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일기 - 서민 교수의 매일 30분, 글 쓰는 힘 밥보다
서민 지음 / 책밥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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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왔을 때 반갑기도 했지만 좀 의아스럽기도 했다. 일기에 관해 뭐 할 말이 있을까 싶은 것이다. 특히 학교 때 일기 쓰기 숙제에 학을 떼어 본 사람이라면 뭐 이런 책을...? 하며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이 척 보기에도 나 그렇게 지루한 책 아냐.”라고 말 하는 것 같고, 실제로도 그렇다. 하긴, 일기 쓰기에 대해 철학적이며 인류학적이고, 기록학적 고찰을 해 놓았다면 누가 일기를 쓰고 싶어하겠는가? 더구나 저자는 유쾌하게 강연하기로 소문났다. 그런 그가 이 머리 아픈 주제를 어렵게 쓸리 없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은근히 아니 대놓고 집요한데가 있다. 물론 저자의 집요함은 이 책에만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닌다. 지금까지 저자의 책을 빼놓지 않고 읽은 건 아니지만 저자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그걸 아기 다루듯 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설득하려는 측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 얼마 전 낸 <서민 독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거기엔 저자가 읽어 온 책이 빼곡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건 결국 책 읽기에 대한 (강력한)촉구다.

 

이 책도 어찌보면 그 연장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읽는다면 다음엔 써야한다. 일기 하나를 잘 쓰기 위해 책을 읽으라고 강()조하고 있다. 도대체 일기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기도 하다. 그야말로 돈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싶기도 할 것이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일기 한 권은 잘 쓴 에세이 10권 부럽지 않은 경우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이 별것 아닐 것 같은 일기에 이토록이나 정성스럽게 강조하는 것을 보면 집요함을 넘어 진정성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요즘 글쓰기에 관한 책도 많이 나오는데 저자도 그냥 글쓰기에 관한 책 한 권 내지 뭐 이렇게까지 하는데는 뭔가의 이유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한 것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중학교 이후 누가 일기를 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지. 무엇보다 내가 쓰지 않는다. 내가 쓰지 않는데 감히 누구한테 권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내가 쓰기 때문에 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뻔하다. “너나 잘하세요.” 그런데 가끔은 어렸을 때 들었던 그 잔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일기 쓰이기도 하다. 옛날 같으면 참견 같아 듣기 싫을 것 같은데 비록 책이긴 하지만 나는 기분이 좋았다. 뉘라서 그런 말을 해 준단 말인가? 더구나 저자 특유의 솔직함과 유머를 대하니 누구라도 일기를 안 쓰면 안 될 것만 같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이 초등학교 때까지는 일기 쓰기가 거의 의무로 되다시피 하지만 중학교부터는 권장만 하고 관리는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일견 이해한다. 좋은 습관 길러준다는 것과 내가 맡은 아이가 방학 때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고, 맞춤법 향상을 위해 그 숙제는 꽤 유용해 보인다. 그러나 중학교쯤 되면 사춘기다. 아이들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보장해 줘야한다. 무엇보다 일기는 비밀 유지가 되야하는 하는데 아무리 선생님이라고 해도 누군가가 보는 거라면 일기는 이미 일기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바쁜데 일일이 일기 검사까지 할 여력이 없다.

 

하지만 저자가 제안하는 것도 타당성은 있어 보인다. 저자는 일기 검사를 전담하는 빨간펜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을 네 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첫째는 학생이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어야 하고, 일기 검사는 매일 이루어져야하며, 검사자가 학생의 일기를 읽고 난 뒤 오타나 비문 등을 고쳐주고 보다 매끄러운 문장이 되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려 주며, 검사자가 학생의 일기에 자신의 견해를 달아줘야 한다(60p)고 썼다.

 

물론 안 그래도 예산이 부족한데 무슨 일기 전담 빨간펜 선생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육 선진국일수록 작문을 중요시 한다. 즉 학생의 글로 표현된 생각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좋은 생각은 좋은 글에서 나오며, 좋은 글은 좋은 생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디 그런가? 도무지 생각할 시간을 주질 않는다. 말은 그렇게 아이들의 자율성과 일기의 비밀성을 들어 거부할지 모르겠지만 일기가 아니면 작문 교육을 대체할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비문에 줄임말에 청소년용 육두문자가 남발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자신이 글을 잘 쓰는지 못 쓰는지도 모르고 졸업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일기의 비밀성이 보장되지 못하면 또 어떤가? 나의 글과 나의 생각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더 열심히 일기를 쓸 학생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비밀성이 보장되지 않은 열린 일기가 되어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일기 쓰기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는 건 그 자체가 지루하고 의미없는 행동이라기 보단 생각, 사고를 중시하지 않는 시스템 때문은 아닐까? 또한 이 작문이란 것도 무엇에 대해 쓰라고 하면 너무 어렵다. 주제가 주어지지 않은 일기 같은 글부터 쓰게 하는 것이 접근하기에 더 좋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주장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고 얼마나 좋은가?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뭐 일기에 대해 할 말이 있을까 했던 것도 사실이다. 독자를 쉽게 봐도 너무 쉽게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읽을수록 저자의 내공이 느껴지면서 목차를 정하고, 메모를 하고 내용을 채워나가기까지 뮤즈는 끊임없이 저자를 흔들어 놓았겠구나 싶다. 특히 요즘 소확행이 유행인데 일기 쓰기 역시 그 품목에서 제외시킬 수 없다. 읽으면서 얼마나 킥킥대고 웃었던지. 마치 명랑 만화를 보는 것 같았다.

 

저자는 요즘의 SNS가 활성화 되면서 오로지 좋아요에만 목맨 영혼없는 글에 대해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블로그 글쓰기는 어떤가? 난 중학교를 입학하던 해부터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블로그가 생기면서 일기를 안 썼다. 블로그 활동을 하는데 굳이 일기를 또 써야 하나 싶었고 이건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저자도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이게 나름 반갑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무엇보다 난 이 시기를 일기를 쓰지 않았던 시기로 봐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블로그로 대체했으니 여전히 썼다고 봐야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저자는 그것을 가르기 보단 일기와 블로그의 장단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여기서 일기 쓰기란 노트에 쓰는 아날로그적 방법을 말한다. 블로그는 다분히 보여지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솔직함이 어느 정도 희석된다. 그런데 비해 일기는 100% 솔직해질 수 있다. 솔직함이 꼭 좋은 것이냐는 것엔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어 보이지만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내가 내 자신에게 솔직해질 필요는 있다. 그렇다면 일기는 필요하다. 솔직해져야 한다고 해서 블로그에 있는 그대로 까발리는 건 위험하다. 하지만 블로그에 글을 쓰면 누군가 볼 거란 전제가 있기 때문에 싫어도 몇 번의 정서를 거쳐야 한다. 낙서 같은 글이건, 각 잡고 쓰는 글이건. 그런 점에서는 블로그가 더 유리하다.

 

솔직히 나는 일기는 좀 함부로 막쓰는 경우가 많다. 블로그는 첫 문장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할 때가 많지만, 일기는 왜 이 문장부터 썼지? 후회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미 쓴 문장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만 알아보면 되니까. 이 세상 어디엔가는 마구 망가져도 누가 뭐랄 것 없는 곳 하나는 있어야 한다. 예전에 정서하는 게 너무 귀찮아서 한 번 있는 그대로 글을 블로그에 올렸던 적이 있다. 그러고 그 다음 날 당장 내렸다. 정말 저자의 말마따나 맞춤법이고 뭐고 무시하고 글을 올리면 없어 보이기 딱 좋다. 내가 뭐 그렇게 풍성하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없어 보일 필요는 없지 않는가? 어쩔 수 없이 그때는 발견되지 않는 오탈자라면 모를까 고쳐 쓸 수 있는데 맞춤법 무시하고 올린 글 보면 인상이 찌푸려지던데 내 글이라고 오죽할까 싶은 것이다. (그래도 맞춤법은 어렵다.ㅠㅠ)

 

특히 항상 글을 잘 써야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일수록 일기는 숨어서 쓰기에 좋은 글 같다. 또한 블로그에 글을 써서 좋아요도 많고, 댓글도 많이 받으면 좋긴 하지만 그것에 일일이 답글을 달다가 분위기에 휩쓸려서 정작 써야할 글을 못 쓰거나 의지가 꺾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보면 블로그 쓰기는 양날의 검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의 지적대로 일기와 블로그 쓰기는 적당히 활용하면 좋을 것이지 어느 한쪽을 편들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굳이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난 일기를 더 우위에 두고 싶다.

 

난 올해부터 다시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15년만의 일이다. 물론 여러 가지로 도전이 많이 있었다. 올초 일기에 관한 책 한 권을 읽기도 했고, 알라딘에서 서재의 달인됐다고 다이어리를 보내줬는데 하루에 한 페이지가 아닌 반 페이지씩 쓰도록 되어 있다. 이 정도라면 메모 정도 밖엔 안되 진짜 일기 쓰는 사람에겐 불편하긴 할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전략 같기도 하다. 다이어리엔 메모 정도만하고 자세한 건 서재에 쓰라는(것 같은). 저자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사진만 잔뜩있고 메모식의 영혼없는 글은 가급적 쓰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은데, 이 사회 시스템이 자꾸만 생각하기를 방해하고 편하고 간단한 것만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것 같아 마땅치가 않다.

 

책을 보면, 일기 쓰기로 할 수 있는 일은 제법 많아 보인다. 더 정확히는 일기 쓰기가 동력이 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중 눈에 띄는 건, 자기 소개서다. 스펙이고, 토익 점수 따는 건 한때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도 계속 쓰게 되는 건 자기 소개서란 것이다. 내가 누군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스펙 쌓고, 토익 점수 따고, 시험 점수 올리느라 정작 내가 누군지에 대해 선듯 말할 수 없는 세상에 살게 되어버렸다. 그런 사람에게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그것은 하루 아침에 오지 않는다. 뭔가의 부속품으로만 살아갈 뿐 내가 누군지에 대해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일기 하나 잘 써서 성공했다는 사람도 적잖이 보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자주 꼭꼭 씹어 먹으라고 하곤 했다. 그때 난 너무 어려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꼭꼭 씹어 먹으라니? 먹는대로 먹는 거지 꼭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게 나이들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꾸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건 내가 밥 먹다 체할까 봐, 또는 생선 얹은 밥에 혹시 가시라도 걸릴까 봐 그렇게 먹으라는 것인데 세상에 밥처럼 밍밍해서 금방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음식이 또 있을까? 그럴수록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 것이다. 하루를 반성하고 되새김질을 하려면 일기를 써야한다. 그것은 하루를 꼭꼭 씹어 보내는 일과 같은 일이다.

 

이 책은 유쾌하게 읽다가 맨 마지막에 잔잔한 감동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그건 일기를 통한 아버지와의 화해다. 내가 앞서 일기는 비밀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누구에겐가 읽혀질 것을 생각하고 쓰는 의도성도 있다. 왜 일기에 의도성을 포함시킬까를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또는 한 사람에게라도 더 이해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는 아닐까? 저자가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고 화해할 수 있게 된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옛 속담에 짐승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애석하게도 사람은 그렇게 유명하지 않다. 사람이 죽고 한 세대가 가기도 전에 잊혀질 사람이 기억되는 사람 보다 훨씬 더 많다. 그렇다면 그런 속담은 가능하지가 않다. 그나마 일기를 남기는 것이 확실한 방법은 아닐까? 그게 아니더라도 일기를 씀으로 해서 인생에 성공을 가져왔다는 사람도 많이 받다. 알지 않는가?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퇴보하고 나중엔 짐승처럼 변한다고. 일기는 정말로 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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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1-18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종이 노트에 검정 볼펜에 써야 한다고 봐요. 제가 그렇게 하고 있어서요.ㅋ
매일 쓰지 않고 며칠에 한 번 쓰고 어떤 때는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두 번 쓸 때가 있지요.
쓰고 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기분, 고민이 작아지는 기분, 복잡하게 생각했던 게 간단하게
정리되는 기분, 그런 걸 느낍니다. 순전히 저만을 위한 방법입니다.

마태우스 님의 책, 책 제목을 잘 지은 것 같아요. 그리고 감탄하게 되네요. 어쩌면 그렇게 속도 있게 빨리 책을 여러 권 낼 수가 있는 건가요? 도저히 저로선 이해 불가...
어쨌든 많이 많이 팔리기를 응원하는 바입니다. 저도 사 보겠습니다.
스텔라 님의 리뷰도 좋고요...

stella.K 2018-11-18 19:58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언니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누구는 일기를 밤에 쓰지 말고 아침에 쓰라는 말도
있던데 저는 그렇게 안 되더라구요.
알라딘 다이어리는 매일 쓰게 되어 있던데
쓸게 많은 날은 지면이 좀 모자라지만
좋으나 싫으나 매일 쓰게 되어 있으니 습관 들이기엔 좋은 거 같아요.

저는 뭘 쌓아두는 게 싫어서도 일기를 안 썼어요.
그런데 마태님 말마따나 블로그에 쓰는 것도 안전하진 않겠더라구요.
사이트가 없어졌다 새로 생기고 그게 또 없어지고를 반복하면서
소실되기도 하죠. 육필 일기도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게 제일 안전한 것 같아요.
책 말미는 좀 찡하더군요. 한번 읽어 보세요.^^
 

                             

                       

 

감독: 래리 양

출연: 량예팅(홍시야) 왕쯔이(한총) 외 

 

언제 이 영화가 개봉했는지 모르겠다. 개봉 연도를 보니 지난 2016년이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 봤다. 이 영화는 중국의 소설가 거수이핑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겼다. 난 아직 작가의 작품을 읽지 못 했다. 

 

사실 영화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중국은 중국만의 독특한 뭔가가 있다. 뭐랄까? 단순하면서도 감정을 숨기지 않는 직설화법이라고 해야하나? 더구나 도시가 아닌 농촌을 배경으로 할수록 그런 느낌은 더 강하다. 그래서 스토리를 다룸에 있어 결코 세련됐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묘하게도 어느새 동화하게 만든다. 이 영화도 그렇다. 산과 그 마을을 배경으로 했으니 산촌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장대한 산을 보는 건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묘미다.

            

         
    

이 영화는 얼핏보면 가부장의 폐해와 그 속에서 이루지 못한 한 여인의 불행을 다룬 것 같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중국의 1980년 대 그것도 산촌의 여성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살았겠는가를 단적인 예로 보여준 한편의 페미니즘으로도 보인다.

 

가부장은 말이 좋아 가부장이지 그건 여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쓰여왔다. 더구나 배우지 못하고 의식이 깨이지 못한 남자들에겐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영화의 주인공 홍시아가 그렇다. 유년 시절은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가장에서 공주로 자랐지만 그녀는 그 어린 날 산촌에 살고 있는 라홍에게 유괴되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게다가 혀가 잘리고, 커서는 그와 강제로 결혼에 성적으로도 폭력에 시달린다. 그런 남편이 한총이 놓은 오소리 덧에 걸려 목숨을 잃는 건 그녀에겐 차라리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혀가 잘렸으니 말을 할 수도 없겠지만, 그걸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총은 실수라고는 하나 어쨌든 사람을 죽였으니 경찰에 자수를 해야겠지만 뭐 때문인지 마을 사람들은 한총이 경찰서에 가는대신 홍시아를 돌봐주라고 한다. 아무리 말 못하는 장애를 지녔다고는 하나 홍시아는 말만 못했다 뿐이지 고운 여자였다. 돌봐주고 도움을 받고 하는 사이 정분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악한 남편에게 시달림을 받았다면 남자가 싫을 법도 하건만 역시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 받으란 말은 맞는 말일까? 한총이 자신에게 잘 해주니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지지만 라홍이 죽은 결정적인 요인은 따로 있다. 바로 홍시아가 그렇게 한 것이다. 물론 한총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자신이 감옥에 가려고 했지만 이렇게 밝혀진 이상 현실을 되돌릴 수는 없다.

 

물론 나중에 홍시아가 정상이 참작이 됐는지는 알길이 없다. 법대로라면 분명 홍시아는 살인자지만 그녀가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엔 분명 라홍의 죄가 있다. 영화는 중국 사회가 얼마나 남성위주인지 다시 말해 여성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이렇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이 상징하는 바는 꽤 의미있어 보인다. 그것은 여자가 울다의 은유라는 걸 영화를 보는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홍시아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어디 홍시아 하나뿐이랴? 유사이래 억압 받은 여성의 한은 산처럼 쌓여 메아리칠 것만 같다. 우리는 그 많은 여성의 한 그중 하나를 우리는 봤을 뿐이다.

 

영화가 참 인상적이다. 주인공을 맡은 량예팅은 처음 보는 배운데 연기를 제법 잘한다. 이제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을 대표하는 배우는 가고 세대 교체를 한 느낌이다.  라홍이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조그만 여자 아이의 혀를 자른다는 설정은 너무 자극적이란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것을 빼면 단순한 이야기인데 뭔가의 저력을 느끼게 한다. 중국 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잔상이 오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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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11-12 18:4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죠.
언제쯤 사는 것이 좋아질런지...ㅠ

중국은 그렇긴 해도 들여다 보면 들여다 볼수록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18-11-1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통해서 세상살이가 어느 나라든 비슷하다는 것,
고전을 통해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각 작품마다 개별적으로 특수성을 가지면서도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이겠지요.
(너무 늦은 밤에 방문했어요, ㅋ)

stella.K 2018-11-16 11:2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언니가 오신 시각에 저는 M 본부에서 하는
<문화사색>를 보려고 TV를 켜놓고 있었죠.
한 주 동안 우리나라 문화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건데
본방을 그 시간에 하더라구요.
주일 날 아침 일찍 재방도 했었는데 지금은 엉뚱한 걸 하더군요.
전 그 프로가 되게 좋더라구요. 근데 그건 TV 다시보기로는 안해요.ㅠㅋ
 

                           

 

감독: 다케우치 히데키

출연: 아야세 하루카, 사카구치 켄타로

 

이 영화는 어찌보면 인간이 갖는 판타지를 제대로 건드려 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래서 판타지이기도 하겠지만. 영화의 도입 부분이 얼핏 내가 좋아하는 영화 <시네마 천국>을 떠올리게도 한다, 영화 속의 영화 주인공 미유키 공주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것을 볼 때 영화는 세월과 함께 옛 기억을 재소환하는데 최적화된 물건은 아닌가 싶다. 

 

영화는 어느 영화사의 말단 직원인 켄지가 자신이 사랑한 흑백 고전 영화속의 주인공 미유키 공주를 평생 사랑한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영화속 미유키 공주가 어느 날 영화속을 탈출하여 켄지가 사는 곳으로 공간 이동을 하므로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판타지고, 상상의 나래를 조금만 펼치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또한 영화 감독이 꿈인 켄지는 미유키 공주와 있었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기도 한다.

 

이 영화는 스토리가 나름 영리하기도 하다. 켄지는 평생 영화 감독의 꿈을 이루지도 않았거니와 시나리오도 완성하지 못한 채 오직 미유키 공주의 하인이요 연인으로 늙고 죽어간다.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속 미유키 공주를 사랑하니 굳이 그 꿈을 이룰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미유키 공주를 사랑하는 한 그꿈은 영원한 현재진행형일뿐이다. 그건 어찌보면 현실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닮아 있는 것 같다. 사랑하면 시간이나 현재 처해진 환경이나 상황을 그다지 인식하지 못하지 않는가?

 

 

생각해 보면 영화는 영화로서 한번 탄생하면 다소 빛이 바랄지 모르지만 시간을 초월한 물건이 된다. 오히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산화되는 건 관객인 우리들이다. 그러므로 어느 날 어느 시기에 본 영화가 생각나서 다시 소환해 본다는 건 건방진 생각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한 번 본 영화는 무의식에 저장해 있다가 어느 날 그 영화가 무의식을 뚫고나와 보고 싶게 만들고 옛 추억을 생각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추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판타지라고 하지만 현실적인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유키 공주가 영화에서 튀어 나온만큼 그녀는 사람의 체온을 느끼면 흑백으로 변해 다시 자신이 있던 영화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중에 둘은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데 진짜 키스를 할 수 없으니 이렇게 투명 유리 막을 사이에 두고 저렇게 간접 키스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러니까 일체 사랑에 해당하는 조금의 스킨십도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보고 싶을까? 그게 어느 정도까지는 행복할 수 있어도 인간은 체온을 가진 존재다. 사랑하면 만지고 싶고, 상대를 느끼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다. 물론 그만큼 나를 잊지 말아달라는 영화의 은유적 당부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관객인 우리가 영화를 기억하기 보단 영화가 우리를 기억해 주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마디로 영화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유쾌한 물음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각자 달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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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18-11-05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취향이셨나요? ㅋ

stella.K 2018-11-06 14:15   좋아요 0 | URL
ㅎㅎ 아주 제 취향은 아니지만 끝까지 보게 만드는
뭔가의 힘이 있더군요. 그런 영화가 좋은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8-11-07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만질 수 없는 상대와의 연애. 앞으로 그런 시대가 올지 모릅니다.
인터넷을 통해 가상 공간에서의 연애를 한다면요.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과도 연애할 수 있다고 하던데요. 좀 다르지만...

오락실에서 운전 게임을 하던 게 생각나네요. 운전대를 돌리면 정말 제가 차를 운전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지요. 연애도 그런 착각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아요. 우리의 미래말입니다.

stella.K 2018-11-08 14:54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영화가 옛날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해서
아날로그 감성이 있어서 그렇지 실제로 <그녀> 같은 영화를 보면
그게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아주 감동스럽진 않죠.
<휴먼스>라는 영드가 있던데 집안 일을 다 해 주는 가정부 로봇이
있는데 섹스 리스 부부가 이 로봇 때문에 갈등하는 장면이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그게 썩 좋아보이지 않더라구요. 좀 징그럽다고 해야하나..?
보다가 말았어요.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엊그제(?) 마태우스님의 새책이 나와 반가운 마음에 포스팅을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어제 마태님이 이책을 보내 주셨다. 어찌나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던지. 

 

   

 

 

받고 바로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그날 나의 포스팅을 보고 서프라이즈 한 거라고 답신을 보내 주셨다. 아, 이런... 꼭 그러려고 해서 그런 건 아닌데.ㅠ

 

첫장엔 겸손하게도 저렇게 쓰셨다. 세상에 필요없는 책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읽는 것이 너무 한정적여 문제지. 나를 다섯 명쯤 복제시켜 놓고 책만 읽게 만들면 후련할까? 세상에 그 많은 책을 다 읽지도 못하고 어느 날엔가 세상을 하직할 생각을 하면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금쪽 같다. 그리고 난 아직 이렇다할 작가도 못 된다. 그야말로 사람을 잘 만난 덕에 책을 냈을 뿐이지 아직 책을 낼 정도로 속이 여물지 못했다.  

 

책 서문에 마태님 첫 책에 대한 흑역사에 대해 나온다. 어느 날 대구 지역에서 강연을 마치고 참석자 중 한 분이 <마태우스>란 책을 불쑥 내밀며 사인을 해 달라고 하는데 이 책을 어떻게 가지고 있었을까, 어찌나 얼굴이 붉어졌는지, 그러면서 첫 책이 실패한 건 어렸을 때부터 일기를 제대로 쓰지 않은 탓이라고 쓰셨다. 그게 정말인지는 나는 그 유명한 <마태우스>를 읽지 않았으니 확인할 방법은 없고, 공감하는 건, 누구에게나 이 '첫'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다 있구나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첫사랑, 첫시험, 첫성적표, 첫발자국 그리고 첫책...

 

나 역시 첫 책에 대해 트라우마 없지는 않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나도 작가야 하며 좋아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 보다 책을 더 체계적이며, 알뜰살뜰하게 읽고 리뷰하며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넘쳐 난다는 걸 알았을 때 난 거의 매일 이불킥을 해도 모자랐다. 마태우스님은 그 첫책을 없애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고 하는데, 오늘도 출판사 창고에 잠들어 깨어 날 줄 모르는 내 책에 나는 감사를 해야하는 건지, 미안하다고 해야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내가 미안하다면 오직 출판사에 미안할 뿐이다.ㅠ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가 않은게, 내가 마태님의 서프라이즈는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1년쯤 전 <서민 독서>가 나왔을 때 생각지도 않게 보내주셨다. 그리고 마태님은 나에게

두 번째 책을 내달라고 하셨다.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그때 난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땐 트라우마가 있기 전이기도 하고. 그 기한을 1년 정도로 잡았는데, 민망하게도 초고의 3분의 2를 써 놓고 답보상태다. 지난 여름 너무 더워서 중단하고, 그나마 날씨가 선선해져 다시 붙들까 했더니 모처에서 대본을 써 달라고 해서 그것 쓰느라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마태님께 약속한 시간을 못 지킬 것 같다. 이를 어쩐다. 난 어쩌면 작가가 되겠다고 하고는 이처럼 게으르고, 욕심도, 야망도 없는지.ㅠ

 

그래도 마태님처럼 꾸준히 책을 내시는 걸 보면 힘이 난다. 모처럼 다시 열심히 써야지 한다. 이 책은 어찌보면 자기계발서의 느낌도 나기도 하는데,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마태님의 글은 유머와 친절함이 베어있다.  

 

득템

 

앞서 내가 대본을 써 준 모처라는 곳이 아직은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뮤지컬을 제작하기도 하는 곳이다. 그래서 대본으로 참여해 준 것이고. 그곳에 무사히 안착만 한다면 나에겐 더 없이 좋은 기회이긴 하지만 사람의 운명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물론 여기가 아니어도 플랜B가 없는 건 아니다. 앞으로도 할 수만 있으면 뮤지컬 대본을 쓸 생각이다. 

 

뮤지컬에 관한 책이 꽤 여러 권 나와 있긴 하지만 대본을 쓰는 작가가 읽을만한 책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대체로 제작 아니면 배우들이 읽으면 좋을 듯한 책들이 대부분인데 그중 이 <뮤지컬>이란 책은 뮤지컬 제작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대본에 관한 부분도 상당히 다루고 있어서 끌렸다. 그리고 <뮤지컬 레시피>는 우리가 알만한 고전 명작이 어떻게 대본으로 옮겨지는지를 다룬 책이다. 나에겐 필요한 책이라고 판단됐다. 

 

문제는, 앞의 책은 좀 비싸고, 뒤의 책은 품절로 나온다. 아니 언제 이 책이 나왔다고 벌써 품절이란 말인가? 과연 손에 넣을 수 없는 건가 싶었는데, 밑져야 본전이라고 중고샵을 털어 보았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두 권 다 중고샵에 나와 있다. 그것도 반 가격에. 개인샵도 나와 있지만 난 거의 이용을 하지 않는다. 배송비가 붙어서. 적립금 곧 만료 된다는 알라딘 독촉에 땡큐, 땡큐를 외치며 질러버렸다. 

 

오래 사 둔 책이 효도한다       

 

오페라와 뮤지컬. 둘의 차이에 대해 상식적인 수준에서 밖에는 얘기할 수가 없다. 적어도 뮤지컬이 오페라 보다 훨씬 늦게 태어났고, 조금 더 대중적이라는 것 외에 내가 무슨 설명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뮤지컬을 공부하려면 필히 오페라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오페라는 옛날과 달라 굉장히 역동적이고 보다 화려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그 특유의 고고함을 유지한다. 어찌보면 오페라와 뮤지컬은 자매면서 자웅동체 같은 것은 아닐까. 

 

별일 없으면 나는 내일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하이라이트 공연을 보러 갈 예정이다. 사실 이 스케줄이 없었으면 박종호가 운영하는 풍월당에 가서 파두에 대해 알아 볼 생각이었다. 물론 그것도 오라고 해야 갈 수 있는 거지만. 지난 봄 한 종편에서 했던 <비긴 어게인>은 포르투갈이 배경이었다. 그때 들었던 파두가 생각나 가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포기하기로 한다.

 

비록 하이라이트 공연이지만 뭔가 예습을 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마침 박종호가 쓴 <불멸의 오페라 II>에 '니벨룽의 반지'를 다룬 부분이 있어 읽어 보는 중이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내일 하이라이트 공연 가지고는 택도 안 될 것 같다. 책에 의하면 이것은 바그너가 무려 28년 간 쓴 필생의 역작이고, 공연도 무려 4일 동안 17시간을 했다고 한다. 그것도 1800년대 이야기다. 바그너가 그 시대의 사람이니까. 그는 이 하나의 공연을 위해 기획에서부터 제작까지 혼자서 모든 것을 다했다. 오죽했으면 '니벨룽의 반지'를 위한 공연장까지 세웠을까? 가히 악마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내일 공연은 잘 해야 2시간을 넘지 않을 것 같은데 과연 봤다고도 할 수 있을까? 

 

나는 박종호를 지난 2008년도에 처음 접해 보았다. 이탈라아 음악 여행기였는데 음악적 지식도 지식이지만 문체가 정말 좋았다. 왜 이렇게 글을 잘 써? 질투가 날 정도였다. 그런데 원래 글쟁이도 아니었다. 문학수 기자가 음악에 관해 쓰면 그냥 잘 썼다 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워낙에 그쪽에 전문가고 글쟁이니까. 그런데 박종호는 그쪽 통이 아니다. 정신과 의사다. 어쩌라는 건지.

 

어쨌든, 그러고 난 그의 책을 다시 읽지 못했다. 그리고 작년인가? 저 <불멸의 오페라> 1, 2권이 역시 알라딘 중고샵에 굉장히 싸게 나온 것이 포착됐다. 그것도 (거의)새책으로. 결국 신이 들렸을까, 그 두 책을 모두 구입을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무래도 내가 정신이 나갔다 싶었다. 크기도 크거니와 두껍긴 왜 그렇게 두껍던지. 내가 아무리 박종호를 좋아한다고 해도 도무지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땐 이미 결제가 끝난 상태라 돌이길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가지고 있다 중고샵에 다시 갔다 팔아야지 했다. 

 

아, 그런데 박종호 새삼 바그너만큼이나 악마적인데가 있다. 도대체 이 엄청난 책을 한 권도 아니고 무려 3권을 썼다. 그것도 짜깁기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발품 팔아가며 썼다. 워낙에 백과사전이라 건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박종호는 박종호다 싶다. 과연 내가 이 책을 고히 간직했다 중고샵에 내놓을 수 있을런지 의문이 든다. 오래 사 둔 된 책이 효도한다. 언제 사 놨나 싶은 책을 읽고 감동하게 되는 책이 있다. 우린 바로 이런 행운을 맛 보려고 책을 그렇게 오래도록 간직하려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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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1-0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오페라 책 정말 엄청나더라구요. 옛날부터 탐을 많이 냈었는데, 득템하셨네요.
박종호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죠?

저런 다방면으로 대단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태어나서 행복하면서 짜증납니다....

stella.K 2018-11-02 14:52   좋아요 0 | URL
ㅎㅎ 생긴 것도 봐요. 영국 신사 같이 잘 생겼잖아요.
같은 남자들이 보면 정말 짜증날 것 같아요.ㅋㅋㅋ

이걸 어떻게 다 정리를 했을까 싶어요.
그때 적립금만 없었어도 감히 살 생각을 못했을 거예요.
여러모로 행운이었죠.
책이 커서 보관하기가 좀 벅차다는 것외엔...^^

blanca 2018-11-02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책 내신 것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스텔라님, 뮤지컬 쓰신다니 너무 근사합니다. 두 분 다 참으로 부럽습니다.

stella.K 2018-11-02 14:57   좋아요 0 | URL
참 부지런하세요 마태님은.^^

그냥 흉내만 내는 거죠.ㅋ
앞으로 운이 좀 계속적으로 따라줬으면 좋겠어요.
워낙에 엎어지기도 잘해서 저도 잘 모르겠어요.
뭔가 으샤으샤가 잘 되야하는데...


cyrus 2018-11-02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창 시절에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을 때 풍월당에 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제는 관심사가 확 달라져서 가보고 싶은 장소가 헌책방으로 바뀌었어요... ㅎㅎㅎ

stella.K 2018-11-02 17:02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 관심산는 자꾸 바뀌는 법이지.
클래식이 좋아진 건 아닌데 그냥 관심이 가네.
풍월당 서울 사는 나도 못 가봤다.
언제고 가 볼 날 있겠지. 헌책방은 나 같은 경우 일부러 자제하고 있지.ㅋ

희선 2018-11-03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연을 4일 동안 17시간 하다니 엄청나네요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공연 시간이 아주 길었다는 말 어딘가에서 봤군요 어디에서 주워들었을지... 책 받으신 거 축하드리고 뮤지컬 대본 잘되기를 바랍니다


희선

stella.K 2018-11-03 18:56   좋아요 1 | URL
어제 하이라이트 공연 보고 왔는데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공연하는 거라고 합니다.
그것도 다 할 수 없어서 총 4부작을 내후년까지
나눠서 할 거라더군요.
제작비만도 130억인가가 들어간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공연 단가가 좀 비싸더군요.
전 감히 언감생심입니다. 그냥 유튜브나 뒤져 볼까 합니다.ㅠ

페크pek0501 2018-11-03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 뮤지컬 대본을 쓰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신 것 같네요. 그 분야에서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

마태 님의 책 출간, 축하드리고요... (드는 생각이 꼭 이렇게 날아다니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 누구는 뛰지도 못하고 걸어가고 있는데... ㅋ)

stella.K 2018-11-03 18:56   좋아요 0 | URL
글쎄..괜히 자극을 받네요.
아직 이렇다하게 정해진 건 없는데.
물들어 올 때 노저으랬다고 뭐라도 하고 있으면
길이 열릴까 싶기도 하고.

마태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마태님 때문에 자극 받는 것도 있죠.ㅎ

후애(厚愛) 2018-11-04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뮤지컬 대본을 쓰신다니 대단하시고 부럽습니다.^^
오래 사 둔 책이 효도한다 제목이 참 좋습니다. ㅎ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stella.K 2018-11-05 14:08   좋아요 0 | URL
에이, 흉내만 내는 거라니까요.
그리고 오늘 저 <뮤지컬>이란 책을 조금 읽었는데
뮤지컬 작가는 희곡 작가 보다도 못하다고 나와있더군요.
희곡은 씌여진 그대로 올리지만 뮤지컬 대본은
그대로 올라갈 수 없다고. 그래서 하나의 기술자라고.
그러니까 의지가 확 꺾이던데요?ㅠㅎ
 

얼마 전, <티파니에서 아침>을 다시 보았다. 이번에 본 것이 세번째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한 영화를 거듭해서 보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그런데 이 영화 세번째로 봤더니 두 번째에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속으로 찔끔했다. 그전까지는 오드리 헵번이 여우 꼬리 살랑거리며 나오는 게 너무 좋아 오로지 주인공에만 취해있었던 것 같다. 나도 같은 여자지만 오드리 헵번을 좋아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영화속에서 얼마나 빛나보이던지. 그것은 오프닝씬에서부터 강력하게 사로잡는다. 

 

검정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한 손엔 커피를, 한 손엔 도넛을 들고 귀금속 상점인 티파니를 배회하는 장면이란...! 난 바로 이 첫 장면에서부터 사로잡혀 영화속 홀리로 분한 오드리 헵번이 맡은 역할이 뭔지, 그녀의 상대역인 폴은 어떤 캐릭터인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폴 역을 맡은 젊은 날의 조지 페퍼드는 또 오죽 잘 생겼던가. 브레드 피트가 있기 한 세대 전에 이 배우가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이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가 그다지 좋은 건 아니다. 특별히 부각을 안 시켜서일뿐이지, 홀리는 고급 창녀고, 폴은 촉망 받는 소설가라고는 하나 후원자가 있다. 말이 좋아 후원자지 어느 돈 많은 귀부인과 내연의 관계다. 글쎄, 서양에서는 에게 아무렇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동양의 정서에선 쉽게 이해될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 영화의 제작년도는 1961년도 고, 내가 처음 본 건 80년 대가 막 시작되었을 때이다. 그 시대의 정서로도 쉽게 용납이 안 된다. 그런데도 난 그걸 아버지와 함께 TV '주말의 명화'를 통해 봤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관심이 책에서 영화로 옮겨가는 중이었거나 아니면 영화로 확장되는 그 경계 어디쯤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본 경우 그 원작을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꼭 있었다. 그래서 난 비슷한 시기에 역시 '주말의 명화'를 통해 비비안 리가 나왔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봤을 것이다. 그리고 거의 충동적으로 거짓말 좀 보태 사전만한 두께 두 권짜리를 냉큼 사다가 보기 시작했고 그것을 읽느라 고생 깨나했다. 덕분에 그때까지 잘 알지 못했던 미국 흑인 노예의 역사에 대해 흥미가 생겼으니 나름 뿌듯했다. 그리고 그건 어느 날 갑자기 생겼던 것이 아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땐가? 알렉스 헤일리 원작의 TV 시리즈 <뿌리>를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 그때도 마침 번역되어 나온 원작을 사다 읽긴했지만 읽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책이 영화만큼 감동스럽지가 않은 건지, 아니면 그것을 읽기엔 내가 아직 어렸던 건지, 아니면 번역에 문제가 있었던 건지. 

 

지금은 상하 권으로 나왔지만 처음 나왔을 당시는 세 권으로 케이스에 담겨져 나왔었다. 그때 번역자가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안정효 번역자였다면 나쁘지 않았을 텐데 그가 최초의 번역자였을까엔 의문이 남는다. 모르긴 해도 그때 안정효는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막 졸업할즈음이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안정효의 번역본은 2009년이다. 그렇다면 선번역자가 있지 않았을까? 하긴 안정효든 아니든 내가 그때 번역 가지고 왈가왈부할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번역의 질을 깐깐하게 따지지 그땐 그런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내가 이제 겨우 알파벳을 떼었을 땐데 번역을 따질만큼 나의 정신이 고급한 경지는 아니라는 것.    

 

아무튼 난 그렇게 자연스럽게 흑인 문학에 눈을 떠 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하면 과연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흑인 문학의 범주에 넣어도 될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물론 백인이면서 흑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엄밀히 말해 그 작품을 흑인 문학으로 보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싶다. 모르긴 해도 마가렛 미첼 이전에 자기 작품에 흑인을 등장시킨 작가는 없지 않았을까? 그게 맞다면 마가렛 미첼의 문학적 업적은 결코 작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흑인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다고는 보지 않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것은 훗날 알렉스 헤일리나 토니 모리슨 같은 흑인 작가의 몫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그때 <뿌리>의 성공을 힘입고 카일 언스토트란 작가의 <만딩고>라는 소설이 나와 신문이며 라디오에 한창 선전중에 있었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작가인 것 같은데 그때는 거의 라디오만 틀면, 신문은 이틀이 멀다고 광고에 나왔었다. 그러니 내가 이 책에 관심을 안 가질 리가 없다.    

 

그런데 광고 카피가 좀 관능적이다. 그 내용이 어땠는지 지금은 전혀 기억하는 바가 없지만 관능적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 책을 선택하지 않을 방법중 하나는 시간이 지나면 이 책에 대한 관심도 잦아들겠지 해서 잦아들면 그건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다. 그런 것처럼 시간이 지나도 잦아들지 않으면 그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 책이 그랬다.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에서 잦아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읽어야 한다. 그런데 나도 참 순진하다. 연일 그렇게 광고를 해 대는데 무슨 수로 내 마음에서 관심이 잦아들기를 기대한단 말인가? 그래서 꼭 사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는 또 아버지가 용돈을 주셨던 것이 아니라 필요한 그때 그때 타야했다. 그런데 좀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평소 때 같으면 내가 책을 사겠다고 하면 아버지는 말없이 돈을 주시곤 하셨는데, 그때 따라 무슨 생각이셨는지 무슨  책을 살 거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도 참 요령이 없었다. 그냥 다른 책을 사겠다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솔직하게 <만딩고>를 사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아버지는 일언지하에 돈을 못 주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아버지도 그 야시시한 광고를 거의 매일 들으셨으니 빛의 속도로 그런 19금 소설을 딸에게 읽힐 수는 없다고 생각하신 것일게다. 

 

그때 난 확실히 잘못했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내깐엔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난 그 무렵에 이미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완독한 전력이 있었다. 이거야 말로 19금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도 있고, 당시 국어 선생님도 읽기를 허락한 소설이다. 그렇다면 <만딩고>도 당연히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좀 억울했지만 조용히 물러나는 수 밖에. 뭐라고 설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보면서 새삼 이 영화가 나에겐 효자였다는 걸 알았다. 난 분명 이 영화를 아버지와 함께 봤다. 그런 캐릭터가 저변에 깔려 있고 그게 조금이라도 수면위로 툭하고 삐져 나왔더라면 아버지는 내가 그 영화를 보기를 불허했을 것이다. 그런데 교묘하게도 그런 것을 완벽히 감추고 15세 관람가로 둔갑시켜 부녀가 함께 볼 수 있게 해줬으니 이 영화가 아버지에게 대신 복수해 준 셈이라는 걸 알았다.  

 

알디시피 이 영화는 트루먼 커포티의 원작을 영화화 했다. 이 책은 2013년이 되서야 나왔다. 영화에 비하면 한참 늦은 출판인데 만일 그 시절에 나왔다면 아버지는 또 읽기를 반대하셨을까? 어쨌든 복수는 그렇게 조용하고 은밀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도 감독이 대신 해 준 거나 다름없으니 고맙다고 해야하는 걸까? '그렇게 못 보고 ,못 읽게해도 다 본다구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무리 어른이 반대해도 아이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19금에 접근한다. 지금은 그 경로가 워낙에 다양한데다, 스스로 19금을 15세 관람가로 낮추고 있어서 내 시절의 19금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렇더라도 공히 말하겠는데 그 시절 나는 소설 <만딩고>를 정말 흑인 문학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읽어보려 했다. 아, 이 마음을 누가 알리?ㅠ 

 

그런데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읽고 싶었던 책이라면 성인이 되서 읽었을 텐데 지금까지도 안 읽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정말 나와는 인연이 없었던 책이었을까? 하긴 지금은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다. 절판 됐으니. 어느 출판사에서 다시 나와준다면 그때처럼 다시 한 번 내 마음에 불을 확 질러 놓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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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11-0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만딩고 알아요. 고맘때 아빠 책상에 있는 걸 보고 궁금해서 몰래 읽었지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영화보다 음악이 더 먼저 생각나는 영화중 하나랍니다.

stella.K 2018-11-01 14:28   좋아요 0 | URL
아, 읽으셨구나.
저의 아버지는 읽지도 않으시면서
제가 읽는 것을 막으셨답니다.ㅠ
물론 보셨다면 저도 몰래 읽었겠죠?ㅋㅋ

맞아요. 음악이 참 많이 기억에 남죠.
첫 장면은 정말 영화사에 남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니데이 2018-10-3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도 <뿌리>를 드라마로 보셨군요. 어른들이 예전에 그 드라마를 보셔서, 제목을 기억하는 분들 계시더라구요. 저는 드라마는 못 봤지만, 원작자의 이름만 알고요.

이제 조금 있으면 11월입니다. 3분쯤 남았으니까요.
11월에는 더 좋은 일들, 크고 작은 행운 가득한 한 달 되셨으면 좋겠어요.
stella.K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18-11-01 14:35   좋아요 1 | URL
이 <뿌리>가 나중에 또 한번 리메이크 됐더군요.
근데 안 보게 되더라구요.
워낙에 볼게 많으니까 순위에서 밀린 것도있고
잔인한 장면도 많은 것 같더라구요.
스토리를 아니까 이 잔인한 장면을 굳이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서니님 안 보셨으면 한 번 보시라
추천하고 싶습니다. 진짜 잘 만들었어요.

좋던 싫던 11월이 시작됐네요.
어영부영 남은 두 달이 지나갈 것 같습니다.
서니님도 알찬 11월 되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18-11-03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사 놓고 아직 읽지 못한 1인입니다.
님은 완독하셨군요...
저는 내년에나 읽을까 합니다. 친구가 꼭 읽어 보라고 해서 샀었는데...ㅋ

stella.K 2018-11-03 18:50   좋아요 0 | URL
다시 읽으면 느낌이 또 다를텐데 말입니다.
읽으지 하도 오래되서요.
이러고 저러고 지간에 전 <만딩고>나 다시 나왔으면 합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