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의 전성시대 (HD텔레시네) - [할인행사]
김호선 감독, 염복순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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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은 많이 들어봤다. 유명한 조선작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 1975년도 작이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려 보지 못하고 이제야 봤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이 작품이 꽤나 야한 작품인 줄 알았다. 일명 포르노. 그런데  지금 보니 그다지 야한 영화도 아니다. 야하다면 때밀이를 하는 남자 주인공 창수(송재호 분)가 영자(염복순 분)를 자신이 일하는 목욕탕으로 불러 등을 밀어주는 장면 정도랄까? 그것도 앞에 가릴 건 타올로 다 가리고. 등급도 15세 관람가다. 하긴, 예전엔 포르노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등급이 세분화되지도 않았거니와 흥행을 생각해 의도적으로 야한 영화로 몰아갔는지도 모른다

 

포스터가 좀 조악한 것도 사실이지만 예전엔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의 포스터를 사람이 일일이 그리기도 했으니 당시로 저 정도의 그렸다면 잘 그린 축에 속한다. 또한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뭔가 묘한 느낌도 들면서 여자를 상품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아니면 사회 분위기에 따라 영화 포스터를 보는 시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내용은 야하다기 보단 오히려 사회 비판적 요소가 강해 보인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산업화와 더불어 페미니즘 또는 사회 불평등이란 관점에서 얘깃거리가 많아 보인다.


70년 대는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던 때이기도 하지만 그건 산업화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이 산업화가 과연 좋기만 했던 것인가에 대한 단적인 예를 보여주기도 한다. 많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왔고, 그에 따라 도시화는 한층 속도를 내기도 했다. 또한 거기에 편승에 시골 처녀들도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기도 했다. 그런 여자들이 가는 곳은 공단 아니면 버스 안내양이나 부잣집 가정부고, 번 돈은 쓰지 않고 시골집에 부쳤다. 그 역을 맡는 건 대부분 시골집 맏딸이 대부분일 것이고, 그들은 동생들이나 오빠의 학비를 대며 가정을 경제적으로 도와야 했다. 그리고 거기서 못 견디거나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벌겠다면 술집으로 빠진다.  


어찌 보면 우리의 영자는 바로 이런 정 코스를 밟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잣집에 가정부로 도시살이를 시작했으나 주인집 망나니 아들에게 정조를 빼앗기고, 결혼을 꿈꿔으나 해줄 리 없어 그 집을 나와 버스 안내양으로 취직하지만 사고로 불구의 몸이 된다. 결국 자신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형질의 인긴이라는 걸 알고 그때부터 몸을 팔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막살 때마다 가정부 시절 우연히 알게 된 창수가 구원남으로 나타나곤 한다. 도시라고 해서 망나니 짐승만 사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알뜰히 돌봐주며 영자와의 결혼도 꿈꾸는 순정남이 있다. 그러나 그 역시 고아에 힘없는 주변인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그 시절 있을 법한 두 남녀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사회 고발적 의미도 있다. 왜 여자는 돈을 벌면 불행해져야 하는가. 요즘 같으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지만 당시엔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여자는 그저 남편의 그늘에서 자식 낳고 가정 건사를 잘하는 것이 미덕인 양 했던 때가 있다. 하지만 산업화의 물결이 여자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여자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걸까.


이 영화엔 다분히 남성주의 시각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영자의 가정부 시절 주인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요즘 같으면 성폭행을 성폭행이라고 말하겠지만 그 시절은 무조건 가해자 보단 피해자 더 피해를 본다. 문득 대척점에 있는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 생각났다. 톨스토이는 오히려 남자가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회개도 하더만, 문제작이라고는 하나 그런 양심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역시 톨스토이는 톨스토이다 싶다.


엔딩도 그렇다. 창수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자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뭐 거기까진 그럴 수도 있다. 영자는 자기 자신을 너무도 잘 안다. 창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엔 자신은 너무나 흠도 상처도 많다. 자살의 충동을 이기고 자신을 아는 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도 좋다. 그런데 동병상련이라고 신체부위는 다르지만 같은 불구자와 결혼을 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는 건 다소 억지스럽다. 과연 영화 어느 부분에 영자가 전성시대를 누렸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돈을 좇아 서울 상경을 했다는 죄로 지지리 불행한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을 창수란 구원남이 있어 전성시대라는 걸까? 아니면 천신만고 끝에 비록 불구라고는 하지만 착한 남자 만나 아이 낳고 잘 살게 된 게 전성시대라는 걸까.


정말 영자가 전성시대가 되려면 남자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고, 성폭력을 치료할 수 있며, 응당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 법적인 제도가 이루어져야 하며 무엇보다 영자가 자기다운 삶을 살아야 전성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70년 대 영자들은 전성시대를 맞지 못했으며,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미흡한 상태다. 작품이 갖는 의의가 있긴 하지만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2천 년 대 영자의 전성시대는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할까?         

        

옛날 영화를 본다는 건 묘한 매력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들의 리즈 시절을 보는 재미도 있고,  지나간 시대를 엿보고 옛 추억에 잠길 수도 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염복순 배우를 기억할 사람이 있을까. 이름이 그래서일까? 나름 요염한 데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도 어릴 때 본 배우라 나는 이 배우가 한창 활동했던 끝자락에서 기억할 뿐이지만 나름존재감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조금 더 인기를 얻어도 좋았을 텐데 70년대 일명 여배우 트로이카라던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에 가려 스크린에서 일찌감치 잊힌 배우는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도 70년대 말 정도까지 활동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것 같다. 누구는 가수 이효리를 닮았다고 하는데 얼핏 비운의 배우 이은주 느낌도 난다. 물론 여성스럽기는 이은주이지만 선 굵은 연기는 염복순이 앞선다. 내친김에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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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8-27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본 적이 없어서 상품 페이지를 찾아 보았는데, 출연자 중에 송재호와 최불암이라는 요즘도 유명한 분들도 계시네요. 이 영화가 1970년대 영화라서 볼 기회가 없었고 잘 몰랐어요. 오래 전 영화니까 요즘 영화와 많이 다르겠고, 그 때 사람들의 생각하는 것과 지금 사람들의 생각이 다른 것 만큼의 차이도 있겠지요. 그런 것들 생각하면서 보면 예전 영화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리뷰 잘읽었습니다.
stella.K님, 좋은 하루되세요.^^

stella.K 2019-08-28 14:59   좋아요 1 | URL
사실 요즘 영화를 생각할 때 되게 낮설고 어색한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그 시대의 정서나 감정들을 고려해서 보면 나름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송재호 최불암뿐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들이 많이 나옵니다.
서니님 잘 모를지도 모르는데 도금봉과 박주아 아줌마도 나오죠.
70년 대 조연 전문 배우로 유명했습니다.
혹시 기회되시면 서니님도 함 보세요.^^

니르바나 2019-08-2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니르바나는 <영자의 전성시대>를 극장에서 관람하였습니다.
이장호감독의 <별들의 고향>과 함게 수십만명이 극장을 찾아
관객수를 시대 지수로 조정하면 천만 영화의 계보에 해당될 작품이었구요.
제 기억이 정확한지 자신없지만,
소설가 조선작이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을 극본화했던 작품입니다.
염복순은 그 후로도 여러편의 드라마,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 작품이 워낙 유명해서 다른 대표작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알려주신 대로 소리 소문 없이 지내서 궁금합니다.
지금 연세가 꽤 되었을텐데요.


stella.K 2019-08-28 15:08   좋아요 0 | URL
염복순 배우를 아시는군요. 반가운데요?
나름 매력있는 배운데 잊혀져 아쉽더라구요.
그 시절 여자들은 결혼하면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례라 그녀도 결혼하면서 그만두지 않았나 싶어요.
언제부턴가 왕년의 배우들이 활동을 안하는 게 못내 아쉽더라구요.
그런데 니르바나님 왕년에 충무로 좀 누비고
다니셨겠는데요?ㅎㅎ

hnine 2019-08-28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으로 읽었습니다 극장엔 출입할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에 ㅋㅋ
저 기억해요 염복순이라는 배우. 지금 뭐하는지 궁금하네요. 탈렌트로 TV에도 나오던 배우였는데요. 입가에 점이 매력적이던.
김호선 감독은 장미희가 나온 <겨울여자>의 감독이기도 할걸요 아마.
stella님, 옛날 영화를 종종 찾아보시는것 같아요. 덕분에 저도 stella님 글 읽으며 옛날 추억에 잠길 수 있어 좋습니다.

stella.K 2019-08-28 15: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거 개봉 당시엔 미성년자 관람불가였을 거예요.
저도 이번에 영화 보면서 책으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엔 영화가 시큰둥합니다.
하다못해 그 유명한 <기생충>도 전 아직 안 봤어요.
그래도 아주 알 볼 수 없으니 올레 TV에서 보여주는
옛날 무료 영화들을 가끔씩 보고 있어요.
보고 있으면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하죠.흐흐

cyrus 2019-08-29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자가 결혼한 남자가 장애인으로 설정한 점. 이 점이 흥미롭네요. 요즘 제가 하고 있는 페미니즘 공부의 주제가 장애학과 관련이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안 봐서 결말에 대해서 의견을 내기가 어렵네요. 영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장애인 남성과 비장애인 여성의 만남. 관심 가져볼만한 주제인 것 같아요. ^^

stella.K 2019-08-29 19:02   좋아요 0 | URL
아냐. 둘 다 장애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 하잖아.
장애자들끼리도 그렇게 하지. 사실 그건 엔딩에 잠깐 나올 뿐이고
그래도 이 영화는 여성사의 관점에서 봐 줄만한 영화라고 생각해.
글치않아도 보면서 네 생각 잠깐 났어.
기회되면 함 봐봐.^^

cyrus 2019-08-30 07:44   좋아요 0 | URL
제가 글을 제대로 보지 못했네요.. ^^;;

transient-guest 2019-08-30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영화나 책을 보면 그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당시의 성인식, 사회상, 사고 등등. 그려내고자 한 건 아마 산업화의 그늘 같은 주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만...

stella.K 2019-08-30 14:34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래서 가끔 옛날 영화 보면 옛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곤 하죠.
70년대 영화들이 산업화의 그늘을 다룬 작품이 많긴하죠.
안 그래도 그 시대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옛날 영화 안 본 것들이 많은데 보기가 쉽지 않네요.ㅠ
 

암 치료 후 5년 생존이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는데,

어떤 사람은 5년 동안 투병하다 천국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는 걸

나는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운 없는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물론 그분이 더 사셨으면 좋겠지만,

천국에서는 영원한 완치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고인의 가족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함께 조문 간 B집사가 어머니를 여읜 지 이틀 된 맏딸에게 장례식 끝나면 뭐할 거냐고 묻자

그녀는 대답처럼, 이제 집에 돌아가면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 고인을 땅에 묻고 산 사람은 당장 끼니를 생각해야 한다.

그게 삶이고, 살아 있음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고인을 등지고 얼마나 많은 끼니를 지어먹어야

천국에서 고인을 다시 만날까.

그때까지 끼니를 거르지 말고 오늘이라고 하는 날에 충실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 또 하루가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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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8-22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인분께서 소천하셔서 조문을 다녀오셨군요.
이제는 천국에 가시니, 이곳의 힘든 일들로부터 편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페이퍼를 다시 읽으면서, 매일 매일 하루를 산다는 것을 조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날씨가 많이 더운데,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열대야는 지나갔다고 하지만, 아직 덥습니다.
stella.K님께서도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19-08-23 14:19   좋아요 1 | URL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정말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을 해요.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를 너무 의미없이 보내서 그런 건
아닐까, 이왕 빨리 지나가는 세월이라면 뭔가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부딪혀 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죠.

요즘엔 통 서재에 글을 못 올리고 있습니다.
가끔 올릴만도 한데 이상하게 못 올리고 있어요.
저 아마도 올핸 서재의 달인 못할 것 같습니다.ㅠㅎㅎ
인터넷 연재 종료 이후 계획한 게 있어서 아무래도
그게 마음에 씌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마실 와 주셔서 고마워요.
서니님도 평안히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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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그의 책을 읽으니 내 안에 책 읽는 뇌가 모처럼 세로토닌이 발산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읽으면서 문득문득 이윤기처럼 살면 좋겠다 싶다. 인생을 흔히 고해니 고통의 연속이니 하며 세상 못 살 것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꼭 그러기만 하겠는가? 인생은 유레카다. 발견에서 기쁨을 누리고 희열을 느끼는. 그런 것 없이 재미없어 어찌 살겠는가.


그는 책에서 자신에겐 행복한 징크스가 있다고 했다. 그는 뭔가에 관심이 생기면 꼭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여건과 환경이 생긴다고 했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작가와 번역가로서 어떤 책이나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 꼭 출판사로부터 그 분야에 대한 번역이나 조사를 의뢰받는다고. 원서를 정독할 절호의 기회가 생기고,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즐거움에 출판사에선 돈까지 준다고 하면서 '책 읽기', '책 옮기기'에 관한 한 자신은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쯤 되면 그는 꽤 행운아처럼 느껴진다.


이왕 행운아란 말이 나왔으니 잠시 생각해 보자. 그거 왠지 내 것이 아니고 남의 것만 같다. 그렇지 않은가? 남은 그렇게 좋은 일이 많이도 생기는데 나만 안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행운도 하늘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작가 이윤기는 자신이 그럴 수 있기까지는 어느 정도 떠들고 다닌다고 괄호 쳐 놓고 얘기한다. 작가의 괄호 친 말은 보통 내용과 크게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참고로 밝혀둘 때 쓰이기도 한다. 우린 바로 이런 괄호 쳐 놓고 하는 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고 행운이라는 것도 그냥 가만히 있는데 굴러들어 오지 않는다. 그것도 알고 보면 준비된 자에게 들어온다. 그러니 행운을 원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떠들어라. 그래야 행운이 알아듣고 그 사람에게로 갈지 모른다.


그런 것을 보면 난 왠지 작가가 인생의 묘미를 아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겸손하게 말해 '행복한 징크스'란 것이지 알고 보면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가는데 타고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즉 좋게 말하면 책략가고, 나쁘게 말하면 꾀돌이라고나 할까.


거기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야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관심 있어하는 쪽은 늘 책이었다. 그는 60년 대 초 한 출판사에서 초등생을 겨냥한 각각 100권짜리 소설 전집과 위인 전기을 읽으면서, '일찍이 나에게, 장차 무슨 짓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다고 술회한다. 그의 입말이 참 좋다. 무슨 짓을 하면서, 어떻게 사냐니. 


그러고 보면 꽤 일찍 발견한 것 같다. 그것을 발견하고 가슴은 얼마나 뜨거웠겠는가. 그리고 그건 훗날 번역으로, 신화 연구로, 소설가로 아깝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그런 직함으로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지만,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기는 그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와 움베르고 에코의 여러 소설 그중에서도 <장미의 이름>을 번역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희랍인 조르바>의 번역은 그 말고도 몇 명의 번역자들이 더 있다. 그리고 이윤기를 포함해 대부분 영역을 번역한 것으로 아무리 번역이 뛰어날지 몰라도 중역의 오명을 피하지 못한다. 게다가 완역본도 최근에야 나왔다. 물론 난 아직 그 누구의 번역본으로도 읽지 못했지만 그 누구의 번역본을 읽는다면 이윤기 번역본은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그의 번역본이 갖는 아우라가 결코 작지 않으며, 그 역시 그 소설은 자기 문학의 '성서'라고까지 했다. 그러니 이윤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번역본을 읽지 않는다면 그건 그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또 그래서일까? 이윤기에게서 왠지 조르바의 느낌도 나는 듯하다.(나는 책으로는 못 읽었지만 영화로는 봤다. 영화 속 조르바 역을 맡은 앤서니 퀸은 그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에서 조르바의 그림자를 느낀다는 건 엉뚱하게도 그가 움베르코 에코의 <장미의 이름> 번역을 언급할 때다. 움베르토 에코가 이탈리아 사람으로서 당연 이태리어로 글을 썼겠지만, 그는 이태리어를 번역했던 것이 아니고, 영어로 된 것을 번역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번역은 철학자 강유원 박사로부터 찬사와 오명을 동시에 받는다.


옛날 일제 강점기 아무리 유명한 작품도 영어나 일어를 중역으로 하더라도 그게 그렇게 흉이 안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독자들의 욕구가 높아져 중역은 웬만해선 읽지 않으려고 한다. 게다가 우린 학(學)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가. 물론 학문을 중요시 여기고 그것에 완벽함을 기하는 거야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다가 사대주의에 갇힐 수도 있다.  


그도 자칫 그럴 뻔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말하는데 무엇으로 반박하겠는가. 그러나 그것으로 한쪽 구석에 조용히 있으면 그건 우리가 알던 이윤기가 아니다. 그는 에코의 소설을 비롯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오독과 오역으로 인한 질타 속에서도 '중세 이후 유럽의 예술가들이 그토록 다양하게 변주하던 신화에 대해, '창'을 '도끼'라고 썼다고 해서 '문화를 오역한 자'로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111p)라며 반박했다. 그는 어쩌면 학적인 완벽함보다 사상의 자유로움이 더 중요함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다. 그것이 문득 자유인으로 살았던 조르바와 오버랩되기도 했다.


그는 무엇이든지 마음먹은 일은 하고야 마는 성격이다. 우리나라는 단편이고 장편이고 소설을 쓰는 사람이면 무조건 다 '소설가'라고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오직 장편을 쓰는 작가에게만 그 이름을 허락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라이터(글 쓰는 사람 정도)만을 허락할 뿐이다.  그는 거기서 충격을 받았을까? 나중에 기어이 장편소설을 쓰고 기어코 노블 리스트가 되었다. 그건 좀 우리나라도 배워야 할 것 같다. 미국만 해도 그렇게 장편을 쓰는 소설가를 대우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장편을 꺼려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스스로 소설은 죽었다고 말하는 건 바로 이런 분위기가 배면에 깔려있기 때문은 아닐까. 쓰기도 전에 패배의식부터 갖게 되는 이 분위기는 언제쯤 걷히게 될지. 이윤기 작가는 그것을 결단코 허용하지 않는다. 소설 가지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생각을 하냐고 오히려 나무라는 듯하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 문학에 대한 그의 생각들이 이 책 곳곳에 깔려있다. 문득 답답해지거든 문학 선배로서의 그에 대한 생각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호기심이 많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싶다.


책을 읽으면 그가 글을 쓰는지, 말을 하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쉽게 쓴다. 한마디로 착착 감긴다. 그걸 두고 껍진껍진한 입말이라고 한다는데,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싶은 대로 쓰는 구어체 즉 입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앞으로 글의 추세는 이렇게 갈 것이라고 한다. 그것을 작가 박경덕은 생각하는 대로 글을 쓰지 않고, 말하고 싶은 대로 쓴다는 '말글'로도 설명하고 있는데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지식욕이 대단했다. 그것이 그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욕구만으로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아 보인다. 지구의 한 귀퉁이에 틀어박혀 숨만 쉬고 살지 말자. 그런 욕구가 있어야 세상을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살 수 있다.


그런 욕구로 그는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오래 장수하며 살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살지 못했다. 지금도 그는 책상에 앉아 번역에 몰두하던가, 지중해 어딘가를 헤매고 다닐 것만 같은데 말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꽤 된듯하다. 아직도 그의 책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게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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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9-07-1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새 리뷰를 쓰셨네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노땅 소리 듣겠지만
분명 요즘 작가들은 스텔라님 어린 시절보다 넓이는 모르지만 문학적 깊이에서
작가적 역량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 시절 문학이 주는 감동을 퍼스널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고 나서
게임이나 스마트폰 검색 같은 생활 유희가 문학의 자리를 대체했기 때문이죠.

더 이상 이윤기 선생 같은 분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 문학적 토양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이윤기 작가의 부재가 더 아쉽습니다.
스텔라님도 공감하시죠.


stella.K 2019-07-16 15:05   좋아요 0 | URL
그리 말씀해 주시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이곳에 따로 글을 올리지 않아도
아깝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잘못 생각했네요.
그러면 니르바나님과 이렇게 안부 인사도 못하는 건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잘 지내시죠?

맞아요. 이윤기 작가는 정말 아타까운 작가입니다.
언젠가 EBS에 나와 인문학 강의도 했었는데
그게 왜 그렇게 지금도 선명한지.ㅠ

2019-07-16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6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16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처음 자전거를 탄 딸을 위해 선생이 자전거를 뒤에서 밀어주는 일화가 나와요.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은 그 일화를 언급하면서 자신을 ‘신화를 처음 읽는 독자를 위해 천천히 뒤에서 밀어주는 존재’라고 묘사했던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중학생인 저를 신화의 세계에 갈 수 있도록 천천히 밀어준 분이 이윤기 선생이었어요. 그 분 아니었으면 신화에 대한 매력을 몰랐을 거예요. ^^

stella.K 2019-07-16 19:58   좋아요 0 | URL
맞아. 나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분을 통해 알게 되었지.
그리고 소설도 읽고, 에세이도 읽었는데 후회해 본적이 없어.
아직도 읽은 책 보단 안 읽은 책이 많은데
따님하고 쓴 플루타크 영웅전인가? 그게 여러 권 있더군.
근데 출판된지가 꽤 돼.
언제고 이분의 선집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도 따님이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어.
참 아까운 분이지.

서니데이 2019-07-18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기 선생은 번역서가 많지만, 이 책은 번역서가 아닌 이윤기 선생의 책이네요.
오늘 날씨 많이 더웠는데 잘 보내셨나요.
편안한 밤 되세요.^^

stella.K 2019-07-19 14:03   좋아요 1 | URL
직접 쓴 글이 생각 보다 많아요.
원기왕성한 분이죠. 전 항상 비실비실인데.ㅠ
여러모로 부러운 분이시죠.

페크pek0501 2019-07-2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의 출현이십니다. 환영합니다!!!!!

이윤기 선생의 작품을 저도 몇 편 읽었어요. 그의 부고 소식에 안타까웠던 게 생각납니다.

stella.K 2019-07-21 19:54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잠깐 짬을 내어 올렸습니다.
읽기는 오래 전에 읽었는데. 올핸 이상하게 완독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그날 그날 내키는 대로 읽고 있습니다.
그래야 제 방에 쌓아둔 책들 손떼라도 묻혀 보겠더라구요.
물론 이 책은 완독했습니다. 오랜만에 이윤기님의 책을 읽으니
좋더군요. 더구나 이런 글쓰기 책을 좋아하거든요.^^

2019-08-13 15: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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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3 16: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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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수집가-유년시절> 5월의 구독자를 모집합니다.

이달에도 변함없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회, 월 16회 발행합니다.

 

모집기간은 11일까지.

구독료는 9000원입니다.

연재시작은 5월 13일이고,

연재종료는 6월 6일까지입니다.

 

과월호 3월호와 4월호는 각각 5천원입니다. 5월호부터 읽으셔도 상관없지만 연재인만큼 그전에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왔나를 알고 싶으신 분은 과월호도 추천해 드립니다. 물론 5월호를 읽지 않으시고 과월호만 신청하셔도 됩니다.

 

신청은 이메일 주소 stells15@never.com 으로 받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신청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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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15: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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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17: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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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06: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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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16: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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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1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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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1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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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9 15: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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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9 1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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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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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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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로 4월호를 마쳤습니다. 이메일 연재 두 달째를 보낸 셈이기도 한데 이즈음 참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과연 내가 글을 잘 쓰고 있는 건지, 독자는 내 글에 얼마만큼 만족하고 있는 건지, 무엇을 느꼈을지 매일 생각하고, 매일 반성합니다.

    

언젠가 어느 독자분께서는 제 글이 감질나다고 말씀하셨는데,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어느 정도 목에 힘이 들어가면서 그렇다면 난 성공한 거라며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연재한 글을 한글 파일에 옮겨 담으면서 그렇게 생각한 게 너무 철이 없었던 건 아닐까 민망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구독료 9천원이면 그것에 합당하고 만족하게 글을 썼을까? 한편의 글을 쓰면 완결미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원래 짧게 끊어 읽어 가급적 독자들이 편하게 읽도록 해 보자는 게 의도였는데 너무 그 생각에 치우쳐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다시 읽어보니 얼굴이 좀 화끈거리더군요. 이렇게 완결미가 없고 불친절해서야 아무리 내 글이지만 나라도 읽을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명 같지만, 애초에 이 글의 모토는 짧은 글, 긴 생각이었습니다. 제 글이 하나의 자극제가 돼서 독자분들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거요.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저도 어린 시절에 빠져 기분이 좋아지면서 차분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물론 어린 시절이 항상 좋고 아름다운 기억만 있는 건 아니지만, 지나간 추억은 그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윌리엄 맥스웰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기억이란 마음속에서 반복해 들리는 어떤 이야기이며 말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종종 바뀐다. 가끔은 자기 안의 이야기꾼이 나서서 상황을 재배치하기도 한다. 어쨌든 과거에 관한 한 우리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그러므로 소설이란 본인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장이 아니라 과거를 재창조하여 독자를 매혹하는 것이다.’라고요.

    

정말 말이 좋아 기억 수집가지 저는 여러분에게 글을 보내려고 할 때마다 거짓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글을 쓰면서도 그때이랬는지 저랬는지 헷갈릴 때도 많거든요. 하지만 논픽션에도 얼마만큼의 픽션이 존재하고, 픽션에도 논픽션이 존재하는 만큼 이야기는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규명하는 것에 있기 보다는 작가와 독자가 함께 공감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작가와 독자가 만나 이야기의 축제를 벌이는 거죠. 실제로 전 그런 마음으로 쓰고 있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급적 많은)사람들이 저의 이야기를 읽고 나도 자서전을 써 봐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되면 좋겠다고. 자서전이라고는 했지만 형식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까지 이메일 연재로 쓰면서 마음이 한 번도 안 흔들렸다면 그건 정말 거짓말입니다. 솔직히 말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순간 아찔해지고 기운이 빠져버릴 것만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의 선배격인 이슬아 작가를 많이 생각합니다. 그녀도 처음엔 이러지 않았을까? 저러지 않았을까? 사람 마음 똑같은 건데. 그러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또 그러면서 글 쓰는 근육을 키워 나가는 것이겠죠.

    

앞으로는 조금 더 촘촘하고 알차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최소한 이 연재를 6월까지 진행해 볼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응원과 격려가 있다면 연장해 볼 수도 있지만.아무튼 그때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성실하게 쓰겠습니다.

    

이달에도 변함없이 구독료는 9000원이구요, 5월호 신청은 11일까지입니다.

혹시 저의 계좌번호를 잃어버리셨다면 이메일로 알려주십시오.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달에도 변함없이 이메일 연재에서 뵙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기억 수집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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