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위한 집필 안내서 -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던 작가와 출판에 대한 이야기
정혜윤 지음 / SISO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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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운이 좋아서 책을 냈다. 책을 내려면 여기저기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데 난 그런 과정 없이 출판사로부터 먼저 제안을 받았으니 얼마나 좋은가? 물론 난 아직 인생작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작가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책을 한번쯤 내봤고, 원고료를 받아 본 적이 있다는 점에서 작가라고 생각한다.

 

책을 내봤더니 나는 어떤 과정으로 내 글을 세상에 알리고 작가로 인정받기를 바라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작가들 그들도 처음은 있을진대 어떤 과정을 통해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글을 끼적이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어떤 출판업자나 편집자의 눈에 띄어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마치 어느 연예인이 길거리 캐스팅 당해 연예의 길로 들어섰다는 고백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 같이 책을 내기위해 무수히 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했다는 고백을 들었다. 앞서 말한 경우는 정말 드문 경우고, 난 그 드문 경우로 그 꿈을 이루긴 했지만 언제까지 꿈만 꿀 수는 없었다.

 

꿈은 빨리 깰수록 좋다. 뭐든지 첫 번이 어렵고, 시작이 반이라지만 내가 첫 번째 책을 수월하게 냈다고 요즘의 출판 시장 상황을 볼 때 두 번째, 세 번째 책도 수월하게 낼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나의 책을 내준 출판사에서 또 내 책을 내준다는 보장도 못한다. 그렇다고 성격이 좋아 아무 출판사나 턱턱 문을 두들겨보는 배포도 타고나지도 못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책이 이 책이다. 담력 키우기용이라고나 할까?

 

물론 난 자계서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그런 책들이 있긴 하다. 글쓰기를 자기계발로 연결시키는 책. 그래서 마치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내면 인생이 달라질 것처럼 말하는 책 말이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난 그런 책들 믿지 않는다. 구라치는 게 환히 보이니까. 하루에도 몇 십 종의 신간들이 나왔다가 사라진다. 물론 책은 안 내는 것보다 내는 것이 좋긴 하지만, 이제 겨우 책 한 권 낸 걸 가지고 누가 알아봐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책 낸 기분을 한 달 넘게 유지했던 나는 (물론 그럴 만 했겠지만)어찌 보면 철딱서니가 없었다. 그래도 그런 나를 용서한다. 첫 책 아닌가, 첫 책.

 

작가는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역작을 내고 안 내고 보다는 인지도와의 싸움인 것 같다. 꾸준히 성실하게 책을 낼 수 있는 힘 말이다. 그런 말을 들었다. 한 두 권의 책 가지고 알아봐 주길 기대하지 말라고. 적어도 다섯 권 이상은 내야 비로소 독자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고, 그러는 중에 처녀작이나 초기작도 재조명 받는다고. 맞는 얘기 같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읽고 리뷰 한다는 명분이 있어 그렇지 이젠 어디가 첫 책 나왔다고 자랑도 못한다.

 

이 책에서도 그런 말을 하고 있는데, 책을 내려거든 반드시 기획안을 제출한다.

그건 당연하면서도 상당히 중요한 말 같다. 첫 책을 내기 전, 나는 막연히 글만 잘 쓰면 작가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 만큼 처음 출간 제안에 동의했을 때 난 제안서를 쓰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이게 꼭 필요하겠다는 걸 거의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건 또 오래 전, 시나리오를 공부할 때 과정 중에 피팅 실습이라는 게 있었다. 즉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어느 영화사를 찾아가 관계자들 앞에서 설명하고 세일즈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다. 짧고, 간결하며, 임팩트 있는 것을 좋아한다. 출판사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해 주었더니 꽤 흡족해 하는 눈치였다. 이걸 모르면 하나부터 상대 쪽에서 열까지 말해야 하고, 가르쳐 줘야한다. 꽤 성가신 일이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배우는 것이긴 하지만.

 

작가가 실제로 책을 낸다고 하면 별로 내키지 않은 일을 할 때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를테면 개인주의적이고, 내성적이어서 자신을 드러내는 걸 잘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자계서 전문작가들이나 강의전문 작가는 안 그렇겠지만, 문학을 하는 작가들 중에 그런 은둔형 작가들이 있다. 내가 좀 그런 스타일이긴 하다. 내는 과정에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내키지 않거나 긴장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독자와의 만남이나 방송 출연이다. 예전 아날로그 시절엔 작가가 독자를 만나는 일이 그렇게 흔하진 않았던 것 같다. 작가는 오로지 글로 승부한다는 뭐 그런 가오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를 맞고, SNS가 활성화되면서 이젠 작가가 마케팅 전면에 나서는 시대가 됐다. 천성적으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면 상관이 없겠는데, 일일이 쫓아다니고, 만나주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것도 일이겠구나 싶다. 그것이 안 맞는 사람은 얼마나 쑥스럽고 버거운 일인가? 그러나 그것이 인지도를 쌓고,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면 안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내 책을 내준 출판사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건 맞는 것 같다. 때로 나를 마케팅하고, 세일즈 할 줄 알아야 작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지적이 있지만, 책을 내려면 필히 편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전에 그런 말을 듣긴 했다. 편집을 하려고 하면 전투적으로 쌍심지 켜는 작가가 있다고. 요즘도 그런 작가가 있는가 보다. 사실 이 말은 양쪽 말을 들어봐야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아는 작가는 편집자들 중엔 더러 까칠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런 걸 볼 때 작가와 편집자 사이에 묘한 이상 기류가 존재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다. 그렇게 자존심만 앞세우고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으면 어떤 출판사도 책을 내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인쇄만 해서 소장만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 소통을 해야 할 텐데 말이다.

 

난 첫 책이라 뭘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편집자의 편집권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상대도 내 글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최대한 그것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내 책은 오타나 어색한 문장 외에는 크게 고친 것이 없었다. 책이라는 것도 협업이고, 인간이하는 일인 만큼 불필요한 기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 책이 누군가에 의해 조금이라도 더 좋아져 독자들이 편하게 볼 수만 있다면 좋은 거 아닌가? 물론 이것만큼은 작가로서 포기할 수 없는 게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건 최대한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자세가 돼야할 것이다. 사람들과 두루 잘 사귀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원고는 작가의 품을 떠나면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 모르겠다. 더 나이 들어 책을 낼 기회가 있으면 노욕이 들어 못된 마귀 할멈 역을 자처할지. 그러기 전에 미리 미리 수양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거절에 익숙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도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책은 편안한 답을 준다. 그럴 경우 자신의 원고가 무엇이 문제인지 겸손히 조언을 구하고, 문제점을 보완해 후에 또 두드려 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들 중엔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그 반대로 자나치게 자존심이 세서 그렇게 해 볼 엄두를 못 내기도 하는데 그래봐야 자기 손해다. 또한 출판사마다 전문 분야가 있는데 자신의 원고가 어떤지에 따라 서점에 가서 50개 정도의 출판사 이메일 리스트를 만들어서 그렇게 출간 기획서와 함께 원고의 일부를 보내보라고 한다. 상당히 실제적인 조언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라는 말은 맞는 말 같다.

 

앞서도 말했지만 요즘은 작가도 어느 정도 마케팅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출판사에선 그런 것도 본단다. 그 작가가 SNS 활동을 하고 있는지, 팔로워들과 어느 정도 소통을 하고 있는지 등등. 작가의 입장에선 좀 뜨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출판사도 작가에 대해 모든 것을 다 해 주지 않겠다는 심산으로도 읽히고, 손해 보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읽히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내 책이 출판된 이후 얼마나 애지중지 돌봤는가를 생각하면 할 말이 없다. 보통 작가가 책을 쓰는 과정을 애를 낳는 과정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출판사는 산부인과 병원이고, 편집자는 조산사쯤 될 것이다. 그들은 어느 일정 부분만 도와줄 수 있다. 그것을 돌봐야 하는 사람은 결국 작간데, 작가 역시 낳기만 하고 나 몰라라 하면 내 책은 버림받은 아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게다가 보통은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이라고, 자기가 자기 책 자랑하면 꽤 쑥스러워 한다. 그게 유교적 사고방식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별로 바람직 한 것 같지는 않다.

 

나 역시도 블로그 활동 중에 출간 제의를 받았고, 책을 냈다. 사실 유명 작가일수록 또 그것에 가까울수록 블로그 활동을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 역시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 어떤 블로거는 자기 글은 올리면서 댓글 창을 막아놓기도 하는데 SNS는 소통이다. 그런 블로거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고, 실제로 블로그 활동을 하다보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보단 유익한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그런 폐쇄적인 블로그를 보면 나 또한 마음이 가지 않아 아무리 좋은 글을 봐도 지나치거나 좋아요 누르기가 싫어진다. 나도 이럴 진데 출판사야 얼마나 꼼꼼히 따지겠는가?

 

출판 시장은 내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호황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안에 드는 출판 대국이라고 한다. 이 책도 출판 시장에 대해 우려하는 말을 하긴 한다. 그렇게 출판 대국이어서 읽을 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풍성해졌는데도 책은 여전히 읽는 사람만 읽는다고. 하지만 저자는 이런 형상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 하기 나름이란 뜻이겠지.

 

사실 이제까지 작가는 출판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든 신선처럼 뒷짐 지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집필의 기술이 아니라 집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쓴 책이다. 그래서일까? 이제까지의 작가의 자세 대해 반성을 촉구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같은 출판인의 마음이 되어보라고 하는 것 같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참고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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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7-06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인이 책을 내기 위해 준비한 적이 있어요. 그 분은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는데, 잘 썼어요. 그 분이 출판하려는 책이 자서전 형식의 에세이였어요. 그 분이랑 연락 안 하고 지낸 지 오래됐어요. 책이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

아무리 글을 잘 쓰더라도 댓글 기능을 막은 블로거, 자신의 글 내용에 대한 이견에 반응하지 않는 블로거의 글은 보고 싶지 않아요. 《리뷰 쓰는 법》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이견이나 비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면서 글을 쓰고 싶다면 공개하지 말라고요. 그렇지만 비판을 피하는 사람들은 자기 글을 공개하려고 해요. 상대방이 비판을 하든 말든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는 태도예요. 그러면 저는 ‘친구‘ 해제하고, 그 사람이 쓴 글 안 봐요.

stella.K 2018-07-08 14:38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책 내기가 쉽지가 않아.
사람들이 워낙 글을 읽지 않으니.
작가의 글이 아무리 좋아도 출판사가 안는 리스크가
없다고 볼 수 없지.
나야 출판사 사장하고 그전부터 친분이 있고
내 글을 좋게 봐줘서 그저 감사할 뿐이고...ㅠ

책에도 출판을 어떻게 할 거냐가 나와 있어.
출판사가 전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자비출판도 있고. 이 둘을 절충하는 방법도 있더군.
우리나란 아직 자비출판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않아.
그저 친지끼리 나눠 볼 마음이라면 모를까
오죽하면 자비 출판이냐란 생각이 있는 것 같아.
그렇다면 첫번째나 세번째가 유력하겠지.

그런 사람이 좀 안타깝긴 한데 그 사람은 또 어딘가에선
소통하고 살겠지 그래.
보통 하나 이상 블로깅하잖아.
난 주로 여기서 활동하지만 몇군데 더 있긴 하거든.ㅋ

2018-07-07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7-08 14:44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저도 알라디너들의 덕을 많이 봤죠.
지금도 생각하면 늘 고마운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전 생각하시는 게 있으시면 계속 책을 내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론 사진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뀔거라고 봐요.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하시잖아요.
책 사진책 기대됩니다. 꼭 내주세요.^^

syo 2018-07-07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미 작가‘님이 이런 책을 읽으시면 그건 일종의 반칙인가요, 반칙이 아닌가요.....

stella.K 2018-07-08 14:47   좋아요 0 | URL
스요님도 책 한 권 내시죠.
자질이 충분한데!ㅋㅋ

공부는 잘 하고 계시죠?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겠어요. 횟팅입니다!^^

syo 2018-07-08 20:58   좋아요 1 | URL
아이쿠 별 말씀을요 ㅎㅎㅎㅎ
공부는 한다고 하고 있으나 해도해도 불안하네요 ㅎ 스텔라님 응원 기운 받아서 열심히 해볼게요

2018-07-08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8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ckrain 2019-09-2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님답게 글을 참 잘 쓰신 것 같아요.
사소한 건데, ‘출판사로부터 먼저 제안을 받았으니 얼마나 좋은가‘라는 부분은 말이죠. ‘출판사에게 먼저 제안을 받았으니~~‘로 쓰시는 게 맞습니다.

stella.K 2019-09-26 15:52   좋아요 0 | URL
아유, 뭘요. 벌써 오래된 이야기인 걸요.ㅠ
고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장마철을 맞았다.

어제는 정말 쉴새없이 비가 왔다. 오늘은 그나마 간혹 비가 안 오는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제와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장마철만 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면 이 영화가 아닐까 한다.

 

사람은 똑똑한 존재다. 사람은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개발해 나가니 말이다.

 

지루한 장마철 이런 영화 한편쯤 나와줘야 그나마 견딜 수 있지 않을까? 보고 있으면 지루하고 꿉꿉한 장마도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그건 어쩌면 사람이 상상력이 많고, 낭만을 추구하는 존재기 때문일 것이다.

 

             

                

알고봤더니 오리지널 원작이 2004년이다. 그리고 작년에 한국판이 나왔다. 일본판을 나도 보긴 했지만 내용은 거의 기억엔 없지만 괜찮게 본 기억은 있다. 한국판도 나쁘지 않다. 간간히 보여지는 코믹스런 부분이 좀 억지스럽진 않을까 했는데 그렇지도 않다. 장마철에 찾아 온 죽은 엄마가 그것이 끝나면 돌아가야 하는 이별의 장면 역시 지나치게 눈물샘을 자극시키지 않아 편했다.  

 

그래도 보면서 나도 죽음으로 그동안 헤어진 가족들과 친지들을 이렇게 어느 한철만이라도 만나봤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코 그럴 수 없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보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이런 공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채워주지 않는가?

 

하지만 역시 인간의 죽음을 목도하는 건 한번으로 족한 것 같다. 일본판이나 한국판이나 죽은 아내가 다시 깨어나는 장면은 그런 장치가 하나도 없는데도 약간은 섬짓하다. 아무리 죽은 펭귄 엄마의 이야기를 브리지로 넣는다고 해도 저 세상에서 다시 돌아 온 죽은 엄마 또는 아내를 어떻게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랑하고 함께 생활할 수 있을까? 돌아간지 오래된 아버지나 오빠가 영화에서처럼 돌아온다면 난 오히려 기절할 것 같다. 평소에 그토록이나 보고 싶어했으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건, 죽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죽음을 몰랐던 그 시절은 아니었을까? 가끔 망자가 꿈에 나타나도 반가워 하기보다 이게 길몽이냐 흉몽이냐고 가름하는 게 인간 아닌가? 하지만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이 영화는 똑똑한 영화인지도 모른다. 죽음으로인해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을 이런 식으로 소환해 관객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유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크게 교훈되는 건 없지만(있다면 있을 때 잘 해 정도가 될까?) 이런 습도가 높은 날 낭만이 필요하다면 한번쯤 소환해서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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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7-02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때의 다케우치 요코는 최고였습니다.^^

stella.K 2018-07-03 10:48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가요? 전 일본 배우는 잘 몰라서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손예진도 볼만해요. 비교해서 보시면...^^

Nussbaum 2018-07-02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목만 같은 줄 알았는데 리메이크였군요.

제 생각에는 원작이 더 나을 것 같은데, 또 모르는 일이겠지요. 문득 그 시간으로 돌아가봅니다.


stella.K 2018-07-03 10:52   좋아요 0 | URL
리메이크작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낮은 편이긴 한데
이 영화는 나름 높은 편이더군요.
저도 별 3개 반은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가 아기자기하고 좋아요.
빈티지한 느낌의 배경도 좋고.
좋아하실 것 같은데...^^

2018-07-02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7-03 10:58   좋아요 1 | URL
칭찬이시죠?ㅎㅎ
일본은 그게 부럽더군요.
소재의 다양함? 뭐 그런 거...
뭘 가지고도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요.
우리나라도 비를 소재로한 작품이 있긴하죠.
호우시절! 봤는지 안 봤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ㅋ
함 보세요. 괜찮은 영화예요.^^

cyrus 2018-07-03 0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숭이 손》이라는 단편 공포소설이 있어요. 부부는 박제된 원숭이 손에 세 가지 소원을 빌어요. 두 번째 소원이 죽은 아들을 다시 만나는 것이에요. 남편은 그 소원을 반대해요. 남편은 아들이 죽은 모습 그대로 나타난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꼈던 거죠. 결국, 남편은 마지막 소원을 비는데 두 번째 소원을 취소해요.

실제로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다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힘들거예요. 부패가 된 몸을 원래대로 회복하는 건 불가능해요.

stella.K 2018-07-03 11:0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작년인가 재작년에 미국 영화 그런 거 하나 있었거든.
근데 제목이 생각이 안 나네.ㅠㅠ
10대 여자 아이가 죽다 살아났는데 자기가 죽은 줄 몰라.
좀비라면 좀 으시시한데 그렇지 않고 생활밀착형 좀비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지나치게 공포스럽진 않고.
뭔지 모르겠어.
언제고 생각나면 갈켜줄게.ㅋㅠㅠ
 

서재질 초기 때 책을 읽으면 꼬박꼬박 리뷰를 썼던 것 같다. 물론 이건 서재가 없던 시절엔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블로그가 생기고부터는 좋은 습관 하나 들여볼까 해서 리뷰를 하기 시작했는데 요즘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왜 그리도 리뷰를 못하고 있는 걸까?

 

우선 다른 글을 쓰느라 그렇다. 열심히 쓰는 것도 아니면서 어쨌든 그걸 쓰고나면 전엔 팔이 아팠는데 이젠 손가락까지 아프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너무 좋은 책은 오히려 리뷰를 못하겠더라. 최근 내가 읽은 책 두 권의 책이 그렇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리뷰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그런 책 가끔 있지 않나? 

 

 

 

오랫동안 작가를 외면했던 것도 사실이다. 글쎄, 왜 외면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지금보다 조금 일찍 작가의 작품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 지하철을 타고가다 늦게 상담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그러다 작가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상담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교재로 쓰인다는 걸 알았다. 대단한 책은 대단한 책인가 보다 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했을 뿐 선뜻 읽어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인연이 있다면 읽게 되겠지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올초 오프라인 중고샵에서 이 책 1권을 발견했다. 물론 발견했다고 해서 당장 사 볼 생각은 없었는데 집에 와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며칠내로 근처에서 누굴 만날 일이 있어 다시 들렀을 때 있으면 사야지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책은 거기 여전히 꽂혀 있었다. 그렇다면 인연이겠다 싶었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건 내가 살아 온 시대와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나 보다는 연배가 조금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읽고 있노라면 금방 전이가 되고 공감이 된다. 그리고 그 신산한 세월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까? 마음이 무거웠다. 또 그런만큼 작가의 문체가 결코 가볍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 따라선 읽다가 덮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에밀 졸라의 <작품>이란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 보다는 가벼우니 이왕 읽기로 작정했다면 가급적 끝까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실제로 난 읽는 동안 자꾸 침잠해 들어가는 것 같아 사이에 잠시 다른 책을 읽기도 했는데 숨통이 트이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읽을만 하다. 특히 문학을 업으로 할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은 읽어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알다시피 작가의 자전소설이다. 자전소설을 다른 말로는 교양소설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얼핏들으니 여성 소설가는 잘 쓰지 않는 분야라고 그래서 이 책이 대단한 거라고 추켜 세우기도 했는데, 나는 바로 이 대목에 꽂혔던 것 같다. 그렇다면 김형경 작가는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과연 교양 소설을 여성 작가들은 잘 안 쓴다는 게 과연 맞는 말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뭔가 여성 작가를 비하하는 것 같아 조금은 불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틀리진 않을 것이다. 여성은 어느 분야에서든 소외당해 온 것도 사실이니 아무리 작가라고 해도 교양 소설을 쓴 작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아무튼 그런 말을 떨궈내더라도 정말 이 책은 정말 교양 소설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그리고 작가가 될 거라면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문학이란 이 거대한 숲을 헤쳐나가야 할지 가르쳐 주는 것 같다.

 

사실 문학은 권할만한 것이 못 되는 것 같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작가라면 누구든지 다 하는 말이다. 김형경 작가도 이 책 말미에 그런 말을 잠깐 언급하기도 한다. 문학은 이렇게 살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우리를 위로한다. 작가는 책 말미에 이런 말을 한다.

... 그 여자를 키운 것은 팔 할의 친구나 이 할의 문학과 음악이 아니라 세월이었다고. 바위에 끊임없이 부딪치는 파도처럼, 그 여자를 향해 몰아오던 그 세월이다. 파도가 바위를 쪼아대듯, 세월은 그 여자를 깎고 쪼아서 둥그스름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파도가 바위에 오묘하고 아른다운 형상을 새겨 넣듯, 세월은 그 여자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의 결을 형성해 주었을 것이다.

그래, 그 여자를 키운 것은 십 할의 세월이다. 그러므로, 그 여자의 인생에서 배운 단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세월 앞에 겸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여자가 지금도 일관되게 어른들을, 노인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오직 그것 하나다. 세월의 부피와 질량의 웅장함에 대한 존경이다.(2권, 519p)    

 

이 책은 작가의 유년 시절부터 30대 초반까지를 조명하고 있는데, 지금 작가는 50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30대 저런 고백을 하고 있고, 그런 고백을 하기까지 삶이 어떠했을지는 책을 직접 읽어보기 전까지는 읽어 본 자가 전달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사실 문학은 권할만한 것이 아님에도 권하게 된다. 무엇보다 문학은 잰척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재다. 야, 살아보니까 이런 사람의 이런 일도 있어. 넌 어떻게 생각해? 그냥 묻기만 하고, 생각할 거리만 던져줄 뿐 도무지 답이라곤 해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각자가 알아서 생각하시라가 결국 문학인 것이다.

 

이 책은 작가의 문학의 보고이기도 하다. 요즘은 작가든 독자든 자신이 읽은 책을 대놓고 밝히기도 하는데 이 책은 자신이 읽은 책을 보물찾기하듯 여기저기에 숨겨 놓는다. 그것을 찾아가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다. 또한 그러면서 자신은 책에 속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살을 하고 싶다면 자살을 하면 되는데 자살에 관한 책을 읽게되고, 사랑이 하고 싶다면 하면 되는데 꼭 사랑에 관한 책을 읽더라고. 그 부분을 읽고 나도 키득키득 웃었다. 아무튼 이 책은 책에 대한 관음증을 만족시키기도 한다. 

 

김형경의 <세월>을 읽는 중에 잠시 외도해서 읽은 책이다.

아, 정말 이 책은 뭐라 형언하기가 어렵다. 물론 저자가 신문사 종교 담당 기자라 글도 좋지만, 그가 다룬 우리나라 24명의 기독 영성가들은 확실히 압도하는 뭔가가 있다. 

 

표면상 그들이 선택한 종교는 기독교이긴 하지만, 그들은 기독교에 머물러 있지 않다. 기독교 이상의 것, 초월적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놀라웠던 건, 원래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해질 때 그때까지 있어왔던 유교적 전통과 바탕에서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토착화라고도 하는데, 어느 나라나 한 종교가 전파되려면 그때까지 지배하고 있는 문화와 종교, 사상이 한데 융합되어져서 뿌리내리곤 한다. 그것을 토착화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기독교는 보수주의를 앞세워 그런 토착화를 우려하기도 하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 보수주의는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사실 그건 알고보면 미국이나 영국의 제국주의적 기독교일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그 나라의 전통을 우상숭배라고 몰아부치며 대신 자기네 나라 기독교의 우수성을 널리 전파하고, 배타성마저 보이고 있으니 한국의 기독교가 한편으로 욕을 먹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무엇이 진리이고, 진정한 신앙인가를 찾아가는 것이라면 보수주의를 꼭 나쁜 거라고 몰아부치는 것도 문제는 있어 보인다. 그럴 땐 차리리 순수주의라고 해야하는 걸까?

 

저자는 우리나라 영성가를 소개하지만 동시에 서술하는 과정에서 한국기독교사를 직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 역사 중 구한말 또는 일제강점기라고 하는 시대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이 시대는 국가적으로 봤을 때 암울한 시기였지만 한국 기독교 역사로 볼 때 여명기이기도 하다. 이건 확실히 아이러니이긴 하다. 우리나라 독립선언 작성인 33인 중 3분의 2가 기독교인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바다. 우린 가끔 이걸 단순하게 자랑스러워하곤 하는데 이건 한국기독교만이 지니는 독특함이 숨겨져 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기독교를 초월한 영성가로는 함석헌이나 다석 유영모가 대표적일 것이다. 유영모는 몰라도 함석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함석헌은 이 책에서 다루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영성가들 중 잘 안 알려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했다고 밝힌다고 했다. 그러니 함석헌은 제외됐을 것이다. 하지만 함석헌은 이 책에도 나온다. 그만큼 그가 미친 영향력은 크다. 

 

이 책에 소개된 영성가들의 하나같은 공통점 보면 우선 극도의 금욕주의자라는 것이다. 어차피 어떤 종교를 선택하든 금욕은 피해갈수 없는 것 같다. 이런 것을 볼 때 오늘 날 탐욕을 숭배하고 권장하는 세상에 은근 신경 쓰이고 불편했을 것 같다. 또한 그 시대는 워낙에 없이 살았던 시대라 저절로 금욕이 됐을 법도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금욕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아이러니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들의 신앙과 금욕이 나라를 구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처음 기독교가 전파됐을 때만해도 초월적이었다는 점에서 오늘 날 개교회주의에 경종을 울릴만 하고, 신학은 자유주의로 갖되, 신앙은 보수주의 아니 순수하게 하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곱씹게 되는 좋은 책이다.

 

어제 검색을 하다 발견한 책이다.

지금의 4,50대 이상 팝송 좋아하는 사람치고 10대, 20대 시절 김기덕과 김광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도 그들중 한 사람이다. 김기덕의 '두시의 데이트'와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은 하필 같은 시간대에 해서 호강이면 호강이고, 불만이면 불만이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호강이라면 둘 다 들을 수 있으니 좋은거고, 그 시절은 다시듣기가 불가능했으니 둘 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불만이었을 것이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고나 할까?

 

유명도에 있어 나는 김광한 보단 김기덕이 조금 앞서지 않나 싶었는데, 이 책을 보니 김광한이 우리나라 DJ 1호란다.

 

그가 지난 2015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난 20대 말이되고 30대에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두 사람의 방송을 듣지 않게 됐는데, 난 안 들어도 이들의 방송은 언제나 계속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그도 원로란 소리를 듣게되고 방송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세월이 야속했다. 그것도 부족해 김광한은 세상을 떠났고, 그와함께 이종환 아저씨도 떠났다. 모두 나의 힘든 고난의 10대를 위로해줬던 사람들이다. 그나마 지금은 김기덕 아저씨가 1세대로선 거의 유일한 것 같은데 이분만이라도 오래 장수하셨으면 좋겠다.

 

이 책은 김광한의 미망인이, 고인이 죽기전까지 음악 자료를 모아두었던 것을 정리해 펴낸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확 빨려들 것만 같다. 아직 읽지 않아 뭐라고 리뷰하기가 어렵다.

 

가끔 그런 책들이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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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6-30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려서 팝송만 듣던 일인으로 한 시절을 호령하던
디제이분들이 이미 고인이 되었다고 하니 착찹
하네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 부재와 최신 음반을
접할 수 있는 루트가 무척이나 제한되어 있어서
거의 팝송계의 신적인 존재라고 할 수가 있었죠.

뭐 지금은 외국에서 신곡이 발표되면 유투브니
하는 다양한 채널로 신속하게 바로 그 때 그 때
접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우리나라 음악의 기술
적 수준도(절대 음악적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아주 오래 전에 트레이시 채프먼의 포크송이 나왔
을 때, 아 이런 노래들도 인기를 끌 수 있을 정도로
다양성이 대단하구나 뭐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stella.K 2018-07-01 14:0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는 솔직히 김광한 이후 2세대
JD들은 잘 모릅니다.
당시 팝칼럼니스트로는 전영혁과 박원웅이
있었다는 정도는 알죠.

예전엔 최신음반을 주간 단위로 알았던 것 같은데
그걸 기다리는 맛도 꽤 쏠쏠했었습니다.
그렇게 해도 불편한 줄 몰랐는데
지금은 거의 실시간으로 전세계가 다 아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편해지기는 했는데 예전 같은 맛이 없어요.ㅠ

북프리쿠키 2018-06-30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앞에 겸허하지 않은, 오히려 비하하는 풍조가 안타깝습니다..

stella.K 2018-07-01 14:1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김형경의 소설을 읽으면서 저의 20대와 30대를
돌아보게되더군요.
작가는 힘들게 살았지만
저 같은 독자가 볼 땐 참 부단히 진지하게
살았구나 싶더군요.
지금은 나름 만족하며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전작은 아니어도 몇몇 주요작품은 읽어보고 싶어요.^^

서니데이 2018-06-30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부터 7월입니다. 7월에는 더 좋은 일들, 기분 좋은 순간이 많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어요.
steall.K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18-07-01 14:1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오늘부터 7월입니다.
어느덧 한해의 반을 보내고 반을 시작하는 첫날이 되었네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싶은데 더위가 발목을 잡죠?
그래도 우리 잘 살아보아요.^^

2018-07-01 0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7-01 14:20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그리운 사람들이죠.
전 옛날 성우들도 그립더군요.
양지훈과 배한성,
잉그리트 버그만 전문 성우 이선영,
오드리 헵번 성우 장유진,
특수공작원 소머즈의 주희
정말 좋은 목소리의 주인공들인데
지금은 들을 수 없다는 게 아쉬워요.
지금 뭐하며 사는지 모르겠어요.ㅠ
 

얼마만에 다시 보는 영환지.

다시보니 정말 좋다.

핑계겠지만 영화가 너무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웬만해서 봤던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하지만 영화는 두 번은 봐야 그 영화가 가진 참 의미와 처음 봤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가 있다.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하모니카인지 아코디언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주제 음악은 그동안 여기 저기 많이 인용돼 왔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요즘에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오래 전, 어느 영화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방송의 시그널 음악으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될 것만 같다. 배우의 연기도 좋았고. 과연 이렇게 삼합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영화가 흔간가 싶은 게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메타포 즉 은유를 완벽히 이해시킨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시인)네루다에게 편지를 배달해 주던 우체부가 너무 못 생겼다. 나도 여자이긴 하지만 이렇게 못 생긴 남자를 사랑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는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배달에 주면서 메타포를 알게 되고, 시인이 되고자하는 열망을 가슴에 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아름다운 여자를 쟁취하고자 하는 열망과도 부합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후에 아름다운 여인 베아트리체를 사랑하는데 성공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뻐꾸기(은유)를 잘 날려라는 교훈을 주는 걸까?

 

사실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얻는 방법은 시 보단 연애비법서가 훨씬 효과적인지도 모른다. 영화 자체도 어찌보면 메타포인지라 시가 매개가 되어 사랑을 이룬다는 건 영화가 뿜어내는 낭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시 가지고 사랑을 이뤘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또 다 맞는 말은 아니란 말씀.

 

그래도 사람이 시심을 품었다는 건 안 품는 것 보다 훨씬 아름답고 고상하다. 이 마음 하나 품을 수 없다면 이 각박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겠는가? 그건 그야말로 못 생긴 사람을 아름다운 사람으로 바꾸는 기적을 낫기도 한다.

 

그건 정말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니 오래 전, 내가 교회 주일학교를 봉사하고 있었을 때 같이 봉사한 한 형제가 있었다. 그 형제는 내가 봐도 너무 볼품없게 생겼다. 왜소한 게 도무지 끌리는 데라곤 한 군데도 없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과연 저래가지고 장가는 가겠나 싶었다.

 

헉, 그런데 웬일인가? 내 예상을 깨고 어느 날 장가를 간다고 청첩장을 돌리고 있더라. 역시 사람은 외모로 판단할 것이 아니다. 하긴, 그 형제가 인상 하나는 참하니 착하게 생겼다. 매사에 행동이 반듯하니 확실하고. 그러니 장가를 가는 거겠지. 또 그런 자신감으로 상대에게 얼마나 많은 뻐꾸기를 날렸겠는가? 물론 여기서 말하는 뻐꾸기란 은유로 똘똘 뭉친 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건 사랑에 대한 믿음, 확신 같은 것이다. 그것을 계속 받고 있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대가 어떻게 생겼던지 간에 그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한다는 교훈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우편배달부가 네루다를 만나지 않았다면 과연 그런 시심을 품을 수나 있었겠는가? 또 사랑을 쟁취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점에서 시인은 위대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영화가 너무 좋아 며칠 전, 친구를 만날 겸 중고샵에 들러 혹시 영화의 원작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있나 찾아봤는데 애석하게도 없었다. 평가도 약간의 호불호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원작 보단 영화가 훨씬 좋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화와 원작이 다른 것은, 영화는 네루다가 노벨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고국인 칠레에서 그의 망명이 해제되 돌아가는 것으로 나오는데, 원작은 그가 칠레 대통령직을 수락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와 있는 것 같다. 원작과 영화가 다를 수 있는데, 실제로 네루다는 노벨상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영화는 이렇게 네루다의 충직한 우편배달부가 헤어지고 그리움에 못 잊어하는 그의 순수한 마음을 후반부에 펼쳐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네루다가 이탈리아 섬에 머무는 동안 그에게 맡겼던 여러 물건들을 부쳐달라는 내용을 네루다의 비서로부터 명 받았는데, 보통 사람 같으면 화장실 갈 때와 올 때가 다르다고 어떻게 이렇게 쌀쌀 맞을 수 있나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우편배달부는 그것에 아랑곳않고 네루다가 머물렀던 곳의 여러 가지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함께 보내준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라면 결코 있을 법 하지 않을 일이다. 암튼 그건 당신은 나를 잊었을지 몰라도 나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선물은 가끔 그렇게도 쓰인다.

 

사람의 모든 인연은 다 우연 아닐까? 인공적인 인연은 거의 없다. 설혹 있다고 해도 그 끝은 자연스럽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자연스럽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연이다. 그래서 인연은 아름답고, 신비스러우며 각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 만나고 헤어졌던지 간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기서 그렇게 헤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서운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인연은 또 온다.  외롭고 쓸쓸할 때 보면 좋을 영화 같다.

 

너무 유명해 새삼 강추니 하는 말이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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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6-26 16:28   좋아요 1 | URL
ㅎㅎ 아뇨. 저는 올레 tv로 보는데...
아직 ip tv 신청 안하셨나요?
그거하면 편하게 볼 수 있는데...
물론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솔직히 올레 tv로 보면 엄청 부지런 해야해요.
볼 영화며 드라마가 엄청 많아서.
좀 힘드실 수도 있어요.ㅠㅋ

2018-06-26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18-06-2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과 니르바나도 인연이지요.^^

stella.K 2018-06-26 18:22   좋아요 0 | URL
ㅎㅎ 다시 이어주세요. 항상 그리운 인연입니다.ㅠㅠ

페크pek0501 2018-06-27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책으로 읽지 못했고 팟캐스트로 들었는데 좋았어요.
메타포에 대해 말하는 부분, 표현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책으로 접해 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는데 민음사 것 있군요.

stella.K 2018-06-27 20:2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래서 외출나온 김에 혹시 중고샵에
있을까 싶어 들러보았더니 없더라구요.
읽을 책이 많이 일부러 새책 사기는 뭐하고
중고로 나온 게 있으면 사 볼까 했거든요.ㅋ

언니도 이 영화 보셨죠?
혹시 안 보셨다면 영화 먼저 보세요.
정말 좋은 영화에요.^^
 
버자이너
나오미 울프 지음, 최가영 옮김 / 사일런스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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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모르는 사람은 이젠 페미니즘이 하다 하다 버자이너 가지고 울거 먹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외설스럽다고, 창피하지도 않냐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건 정말 멋모르고 하는 말이다. 여성 문제의 근원적인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거 아닌가?

 

저자는 먼저 자신의 문제에서부터 이 문제를 접근하기 시작했다. 전엔 잠자리에서 오르가슴을 느끼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뭔가 모를 이상 증세를 느끼기 시작했고, 자신의 주치의를 찾아가 이 문제를 상담하고 그 방면의 권위 있는 의사를 소개 받아 치유를 받으면서 전에 알지 못했던 버자이너가 뇌와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해냈다. 그리고 그것은 창의력, 자신감 심지어 성격까지 형성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나아가 저자는 버자이너를 말초적 감각이 아니라 제2의 중추라고까지 주장한다. 또한 버자이너를 우린 간단하게 구멍으로까지 부르기도 하는데 그보단 여신의 형상을 한 구멍이라고 불러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린 이 여신의 형상을 한 구멍을 어떻게 대해 왔을까? 굳이 이 책을 리뷰한답시고 여기에 구구하게 설명하는 것도 새삼스럽다. 그런데 한 가지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건 역시 강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이 여신의 형상을 한 구멍에 직접 위해를 가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과연 강간과 버자이너를 따로 떼어놓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린 보통 강간이라고 하면 단순히 어느 사이코가 겁탈하는 정도로 알고 있는데, 책은 거기서 더 나아가 끔찍하고 잔인한 표현을 하고 있다. 그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짐승 수컷이 자신의 오줌 가지고 여기 저기 묻히며 영역 표시를 하다더니, 강간범은 여자의 몸 그것도 버자이너를 난자하므로 자신의 존재를 문신처럼 남기는 걸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강간을 당한 여성들은 불구의 몸이 된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넘어지는 일이 많으며, 멈추는 일을 잘하지 못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가 비로소 멈추라고 해야 멈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자 오래 전 본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어느 건달 세 명에 술집 여자를 기어이 쫓아가 어느 후미진 곳에서 차례로 윤간하는 장면이었다. 당연히 그 영화의 감독은 남성이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에피소드의 한 장면이긴 했지만 보기에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감독이 어떤 의도로 그 장면이 필요했다고 판단했는지 모르겠지만, 전후 문맥을 따져 볼 때 건달은 이렇게 개 같이 논다? 뭐 그런 리얼리티,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삽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여자의 대사다. 여자는 쫓겨봐야 별 수 없으니 결국 결심한 듯 돌아서서, “좋아. 한 사람씩...”하며 체념해 버린다.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는 하지만 강간에 윤간이 없을 리 없고, 아무리 천한 여자고 자신을 체념했다고는 하지만 그녀 역시 강간의 흔적이 없을 거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내 기억으론 이민용 감독의 <개 같은 날의 오후>이었던 것도 같은데 정확하진 않다.) 물론 이건 영화의 한 장면이고, 지금의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이 들끓기 전에 나온 오래된 영화라 관대할 필요가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문제적 장면은 그 영화만이 아니다. 난 과연 이것을 언제까지 표현의 자유로만 볼 것인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어쨌든 이런 걸 볼 때 저자는 중요한 문제를 지적한 건 사실이지만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편견을 갖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내 주위에도 드물게 유난히 길가다 잘 넘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도 강간 피해자로 의심해야 하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이 같은 지적은 중요하게 생각해 볼만 하다.무엇보다 강간을 당한 여성은 아무리 치료를 해도 강간 이전의 상태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저자는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사실 버자이너는 한때 신성시 여겨졌던 때도 있긴 하지만 많은 부분 상처 받고 속박당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에 대한 대표적 예가 우리가 잘 아는 중세 십자군 원정 때 여자들의 정조대일 것이다. 여자들은 원정 떠난 남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정조대에 꼼짝없이 매어 있어야 했다. 마음대로 풀 수도 없고, 청결을 유지할 수 없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남자들이 돌아오면 행운이다. 거기서 죽은 사람의 아내들은 그 정조대를 평생 풀지 못하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밖에도 상처받고 수난 당한 예는 수 없이 많다.

 

무엇보다 오늘 날은 여성들이 상처받은 버자이너에서 항문열상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항문열상이란 새로운 정조관념, 즉 기독교를 중심으로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키겠다는 서약과 처녀성을 지키고 싶다는 열망과 맞물려 항문성교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렇지 항문성교는 대부분의 남성들 선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항문이 찢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을 항문열상이라고 한다.

 

앞서도 영화 얘기를 했지만, 포르노의 폐해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는 포르노 산업과 그로인한 폐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하다. 책은 흥미롭게도 빅토리아 시대에 문학에 나타난 에로티시즘에 관해 다루도 하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유명한 D.H 로렌스를 얼른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사춘기 시절 읽었는데 물론 그 특유의 찌릿한 감흥도 있긴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참 아름답더란 생각을 하게도 된다.

 

그렇다면 에로스와 포르노의 차이는 뭘까? 안타깝게도, 알 것 같지만 실상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여자는 전희를 해야 비로소 버자이너 즉 여신의 형상을 한 구멍이 열린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성교는 여성 보단 남성이 유리하도록 맞춰졌다. 그래서 여성은 이런 전희를 과정 없이 바로 이루어진다. 남자들이 이런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지해야 하는데 오랜 세월 남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여성의 버자이너에 끊임없이 오해하도록 조장되어져 왔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동양의 도가사상과 특별히 인도의 탄트라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서양은 이미 포르노에 점령당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이 삐뚤어지고 잘못된 성의식에 이 두 가지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말하기도 하다. 이것의 유익이 얼마만한 것인지 여러 페이지에 걸쳐 할애하고 있다. 또한 버자이너의 진정한 해방을 위한 12가지 원리를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싣기도 했는데 참고해 볼만하다.

 

이 책은 무려 500 페이지 정도 되는 두꺼운 책인데 저자는 버자이너에 대해 이만한 책 두 권을 합쳐도 못 다 할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이는 이것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이기도 하겠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이 부분은 꾹꾹 감춰져 있고 억압되어 있었다는 말도 될 것이다.

 

엊그제도 우리나라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여성의 상당수가 남성의 성범죄에 피해를 당해 본적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중 또 적지 않은 수가 말을 하지 않거나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어찌 보면 여성은 피해를 보면서 그 죄를 방조한 셈이기도 한데, 그것에 관해서는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여자 보다 힘이 세고, 세상의 모든 프레임은 남성에 유리하도록 태곳적부터 맞춰져 있다. 거기서 여성이 해 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여성조차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란 인식 없이 살아 온 세월이 얼마인가? 거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버자이너임을 저자는 당당히 고발하고 있다.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저자가 도교와 탄트라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그것의 관해서는 한없는 관심을 보이면서, 남성들의 잘못된 성의식의 변화를 촉구하고, 왜 상대와의 조화가 중요한지에 관해서는 다소 설명이 미약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뭐 그런 거야 다른 책에서 보충할 수도 있고, 이 책이 의미하는 바와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고 보인다. 여성 보다는 남성이 더 많이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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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6-2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에게 변화를 촉구하는 건 옛날 방식이에요. 20세기 초 온건 페미니스트들이 이런 방식으로 여성 운동을 했어요. 이게 안 먹히니까 거리에 나가고, 목소리 높이는 페미니스트들이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

stella.K 2018-06-22 09:43   좋아요 0 | URL
그랬겠지.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은 더 시끄럽게
떠들 필요가 있어.
사람의 인식이 쉽게 바뀌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거든.
물론 그만큼 반페미니즘도 들끊겠지.
그럴지라도...ㅋ

페크pek0501 2018-06-23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이, 지적이 좋네요.
꼭 읽어야 할 사람이 사실은 읽지 않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미투 운동도 그렇고 세상을 바꾸는 사건들은 일어나는데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문제예요. 인간을 변화시키는 속도는 느린지라...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지요.

참, 언제부터 말하고 싶었는데요,
서재 이미지가 보기 좋네요. 파란색이 시원해 보이고 예쁩니다. 바다인가요?

stella.K 2018-06-23 19:00   좋아요 0 | URL
ㅎㅎ 저 이미지 예전에 한 번 썼어요.
그런데 다시 봐도 좋긴하죠?
여름 한철 계속 써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