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는 빈약하면서 오로지 출연 배우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의 만으로 승부를 걸려고 하는 드라마가 있다. 또 이를 두고 절제된 대사라고도 하고, 시 같은 대사라고도 하는데 그거 다 개풀 뜯어먹는 소리다. 내러티브가 있고, 캐릭터가 있고, 절제된 대사, 시 같은 대사는 그 다음에 나와도 된다. 그런데 그걸 거꾸로 하는 작가가 있으니 그러고도 꼴에 인기 작가라니 그거 언제까지 우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0분 토론>에 김지윤 씨가 진행자로 전격 발탁이 되었나 보다. 난 그녀를 K 본부 <세계는 지금>에서 처음 봤는데 특출나게 잘 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나쁘지 않게는 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100 토론>을 진행한다니 그런 시사 프로는 남성의 전위물 아니었나? 그런 점에서 새삼 격세지감이란 생각이 들고,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잘 하라고 응원은 하고 싶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그 시간 잠을 자기 때문에 볼 수 없다는 것. 그러니 응원만 한다는 것 뿐이다. 그녀는 나에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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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7-25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답! ㅁㅅㅌ ㅅㅅㅇ?

stella.K 2018-07-26 10:02   좋아요 0 | URL
ㅎㅎㅎ 뭐라고 쓰신 겁니까?
난 초성은 영...ㅠ
뭐라고 쓰신 건지 비밀글로 꼭 알려주십쇼. 쇼님!^^

stella.K 2018-07-26 19:20   좋아요 0 | URL
아, 이제야 알겠군요.
맞아요! 스요님도 그렇게 생각하죠?
진짜 나중에 욕 나오더라구요.
시청자를 기망해도 유분수지 하면서...ㅋㅋㅋ

syo 2018-07-26 20:44   좋아요 0 | URL
전 안보고 찍은 건데요 ㅎㅎㅎ 그냥 설명하시는 정황이 그런 것 같고, 원래 제가 그 작가 멜로에서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단 한번도 공감해본 적이 없어서요 ㅎㅎㅎ

stella.K 2018-07-27 10:22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작가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요.
이번 드라마는 개화기를 배경으로 해서
좀 볼까 했는데 도무지 못 보겠더군요.
도대체 말이 되야 말이죠.
아무리 드라마가 배우와 대사 뜯어 먹는 일이라지만
너무 심하다 싶더군요.
또 비슷한 일군의 작가들이 있어요.
그런 유명 작가의 작품에 못 나와서 몸살 난 배우들 보면
좀 거시기 하기도 하구요.ㅋ
 

 

몇 주간에 걸쳐 tv 다시보기로 이 드라마를 봤다. 

알다시피 이 드라마는 일본의 드라마를 각색한 작품이다. 일본은 이미 미미 여사를 비롯해 일군의 사회파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가 있지만, 드라마에서도 이런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가 있구나 약간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드라마에서의 특징은 핏줄로 맺어진 직계가족이 아니라 유사가족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입양되거나 유괴를 통해 전혀 핏줄로 연결되어지지 않는다. 보다보면 예전처럼 핏줄로 이어진 보수적인 가족 형태는 점점 중요하지 않거나 사라질 거란 암울한 암시마저 갖게 한다. 내가 왜 이런 표현을 쓰냐면, 핏줄로 맺어진 아니 그것을 중시하는 가족일수록 지금까지 너무 많은 고통당하고 앞으로 그럴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이혼이 늘고 재혼에 삼혼까지 늘어나는 추세라면 예전처럼 초혼에서 이루어진 가족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그랬을 때 앞으로 우리의 가족은 어떤 형태를 띌 것인가? 드라마는 바로 이점을 주목했던 것 같다. 그렇게 변화된 또 변화할 세상에서 모성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가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것은 아닐지? 

 

사실 세상에 어떤 여자도 완벽히 준비된 상황에서 엄마가 되는 사람은 없다. 오로지 완벽히 준비된 엄마는 주인공 강수진의 양모인 영화 배우 차영신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녀 조차도 처음부터 엄마의 길을 알고 갔던 건 아니라고 고백한다. 즉 엄마는 처음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  

 

그녀는 성공한 영화 배우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그래서 수진 외에도 두 명의 아이를 더 입양한 완벽한 커리어우먼이고 비혼모다. 그녀에게 완벽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정도랄까? 하지만 그도 문제는 안 돼 보인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어차피 세상은 이제 핏줄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다. 그러니까 드라마는 내내 모성이란 건 출산에 있지 않고 알지 못하는 어떤 운명적 만남과 기르는 과정에서 생긴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해 의도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핏줄에 의한 모녀 관계는 자꾸만 상처 받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 혜나와 그녀의 생모 자영이다. 자영은 원치않는 임신으로 애를 낳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당했다. 또 그로인해 불안하고 분열적인 양육 태도로 혜나를 키웠고 그에 따라 혜나는 학대와 방임을 반복하며 산다. 그런 점에서 배우 차영신과 자영이 다른 점은, 영신은 비혼모지만 자영은 미혼모라는 점이다. 

 

적어도 이 드라마에선 비혼모는 결혼은 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자의적으로  키운다는 것이고, 미혼모는 원치 않는 임신로 인해 아이를 낳아 불안한 환경속에서 키운다는 것이다. 또한 비혼모는 아버지가 없이도 아이를 얼마든지 잘 키웠고, 미혼모는 상대 남자에게 버림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거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방치된 약자다.

 

차영신은 남편 대신 자신의 비서겸 아이들을 지켜 줄 집사 재범을 고용할 뿐이다. 문득 차영신의 집을 보면 몇해 전에 읽은 샬롯 퍼킨스의 <허랜드>가 생각이 난다. 제목에서도 암시하듯 그곳은 여자들만 사는 나라다. 그것의 축소판 내지는 또 다른 변형이 이 드라마의 영신의 집이라는 것이다.

 

런 이상 사회의 전제는 경제력이다. 그것은 한 나라를 또한 한 가정을 이루는 주춧돌이다. 여성들이 경제력을 갖추게 되면 결혼을 굳이 하려하지 않는다는 건 거의 자명하다. 지금도 적지 않은 많은 여성들이 아이는 원하지만 남편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남자는 자신의 나라 또는 가정을 지키는 방패막 내지는 집사 정도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건 꼭 여자의 성공여부와 상관이 없어보이기도 하다. 유사이래로 여자가 시집을 가야했던 이유중 하나는 남편의 보호였으니까. 대신 댓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남자의 아기를 낳아야 하고, 남자와 그의 집안에서 있을지도 모를 온갖 학대와 수모를 견뎌야 한다는  전제도 포함이 된다. 그러나 여자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근거가 마련이 되면 남자의 위상은 그렇게 규정되어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진이 혜나를 유괴해 쫓기는 입장이 되고 영신의 집으로 피신해 들어갈 때 영신은 무조건 누구의 아이냐고 다그쳐 묻지 않고 모성으로 품어주고, 그녀가 쫓기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을 때 여성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 보호해 주고 법정에선 옹호까지 한다. 즉 여성 특유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비해 작가는 혜나의 생모 자영을 끊임없이 불행한 인물로 몰고가고 있는데, 그게 단순히 생모 즉 핏줄의 개념을 부인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뭔가의 의미가 더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지금까지 핏줄로 맺어진 모녀관계는 사회의 무관심으로 인해 끊임없이 상처받아 왔음을 드러마는 각인시키려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아이를 잃어버린 피해자지만 동시에 아이를 학대 방치했다는 점에서 법에서 자유하지 못하다. 누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당연 남자고, 남자며, 남자다. 생물학적이며,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집행권한을 행사하며, 아이를 방임하고, 아이를 유괴한 여자를 법 아래 세우려고 하는 남자 말이다.     

 

남자에 의해 가정을 세우고 지켜지는 시대는 종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 그렇게 됐을까? 이미 핏줄로 연결된 가족 형태가 와해됐을 때부터일 것이다. 그러니까 예전에 가족중 누가 아이들 데리고 들어오면 누구의 아이냐고 묻던, 그것이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그건 남자의 질문이지 여자의 질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신은 수진에게 혜나의 존재에 대해 묻지 않았던 것이고.

 

어쨌거나 핏줄에 의한 가부장적 가족 형태는 그 힘을 상실했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을 수 없고 기를 수 없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신 국가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다. 남자들은 이제 가부장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고, 여자 역시도 혼자의 몸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원하든 원치 않던 한 여자가 임신을 했다. 남자가 책임을 져야하는 데 책임을 지지 않는다.(이제 남자에게 그것을 묻는 것도 고루해 보인다.) 그랬을 때 여자는 언제까지 불행한 미혼모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남자가 죽일 놈이든 살릴 놈이든 그것의 판단은 차치하고, 먼저 국가가 신속하게 이 모자를 보호해 주고 사는데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데 드라마는, 어쨌든 혜나의 생모는 아동학대죄를 지었고, 수진은 혜나를 자신의 삶에 떠 안았지만 그러는 순간 아동 유괴범이 됐다. 남성을 상징하는 국가 공권력은 이 두 여자를 어떻게 해서든 법의 심판대에 세우려 했고, 실제로 세웠다. 하지만 그 순간 국민을 수호해야 하는 공권력은 이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무능함을 드러낸다.  

 

인구가 점점 감소하고 있다. 언제까지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는 걸 남자에게만 맡길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꼭 국방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국가의 모든 면에서 소외되어 왔다. 그런 여자들이 아이를 낳아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에 헌신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이번 정권도 아이의 양육 수당이나 모자 보건에 힘을 쓰는 모양새를 취하긴 한다. 하지만 정작 미혼모 보호엔 여전히 미온적이다. 언제까지 여자가 남자의 동의나 도움없이 아기를 낳는 걸 부끄러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왜 그들이 미혼모의 자식이란 이유만으로 사회의 그늘속에 방치되고 범죄에 노출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들도 똑같은 대한민국의 자식인데 말이다.  

 

샬롯 퍼킨스는 국가가 아이들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것을 자신의 소설에서 이미 오래 전에 주장했다. 이것에 우리나라는 얼마나 동의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소설이 20세기 초에 나온 것을 생각하면 이미 100년이나 된 질문이다. 거기에 아직도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과연 우리나라 만세다. 그러나 어느 때가 되면 그에 합당한 대답을 해야할 것이다. 반드시. 그때가 되면 미혼모란 말은 우리 사전에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대신 비혼모가 그 자리를 대치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이 드라마는 묻는다. 모성이 개인을 구원할 수 있느냐고. 거기에 구체적으로 답하는 건 아니지만 희망적인 물음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것은 모성을 포함한 여성성이다. 여성성은 연대하고, 연합하길 좋아하며, 인내하고, 생명을 품고 나눈다. 그러기 때문에 드라마의 차영신의 집과  소설 <허랜드>는 세상의 어떠한 오해와 질시속에서도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었다. 

 

링컨은 그렇게 말했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바라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그 말은 훌륭한 말 같긴 하지만 언제나 유효하진 않다. 그때는 그 말이 통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적어도 우리 여성들은 국가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하고 요구해야 한다.

 

물론 그런다고 국가가 신속하게 움직일 거라고 기대해선 안 될 것이다. 오랫동안 가부장에 매어있던 나라다. 그 역사가 무려 5천년이 넘는다. 그런데 비해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기 시작한 건 100년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연대부터 하라. 드라마의 마지막회를 보면 혜나가 그처럼 많은 엄마를 감당할 수 있을까란 대사가 나온다. 그러니만큼 혜나가 많은 유사 엄마를 거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엄마는 꼭 하나여야할 필요가 있을까? 될 수 있으면 엄마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연대의 의미도 된다는 소리니까.

 

내 아이, 남 아이 나누지 말고, 우리 아이로 서로 돌봐야 한다. 미혼모가 애를 낳거든 손가락질부터 하지말고 나라 위해 크게 될 아이라고 격려부터 해 줘라. 그건 다 우리도 가부장의 사고에 길들여졌던 결과일 뿐이다. 그것에 지지 말아야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이제 여자가 해야한다.

 

드라마가 다소 억지스런면도 없지 않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혜나 역을 맡은 허율이란 아이의 연기가 볼만하다. 김새론 이후 연기신동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특별히 차영신 역을 맡은 이혜영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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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7-21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 문화와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이 많아지면 소외되는 대상이 성소수자예요. 성소수자는 결혼하기 어려워요. 대통령이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나중에’ 생각해보겠다고 말씀하셨으니 성소수자가 ‘국민’으로서 국가 정책 혜택을 누리는 사회가 실현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해요. ^^;;

stella.K 2018-07-22 19:35   좋아요 0 | URL
근데 미혼모 문제는 시급하다고 생각해.
적어도 그들이 사회의 냉대는 받지 말아야지.
미혼모 문제라기 보단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솔직히 미국이나 유럽만해도
미성년자가 아기를 낳아도 학교 탁아방에
아이를 맡기고 공부를 한다잖아.
우리나라는 학교부터 그만 두거나 휴학을 해야 해.
고등학교나 대학에 탁아방이 있는 걸 상상을 못하는 거지.
이제 여성이 아이를 낳는 건, 미성년일 때 낳거나
가임기 때 아기를 낳지 않거나 양극단을 보일 거라구.
이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필요한데.
난 이 드라마가 뭔가의 기폭제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더라구.

페크pek0501 2018-07-21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더, 봤어요. 다 보진 못했고 반 정도 본 것 같아요. 괜찮았어요. 아이를 낳은 어머니가 꼭 아이를 키우는 게 최선은 아닌 경우에 해당했지요.

stella.K 2018-07-23 10:17   좋아요 1 | URL
이 드라마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요.
핏줄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사고 방식은 이제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가장 흔한 소재
탄생의 비밀 같은 이런 거 그만하고
정말 사회의 문제가 될만한 걸 발굴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많은 것들을 시사하죠.
마저 보셨으면 해요.
이보영, 허율, 이혜영의 연기가 정말 좋아요.
그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어요.^^

후애(厚愛) 2018-07-24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는 못 봤지만 책으로는 꼭 봐야겠어요.^^
더위조심하시고, 물 자주 드세요.^^

stella.K 2018-07-24 17:59   좋아요 0 | URL
네. 꼭 보세요.
고맙슴다.^^
 
다시 듣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김광한 지음 / 북레시피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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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라디오 키드 시절이 있을 것이다.

나는 한때 클래식 마니아가 될 뻔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내가 속한 반이 합주 반이었는데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울 시내 초등학교 합주 경연 대회가 있는데 학교 대표로 이 곡이 우리의 출전 곡이었던 것이다. 난 좀 억울했다. 내가 속한 반이 어쩌다 그런 막중한 사명을 떠안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빨갱이 공산당도 아니고 모든 반 아이들이 합주에 참여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때 나는 멜로디혼을 연주했는데, 다른 반 아이들이 수업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 반은 꼼짝없이 남아서 거의 두 시간 가까이를 합주 연습을 해야 했다. 나도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고, TV에서 하는 만화 영화도 보고, 숙제도 해야 하는데 허구헌날 이게 뭐란 말인가? 그 울분을 참느라 10년은 늙어버릴 것만 같았다그때까지 거의 듣보잡이었던 클래식. 그것도 요한 슈트라우스의 곡이라니!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3등의 성적표를 받고 대회는 끝이 났는데 거참 묘하다. 할 때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는데 끝나고 나니 그때가 그립고, 그 그리움을 달래느라 그때부터 내가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던 거다. 그것이 아마도 나에게 추억의 생성이었나 보다. 그때부터 난 밤낮으로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클래식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아니, 그것이 나의 라디오 키드 입문이 될 줄은 나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그렇게 좋아 보이던 것도 질릴 때가 있고, 더 좋은 게 보이면 당연 그쪽으로 옮겨가기 마련이다. 클래식은 들으면 들을수록 어렵고, 고전이란 틀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비해 그 시절 팝송은 그 인기가 기하급수 팽창 일로에 있었다. 그것은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변신의 변신을 거듭했다. 또한 팝송 가수들은 어쩌면 그리도 세련되고 멋있던지. 이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시절 우리나라에선 70년대 중반 무렵부터 대학가요제를 중심으로 가요계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지만 팝송을 따라가기엔 아직은 역부족이었다. 난 그때 대중음악은 딱 두 가지만 있는 줄 알았다. 팝송과 대학가요.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굳이 들으려하지 않는데 어느 순간 귓가에 들리고, 애인처럼 다시 듣고 싶어지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요한 슈트라우스 할배는 나의 선택을 받지 못한 비운의 애인쯤으로 해 두는 것이 좋을 듯 했다.

 

굳이 들으려하지 않는데 어느 순간 귓가에 들리고 애인처럼 다시 듣고 싶은 것이 가능했던 건, TBC가 언론 통폐합으로 KBS로 넘어가기 전 황인용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음악 프로를 들으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TBCKBS로 이전한다고 예고가 있었고, 실제로 그날이 왔을 때 나는 잠을 자지 않고 TBC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때 황 아저씨의 그 프로가 10시에서 12시까지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버지가 사 주신 시계겸 라디오를 여느 때처럼 켜놓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난 그저 눈을 잠깐 감았다 떳을 뿐인데 12시가 지나있었다. 역시 학교를 다녀야 하는 학생으로서 12시 넘어서까지 두 눈을 뜨고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좀 아쉽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 자신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일을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황 아저씨의 밤을 잊은 그에게는 그 다음에도 여전히 건재해 TBC가 사라진 사실이 실감이 안 났다. 방송국은 그렇게 사라질지 몰라도 음악은 영원한 것이다. 난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안도할 수 있었고, 위로받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KBS 2 FM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을 듣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책을 보니 그 프로는 82년도에 시작해서 무려 11년 동안 진행했었다고 한다. 김기덕의 두 시의 데이트가 먼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원래 라이벌 경쟁 구도가 사람의 이목을 끌기가 가장 좋은 법. 그때까지 TBCMBC와 좋은 경쟁 상대라고 생각했다. 그때 KBS는 국영과 공영의 의미가 강했던 만큼 어린 나도 감히 경쟁에 끼워줄 마음이 별로 없었다. 그런 TBC가 사라졌으니 김기덕의 두 시의 데이트를 능가할만한 대항마가 있을까 했다. 그때 나타난 것이 그의 이름을 딴 팝스다이얼이 나온 것. 그것도 똑같은 두 시에. 그 시절 두 방송을 동시에 접수하느라 주파수 맞춤의 달인이 될 지경이었다. 물론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 밤은 밤대로 행복했다. 이종환과 황 아저씨가 밝혀줬으니.

 

아마도 이 두 쌍의 쌍두마차에 의해 그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DJ와 팝칼럼니스트란 직업이 각광을 받지 않았을까? 물론 그 이전에도 음악 프로그램과 그것을 이끌었던 DJ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김광한과 김기덕 또 그들 때문에 덩달아 주목을 받았던 팝컬럼니스트의 위상이란 건 가히 하늘을 찌를만 했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라 경쟁적으로 누가 팝송 가수와 노래 제목, 레코드판을 더 많이 알고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보는 눈빛이 달라지는 시대이기도 했다. 나 역시 이 두 방송을 오고 가면서 누가 부른 무슨 노래가 인기가 많은지, 새로 나온 곡은 뭔지 수첩에 적어놓고 다닐 정도였다. 또 그 곡이 좋으면 레코드판을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샀다. 광한 아저씨는 DJ가 되기 위해 되고난 후에도 엄청난 공부를 했다고 하지만 난 그저 얻어 들을 뿐 덩달아 공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학교 공부만이 공부지 그것 말고 다른 공부도 있단 말인가?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그때 80년대는 DJ가 직접 틀어주는 음악다방이라는 게 유행이었다. 그때 살던 동네에도 음악다방이 있었는데(지금도 어느 특정 지역을 가면 있는 것 같긴 하다만), 대학을 갓 들어가서 친구 두 명과 함께 그곳에 갔다. 난 그저 친구들을 그곳에서 만날 것만을 생각했지 음악까지 신청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내 친구들은 그걸 꽤 하고 싶었나 보다. 친구들은 뭐 할까, 뭐 할까 끙끙거리기만 할뿐 나만큼 팝송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나서서 그때 한창 인기 있었던 록그룹 퀸을 비롯해 생각나는 대로 서너 곡을 더 추가해 DJ 박스에 밀어 넣었다. 그런데 얼마 후, 우리가 아니 내가 신청한 음악 중 한 곡이 선곡이 됐다. 그러면서 DJ가 그런 칭찬도 한다. 음악을 꽤 들을 줄 아는 분 같다고. 그러니까 그때까지 나 같은 신청자는 없었던 말이 될 것이다. 어깨 뽕이 남산만 하게 높아지는 순간이었다. 그게 알고 보면 다 김광한과 김기덕 키드로 자란 덕분일 것이다. 정말 그때는 그들의 음악을 하루라도 듣지 않으면 목에 가시가 돋을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내고, 고독한 청춘을 맞이한 때 아닌가?

 

나 개인적으론 김기덕 보단 김광한을 조금 더 좋아했다. 라디오는 보이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목소리에서 판가름 날 때가 많다. 짙은 중저음의 남성미 느껴지는 것으로야 김기덕이 좀 더 우위인 것 같긴 하다. 전달력도 좋고. 하지만 다소 가벼움이 느껴진다. 즉 중저음의 장점을 극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고나 할까긴 안목으로 봤을 때 깊이와 여유, 질리지 않는 건 김광한이 조금 더 앞서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우리의 광한 아저씨는 그것도 알고 보면 다듬고 노력한 결과라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자신은 원래 허스키 했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 끝에 그 자리에서 김기덕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의 연보를 보면, 그는 11년 동안 팝스다이얼을 진행했다. 이후 다른 타 방송국에서도 음악 프로를 진행했지만 진정한 전성기는 팝스다이얼이라고 고백한다. 또 그런 만큼 이 시기 TV 프로에도 출연하기도 했는데, 특히 기억에 남든 건 그 시절 당대 유명했던 개그(우먼)맨들과 함께 진행했던 <쇼 비디오자키>는 대단히 유명했다. 그때 어깨를 들썽거리며 진행했던 그를 처음 봤을 때 예상은 했지만 솔직히 목소리에 비하면 좀 많이 뒤처지는 외모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생김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태도, 인격, 입담, 이미지 등이 결정할 때가 많다. 그는 그 모든 것에서 우위를 차지하기에 충분했고, 그의 타고난 성격도 한몫했다. 또한 그 특유의 성실함으로 그는 국내 최초 비디오자키 1호란 칭호를 얻기도 한다.

 

내가 알기론, 김기덕이 아나운서로 시작해 DJ로 자리를 굳힌 걸로 알고 있다. 그도 김광한만큼이나 열심히 방송 출연도 했더라면 그에 못지않은 아성을 쌓았을 것이다. 그런데 뭐 때문인지 시작은 김기덕이 먼저였을 모르지만 역시 김광한이 대중에 더 많은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여한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갑작스런 죽음은 어쩌면 박수칠 때 떠나라의 전형은 아니었을까?

 

책이 상당히 재미있다. 그가 본격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썼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그런데 지나친 겸손이었을까? 자전에세이에 머물렀다. 그래도 그의 인생 스토리를 읽으면서 사람은 평소 삶을 대하는 자세와 비전이 결국 그 사람을 결정하는구나 싶다. 그의 삶은 음악에 바쳐진 삶이었다. 그는 한마디로 고진감래와 와신상담으로 이루어진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가 팝스다이얼을 맡은 첫날 첫 번째로 튼 곡이 존 마일즈의 ‘Music’이란 곡이었다고 한다. ‘Music was my first love, and last love...’ 즉 음악은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고백하는. 또한 마지막 방송 마지막 곡도 그 곡이었다고. 그의 아내 꽃님 씨가 알면 섭섭해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했는지 알 것 같다. 청취자로서 나는 그런 그의 마지막 방송을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는 게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는 자유인이었다. 그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슬퍼할 수는 있어도 좌절하지 않았다. 매번 어려운 순간을 걱정하고 주저하기보다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돌파했다. 주변에 늘 많은 친구와 이성을 몰고 다녔다. 읽으면서 얼핏 조르바가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마냥 자유만을 추구하진 않았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 자신을 벼릴 줄 아는 지조와 청렴을 지니기도 했다. 음악을 좋아하니 자유라는 이름하에 일탈을 꿈꿔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잘 있으란 인사도 없이. 70을 앞에 두고. 조금 더 살아도 좋았을 나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됐다. 그의 연보를 보니 새삼 상복도 지지리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줄 무슨 상을 받았다고 나와 있지 않다. 하나 못해 공로상도 없다. 우리나라 DJ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사람에게 이렇게 박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개척기와 황금기를 동시에 이끌던 이종환 씨도 세상을 떠났다. 이 시기 DJ와 팝칼럼니스트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았을 자료들이 어딘가에 잘 보관되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이것도 알고 보면 우리나라 대중문화사에 중요한 자료가 될 텐데 말이다.

 

누구라도 이 두 사람에 대한 평전도 써 줬으면 한다. 이 책은 재밌다고 한 번 읽고마는 책이 아니었으면 한다. 알고 보면 나름의 김광한 자신의 대중문화에 대한 증언이 들어있고, 소중한 우리의 추억이 배어 있기도 하다. 너무 사랑스럽고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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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7-19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김팝으로 쇼 비디오 자키로
뮤직 비디오 잠시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진짜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쉽네요.

이젠 팝송 인기가 예전만 못하고 들을 만한
노래도 없어서 점점 잘 안 듣게 되더라구요.

stella.K 2018-07-19 18:4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오래 전에 팝송이 시들해졌어요.
그게 제 개인적 성향만은 아니었군요.
듣는다면 올드팝으로 들었겠죠.
그렇게 우리가 팝송을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새삼 고맙더라구요.
그때 우리가 팝송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말할 수나 있었겠어요?
그저 추억은 아름다워입니다.ㅋ

2018-07-19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7-19 18:54   좋아요 0 | URL
아, 제가 리뷰에 다 쓰지 못했는데,
우리 부모님 세대는 클리프 리차드였잖아요.
우리 땐 레이프 가렛이었지요.
그 인기가 엄청났어요.
이런 표현이 좀 그렇지만 그 이름만 들어도
오줌을 질질 싼다고 했죠.
그가 내한 공연을 가졌을 때가 광주 민주화 운동이 터지가
바로 며칠 전이라더군요. 공연 못할 뻔 했는데 말입니다.
그걸 이책에서 읽는데 아찔하더군요.
광한 아저씨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저렇게 기억하는구나.
그 시절 우리는 뭐했을까 싶어요.ㅠ

hnine 2018-07-19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디오 DJ로 전파를 탄것은 김광한보다 김기덕이 훨씬 먼저이긴 했지요.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써 저도 대부분 기억이 나는 사람들, 프로그램, 노래들인데, 저는 그저 조각조각의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이렇게 한 줄에 꿰어 쓰시는 것이 바로 stella 님의 내공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stella.K 2018-07-19 18:59   좋아요 0 | URL
제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까 좀 들쑥날쑥 하네요.ㅋ
그런 실험이 있다잖아요. 지금 7,80 어르신을 20대를 재현한
공간으로 그 시절 옷을 입고 이동하면
뇌가 그때를 인지하고 세포가 젊어진다는 얘기 말이어요.
저는 이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때를 추억할 뿐만 아니라
젊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h님도 꼭 읽어보시기 바래요.
정말 좋았어요.^^
 

 

 

 

 

 

 

 

 

 

                                       

                              

 

언제 이런 애니메이션을 개봉했는지 모르겠다.

디즈니 픽사도 감탄할 정도라고 극찬을 하던데, 정말 한편의 잘 그려진 수채화를 보는 것 같고, 너무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원래는 그래픽노블을 영화화한 것이라는데 우리나라엔 (아직)번역된 것 같지는 않다. 그림도 애니매이션이 훨씬 좋다. 작가의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말하면 작가가 나름 젊을 것 같지만 작가도 이미 나이가 꽤 있다. 그러니까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할머니, 할아버지뻘 되시는 분의 이야기를 그렸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이야기의 시작도 1920년 대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의 부모님이 30대 중반쯤 됐을 때 처음 만나 사랑을하고, 결혼을 한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시간과 배경만 다르다뿐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고 한편생 사는 건 똑같다. 왜 톨스토이가 그의 소설 <안나카레니나>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고. 원래 소설가들은 남의 행복엔 그다지 관심이 없고, 불행엔 지대하게 관심이 많다. 저 사람이 왜 불행한가? 뭐 때문에 불행한가? 누구 때문에 불행한가? 등등. 그리고 소설가들은 뭔가 이 불행한 자들을 대변해줘야겠다는 나름의 사명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별것도 아닌 남의 소소한 삶을 펼쳐보이는 크리에이터나 스토리텔러들이 어찌보면 더 대단해 보이는지도 모른다. 별 것 아닌데 소소하게 재밌고, 뭐 빠져드는 건 아니지만 나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으니 말이다. 거기엔 애니메이션이나 그래픽 노블이란 장치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소설이나 실사 영화로 보여줬다고 생각해 봐라. 별 세 개 받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 같은 제3세계 관객들이 보기에 이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롭기도 하다.

1920년 대 영국은 아직 TV가 나오기 전이었나 보다. 물론 우리나라는 그보다 더 늦게 보급이 됐지만. 아내 아델이 TV가 뭐냐고 묻자 남편 어니스트가 지금까지는 우리가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는데 그걸 집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얼렁뚱땅 에둘러 설명하는 장면이나, 역시 동성애가 뭐냐고 묻는 에델의 질문에, 어니스트가 "아, 에... 그러니까 말이지... 남자와 여자가 그걸 하는 게 아니고... 남자와 남자가..."하다가 따뜻한 물이 필요하다며 주방으로 쑥들어가 버리는 장면이 재미있다.

 

또한 이 시기는 히틀러로 인해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고, 때문에 그들의 하나뿐인 아들을 그들이 사는 런던에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기 위한 국가적 시행에 부응하는 장면 등이 인상적이다. 영국에서 과연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건 정말 부럽고, 본 받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때만이라도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해줬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앞선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그밖에 노동당의 참패에 분개하는 어니스트를 보면서 한 나라의 정치가 개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으며, 평생 김대중 대통령을 미워하다 세상을 떠난 나의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또한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술에 대해 폄하하는 시선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국도 한때는 배곪는 직업이라고 해서 아들이 화가가되는 걸 반대하지만 그렇게까지 심하게 반대하지는 못한다. 하긴 그덕에 이런 평범하지만 훌륭한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더 놀라운 건, 그 아들이 자라 결혼을 했는데 하필 조현병에 걸린 여자와 결혼을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194,50년 경에 조현병이라면 쉽지 않았을텐데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을 보면 존경스럽다기 보단 너무 지나친 개인주의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보면서 자신의 부모님을 회고하는 이야기를 만들 생각을 한 작가가 새삼 존경스럽단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내 부모님의 이야기는 써 볼 생각을 못 했다는 게 조금 부끄러웠다. 하긴, 작가가 약간의 MSG를 쳤을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부모는 대체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 그런데 비해 나의 부모님은 그닥 행복한 결혼을 한건 아니었다. 쓴다면 여자의 입장에서 평생 불화했던 엄마와 엄마의 시댁 식구들에 관해서는 써 볼 생각을 하긴 했다. 

 

항상 그런 얘기를 했지만, 개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런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선 극히 일부에만 해당되는 일처럼 취급되어 진다.  

 

 김형경의 소설 <세월 1, 2>은 작가의 지난한 삶이 묻어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자전 소설이지만, 책속의 책이라 할만큼 작가가 읽어왔던 책 목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 책을 표현하자면, '그녀는 숨어 책만 읽었다.'라고 표현해도 좋을만큼 일종의 개인 서지학 같기도 하다. 그중 한때 저자는 뿌리 깊은 나무에서 발간 했던 민중자서전 시리즈를 탐독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난 그런 책이 있었다는 사실에 좀 놀웠다. 우리나라에 그런 책이 있었다니! 그래서 혹시 정보를 알 수 있을까 해서 검색을 해 보았다..

 

있긴 있지만 90년대 초에 나온 것으로서 지금은 모두 절판됐고, 그나마 책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나와있지 않다.

 

개인이 존중되는 사회일수록 자서전이나 회고록 또한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민중 민요나 가요 또는 구전된 이야기도 초야에 묻힌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더 많이 알고 있을텐데 그들에게서 그런 이야기의 채취 작업은 얼마나 하고 있는지, 또한 그들의 삶에 대해 얼마나 귀기울여 왔는지 의문이다.

 

이제 개인의 이야기나 회고록은 활자로만 전달되는 것마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델과 어니스트> 같은 그래픽 노블이나 애니매이션 작업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지지 않을까? 뭐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이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한다.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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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6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7-17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영화 어느 분 서재에서 보고 찜해놓고선 아직 못보고 있어요. 스노우맨 이랑 그림에서 오는 느낌이 참 비슷한데 스노우맨도 약간 슬픈 결말이잖아요?
뿌리깊은 나무에서 나온 책들 예전에 이버지께서 여러권 가지고 계셨더랬는데 그 생각도 나고요.
요즘 영화 많이 보시네요~^^

stella.K 2018-07-17 14:4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스노우맨 제작팀이 만들었지요.
그러고 보면 이것도 결말이 슬프긴 해요.

뿌리 깊은 나무는 여러모로 안타까워요.
얼마 전 어디서 글을 읽으니 5공 언론통폐합 때
사라진 출판사 중 하나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도 최근까지 다시 책도 내고 하던가 본데
다시 주목 받는 출판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생각 보다 그리 많이 보는 건 아닌데...
월정액 들어서 안 보면 손해여요.
최근엔 미드도 접수했어요.
자막 들어간 거 안 보려고 했는데 늦바람이 들었나 봐요.ㅋㅋ

후애(厚愛) 2018-07-17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픽노블 너무 궁금하네요.
근데 번역으로 나오지 않았군요.
나오면 바로 볼텐데..ㅎㅎ

영화 정말 많이 보시는군요.^^

stella.K 2018-07-17 18:29   좋아요 0 | URL
그래픽노블은 그림이 좀 그런 것 같더라구요.
차라리 애니메이션으로 보시는 게...^^
그리고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아서
영문 원서로 가지고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우선 이 작품은 시나리오로 봤을 때는 되게 잘 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등장인물이 쏟아내는 대사도 상당히 유려하다.

영상도 나름 좋다. 요즘 제주도가 각광 받던데 그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결혼한 사람들의 성적 판타지를 건드린다. 

 

영화가 분명 19금인 건 사실인데, 실제로 야한 장면은 생각 보단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나머지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영상이나 영화적 구성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평이 대체로 낮은 편이다.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 관객들이 (성)도덕성이 높아 도덕의 잣대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영화는 반드시 도덕의 잣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감독은 기본적으로 영화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풍자가 살아 있다.

그걸 그냥 즐기면 되는데 편하게마는 봐줄 수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사실 나도 이 영화를 굳이 보고 싶어서 봤던 건 아니다.

 

난 언제부턴가 영화에 어떤 배우가 나왔는지 보다는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어떤 생각과 취향을 가지고 만들었는가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특히 감독이 배우들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고 있는가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이건 최근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부터 더욱 그렇게 됐다. 그러니 이런 영화에 관심이 많아질 수 밖에. 

 

영화를 보고나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뭔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뭐,  남자만 바람 피우는 것 같지? 사실은 여자도 바람을 핀다거나, 억울하면 당신도 바람을 피든지 하는 식의 권장을 에둘러 표현한 것도 같다. 특히 조신하고 순진하거나(담덕 역의 장영남), 현대적 현모양처(미영 역의 송지효)는 요즘 어디나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상이긴 하지만 그들에게도 알고 보면 애인이 있었다는 건 감독 혼자만의 생각인지,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것을 떠나 감독이 이 두 배우를 그렇게 설정해놨다는 게 왠지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중세 유럽의 귀족만 하더라도 결혼은 재산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정략적 제도일뿐이었다. 그러므로 내연관계는 당연했던 거고. 그게 어떤 식으로든 변형이 되어 오늘 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봉수(신하균 분)가 영화 중간에 그런 대사를 날리지 않는가? 난 어제 와이프하고 키스까지 했다고. 익숙한 관계는 성적 흥분이 안 되는 것이다. 섹스는 그저 아기를 갖기 위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 밖에는 없다.  

 

그런데 흥분 너무 좋아하지 마라. 영화의 등장인물 석근(이성민 분)결국 흥분 좋아하다 패가망신까지는 아니어도 하루아침에 홀아비 신세가 됐다. 그런데 웃기지 않나? 아내를 잃고 그제야 정신을 차리다니? 그런데 난 웬지 거기까지만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그럼 뭔가? 아내를 잃지 않았다면 그의 철없는 외도는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고, 따라서 그의 절름발이 결혼은 계속된다는 말 아닌가? 왜 그놈의 성적 흥분이란 게 아내가 살아있을 땐 멀쩡히 작동하더니 죽고나자 작동을 멈춘단 말인가? 석근이 아픔을 통한 깨달음, 성숙이라기 보단 아내가 있어야 작동하는 남자. 뭐 이렇게 읽히기도 한다. 

 

물론 여자들중엔 그래봤자 남편의 아랫도리 아니냐며 초탈한 여자도 있다지만, 사람은 그렇지가 않다. 반대로 아내가 외도를 했다면 초탈할 남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엊그제 아는 지인과 얘기하다가, 그 지인의 누구의 딸이 심한 화장을 입었단다. 그런데 하필 딸이 그렇게 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메고 있었을 때 남편(이란 작자)은 그 시간에 상간녀와 침대에서 딩굴렀단다. 그걸 알고 즉시 이혼했다고. 뭐 <사랑과 전쟁>에 나올 법한 얘기지만 왜 우리가 결혼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행복하자고, 적어도 서로 좋자고 하는 결혼 아닌가?  

   

암튼 영화가 아주 범작은 아니다. 성적 부도덕을 가지고 오히려 회개와 반성을 촉구하고, 각자의 배우자에게 잘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데 그게 억지스럽거나 진부하지만은 않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나름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섹스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한번쯤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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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8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7-09 14:41   좋아요 0 | URL
ㅎㅎ그게 차라리 낫죠. ㅋㅋㅋㅋ

레삭매냐 2018-07-11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원래 체코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상황하고는 좀 달라서, 주인공들의 관계
도 상당히 바꿨다죠 아마.

전 극장에 가서 보았는데 즐겁게 봤습니다. 오락
영화로 말이죠.

제주도로 로케이션 장소로 삼은 것도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stella.K 2018-07-11 13:57   좋아요 0 | URL
왙! 그렇습니까?
어쩐지, 구사하는 대사가 좀 남다르다 싶더군요.
템포도 그렇고.

그렇죠? 괜찮더라구요. 근데 네*버 평들
보면 하나 같이 가관이더군요.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인 저도 그런데 감독이나 제작진은 더하겠죠?ㅎ

페크pek0501 2018-07-14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흔히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장면 - 바람 피우는 남편이 자기 아내를 맘에 들어 하는 딴 남자가 있든지 딴 남자를 만나든지 하면 심한 질투를 느끼는 것. 영원히 자기 것이라 여겼던 아내의 반란은 참기 힘든 모양이에요. 그럴 거면 진작 잘할 일이지 말이에요.
원래 가까이 있는 보석을 몰라 보고 돌멩이로 아는 게 인간인 것 같습니다. 체호프의 단편 중에 그런 게 있죠. 바람 피우던 아내가 나중에서야 남편이야말로 소중한 사람임을 깨닫게 되는 장면.
그 깨달음이 너무 늦은 게 문제지요. 남편이 숨을 거두는 시간에 아내는 뼈저리게 느끼며 슬퍼합니다. 남편이야말로 소중한 사람임을. <베짱이>라는 단편이에요.ㅋ

stella.K 2018-07-14 15:42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있을 때 잘하란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닌데 말입니다.
꼭 마지막 순간에 깨닫는 건 뭔지 모르겠습니다.ㅠ

이 영화 무료하고 지루할 때 함 보세요.
물론 킬링 타임용이긴 하지만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꽤 공들여 만들었단 느낌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