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안하는 것 보단 낫지 않을까요?
전체 필사는 필요가 없을 것 같고,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나
부분만 해도.
아니면 색인 카드가 더 유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무엇에 관한 것이 무슨 책 몇 페이지에 있다는 거요. 암튼...

요즘엔 마음 먹은 게 있어 주로 오전과 오후에 걸쳐 글을 쓰니까
서재에 글은 잘 안 쓰게 되더군요.
전에는 오후에 글을 쓰려고 하면 잘 안 잡혀서
대신 서재에 뭐라도 써야지 해서 쓰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일단 오전에 글을 쓰니까 좋긴한데 서니님과 멀어지는 것 같아
아쉽긴 하더군요.ㅠ
이해하시고 가급적 댓글 남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 한 주도 활기차시길...!^^

 

김해완 

1993년 12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3년에 한 번꼴로 수도권 이곳저곳으로 이사한 통에 이렇다 할 고향은 없다. 연구실이 있는 ‘남산’과 부모님이 농사짓는 ‘제천’이 현재 나의 베이스캠프다.착하지도 않은데 무슨 복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훌륭하신 부모님 밑에서 제멋대로 (긍정적인 의미^^) 자랐으며, 학교 다닐 때는 마음 따뜻한 친구들과 선생님들 속에서 비로소 인간이(?) 되었고, 학교 밖에서는 끝없는 배움을 베푸는 스승과 친구들을 만났다. 초반기에 이렇게 복을 많이 받았으니, 앞으로 수없이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

관심사는 잡다하다. 초딩 때는 퍼즐과 뜨개질과 만화책에, 중딩 때는 소설책, 수학문제와 홈베이킹에, 고딩 때는 기타와 작곡에 푹 빠졌었다. 아직도 만화책과 음악은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현재 할 줄 아는 것은 책 읽고 글 쓰는 것뿐이다. 여러 관심사 중에 하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 없이 그렇게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유를 하지 않으면 안 되고, 내가 사유한 딱 그만큼만 글이 나온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만큼 부끄럽고 또 자유로운 때가 없는 것 같다.

열일곱 살에 학교를 자퇴했고 그후 멋대로(?) ‘중졸백수’를 자처했다. 그때부터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았는데, 5년간 즐겁고도 ‘빡센’ 코스를 거치며 읽기, 쓰기, 살기를 동시에 배웠다. 현재 내 일상의 중심은 공부다. 하지만 이 공부는 시험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그 힘이 내 일상을 받쳐준다는 느낌이 든다. 매일매일 밥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되고, 내가 사유한 딱 그만큼만 글이 나온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만큼 부끄럽고 또 자유로운 때가 없는 것 같다.

정규코스에는 무관심한 성격 때문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 인복 하나는 많다. ‘방임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공부만큼은 늘 든든하게 지원해 주셨던 부모님, 학교 바깥에서 새로운 공부와 새로운 일상을 선물해 주었던 연구실의 선배들과 친구들.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게 되든, 내 인복을 믿고 있다.
학교와 집을 나온 십대 때 『다른 십대의 탄생』을 썼다. 이십대인 지금은 좀더 다양한 글쓰기, 다양한 언어와 만나볼 계획이다.

 

이런 저자 소개 마음에 든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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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숲 2018-05-1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해완
리좀, 나의 삶 나의 글이란 책을 아주 잘 읽었기에 기억해둔 이름이에요. 새책을 냈군요. 읽어보고싶네요.

stella.K 2018-05-12 18:34   좋아요 0 | URL
저자의 책을 읽어보셨군요.
젊은 사람이 아주 당차게 사는 것 같아
부럽기도하고 응원하고 싶더군요.^^

박균호 2018-05-12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는 이런 저자소개가 쓰기 귀찮아서 담 책에 그간 써온 책 제목만 나열하고 싶은데요...

stella.K 2018-05-12 18:38   좋아요 0 | URL
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작은 차이가 디테일을 만든다고
그건 일종의 작가의 특권이자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사는 동안 몇 권의 책을 내게될지
모르겠지만 책 낼 때마다 다르게 해 보고 싶습니다.ㅋ

페크pek0501 2018-05-16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부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밑천이 떨어진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독서 모임에 들었죠.

stella.K 2018-05-16 14: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런데 왜 나이들수록 공부한다는 게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늦은 나이에도 공부하는 사람 제 주위에서도 많이 보는데.
저도 용기를 내야겠어요.ㅋ

서니데이 2018-05-16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내용이 저자 소개인 거네요. 저는 이 책의 간단한 리뷰 정도로 생각했는데, 자세하게 쓴 자기소개서를 읽은 기분인데요. ^^

위의 페크님과의 대화를 읽으면서, 요즘은 전에 없었던 새로운 것이나, 변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공부를 한다고 해도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것이 많아서 보편적인 상식 정도를 최신버전으로 유지하는 만으로도 힘든 것 같아요. 이미 구버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사는 곳에는 점심 시간에 비가 많이왔어요.
저녁에는 조금씩 비가 옵니다.
stella.K님, 편안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stella.K 2018-05-17 15:18   좋아요 1 | URL
전 이런 저자 소개가 좋더라구요.
딱딱하지 않고, 개성 있어 좋잖아요.ㅎ

오늘도 비가 많이 왔어요.
꼭 봄장마 같아요. 한 몇 년 가뭄이었는데...
이런 예측불가능한 기후속에서 인간은 참 잘도
버티며 살아간다 싶어요.
어제는 천둥소리에 잠을 설쳤는데, 오늘 밤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서니님도 좋은 저녁 시간 되시길...^^

2018-05-21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1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
정강현 지음 / 푸른봄 / 201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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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해도 저자는 눈물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그러니까 제목을 그렇게 지었겠지.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자랄 때만해도 남자가 눈물이 많으면 안 된다고 했다. 오죽하면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했을까? 그만큼 인생에 있어 중요한 때를 간과하지 말고 울라는 뜻도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좀 바꿔도 되지 않을까? 울고 싶으면 수시로 울되 중요한 세 번은 지나치지 마라. 뭐 그런 뜻으로 말이다.(더구나 여자는 울어도 되고 남자는 울면 안 된다면 그건 사회적으로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불행한 사회인가.) 솔직히 어찌 어찌하다 보니 때를 놓치는 때도 많지 않은가.

 

저자는 기자면서 왜 그렇게 눈물에 관심이 많은 걸까?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서는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가 유독 많이 나온다. 하긴, 우리가 세월호를 어찌 있을 수 있을까? 저자는 기자로써 세월호를 취재하기도 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슬픈 소식을 들으면 그냥 울어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소식을 전하는 기자나 앵커는 울면 안 된다. 그러나 그 사건을 취재할 땐 아마도 우리 보다 몇 배의 눈물을 흘리고 삼키지 않았을까? 그것을 소회처럼 남겼다.

 

언젠가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돌이켜 보면 김대중이나 김영삼 대통령 때도 국가적으로 세월호만큼 재난이고 슬픈 일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땐 그냥 하나의 사건으로만 취급되어 건조하게 보도만하고 지나간 경우가 많았다고. 그래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보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삼풍백화점 붕괴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로부터 거의 20년 만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물론 그 사이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을 대하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더 이상 그것을 개인적 사고로만 보지 않게 된 것이다. 나도 당할 수 있다는 자각이 생긴 것이다.

 

세월호는 분명 가슴 아픈 사건이지만 그 토록이나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슬퍼했다는 건 내 이웃의 아픔을 끌어안았다는 말도 될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일에 같이 아파하고 울어주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 사회는 분명 좋은 사회고, 건강한 사회가 될 확률이 높다고 믿는다.

 

이 책 어딘가 에도 저자가 그런 말을 한다. 눈물방이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피시방, 비디오방처럼 눈물방이라는 걸 만들어서 편히 몸을 기댈 수 있는 소파에다 각 티슈 몇 통 갖다놓고, 종업원은 손님의 울고 싶은 심경을 건드리지 않게 최소한의 안내만 한다. “한 시간 동안 우는 데 삼천 원입니다. 필요하시면 함께 울어드리는 서비스도 있습니다.”라고. 현실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법 그럴 듯하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 지하철을 타고가다 어떤 젊은 아가씨가 전동차 출입구에 기대서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럽게 우는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게 벌써 10년쯤 된 일이었던 것도 같은데, 그녀는 왜 우는 걸까? 아는 사이라면 어깨라도 빌려줬을 텐데, 오히려 무심한 척 외면하려니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성경에도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했고, 잔칫집 가기를 바라지 말고 초상집 가기를 더 바라란 말도 있다. 모든 사람이 지하철과 버스만 타면 다 스마트폰만 보고, 졸고 있는 것 같아도, 또 많은 사람이 안구건조증에 시달리는 것 같아도 누군가는 그렇게 울고 있는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상해 보라. 백만 년 후의 사람들은 눈에 눈물샘이 퇴화되어 웃기는 하는데 우는 것을 모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지.

 

저자는 기자란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기자라는 완장을 떼고 온전히 인간으로 돌아가 쓴 저자의 에세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그것도 이제 40대에 든 남자의 인생 고백이 들어있다.

 

나도 40대 이전을 생각해 본다. 20대는 좌충우돌이 많았고, 그나마 30대쯤 되니 비로소 세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나놓고 보면 30대 때 세상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자존심이 팽팽했던 시절이었다. 나만 세상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세대를 살고 있는 선후배들 역시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으니 그 안에서 얼마나 자존심의 싸움이 치열했던가. 그게 언제까지나 계속 된다면 난 오늘 이렇게 한가하게 이 책의 리뷰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40대는 확실히 꺾였다. 옛날 같이 피터지게 싸울 힘도 자존심도 없다. 뭔지 긍휼에 눈이 뜨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평생 미워할 것만 같은 사람도 (물론 여전히 밉겠지만)너도 사느라 힘들겠구나 조금은 한숨 지어줄 생각이 드는 나이가 40대는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거기에 계셔줄 것 같은 부모가 정말 늙으셨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는 나이도 40대다. 그래서 저자는 세월호에 대한 단상 못지않게 부모에 관한 속내를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저자가 부모가 되고 보니 자신의 부모가 더 선명히 보이는 것이다.

 

인생은 살아지는 것 같아도 사느라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살아야 하는지 때로 미친 척이라도 해서 짐을 털어버리고 일탈을 꿈꿔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으련만, 꾸역꾸역 살아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 힘들게 살지 말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냥 말없이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도 40이란 나이에 들어서면서부터가 아닐까. 40대를 이 책에서 발견하고, 독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잘 건너오시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밖에 책이 못지않게 할애한 건 문학과 음악에 대한 단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3분의 1씩을 할애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월호를 빙자해 자신의 일에 관한 이야기/ ()부모와 가장으로서의 이야기/ 취민지 투잡인지 모를 팟캐스트 운영자로서 문학과 음악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중간 중간 끼어드는 저자의 단상들로 구성된. 그렇게 되면 4분의 1이 되는 건가? 아무튼.

 

기자가 문학에 관한 글을 쓰면 꽤 흥미롭다. 작가나 기타 문학 종사자들이 문학 작품을 쓰는 것 하고는 확실히 다른 맛이 있다. 이 책도 그랬다. 모르긴 해도 작가는 한때 작가를 꿈꾸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문학에 관한 애정이 느껴지고 실제로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작가는 무엇으로 글을 쓰는가? 나는 오래도록 분노가 너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 것이라던 나의 사부님의 말씀을 철석 같이 믿었고, 나는 그것으로 세례를 받았다. 나는 여전히 그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요즘은 좀 달라졌다. 분노만이 글을 쓰게 만드는 건 아닌 것 같다. 길은 여러 가지가 있지 않을까? 그중 하나가 분노겠지.

 

저자는 작가를 꿈꾸기 전에, 기자가 되기 전에 오래 전부터 독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소설과 시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는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게 좋은 소설이란 가장 잘 아파하는 소설이다. 그러니까 타인의 고통을 잘 느끼는 작가가 등장인물의 아픔 속으로 깊이 들어간 소설이, 나는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 그렇게 인물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는데, 좋은 소설은 그 이해의 공감대가 넓고 깊게 형성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106~107p)

 

이 말을 후에 유안진 시인과의 인터뷰에서 뒷받침 해주고 있기도 한데, 유 시인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시인은 져야 합니다. 져줘야 이기는 게 시거든요. 지는 건 진실이고 이기는 건 사실이죠. 역사(사실)는 승자의 기록이고 문학(진실)은 패자의 기록이잖아요. 진실을 아름답게 지켜내는 게 문학이죠.” 그리고 저자는 이 말 끝에 이런 말을 남긴다. 진실이 패자의 기록이란 말은, 진실이란 결국 패배한 이들에게서 길어낼 수 있다는 뜻일 테다. 또한 좋은 소설에는 좋은 대화가 있다고 했다. 좋은 대화는 소설의 이야기를 확장시키면서, 동시에 삶의 진실을 가장 나긋나긋한 방식으로 일러주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저자는 베스트셀러는 잘 읽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온전한 책의 힘이 아니라, 잘 설계된 기획의 산물처럼 여겨져서라고 한다. 출판시장에서, 잘 기획된 책은 잘 쓴 책을 자주 이긴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취향에서, 잘 쓴 책은 잘 기획된 책을 항상 이기고야 만다고 했다. 이게 다 책은 단순한 글 묶음 상품이 아니라, 글 그 자체여야 한다는 편견 때문이며 당분간 그 편견을 고칠 생각이 없다고 단언한다.

 

이런 독자를 단 한 사람만 알고 있어도 작가는 글을 쓰는데 힘이 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자신의 글을 쓰기도 전에 세상의 잘 기획되고 편집된 글에 목을 매는지. 또한 독자는 요즘 잘 나가는 책이 뭔지를 알아 스스로의 선택을 유보하거나 불신하는지. 작가도 글을 쓰는데 자기 철학이 있어야하듯, 독자도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자기 철학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러면 더 좋은 책 세상이 될 텐데. 너무 우주적인 바람을 갖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안진 시인의 말처럼, 기자 역시 승자의 기록이나 쓰는 역사가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약하고, 소외되고, 문제 많은 곳을 건드려주고 보여주는 게 기자 정신에 더 부합되지 않을까? 저자는 그런 낮은 곳을 볼 줄 아는 따뜻한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같아 흐뭇했다. 또한 이곳저곳 밑줄 긋다 나중엔 그것을 포기했다. 공감하고 생각할 문장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 세월호로 돌아가서, 마침 오늘 세월호가 똑바로 세워졌다는 뉴스 속보를 보았다. 무려 4년의 일이다. 기울어졌던 세월호를 바로 세우는데 왜 그처럼 많은 세월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앞서 같이 흘릴 수 있는 눈물이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좋은 사회, 건강한 공동체로 나가는 징조라고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린 그 사건으로 인해 이미 너무 많은 가족들이 상처를 받았다. 국가가 국민과 가족의 안위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함께 흘리는 눈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난 4년 동안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난 아무런 답도 달지 못했다. 사실은 그런 불행한 일에 함께 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나눌 좋은 일이 더 많아 함께 웃을 수 있으면 그게 더 좋은 일 아닌가.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 글제목은 줄리아하트 밴드가 부른 <당신은 울기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 제목을 그대로 옮겼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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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5-10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물만큼, 아픈 만큼 사유가 깊어질 것이라 해도 역시 우린 행복의 길을 지향하죠.
더 이상 슬픈 사고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국민이 흘린 눈물 중 세월호로 흘린 눈물이 가장 많지 않았을까 싶어요.

stella.K 2018-05-11 15: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전에도 이후에도 사건 사고가 많았는데
유독 세월호는 쉬 잊히지 않는 건 왠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미처 다 피워보지 못한 아이들이 많이
희생되서 일까요?
함께 나눌 수 있는 행복과 기쁨이 충만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ㅠ

hnine 2018-05-10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인용한 유안진 시인의 말이 명언이네요.

stella.K 2018-05-11 15:48   좋아요 0 | URL
h님 좀 생뚱맞지만 나중에 기회되시면
<미스티>라는 드라마 한 번 보세요.
거기서도 보면 사실과 진실이 뭐냐는 사유가
미스터리하게 펼쳐지는데 정말 잘 만든 드라마예요. 흐흐
 

 

이책을 읽고 뜻이 있어서(읭?) 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미 밝힌 바도 있지만 블로그 활동을 하고 리뷰를 비롯해 이런 저런 낙서 같은 잡글을 많이 쓰다보니 굳이 일기를 따로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뭐 때문인지 이책을 읽고부터는 꼬박꼬박 읽기를 쓰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일기 쓰기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내가 오래동안 일기를 쓰지 않은 이유중 하나는 뭔가를 남겨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워서다. 내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될 때 누구더러 내 일기장을 치워 달라고 부탁을 하겠는가? 나의 흔적을 가급적 남기지 않거나, 그럴 수 없다면 최대한 적게 남겨야 할 것 같고 그렇다면 일기장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내가 다시 볼 것도 아니고. 그래서 진짜 사춘기 때부터 모아 온 일기장이 못해도 내 허리춤 정도까지 올라와 있는데 거의 보지 않고 옷장 바닥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평생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걸 볼 일이 생겼다. 사실 난 지금 자의반, 타의반해서 뭔가를 쓰고 있는 중인데(이거 정말 지겹게 진도가 안 나간다.ㅠ) 갑자기 어제 글이 막힌 것이다. 온전히 기억에 의지해서 쓰려니 글이 자꾸만 꼬이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몇번의 고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마다 일기를 꺼내 볼까 하다가 그냥 넘기곤 했다.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잘못 기억하는 나도 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는 왠지 그러면 안될 것만 같았다. 그 부분은 뭔가 정확한 근거가 필요한듯 해서 결국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보았다. 무려 19년 전. 그러니까 밀레니엄 한 해 전에 썼던 일기장이다.

 

그런데 진짜 낯설다. 내가 정말 이랬었단 말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나는 이 무렵 <발자크 평전>을 읽고 있었나, 본데 나름 꽤 흥미롭게 읽고 있었나 보다. 

 

"츠바이크의 발자크에 대한 애정이 그가 쓴 평전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츠바이크)는 참 섬세한 사람이겠구나란 생각이든다. 그리고 발자크를 읽으면, 작가는 모름지기 이래야하지 않나란 생각과. 누가 과연 사람들로부터 역사로부터 사랑을 받을 사람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난 이렇게 천천히 읽어낼 수 있는 책을 얼마나 좋아하게 됐는지?

벌써 이 책을 손에 쥔지가 3주가 지나간다.

아직 반도 못 읽었는데..."           

                                                     -10월 13일-

 

"...... <발자크 평전>을 너무 오래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까지 꼭 한 달이 됐는데, 이제 겨우 반 조금 더 읽었다. 빨리 읽어야겠다.

                                                    -10월 30일-

부지런히 읽으면 이번 주 안에 <발자크 평전>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천천히 읽는 것도 좋지만 게으름 때문이라면 재고해 볼 일이다. 너무 오래 읽으면 오히려 그 흐름을 자칫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책이 그랬다.

                                                   -11월 10일-

 

푸하하~ 난 과연 내가 내 책에 무슨 짓을했던 걸까? 지금 하나 기억하는 건 난 그때 <츠바이크 평전>을 무지 지루하게 읽었다는 거다. 우연히 그가 쓴 단편소설 <체스>가 좋아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몇 권인가의 책을 읽었고, 그중 하나가 이 책이다. 너무 꼼꼼히 써서 지루했던 책.

 

일기장을 아직 다 읽지는 않았만 그때 나는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 쓰면서 살았던 것 같다. 누군가는 그랬지. 사람과 그림은 한 발 떨어져서 보는 것이 좋다고.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교회라고 해서 다니기 시작했데 그 안을 들어가 보니 부조리한 것들 뿐이고, 온통 분노만이 가득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한 목사에 의해 교회 조직에서 퇴출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니까. 분노와 회의로 점철된 일기가 이 한 권의 일기장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어떻게 그 시절을 견뎠는지 모르겠다.

 

그때를 견딜 수 있었던 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던 것 같다. 분노가 글을 쓰게 할 거라는 나의 사부의 말은 결코 빚나가지 않았다. 물론 난 교회에서 글을 쓰기도 했지만 그건 그저 내게 주어진 일 뿐이었고, 내가 교회에서 겪고 보았던 모든 부조리들을 글로 쓰겠다고 간간히 그 착상과 구성을 적어 두기도 했다. 하지만 난 지금 그 작품 중 하나도 글로 쓰지 못했다. 쓰다가 포기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예배와 성경 공부 외엔 교회에서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 그건 곧 내가 분노할 일이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글쎄... 내가 지금 또 어딘가에 소속이 되서 봉사를 하게 된다면 예전 같은 분노가 되살아날까? 하지만 난 이제 분노로 나 자신을 소모시키지 않고 싶다는 것이다. 누구는 분노하라고 했지만 난 할 수만 있으면 분노하고 싶지 않고, 그것을 할 상황이라면 외면하고 피해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 시절 미처 다 해결하지 못한 분노는 어떤 식으로든 보상하고 싶고, 해결하고 싶다. 그래서 난 그것을 위해 이 일기장을 펼친 것이기도 하고.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하겠는가.

 

요즘 난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란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정말 다 읽기가 아까울 정도로 좋은 책이다. 처음엔 무슨 젊은 아빠의 육아 일기 같은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모 방송국 기자의 에세이다. 처음엔 뭐 젊은 사람이 글을 이렇게 잘 써? 시샘이 났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 밖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기는 또 얼마만인가? 새삼 헤아려보게도 된다.

 

 

 

읽다보면 거의 말미에 오은 시인의 '분더킴머'란 시를 만날 수 있다. 잠시 소개를 해 보면,

 

      빛나가면서 빗나갈 때

     뒤쳐지면서 뒤쳐질 때

      (...) 

     눈을 감아도 내가 보인다

                      너희들이 빤히 보인다

                       (....)

                      내 앞에 도래하는 백지상태의 내일 앞에서

 

참고로 분더킴머는 독일어로 '놀라운 것들의 방'이라는 뜻이란다. 즉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에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려고 자신들의 방에 물건을 수집했는데, 그런 방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오은 시인은 1984년 생으로 지금 한창 치열한 30대를 살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녀가 실제로 지금 치열한 삶을 사는 지 난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 시가 실린 시집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그것을 뒷바침 해 주는 것도 같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의 제목은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입니다. 이걸 오은 식으로 읽어볼까요. 분위기를 분(憤) 위기(危機)로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분위기'를 읽어 본다면, 위기를 괴로워하다는 뜻이 되겠죠. 위기를 괴로워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청춘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서른 즈음의 우리는 위기를 괴로워하기를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메시지로 읽으면 어떨까요.  (253~254p)

 

그래. 밀레니엄 한 해 전의 나도 분(憤)위기(危機)를 사랑했던 30대였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 그때를 참 잘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고, 위의 글이 선물 같이 읽혀지기도 한다.      

 

결국 난 글을 쓰려면 이 일기장을 토대로 내 빈약한 기억력을 더듬어 쓸 수 밖에 없다. 이 일기장엔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의 타계 소식도 씌여있고, 고 신해철에 관한 기사를 읽고 쓴 글도 보인다. 내가 그렇게 꼼꼼한 사람이 못 되는데 이런 것도 썼나 신기방기 할뿐이다.  

 

이 일기장이 그나마 내 빈약한 기억력에 힘을 불어 넣어 준다. 다시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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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5-0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앞으로도 일기장에 쓰시는 건가요, 아니면 서재에 쓰셔서 저도 읽어볼 수 있게 되는 건가요? ㅎㅎㅎㅎㅎ

아참, 그리고 오은 시인은 남자입니다^-^ 웹툰 마음의 소리 조석 작가님이랑 비슷하게 생기신ㅎㅎㅎ

stella.K 2018-05-09 14:56   좋아요 0 | URL
스요님 100점!
잘 하셨습니다. 이래야 소통하는 맛이나죠.ㅎㅎㅎㅎ

와, 근데 오은이 남자였어요? 전 여잔 줄 알았어요.
안 알려주셨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ㅋ
이 사람이 그렇게 똑똑하다면서요?
이 책 보고 알았습니다.^^

cyrus 2018-05-08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리뷰도 일기라고 생각하면서 써요. 책 읽으면서 생각하고 느낀 감정을 기록하면 머릿속에 남는 게 있거든요. 물론 완전히 기억하진 못해요. ^^;;

stella.K 2018-05-09 14:58   좋아요 0 | URL
그래. 좋아. 그런데 나중에 꼭 한 번 다시 봐봐.
또 다른 너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프레이야 2018-05-08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 담아갑니다.
지난 일기장을 읽어보는 기분, 알지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나 봅니다.^^

stella.K 2018-05-09 15:04   좋아요 0 | URL
띠지에 젊은 남자 사진이 있어서
꼭 직장팜의 유아분투기, 뭐 그런 건 줄 알았어요.
근데 진짜 글 잘 써요. 부럽더라구요.ㅠ

맞아요. 우선 그때의 글씨체와 지금의 글씨체가
변한 게 없어서 놀랐고, 그때 고민하던 걸
지금은 고민하지 않지만 해결이 되서 고민을 안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더라구요.
처음엔 19년 전 나를 보는 것이 놀랍긴 하지만 이내 익숙하더라구요.
역시 나는 나 같습니다.ㅎㅎ

2018-05-08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5-09 15:06   좋아요 1 | URL
전 가끔 궁금했습니다. 일기는 잘 쓰고 계시는지...?
잘 쓰고 계시죠?ㅎ

그렇게 짜내는데 그렇게 잘 쓰신단 말씀입니까? 췟!ㅋㅋ

hnine 2018-05-08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강현 기자는 JTBC 정치부회의라는 뉴스에서 반장을 맡고 있어요. 저는 이분이 팟캐스트 진행할때 처음 알게 되었는데 (지금은 종료되어서 아쉽지요) 소설도 낸 경력이 있고, 글솜씨가 없을리 없는 경력을 이미 갖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stella.K 2018-05-09 15:09   좋아요 0 | URL
제가 뉴스는 KBS만 보는지라 종편은 잘 몰라요.
그럴 줄 알았으면 정말 볼 걸 그랬습니다.
이 사람 정말 맘에 들어요.
그렇지 않아도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이 책 h님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

페크pek0501 2018-05-08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내가 이런 글을 썼네, 하면서 저도 제 일기장을 보고 놀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낯설지요.
흔한 말로,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 가 되겠습니다.
스텔라 님은 일기를 많이 보관해 놓으셨군요. 잘하신 것 같습니다.

stella.K 2018-05-09 15:16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잘 못 버리는 스타일이라 그래요.
다시 볼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기억이란 게 참 빈약하더군요.
그러면서 기억력 좋다고 자랑하면 안 되겠어요.ㅎㅎ
하지만 기억과 추억 또는 회상은 다른 것이고
설혹 다르게 기억하더라도 그것도 나라고 생각해요.
언니도 일기 많이 쓰셨죠?^^

blanca 2018-05-09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기장에 대한 소회가 스텔라님과 같아 안쓴 지 꽤 되었어요. 그런데 좀 아쉽기도 하고... 아직은 일기에 대한 제 마음이 잘 정리가 안 된 것 같아요.

stella.K 2018-05-09 15:19   좋아요 0 | URL
ㅎㅎ 언제고 다시 쓰세요.
일기는 원래 쓰고 있는 동안은 잘 정리 안 되는 거예요.
그냥 어느 날 문득 잊고 있었던 나를 꺼내 보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조심하세요. 그런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랄지도 몰라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