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

 

엄유나 감독이 누군가 했더니 <택시 운전사>를 만든 감독이다. 지금까지 난 그 두 편의 감독이 각각 다르며 당연 남자라고 생각했다. 근데 동일 인물이었고 여자였다. 더구나 시나리오도 흠잡을 데 없을 정도로 잘 썼다. 반가우면서도 은근 질투가 났다. 물론 반가움이 더 크지만. 여자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선 굵은 작품을 연속해서 두 개씩이나 만들다니 대단하다 싶다. 변영주나 임순례 감독이 우리나라 여자 1 세대 감독이라면 엄유나 감독은 2 세대쯤 되지 않을까? 아무튼 여자 감독 만세다. 

 

올해가 3.1 운동이 일어난지 100년이 되고보면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한 작품이 올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또 어찌보면 이 영화는 한글날 같은 때 나와줘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 영화는 다분히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애국주의를 깨우기에 충분한 영화이기도 하다.

 

 

모국어를 못 쓰게 하면 얼마만에 잊게될까? 주인공 유정환(윤계상 분)의 아버지 유완택(송영창 분)이 한때는 지식인으로서 일본이 모국어 말살 정책을 펼칠 때 저항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일본에 무릎꾾고 친일하는 것을 보고 유정환이 아버지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건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왜 그러냐고 묻자 아버지는 우리가 글자를 깨우치고 지식을 쌓으면 나라가 해방될 줄 알았는데 조선어를 쓰지 못한 세월이 30년이고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30년. 한 세대다. 과연 그럴만도 하겠다 싶다. 30년 동안 모국어를 쓰지 못했다면 잊힐만도 하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새삼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독립을 이루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 30년 되는 세월에도 우리 모국어를 잊지 않은 것은 분명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저런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민족 어학회 사람들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말을 연구했던 것을 일본 경찰에 의해 하루아침이 잃어버리게 되었다. 얼마나 허망하고 마음이 무너졌을까? 하지만 조갑윤 같은 사람이 사본을 남겼을 줄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예감이 맞아 신난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필히 사본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본 작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더구나 삼엄한 시절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난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선조들은 모국어를 지키기 위해 저렇게 애를 썼는데 오늘 날 우리 언어는 너무 많이 오염되고 그것도 부족해서 영어 식민화를 하지 못해 안달 나 있는 것을 볼 때 과연 저분들이 보면 얼마나 한숨을 지을까? 좀 좋은 언어를 써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식민지로 살다가 독립을 했다고 해도 민족 언어를 보존한 민족이 그리 많지 않다. 그 중 하나가 우리나라다. 한류의 영향으로 외국 사람들은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하는 마당에 우리는 모국어를 홀대하지는 않았는지 이런 영화를 보면서 일본을 혐오하기 전에 이 생각부터 먼저했으면 좋겠다.

 

김판수리는 인물이 실제했을까 영화 관람 땐 좀 의아했는데 실제했었다. 언제나 그렇듯 나라를 지킨 사람들 결정적일 때 힘을 발휘한 사람들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거나 그 보다 못한 사람들이다. 영화는 그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해 준다. 

 

이 영화는 유해진과 윤계상 투 톱의  영화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유해진을 위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그런만큼 연기로 보나 존재감으로 보나 훌륭하다. 잘 생긴 배우들의 전성 시대는 이제 한물간듯 하다. 못 생긴 배우와 빛나는 조연의 영화가 더 훌륭한 영화를 만드는 이상적인 영화 환경이 만들어졌다. 바람직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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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2-06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모이>를 봤어야 하는데 놓쳤어요. 이제 여기선 개봉관 상영은 끝났고 다운로드 받을 수 있을 때 봐야겠어요.
어떤 방송에서 엄유나 감독이 게스트로 초대되어 인터뷰 하는 걸 듣고 알았지요. 택시운전사를 만든 감독이라는 것이요.

stella.K 2019-02-07 13:3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여자 감독들 영화 정말 잘 만드는 것 같아요.
응원해 주고 싶더군요.
꼭 한번 보세요.^^

비연 2019-02-07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극장에서는 못 봤지만 어디서든 봐야겠다 싶어요.

stella.K 2019-02-07 13:36   좋아요 0 | URL
올해 한글날 같은 때 해 줄 것 같긴한데 말입니다.
어딘가 모르게 살짝 아쉽긴 한데
그래도 볼만 했어요.
우리말을 아껴줘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윤계상이 멋있게 나오긴 하는데
유해진의 빛에 좀 가려진 것 같고.
너무 자세히 쓰면 재미없겠죠?ㅋㅋ

서니데이 2019-02-08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보다 <극한 직업>이 더 보고 싶었지만, 둘 다 아직 보지 못했어요.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하고 오늘도 2.8 독립선언일이라고 하니까, 이 영화도 좋은 시기에 관객을 찾아온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stella.K님, 연휴 잘 보내셨나요. 따뜻한 금요일 되세요.^^

stella.K 2019-02-09 14:09   좋아요 1 | URL
2.8 독립선언 하루 지나서 이 댓글을 씁니다.ㅋ
오늘도 여전히 춥네요.
그래도 그동안 안 추운 걸 생각하면 춥다고 징징대면
안 되겠죠? 이 추위가 지나고나면 봄을 얘기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해가 좀 길어져서 좋은 것 같구요.
비나 좀 더 내렸으면 좋겠는데 조만간 오겠죠?
<극한 직업>은 재밌을 것 같은데 천만 관객이 들 정도는
아니라고 하기도 하던데 암튼 둘 다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주말되시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의 책을 읽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10년 전이었나 <문학의 숲을 거닐다>란 책을 읽고 정말 문학의 피톤치드를 한껏 들이마신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못지않은 감동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사람과 자신의 장애에 관한 글이 유독 많이 눈에 띈다.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 E. B 화이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글을 잘 쓰는 비결은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man)에 대해 쓰는 거라고. 특이한 점이 있다면 사람에 대해 쓰되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에 대해 썼다. 특히 화가 고 김전선에 대해 쓴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뭔가 아련한 느낌이 든다.

 

이뿐인가? 저자는 언젠가 글을 쓰려고 자료를 찾던 중 발견한 미국의 영화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고 한다. 알다시피 그는 영화 <슈퍼맨> 출연 이후 낙마 사고로 척추를 다쳤고 전신마비 중중 장애인이 되었다. 그런 중에도 그는 용감하게 새로운 삶에 적응해 가고 있고 중인데 그것을 매스컴이 너무 크게 떠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영화 속의 슈퍼맨이 아니라 진짜 슈퍼맨 되었다. 그때 리브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저는 무척 언짢습니다. 죽지 못해 사는 게 슈퍼맨이라면 그래요, 전 슈퍼맨이지요. 그러나 환상 속이 아니라 현실 속의 슈퍼맨이 되는 것은 너무나 힘겹습니다. 왜 저의 상처에도 역할이 주어져야 하는 지요.”

 

이렇게 말하던 크리스토퍼 리브도 고인이 되었다. 그러면서 학생 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저자의 친구 김윤을 회상했고 그 친구 역시 고인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글은 2001년도에 쓴 것으로 참 새삼스럽다고 했다. 이번엔 내가 진짜 슈퍼맨이 되기 위해서, 내 가족들, 내 학생들 그리고 내 독자들의 잘 싸워 주리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들이 했던 용감한 싸움을 계속한다(147p)고 했다. 그렇게 말하던 저자도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저 글을 썼을 때만해도 저자는 꽤나 비장했던 것 같다. 장애자의 몸으로 대학 교수로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해야 했고, 무엇보다 암 치료를 끝낸 직후였다. 그러니 얼마나 삶을 대하는 자세가 남달랐을까.

 

또한 지금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듯도 하지만 저자가 어린 시절만 해도 측은지심 내지는 이상한 눈초리로 많이 봤을 것이다. 사실 저자 보다 좀 뒷 세대이긴 하지만 나 역시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그런 눈초리를 받으며 살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저자는 살아생전 모 잡지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전에 자신이 거의 암 투병 환자로 많이 알려진 게 부담스러워 인간 장영희, 문학 선생에 초점을 맞춰 줄 것을 조건으로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를 받았는데 심히 불쾌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기사 제목이 신체장애로 천형 같은 삶을 극복하고 일어선 이 시대 희망의 상징 장영희 교수로 나왔기 때문이다.

 

천형 같은 삶이라니. 누가 함부로 천형을 논하는지 모르겠다. 이건 내가 봐도 불쾌하다 못해 무례하단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불행한 삶은 무엇이고 행복한 삶은 무엇이란 말인가. 행복한 삶은 비장애인의 특권이고 불행은 장애인의 전유물이란 말인가? 그런 이상한 이중논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건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소치다. 그러자 저자는 즉각 해명에 들어간다. 저자는 자신의 장애는 천형이 아니라 축복이라며 조목조목 그 이유를 밝힌다.

 

첫째로 자신은 인간이라며 짐승이나 곤충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했다. 또한 주위에 늘 좋은 사람만 있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사실 나는 10살 때 갑자기 오른쪽 팔 다리에 마비가 와 한 학기를 쉬고 전학한 뒤 학업을 이어갔는데 그때 은근 걱정했던 게 내가 장애가 있다고 아이들이 나와 안 놀아주면 어쩌나 하는 거였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 한 번도 내 주위에 좋은 사람이 없었던 때가 없었다. 또한 덧붙여 얘기하자면 나도 싫은 사람 있다. 그런 만큼 그 누구는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런 수평적 이해관계만 있을 뿐 장애인이어서 소외돼 본적은 없다. 그리고 세상엔 나쁜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못지않게 좋은 사람도 많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세 번째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학에서 똑똑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게 천운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박한다. 나 역시도 그렇다. (지금은 좀 주춤하긴 하지만)나는 대본을 쓴 덕에 배우와 뛰어난 자질을 가진 연출을 만나고 그들과 웃고 떠들며 공연을 했다. 그것은 지금도 나의 자부심이다. 솔직히 그런 일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다. 누구는 잘난 척 한다고 하겠지만. (반면 속 썩는 것도 많다.) 그리고 끝으로 남이 가르치면 알아들을 줄 아는 머리와 남이 아파하면 같이 아파할 줄 아는 마음을 갖고 있다. 몸은 멀쩡하지만 아무리 가르쳐도 못 알아듣는 안하무인에, 남을 아프게 해놓고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이상한 사람도 많은데 말이다(‘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보라중에서).

 

장영희 교수는 이렇게 자신이 누리는 천운을 설명했는데 4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잘 생각해 보면 50가지, 100가지로도 설명할 수 있다. 이건 정말이다. 나는 오래 전에 인간관계 훈련 프로그램을 주도한 적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나의 자랑 50가지를 쓰는 것이었다. 참가한 사람들은 처음에 “50가지나요?” 하며 한숨을 쉬지만 하다보면 정말 50가지 이상으로도 쓰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 이건 장영희 교수가 글 말미에 가르쳐 준 건데 나도 중요한 것 하나를 빠뜨렸다. “책은 아무나 내는 줄 아나? 이렇게 내 글을 읽어 주는 독자가 있어 책을 낼 수 있고 간간히 날 알아보는 독자가 선생님 책을 읽고 힘을 업었어요. 말해주는(182p)” 아직 그 경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도 책을 냈다. 그러므로 나도 저자와 똑같이 말하고 싶다. ‘천형은커녕 천혜(天惠)의 삶이다. 그렇게 읽다보니 저자는 무한긍정의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문득 난 새해 벽두에 이런 책을 읽었다는 게 행운 같이 느껴진다.

 

좋으니 싫으니 해도 2019년 새해가 밝았고 어느 덧 첫 달이 지나간다. 올해가 어떻게 지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무사히 살아지기를 바라며 조금은 불안하게 새해를 맞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불안은 나이가 들어도 안 없어지는 것 같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꼭 징크스라고 할 것 까지는 없는데 지금까지 살아 온 패턴을 보면 안 좋은 일은 홀 수년에 일어났다. 올해가 홀수 해이다. 그래서 올해는 조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 중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생각을 고쳐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이 책의 에필로그를 읽으면서다. 저자가 대학교 2학년 때 헨리 제임스가 <미국인>이란 책을 읽었는데 거기서 보면 한 남자의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무서워 살금살금 걸었다란 표현을 썼다고 한다. 그때 이미 저자는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 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걸으며 살 것이라고. (, 이 얼마나 무한긍정인가!)

 

그도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살아보니 좋은 일이 나쁜 일로 이어지는가 하면 나쁜 일은 다시 좋은 일로 이어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운명행진곡 속에 나는 그래도 참 용감하고 의연하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그렇다. 우리의 삶은 나쁜 일을 만날까 봐, 나쁜 일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조심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저자처럼 용감하고 의연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평소, 뼈만 추스르면 산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암이 재발했고 또 어느 날엔가는 암을 이기지 못하고 영면에 들어갔다. 죽기엔 아까운 나이였지만 그래도 조심하며 살지 않고 용감하고 의연하게 살았으니 여한은 없지 않을까. 천국에서 하나님 앞에서나 아버지 장왕록 박사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았을 것 같다.

 

문득 천국은 어떤 곳일까를 생각해 본다. 저자는 천국에 있으니 벌써 오래 전에 목발과 다리보조기는 벗어던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여전히 목발을 짚고 저자의 표현대로 여전히 정그렁 찌그덩 정그렁 찌그덩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천국은 어쩌면 그런 사람들조차 아무런 이물 없이 사는 곳 아닐까?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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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31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토프 리브는 진짜 슈퍼맨으로 살았죠 ~승마중에 낙마해서...정말 위기 가운데 빛나는 인물입니다 장영희님의 글도 읽어보고 싶네요^^

stella.K 2019-01-31 20:3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데 본인은 그걸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잖아요.
그냥 그가 원하는대로 해 주죠.

장영희님은 정말 글을 너무 잘 쓰시는 것 같습니다.
존경스러워요. 조금 더 오래 사시지 않고...ㅠㅠ

서니데이 2019-01-31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서 인용해주신 잡지사의 인터뷰 제목은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방식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표현이 좋은 것 같지 않아요.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앞부분에 쓰인 말이 부적절한 것처럼 보여서요.
장영희 교수님은 장애를 극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영문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영문학자가 된 거니까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해도, 상대를 이렇게 힘든 사람일거야, 하는 표현이나 시선으로 보는 건 좋은 일이 아닐 것 같아요.
한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쓰신 글을 읽으면서 따뜻하고 좋은 사람일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떠나시고 벌써 10년이나 지났네요.
잘 읽었습니다.
stella.K님 따뜻한 밤 되세요.^^

stella.K 2019-02-01 14:50   좋아요 1 | URL
저때는 저렇게 얘기해도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 영혼이 순수할 거라고 해서
순백의 영혼이니 그런 표현도 서슴치 않았거든요.
장애자나 비장애자나 똑같이 평범한 사람인데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게 벽이 느껴지는 거죠.
비장애자란 말도 비교적 최근에 나온 말인데
이 말도 그닥 적절한 단어는 아니죠.
천형 보단 나은 단어일지 모르겠지만.

장영희 교수는 정말 아까운 분이예요.
살아계셨다면 좋은 글 많이 쓰셨을 텐데...

syo 2019-01-3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의 숲을 거닐다> 같은 유명한 책조차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작가의 글은 도리어 손대기가 만만치 않더라구요.

카알벨루치 2019-01-31 22:23   좋아요 1 | URL
손만 갖다 대면 되는데...터치 터치 터치 ㅋㅋㅋ

stella.K 2019-02-01 14:41   좋아요 1 | URL
스요님 지금 읽는 책 중에 훗날 내가 이런 책에
손댔었단 말야? 하는 책도 상당수 있을 거예요.
스요님 안 읽은 책을 제가 읽어서 기분이 묘하게
좋긴한데 이분 책 언제고 읽어 보세요.
감동이고 피톤치드 그 자체입니다.ㅋ

카알벨루치 2019-02-01 14:51   좋아요 1 | URL
피톤치드 오오오~

stella.K 2019-02-01 14:58   좋아요 0 | URL
카알님, 저 이름을 바꿀까봐요. 피톤치드로.ㅋㅋ

카알벨루치 2019-02-01 18:03   좋아요 1 | URL
그것도 개안은데 많은이들이 스텔라님 몰라볼까바 걱정이네유 ㅋㅋㅋㅋ

2019-01-31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2-01 14:44   좋아요 1 | URL
아유, 이거 제가 먼저 인사 드려야 하는 건데
매번 먼저 받는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님도 명절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십시오.
새해 복도 마지막 찬스로 듬북 받으시구요.^^

cyrus 2019-02-01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에 있을 때 장영희 님의 글을 처음 알았어요. 그때 읽은 장영희 님의 글은 메마른 제 마음을 촉촉이 적셔둔 단비와 같았어요. 군 복무 중에 부고 소식을 듣게 돼서 정말 마음속으로 많이 슬펐어요.

stella.K 2019-02-01 16:09   좋아요 0 | URL
그랬구나. 그만도 벌써 10년이야. 돌아가신지가.ㅠ

그런데 너와 내가 안 지도 그쯤 되지 않나?
너 제대 얼마 안 남기고 처음 알았던 것 같은데.ㅋ

카알벨루치 2019-02-01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차 스텔라님 피톤치드 넘치는 명절연휴 보내시고 맛난거 많이 드시고 오소서~^^

stella.K 2019-02-02 13:38   좋아요 1 | URL
ㅎㅎㅎ 카알님도 피톤치드 넘치는 명절되길 바랍니다.
마지막 남은 새해 복도 많이 받으시궁. 고맙습니다.^^

후애(厚愛) 2019-02-0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행복한 설연휴 되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19-02-02 18:13   좋아요 0 | URL
아, 후애님, 고맙습니다.
후애님도 즐겁고 행복한 설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서니데이 2019-02-02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서재는 올 때 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입니다.
설연휴 즐겁게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19-02-03 11:22   좋아요 1 | URL
ㅎㅎ 괜찮은가요? 가끔씩 변화를 줘야죠.
서니님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고맙습니다. 서니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얄라알라 2019-02-14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버 색스 교수님의 마지막 작품과 장영희 선생님의 글....

특히 장영희 선생님께서는 요즘 세상에, 진정 대학에서도 제자를 만들고 아끼시는 보기 드문 교수셨는데....

stella.K 2019-02-14 19:40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정말 아까운 분이시죠.
책 정말 좋더군요.^^
 
저의 글을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독자에게 직접 글을 팔았다. 이것이 가능한 건 이메일 때문이다. 자신의 SNS에 독자를 모집하고 한 달에 20편의 글을 이메일로 배달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받는 구독료는 한 달에 만 원. 이슬아 작가 이야기다.

 

처음엔 뭐 이런 작가가 있나 했다조금 심하게 말해서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봉이 김선달과 뭐가 다른가 싶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SNS 블로그에만 들어가도 글이 넘쳐나고 웬만한 작가 못지않은 필력을 자랑하는 블로거들의 글도 많은데 그들은 돈 같은 거 안 받고 글을 쓴다. 그런 만큼 그런 건 무상으로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내 글 읽어주면 감지덕지 아닌가? 그런데 돈을 받겠다는 게 좀 그렇지 않나 싶은 것이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이게 지금까지 시도된 적이 없어서이지 꼭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슬아 작가도 자신이 처음 시도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웹툰을 하는 친구가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하는 거라고 했다(고 알고 있다). 순간 이 작가가 지금까지 와는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삶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동시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를 생각해 보게 했다.

 

만원. 이것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없는 사람에겐 큰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무시 못 할 돈이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하루 껌값 밖엔 안 된다. 이렇게 말하면 좀 피상적이다. 구체적으로 하루에 1인분에 해당하는 점심과 입가심으로 마시는 커피 한 잔쯤이 아닐까? 물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1, 2천원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 작가에게 투자한다는 건 또 어떤 의밀까?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물었다. 만약 한 달에 20편의 글을 만원에 구독하라면 그렇게 하겠냐고. 그랬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고 했다그 친구는 책을 그다지 많이 읽지도 않고, 그런 방식은 듣보잡일 테니. 즉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가에게 만원은 하루 500원에 해당하는 돈이다. 요즘 9001000원 하는 커피가 등장했다. 그것 보다 못한 액수다. 우리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루 최소 1000원은 쓰면서 정신을 위해 500원을 못 쓴다면 그도 그렇지 않나? 종이신문을 안 본지가 꽤 오래됐다. 종이신문의 구독료는 얼마일까? 모르긴 해도 만원 보다 비싼 걸로 알고 있다. 물론 그만큼 지면이 많지만.

 

봉이 김선달 얘기는 차치하고라도 SNS나 블로그 덕분에 글로 소통하는 건 너무 흔한 형태가 되어버렸다. 커피야 간편하게 마시면 그만이지만 글은 시간을 내야하고, 읽다보면 눈도 아프고 생각도 해야 하고 여러모로 귀찮은 일임에 사실이다. 그러나 읽는 사람이 아닌 쓰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글을 쓰면 누구나 작가가 된다는 다소 감상적인 말이 있기는 한데 나는 (언젠가도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이런 자본화된 세상에서 작가와 작가가 아닌 사람을 구분할 때 그 기준이 되는 건 그 사람이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느냐 안 받느냐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원고료를 받으면 작가고 안 받으면 작가가 될 생각이 없거나 작가지망생인 것이다. 거 얼마나 받는다고 돈타령이냐고 돈 얘기 안 하는 인간 좀 만나고 싶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의 의미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SNS나 블로그는 내가 원하면 쓰고 원치 않으면 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원고료를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원치 않으면 안 쓰는 사람이 아니다. 뭐라도 써야한다. 그들은 <천일야화>에 나오는 세에라자드의 후예인지도 모르겠다. 그 천일 중 하루라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사람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는 매일 구독자에게 자신의 글을 전송했다고 한다. 그것이 단 하루라도 연착이 되거나 조금만 늦어지면 왜 이렇게 늦느냐고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난 그 마음 안다.

 

이미 내 책에서도 밝혔던 것으로 아는데(내가 이런다. 정신이 없다), 나는 원래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극작을 하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교회에서 대본을 써야 할 일이 생겼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일을 자청하기까지 했다. 작가의 꿈은 있는데 그 꿈에 대한 책임은 없으니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안 쓰면 안 되는 일이니 책임감을 갖는데 이만한 일이 없겠다 싶은 것이다. 하지만 연극이라는 게 그렇듯 협업이라 한 번이라도 펑크가 나면 줄줄이 펑크가 난다. 소소하게 했던지라 뭐 못하면 못하는 거지 그런 여유로운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텐데 그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가 글을 못 써서 펑크를 난다고 했을 때 그 아찔함 막막함은 느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정말 낭떠러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느낌.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그 시절 내가 맡은 일도 연재 방식이라면 연재 방식이다. 그때그때 짧은 상황극을 만들어야 했으니.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남의 돈 버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이슬아 작가가 모처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러다 살짝 미칠 수도 있겠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나도 당시 쓰고 있던 컴퓨터 모니터를 창밖으로 내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받기도 했으니까. 그게 작가의 숙명인 것 같다. 원고료도 원고료지만 나를 낭떠러지에 매달아 놓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는 작가가 될 수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 모든 일이라는 게 다 그렇기도 하지만. 그러니까 내 말은 작가가 작정하고 쓰는 글은 SNS나 블로그에 아무 때나 올리는 글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이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공감하며 읽다가 어느 지점에서 그녀와 내가 확연이 갈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 책으로 나왔을 때다. 그녀가 작년에 6개월 간 발송했던 글을 책으로 묶어 냈는데 그게 지금은 7쇄까지 발간됐다고 한다. 한 쇄를 찍는 책의 권수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지금은 워낙에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니 1000권을 넘지 않는다. 이것을 7쇄까지 찍었다니 장하기도 하고 질투도 난다.

 

나 같은 경우 천 권도 너무 많지 않을까 싶은데 출판사 사장이 배포도 좋지 무려 1300권을 뽑았다. 너무 많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나야 출판 동향을 모르니 나 같은 글도 뭔가 소용이 되는가 보다 했다. 지금은 300권이나 팔렸을라나.

 

작가의 로망은 역시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내는 것이다(이렇게 말하면 되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난 극작을 한다). 그것도 내가 원하기 보단 출판사가 먼저 제안해 2년 만에 내놓은 것이니 나는 손 안 대고 코픈 격이라고나 할까? 누구는 작가가 되려면 거절에 익숙해지는 법부터 배우라고 했는데 성격상 여기저기를 쑤시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이 나왔을 때 그 기쁨은 딱 한 달 갔다. 그 한 달 이후 세상 사람들은 내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잊었고 나 역시 덤덤해졌다. 하긴 그때 이후로도 좋아라 하면 그도 정상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첫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고 하는데 난 지금껏 두 번째 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 첫 책을 냈으니 탄력을 받아 두 번째 책도 낼 수도 있을 텐데 첫 책을 낼 때 얼이라도 빠진 걸까? 오히려 책 내는 게 더 자신이 없어졌다. 안 그래도 2초에 축구장 면적의 숲이 사라진다는데 내 책 내겠다고 그 일에 보탤 필요 있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내 책을 읽은 알라디너들이 다음 책은 언제 나오느냐고 찔러주는 게 고맙기도 하다. 아예 마태우스님은 이런 책 좀 써 달라고 부탁까지 하기도 하셨으니. 이건 정말 누군가 멍석을 깔아주지 않으면 못할 일 같기도 하다. 그때 나는 넙죽 네하고 대답은 했지만 아직도 못 내고 있다.

 

문득 이슬아 작가의 이 대담한 도전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 글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가를 반성하게 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데 책은 내 뭐하냐며 누가 주지도 않는 쓸데없는 자책을 하고 지내 온 건 아닐까? 뭔가 해 보기도 전에 패배의식부터 가졌던 것은 아닌지. 그녀는 아무도 자신에게 원고 청탁을 하지 않아 그렇게 작가와 독자 간의 직거래 방식을 선택했다고 했다. 또 이슬아 작가는 자신을 셀프 연재 노동자라고 했다. 이름도 잘 지었다. 연재 노동이라. 그거 내 주특긴데 말이다.

 

모르긴 해도 이 셀프 연재 노동은 지명도 있는 기성 작가는 몰라도 (나를 포함한)새내기 작가들에겐 해 봄직한 일이지 않을까 한다. 이름 없는 작가들이 아무 연고도 없이 출판사 문을 노크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그렇게 연재 방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후에 책으로 내놓는다면 뭔가 지금과는 다른 출판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이 비슷한 시도는 있어왔다. 이를테면 먼저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후에 책으로 내놓는 방식. 나도 그렇게 해서 냈으니까. (무엇보다 아직도 존재하고 있을 문단 내 카르텔을 생각하면 대안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간혹 책을 내놓은 소감에 대해 물으면 작가는 명예직이라며 자조 겸 말문을 흐리곤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작가는 명예직이 아니다. 작가도 노동자다. 매문가. 하지만 우리나라에 순수하게 글만 써서 벌어먹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도 내 책은 책상 한켠에 고이 모셔져 있다. 책이 나온 후 감히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어 그냥 모셔만 두고 있다. 내 책 뒷면에 그런 말이 적혀 있다.

 

      나는 책을 냈다고 해서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은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바를 썼고 그것을 묶었을

    뿐이다. 작가가 되어서도 독자이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 위에 군림하기 위해 작가가 되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사람들과 함께 있기 위하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_작가의 말 중에서

 

 

 ~! 내가 이런 말을 쓰다니. 오글거리다 못해 분서하고 싶어진다. 아니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면 이 오글거림이 사라지려나? 그때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런 말을 썼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반해 이슬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독자는 두려우면서 기대고 싶은 존재에요.” 이렇게 한마디로 명징하게 말할 수 있는 걸 나는 왜 저딴 식으로 말했을까.ㅠㅠ

 

그러므로 언젠가 제2, 3의 이슬아 작가가 셀프 연재 노동을 자처하며 구독자를 모집할 때 이슬아 코스프레 하냐고 비꼬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구독도 하지 않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일 확률이 십중팔구일 것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맞는 얘기 아닌가. 하지만 다만 코스프레라고 하지 말고 롤모델 즉 닮고 싶은 사람으로 치환해 당당해지자. 요는 그 어떤 말을 들어도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 좋은 작가는 독자가 키운다는 생각으로 격려하고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도 알지만 세상에 유명한 명작들도 처음엔 다 쓰레기였다.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금 외롭고 고독하게 자신의 작품을 준비하는 시에라자드의 후예들이 훗날 어떤 사람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또 그래서 말씀인데 저도 셀프 연재를 하면 여러분은 구독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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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7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1-28 12:58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출판사가 그렇게 많은데도
내 책 내기는 얼마나 어렵습니까?
뭔가 불균형이란 생각도 들어요.
물론 개인 출판도 한다는데 그것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별로 좋은 것도 아니고.
오죽하면 개인 출판인가 싶기도 하고 마케팅도
원활한 것도 아니고. 독자들은 왠만치 알려진 출판사가 아니면
시큰둥하고. 그렇죠?ㅠ

서니데이 2019-01-27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일 북플로 stella.K님의 글을 구독하는 애독자입니다.^^
stella.K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stella.K 2019-01-28 13:02   좋아요 1 | URL
이슬아 작가 얘기를 들었을 때 서니님도
생각나더군요. 서니님이야 말로 얼마나 성실합니까?
글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실함은 연재 작가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죠.
이참에 서니님도 연재 작가가 되어보심이 어떨까요?ㅋ

저 첫 줄은 구독하시겠다는 말로 들립니다.ㅎㅎ

syo 2019-01-28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내서 시장에 내놓는 것도 결국은 글을 파는 일인데, 이렇게 파나 저렇게 파나 똑같이 파는 것 아닐까 싶어요. 전 차이를 잘 모르겠어요.

단지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글을 팔기 위해 꼭 ‘책‘이라는 물질적 요소가 필요치 않으니까, 그야말로 ‘글‘만 팔 수 있게 된 셈이랄까요. 저는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작가 한 사람쯤은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처음에 있는 사람들, 권력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책이 오늘날 모두에게 주어진 것처럼요.....

stella.K 2019-01-28 13:14   좋아요 0 | URL
˝모든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작가 한 사람쯤은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스요님은 저 보다 앞선 생각을 하시는군요.
책을 많이 읽으시니 출판의 흐름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이 독자와 작가의 벽이 많이 얇아진 것도 사실이죠.
자주 만남과 교류를 갖고 있으니.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은 그나마 2000년 대 들어와서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없진 않겠지만 무슨 심포지엄 어쩌구 해서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만의 모임이 주류지 않았나 싶어요.

암튼 스요님 댓글로 봐선 제가 직거래하면 고객이 되어 주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ㅋㅋ

syo 2019-01-28 18:3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직거래 모드 돌입하시면 알라딘 서재에는 더 이상 글이 올라오지 않는 건가요..... 하루에 하나 쓰기도 힘들잖아요.

stella.K 2019-01-28 18:39   좋아요 0 | URL
안 써서 그렇지 매일 한 편은 쓰죠.
서재는 딴 글을 쓰겠죠. 리뷰 정도는 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많이 써 놔야죠.
당장 시작할 건 아니구요. 생각 좀 해 보구요.ㅋㅋ

페크pek0501 2019-01-28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종이 신문은 월 만오천원입니다.

연재를 맡는다면 스트레스 만당일 것 같습니다. 미리 어느 정도 써 놓은 글을 확보하고 나서
연재를 맡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 중요한 건 연재에 뜻이 있으면 글을 많이 써서 저축해 놓을 것, 입니다. 작가들, 참 대단한 존재들이에요.

stella.K 2019-01-28 16: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14000원쯤 생각했는데 만 5천원이군요.
비싼 건 아니죠. 구독료를 올릴 수도 없을 거예요.
종이 신문 잘 안 보니.

그럼요. 준비없이 시작할 수는 없죠.
작가들. 대단하죠.

cyrus 2019-01-28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독자들)과 함께 있는 작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으려는 작가. 독자들의 쓴 말도 받아들이는 작가. 이런 작가의 글이라면 구독하고 싶습니다. ^^

stella.K 2019-01-28 17:45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럼 넌 내가 직거래하면 구독하겠구나.
난 독자가 무슨 말을 하든 다 들어 줄 준비가 되어있거든.ㅋㅋㅋㅋ
어쨌든 말만으로도 힘이된다. 고맙!
 

                                        

                      

감독: 마츠타니 미츠에

 

 

이런 다큐멘터리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라는데 내가 왜 몰랐을까? 내가 예전만큼 최신 개봉 영화에 관심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유명하고 돈될 것 같은 영화만 집중 홍보하는 시스템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아도 어떤 관객이 영화를 골라 보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영화를 골라주는 세대에 살고 있다고 개탄하던데 그러고 보면 내 탓만은 아닌 것 같긴하다. 그래도 뒤늦게라도 보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그동안 타샤 튜더는 책으로만 소개됐지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일본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타샤 튜더가 국적이 미국인만큼 자국의 어느 감독이 만들었다면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어쩐지 일본 감독이 만들었다니 약간 묘한 감정이 들긴하다.

 

그동안 책으로 너무도 잘 알려져서 설명이 필요없을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 나 역시도 그녀의 책은 읽지 못했다. 그녀는 동화 작가 겸 삽화가로 유명하다. '비밀의 화원, '소공녀'의 그림을 그렸고, 자연주의자로 정원을 가꾸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카메라가 그녀의 주방을 보여주는데 좀 놀랐다. 현대식 주방 기구가 하나도 없다. 얼핏 보면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서양 부엌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집이 자랑하는 건  정원이다. 넓은 정원에 각종 꽃이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특별히 정원이라고 해서 꾸민 것도 없다. 그저 꽃 자체만을 가꾸며 산다. 꽃에게 최소한의 것만 해주고 나머지는 저희들끼리 어울리며 있으라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새를 좋아해 직접 키우기도 한다.

 

그것들을 돌보고 가꾸는데도 꽤 정성과 노력이 필요할텐데 그림을 그리고 동화를 쓴다. 뭔가 모르게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보면서 문득 우리나라엔 박경리 작가나 이효재 씨가 생각이 난다. 박경리 작가도 살아생전 밭을 가꾸고 글 쓰는 일에만 전념했다고 하고, 아기자기하게 사는 건 이효재와 닮았다.

 

그런데 역시 삶은 성격을 반영하는 것 같다. 그녀는 활달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성격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녀는 큰 오빠가 사고로 죽은 후에 부모님의 상의 끝에 태어났다고 한다. 어찌보면 어떠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삶은 또 얼마만한 짐을 지는 것일까?

 

명문가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수학에 조예가 깊고 어머니는 예술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러니 녀는 어머니를 닮았다. 아버지가 아인슈타인, 에머슨, 소로우 같은 당대 석학들과도 친분이 있었다고 하니 알만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지적인 분위기의 집안이라고 해도 그녀가 9살 때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어머니와는 예술에 대한 관심만 물려받았을 뿐 나머지 정서적인 부분은 별로 닮지를 않았나 보다. 부모가 이혼할 때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가지 않았다고 하니 말이다. 나중에 그녀는 어머니의 친구에게 맡겨졌는데 다행히도 집안 분위기가 좋고 그녀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기반이 거기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나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요즘엔 장수하는 노인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그녀는 지난 2008년 92세를 일기로 타계했는데 장수했다. 그녀가 그렇게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무엇보다 그녀는 후회나 미련을 남기지 않은 삶은 살았다. 마음 먹은 일은 꼭 이루고 살았다고 본인의 삶을 그렇게 말한다. 또 그만큼 쓸데없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교계에 진출하지 않으므로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렸는데 그렇다고 그걸 후회해 본적은 없다고 했다. 그런 걸 보면 사람 사귀는 것 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게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관계를 중시여기고 사람들 속에 있으므로 활력을 얻는 사람이 있다. 요는 사람은 자기 타고난 심성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타입이 어떠하며 무엇을 하면 즐거운지를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쓸데없는 것에 자신을 소진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 영화는 정말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영화다. 한번쯤 아니 몇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영화를 통한 소확행을 원한다면 강력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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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9-01-21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 K님, 과천에는 ˝타샤의 책방˝이라는 작은 서점이 있어요. 아날로그적 감성 물씬한 마을 사랑방이지요? 저도 추천해주신 다큐도 보아야겠네요

stella.K 2019-01-21 15:29   좋아요 0 | URL
헉, 정말이어요? 몰랐네요.
저는 서점을 다녀봤자 중고샵만 다니는지라 부럽네요.
저 사는 곳이랑은 좀 거리가 있어 일부러 가기는 그렇고
기회되면 한 번 가 봐야겠네요.
영화 좋더라구요. 보시면 만족하실 겁니다.
거의 영업 멘트로군요.ㅋㅋ

cyrus 2019-01-21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살고 싶은 곳, 자신만의 장소나 공간에서 살아가면 외부 요인에 의한 스트레스를 적게 받잖아요. 아주 단순한 삶의 방식이 오래 살 수 있는 비결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

stella.K 2019-01-21 19:38   좋아요 0 | URL
그런 것 같아. 2008년도에 찍은 필름이더라구.
그후 몇년 있다 돌아갔는데 작고한 나이가 92세던가?
옛날 노인 치고는 장수했지.
요즘 같았으면 거의 백세쯤 살지 않았을까?
암튼 나름 즐겁게 사셨던 것 같아.^^

페크pek0501 2019-01-22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기가 무엇을 하면 즐거운지를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쓸데없는 것에 자신을 소진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 저도 동의합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고단하다고 여겨질 때가 있어요. 때로는 사람보다 책이 더 위로가 될 때도 있고요. 남들이 다 추구한다고 해서 따라갈 필요는 없는 것 같고 자신 스타일대로 살면 될 것 같아요.

stella.K 2019-01-22 13:56   좋아요 2 | URL
어떤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기운을 받고 즐거운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혼자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저는 사람들고 함께 있어 즐겁고 기운을 받을 때도 있지만
부대낄 때도 많아 결국 혼자있는 게 좋을 때가 더 많더군요.
그 비율이 6:4나 7:3 정도되는 것 같아요.ㅎ

서니데이 2019-01-26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샤 튜더는 일러스트를 많이 그리기도 했지만, 저 사진도 동화 속 한 장면 같아요.
하지만 실제로 저런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건 힘들겠지요.
stella.K님, 따뜻한 금요일 보내세요.^^

stella.K 2019-01-26 16:52   좋아요 1 | URL
영화 한 번 보세요. 이건 정말 누구에게나
권할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 어렸을 때는 부엌이 정말 불편했습니다.
마루를 거쳐 신발을 신고 턱이 높은 부엌을 오르고 내리면서
음식을 만들었거든요. 지금도 시골집 가면 그런데가 있더군요.
그래도 그 시절엔 그러려니 했는데
요즘엔 상상하기도 싫죠. 어떻게 살았나 싶고.ㅠ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춥더군요.
이번 추위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나면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봄이 기다려져요.^^

그런데 서니님 스마트폰으로 댓글 다셨나 봅니다.
일러스르...ㅋㅋㅋ

2019-01-26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19-01-26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 추천 감사합니다~ 저도 꼭 봐야겠어요^^

stella.K 2019-01-27 14:36   좋아요 0 | URL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으네요.
네. 꼭 보세요.^^
 

 

 1. 침묵에 대한 생각

 

 지난 주말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이란 프로를 보는데 일본 역사에 잠복 그리스도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현재 세계문화 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에 가톨릭이 전파될 때 그 박해를 피하려고 일본의 신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자신의 신분을 숨겨 온 것에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 

 

나는 이 소식을 접하면서 작년 여름에 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영화는 알다시피 소설 <침묵>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써 굉장히 인상 깊게 만든 영화고, 과연 배교가 신앙의 실패를 의미하는 건지에 대한 진지

한 물음을 갖게 한 작품이었다.

  

 특히 가톨릭은 전파하겠다고 온 페레이라 신부와 로드리게스 신부는 많은 고문 끝에 결국 자신의 신앙을 버리고 일본 신앙을 받아 들이고 수인의 삶을 살다 죽는 인물로 나온다. 영화는 엔딩에서 로드리게스 신부의 죽음과 장례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보여주고 있는데, 인상 깊었던 건 염을 하는 과정에서 그의 관에 묵주와 성경을 몰래 넣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것으로 봐 그는 겉으로는 일본 신앙에 동화된 것 같지만 그는 여전히 가톨릭 신앙을 유지한 것으로 암시되고 있는데 그게 이 잠복 그리스도교와 연관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감독은 과연 잠복 그리스도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박해로 인한 순교는 좀 줄지 않았을까? 사실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을 떳떳하게 밝히고 죽는 것 보다 이렇게 숨어서 예수님을 믿는 잠복 신앙인이 더 많지 않을까? 인간적인 생각일지는 모르나 순교만이 내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일까? 이 잠복 신앙도 예수님 말씀하신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란 말씀에 부합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순교자들의 순교가 상대적으로 비하되는 것 같아 조심스럽긴 하다. 절대 그런 뜻은 아님.

 

 사실 잠복 그리스도교는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지금도 자신이 신앙인임을 감춘채 지하에서 예배 드리는 교인이 있다. 언제고 세계 문화 유산은 이들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2. 미투 주변인을 위한 가이드

 

작년 한 해는 미투 운동의 원년되는 해였고, 올해 벽두엔 스포츠계가 들썩인다. 특히 빙상계가 둘썩이고 있는데 알고보면 성폭력이라는 건 생각 보다 훨씬 비정상적인 거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에게 일상적으로 폭언과 폭력을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성행위를 자행할 수 있을까?

 

물론 그에겐 성행위가 그저 성적 욕구를 풀어버리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그렇다면 그는 애초에 선수를 선수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인격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일이 가능할까? 더구나 납짝 업드려도 부족할 판에 억울한 측면이 있어 맞고소를 해야겠다니 어이가 없다.    

 

그러다 보니 바로 얼마 전에 읽었던 이 책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투 운동이 미국 허리우드에서 촉발되었고, 우리나라 영화계 역시 예외는 아니라 아무래도 저자가 이 부분에서 기자 정신이 발휘되었던 모양이다. 저자가 책 말미에 쓴 '나는 이런 글을 써왔다: 미투와 페미니즘'은 여러 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저자가 쓴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관한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강간 장면이 실제로 여배우를 성폭행해서 촬영된 것이라는 거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 속 성폭행 장면은 여주인공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남자 주인공과 상의한 후 촬영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언급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그 장면을 마론 브란도와 베르톨루치 감독은 사전에 상의는 했지만 여자 주인공인 로미 슈나이더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그 둘이 슈나이더가 여배우가 아닌 소녀로서 수치심을 느끼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마론 브란도의 나이는 48세였고, 슈나이더의 나이는 19세였다. 두 남자는 그 영화 이후 큰 명성을 얻었지만 슈나이더는 강간 장면 이후 약물 중독, 정신 질환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지난 2011년 58세의 나이에 암으로 죽었다(363p). 

 

채 다 피워보지 못한 어린 여배우를 이렇게 짓밟아 놓고 얻은 명성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마찬가지다. 자신이 키운 선수를 짓밟고 얻은 영광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미투 고백자가 로미 슈나이더 같이 되지 않다고 그들이 멀쩡한 얼굴로 담담하게 미투를 고백했다고 해서 그들이 상처 받지 않았다고, 음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지금까지 운동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짓밟히고 그 운동만 하지 않았어도란 말을 탄식처럼 내뱉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상처 받았다고 생각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세상에 상처 받아도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주성철 기자는 책에서 미투 주변인을 위한 가이드를 소개했는데 좀 곱씹을만 해서 요약해 본다. 

 

첫 번째, 그 어떤 경우에도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라는 인식. "술만 안 마시면 되는데" "평소에는 참 좋은 사람인데" "피해자의 평소 행실도 문제"라는 말로 논점을 흐리고,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생각을 하는 동안 2차 가해는 언제나 벌어질 수 있다며 합의가 아닌 '처벌'로 눈을 돌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과는 피해자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이른바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면 자신의 SNS든, 소속사든 직접 손편지로 사과문을 쓰든 뭘 하긴 하는데 종종 그 사과의 대상이 자기 마음대로 '국민'이나 '대중'에게 행해있지 정작 피해 당사자에겐 향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나의 일 혹은 나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것.

그건 미투 가해자도 해당이 될 것이다. 당장 그의 누나나 여동생 심지어 애인이 피해자가 된다고 생각해 보라. 

 

제발 또 미투냐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미투 없는 그날까지 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3. 새해 첫 번째로 완독한 책

 

 새해엔 가급적 새 책은 뒤로하고 읽다 만 책, 사 놓고 읽지 않은 책 중 읽겠다 다짐한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작년에 1권은 읽었는데 2권을 못 했다. 급한대로 뽑아 들어 읽었는데 결국 올해 첫 완독 책이 됐다. 나란 인간은 참...

 

이 책이 인상 깊은 건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그것도 정치사에서 웬만해서 나타나지 않을 세 여자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를 비교적 자세히 다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격랑의 근대사를 작가 특유의 필치로 그리고 있다는 것. 

 

사실 문체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읽혀지진 않았다. 특히 공산주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다루려 했다는 점. 나는 공산주의를 경멸하도록 교육 받으며 자라왔다. 그래서 이 책이 어떤 면에선 좀 낮설기도 했다. 그런만큼 늘 근대사가 궁금했던 나에겐 유의미한 독서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 책은 감히 우리나라 페미니즘 문학사에 길이 남을만한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작가에게 이런 좋은 작품을 써 줘서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마음 속으로나마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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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1-15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일런스>의 원작이 엔도 슈사쿠의 책인 것 같은데, 제가 기억하는 표지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아래 영화 포스터가 띠지로 들어있어서 그런 걸까요. 자유가 있는 곳에서 산다는 건 좋은 것일 때도 있지만, 어느 날에 생각하면 그건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없는 곳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미투에 대한 요약은 읽고 생각할 내용인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입을 열어 소리를 낸다는 건 이전과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되는 시작 같아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지만, 일어난 일을 침묵시켜서는 안되겠지요.
조금 전에 미세먼지 저감조치 해제 알림이 왔어요.
stella.K님, 따뜻한 저녁시간 되세요.^^

stella.K 2019-01-16 13:13   좋아요 1 | URL
영화 이후 띠지를 둘러서 나온 것 같아요.

미투는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 코치가 빙상계에서 영구 제명됐다고 하는데
일단 잘된 것 같긴합니다만 지금까지 이 문제는 소리만 요란했지
근본적인 대처는 아직 미흡해 보입니다.

오늘은 정말 모처럼 하늘이 맑네요.
내일은 또 미세먼지...ㅠ

cyrus 2019-01-1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세 여자> 1권 읽고 있어요. 1권에 나오는 조선여성동우회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졌어요. 저는 소설에 언급되는 주변 인물이나 단체에 더 끌리더군요. 콜론타이의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요. ^^

stella.K 2019-01-16 13:17   좋아요 0 | URL
헉, 콜론타이가 있었나...?ㅋ
조금 더 촘촘하게 쓰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해.
등장인물의 전환이 넘 순식간이야.
그러면 넘 두꺼운 책이 되겠지?
암튼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고 봐.

이번 토요일이지? 작가 만나는 거.
좋은 시간되길.^^

cyrus 2019-01-16 14:45   좋아요 1 | URL
허정숙과 주세죽이 조선여성동우회 독서모임에 참석하면서 읽은 책이 콜론타이의 소설이에요. 제목이 ‘삼대의 사랑’이었을 거예요. 허정숙이 그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남자 여러 명을 첩으로 두면서 살고 싶다고 말해요. 이제 2권만 읽으면 됩니다. ^^

카알벨루치 2019-01-15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여자의 인생을 망친 영화감독, 영화배우...우리나라도 김기덕, 조재현이가 <나쁜남자>란 영화로 서원이란 배우를 그렇게 만들었네요 영화가 권력이 되어버렸네요 모든 것이 허망한 바벨인 것을...상처입은 영혼들은 어찌해야 하나요? 아...

stella.K 2019-01-16 13:30   좋아요 1 | URL
이게 사실은 그전부터도 있어왔던 말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공공연하게 여자 배우는 그렇고 그런 존재처럼
된 측면이 있죠.
그건 남성적 시각, 제도안에서 그렇게 말이 나가고
만들어지고 그런 건데 그런 점에서 미투는 정말 좀 더 일찍
시작됐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미투 가해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괜찮은 평판을 얻은 사람도 미투에 거론되면
용서가 안 되더군요.
우리가 이광수를 그 뛰어난 문학성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편하게
바라볼 수 없는 것처럼
그들도 아무리 뛰어난 장점을 가져도 낙인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조재현이 연기를 얼마나 잘 했습니까?

그래도 사람을 믿어야죠. 사람 안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어요.
누군가 잘 다독이고 보듬어 주면 비록 흉터는 남아도 잘 극복할 텐데 말입니다.

페크pek0501 2019-01-19 15: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티브이에서 여배우를 성폭행해서 촬영된 것이라는 걸 알고 저도 흥분했죠. 말이 안 되어서요.
그들에게 예술이 왜 있는지 묻고 싶어요. 인간을 위한 예술이 되어야 할 텐데 예술을 위한 인간의 희생이라니... 참 한심하고 슬픈 일입니다. 영화를 만들 자격이 없어요.

stella.K 2019-01-20 17:32   좋아요 0 | URL
예술이 여성도 향유할 수 있는 거란 걸 생각 못한 거겠죠.
그게 TV에도 나와었군요.
이미 두 사람은 고인이 됐으니 따질 수도 없고
너무 안타까운 일이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