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몰입도가 좋다.

새삼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조선족을 포함한 다문화 가정의 엄마들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능력있는 워킹맘도 그렇고.

물론 이들이 충분한 사회의 보호를 받는다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한매는 조선족이지만 불법체류자고,

지선은 능력있는 여자지만 이혼과 함께 아이 양육권을 빼앗길 위기에 있고,

사회적으로도 위태위태하다.

이런 소위 사회에서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난 여자들은 역시

사회의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다.

아기 유괴 영화는 그저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장치일 뿐이고 영화는 그것을

통해 바로 이점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한매가 불법체류자로서 병든 자신의 아기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입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병원에서 쫓겨났을 때 그 배후엔 그 병원 소아과 의사이자

지선의 남편이 있었다. 그리고 역시 병든 자신의 아기를 입원시키기 위해

한매의 아기를 강제로 퇴원시킨 것이다.

문득 이 부분을 봤을 때 얼마 전 읽은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 에세이가 생각이 났다.

헌법에 이런 비슷한 조항이 있지 않을까?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항 말이다.

하다못해 모자보건법이니 인권 조례로라도 함부로 보호자의 동의없이

강제퇴원을 못하는 조항 같은 거 말이다. 그게 아무리 벌법이민자라도.

그럴 때 뭔가 위탁 병원으로 후송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물론 극적 효과를 위해 그런 걸 배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은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그 역할을 한매 역의 공효진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잘 소화해 냈다.

또한 여자를 일컫어 그렇게 표현한 건(물론 결코 유쾌한 건 아니지만)

그말 뜻이 가부장의 그림자가 있다는 걸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여자 스스로는 한을 품지 않는다. 

다 여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이 사회의 태곳적 가부장 때문이지.

 

지선 역의 엄지원과 공효진의 연기 대결이 볼만하다.

둘 다 팽팽하지만 개인적으론 공효진을 조금 더 좋아하는 관계로

조금 더 우월한 연기력을 펼쳤다고 하면 차별이라고 하려나?ㅎ

영화가 나름 오랫동안 여러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포스터에서 공효진 왜 저렇게 점이 많은지 모르겠다. 완전 점순이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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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0-11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스텔라님과 저는 왜 친구가 아닌거죠?
저는 친구등록이 돼 있어서 스텔라님 글이 북플에 뜨는데, 스텔라님은 제가 글 쓰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찾아와서 댓글을 다시나요.....

stella.K 2018-10-11 16:45   좋아요 0 | URL
앗, 미안합니다.
알라딘 서재에 들어가면
누가 최근에 글을 올렸는지, 알잖아요.
좋아요 5개 이상은 메인에 뜨고.
그래서 아는 거죠.ㅎ
그도 그렇지만 타이밍을 놓쳤어요.
지금쯤 친구등록을 하고 싶기는 한데
하면 스요님이 친구등록을 안했단 말야?
분노의 포도 알갱이를 마구마구 저한테 분사할까 봐
수시로 들어가서 뭐 새로운 글 올라온 것 없나
확인하곤 했죠.
제가 이래뵈도 스요님한테 관심이 많습니다.ㅎㅎ

syo 2018-10-11 16:5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요지는, 저랑 밀땅하신 거네요 지금? ㅋㅋㅋㅋㅋㅋㅋ

stella.K 2018-10-11 17:0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정답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세상틈에 2018-10-11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공효진이 나왔었군요. 팬인데 왜 몰랐으까.ㅎ 헌법의 취지에 맞게만 법이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한번 볼까봐요.^^

stella.K 2018-10-12 18:18   좋아요 0 | URL
공효진 좋아하시는군요. 그럼 후회 안하실 걸요?
저 두 사람도 좋았지만 조연으로 나왔던 김선영이란 배우도
전 좋더군요. 확실히 조연 역할을 톡톡히 잘해요.^^

비로그인 2018-10-11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영화 찍으면서 일부러 얼굴에 점을 많이 찍는 메이크업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공효진이... 고생스런 삶을 산 게 보이도록. (제 얼굴은 더한데요 ㅠㅠ)
여러 가지로 후벼파며 고발하는 영화였던 게 기억나요... 세세한 부분에서 구체적이기도 하고.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엄지원이 홍보행사에서 몰래 하이힐 벗고 서 있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그 장면이 너무 자연스러웠는데(구두 신고 오래 있음 진짜 발 아프잖아요), 남자 스텝들이 그 장면을 이해를 못하고, 너무 과한 설정이라고 했다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세세한 디테일이 정말 여자들은 다 알고 남자들은 모르는 게 많았던 것 같아요.

stella.K 2018-10-12 18:16   좋아요 0 | URL
그랬을 겁니다. 솔직히 영화에선 별로 못 느꼈거든요.
저도 얼굴 잡티가 말도 못해요.ㅠㅋㅋ

저도 여자 출연자들 가끔 구두를 벗고 뭘하는 것 보면
자연스럽고 좋던데. 남자들이 그러는군요.ㅠ

페크pek0501 2018-10-1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 예약해 놓은 게 있어요. 내일 무용 공연을 보러 갑니다. 발레.
저보다 다리가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지 지켜보고 올 거예요. 홍보 사진을 보니 공중에 몸이 뜨던데 기대됩니다.

stella.K 2018-10-12 18:13   좋아요 0 | URL
와우, 부럽습니다.
발레를 배우시더니 완전 꽂히셨나 봅니다.
저는 작년인가, 재작년에 째즈 발레 공연을 본적이 있었는데
정말 멋있더군요. 잠시도 쉬지않고 몸을 움직여주는데
사람의 몸이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지? 놀랍더군요.
암튼 좋은 시간 되길 바랍니다.^^

노란가방 2018-10-1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지원이 이렇게 연기를 잘 했었나 싶었던 영화였죠

stella.K 2018-10-13 16:1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평균은 하는 배우라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에선 선방했더군요. 좋았습니다.^^
 

                                          

                     

감독: 이준익

출연: 박정민, 김고운 외

 

 

 

 

처음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그 영화가 어떤 스토린가, 누가 나오는가, 재미는 있는가 뭐 이런 걸 중점으로 볼 것이다. 그러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가 못하는가를 따지고 또 그러다 감독이 누구냐를 따지게 되고 그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드냐 못 만드냐를 품평하게 된다. 그건 확실히 관객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것조차 품평할 줄 모른다면 그게 어디 관객이랴?

 

 

이 영화,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배우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것만으로도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 김고은이야 더 이상 말이 필요없고, 박정민 역시 그렇다. 난 박정민이 영화에서 그렇게 랩을 잘하는 줄 몰랐다. 물론 원래 랩을 잘 했는지, 이 영화를 위해 노력한 결과인지 아니면 립씽크인지 잘 모르겠다. 배우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립씽크를 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난 이 두 배우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 영화는 결국 감독을 위한 예술이다. 나는 이준익이란 감독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다. 처음 그의 영화를 대한다면 감독을 모르니까 당연 누가 나오는가를 보고 선택을 했고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이준기 주연의 <왕의 남자>가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그때만 하더라도 내가 이준기 배우를 잘 알았던 건 아니고, 그냥 영화에서 연기를 인상 깊게해서 이런 배우도 있었네 했을 뿐이다. 어쨌든 그후 난 기회있을 때마다 감독의 영화를 즐겨봤고 그 정점을 찍은 영화는 <동주>였던 것 같다. 너무 좋아 거의 연거푸 세 번을 봤다. 그건 아마도 윤동주라는 이름이 주는 메리트가 더해졌을 것이다.

 

물론 그가 내놓는 영화마다 성공했던 건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그의 영화를 빠짐없이 다 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보면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는 모르긴 해도 요즘 보기 드문 로맨티스트인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영화를 보면 그리 돈을 들인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그의 영화에 별점 3개 반 내지는 네 개는 줄 수 있다. 누구는 째째하게 그게 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원래 영화 평점이 좀 짠 편이다. 그러니 그만한 별점이라면 꽤 높은 점수다.

 

스토리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언제나 그렇듯 해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비슷한 또는 정해진 플롯을 누가 얼만큼 잘 요리하느냐가 결국 관건인데 그렇게 얘기하자면 감독은 스토리를 참 잘 다룬다. 아마 모르긴 해도 문학에, 특히 소설과 시에 정통해 있지 않나 싶다. 더구나 김고은을 아예 소설가로 내세웠다. 난 또 이상하게도 영화든, 드라마든 심지어 소설에 작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묘하게도 닭살이 돋는다. 동주처럼 아예 작가의 삶을 다루면 모를까. 좀 싸 보이고,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땜빵식이란 느낌이 든다랄까?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구나 책에 나오는 구절과 장면을 엮어 놓는 것을 보면 그게 꼭 싫은 건 아니지만 좀 아마추어적이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감독이 요즘 다시 회춘을 하는 건 아닌가? 

그렇더라도 난 여전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박정민의 랩을 유심히 봤다. 내가 원래 뮤지컬에 관심이 많고, 또 요즘 갑자기 뮤지컬 작업을 하게 될 기회가 생겨서 더 유심히 보게 된다. 반주는 단조로우면서도 나긋나긋하고, 그러면서도 고독함이 느껴진다. 가사는 자유로우면서도 다소 거칠고 반항적이고, 역시 고독하다. 처음 오페라가 그랬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가곡이 있었겠지만 그것이 갖는 정형성을 탈피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말에 곡을 입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오페라는 거의 동선이 없고 뻣뻣하게 서서 노래만 불렀다. 조금 더 현대적이면서 연기적 요소와 포퍼먼스를 가미한 새로운 뭔가가 필요해 뮤지컬을 탄생시키지 않았을까? 그러다 음악적 요소만 따로 떼어놓고 봤을 때 더 강하면서도 저항적인 랩이란 장르를 탄생시킨 건 아닌지? 아무튼 가사를 보면 아무나 자유롭게 써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도 한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어느 초등학교 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모든 교과를 랩으로 만들어 부르는 걸 봤는데 꽤 잘하더라. 어쨌든 감독은 영화에서 랩을 사용할 생각을 했던 것을 보면 분명 이제까지 안 해 본걸 시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건 감독으로선 새로운 도전이었고 감독의 청년 정신을 나름 잘 표현한 장치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영화에선 무엇을 보여줄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또한 외디푸스컴플랙스에도 꽤 충실해 보인다. 여기, 가정을 돌보지도 않고 바깥으로만 돌며 아내에게 폭력까지 행사하고 그것을 지켜만 보며 증오의 감정을 키운 아들이 있다. 게다가 조그만 시골 동네에서 사춘기까지 보낸 그는 고향에 대한 기억이 그리 아름답지 않다. 그래서 고향을 떠났는데,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함께 자란 여자 친구가 아버지가 편찮다며 고향으로 호출한다. 

 

고향이 지겨워 떠났을텐데 12년만에 돌아 온 고향은 자꾸 그의 안 좋은 기억을 건드린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고향을 떠나건 과연 그곳에 관한 기억이 그렇게 안 좋은 기억만 있을까? 그렇지마는 않다고 감독은 말하는 것 같다. 또한 영화는 그 과거에 묻어두고 도망친 자신의 풀지못한 인생을 마주하라고 (관객에게) 주문하기도 한다. 하긴 심리학에서는 현실에 불만이 있는 건 과거에 풀지못한 여러 가지 욕구불만과 인간관계 등이 꼬여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그것과 화해를 시도하기도 하는데 뭐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다시 기억하기 싫은 추억도 시간이 흘러 다시 떠올리면 그다지 나쁘지 않고 긍정할 수 있는 부분도 꽤 있음을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 

 

아버지를 증오하는 아들의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예전에 드라마나 영화는 그 증오의 마음을 삯히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거나 애꿎은 거울을 깨거나 그런 것으로 화를 표현하기도 한다. 아버지를 증오할망정 폭력을 쓰는 건 패륜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이 영화에선 실제로 아버지에게 폭력을 쓴다. 물론 그게 나중에 아버지와 화해를 하는데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감독은 여기까지 표현하게 만들었구나 기존의 아날로그적 방식에서 조금 다른 방식을 썼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화는 어떤 개연성 보다는 그냥 관객의 입장에서 보고 즐기라고 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해피엔딩은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엔딩은 뮤지컬의 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는데 그게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도 있는데 혹시 이 영화를 별로 재미없게 봤더라도 그 엔딩에선 만족하게 되지 않을까? 

 

아무튼 감독은 관객을 위한 감독이다. 그의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 자기 세계를 고집하기 보단 관객과의 공감, 소통 적어도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난 이런 감독의 자세가 마음에 든다. 부디 좀 더 오래 감독의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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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8-10-1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믿고 보는 감독이랄까...포스터 보고 뭐야? 이러다가 감독 이름 보고 한번 봐야지...결과는 꽤 만족입니다.

stella.K 2018-10-10 15:23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어요.^^
그렇죠? 이준익의 영화를 보는 건 결코 작지않은 기쁨입니다.
그나저나 날씨는 쓸쓸해져 가니
<동주> 한 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 잔 울카이

출연: 김설(아일라), 이스마일 하지오글루(슐레이만) 

 

 

 

 

 

 

 

 

사실 이런 재회 영화는 영화로만 생각하면 별로 새롭거나 신선한 건 아니다.

그건 그동안 그런 영화를 봐서 일수도 있고, 무엇보다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TV에서 많이 봐서 일수도 있다. 솔직히 6.25 때 한국 어린이와 터키 병사와의 특별한 만남과 재회라는 소재가 아니면 영화가 주는 감동 보단 남북한 이산 가족 상봉 장면이 우리에겐 더 익숙하고 감동스럽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물론 그렇다고 무감각하다는 건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거의 5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연출된 장면이긴 하지만 기어코 다시 만나는 장면은 코끝이 찡하다. 바로 그 장면 뒤에 영화가 아닌 실제 두 주인공이 만나는 장면이 더 감동스럽긴 하지만. 그러니까 영화는 실제의 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내용도 새로운 건 아니다. 단지 어찌 한국 어린이와 터키 병사가 저렇게까지 끈끈할 수가 있을까? 물론 한국 전쟁 때 터키가 우리나라를 도와 준 것은 알지만 이렇게 실화를 바탕으로 하니 새삼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터키, 터키 말들은 많이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그리 많이 다루어진 것도 아니지 않는가. 새삼 막연한 동경이나 호기심만 있을 뿐, 나 역시도 새삼 내가 언제 터키 영화를 본적이 있나 싶기도 하다.

 

 

영화가 놀랍거나 새로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지나치게 신파도 아니고. 무엇보다 영상이 이국적이면서도 예쁘다. 얼핏 이란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나 <올리브 나무 사이로>가 생각이 나면서 프랑스 영화 <아말리에>의 영상을 적절히 섞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터키에 대한 동경이 이 영화를 통해 한층 고무된 느낌이기도 하다. 문득 내 방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오르한 파묵의 책이라도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참 놀랍고,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같이 죽을만도한데 누구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 의해 부정을 나누고 한 세상을 또 그럭저럭 살게 만들기도 하니.

이 영화 볼만하다. 영화는 스토리만 보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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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10-05 16:58   좋아요 1 | URL
아, 그런 썰이 있나요?
첨 듣는 얘깁니다. 그래서 터키 사람들이
우리를 친근하게 느끼나 보죠?

이스라엘이 중동 지역에 있잖아요.
실제로 중동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그렇게 좋아한답니다.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동에 가서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했잖아요.
그 열사의 나라에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이 와서
일해줬다고 그렇게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syo 2018-10-05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심지어 영화 제목조차 언급을 안하셨다는 사실을 아세요?
한 번 찾아볼까 했는데 방법이 없다.....

카알벨루치 2018-10-05 16:43   좋아요 0 | URL
난 모르는 영화는 이야기도 잘 모르는데 등장인물 이름까지 나오면 난독증이 와서 보기가 힘들어 패스를 잘하는데 어디서 제목을 언급하셨나 아닌가 했겠지 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syo님이 대구하시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바쁘셨나봐요 ㅎㅎㅎ

stella.K 2018-10-05 16:5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어쩐지 뭐가 빠졌다 했더니...
알라딘은 영화 BD가 지원이 안 되서 큰 일 입니다.ㅠㅠㅠ

이럴 땐 슬쩍 남에게 미루는 게 장땡.ㅋㅋㅋ

syo 2018-10-05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갑자기 포스터랑 감독, 출연이 보이네??? 헐?

stella.K 2018-10-05 16:53   좋아요 0 | URL
스요님 땜에 언능 넣었습니다.ㅋㅋ

카알벨루치 2018-10-05 16:5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페크pek0501 2018-10-12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드라마 - 이사람으로말할것같으면, 인가 무척 재밌게 봤습니다. 남상미의 팬이라서 더 재밌었는지 모르겠어요.

stella.K 2018-10-12 18:10   좋아요 0 | URL
아, 그거 하는 건 알고 있는데 한번도 본적이 없어요.
요즘엔 워낙에 드라마를 많이하는지라
선택한 드라마 몇편도 다 못 보겠더군요.
저는 <최고의 이혼>을 보고 있는데
시작이 좋더군요.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거라
괜찮겠다 싶더군요.
세트도 좀 일본스럽게 아기자기하더군요.
기회되면 언니가 말씀하신 드라마 보도록하겠슴다.^^
 
로맨틱, 파리
데이비드 다우니 지음, 김수진 옮김 / 올댓북스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사람들 저마다 자기 좋아하는 독서 분야가 따로 있을 것이다. 또 그런만큼 기피 대상 분야도 있지 않을까? 나도 기피 분야가 있긴 하다. 바로 요리와 여행이다. 아무리 먹방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난 요리를 소재로한 그 어떤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방송을 물론이고, 책도 영화도 별로다. 먹어 볼 수도 없는데 그 앞에서 군침을 삼키는 게 좀 바보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여행을 소재로한 어떤 책도 영상물도 좋아하지 않는다. 가 볼 수도 없는데 방에 들어 앉아 괜히 나 자신을 자책는 게 싫은 것이다. 그나마 음식 보다 나은 게 여행이긴 하지만.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미국 출신이지만 프랑스 파리를 좋아해 아예 이주하면서 그곳을 취재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것도 문학 분야. 저자는 기행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문학 기행다. 그러니 또 마음이 동한다. 여행기를 읽을 때 어떤 분야에 방점을 두고 읽느냐에 따라 그 읽는 느낌이 다를텐데 문학 기행이라면 나로선 안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일까? 책이 참 마음에 든다. 원래 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 문학을 좀 좋아하긴 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정말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기나 한 걸까 싶게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의 이름이나 몇명 꿸 줄 알지 그들의 문학을 열심히 읽은 것도 아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프랑스 문학을 좋아한다고 했을까? 또 그런 생각이 들만큼 책은 프랑스 작가들의 삶과 거리와 공간에 대해 꼼꼼하면서도 자유럽게 잘도 써놨다. 그런 저자의 글 재주가 부럽다.        

 

인상적인 건 빅토르 위고와 조르주 상드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위고는 발자크와 함께 프랑스가 가장 사랑하는 국민 작가요 가히 모든 작가들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위고도 부인과 정부 사이를 오가며 애증의 관계인 것을 볼 때, 또한 상드는 남장을 하리만큼 자신의 성정체에 자유한 삶을 살았던 것을 볼 때 문화적 충격을 넘어 프랑스는 가히 팜므바탈적이란 느낌도 든다. 저자도 위고를 많이 동경했던 걸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위고에 관한 이야기가 끊어질듯 하면서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런 것을 볼 때 확실히 위고가 프랑스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그가 죽었을 땐 아예 국장으로 치뤘다니 알만하지 않은가.

 

아무튼 나로선 프랑스는 넘사벽이지만 동시에 더 궁금해지고 알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만든다. 이 책을 언제고 다시 또 한 번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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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8-10-0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요리와 여행에 관한 책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요리도 여행도 잘 하지 않는 주제에 읽는 것만 좋아해요 호호^^;;; 문학기행이라니, 거기다 stella.K님께서 좋은 책이라 말씀하시니 저도 읽고 싶어욧@_@;;;

stella.K 2018-10-04 15:46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문학 기행만 좋아해요.
문학 기행 좋아하시면 감히 추천드립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8-10-04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10-04 16: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읽어도 다 못 읽지요.
사실 이책 완독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못했어요.
협찬 받은 거라 오늘이 마감이거든요.
또 하필 가장 바쁠 때 읽게되서 여유가 없더군요.
정말 이책은 느긋하게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 건데.ㅠ

파리 여행 꼭 가세요.
정말 님 사진 보고 싶어요. 염장인가요?ㅎㅎ

후애(厚愛) 2018-10-04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로맨틱, 파리라고 해서 로맨스 소설인 줄 알았어요.^^;;
여행에세이 책이네요.
아침저녁으로 많이 선선한데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환절김 감기조심하세요.^^

stella.K 2018-10-04 16:49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처음에 잠깐 착각했어요.

네. 고맙습니다. 후애님도 건강하시길...^^
 
종교 없는 삶 - 불안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졌다
필 주커먼 지음, 박윤정 옮김 / 판미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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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그 제목부터 호불호가 갈리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신앙이 없는 사람에겐 뭔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논리적으로 대변해주고 있으니 사이다 같은 책일 것이고, 믿는 사람은 좀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나아가서 이 책에 분노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래도 전자에 동조하지 못할 것은 확실하다.  

 

사실 처음엔 좀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처음 읽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거라 그다지 많이 화가 났던 것도 아니다. 먼저 저자는 1장에서, 신을 믿지 않으면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없느냐고 했는데, 나는 여기서부터 저자가 시작부터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도덕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저자는 종교와 도덕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종교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종교 안에 도덕성이 포함되는 것이지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요는 저자는 이것을 같은 범주의 것으로 생각해 자신의 논리가 타당함을 독자로 하여금 주입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솔직히 그렇게 얘기를 하자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자들에게 더 많은 도덕성을 요구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인을 핍박하거나 거부할 때 가장 쉽게 꺼내들었던 카드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다고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부도덕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당연 무종교에서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종교에서 도덕이 결여된 사람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도덕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에 대해 할 얘기가 없는 것이 아니나 여기선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겠다. 

 

구원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책은 그 어디에도 구원에 관한 언급이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즉 종교없는 삶이 그토록 타당한 것이라면 구원이 의미가 없고 그것을 반박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저자는 구원이란 게 뭔지 알지 못하거나 지나친 채 그저 현상학적 측면만을 나열했다. 저자는 신자로부터 종교가 있냐고 물어보는 게 꽤나 귀찮았던 것 같고, 그것을 위협적(?)으로까지 느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해 못할 부분도 아닌 것 같다. 그런 질문을 한 두 번도 아니고 꽤 여러번 받았다고 생각해 보라. 더구나 교회에서 전도 프로그램 수련자가 실습하겠다고 재수없이 접근해 오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뭔가 반박할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비판대신 조금씩 이해하는 마음으로 읽어가다 보면 이 사람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도 꼭 그리 틀린 말도 아니겠다 싶다. 사실 저자도 무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증명해서 그렇지, 사실 책에 언급한 내용 거의 대부분은 이미 종교 진영 특별히 기독교에선 이미 위기로 인식하고 있는 것들이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무종교 진영에선 타당한 것들을 기독교에선 위기로 보는 시각의 차이를 갖고 있다는 것뿐이다. 

 

예를들면, 저자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종교를 찾지 않는 이유라고 했는데 그도 맞는 얘기다. 직장 일하랴, 육아까지 떠안은 여성이 교회에 나올 확률은 극히 낮아 보인다. 더구나 교회 생활이 안식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사회성과 의무를 요구한다면 집에서 쉬거나 다른 활동을 하고 싶지 교회 나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옛날엔 여성들이 사회진출이 그리 많지 않으니 교회 나오기는 용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족성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교회엔 아직도 남성의 비율 보단 여성의 비율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남녀를 떠나 그렇게 피곤해서 교회 안 나올 것만 같지만 나오는 사람은 나온다. 요는 저자가 무종교의 타당성을 증명하려면 교회 나오는 사람은 왜 나오는가에 대해서도 연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는데 어느 한 측면만 부각시키다 보니 객관성이 떨어지고 설득력도 별로다. 

 

물론 저자는 교회 다니는 사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연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가 만났던 사람은 자신의 논증을 뒷바침해 줄 사람만 만났나 보다. 저자가 미국인인만큼 미국에 국한시켜 연구를 했던 모양인데 세속화를 언급하면서 신앙이 있는 사람들 역시 보면 별 것 아닌 수준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교회도 세속화되고 있으니. 그러나 모든 교인들이 그런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오산이다. 그래도 얼마간은 구원을 믿으며 경건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비율에 낮아서 그렇지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비율은 저자가 잘 써 먹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또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신앙 생활 잘하고 있는 사람을 안 믿는 사람은 급진적이고 맹신으로 매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희화화시키거나 조롱하기도 하고. 그것은 빠뜨린 채 도덕성 운운하는 건 좀 넌센스 아닌가?

 

저자는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 중 또 하나로 성소수자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것 역시 당연하긴 하다.기독교에선 기본적으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물론 요즘엔 일부나마 동성애에 대해 관심을 갖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동성애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문제라 저자가 제시한 것이 최근에 나온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요즘 나온 문제처럼 말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성소수자가 교회를 기피하는 것도 맞는 것 같긴하다. 그러나 조금 더 이성적여 보자. 정말 기독교만이 동성애를 부정해 왔는가? 그래서 마치 기독교는 이 성소수자에 대해 피도 눈물도 없고, 또한 그로인해 그들은 기독교인에 대한 반감을 키워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성소수자를 기독교인만이 피박해 왔을까? 무종교나 타종교인들 중에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독교인에 집중되어 온 이유는 뭘까? 

 

저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종교없는 삶을 짚어내고 있지만 기독교라고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기독교가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때로 위협이 될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 역시 세속화가 위협이 되기도 한다. 세속화가 믿지 않은 사람에겐 신앙을 갖지 않을 근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이다. 전에 모 교수가 TV에서 과학은 하나의 가설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진화론도 그렇게 시작됐을 것이고, 여전히 가설로 연구 대상인데 진화론은 마치 과학의 신이요 끝판왕처럼 신봉하는 반면, 창조론은 특정 종교를 표방한다고 해서 배제시켜 왔다. 가설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과학이라면, 창조론도 같은 관점에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 아닌가?

 

역사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미국이 기독교적 이념에서 출발한 국가가 아니라면서 대통령이 성서를에 손을 얹고 대통령직을 수락하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지 않은 대통령을 지목하기도 하고, 그밖에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도 비기독교 내지는 비종교인임을 지적한다. 물론 그렇게 따진다면 저들의 입장에선 기독교 진영에서 위대한 기독교인을 추들며 기독교의 위대성을 말하는 것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위대한 사람은 종교인에서건 비종교인이건 다 나올 수 있다는 것엔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일제 강점기 국가적으론 패망이었지만 기독교가 그 시대에 했던 일은 가히 놀랍다 못해 위대했다. 그런데 그런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역사 교과서에선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그뿐인가? 아이들이 고등학교 때까지는 신앙 생활을 잘 하다가도 대학만 들어가면 급속하게 신앙을 버리는 것에 대해 위기 의식을 느낀다. 게다가 나라 정책이 점점 비신앙을 옹호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하다못해 미션 스쿨에서도 성서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한다고 들었다. 이것을 단순히 저자가 나열한 무종교의 탁월한 예를들어 그냥 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또한 저자는 죽으면 내세는 없으며 지금 여기의 삶을 살라고 하는데 물론 그럴 듯하긴 하다. 하지만 내세관 역시 내세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철학이다. 그것을 단지 몇 페이지 또는 몇 줄만으로 긍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내세관이 없는 것 보단 있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물론 이 세상에서 싫은 사람을 죽은 후 저 세상에서도 만날 걸 생각하면 끔찍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저 세상에서 볼 수 있다면 사별의 슬픔은 좀 덜 하지 않을까? 또한 나쁜 사람들을 지옥이나 가라고 저주할 수도 없다. 아무리 비종교인의 우수한 도덕성과 교육으로 무장한다고 해도 죄까지 없앨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삶이 나쁜 건 아니지만 깊어지면 죄의식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걸 저자는 간과하고 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이미 적잖은 지면을 할애했고, 이런 논의는 한도 없고, 끝도 없다. 또한 이러는 나 역시 처음부터 종교적 인간이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도 교회를 다니지만 여전히 회의속에서 다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무종교의 삶이 종교의 삶 보다 나을 거란 근거를 못 찾겠다. 저자가 이만큼 고민해서 이런 책을 썼을 것이다.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한 왜 종교적 삶이 합당한지 고민해 보겠다. 결국 이건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종교적 삶과 무종교의 접점을 찾는 책중 하나로 봤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고가 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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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29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 전 언제 쓰죠? 오늘 도서관 못 가고 부모님 호출로 시골에 와서 노가다했네요 아 일정이 어그러졌네요 ㅋㅋㅋㅋㅋ

stella.K 2018-09-29 19:55   좋아요 1 | URL
ㅎㅎ 내일 쓰시면 되죠.
카알님은 어떻게 느끼셨을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