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안중근 범우희곡선 37
김춘광 지음 / 종합출판범우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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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라 여기저기서 관련된 공연물들이 심심찮게 올려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론 안중근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영웅>이 10년 전부터 공연되고 있는데 사실 안중근 의사에 관해서는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오래전 연극으로 공연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김춘광이 쓴 <희곡 안중근>이다.


이 책은 오래전 사놓고 거의 방치하다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최근에야 완독 했다. 솔직히 사놓고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어 중고샵에 팔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뭣 때문인지 그러질 못했는데 역시 책은 읽는 때가 따로 읽는가 보다.    

 

이 책의 초판 발행이 2010년으로 되어 있어서 작가가 정말 그 무렵쯤 출간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것은 아니고 출판사에서 오래된 희곡을 발굴 편집해서 출판한 것이 그해란 말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대사의 어법이 좀 올드하다. 이를테면 어미를 우나 소로 종결하는 경우가 많다. 또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비교적 초창기 텍스트였을 것이다. 뭐 그런 것만 빼면 내용면에선 상당히 충실하게 잘 쓴 대본이라고 생각한다. 


총 4막으로 엮어져 있는데 한 막이 시작할 때마다 그 막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나 느낌을 자세히 적고 있다. 특히 3막 같은 경우엔 다른 막에 비해 짧기도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으로 썼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작가가 얼마나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썼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알겠지만 안중근 의사는 김구나 윤봉길, 유관순 등과 함께 걸출한 독립운동가다. 작품을 읽으면서 독립운동가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무엇보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데 성공했다. 작품에선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그의 연보를 보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학문보다는 사냥에 소질이 있었고 나중에 명사수가 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런 것만 봐도 독립운동은 그냥 마음만 먹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겠구나 싶다. 언제나 그렇지만 준비된 자가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마을 예배당에 순회 연설을 온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문명개화와 국권회복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조국 독립에 헌신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조국 독립에 헌신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곧 가족을 버린다는 의미다. 그때 안중근에겐 손이 한창 필요한 어린 자녀들이 셋이나 있었다. 극 중 아내가 남편이 너무 보고 싶어 큰아들과 함께 만나러 블라디보스토크에 오지만 안중근은 나는 가족이 없다며 싸늘하게 돌려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는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족을 보길 원치 않았다. 물론 나중에 어머니가 지어 준 수의를 받긴 하지만. 당시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가족을 떠났지만 이렇게까지 매몰차야만 했을까, 그렇게 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러기는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 안중근은 가족을 모른다고 했을까. 가족을 끌어안는 순간 자신의 독립의 의지가 꺾일 것을 저어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이 밝혀지면 가족들이 어떤 위해를 당할지 몰라 그렇게 했을 것이다. 독립운동가가 된다는 건 역시 보통의 의지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그는 이토 히로부미 즉 일본을 지극히 미워하고 경멸했다. 그 마음은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것 이상을 넘는다. 그래야 죽일 수 있을 테니까. 솔직히 당시 일본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 싫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들은 불특정 다수를 미워했다기보다 특별히 한 사람을 미워했을 것이다. 얼마큼?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리만큼. 그래야 죽일 수 있을 테니. 또한 아무나 죽이지 않았다. 조선 통치의 뇌관이었던 그 사람을 사살해야 일본을 무너뜨릴 수가 있다. 저격을 잘못하거나 일본의 피라미를 죽여봤자 아무도 안 알아주며 오히려 더 큰 화를 입을 것이다. 그러므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일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누군가? 조선통감부의 초대 통감이다. 당시 이 사건은 중국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나중에 그가 죽고 나서 사당을 지을 만큼 존경받는 인물이 된다. 


자신의 생의 마지막 날, 마지막 시를 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가 세상을 살 수 있는 건 어쩌면 그날과 그 시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인도 모른다. 그것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두렵고 낙심돼서 어떻게 살겠는가. 현대에 들어와서 사형수들은 자신이 어느 날, 언제 죽을지 전날까지도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만 해도 그게 명시되어 있었는가 보다. 그가 죽은 날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다. 전날 그는 물론이고 세 명의 감방 동료들 즉 우덕순과 조도선, 유동하는 잠을 자지 못했다. 날이 밝으면 한 사람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고, 살아 있는 사람은 그것을 지켜볼 것이다. 삶과 죽음이 가까이 있으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멀면 또 얼마나 먼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날 그들은 아침 9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조반으로 빵과 삶은 계란, 단무지 한 조각씩을 나눠 먹었다. 그야말로 그들에겐 최후의 조찬이다. 그들이 먹은 것 고스란히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갈 사람에게 터무니없이 형편없는 식사였을텐데 말이다. 


왜 그에겐 평범한 날들과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적인 행복이 주어지지 않았던 걸까.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죽어 마땅한 존재라고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민족이 그토록이나 경멸하고 미워했던 사람을 죽였는데 영웅인 양하지는 않더라도 자책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가 자책을 했다는 건 어쩌면 신앙인으로서의 양심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 어쩌면 그가 죽을 때까지 해박한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동양평화론'을 썼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즉 그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경멸과 미움은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대의 때문인 것을 증명해 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 '동양평화론'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죽기 바로 직전 "나는 동양평화를 위하여 한 일이니 내가 죽은 뒤에라도 한 . 일 양국은 동양평화를 위하여 서로 협력해주기를 바란다."며 천주께 기도한 후 순국했다고 한다. 처형이 조금만 늦춰졌다면 완성하지 않았을까. 요즘의 한일 양국 간의 갈등을 생각하면 그의 미완성은 뭔가를 시사하는 것도 같다. 정녕 양국이 평화 공존할 날이 올까.  


아무튼 이만한 정신, 이만한 태도로 무장하지 않으면 독립운동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작품은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교회가 순교자의 피로 세워졌다면 나라의 독립은 순국의 피로 세워졌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그분들의 희생과 노고를 잊지 않는다면 우린 분명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우리 가슴속에 존경하는 독립운동가 한 사람쯤 품지 않고 산다면 그 또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판물로든 공연이나 영상으로든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독립운동가의 삶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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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9-30 19:19   좋아요 0 | URL
쓰진 않았지만, 일본도 일본이지만 우리나라는 왜 제나라도
제대로 못 지키고 사나 싶어요. 사실 그게 더 화가나는 일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앗기지 않고 살아가는 걸 보면
그건 역시 우리나라 특유의 민졳성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이 좋아 독립운동이지 아무나 할 수 있겠습니까.ㅠ

2019-09-29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30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04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04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9-2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곡이라서 그런지 뮤지컬로 나온 작품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네요.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stella,K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19-09-30 19:33   좋아요 1 | URL
서니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셨죠?
또 시작된 한 주도 힘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 내년부터 반려동물을 인구수에 포함시킬거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게 과연 실현될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뭐가 달라지는 걸까? 반려동물에게도 주민등록을 해야할 것이고, 죽었다고 해서 몰래 야산 같은데 묻는 행위는 금지될 것이다. 그러면 주인이 벌금을 물거나 징역을 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새끼를 낸다고 임신을 촉진시키는 업주의 행태도 당연 벌을 받겠지. 대신 반려동물도 정식적인 결혼 절차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결혼은 집안 대 집안의 관계인만큼 사돈지간도 맺어야 할 것 같고. 이런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라도 과연 인구수에 포함을 시킬건지 궁금하다. 정말 우린 반려동물, 반려동물하면서 정작 얼마나 준비된 반려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지런한 마태우스님이 또 책을 내셨구나. 이번엔 개에 관한 책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마태우스님은 여섯마리 개와 함께 살고 계신다.(개인적으로 난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신다는 건 알았지만 여섯 마리나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페니키즈다. 북트레일러를 보고 알았다.

 

우리나라가 어느 덧 반려견 천만 시대란다. 그러면 뭐하겠는가? 그에 맞게 우리는 개를 정말 잘 키우고 있는 걸까? 마태님은 단호히 웬만하면 키우지 말란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나도 그에 동감한다. 뭐라고 쓰셨을지 궁금하다. 아무튼 이 책도 좋은 결과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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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9-09-16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추석명절 잘 지내셨나요.
추석날 그 보름달은 아니지만 밝은 달님께 빕니다.
스텔라님 몸과맘 모두 더욱 건안하시길...

stella.K 2019-09-17 14:43   좋아요 0 | URL
흐흑~ 감사합니다. 제가 뭐라고...ㅠㅠ
니르바나님도 명절 잘 지내셨죠?
제가 먼저 인사 드렸어야 하는 건데...
아침 저녁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구요,
늘 강건하시길 저 또한 빌어드립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19-09-1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려동물을 인구수에 등록하는 것보다 제일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동물학대죄 강화예요. 지금의 법은 처벌 수위가 약해요.

stella.K 2019-09-17 14:46   좋아요 0 | URL
맞아. 그게 어떻게 해서 나온 얘긴지 모르겠어.
그것 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게 있는 것 같은데
바로 그걸 거야.
아직도 동물을 학대하거나 유기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잖아.

레삭매냐 2019-09-1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마태우스님이 멍멍일 여섯 마리나
키우시는군요. 대단하시네요 ~~~

다만 저희 동네 반려동물들을 키우시는
분들은 비닐봉투를 멋으로만 들고 다니
셔서 멍멍이 X 천지더라구요 ㅠㅠ

며칠 전에 산책하다가 밟고 미끄덩!~
할 뻔 했지 뭡니까 ...

stella.K 2019-09-17 18:15   좋아요 1 | URL
헉 밟기까지...?! 어휴~ㅋㅋㅋ
이거 웃으면 안 되는 건데.ㅠ
그래도 안 넘어지시길 다행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넘하네요.
적어도 자기 강아지는 자신이 책임져야지
그런 기본도 안 되면서 반려견은 왜 키우는지 모르겠네요. ㅉㅉ

마태우스 2019-09-25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K님, 이런 멋진 페이퍼를 쓰시다뇨. 그래서 이 즈음해서 세일즈포인트가 확 올라갔군요! 정말 감사드려요. 근데 이 나라엔 자격없는 이들이 너무 많이 개를 키우는 것 같습니다...개탄스러워요.

stella.K 2019-09-26 15:50   좋아요 0 | URL
아, 아닙니다. 얼마 전 그런 보도를 접하고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던 중 마태님께서 새책을 내셔서 반가운 마음에 갈무리 해 보았습니다.
참 부지런 하십니다. 근데 조만간 TV에서 또 뵐 것 같더군요.
꼭 챙겨 보겠습니다.^^

북프리쿠키 2019-09-2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려견에 대한 마음가짐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글구 예전에 키워봤는데 한달에 드는 돈도 만만치 않던데ㅠ.

stella.K 2019-10-03 20:05   좋아요 1 | URL
헉, 왜 답글을 안 썼을까요? 요즘 제가 이렇습니다.ㅠ
쿠키님도 개를 키워보셨군요.
정말 개를 웬만한 책임을 갖지 않으면 못 키우죠.
애 키우는 것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영화 <만추>는 세 번 만들어졌다. 

최초의 <만추>는 1966년 이만희 감독이 고 강신성일과 문정숙을 주인공으로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필름이 유실되어 볼 수가 없다. 그보다 더 오랜 필름도 보존되어 있는데 왜 이 작품은 유실이 되었던 걸까? 복구는 불가능한 걸까? 그나마 1981년도에 김수용 감독이 김혜자와 정동환을 주인공으로 해서 만든 두 번째 필름은 아직 건제하다.


        

                      


현빈과 탕웨이가 나온 <만추>를 언젠가 본 적이 있다. 감독이 워낙에 영화를 잘 만들기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현빈과 탕웨이 그리고 미국의 어느 안개 낀 도시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 호강하기엔 충분한 작품이다. 더구나 멜로 아닌가? 이번에 김수용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보았더니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꽤 남달랐다. 

  

이야기의 기본 틀은 같다.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한 여자가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한부 석방으로 풀려난다. 우연히 기차 또는 버스 정류장에서 낯선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다시 교도소로 돌아간다. 돌아가면서 2년 후 석방되면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는 것이 기본 틀이다. 하지만 영화로서 보여주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보여주는 방식이 얼마나 다르냐에 따라 감독의 역량도 다를 것이다. 또한 그때마다 감독은 선배 감독에게 경의를 표했을 것이다.


왜 감독들은 세대를 달리하면서 <만추>를 만들까? 가끔 그런 영화가 있다. 유명한 건 아닌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보석 같은 영화. 이를테면 <길>이나 <파이란> 같은 영화 말이다. 그런 것처럼 감독들 사이에서도 나라면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까 오감을 간질이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그게 김수용, 김태용 감독에겐 이 영화였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영화감독이라면 생애 한 번쯤은 정말 괜찮은 멜로 영화 만드는 게 로망 아닐까? 그런데 <만추>만 한 작품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해 아래 새것은 없으니.  


분명 김수용 감독의 작품도 당시로선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태용 버전을 보니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마치 똑같은 작품을 소설과 영화로 보는 것만큼이나 다르다. 김수용 버전은 인물 보단 이야기 구조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규모 있게 전달해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김태용은 캐릭터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춘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각각의 캐릭터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의 최대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앞의 작품은 다소 평면적인 느낌인데 반해, 김태용 버전은 상당히 입체적이란 느낌이 든다. 보여줄 것도 많고.    

                                         

                                   

 

사실 지난 세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사는 사람이 옛날 영화를 보기란 쉽지 않다. 그때 당시에는 꽤 세련된 연출을 구가한다고 해도 지나면 빛을 바라고 어딘지 모르게 촌스럽고 어색하다. 그건 요즘의 세련된 영화도 같은 운명을 지니게 될 것이다. 앞으로 10년만 지나도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알 수가 없다. 좀 미안한 말인데, 김수용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을 그러니까 30년 전만 해도 영화에서 시나리오의 중요도가 얼마였을까 의문 스스러워졌다. (이미 했던 말이긴 한데) 영화판에선, 잘 쓴 시나리오를 연출에서 말아먹는 일은 있어도, 못 쓴 시나리오를 연출에서 살려내는 법은 없다는 것이 정설로 되었는데 왠지 이 말이 그 당시엔 별로 신빙성이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감독을 위한 예술이었던 만큼 제왕처럼 군림하고 시나리오가 연출보다 앞서는 것을 경계했던 것은 아닐까. 그랬다면 작품 자체로선 불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옛날 영화의 평점이 높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왜 관객들은 제작자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낮은 평가를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그건 확실히 퀄리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투자를 해야겠지만 투자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다.


현빈과 탕웨이가 나오는 <만추>는 확실히 시야가 깊고 넓다. 한마디로 <만추>의 글로벌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중 배우가 나온다는 것부터도 그렇고, 장소 역시 한국을 넘어 미국이란 나라다. 시나리오를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잘 썼다. 언어의 유희를 극대화했다. 솔직히 어떻게 보면 영화는 여자 주인공 애나가 복역수이고 72시간 후면 교도소로 돌아간다는 사실 외에 진실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영화 속 거짓말은 의도되거나 일부러 가공된 것이기도 하다. 더구나 남녀 주인공은 영어란 공통어가 아니면 상대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언어는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데 방해되고 오해하게 만드는 것 같은데 오히려 사랑을 완성시켜 준다. 물론 영화니까 가능하겠지.


또한 등장인물이 구사하는 대사를 보면 뭔가 불온하고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사실 요즘 드라마 작가들 어떻게 하면 시청자의 귀에 걸릴까 고민을 참 많이 하는데, 사각의 브라운관을 앞에 놓고 그렇게 귀에 걸리는 대사를 듣는 맛이 없다면 우리가 왜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겠는가. 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뭐하나 딱 떨어지는 것이 없고 이건가 싶으면 저것 같고, 저것 같으면 이것 같다. 내가 내뱉고도 이것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바로 그런 불완전성을 잘도 포착해 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나리오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어느 부분은 친절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넘어가 나중에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예를 들면, 남자 주인공 훈이 애나와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내연녀를 살해한 피의자라는 것이 드러나는데 영화를 되돌려 봐도 훈이가 내연녀를 살해했다는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내연녀의 남편이 내 아내를 죽인 피의자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게 우겨서 될 일은 아닌데 좀 불친절해 보인다.

 

사실 <만추>는 김지헌 작가가 1966년에 쓴 작품이다. 그는 평안남도 출신으로 해방이전에 서울로 이주해 경동중학교를 다니면서  영화 예술에 눈을 떴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시나리오들을 탐독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고 하는데 좀 놀랐다. 솔직히 우리나라 작가들은 소설 아니면 시를 탐독하면서 작가의 꿈을 키우지 않는가?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으며 꿈을 키웠다니. 게다가 얼핏 그 시기가 3,40년대였을 텐데 그 시절에 읽을 시나리오가 있었을까? 우리나라 영화판은 얼마나 척박했을까? 꿈꾸기 어려운 시대에도 꿈을 꿨다. 그런 걸 보면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며 우린 너무나 쉽게 꿈을 접는 것은 아닐까 반성해 본다. 

 

 더구나 그의 시작은 1956년 미당 서정주의 격찬을 받으며 시로 등단을 했다고 한다. 195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 <종점에 피는 미소>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했다고 한다. 시작이 이러다 보니 유럽 예술영화의 시적 리얼리즘을 국내에 토착화시키면서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고양시켰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각 시대 감독들마다 작업에 탐낼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만추>가 지금까지 세 명의 감독에 의해 세 번에 걸쳐 만들어졌다. 다음은 또 어느 감독이 똑같은 제목의 작품을 만들겠다고 나올지 모르겠다. 그런 감독이 있다면 미리 박수로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나는 기꺼이 봐줄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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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9-13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추>현빈과 탕웨이 영화 봤는데 기억이 가물가물~명절 입니다 건강하게 보내소서!

stella.K 2019-09-14 13:27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좋았고
김태용 감독이 확실히 영화를 잘 만드는구나 싶더군요.
고맙습니다. 카알님도 남은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blanca 2019-09-14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만추가 이렇게 세 번이나 만들어졌는지 몰랐어요.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stella.K 2019-09-14 13:28   좋아요 0 | URL
이만희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고맙습니다.^^
 

벌써 몇 달째 병원을 다니고 있다.

처음 다닐 땐 더 늦기 전에, 더 더워지기 전에, 한 달 정도만 다니면 낫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해서 다니기 시작한 게 오늘로 꼭 석 달 째다. 그렇게 여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있고 앞으로 얼마를 더 다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Y대학에서 일명 프랜차이즈로 운영하고 있는 정형외과. 그나마 내가 병원에 다니게 될 운명이란 걸 알았을까? 올초에 집 앞에 생겨나 주시고 그 거리는 걸어서 5분이다.


처음 두 달은 신나게(?) 다녔던 것 같다. 빨리 나을 욕심에. 그쯤 다녔을 땐 좀 났는 것도 같아 뿌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 더운 여름에 뭔가를 열심히 했다는 생각에. 그게 비록 병을 고치는 일이라도 말이다. 아마도 올 가을쯤엔 내가 이 병원을 다녔다는 것에 정마저 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아, 내가 어디를 치료받으러 병원에 다니고 있냐고? 김영하 작가가 모 지상파 TV 인터뷰 프로에 나와 각광을 받게 된 이름하여 좌골신경통. 그는 작가가 걸릴 수 있는 직업병 중 하나가 좌골신경통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앉아서 책을 읽던가, 글을 쓰던가 하고 있으니.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약간 서글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진작 작가가 되볼 걸. 물론 나도 최근까지 원고료를 받는 작가이긴 했다. 지금도 뭔가를 끄적이긴 하고.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그런 있는 듯 없는 듯한 작가 말고 김영하 작가 같은 유명 작가 말이다. 김영하 작가가 요즘 핫한 작가가 돼서 그렇지 얼마 전만 해도 (좀 미안한 얘기지만) 내겐 왠지 모르게 만만해 보이는 작가였다. 지금 내가 좌골신경통에 걸린 걸 알면 그는 콧방귀도 안 뀔 거다.


내가 또 좌골신경통만이라면 병원에 그렇게 일찍(?) 다닐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아프다. 아파서 헉헉거린다. 이게 초기 땐 집 밖만 나가면 희한하게 안 아프던가 덜 아프다.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 집에 있으면 더 아프고 밖에 나가야 안 아프단 말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러고 있는데 통증이 오른쪽 다리에도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고관절에서 엉덩이로 내려가는 쪽으로. 그래서 앉았다 일어나면 그 부분이 우욱신거리며 아프다. 물론 그전에도 그 부분이 뻐근하긴 했다. 그거야 늘 있어왔으니 그러려니 했는데 없던 통증까지 생겼으니 병원에 다닐 수밖에.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에게서 그 결과를 들으니 뜻밖의 말을 한다. 다른 쪽은 괜찮은 편인데 허리가 안 좋단다. 그래서 어쩌면 수술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내가 평소 허리가 강한 편은 아니지만 수술을 고려할 정도로 아프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의사 말을 믿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그때부터 난 지금까지 트라이앵글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지금은 어떠냐고? 죽을 것 같다. 귀찮아서. 


글쎄, 일주일에 세 번을 다니면 더 나았을까? 그런데 세 번은 좀 무리인 것 같다. 물론 초기 땐 의사가 세 번 다니라고 해서 다녔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죽을 것만 같은데 세 번을 다니라면 더 죽지 않을까?


얼마 전엔 그동안 죄꼬리만큼 좌골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뭐 때문인지 다시 아팠다. 그래서 오늘은 의사와 면담이 있는 날이라 이 부분에 대해 얘기를 했더니 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고, 오히려 내가 이럴 수도 있나요, 저럴 수도 있나요 물으면 그럴 수도 있죠, 저럴 수도 있죠 맞장구만 칠뿐이다. 고작 한다는 말이, 원하면 약 처방전을 써 줄 수도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그리고 물리치료를 더 받아 보란다. 말에 의하면 이쪽 계통의 치료는 오래 받아야 한다니 의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더 받아 볼 생각이지만, 왜 그런 말도 의사가 아닌 제삼자에게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초기 때 이런 병은 치료가 얼마나 가나요 했더니 모른다고 했다. 물론 그게 정답인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개인차라는 게 있으니. 그러나 평균치는 말해 줄 수도 있지 않은가? 그 평균에서 더 받는 사람도 있고 덜 가는 사람도 있겠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면 무조건 오래 받아야 한다고 하던가.  


그렇게 의사와의 면담 후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헛웃음만 나왔다. 한 달의 한 번씩 그런 날은 왜 만들었으며 누가 의사고, 누가 환자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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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9-07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원에 오래 다니셨네요 처음에는 병원이 가까워서 좋았을 텐데 그게 길어져서 안 좋을 듯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아질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걷기를 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걷는 것도 힘들다면 조금씩... 앞으로 좋아지시기를 바랍니다


희선

stella.K 2019-09-07 13:43   좋아요 0 | URL
이런 계통은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해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봄까지는 간간히 걷기 운동도 했는데
여름엔 덥고, 병원 다닌다는 핑계로 거의 안했죠.
이제 선선한 바람이 불면 또 다시 해 보려구요.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9-09-07 0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7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09-07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시네요.
그나마 병원이 가까이 있으니 다행이예요. 지방이라면 어디가 아플때 갈만한 병원을 집 가까운데서 찾기가 쉽지 않아요.
벌써 몇달째라니 힘드시겠지만 꾸준히 치료 잘 받으세요. 나으셔야죠.

stella.K 2019-09-07 13:59   좋아요 0 | URL
우연히 TV에서 신장 투석을 하는 환자 얘기를 들었죠.
일주일에 3번 4시간씩 받는다는데
저는 일주일에 두번 30분 정도 받거든요.
아고야, 불평하면 안 되겠구나 싶더군요.
네. 당분간 열심히 잘 받아보려구요. 고맙습니다.^^

2019-09-07 0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9-07 14: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자리보존하는 병도 아닌데 이것 가지고 불평하면 안 되는 건데
인간인지라 불평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오늘 제 글 다시 읽어보니 좀 부끄러워졌습니다.ㅋ

2019-09-07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9-07 14:18   좋아요 0 | URL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어요. 그냥 그만그만 합니다.
제가 저런 글을 써 본 건 정보를 얻기 위함이기도 한데
그 병원이 유명하군요. 참고하겠습니다.
아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허리가 중요하다더군요.
자신도 다리가 아파 치료를 받았는데 의외로
허리가 안 좋으면 다리가 안 좋을 수 있다고 해서
나중에 허리 치료를 같이했더니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의사가 허리를 지목한만큼 저도 얼마 전부터 허리도 같이 받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마태우스 2019-09-07 16:51   좋아요 1 | URL
그럼요 허리는 중요하고요, 그래서 좋은 병원에 다녀야 합니다. 제가 다른 건 동네병원 가라고 하는데요.... 허리는 중요합니다!

syo 2019-09-07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원이란 정말이지..... 열라 가기 싫지만 안 갈 수도 없고, 열라 싫지만 믿을 데가 병원 말고 없고.....

stella.K 2019-09-07 15: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맞아!
근데 저의 불만은 의사가 너무 환자를 대충 대한다는 겁니다.
좀 열린 마음으로 어디가 불편한지 듣는 자세가 되야하는데
진지한 것 같지만 말을 편하게 못하겠더라구요.
사람의 느낌이란 게 있잖아요. 저 사람이 내 얘기를 잘 듣고 있구나, 아니구나하는.
그리고 환자 보단 고객대하는 듯하고, 좋아지고 있다고 하면 얼굴이 활짝 피고, 심각한 얘기하면 심각한 표정을 하면서 약 처방 얘기나 하고.
내가 묻고 내가 답하고. 그래놓고 진료비는 진료비대로 챙기고.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면담 시간은 고작 3분도 안 걸린답니다.ㅠ

cyrus 2019-09-0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을 먹거나 물리치료를 해도 계속 통증이 일어나는 환자들이 있을 거예요. 그게 유일한 최선책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완쾌되지도 않을 치료를 계속 받는 건 고역이에요. 비용도 아깝고요.

stella.K 2019-09-07 17:5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좀 불안이야. 이달까지 다녀보고 조만간 다른데를 알아 보던가
해야할 것 같은데 어딜 또 알아봐야할지 좀 막막하네.
그래도 오늘은 좀 낫다.ㅠ

페크pek0501 2019-09-09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르게 생각하면 스텔라 님이 건강에 신경 쓰고 살게 할 좋은 기회예요.
저도 소화불량 때문에 위 내시경 검사를 하게 되면서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거든요.
그래서 한 시간씩 걷기를 하게 되었고 무용도 배우게 되었어요.
만약 몸에 이상 증세가 없다면 건강에 자신이 있어서 운동을 안 했을 거예요.
그랬다면 걷기와 무용의 즐거움도 몰랐을 것이고 운동을 안 해서 나중에 더 큰 병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이왕이면 좋게 해석하시길...

빨리 회복되길 바랍니다.

stella.K 2019-09-09 19:53   좋아요 0 | URL
그렇긴 하죠. 맞아요.
그런데 하체 전반이 다 안 좋으니까 운동을 해도 좋은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대체로 걷기 운동이라도 하라고 그러는데
괜히 말 듣다 잘못되는 건 아닌가 걱정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살도 더 안 빠져요.ㅋㅋ
건강도 한번씩 바닥을 칠 때가 있잖아요. 이러다 또 좋아지는 때가 있겠지
편하게 생각하려구요.
그래도 건강한 사람 보면 부럽지 않을 수가 없어요.ㅠ
고맙습니다.^^

2019-09-11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1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9-11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추석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추석명절 보내세요.^^

stella.K 2019-09-11 19:41   좋아요 1 | URL
앗, 저는 늘 서니님 인사를 먼저 받는군요.
제가 먼저해야할텐데...ㅠ
아무튼 고맙습니다.
서니님도 행복한 추석되십시오.^^

북프리쿠키 2019-09-1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지보수 ! 힘내십쇼 ^^

stella.K 2019-09-14 14:23   좋아요 1 | URL
ㅎㅎ 네. 고맙습니다. 쿠키님도요.^^
 

김수용 감독의 <안개>를 보았다. 1967년 작이고, 한국의 알랑 들롱이라는 고 강신성일과 1200대 1이란 어마 무시한 경쟁을 뚫고 화려한 은막에 데뷔한 윤정희가 주인공을 맡았다. 오래된 필름인 만큼 이들의 리즈 시절을 볼 수가 있다. 특히 배우 윤정희는 문희와 남정임과 함께 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윤정희 배우를 보면 정말 미인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연기력은 그다지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그녀가 배우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출연한 작품이나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아직도 어색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공교롭게도 19금이다. 하지만 그다지 수위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두 장면 정도 정사 장면이 나오는데 직접 촬영이 아닌 간접 촬영이다. 놀라운 건 야한 장면을 연출하기 보단 정사할 때 둘이 흘리는 땀에 집중했다는 것.이것만으로도 정사씬의 효과는 충분 이상이었을 것이다.     

 

문득, 그때만 해도 여자의 정조 관념이 강해 감독이 여배우에게 조금만 노출 장면을 주문해도 영화를 찍네 마네,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란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과연 저런 정사 장면은 어떻게 찍었을까 싶기도 하다. 여배우의 노출 장면은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양산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아는데, 한간의 소문에 의하면 그 노출 장면에 대역을 썼다고도 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과연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영화는 소설가 김승옥의 유명한 소설 <무진기행>을 스크린에 옮긴 것으로 각색에도 직접 참여했다. 이 영화의 자료를 찾느라 검색을 해 봤는데, 영화 제목에 안개라는 단어가 들어간 작품이 의외로 꽤 많다는 걸 알고 좀 놀랐다. 하긴 영화에서 안개는 꽤 유용한 효과를 낼 것이다. 뭔가 신비하고, 이것과 저것의 명확한 구분을 할 수 없거나 지연시킬 때 안개만큼 유용한 도구도 없을 것이다. 특히 영화는 염세적이기도 하고, 약간의 미스터리적인 요소도 있는데 그럴 때 안개는 적절하게 잘 사용됐다. 그리고 그것을 작품에 활용할 생각을 했다는 건 당시론 좀 앞선 측면도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감독의 연출력이 뛰어나다. 저 시대에 저런 연출을 하다니 놀라울 정도다. 흑백이라는 점이 좀 아쉽기도 했는데, 현대에 일부러 흑백 필름을 사용하는 감독도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어색할 것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영화 중 남녀 주인공의 첫 데이트 때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그 유명한 정훈희의 <안개>를 부른다. 물론 립싱크겠지만) 반주를 제대로 넣어 노래를 부른다. 아마 그 장면에서만큼은 감독이 뮤지컬 기법을 살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금이야 별스러운 게 아닐지 모르지만 당시로는 쉽지 않은 작업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스토리는 새삼 진부해 보이기도 하다. 소설 <무진기행>은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라 지금도 문학도는 물론이고 일반 독자들에게 회자되는 작품이다. 나도 읽은 기억은 나는데 내용은 기억에 없다. 영화를 보니 남녀의 속물적인 심리를 대사에서 드러내기도 하는데, 처음엔 이 작품도 권위적인 남성주의 영화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영화의 흐름상 그건 좀 의도된 것 같다. 예를 들면 남자 주인공 집에 고용된 운전기사가 딸 쌍둥이를 낳았다며 은근 자랑을 하지만, 겸손의 의미긴 하지만 축하를 거절하는 장면이 나온다. 딸 쌍둥이를 낳은 걸 가지고 무슨 축하냐며. 주인공 역시 거절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요즘으로선 있을 법한 일은 아니다. 쌍둥이가 어디 흔한 일인가? 그걸 어떻게 별것 아닌 일인 양 하겠는가. 또한 남자 주인공의 친구 세무서장(이낙훈 분) 은 여자 주인공(윤정희 분)에게 마음이 있으면서도 출신 성분이 별 볼 일없으면서 까장을 떤다고 흉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을 가감 없이 다룬 것을 보면 당시의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뭔가 비판을 가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영화는 뻔하게 흘러가는 인생의 허무함과 나른함을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보여며 일탈의 욕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욕망을 채우는 것으로도 만족을 모르는 인간이 다시 무진을 떠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 보는 나의 입장에선 뭔가 석연치 않다. 그렇다면 여자란 뭐란 말인가. 남자는 잠깐의 휴가를 얻어 고향인 무진으로 돌아온 거고, 거기서 짧은 기간 동안 여자를 만나 욕정을 채우고 떠나지만 남자를 이용해 무진을 떠나고 싶어 했던 여자는 그대로 남겨진다. 과연 후에라도 남자에 의해 여자는 뜻을 이룰까? 그건 누가 봐도 부정적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여전히 남성주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긴 60년 대면 아직 우리나라에 여성 문제가 뭔지 제대로 논의되지도 않았던 때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와 원작은 다시 만들어지고 써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승옥은 남자의 관점에서 <무진기행>을 썼다면, 누군가는 여자의 관점에서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영화에서 고 강신성일이나 윤정희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작품 활동이나 이런저런 활동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왔지만, 영화에서 남자의 친구 역으로 나왔던 세무서장의 이낙훈 배우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가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그가 미국 H대 유학파라는 게 알려지고, 외모에서 풍기듯 선 굵은 연기를 하다가 어느 날 브라운관에서 사라진 배우다. 70년 대 한창 반공의 시대에 <추적>이란 반공 드라마를 기억한다. 남파된 간첩을 잡아내는 수사물로 거기서 그는 수사반장 역을 맡았다. 지금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M본부에서 <수사반장>이 한창 인기를 구가하고, K본부에선 나시찬이란 배우를 앞세워 <전우>란 드라마를 내보내고 있을 때, 아직 통폐합으로 사라지기 전 TBC에선 대항마로 이 드라마가 방영했을 것이다. 그 드라마 이후 난 TV에서 본 기억이 없고, 일찍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의 생몰연도가 1998년이다. 분명 이른 타계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생각 보단 길다. 타계할 때까지 작품 활동도 꽤 했다.  

                                           영화 <배덕자(1976년)>의 한 장면

 

그를 이 영화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다시 보니 많이 그립다. 배우는 꼭 잘 생긴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며 진정한 연기력으로 하는 것임을 몸소 보여줬던 배우는 아닌가 싶다. (또 그래서 상대적으로 잘 생긴 배우는 연기를 못한다는 속설이 있기도 했다. 요즘엔 별로 통하는 얘기도 아니지만.)   


오래된 유럽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한데 감독의 저력이 대단하다 싶다. 나중에 다시 한번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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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9-03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또 한편의 레전드 영화를 보셨군요.
이낙훈, 당연히 기억하지요.
나중에 이분이 외화 번역도 하셨다는 것을 알고 놀랐는데 해외유학파였군요.
<추적>이라는 반공드라마도 저는 생각나는데 전 수사반장을 더 좋아했지요 ㅋㅋ

stella.K 2019-09-03 14:51   좋아요 0 | URL
아, 번역할 수도 있었겠네요.
제가 듣기론 하버드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어려운 시절 하버드 유학파라면 대단한 거죠.
어려운 공부해서 왜 하필 배우를 할까 싶은데
옛날엔 딴따라라고 낮게 봤잖아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아무나 연기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영화 강추합니다.
옛날 배우들라 좀 뻣뻣하긴한데 연출력은 요즘 감독들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김수용 감독이 요즘 감독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