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란 책을 조금씩 읽고 있다. 읽다가 등장인물인 우치다가 이런 말을 한다. 


"먹고 자고 사는 곳이라고 한 것은 참 적절한 표현이야. 이들은 뗄 수 없는 한 단어로 생각해야 돼. 먹고 자는 것에 관심 없이 사는 곳만 만들겠다는 것은 그릇만 만들겠다는 얘기잖아? 그러니까 나는 부엌일을 안 하는 건축가 따위 신용하지 않아. 부엌일, 빨래, 청소를 하지 않는 건축가에게 적어도 내가 살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어."(106p)


우리나라의 건축가 특별히 집을 짓는 건축가들은 저 말에 얼마나 동의할지 모르겠다. 요즘의 건축가들은 동의할지 모르지만 예전엔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다. 예전엔 건축가들이 집을 짓는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건축가들을 집 장수 또는 미장이라고 낮춰 부르며 공간이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공간에 맞추는 구조였다. 부엌만 해도 요즘에 과연 저런 부엌이 있나 싶기도 한데 실제로 없지는 않은가 보다. 몇 년 전부터 시즌제로 방영되고 있는 <삼시 세 끼>라는 프로를 보면 찬장이나 부뚜막이 부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마당 한 귀퉁이에 나와있는 걸 볼 수가 있다. 비나 바람을 겨우 가리는 정도로 얼기설기 만들어져 있는데 딱 70년대 분위기 그대로다. 


어렸을 적 내가 기억하는 첫 집은 세를 줄 수 있게끔 지어졌다. 창문은 있으나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그래서 천정에도 창문을 냈지만 그것 역시 비나 한기를 막기 위해 슬레이트 지붕 쪼가리로 덥어 빛이 안 들어오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낮에도 겨우 형체나 알아보는 정도여서 불을 켜고 있어야 했다. 문간방 옆의 부엌은 말이 좋아 부엌이지 수도 시설도 없는 광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물론 불을 때는 아궁이는 있었다). 요즘 같으면 그런 집에 세 들어 살겠다고 올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은 우물이나 수도도 공동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 그게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탁기도 있는 사람이나 쓸 수 있는 시절이었으니까. 찬장 놓을 자리는 있으나 낮은 부뚜막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고 물도 맘대로 쓸 수 없으니 물 쓸 일은 모두 마당에 나와 해결해야 했다. 그래도 꼭 부엌에서 물을 써야 하는 일이 있다. 그럴 경우 셋방 아줌마는 양동이의 물을 한 가득 퍼 가져가 국이나 찌개를 끓이고 냄비에 밥을 안쳤다. 나중에 아줌마는 그 일이 너무 번거로웠는지 엄마에게 큰 항아리를 빌려 부엌 한쪽에 세워두고 거기에 물을 아구까지 채우고도 한 양동이의 물을 더 가져다 놓았다. 모르긴 해도 그 아줌마는 항아리에 물이 채워지면 배가 불렀을 것이고 줄어드는 것을 보면 아까워했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아줌마의 모습이 애잔했다.     


부엌도 부엌이지만 욕실과 화장실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지 싶다. 내가 자랐을 때만 해도 욕실이 생략된 집이 많았다. 친가나 외가댁은 물론이고, 내가 살던 집은 목욕탕이 있긴 했지만 안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지어져 있어 슬리퍼를 신고 가야 했고 그나마 추운 겨울엔 감기 걸릴 것을 걱정해서 부엌에서 씻은 적도 있다. 그렇게 부엌은 목욕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펄펄 끓는 물과 빨간 고무 대야 하나만 있으면 부엌에서의 목욕은 언제든 가능했다. 


그 옛날 변소는 왜 그리도 멀고 무서웠던지. 변소를 왜 변소라고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어렸을 적 나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나와 비슷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의 집에 처음으로 놀러 가서 약간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 아이의 집은 변소가 아닌 화장실에 양변기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 방광이 터져나가기 직전인데도 그 위에 앉아 일을 보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왜냐하면 안 써 봤기 때문이 아니라 써 봤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아버지를 따라 큰 고모댁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집 역시 양변기를 사용했다. 멋모르고 위에 앉아 일을 보다가 곤혹을 치렀다. 그때의 트라우마가 작동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어린이 변기 시트가 있다지만 그땐 그게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그 친구와 그 친구의 언니의 허락을 받고 그 집 부엌 수채 구멍에 일을 해결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이사를 했는데 그때까지 기와집을 벗어나 소위 말하는 양옥으로 이사를 했다. 얼마나 좋던지. 하지만 난 그때도 양변기에 대한 트라우마를 벗어버리지 못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양변기에 앉았다 일어났을 때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안도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내 몸이 자라 있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실내 한 공간에 부엌과 변소와 목욕탕이 함께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야 비로소 부엌은 주방으로 변소는 화장실이란 이름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집의 구조에서 부엌과 변소는 가장 홀대받던 공간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집은 무엇을 중심으로 발전했을까. 모르긴 해도 마루와 안방이 중심이 되었을 것이다. 한옥도 그렇고 기와집도 그렇고 마루는 마당과 턱이 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높이가 높으면 높을수록 신분의 높음을 나타내지 않았을까. 가장 큰 방을 안방이라고 했던 것도 대가족이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문화였으니 그랬겠지만 거기에 가부장이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거기에 여자를 배려한 주방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양옥의 시대를 맞으면서 부엌과 변소가 실내에 들어왔다는 것은 여자와 어린아이 심지어 노인을 배려한 획기적인 주거 시스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은 해가지면 전기도 아낄 겸 거실에 불을 켜놓는 것이 아니라 주방에 불을 켜놓았다. 그때 처음 쓰기 시작한 식탁은 밥만 먹는 곳이 아니라 언니나 오빠가 숙제나 시험공부를 했다.  


그러다 거의 14, 5년 만에 집을 아예 허물고 새롭게 지었다(물론 그안에 한 번 크게 수리를 한 적이 있긴 하다). 공교롭게도 그때 살던 동네가 개축 붐이 일어났는데 그 바람을 타고 우리 집도 그렇게 한 것이다. 그때 우리 집은 언덕 꼭대기에 있었는데 집을 새로 짓고 그전까지 우리가 얼마나 한심한 집에서 살았는지 처음 알았다. 처음 이사 올 때 그렇게 좋아라 했던 집이었는데 전혀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왜관에만 신경을 썼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주거 시스템이 발전 단계에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우선 마당을 대폭 줄인 게 좀 아쉽긴 했지만 대신 실내 공간은 그만큼 늘어났다. 안방과 거실은 넓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지만 주방을 넓힐 생각을 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예전의 화장실이 있던 자리에 배치를 했다. 그러면서 큰 창문을 두 개나 내었다. 그 창문을 통해 동네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좋은 날은 멀리 여의도 63 빌딩까지도 다 보였다. 그런 것을 예전에 화장실 자리로 삼았다니. 알다시피 어느 집도 화장실 창문을 크게 내는 경우는 없다. 대신 예전에 주방이 있던 자리에 화장실 겸 욕실을 만들었다. 화장실 창문 치고는 좀 크게. 또 그렇게 생각하니 예전 집 주방 창문도 그리 크지 않았던 게 생각이 났다. 통풍을 위해서라도 주방창문은 크게 내도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조그마하게 지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 집은 소위 말하는 집 장수가 지었는데 그렇게 훌륭한 주방을 짓고도 그는 집을 잘 지었느냐 못 지었느냐는 화장실을 어디다 지었느냐로 알 수 있는데 이 집은 좋은 위치에 지어졌다고 만족해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화장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에 그 집 장수의 말에 금방 수긍할 수 있지만 소설 속 우치다의 말과는 좀 차이가 있어 보이긴 하다.


집 설계에 아버지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집은 역시 살아 본 사람이 더 잘 아는 법이다. 더구나 이제 새로 지으면 또 언제 다시 짓게 될지 모르니 신중의 신중을 기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설계가 좋으면 뭐하겠는가. 여기저기 공사를 날림으로 해서 짓고도 하자 보수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도 주방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잘 지어서 한동안 우리 집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아버지는 설계 일을 했어도 잘하셨을 것 같다. 


요즘엔 우리나라도 주방에 꽤 공을 들이는 추세인 것 같다. 그래서 주방을 아예 제2의 거실이란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진 것 같은데 이게 과연 소설 속 우치다가 했던 말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TV를 보니 주방 한쪽 귀퉁이에 조그만 책상과 독서용 스탠드를 놓고 나름의 운치를 살렸는데 꽤 괜찮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묘하겠도 나는 그 옛날 셋방 아줌마가 부엌에 갔다 놓았던 물항아리와 오버랩이 되고 말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에게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뀡 대신 닭이라고 현실적으론 그게 불가능하니 주방에 그런 조그만 공간이라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이 낫겠지만 그래도 왠지 애잔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자가 있어야 할 곳이 여전히 주방 한쪽 귀퉁이라니. 원래 여자는 그렇게 애잔한 존재였던가.


다시 한번 우치다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보자. "... 그러니까 나는 부엌일을 안 하는 건축가 따위 신용하지 않아. 부엌일, 빨래, 청소를 하지 않는 건축가에게 적어도 내가 살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어." 뭔가 철학이 느껴지는 말이다. 나 역시 그 사람이 아무리 능력자고 잘난 사람이라도 일상을 잘 살지 않는 사람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제시간에 자고, 제시간에 밥을 먹고, 빨래며 청소를 미루지 않고 일정 정도의 청결을 유지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건축가에 빗대면 저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 또 집을 짓는 일은 당연히 그 안에 들어가 사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 공간을 이해하지 않고 서야 어떻게 집을 짓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치다의 말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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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9-11-25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 화장실이에요. ^^

stella.K 2019-11-25 19:28   좋아요 0 | URL
작가님은 서재 아니신가요?ㅎㅎ
남자들은 대체로 그런 것 같긴 하더라구요.
저의 돌아가신 아버지도 화장실을 오래 사용하곤 하셨죠.^^

cyrus 2019-11-25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2~93년에 공동 화장실이 있는 집에 살았어요. 그러니까 화장실이 집 밖에 있었고, 우리 집 옆집에 사는 사람도 사용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그 화장실이 변소인지 양변기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94년에 이사한 집의 화장실에 양변기가 있었어요. 화장실이라는 곳은 친숙하면서도 생각보다 무섭게 느껴지는 작은 규모의 장소라고 생각해요. 제가 예민해서 그런지 양변기 있는 화장실에 혼자 가는 것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stella.K 2019-11-25 20:54   좋아요 0 | URL
와,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나도 그 비슷한무렵 교회 청년부에서
봉사활동을 나갔는데 강남의 한 빈촌을 간 적이 있었어.
알지 모르지만 강남이 모두 잘 사는 건 아니거든.
빈부 격차가 심하지. 그곳 화장실이 공동으로 쓰는 데였지.
난 무서워서 한 번도 못 가봤어.
넌 양변기인데도 무서웠구나. 난 재래식 변소가 무서웠고
양변기는 싸이즈가 안 맞아서 물이 옆으로 세고 그랬거든.ㅎㅎ

빵굽는건축가 2019-11-25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밑줄그어가며 읽었던 책 이야기가 나오니 댓글 달지 않을 수 없네요
동료 건축가들에게 권해주는데 재미가 없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고
겨우 다 읽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저는 너무나도 설레이며 읽었던 책이에요
특히 책에 등장하는 요시무라준조 선생님의 작품들이 나온 오래전 책들을 몇 권 구입해서 볼 정도로 재미나게 보았던 책이에요 반가워요 ^^ 샘

stella.K 2019-11-25 21:06   좋아요 0 | URL
앗, 요시무라준조 선생의 책이 몇 권 있나요? 혹시 추천 좀...
솔직히 평이 좋아서 읽고 있긴 하는데 조금 지루하긴 하더라구요.
그래도 묘사라던가 문체가 정말 좋더군요.
글이 보통이 아니라 끝까지 읽어 보려구요.
이거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데 영화는 안 나오네요.^^

빵굽는건축가 2019-11-25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선생님 요시무라준조 선생의 책은 단행본은 찾기 어려워서 몇권의 잡지를 구입해서 보고있어요. ^^ 맞아요 문체랑 묘사가 좋아요. 제가 예전에 설계사무실 다니던 풍경이랑 그런 설렘이 있는 책이에요. ^^

니르바나 2019-11-25 2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정말 잘 쓰셨네요.
이를테면 스텔라님 어릴 때 그 시절 집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한편의 건축 문화사네요.
살펴보니 요즘도 이달의 리뷰, 페이퍼를 시상하던데
이번 달에는 스텔라님의 이 글이 뽑혀야 된다고 알라딘측에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이것저것 잔뜩 상품을 집어 넣은 글만 이달의 리뷰, 페이퍼로 시상할 게 아니라
바로 이런 글을 뽑아야 된다고 거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stella.K 2019-11-26 14:36   좋아요 0 | URL
아, 니르바나님 고맙습니다. 님의 칭찬을 받으니까 으쓱한데요?ㅎㅎ
그래도 뭐 알라딘이 작심하고 쓴 글은 대체로 주는 편 같더라구요.
이렇게 니르바나님이 칭찬하실 정도면 다음 달에도 무난히 받지 않을까요?ㅋ

이 책 좋더라구요. 니르바나님께도 어울리는 책은 아닐까 합니다.
고맙습니다.^^

빵굽는건축가 2019-12-05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읽어 보니 정말 연작같아요. ^^

그나저나 다행이네요. 저는 집에서청소 빨래 특히나 화장실청소 전문이에요. ^^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읽다 멈추었는데 다 읽어 보셨나봐요. ^^

stella.K 2019-12-05 15:20   좋아요 1 | URL
ㅎㅎ 아니어요. 전 버지니아 울프는 오래 전 도전했다가 실패했죠.
자기만의 방은 워낙에 유명해서...ㅠ

빵굽는건축가 2019-12-05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울프의 글을 읽다가 접어놓은지 1년이 되어가요. ^^
 
보도지침 걷는사람 희곡집 3
오세혁 지음 / 걷는사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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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여러 장르가 있지만 희곡은 내놓은 자식 같아 왠지 짠한 느낌이 든다. 일반 독자들도 소설이나 에세이, 시는 읽어도 희곡은 잘 안 읽지 않는가. 나도 한때는 연극  대본을 썼고 지금도 간간히 기회 있을 때마다 쓰고 있긴 하지만 희곡은 잘 읽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무리 TV 드라마와 영화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도 책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희곡은 공연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헤겔은 희곡은 시와 소설의 특성을 다 갖춘 변증법적 형식이라며 가장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유럽의 이렇다 할 작가들도 희곡을 쓰기도 하고, 독자들 역시 일상적으로 희곡을 즐겨 읽는다고 한다. 과연 그런 풍토가 우리나라엔 언제쯤이면 정착이 될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희곡집을 읽었다. 이 책은 저자의 두 번째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연극 연출도 겸하고 있는데 첫 번째 책이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고, 두 번째 책은 그로부터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작가로서는 엄청 게으른 작가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공연을 해야 하는 연출가의 입장이라면 꼭 게으르다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자신의 작품이 공연이 되든 안 되든 꾸준히 쓰는 노력을 한다면 독자들도 언젠간 희곡을 공연용이 아닌 문학의 한 장르로 인식하고 읽게 되지 않을까? 아님 우리나라의 지명도 있는 작가들도 영역을 넓힌다는 의미에서 가끔 희곡도 써 주시던가. 시와 소설의 특성을 함께 두루 갖춘 분야가 희곡이라지 않는가. 보통 우리나라에 알려진 소설가들 그들의 시작은 시였다가 소설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젠 그러지 말고 희곡을 경유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가 필력이 있어 보인다. 수록작 모두 수준 있어 보이는데 그중 나는 '괴벨스 극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괴벨스는 알다시피 히틀러가 총애하던 인물이었고, 극은 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히틀러의 눈에 띄어 나치 시대를 열어 나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선동가로서 문학 및 예술을 사랑했고 그것을 교묘히 나치 선동에 이용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장애자였고 삐뚤어진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알고 보면 그 자신 스스로가 그랬다기 보단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괴벨스란 인물을 작품 속에서 살려내면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 엮는 솜씨가 제법 근사하다. 작가의 이런 풍자와 비판은 다른 여타의 작품에서도 보이고 있는데 희곡의 장점은 바로 이런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이런 파편화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에서 예술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기도 한데 과연 예술가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 한 번 작가의 작품을 귀로 들어봤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맨 마지막 수록작 '분장실 청소'는 연극의 마지막 공연과 함께 철거될 분장실에서의 철거반원과 배우, 가수의 처남 등이 펼치는 일종의 콩트 같은 느낌이기도 한데, 재치도 있으면서 웃픈 연극이기도 하다.      

      

앞서 희곡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요즘은 희곡집들이 꽤 괜찮은 판형으로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일반 독자들도 시야를 넓혀 희곡도 즐겨 읽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추천할만하다.  

 

햄릿이 연극에 대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잊지 말게. 연극은 인간의 영혼을 빛추는 거울이어야 하네.‘ 뭔 뜻인지 알아? 연극을 하기 전에 인간이 되란 소리야.너희들은 연극 하려면 멀었어. 왜냐? 인간이 덜 되었거든. 내가 너희를 배우가 되기 전에 인간으로 만들어 주겠다. - P20

생각하면서 살지 마라. 살면서 생각해라. 시대는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뀐다. 그때마다 시대의 부끄러움도 달라진다. 그때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라. 그럼 너는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다. 이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는 파릇파릇한 놈아. - P23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여. 환난의 파도를 이 손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죽는다는 것은 잠든다는 것 잠든다는 것은 꿈꾼다는 것. 내게 꿈꿀 권리가 없다면 세상의 비난과 조소를 어찌 견뎌낼 수 있을까. 폭군의 횡포, 세도가의 모욕, 사랑의 고통, 무성의한 재판, 관리들의 오만, 세상 곳곳 악취를 풍기며 썩어들어가는 부패, 이 더러운 똥통 같은 세상을 어찌 참아낼 수 있을 쏘냐. 한 자루의 단도면 깨끗이 청산할 수 있을 것을.

주혁들, 박수

이게 바로 독백이야. 마음의 말이지. 일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말이지. 마음속에 흐르는 생각을 혼자만의 시공간에서 말하는 것이 독백이다. 연극이 위대한 이유는 독백이 있기 때문이야. 일상에서는 한 사람이 긴 시간 동안 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말을 하지. - P29

인간이란 존재는 그런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과 살아가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과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굴 싫어하거나 경멸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를 냉담하게 만들었으며, 우리의 영리함은 우리를 차갑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생각은 많이 하면서, 느끼는 건 정말 짧습니다. 우리는 기계보다는 인간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영리함 보다는 친절함과 상냥함이 필요합니다. 이것들이 없다면, 인생은 폭력이 될 것이며, 우리 모두 헛되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미워하지 마십시오. 사랑받지 못한 미움일뿐이고, 자연스럽지 못한 증오일뿐입니다.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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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1-13 14:42   좋아요 0 | URL
그래도 셰익스피어 정도는 읽으시지 않으셨을까요?
기회되시면 함 읽어 보세요. 시나 소설과는 또다른 맛이 있어요.^^

페크pek0501 2019-11-1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곡 읽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예전에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다 읽었지만 소설에 비해 스피드를 내어 읽을 수 없었죠.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름까지 기억해 가며 읽는 게 부담스러워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희곡 <관객 모독>을 사지 않고 그의 소설로만 두 권을 샀어요.

좋은 희곡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읽어 보겠습니다.

stella.K 2019-11-14 14:27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솔직히 셰익스피어 좀 어려워요. 그런데 왜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고는 희곡을 논할 수 없는 것처럼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래서도 희곡을 가까이 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희곡은 많이 못 읽어서 감히 추천할 수 있는 수준은 못되구요,
얼마전에 읽은 범우사에서 나온 희곡 안중근도 괜찮고, <현대 명작 단만극 선집>이란 책도 꽤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나혜석의 생애를 다룬 희곡집으로 나온 게 있어 찜해 둔 적이 있는데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1. 아무튼, 난 멜로가 체질이 아니다.  

 

<멜로가 체질>이란 드라마를 재미있다고 해서 봤다. 영화 감독이 TV드라마를 만들었다는 것도 그렇고(감독 데뷔 전 '써니', '과속스캔들'등을 썼다고 한다) 기대가 돼 봤다. 결국 난 7회까지 보고 말았다. 뭐 이제까지 봤던 멜로 드라마와 확실히 차이는 있다만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배우가 연기를 해야지 개그를 하면 쓰나 싶다. 그렇지 않아도 개그 프로그램 보면 개그맨들은 뭐 하나를 빼놔야 개그를 하지 정상적인 사고로 저런 개그가 나오나 차라리 이해가 가는데,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작정하고 덤벼드니 보면 볼수록 뭔가 질리는 느낌이다. 상황을 만들고 상황에 맞는 대사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도 그렇지만 난 이상하게도 멜로가 맞지 않는다.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기 전 갈등 은 봐줄만 한데 그러다 사랑에 빠지면 그때부터 급격히 재미가 없어진다.

 

대신 <동백꽃 필무렵>을 보고 있는데 이거 완전 내 스타일이다. 공효진도 공효진이지만 강하늘을 열렬히 좋아한다. 무엇보다 대본을 잘 썼다. 충청도 사투리를 정말 잘 살렸는데 무대뽀 사랑을 표현하는데 충청도 사투리만큼 찰진 게 또 있을까 싶다. 혹시 대본집으로 나온다면 사 두고 싶을 정도다. 

 

 2. 역사적 견해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를 챙겨 보고 있다. 지난 번에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다뤘는데 거기 나온 설민석과 장강명이 중요한 얘기를 한다. 독일은 나치의 역사에 대해 두고 두고 반성과 사죄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일본에게 사죄를 받지 못하느냐에 대해 설민석은 국운을 들었는데, 일본이 패망을 하고 조선에서 물러가면 전범을 잡아 들이는 건 물론이고 모든 체계를 다 없애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일을 미국이 해야하는데 그때 하필 미국은 소련과 싸워야 하는데 일본의 힘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러질 못했고 그것이 우린 아직도 정당한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아베의 외할아버지를 비롯해 아직도 일본 내 극우 세력이 판을 치는 거라고.

 

이어 장강명은 독일이 그렇게 두고두고 사과할 수 있었던 건 나치 시대에 독일의 괴롭힘을 당했던 나라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하나같이 국력을 키워 잘 살게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의 침략을 당했던 필리핀 등 동아시아의 나라는 일본 보다 잘 살지 못하니 사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둘 다 그럴 듯한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일본이 과거사에 사죄하는 날이 온다면 우리나라가 그 첫번째가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이제 일본의 적수가 될만하니 말이다. 

 

3. 도대체 할 수 있는데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지인이 최근 친정 부모와 합쳤다고 한다. 부모님이 다 치매라서. 어머니가 조금 심하시고, 그나마 아버지는 경증이다. 그동안 바쁜 중에도 일주일에 한 두 차례씩 친정을 가곤했는데 힘에 부치기도하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 합칠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런데 그게 왜 그리 짠하던지. 자식이 부모 모시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때문에 더 힘들어질 거라는 것을 아니 무작정 잘한 일이라고 박수를 쳐줄 수가 없었다.   

 

"그냥 저 할 수 있는데까지만 하려구요. 나중에 요양원에 모시더라도 어떻게 처음부터 요양원에 모셔다 놓을 수가 있겠어요." 한다.그렇게 말한 게 지난 추석 하루 전날이었다. 부모님 모시기 준비 중 내 생각이 나 전화한다며. 그녀 역시도 몸이 그렇게 건강한 편은 아닌데 말이 좋아 할 수 있는데까지지 어디까지가 할 수 있는데까지며 그러다 골로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다 바로 얼마 전 이번엔 내가 먼저 연락을 해 봤다. 워낙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 그나마 주일이 연락하기가 낫지 싶어 했는데 역시 쉽지는 않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한숨부터 쉬는데 상황이 어느 정돈지 알 것도 같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다잡고 또 잡았을까. 부모님을 모셔 놓으니 일가친척들이 한번씩 머리를 디미는데 오시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죽을 맛이란다. 그렇게 대화 좀 이어갈까 싶었는데 어머니 목욕시켜 드려야 한다며 중간에 전화를 급히 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년이면 두 세 차례는 만났는데 전화를 끊을무렵 내가 우리 언제 만나요 하며 푸념했는데 그게 그녀에겐 배부른 투정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4. 수렁에서 건져낸 내 친구? 

 

얼마 전, 갑자기 폰이 울려 또 스팸 전화겠지 했는데(언제부턴가 스팸 아니면 전화 올 때가 거의 없어졌다) 사이판에 서는 친구다. 어찌나 반갑던지. 전화 안 한지가 거의 3년쯤 된 것 같다. 사이판에 산지가 20년 가까이 되고, 그동안 2년에 한번씩은 서울에 왔던 것 같다. 나올 때마다 만나곤 했는데 이쯤되면 이 친구와도 멀어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마지막 통화했을 때 사이판에 강력한 태풍으로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하고 아직도 복구가 안 되고 있다고 했다. 그 나라가 자기네 나라에 사는 외국인들에게까지 도움을 줄 형편이 못 되는지라 그런 난리가 나면 사는 게 말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못 들은 척 할 수도 없고 새발의 피도 안되는 돈을 위로차 보내 줬었다.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받았으면 받았다고 연락이라도 할 텐데 그런 것도 없고, 내가 이 친구에게 뭐 잘못한 것이 있나 찜찜해 하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 그동안 지난 번에 델 것도 아닌 강력한 태풍이 몰려와 그야말로 건질 것도 없이 알거지가 될 지경이었단다. 그나마 조금 나아져서 이제야 전화하는 거라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화고 통신이고 제대로 하지도 못 했단다. 문득 이상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 같으면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한번쯤 나올 법도 할텐데 그동안 그런 뉴스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못 들은 걸까. 

 

마지막 통화를 할 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하고 있느냐고 했더니 하지 않고 남편이 동업으로 일을 해 그 일을 함께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조만간 그만두고 살림만 할 거라며 이제 일이라면 신물이 난다고 했다. 왜 안 그럴까.

 

앞서 말한 지인도 그 친구의 경우도 그렇고 중년에 빈 둥지 증후군도 있다는데 과연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자식 뒷바라지 끝났다 싶으니 아픈 부모를 모셔야 하고, 그게 끝나면 자신이 아프겠지. 이게 또 사람의 인생이란 생각을 하니 새삼 허무한 생각이 든다.

 

5. 고종의 길

 

<고종의 길>이란 연극을 봤다. 명성황후 시혜 전후 상황과 고종의 아관파천, 대한제국이란 국호를 정하기까지 과정을 보여준다. 결코 즐겁게 볼 수 있는 연극은 아니었다. 설명이 약간 과하다 싶지만 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연기 몰입도가 꽤 높다. 처음 보는 배운데 고뇌하는 고종을 제법 실감나게 잘 표현했다. 끝나고 마음이 무거워 한동안 자리에 멍하니 않아 있었다(물론 관객들 빠져나가길 기다린 것도 있긴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꽤 성공한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부인과 아버지 사이에서 방황해야 했고, 급기야 아내가 일본의 낭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 당하는 것도 부족해 시신이 불태워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걸 보고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할 생각을 했다는 건 새삼 대단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고종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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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2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11-12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댓을 남기고 나니 공개 댓글도 남기고 싶어지네요. 오랜만에 댓글 남깁니다. 반갑게...
잘 지내시죠?
저도 잘 지냅니다.

<동백꽃 필무렵>을 봐야겠군요. 채널 돌리다 제목은 많이 봤어요.

stella.K 2019-11-12 15:02   좋아요 0 | URL
<동백꽃 필 무렵> 꼭 보세요.
그거 보고 있으면 어쩐지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나요.ㅎㅎ
여기 쓰진 않았지만 혹시 웃음이 필요하시면 <천리마 마트>도 보세요.
처음엔 별로 기대 안하고 봤는데 의외로 괜찮고
몇 회까지 할지 모르지만 한 회 한 회 종반을 향해 간다고 생각하니
꽤 아쉽더라구요. 그럴만큼 재밌고 좋아요.ㅋㅋ

레삭매냐 2019-11-13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 저도 해당 프로그램을 보면서 제가
읽었던 아이히만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래도 대중 프로그램이다 보니 좀 더
깊이 있는 접근이 아쉽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입해서 풀어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말이죠.

stella.K 2019-11-13 15:57   좋아요 0 | URL
ㅎㅎ 좀 그렇긴 하죠?
어차피 TV는 그냥 바람잡이 역할 정도 밖에는 안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그래도 관심은 가더군요.
그런데 요즘엔 그것도 전 왠지 편하게 보이진 않더군요.
마치 저들만이 똑똑하고 의식있는 양 하는 것 같아서.
전 왜 이렇게 삐딱한지 모르겠습니다.ㅎㅎ
 
북성로의 밤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지리에 관해서는 그다지 밝은 편이 아니어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대구에 북성로가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대구의 4성으로 그러니까,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가 있고 그것은 100여 년 전만 해도 대구 성의 성벽이었다고 한다. 이 대구 성은 조선이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임진왜란 2년 전인 1590년 흙으로 처음 축조되었고, 1736년에 돌로 성을 다시 쌓았다고 한다. 그 후 흥선대원군에 의해 1870년에 거의 재축성에 가까울 정도로 대대적인 보수를 하지만 30여 년 뒤엔 일본 상인들이 이를 허물고 4성로를 건설해 그 도로를 따라 점포를 세웠다고 한다. 그중 대표적인 기업이 나카에 도미주로 형제가 북성로에 설립한 미나카이 백화점이고, 소설은 바로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1940년 대,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기 바로 몇 년 전을 그리고 있다. 그때 미나카이 백화점은 대구의 랜드마크였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요즘의 백화점과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돈데 1940년 대에 정말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또는 스카이라운지가 있었을까, 이건 작가의 상상에 의한 은 아닌지 좀 의아스러웠다. 그런 것을 제외하면 소설은 일제 강점기 말을 상당히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 만큼 소설은 미나카이 백화점은 화려함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에 사는 일본 사람들, 친일파 조선인들, 하다못해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조차 어떻게 허물어져 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사실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의 압제와 독립을 향한 의지 이 두 관점에만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친일과 반일, 매국과 독립 뭐 이런 프레임으로만 보려고 하는 시각이 있었다. 나 개인적으론 이런 관점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줬던 건 <경계에 선 여인들>이란 책이었다. 물론 그것은 일제 강점기를 주제로 한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20세기 초중반의 동아시아 여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연구한 책이다. 거기에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의 여성에 대한 보고서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놀라운 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온 일본 여성들이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았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나에게 새로운 시야에 눈을 뜨게 만든다. 왜 나는 지배국의 국민들은 무조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적어도 난 그들이 행복했을지 불행했을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이 소설도 보면 미나카이 백화점의 사장 나카에의 딸 아나코 역시 외형적으론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산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다. 그녀는 오히려 같은 일본인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그렇다면 소설은 중립적이라 할 수 있다. 노태영이 친일 경찰이 되는데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가 나름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또한 미나카이 백화점 설립자 나카에 역시 조선인에 대한 지극히 혐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밑바닥엔 자신의 나라 역시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겐 오로지 백화점밖엔 없다. 결국 그는 백화점을 구하기 위해 조선인 정주에게 넘기기도 한다. 태영의 동생 치영은 어떤가. 독립운동을 하니 등장인물 중 가장 멋있는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인 태영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흔들림이 없이 가장 안정적이고 성실한 인물은 노정주다. 그는 백화점도 인수받았겠다 아나코와의 사랑을 이룰 수도 있었지만 끝내 포기하고 만다.


그뿐인가, 작가는 해방 이후 당시의 조선인들이 어떤 식으로 일본인들에게 보복을 했는가도 가감 없이 기술하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읽는 이에 따라 다소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설이란 비록 허구라고는 하나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역사가 진실을 말하는 학문 같아도 그렇지 않고 오히려 편파적일 때가 있다. 그래서 사관이란 말을 써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본다. 역사는 사관일 뿐이다. 그러나 소설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 실존에 대해 말해야 한다. 나는 그런 점에서 작가가 충실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글이 안정적이고 나름 사유적이기도 하다.


그것을 통해 작가는 독자를 그 시대에 대해 애정과 통찰을 갖고 보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린 등장인물을 이해할 수 있다. 읽다 보면 결국 남는 건 국가란 무엇이냐란 생각에 머문다.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힘없는 나라의 국민은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나라면 아무리 조선을 만만히 보더라도 제 나라 백성을 조선으로 이주시키는 일은 안 할 것 같다. 물론 그때는 조선이 일본의 속국으로 영원히 그렇게 살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란 나라는 그 이전이나 그 이후나 그렇게 만만히 볼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설혹 만만히 보더라도 자신의 나라가 패망을 했다면 조선에 사는 자기네 나라 국민들을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물론 그것까지는 소설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나카에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를 볼 때 있는 나라가 부러울 때가 많다. 국민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국가 존립의 이유다. 그래야 문화와 역사가 이어질 수가 있고 세계 어디를 가도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다. 과연 그 참혹했던 시절을 생각할 때 국가 지도자들은 과연 그 일을 충실히 해 나가고 있는 것일까 묻고 또 묻고 싶다.

 

구한말 또는 개화기에 관심이 많다면 추천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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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7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1-08 14:21   좋아요 0 | URL
앜, 그러시군요. 저도 서울 살아도 가 본데 보단 안 가 본데가
더 많으니 어쩌면 좋을까 싶습니다.ㅠ
저도 궁금하긴 하더라구요. 대구 어디에 그 백화점이 있을까?
지금도 있나 아니면 다른 뭐가 들어섰나?
혹시 언제고 북성로 가실 일 있으시면 사진 한 번 올려 주시죠.^^

수이 2019-11-07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화기때 꽤 임팩트 강한 인생을 살았던 거 같아요, 추천해주신 책 읽어볼게요 :)

stella.K 2019-11-08 14:32   좋아요 0 | URL
앗, 수연님의 개화기...? 궁금한데요?^^
이 책 꽤 오래 얻어와 놓고 이제야 읽었습니다.
작가의 책이 몇 권 더 있더군요.
차분하게 글을 잘 썼더라구요. 기회되면 두어권 더 읽고 싶어요.
최근엔 책을 안 내는 것 같은데 아쉽더군요.
꾸준히 내면 좋을 것 같은데...

카알벨루치 2019-11-08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학창시절에 대구의 중심은 동성로였더랬는데 지금은 많이 변한듯 합니다 내가 살았던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질감을 느끼는 느낌입니다 북성로를 중심으로 소설이 있군요...

stella.K 2019-11-08 14:32   좋아요 1 | URL
앗, 카알님 대구였던가요? 이런...
그동안 알라딘 마을의 대구출신 3 스타 하면 유레카님과 스요님, 시루스로만
기억했는데 이제 그러면 안 되겠는데요? 4 스타로 카알님을 등극시켜
드려야겠어요.ㅎㅎㅎ
옛날에 자신이 자란 동네를 잊지 못하죠. 그래서 그런지 떠나 온 동네를
선뜻 다시 못 가겠더라구요. 너무 많이 변해있을까 봐.ㅠ

카알벨루치 2019-11-09 14:32   좋아요 1 | URL
저 빼고 북프리쿠키님 넣어서 4스타입미다 ㅎㅎㅎㅎ

북프리쿠키 2019-11-0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 오시면 북성로 우동에 연탄불고기 사드리께요 ㅋ

stella.K 2019-11-09 15:2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쿠키님,카일님 스타 아니시라고 하는데
그러고보니 쿠키님까지 5星이어요.ㅋㅋㅋㅋ

그런데 쿠키님은 북성로를 잘 알고 계시는군요.
거기에 정말 미나카이 백화점이 있었나요?
지금은 다른 게 들어섰을 것 같은데 자리가 어땠는지 궁금해요.
아, 우동에 연탄 불고기라. 5星이 함께 모이는 날 있으면
그날 한 번 뵙죠. 제 닉넴도 별과 아주 상관이 없지는 않으니.ㅋㅋ
 

1.  혹시 집에서 무슨 소리 나지 않나요?


며칠 전 책 박스를 들어냈다. 젊은 날 발품 팔아 모은 책들이었다. 그땐 지금같이 인터넷으로 책을 사던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꼭 발품을 팔아야 했다. IMF가 나고 살던 집을 전세로 돌리고 2년쯤 더 산 뒤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 4백 권쯤 되는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안 하고 라면 박스 몇 개 인지도 모를 박스에 담아 이사를 왔을 땐 그것을 풀게 될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가 거실에 붙박이용 수납장이 있으니 거기에 꽂아두면 된다고 했으니까.


엄마가 말한 붙박이용 수납장은 그리 큰 것도 아니어서 반도 못 들어 가게 생겼다. 설령 꽂는다고 해도 그럼 잡동사니 물건들은 어디에 둔단 말인가. 모르긴 해도 엄마는 내가 그 책 박스를 풀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또 푼다고 해도 언젠간 엄마는 읽지도 않을 책을 뭐하러 꽂아 두냐며 시마다 때마다 나를 괴롭게 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결국 알아서 하란 뜻으로 알고 이사 오던 당일 방구석에 박스채 쌓아 두었고 20년 동안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동안 난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여전히 좋아하는 책을 사서 그 박스 위에 몇 겹으로 책탑을 쌓았다. 그것도 부족해 방 여기저기 빈 공간만 있으면 역시 책탑을 쌓았다.  


물론 그동안 쌓아두기만 했던 건 아니다. 더러 안 보는 책은 사이판에 사는 친구에게도 보내기도 했고, 주민센터 도서관에도 기증하고, 또 중고샵에 팔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그 사이 엄마는 안 보는 책은 더러 버리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난 그때마다 엄마에게도 취미생활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취미생활이 있는 거라며 맞서기도 했고, 때로는 완곡하게 안 보는 책은 그런 식으로 해결한다며 엄마의 말문을 막곤 했다. 그래도 표가 나지 않으니 중요한 건 바로 이사할 때 데리고 온 책 박스를 해결하는 것이다.


엄마는 쌓아 논 책 박스 때문에 방바닥이 주저앉을 거라고 했다. 처음엔 책 박스를 해결하지 않으니 엄마가 수를 쓴다고 생각했다. 집이 얼마나 허술하게 지으면 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방바닥이 주저 않는단 말인가. 난 그야말로 머리털 나고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본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엄마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는 지인은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에 보면 실제로 그런 일이 있긴 있더란다. 책을 하도 많이 모아 방구들이 주저앉았다는 것이다. 순간 난 아찔하다 못해 현기증이 났다. 엄마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내가 짐짓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 지인은 아차 싶었는지 옛날 일본식 집들은 목조 건물이 많지 않냐며 지금은 철근으로 지으니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우리 집도 오래전에 지어진 집이고 보면 아무리 철근으로 지어졌다고는 그러지 말란 법도 없겠다 싶었다. 더구나 오래전부터 집에선 소리가 나고 있었다. 사람의 몸도 오래 쓰면 여기저기서 뚝뚝 소리가 나는 것처럼 집도 그런 것일 텐데 점점 뭔가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휘고 기우니까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엄마 말대로 저놈의 책 박스를 들어내 집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할 필요가 있을 것도 같았다. 더구나 단독주택이 아니고 공동주택이고 보면 안전에 서로서로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된다.



2. 첫인상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그렇게 마음먹어도 책 박스를 드러내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마음만 먹었다뿐 실행하기는 족히 2, 3년은 걸렸던 것 같다. 책이 아까운 건 고사하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책이야 요즘 새롭게 나온 책이 더 좋지 옛날 헌책이 더 좋겠는가. 그럼에도 몸 쓰는 일엔 그다지 재지 못한 나는 엄마의 방구들 내려앉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현기증을 감수할망정 행동으로는 차마 옮기지 못하겠다. 그래도 올봄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 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이번엔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올해 들어 몸 여기저기가 안 좋아졌고, 급기야 여름이 시작되면서 병원을 다니느라 책 박스를 치운다는 건 물 건너갔다. 하다못해 가끔씩 중고샵 나가는 것도 지난봄 이후 아예 전폐하다시피 했는데 무슨 수로 책 박스를 치운단 말인가. 그래도 열심히 병원을 다닌 덕분에 지금은 많이 낫다.


그렇게 몸이 나아지니 그동안 미뤄뒀던 책 박스 치우는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언제 전화를 하면 좋을까? 이번 주냐, 다음 주냐 하다가 결국 더 이상 앞뒤 재지 않고 헌책방 한 곳의 연락처를 알아 내 불쑥 전화를 해 버렸다. 책방 아저씨는 내일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오겠다고 했다. 그 시간이라면 나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자꾸 몇 박스냐고 묻는 것이 내키지 않는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온다고 해 놓고 안 오는 건 아닐까 좀 불안하긴 했지만 그냥 믿어보기로 했다. 


아저씨가 오는 시간에 맞춘다면 난 10시 반 정도부터 책탑을 해체하는 작업에 들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아저씨가 책 박스를 들어낼 테니. 중고샵에 팔거나 주민센터에 기증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오래된 책을 받아 줄리 없을 것 같고 그냥 헌책방에 헐값에라도 넘기는 것이 낫다. 나는 쌓아 논 책들 중에도 다시 안 볼 책을 추려 책 박스 나갈 때 딸려 보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을 했는데 순간 아찔했다. 내가 일을 너무 쉽게 본 것 같았다. 난 그저 아저씨가 책 박스를 가지고 나가기 편하게 길을 터주면 된다고 생각했고 쌓아 논 책이 얼마 안 되는 줄 알았다. 뭐든 일을 할 땐 쉽게 생각해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쉬운 일도 평생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웬걸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한 움큼의 책을 내려보았는데 순간 식은땀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그때까지 쌓아놓은 책이 왜 그리도 크게 보이는지 나는 한 없이 작아져 이러다 책에 파묻혀 내일 아침 신문에 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책 정리하다 책에 깔려 죽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헌책방 아저씨가 들이닥쳤다.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오신다더니..."

시계는 이제 막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장은 끼워 맞추듯 웃음기 없는 얼굴로,

"11시잖아요."     

어쩐지 빨리 서두르고 싶더니 오히려 한발 늦은 셈이 됐다. 책방 아저씨는 5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데 진중해 보이는 것이 말수도 없어 보였다. 모르긴 해도 아저씨도 책을 좋아하다 이 업종에 뛰어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웬만치 말수가 있으면 이런저런 얘기를 시도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상대가 말수가 있고 없고를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뭐 꼭 그래 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내 적지 않은 책 박스에 놀라며 언제부터 모은 책이냐고 물어 볼만도 한데 아저씨는 이런 일을 많이 해 봤다는 뜻인지 아니면 남의 일엔 일체 관심이 없다는 뜻인지 묻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그의 말수 없음이 싫지는 않았다. 쓸데없이 말 많은 것 보다야 낫지.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을 아저씨가 대신했고, 책 박스를 내가느라 몇 번씩 오르내릴 때 나는 나대로 얼른 안 볼 책을 추려 박스에 담았다. 무슨 책을 추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단지 마지막으로 담은 책이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김훈의 책은 여간해서 쉽게 팔면 안 될 것만 같은데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문득 그 아저씨도 자신의 밥벌이가 지겨울 때가 있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원래 취미로 했던 일이 밥벌이가 되면 지겨운 법이니까. 


3. 나는, 유다일까?


책 박스를 얼추 다 나가고 정산할 순간이 왔다. 이럴 경우 책 주인이 돈을 받는 것으로 아는데 그동안 뭐가 바뀌어 오히려 수거료를 내야 하는 건 아닐까 잠시 불안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솔직히 난 이 부분에 대해 전날 전화를 끊고 생각이 많았다. 돈을 받는다면 얼마를 받을까? 돈에 욕심내지 말자. 이렇게 실어 가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얼마를 주건 주는 대로 받기로 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킬로당 50원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계산하면 만원이라는 것이다. 전날 생각했던 것도 있고 하니 받기야 받는다만 역시 마음 한쪽이 씁쓸했다. 평생 모으고, 평생 간직한 책이 고작 만원이라니. 아깝다고 다시 원상 복귀할 수도 없고. 이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에 과외로 담은 책은 그냥 둘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그 책들은 비교적 최근 것이라 중고샵에 팔던가 기증해도 되는 것들이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이, 전날 밤까지만 해도 이 많은 책들이 내일이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뭔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을 사 모으느라 들인 시간이며, 발품이며 책 한 권 한 권에 깃들어 있을 만든 사람의 영혼을 생각하면 이별식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그와 달리 정산할 때가 오자 돈을 생각하고 있으니, 마치 한때는 열렬하게 예수님을 존경했다 은 30냥에 판 유다와 내가 뭐가 다를까 싶기도 했다. 물론 그 책들이 예수님과 동급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한때는 나의 손떼를 탔고, 그 책을 구입해 뿌듯해한 적도 있을 텐데 이렇게 팔아먹고 얼마를 받을까를 생각하고 있다니. 차라리 돈을 아예 안 받는 것이 그 책들에 대한 예의는 아니었을까.  


내 손을 떠났으니 그 많은 책들은 분쇄기에서 종이조각이 되거나 운이 좋다면 아저씨의 책방 한 귀퉁이를 채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었으니. 이제 책에 욕심도 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얼마를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지금도 죽을 때까지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이 지금도 쌓여있다.  


4. 다시 읽지 않기 위해 읽는 책에 관하여


책 박스들이 집을 나갔으니 지금부터는 다시 책을 정리해야 한다. 그날 나는 몸이 다 나은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다하지 못하고 두 번인가 세 번을 쉬어가며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거의 하루 종일 했다. 엄마는 내가 책 박스를 없애버린 것이 속이 시원했던지 위로 반, 놀림 반으로 "네가 고생이 많다."를 연발했다. '봐라. 네가 그리도 좋아했던 것들이 너를 얼마나 힘들 게 하는지를.' 엄마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과연 책 때문에 정말 방구들이 주저앉았는지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도 파인 흔적은 없다. 역시 엄마는 허풍의 여왕 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역시 방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줄 필요는 있었다. 책 박스가 있을 때 한 번 높이 쌓인 책은 웬만해서 건드리지 않았다. 어쩌다 무슨 책이 생각나서 보려면 의자를 놓고 올라가야 한다. 그러다 실수로 잘못 건드려지면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이제 책 박스를 치웠으니 그런 일은 없다. 올려다봐야 하는 것이 이제 내려다 보인다. 


정리를 하면서 평생 200권의 책만을 소유했었다던 수필가 피천득 선생을 생각했다. 그가 평생 2백 권의 책만 읽었을까. 그도 젊었을 때 한때는 책에 대한 욕심이 누구 못지않았을까. 더구나 그땐 책이 귀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전에 내었던 욕심들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그의 남은 생은 평생 함께할 책과 그렇지 않을 책을 속아내는 것으로 삼지 않았을까. 그의 지의 정원은 그렇게 가꾸어졌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은 영원하지가 않다. 언제 죽을지 모를 목숨 이제부터는 무엇이든 적당히 모으고 적당히 버리며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말마따나 죽으면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어느 날 죽게 되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유품 정리를 대신해주는 업체도 있다지만 있을 때 잘하랬다고 조금조금씩 정리해 주면 덜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요즘 책은 얼마나 근사하고, 예쁘고, 실용적이며 합리적으로 잘 나오는가. 한마디로 탐스럽다. 정말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만 같다. 사실 그때 버린 책도 읽기보다 장서하다 버린 책이 태반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책을 읽는 건 지식의 축적만을 위한 것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독서를 위해서건 장서를 위해서건 우린 어쩌면 평생 읽지 않을 책을 위해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이건 또 얼마나 불가능한 목표일까. 인생이 신비로운 건 해 봤자 할 수 없고 해 낼 수 없는 일에 도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평생 읽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밥을 먹는 건 반드시 굶지 않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위해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날 즉 죽음을 위해 먹는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면 지나친 말장난이 되려나.) 


분명 피천득 선생이 속아낸 책들 중엔 책으로서의 가치나 위용이 결코 떨어져서마는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그날 내 보낸 책들 중에 여전히 아직도 볼만한 책들이 다량 들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안 볼 책으로 분류가 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인연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밖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한때는 군침 삼키도록 좋아해 놓고 이렇게 헌신짝 버리듯 날 버리는 것이 어디 있냐고 책들이 아우성을 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은 갈대며 배신의 존재인 것을. 지금도 내 방엔 몇 권은 주민센터에 보내고, 몇 권은 다시 안 볼 책으로 중고샵에 내다 팔 책이 보인다. 그리고 아직 손도 못 댄 책들이 있고 새롭게 관심이 생겨 보고 싶은 아직 사지 않은 책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내가 무슨 수로 200권만 가질 수 있을까. 이것도 수양하는 마음이 돼야 가능한 걸까.  


그렇지 않아도 저질체력에 책을 정리하느라 요 며칠 후유증에 시달렸다. 아무래도 주인에게 배반당한 책들이 저주를 퍼붓는가 보다. 미안하다. 그러나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자. 너희들은 한때나마 서점에 꽂히기도 하고 내 덕분에 나름 장수하지 않았니. 세상엔 빛도 보지 못하고 잊힌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 좋다고 사 들인 책도 언젠간 너희들과 비슷해질 거야. 그러니 너무 섭섭해 말고 너희들은 너희들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렴.   


가을이 돼서 그런지 아니면 그렇게 책을 내 보내서 그런지 다소 울적한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또 요 며칠 지인들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다. 난 책에서 평생 헤어 나오지 못할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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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0-2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킬로그램을 걷어치우셨군요. 대단한 일입니다.
그 빈자리에 다시 책이 차곡차곡 꽂히기를 기원해야 하나 그러지 않으시기를 기원해야 하나 고민되는군요 ㅎㅎㅎㅎ
사이러스님 같았으면 얄짤없이 또 그 자리를 책으로 덮었겠지만.

stella.K 2019-10-28 19:14   좋아요 0 | URL
ㅎㅎ 스요님이나 사이러스에 비하면 전 세발의 피죠.
그런데 독서라는 건 누구와 비교할 건 아닌 것 같아요.
많이 읽지도 못하면서 책 욕심은 왜 내나 지금은 많이 자제하고 있는데
그래도 어느새 쌓이는 거 보면 신기해요.^^

희선 2019-10-28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책을 보내서 시원섭섭하실 듯하네요 잘 안 본다 해도 책은 버리기 아깝기도 해요 stella.K 님은 헌책방에 팔아서 다른 누군가한테 갈지도 모르겠네요 조금씩 정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가는 게 있으면 들어오는 것도 있겠지요


희선

stella.K 2019-10-28 19:1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천천히 들어오는 것 같아도 나가는 속도가 들어오는 속도를
못 잡더군요. 이젠 장서 보다 진짜 독서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ㅎㅎ

서니데이 2019-10-29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정리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저도 몇달전에 정리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이나네요.
새 책은 계속 나와서 사다보면 금방 늘어나는 것 같아요. 꼭 읽고 싶은 책만 사야지 해도 그렇더라구요.
요즘 날씨가 많이 차가워요.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하루되세요.^^

stella.K 2019-10-30 16:34   좋아요 1 | URL
아, 서니님도 정리하셨군요.
할 때는 고생인데 해 놓고나면 뿌듯하긴 하더라구요.
그래봐야 그것도 잠깐이지만.ㅠ
서니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레삭매냐 2019-10-30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G당 50원은 너무 헐하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하긴 중고샵에 내다 파는
것도 또 주민센터에 보내는 것도 참
그렇더라구요.

요즘엔 공주에서 책방하는 동생에게
독서모임에서 만날 때보다 그리고
가끔 박스에 싸서 보내곤 한답니다.

책덜기의 지겨움이여... 그런데도 오늘
또 하나 사들였네요.

stella.K 2019-10-30 16:19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놀랐어요.
근데 워낙 오래된 책이라 수거료 안 달라고 하는 걸
오히려 고마워해야죠.
자꾸 물어보는 거 보면 그 아저씨도 그런 건 딱히
달갑진 않은가 봐요. 그냥 그때 그때 매매할 수 있는
비교적 최근 책을 선호하지 않을까 싶어요.
책을 언제까지나 쌓아둘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죠.
그거 나가고 나서 저도 또 무슨 책을 읽어보나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죠.ㅠ

cyrus 2019-11-01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도 안 읽은 책이 많아서 버리지도 팔지도 못하고 있어요... 읽긴 읽어야 하는데... 딴 짓(특히 다른 책 읽기)만 하고 있어요... ㅎㅎㅎㅎ

stella.K 2019-11-01 18:47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네가 쓴 댓글 중 가장 안 어울리는 댓글이다.ㅋㅋ
네가 그러면 난 어떻겠니?
근데 내가 그렇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알라딘을 하면서부터야.
개인 이벤트하고, 서로 생일 챙겨주고, 안 보는 책 받고 하다보니
욕심이 생기더군. 알라디너라면 비슷하지 않을까?
알라딘은 참 좋은 동네야. 그지?^^

amuzing 2019-11-04 0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책 내용인줄 알았어요.
저 역시 집에 책들이 너무 많아요.아이 책들로만 3천권이상
신랑이 거실에 제발 쇼파 하나 들이자고 하지만...
거실부터 방마다 한쪽 벽을 메운것들은 오직 책이죠.
정말 활용해보고자 사놓았던 육아 교구활동 도서부터 여러 활용 도서책들까지
아이들은 커가는데 ㅋㅋ 그 모든것들의 활용은 멈춘 상황
ㅎㅎ 버려야할 타이밍? 아니면 늦은감은 있으나 활용하고 버려야할 타이밍?
심히 괴로운 작업
버리기...저도 곧 해야할 상황이다보니 확 마음에 와 닿네요.
하지만서도 그럴라하니 왜 맘이 아픈지....ㅎㅎㅎㅎ

stella.K 2019-11-04 18:36   좋아요 0 | URL
와우, 3천권요! 굉장한데요?
사실 책 버리기가 쉽지는 않지만 언제고 마음의 준비가 되시면
뒤돌아 보지 마시고 확 버리십시오.
좋은 책은 앞으로도 계속 나오고 다시 채우는 건 금방이랍니다.^^

카알벨루치 2019-11-30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왜 제 좋아요가 없죠? 분명히 전에 봤는데....헐~ㅜㅜ

stella.K 2019-12-02 14:20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럴수도 있지요. 그래도 늦게나마 회개하는 마음으로다
해 주신 게 어딥니까? 그저 감사할다름입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