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월간 샘터가 올해를 끝으로 잠정 휴간에 들어간다고 한다. 1970년 4월에 창간해서 한때는 70만부(?)까지 찍어냈던 장수 월간진데 지금은 2만부 팔기도 쉽지 않아 그 같은 결정을 했다고 한다.

 

나야 워낙에 잡지를 잘 안 읽어 미처 사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가격도 싸서 웬만한 커피한 잔 가격 정돈데 휴간될 거라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든다. 그나마 폐간이 아니니 다행이랄까. 하지만 이렇게 휴간에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동안 이해인 수녀, 고 최인호 작가 등 많은 작가들이 샘터를 거쳐 간 것으로 아는데 지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응원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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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2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0-23 14:5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실제로 보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표지가 진짜 맘에 들더라구요.
저도 무심했어요. 이렇게 장수하는 잡지가 몇 안 될 텐데
평소 땐 관심도 없다 이런 소식 들으면 아쉬운지 모르겠어요.
속죄하는 마음으로 휴간에 들어가기 전에 사 봐야 할 것 같아요.ㅠ

니르바나 2019-10-23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월간 샘터를 20년 정기구독했던 사람으로 이건 참 아쉬운 소식입니다.
샘터가 70만 구독자가 있었던 시절은 장리욱박사, 피천득교수, 법정스님 등
가히 우리나라 최고의 필진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의 원고가
매달 가벼운 가격으로 독자들에게
짧은 글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던 때라고 생각됩니다.
잡지를 만들었던 샘터 편집실은 문필가의 산실이기도 했지요.
오증자, 정채봉, 정찬주 등 샘터 편집실 출신으로 작가, 기자, 교수직으로
자리를 옮긴 분들이 다 모인다면
샘터는 좋은 잡지이자 우리 문화계의 산실이기도 한 셈이죠.
이 자리를 만든 장본인은 물론 초대 발행인이었던 김재순 선생이시구요.
샘터가 휴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습니다.

잘 지내시죠.^^

stella.K 2019-10-23 15:15   좋아요 0 | URL
오, 20년 구독...?!
대단하시네요. 니르바나님 같은 분들 때문에라도 계속 나와야
할 텐데 이렇게 휴간이라니...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을까요?
얼마 전, 옛 문필가들의 수필 모음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좋더군요. 예전엔 시큰둥했는데.
어디 이런 수필 없나 기웃거려 보는데 샘터도 읽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몰라봤네요.

전 이상하게도 묘한 징크스가 있는 것 같아요.
좋아지면 없어져 버리는 거.
혹시 M 본부에서 했던 <문화사색>이란 프로를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걸 작년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 폐지됐어요.
햇수만으로 무려 15년을 했다는데. 그러더니 샘터도 그렇게된 셈이됐어요.
있을 때 잘 하라더니...ㅠ

고맙습니다. 니르바나님도 잘 지내시죠?^^

hnine 2019-10-23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사 보고서 많이 아쉬웠어요. 고3때 학력고사 보고 집에 칩거하면서 한권 두권 사모으기 시작하여 저또한 수십권 모아두었던 경험이 있거든요. 한강 작가가 그때 샘터 기자로 일했던 시절도 있었지요.
저 역시 폐간이 아니라 휴간이라고 해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습니다.

stella.K 2019-10-23 15:22   좋아요 0 | URL
와, 한강 작가가요...?
알고보면 샘터가 조그만 해도 저력있었네요.
모아두신 거 지금도 가지고 계신가요?
지금 나오고 있는 잡지들도 언제 폐간될지 모르니
좋아하는 잡지 잘 모아둬야 할 것 같아요.
h님의 식견이 부럽네요.

수이 2019-10-23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터 저도 정말 좋아했는데 아 가슴 아프네요. 휴간이어도.

stella.K 2019-10-23 15:23   좋아요 0 | URL
그래도 희망을 버리시면 안 되요 수연님.
이렇게 좋아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면 언제고
또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땐 저도 애독자가 되어보겠습니다.ㅠ

blanca 2019-10-2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아프네요. 저도 종종 사보다가 최근들어 잊고 있었어요...

stella.K 2019-10-23 15:43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e북으로는 옛날 것도 나오는 모양인데
종이책으론 세 권 정도는 확보할 수 있겠더군요.
저도 좀 사 봐야겠어요.
빠른 시길 내에 다시 나오길 기대해 봐야죠.ㅠ
 
하루키의 언어 - 더없이 꼼꼼하고 너무나 사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어 500
나카무라 구니오 지음, 도젠 히로코 엮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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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인터넷에서 발견하고 600페이지가 넘는 것을 보고 솔직히 좀 식겁했다. 어느 정도 도톰한 책을 선호하긴 하지만 6백 페이지는 좀 부담스럽다. 하지만 하루키의 많은 저작물을 생각할 때 6백 페이지는 결코 두꺼운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발췌독을 하게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웬걸, 막상 받고 보니 풋 웃음이 나왔다. 책 모양이 좀 특이한데, 손바닥만 한 단어 카드 묶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정말 "야레야레, 하루키."란 말이 절로 나온다. 여기서 야레야레란 "이런, 이런" 뜻이라고 한다. 


사실 난 하루키의 작품을 그리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한 번씩 하루키에 관한 책이 나오면 관심이 간다. 세상엔 저명한 작가들도 많고 그 작가의 저작물은 물론이고 그에 관한 책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하루키만큼 많이 나오는 작가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하루키 한 사람에 대한 부가가치는 생각보다 큰 것 같다. 오죽하면 이젠 하루키스트 또는 무라카미 주의자란 말이 있을까. 이만하면 (전에도 느끼긴 했지만) 그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도대체 하루키가 누구라고 글 깨나 쓰는 먹물들은 그에 관한 책을 쓰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일까. 이 책도 보라. 사전식으로 정리하긴 쉬운 일인가.


그런데 반해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막상 하루키 자신은 자신이 이룬 문학적 업적에 대해 덤덤한 자세를 견지한다. 그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특별한 표정이 없다. 웃는 얼굴도 없지만 찡그리는 것도 없다.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을 수 있을까? 그렇게 많은 책을 쓰고 번역을 했음에도 글쓰기가 천명인 양 흔들림이 없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다면 앓는 소리나 잰 척을 해도 누가 뭐랄 사람도 없을 텐데 그는 항상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난 그저 내가 할 일을 할 뿐인데 뭐가 문젠 가요 하는 식이다. 글쎄, (너무도 유명한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젊었던 어느 날 야구장에서 튀어 오르는 야구공을 보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날부터 글을 썼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 마음을 매일 골 천 번을 먹어도 끝내 어느 지점에서 절필하고 문단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작가도 수두룩 빽빽한데, 어떻게 하루키는 나이 70이 넘도록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그처럼 많은 사람들의 총애를 받는 작가가 될 수 있는지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는 야구공이 튀어 오르는 순간 우리가 모르는 번개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되기로 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 번개 말이다.


아무튼, 그런 하루키의 한결같음을 재수 없어하는 사람도 있는가 보다. 하지만 하루키가 그와 정반대의 사람이 되어도 똑같이 싫어하지 않을까? 또 누구는 하루키가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 건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 배어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앞서 말한 대로 그의 작품을 별로 즐겨하진 않지만 하루키 자체는 존경하는 쪽이다. 이 세대가 어떤 세대인가? 책을 정말 안 읽는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일본도 책을 안 읽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럼에도 하루키는 그것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꾸준히 글을 썼고 책을 냈다. 내가 그를 존경하는 건 그것이다. 그의 문학적 업적 때문도 아니고, 그가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기 때문도 아니다. 꾸준히 책을 낸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어떤 신인 작가 또는 작기 지망생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많은 책을 냈어도 그의 시작은 데뷔작 한 권에서 시작이 되었을 테니까.   


그는 이제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하나의 왕국을 건설했다. 그야말로 하루키 월드다. 거기에 하루키스트도, 무라카미 주의자도 있는 건 당연해 보인다. 우리는 일본의 모든 것을 싫어할 수 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하루키만큼은 싫아할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하루키만 추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역시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갖기까지 실상 미국 문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니까. 특히 스콧 피츠제럴드.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스트, 하루키언을 자처할 때 그는 피츠제럴드언이었다. 그는 미국 문학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미국 작가들의 작품만 번역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루키를 따라서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책을 보면 하루키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번역을 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그는 번역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하루키스트가 되려면 정말 바쁘겠구나 싶기도 하다. 영어도 잘하고, 번역의 기술도 배워야 할 테니. 뭐 그게 아니어도 하루키가 좋아한다는 미국 문학은 꿰뚫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에 관한 책들이 많기도 하지만 이렇게 사전식으로 일목요연하게 나오기는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개인적으론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저마다 온도차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키에 대해 웬만큼 아는 사람은 이 책이 뭐 대단한가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은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취약한 점도 없지 않다. 즉 내가 알고 이해한 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장편 같은 경우 이 사람이 그 사람 같고, 내가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 맞나 작가의 서사를 따라간다는 게 가끔 버거울 때가 있다. 물론 독자의 자유 중 오독의 자유도 있다지만 딴 데 가서 남의 다리 긁고 있는 것도 작가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그 책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어느 정도 알면 오독률을 줄여 볼 수도 있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읽은 척할 수도 있을 테니 이런 책 한 권쯤 옆에 끼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매 페이지마다 삽화가 그려져 있는데 그것도 꽤 즐길만하다.

 

참, 우리가 언제부턴가 자주 쓰는 '소확행'은 알고 봤더니 하루키가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글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 뜻으로 처음 쓰기 시작한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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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0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0-10 19:4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정말 작죠?
소설 싫어하는 사람은 하루키 정말 최악일 수도 있어요.
실제로 오래 전 저 아는 사람은 읽다가 머리에 쥐났다고 하더군요.
근데 전 이 책 정말 괜찮았어요.아무 생각없이 읽기만 하면 되니깐요.ㅋ
 

요즘 영화를 드문드문 보고 있어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의외로 몰입도가 좋다.

나 역시 IMF를 거쳐 왔지만 그것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것을 영화는 상당히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치 다큐멘터리 극영화를 보는 듯하다. 영화는 그 시절 매스컴은 IMF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지 편집해 보여주기도 하는데, 문득 그것을 보도한 당시의 공중파 앵커와 아나운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궁금하다.


                            

 

영화는 국가 부도의 날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한시현(김혜수 분)을 중심으로 어떻게든 국가의 부도를 막아 보려고 노력하는 부류다. 또 하나는 부도가 날 것을 예상하고 한몫 단단히 챙기는 즉 위기는 기회라는 걸 몸소 보여주는 윤정학(유아인 분). 그런 위기의 순간에도 어떻게든 성실하게 일하면 잘 살 수 있을 거란 막연한 희망을 품고 살다 희망에 배신당하는 갑수(허준호 분). 그런 국가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관료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재정국 차관(조우진 분)과 그에 편승하는 일파들. 그들은 그 시대가 그랬던 것만큼 한시현을 향해서도 여성 비하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갑수를 보면서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IMF가 있기 훨씬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내가 중학교 땐가, 전날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들어오셔서 다음 날 술병이 나서 출근을 못하셨다. 뭔가 일이 일어나도 크게 일어난 모양인데 어리다는 핑계로 차마 여쭤 보지 못했다. 하지만 가장의 무게, 조그만 사업체지만 대표로서의 무게가 얼마만 한 건지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았다. 갑수를 보면서 IMF 그 시절에도 살아계셨다면 똑같이 힘들어하셨겠지 짠한 마음이 들었다. 착하고 성실함만으로는 살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또한 서글펐다. 국민의 대다수가 갑수 같은 삶을 살지 않을까?         


하지만 반대로 갑수 같은 부류가 잘 살게 되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은 원래 자기네들이 목표한 것이 그것인 양 산다. 즉 남한테 피해 안 주고, 가장으로 가정을 건사 잘하고, 자녀들이 성장할 때까지 아프지 않고 잘 살아주는 것. 경제에 관해선 그다지 아는 바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시현이 보여주는 캐릭터도 나쁘지 않다. 어떻게든 최악의 사태는 막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정의의 사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번번이 관료적인 재정국 차관과 그 일파들과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똑똑하고 지혜로운 부류는 단연 아무도 믿지 않겠다던 윤정학이다. 경제라는 것, 자본이라는 건 언제나 그냥 있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든 여러 모양으로 그 모습을 바꾸는 도깨비 같은 것이다. 그것의 흐름을 알고 그것 위에 군림했을 때 엄청난 국가적 재앙에서 살아남았다.


국가 부도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IMF 구제 금융은 신청하지 않을 거라고 언론을 하나 같이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 같이 실천되었다. 언론과 정치를 믿으면 안 된다. 그래 놓고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국민의 저력이라며 한껏 띄워 주기도 한다. 물론 그건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겠지만, 왜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과 백성은 호구가 되어야 하는가. 뭐 그것까지도 좋다고 치자. 정치지도자들 눈에 우리는 개 돼지로 비치기까지 하지 않는가?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좀 화가 났다. 영화는 영화로 보는 게 좋은데 그때를 너무 리얼하게 다루고 있으니 그냥은 봐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가 보여주는 대로 관료주의자들에 대하여 분노만 하면 안 된다. 


나아가 어떻게 애국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렇게 나라가 어려울 때 금이나 털컥 내주는 것만으로 애국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애국은 좀 더 공동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관객들은 영화가 보여주는 네 부류의 사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다수가 윤정학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물론 나쁘지 않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윤정학 같은 사람이 된다면 관료주의자들만큼이나 위험하다. 이 세상엔 갑수 같은 사람이 훨씬 많고, 갑수의 삶이 꼭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근면 성실하게 사는 게 뭐가 잘못인가. 하지만 그들 역시도 등 따습고 배 부르면 나태해질지 모른다. 그리고 관료주의자들은 비로 이런 점을 들어 개 돼지라고 표현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저 네 부류의 사람은 역사적으로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항상 있어왔다. 그렇다면 그들은 상호 작용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사실 관료들도 정신만 차리면 나라에 큰 일을 할 사람들 아닌가? 


분명한 건 국가 운영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린 분명 지나간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보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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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 냉장고를 들여 놓느라 고생 좀 했다.

어제까지 쓴 냉장고는 거의 16,7년쯤 썼던 것 같다.

작년부터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한 걸 그래도 바꾸기가 뭐해 여태 쓰고 있었다.

전기 코드는 내가 뽑았는데 느낌이 좀 묘했다.

어떤 물건이든 오래 사람의 손을 타면 그 물건에도 영혼이 깃드는 걸까?

괜히 냉장고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 같아 괜시리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노후된 로봇도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내 따라든 생각은 아마도 울엄니가 직접 냉장고를 구매하는 것은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이 되겠지 싶었다.

살아오는 동안 엄마는 몇번의 냉장고를 바꾸었을까? 

엄마가 갓 결혼했을 때만해도 냉장고는 그렇게 흔한 물건이 아니었다. 너무 비싸서 혼수품목에도 들지 못했다. 정말 있는 집에서나 들여놓는 거의 귀중품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그러던 것이 TV만큼이나 두 대 이상 보유하는 시대로 바뀌었으니 엄마는 대여섯번쯤 냉장고를 바꾸었을 것이다.

엄마는 냉장고를 새롭게 들여놓고 그안의 물건들을 정리하느라 파김치가 되었다.

예전엔 새 냉장고 쓴다고 그저 신이났었겠지. 

수고했어 엄마. 그리고 구 냉장고 너도 수고했다.

요즘 냉장고는 성능이 좋아 20년은 너끈히 쓴다는데, 엄마도 그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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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9-10-01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물건에도 영혼, 마음이 있다고 일찍이 그것을 機心(기심)이라고 표현했던 분이 있습니다.
자동차나 세탁기도 다 한가지지요.
아끼고 닦아주고 정성껏 다루면 왜 오래 사용하지 않습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관심가지고 사랑하면 더 예뻐보이지요.
이번에 마련한 냉장고도 아주 오래도록 스텔라님 어머님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stella.K 2019-10-02 14:29   좋아요 0 | URL
아, 그걸 기심이라고 하는군요.
저도 그런 얘기 들어서 알고 있긴했는데...
수년 전 세타기 바꿀 때만해도 안 그랬는데
이번에 냉장고는 좀 다르던데요? 미안한 생각마저 들더군요.
다음 번엔 저나 집안 식구중 누군가가 사게 되겠지요.
요즘은 스러져 사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자꾸 생겨서
좀 서글프더라구요. 고압습니다.^^


syo 2019-10-02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사람의 인생과 그 생을 스쳐간 냉장고의 대수.... 뭔가 아련하고 서글프면서 따뜻하기도 한 복잡다단한 구도입니다...

stella.K 2019-10-02 14:3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글은 저렇게 썼지만 뭔가 단편 소설이나
장편 수필을 쓰고 싶은 걸 겨우 참았습니다.
스요님도 혹시 떠오르는 영감이 있으면 한번 쓰시죠.^^

cyrus 2019-10-0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우리 집에 있는 냉장고는 제가 초딩이었을 때 샀어요. 그거 쓴지 20년 넘었어요. 그런데 그 전에 있는 냉장고도 오래 썼어요. 부모님이 결혼했을 때 샀거든요. 몇 달 전에 미니 냉장고를 주문했어요. 부모님이 먹고 있는 건강보조식품을 보관하기 위해 샀어요. 오래 쓴 냉장고가 어머니라면 김치냉장고는 장남, 미니 냉장고는 차남이겠네요.. ㅎㅎㅎ

stella.K 2019-10-02 18:0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정말 딱 적절한 비유네.
그렇구나. 어떻게 그렇게 오래 썼냐?
아주 가끔 로또 맞을 확률로 그렇게 성능 오래 가는 게
나오는가 봐. 보통 수명이 15년 내외쯤으로 알고 있는데 말야.
이거 전 냉장고는 그쯤 썼던 것 같아.
막 물이 질금질금 나오더라고. 그러면 수명을 다한 거라고 해서
바꾼 건데 모터 소리만 안 났어도 몇년 더 쓰는 건데 좀 아깝더라구.

cyrus 2019-10-02 18:40   좋아요 1 | URL
네, 정말 운이 좋으면 가전제품을 오래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김치냉장고의 수명은 오래 못 가요. 2년 전에 김치냉장고를 교체한 적이 있어요. 교체하기 전의 김치냉장고 안에도 물이 생겼어요.

후애(厚愛) 2019-10-04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전제품은 수명이 다 하면 바꾸기가 그래요.
살아오면서 정이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머님과 스텔라님 항상 건강하시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함께 하시길 빕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시고 편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19-10-04 14:59   좋아요 0 | URL
그렇죠? 다른 것과 같지 않게 오래 두고 쓰는 물건이라 그런가 봐요.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9-10-04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전제품도, 가구도 우리의 삶과, 역사를 같이 하죠. 뭐 바꿀 때는 섭섭함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것 같아요.

stella.K 2019-10-04 14:5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영화 보기를 좋아하지만 가끔 우연히 본 영화가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이 영화가 그렇다. 한국전쟁이 있던 그해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다. 그동안 들어보긴 했지만 구체적으로는 몰랐다. 영화를 보면서 부끄러웠다. 우리나라에 이런 역사적 사건을 왜 난 여태 몰랐을까.


영화는 러닝타임이 비교적 짧다. 한 시간 반이 채 안 되는데 구성도 좋고 잘 만들었는데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난 6.25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때를 생각하면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고향을 버리고 다 피난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특히 남쪽 지방일수록 피난의 필요성은 별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설혹 피난을 염두했더라도 그전에 전쟁이 빨리 끝나 주길 바랐을 것이다. 또 그런 만큼 피난엔 시간차가 있었다.


전쟁이 나던 그해 7월만 해도 충청도의 노근리 마을은 정말 전쟁이 일어났나 싶게 평화로웠다. 어느 날 마을에 인민군이 쳐들어 올 것이니 주민들은 빨리 피난을 하라는 통고를 받는다.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은 피난길에 오르지만 피난을 도와주겠다던 미군은 노근리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마을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죽음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그때의 마을 사람들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묘사한다.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순박했는지, 얼마나 평화로웠는지, 정말 피난을 가야 하는지 가지 말아야 하는지 갈등하다 결국 다수의 뜻에 따라 너도 나도 피난을 떠나는 형국을 실감 나게 그린다. 언제나 그렇듯 그 가운데 반드시 대열에서 이탈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과연 그 가족들은 학살을 피해 살아남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대열에서 이탈했다고 해도 그들에게도 복불복의 상황은 마찬가지 아닐까.


그것을 보니 문득 영화 <타이타닉>이 생각나기도 했다. 침몰하는 배 속에서 우왕좌왕 살려고 바둥거리는 가운데서도 처절하게 살아남으려고 하느니 우아하게 죽겠다고 선실 자신의 방에서 평안히 두 손을 맞잡은 노부부 말이다. 물론 어차피 죽음을 맞이하지만 이렇게 사람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마음이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 그런 것처럼 그 피난 대열에서 이탈한 그 가족도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살면 다행이고 이탈한 대가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러라지 하는 마음. 그 장면은 아주 짧게 보여주고 지나가지만 저런 순간에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본다. 그때그때 달라요가 되지 않을까? 순간 살고자 원하면 나도 이리저리 뛰고 구를 테고, 사람이 살고 주는 건 전적인 하늘의 뜻이라면 끝까지 우아하려 하지 않을까.   


영화가 인상적인 건 양민학살도 학살이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순박한지, 이들의 일상이 얼마나 평온했는지를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를 듣는 청각적 효과와 함께 어느 국민(초등) 학교 어린이 합창에서 극대화시켰다는 것이다. 또 그와 대비되게 이들이 얼마나 살고자 했는지는 철길에서의 아수라장과 굴다리에서 스스로 미쳐가는 상황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해 가을 그렇게 한바탕 폭풍을 치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 싶게 하나둘씩 마을로 돌아오지만 역시 옛날의 그 풍경은 아니라는 것.


(내가 영화를 잘못 봐서일까) 영화는 이 양민학살이 왜 일어났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좀 얼떨떨했는데 찾아봤더니 미군이 북괴군이 잠입한 줄 오인하고 학살했다는 것이란다. 그럴 수도 있을까 싶다가도 좀 어처구니가 없다. 어떻게 양민을 북괴군으로 오인할 수 있단 말인가? 미군이 북괴군인지 양민인지 식별도 없이 작전을 펼쳤단 말인가? 이 영화가 아쉬운 건 마을 사람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에서 끝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나름 노근리 사건에 관심 끌기에 성공한 듯도 하지만, 그 후 이 사건을 두고 어떤 진상 규명과 재판 과정이 있었는지 자막으로만 간단히 보여주고 말아 궁금하다. 예상하긴 했지만 미군은 그 사건에 대해 함구했고 지금도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 과연 아직도 역사 속에 묻힌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가 얼마나 많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영화는 특별히 누가 주연이랄 것도 없이 출연 배우들 모두가 주연이라면 주연이고 조연이라면 다 조연이다. 그 밖에도 알만한 배우들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특별히 박광정 배우가 눈에 띄어 좀 놀랐다. 이미 고인이 된 줄로 아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했다. 그만큼 필름 상태가 좋았다. 알고 봤더니 상영 연도가 2010년이다. 그가 죽은 건 2009년이고. 그러니까 이 영화는 그의 마지막 유작이었다. 아까운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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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9-09-30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근리, 아주 오래 전 진보 언론들이 집중 조명했던 주제지요. 그게 영화로 나왔군요. 가슴아픈 비극이긴 한데, 그 어느 매체에서도 왜 그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던 것 같네요. 무슨 이유를 대긴 댔지만 납득하지 못헀던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인종차별이 없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stella.K 2019-10-01 20:25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그래도 오래 전 방송에서 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때 관심있게 보지 못한 게 후회되더군요.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암울한 게 많잖아요. 보면 막 화나고 그래서...
근데 제가 아주 잘못 보지는 않았네요.
영화를 보면서 내내 미군은 우리나라를 도와주러 왔다면서
왜 저렇게 무차별로 죽였을까 그랬거든요.
이 페이퍼에 넣진 못했지만 노근리를 다룬 책이 몇권있긴 하더군요.

그나저나 지난 주일 tv에서 뵙고 반가웠습니다.ㅎㅎ

2019-10-02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9-10-04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바이러스 매개체를 박멸하기 위해 그 지역의 돼지 전체를 도살하듯이, 암의 환부를 정상세포까지 폭넓게 잘라내듯이..
그 당시엔 누구나 노근리 주민이 될수 있었지 않았을까요.
반대로 압록강까지 연합군이 밀고 올라갔다가 38선까지 후퇴했을 때 북한지역에서도 엄청난 양민학살이 있었다합니다. 슬픈 일이네요.

stella.K 2019-10-04 16:10   좋아요 1 | URL
헉,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전혀 몰랐네요.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모르는 한국전쟁이 얼마나 많을까요?
우린 또 얼마나 피상적으로 한국전쟁을 알고 있으며...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