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백설공주>를 봤다.

몇년 전, 줄리아 로버츠가 악한 계모역을 맡았다는 바로 그 버전이다. 90년대 스크린을 화려하게 수놓았던(좀 식상한 표현이긴 하다) 우리의 줄리아가 일선에서 물러나 조연을 맡았다. 그것도 악역이라니. 그래도 조연이라고 하기엔 제법 비중이 있는 역할이라 그냥 쓰리톱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언제나 느끼는거지만 미국 영화는 비주얼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다. 또 그런만큼 이 영화는 비주얼 갑이다. 

 

알다시피 이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이야기와 조금은 다르게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래도 뭐 크게 바뀐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은 아쉽기도 한데, 백설공주를 일종의 전사로 만들어 놓은 건 나쁘지 않은데, 계모에 대한 이미지가 아쉽다. 계모가 남편을 죽게 만들고 세금을 자기 치장에 써서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데 왜 여자는 그런 인물로만 그리는지 모르겠다. 남자를 악인으로 만들면 최소한 사치하는 인간으로는 안 그리던데...

 

그래도 볼만하다. 그런데 엔딩은 좀.. 감독의 취향인 것 같긴한데 무슨 인도풍의 노래를 부르고 끝난다. 차리리 발리우드 버전으로 영화를 만들어 그렇게 끝난다면 이해하겠는데 다와서 이건 뭐지 싶기도 하다.

 

백설공주 역의 릴리 콜린스는 처음 보는 배운데 진한 눈썹을 제외하면 진짜 예쁘긴 하다. 줄리아의 시대는 가고 릴리가 온 줄도 몰랐구나 싶다. 그나저나 줄리아 이 영화 이후 출연작이 있나 했더니 2018년까지 그래도 꾸준히 영화 출연을 했네. 내가 그동안 이 친구의 출세작 몇 작품 외엔 너무 관심이 없었구나 싶다. 그저 메릴 스트립만큼이나 오래 가는 배우가 됐으면 한다.

 

주일 날 아침에 tv에서 영화 채널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본다고 해도 끝까지 볼 수도 없고. 그런데 <사운드 오브 뮤직>을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반가운 마음에 옛 시절을 생각하며 봤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중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영화속에 흘렀던 노래들은 지금도 흥얼거릴만큼 어렵지않고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가끔은 좀 그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도 잘 나간다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도 음악은 좋지만 따라나 부를 수 있나. '도레미 송'이나 '에델베이스' 못 부르는 사람 있는가? 중학시절 영화가 너무 좋아 책도 사 봤다. 하지만 책은 좀 별로였다.     

 

그런데 까마득한 세월이 흘러서보니 새삼 영화가 현실성이 별로 없지 싶다. 스토리 배경이 2차 대전 전후였던 것 같은데 전혀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 문득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 생각이 났다. 마치 당대 유럽의 어느 유명한 호텔을 축소시켜 놓은 듯한 느낌이다. 과연 유럽에 잘 사는 귀족들은 얼마만한 부를 가지고 있을까 새삼 궁금하기도 했다. 뭐 그도 부모에게 물려 받은 재산이 많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개 장교가 혼자 7명이나 되는 자녀 양육에, 입주 가정교사와 적지않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호텔 수준의 연회가 전시 상황에서 가능할까? 새삼 이런 것들이 보이더라. 역시 이런 영화는 한 번만 봐야한다.

 

내용은 잘 이해 못하겠는데 몇 편의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보여주는 프랑스 애니메이션이다. 물론 픽사 애니메이션도 좋긴한데 둘중 어느 것부터 보겠냐고 묻는다면 난 당연 프랑스 것부터다. 그만큼 프랑스 애니메이션은 독특하면서도 묘한 매력이 있다. 더구나 이 애니메이션은 밤의 이미지를 극대화 했다. 그러면 난 환장한다. 더불어 아프리카와 이집트풍을 적절히 믹스한 느낌이다. 나중에 한 번 더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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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7-28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설공주에서 백설공주는 전사가 되는군요 계모는 여전히 나쁘게 나오고... 계모하고 백설공주하고 힘을 합치는 걸로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왕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기도 하니... 어떤 데서는 왕이 알고도 모르는 척했을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저도 예전에 <사운드 오브 뮤직> 봤어요 언젠가 들으니 줄리 앤드류스는 어떤 수술이 잘 안 돼서 노래를 잘 못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그때 참 안 좋았을 듯한데 나이 먹고 그걸 재미있게 말하기도 했답니다 긍정스러운 사람인가 봅니다


희선

stella.K 2020-07-28 15:47   좋아요 1 | URL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캐릭터죠.
지금까지 백설공주 이야기가 여러 버전이 있더군요.
흥미롭긴 합니다.

줄리 앤드류스가 병이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알고 봤더니 1935년생이더군요.
최근까지도 영화활동을 했더라구요.
대단하다 싶어요. 존경스럽고.
나이들어 활동 안하는 배우들도 많은데
죽을 병이 아니라면 자기하던 일은 계속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긴 하다. 사실 지난봄 나는 무슨 생각에선지 문제의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샀다. 그전부터 가격이 유난히 싸다는 것 외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우연히 이게 한 시적으로 특가로 팔고 기간이 지나고 나면 정가에 판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정가로 바뀌기 전에 서둘러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또 평소 버릇대로 앞부분만 읽고 다른 책에 한 눈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김봉곤 작가의 수록작이 문제가 되자 갑자기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읽고 나니 마음이 좀 착잡해졌다. 


 

 

 

 

사실 작가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먼저 <소설 보다:봄-여름 2018>에서 처음 읽었다. 읽으면서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처음 읽는 작가의 작품이 별로면 다음에 또 읽게 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래서 김봉곤 작가는 나와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성적 취향이 같지 않다는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보수적인데 비해 어쨌든 그는 진보적이니. 그런데 이번에 작품을 읽으면서 의외로 그가 좀 달리 보이기도 했다. 전작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그렇고 그는 아마도 계속 이쪽으로 글을 쓰지 않을까 싶다. 보통 작가들의 그런 태도를 나쁘게 말하면 우려먹는다고 하고, 좋게 말하면 천착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볼 때 그의 주제는 나와는 맞지 않지만 그런 태도나 사유는 충분히 인정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먼저 읽었던 작품보다 훨씬 잘 읽혔고, 작가의 성격이 보여서 좋았다. 


그의 작품을 두고 사소설이니 오토 픽션이니 하는데 그건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 소설을 쓰는 일련의 작가들이 있다는 걸 나는 적어도 5, 6년쯤부터 알고 있었다. 처음 이 장르를 접했을 때 이것을 소설이라고 봐야 하는 건지 산문이라고 봐야 하는 건지 대충 난감해하기도 했다. 이전에는 주로 자전 소설 또는 자전 에세이로 불리기를 좋아했고, 그것은 일정 정도의 형식미와 시대정신을 반영하기도 했다. 그것이 2000년대 들어오면서 개인의 삶, 취향, 경험이 중요시되면서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오토 픽션도 부각되기 시작한 것 같다. 또 그런 만큼 이전 세대는 사소설은 일본에서 유행했던 만큼 우리나라에서 선 터부시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건 또 요즘 그런 글을 쓰는 작가들조차 그렇게 불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2015년에 나온 이석원 작가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란 책은 사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출판사의 결정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이라 하지 않고 이야기 산문집이라고 했다. 사실 자전 소설이나 자전 에세이라면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을 다루거나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그런 것이어야 하는데, 그런 형식은 없고 마치 일주일이나 한 달치 일기 또는 삶의 한 정경을 소설로 자유롭게 쓴 듯한 느낌이다. 그때 난 뭔가 모를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모르긴 해도 이런 식의 글을 쓰는 작가가 많이 나오겠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이런 책은 독자의 관음을 충족시켜주지 않는가.       


그렇게 사소설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작가들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의 사생활 침해가 우려가 되기도 한다. 이건 또 오토 픽션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닐 것이다. 작가가 어떤 소설을 쓰든 인물을 가공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오토 픽션은 일상의 시시콜콜한 일면을 그리니 더하지 않을까. 문득 오래전에 성석제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에 간 기억이 생각난다. 질의응답 시간에 주변 인물을 쓰다 보면 그들로부터 소위 민원이 들어오지 않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하시냐고 묻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본인인 줄 잘 모르거나 알아도 대충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고, 드물게 멱살을 잡혀 본 적도 있는데 그럴 땐 출판사가 나서서 대신 해결해 준다며 알듯 모를듯한 대답을 했다. 하긴 그렇게 사람 좋은 모습을 하고 있는 작가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소설에서조차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그리겠는가. 그래도 그런 일이 아주 없지는 않은가 보다.


난 김봉곤 작가의 문제의 소설을 읽기 전에는 침소봉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으니 피해자에게 마음이 기우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솔직히 무엇이 문제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물론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작가가 좀 더 신중하지 못한 걸 탓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C누나는 작가만 알고 독자는 모른다. 그냥 짐작하기로 작가와 친한 사이인가 보다. 그러니까 그렇게 연애 상담도 하지. 그 정도다. 전후 맥락을 봐도 작가는 C 누나의 말을 잠깐 인용한 수준에서 끝난다. 그런데 소설을 있는 동안 그 일은 일파만파가 됐다.


처음 출판사는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하면서 다시 책을 발행하겠다 했다. 그러더니 다음엔 아예 작가의 작품을 빼고 발행할 거라고 했다. 또 그러더니 이번엔 작가가 아예 상을 반납했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과연 이럴 사안인가 싶어 소설의 문제의 부분을 다시 한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읽어보니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공감이 가긴 했다. 내가 작가의 변호인도 아니니 이건 작가가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 같진 않다고 해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말은 이미 작가 자신이 충분히 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같은 여자면서 참 형광등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용서하시라. 하도 음담패설이 난무한 세상에 살고 있어서 일까 그들의 대화는 음담패설 수준에 끼지도 못 한다고 생각했다. 그냥 둘만의 사적인 대화라고만 생각했다. 굳이 그렇게 보자면 오히려 작가는 C 누나 보단 그의 어머니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어머니를 부조리한 인물로 묘사하지 않았는가.)  


만일 그게 문제가 된다면 앞서 얘기한 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또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읽은 지 좀 돼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책에서 작가는 어느 이혼녀를 소개팅으로 만나 가까워지기까지의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읽다 보면 얼굴이 붉혀지는 장면도 없지 않은데 작가야 이렇게 쓴다곤 해도 상대는 과연 자신의 이야기가 그렇게 까발려지는데 괜찮을까 아무리 익명이라도 하지만 말이다. 그것에 대해 작가는 생각하고 썼을까 뭐 그런 생각들을 잠시 해 봤다. 지금까지 말이 없는 걸 보면 어떤 식으로든 잘 넘어갔나 보다. 하지만 난 정작 영화 <롤리타>를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알다시피 나보코프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으로 어느 소아성애자의 비극적이고도 파괴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난 그걸 보면서 새삼 내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건지 잠시 현깃증이 났다. 아무리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수컷에 의한, 수컷을 위한, 수컷의 이야기라지만 그 화법에 질리고 말았다. 하긴 본격적으로 여성이 화자가 되거나 주인공으로 나온 소설은 2세기가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수컷의 화법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기하급수적으로 드러났다. 아무리 현대 남성 작가가 최대한 자신을 낮추고 글을 쓴다고 해도 여성의 감성과 화법을 이해하고, 어느 부분에서 상처를 받는지를 채 헤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세상에 어떤 작품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작품은 없다.


고의든 아니든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 상처를 받았다면 용서를 구하는 건 마땅한 일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수상을 자진 반납했다니 과연 그답다 싶기도 하다. 모르긴 해도 그는 웬만해서 밀면 밀리는 대로 흔들면 흔들리는 대로 순응하지 저항하는 법이 없는 그런 캐릭터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작가 편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독자나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야 하는 동료 작가들의 입장에선 쓸 자유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볼멘소리를 듣는 것 같다. 원래 작가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연대할 때는 또 연대하지 않는가. 모르긴 해도 이런 일은 앞으로 더욱 빈번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작가의 설자리는 좁아지고, 이렇게 패가 나눠져서 서로를 비난하고(물론 건전한 토론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상을 반납하고, 책을 다시 찍고 그럴 건가? 또 어찌 보면 이건 편집자의 책임도 없지 않다고 본다. 아무리 오토 픽션이고, 솔직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작가라고는 하나 편집자가 제 기능을 발휘해 줬다면 문제가 되지 않거나 축소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말에 의하면 김봉곤 작가도 출판사에서 편집 일도 한다던데 설마 자기 작품을 편집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어쨌든 이번 계기를 통해 문학 종사자들의 고민이 더 깊어질 듯하다. 나는 이쯤에서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문제에 대해 한 예를 들어 보겠다. 그것은 <나의 투쟁>이란 두꺼운 4권짜리 자전소설을 쓴 그 이름도 어려운,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다. 그는 원고를 쓰고 출판하기 전 책에 등장하는 사람을 일일이 찾아가 허락을 받고, 그 과정에서 절교가 선언된 지인도 있었다고 했다.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과연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나라면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세상을 작가인 사람과 작가가 아닌 사람으로 나눈다면 그 근거를 무엇에 두겠는가. 작가는 끝까지 써서 마침표를 찍는 사람이고, 작가가 아닌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마침표에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저 수고를 포함시켜야 한다면 당연 그것을 해 낸 사람이 작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작가가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렵고 고달픈 일인가.  


어떤 작가도 자신의 이야기에 등장인물을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고 싶은 작가는 없을 것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그 인물의 부조리한 일면을 드러내 줘야 할 때가 있다. 그 과정에서 의식을 했든 못했든 실제 하는 인물이 상처를 받았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나는 지금 김봉곤 작가를 옹호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런 일은 작가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 두서없이 써 봤다. 더불어 작가를 보는 일반인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작가라는 직업이 매력적이기는 하다. 존경도 많이 받고. 하지만 매력적이라고 해서 인품도 훌륭하고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도 완벽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 그런데 간혹 그렇게 착각하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작가가 유일하게 전지적 시점을 구사해서 그런 건 아닌가 싶다. 이건 또 신의 시점이기도 하다는 소리다. 넓은 의미에서 신은 공평하긴 하지만 가끔은 신 조차도 전지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지는 않는다. 그런 것처럼 작가는 완벽할 거란 기대 같은 건 안 했으면 한다.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다. 언젠가 누구라면 알 만한 작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것도 자조적으로. 작가는 언제든 나쁜 사람이 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말을 하는데 작가는 정말 그냥 되는 건 아니겠구나 싶다. 작가란 그런 것이다. 나는 김봉곤 작가의 필치에서 그가 심지가 굳건한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 모쪼록 미안한 일은 미안한 일이고 작가로서 계속 정진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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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7-24 09: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어렵고 미묘한 사안이에요. 스텔라님과 동의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편집과 검열의 과정의 전문화도 필요한 것 같아요. 작가의 쓰고자 하는 욕구와 타인의 사생활 침해 부분의 균형은 사실 스스로가 엄격하게 찾으면 제일 좋지만 외부의 좀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선이 필요하지요. 작가로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는 참으로 무거운 것 같아요. 스텔라님의 열린 시선이 참 좋아요.

stella.K 2020-07-24 16:15   좋아요 1 | URL
전 어쩌면 김봉곤 작가가 편집자를 따로 두지 않았거나
편집자의 말을 듣지 않았거나,
편집자가 미처 그 문제를 잡아내지 못했거나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즉 우리나라는 과연 편집자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웬지 전 이 책이 갑자기 좋아지더라구요.
예전에 젊은 작가들 재미었다고 했는데 그건 저 또한 젊어서인 것 같고
지금은 좀 아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론 생각뿐이지 막상 이들의 책은 못 읽을 거면서...후후

읽느라 고생이었을텐데 끝까지 읽고 댓글 달아줘서 고마워요.
솔직히 꼴은 저래도 저거 쓰느라 한 3일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물론 김봉곤 작가의 그런 결단을 두고 같은 작가로부터
어떤 말을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방식도 존중해 줄 필요는 있다고 봐요.
꼭 저항하는 것만이 세상을 견디는 방법은 아니거든요.
심지가 있는 사람 같았어요. 잘 추스르고 또 좋은 글 썼으면 좋겠어요.
작가. 참 쉽지 않은 직업이예요.^^

희선 2020-07-26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젊은작가상에 실린 소설인가 보네요 그 책 사두고 아직 안 읽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 일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해요 예전에도 자기 얘기 썼다면서 작가 고소한 사람 있겠지요 글을 쓰려면 그걸 쓰겠다고 허락을 받고 쓰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주 다르게 쓴다면 모를까 그 소설을 보는 사람은 잘 모를 테지만, 당사자는 그걸 보면 기분이 안 좋겠지요 글과 그 사람이 똑같은 사람도 있지만 아주 다른 사람도 있겠습니다 그것도 잊지 않아야 할 텐데... 어떤 소설가는 아는 사람이 그 소설에 나오는 거 나 맞지 묻기도 했답니다 그건 아니었다고 하는데...


희선

stella.K 2020-07-26 11:52   좋아요 1 | URL
실제로 그런 일이 있긴 있군요.
사실 그 과정을 거쳐야하는 것이 맞는 것 같긴한데
나쁜 의도가 아니고 맥락을 이해한다면 그냥 좀 넘어가 주면 안 될까
싶기도 해요. 물론 먼저는 작가가 슬기롭게 쓰긴해야겠지만
일일이 그걸 챙긴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도 편집자가 더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점점 작가들 글 쓰기가 쉽지 않겠다 싶어요.
돈 많은 작가라면 변호사라도 산다지만...
 

 

 

 

 

 

 

 

 

 

 

 

 

 

 

하도 소설을 안 읽어 또 소설을 샀다. 이번엔 심훈의 <상록수>다. 예전에 조현 기자의 <울림>이란 책을 읽다가 거기 소개된 최용신에 관한 내용을 보고 본격적으로 읽어 볼 생각으로 샀다. 뭐 그도 그렇지만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우리나라 근현대 문학에 대해 넘 아는 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기회있는대로 좀 읽어봐야하지 해서...

 

<백석평전>은 안도현 시인이 쓴 것도 있지만 그전에 몽우 조셉킴이란 화가가 쓴 책이 있어 사 봤다. 이 책은 공식적으론 절판된 상태지만 중고샵에선 아직 간간히 거래되고 있는 책이다. 안도현의 책이야 언제라도 사 볼 수 있지만 절판된 책은 언제 복간될지 알 수 없으니 호기심에 사 봤다.

 

이 모든 책은 알라딘 합정점에서 샀다. 물론 직접 가사 산 것이 아니고 광활한 우주점을 이용했다. 그런데 책 배송이 원래 어제였는데 오늘 도착했다. 주문은 10일 그러니까 지난 주 금요일에 주문했다. 주문할 때도 좀 거시기하긴 했지만 뭐 중고 책을 산 죄려니 하고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렇게 보내주기로 한 날짜를 지나서 오니 이 또한 거시기하지 아니할 수 없다.

 

알라딘뿐만 아니라 여타의 인터넷 서점에선 지연 배송에 대해 보상 제도를 한다지만 그건 신간에 관해서지 이런 중고 책이나 출판된지 어느 정도 지난 책에 대해선 책임이 없다. 그러니까 고객으로선 책을 빨리 보고 싶으면 신간을 끼워 사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느긋하게 기다리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를 지연해서 오니 웬지 중고 책 샀다고 홀대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늦게 받는 것도 서러운데 지연씩이나?! 이게 과연 그럴 일인가. 물론 서점의 입장에선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러는 것이겠지만 기다리는 고객의 입장에선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다.

 

이런 일이 나만 겪는 일일까. 그렇지 않아도 지난 달인가 여기 알라딘은 아니고 옆동네 일이긴하지만 배송일 보다 늦게 와서 지연 보상 받으려고 한다고 했더니 책임이 없단다. 뭔 말인가 한참 머리를 굴렸다. 그땐 중고 책을 주문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지 했더니 신간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순간 좀 빡쳤다. 고객의 입장에선 이 지연 보상이라는 게 참 눈 가리고 아웅이란 생각이 든다. 

 

잘은 모르겠다만, 당일배송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또 그에 못지 않게 택배 생각해서 당일배송을 일부러 안하는 고객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나야 워낙에 신간을 안 사긴 하지만 간혹 가물에 콩나기로 신간을 산다면 나도 당일배송은 안 한다. 어쨌든 이렇게까지 고객은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하는데 왜 중고 책 주문하면 홀대 받는 느낌인지 알 수가 없다. 며칠씩 걸려 받는대신 날짜는 어기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게 비단 나만의 일일까. 이런 게 계속 쌓이면 신간만 중요하고 중고 책은 늦어도 된다는 생각이 은근 쌓이지 않을까. 배송 추적을 해 보면 이건 택배사의 문제 보단 서점측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물론 바쁘기도 하겠지. 안 그래도 바쁜데 광활한 업무까지 하려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이해해야 하는 건가. 뭔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게다가 포장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건 내가 책을 받아 볼 때마다 느끼고 그래서 이용 후 평가란에도 몇 번 얘기했던 건데 포장용 접착 테이프를 안 쓰거나 가급적 최소화하면 좋겠다. 당췌 이거 뜯느라고 팔목이 아플지경이다. 옆동네 서점은 테이프 안 쓰고 접착제 쓰던데 얼마나 좋던지. 어쨌든 이런 세심한 배려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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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7-15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게 복걸복인 모양입니다.

전 광활한 우주점 이용하면서 매번
다음달 받았었는데 아쉽네요...

제가 사는 동네는 후져서 그런지
당일배송이 되는 적이 없더라구요 ㅋㅋ

저도 합정점에 살 책들이 제법
있는데 사러 가면 할인도 받고 좋을텐데 -

stella.K 2020-07-15 18:32   좋아요 0 | URL
잉, 다음 달에 뭘 받으셨다는 건지...?

하긴, 당일 배송 했는데 못 받는 경우도 많긴 하더라구요.
그때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직접 가서 사면 더 싼가요?
그래도 전 이번에 이렇게 저렇게 할인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배송료는 빠진 것 같습니다.
2만원 이상 사면 무료 배송이지만 워낙 읽지 않은 책이 많아
2만원 이상 사면 웬지 부담스럽더라구요.
하긴 옛날에 2만원이면 책 세 권 샀는데
요즘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거 생각하면 행복한 건데...ㅠ

레삭매냐 2020-07-15 21:11   좋아요 0 | URL
급하게 타이핑하다가 오타가 났네요.

다음달이 아닌 다음날이었습니다 ㅠㅠ

21주년 백인가 사면 25만원에 5만원
할인해준다고 해서 낚였습니다 파닥파닥

전 요즘 새책보다 중고책 사들이고
있거든요. 새책은 도서관 희망도서로...

stella.K 2020-07-15 21:18   좋아요 0 | URL
헉, 그렇습니까? 광활한 우주점이 다음 날 배송...?
근데 왜 저는 그렇게 늦게 오는 걸까요?

근데 25만원에 5만원 할인이라.
몰랐지만 알아도 저는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ㅠ

수이 2020-07-15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게 있나요? 저는 당일 배송으로 준다 하고 다음날 받는 경우가 태반이었는데;;; 이것도 지연 배송 보상이 되는 걸까요? 아이쿠 왜 저는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을까요;;;

stella.K 2020-07-15 21:04   좋아요 1 | URL
헉,ㅎㅎㅎㅎㅎㅎ
그럼 어쩌면 폐지됐을지도 몰라요.
난 당일배송 안한지 오래됐고,
이렇게 수연님처럼 지연 보상이 있다는 것도 몰라
슬쩍 없애버렸는지도 몰라요.
한 번 알라딘에 알아보심이...!?

암튼 전 며칠이 됐건 보내준다는 제 날짜에
따박따박 보내주기나 했으면 좋겠어요. 흥~

수이 2020-07-16 21:59   좋아요 0 | URL
없어졌대요 언니 ㅋㅋㅋ

stella.K 2020-07-17 19:55   좋아요 0 | URL
와 ~ 그럴줄 았았슴다 그럼 폐지됐다고 정식으로 고지를 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 소리소문도 없이... 배송날짜도 안 지켜. 해명도 없어. 그냥 아무 때나 보내주겠다는 말네요.ㅉ

수이 2020-07-17 20:34   좋아요 1 | URL
그래서 안 그래도 제가 진상 고객짓 좀 했어요 ㅋㅋㅋ 근데 음 당일배송 힘들면 그냥 당일배송 광고 하지 말고 익일에 보내줘도 되지 않을까요? 전세계에서 당일배송 안되면 조급해하는 민족은 한민족만일 것도 같은데 말이죠. 당일배송도 빨리빨리의 영향이겠죠? 언니

stella.K 2020-07-18 11:11   좋아요 0 | URL
잘했습니다.역시 수연님! 멋집니다!!ㅎㅎㅎㅎ

2020-07-24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7-24 17:46   좋아요 0 | URL
앗, 그런가요?
전 그때 배송추적 보니까 오히려 서점에서 늦게 보내주니까
배송도 늦어진 것 같던데...
그럴 수도 있겠군요. 뭐든지 인터넷은 하루만 늦어도
신경 쓰이더라구요.ㅋ

페크pek0501 2020-07-17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글을 읽고 광활한 우주점이 무언가 하고 검색해 봤잖아요. 나만 모르나 하고 ㅋ

영업하는 곳은 어디든 소비자와의 신뢰가 중요하긴 하죠.

stella.K 2020-07-17 19:58   좋아요 0 | URL
설마 언니만...?ㅎㅎㅎㅎ
정말 배송 안 지키면 배신감 느껴요.ㅠ

북프리쿠키 2020-07-2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도 재단장하시고,
한국 소설도 새롭게 읽으시고~
잘 계시는거 맞다고 봅니다^^;

stella.K 2020-07-21 18:22   좋아요 1 | URL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이렇게 마실도 와 주시고.
오시면 오신다고 기별이나 주시지 않고.
이거 원 부스스합니다.ㅋㅋㅋ
저야 늘 잘 지내죠.
책은 늘 마음만 있고 많이 못 읽습니다.
저 심훈의 상록수도 언제 읽게 될런지도 모르고 사기만 했습니다.ㅎㅎ
 

                                                       

                                           

 

이 책은 이번에 처음 나온 건 아니다. 전에 <하나님은 당신에게 실망하셨다>란 제목으로 나왔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제목을 바꾸고 다시 나왔다. 역시 뭐든지 제목이나 이름을 잘 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먼저 제목은 왠지 거부감이 들어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제목을 이렇게 바꾸고 나오니 좀 읽어 볼 생각이 든다. 물론 이전 제목이 더 낫다고 할 독자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난 이 제목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건 원제가 아니다. 원제는 먼저 쓴 제목이 맞다. 그렇다면 원제를 쓰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작가가 왜 그런 제목을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작가가 정한 것을 존중해 줄 필요는 있지 않을까. 물론 원작자와 충분한 상의 끝에 정해진 거라면 이의를 달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독자로서 결론부터 얘기하 지면 이 책은 어떤 제목으로 나왔던 나와는 너무 안 맞는 책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과연 기독교인일까 의문스럽다. 가끔 아니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비기독교인들도 성경에 관한 책을 쓰는 것 같긴 하다. 그것이 성경의 권위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상관이 없겠는데 그러기는 쉽지 않다. 또한 난 그런 책에 내 시간과 여력을 바칠 생각이 전혀 없다. 세상에 읽어야 할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책까지 읽는단 말인가.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어 볼 생각이 있었던 건 이 책은 그런 류의 책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뭔가 성경을 좀 더 새롭게 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것 아는가? 4, 5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성경은 <성경젼서>라고도 했으며 세로로 쓰였다는 사실을. 말에 의하면 한자어 성경을 한국말로 옮겼다고도 했다. 그러니 얼마나 딱딱하고 어려웠겠는가. 거의 고어 수준의 문어체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신앙의 선배들은 성경을 읽고 마음이 뜨거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읽으면 읽을수록 더 읽고 싶다고도 했다. 또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성경을 읽고 회심한 사람의 이야기가 곳곳에 넘쳐난다. 고어 수준의 딱딱하고 재미없는 책이라면 잊히는 책이 되어야 할 텐데 그 책은 오늘도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적어도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에 번역된 새로운 성경의 종류만 해도 꽤 여러 종류가 나왔다. 당장 나만해도 3, 4 종류의 버전을 가지고 있으니. 그런 걸 보면 성경이 얼마나 쉽게 독자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는지 알 것도 같다. 그뿐인가, 저명하고 신뢰할만한 학자나 기타 저자들이 성경을 이해시키고자 각종 연구서와 강해집, 에세이들을 얼마나 쏟아 놓는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의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권위는 인정받았을지 모르지만 대중성을 얻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어쨌든 그런 것을 볼 때 성경은 꼭 그렇게 권위 있는 학자나 저술가들에 의해서만 새롭게 쓰일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회의가 없지 않다. 일반인들도 자신만의 성경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난 그런 시도를 하기도 했다. 물론 하다가 중단하긴 했지만. 그건 순전히 나의 게으름 때문이다. 어쨌든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저자는 어떻게 자신만의 성경을 썼을까.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당황스럽다 못해 화가 났다. 난 정말 저자에게 묻고 싶다. 저자가 바뀐 책 제목에 동의를 했던 안 했던 "성경에 정말 이런 내용이 있어?"라고 묻는다는 건 있다는 동의를 구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난 "성경 어디에 그런 내용이 있냐?"라고 묻고 싶다. 비근한 예로 저자는 아브라함이 득남을 기념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할례를 주었다고 썼다. 정말...? 그거 하나 진짜인지 아닌지 찾아보는 건 그러니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언제 사라가 아브라함을 시켜 그의 첩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없애라고 시켰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론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다는 이유로 자기 주인인 사라에게 버르장머리 없이 굴어 쫓겨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인다. 게다가 구약의 요셉이 농무성 장관이라고? 언제 총리대신에서 그렇게 강등된 것일까?  


뭐 또 그것까지도 그렇다고 치자. 알다시피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렸지만 나중에 그렇게 이 책에 표현한 대로 농무선 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요셉 이야기는 꿈을 가진 인간이 하나님께 어떻게 단련을 받고 훗날 그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는가를 드라마틱하게 잘 보여 준다. 거기엔 요셉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시는지, 어떻게 화해하고 용서를 하게 하시는지도 더불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이미 너무 크게 성공해 버린 요셉에게 상대적으로 보잘것없는 신세로 전락해버린 형제들을 동정하고 싶었는지 살아남으려면 그 앞에서 아무리 굴욕적이더라도 머리를 조아려야지 별 수 있냐는 식으로 마무리하고 만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그러기엔 이 이야기는 스케일이 제법 크다는 생각은 안 해 본 걸까.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은 이 이야기만으로 여섯 권짜리 장대한 드라마를 쓰기도 했다. 창세기에는 2장인가 2장 반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인데 말이다. 그런 걸 생각할 때 단 몇 줄의 조크를 시도했다는 건 오히려 자신의 무지함을 드러내 준 꼴 밖에 더 되겠는가. 


문제는 또 있다. 입다와 그의 딸에 관한 이야기다. 입다가 영토 전쟁에서 이기고 개선했을 때 제일 첫 번째로 자신을 맞아주는 사람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한 장면이다. 그런데 하필 딸이 자신을 맞이해 줄 건 뭐란 말인가.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드리는 수밖에. 그런데 성경 어디에 저자가 제시한 딸을 불에 태워 바쳤던가? 성경엔 아버지께 두 달의 말미를 달라고 하곤 친구들과 함께 산속에 들어가 시집도 못 갈 자신의 운명에 실컷 울고 그 후 평생 독신으로 하나님만 섬기고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말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서 동물을 태워 바치기는 해도 사람을 산 채로 태워 바친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다. 그건 당시의 이방신들이 그렇게 했고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혐오하셨다. 요는 저자는 여호와와 이방신을 아무런 확인이나 거리낌 없이 동격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그들은 꽤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했다. 또 그것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아이를 낳지 못한 부부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양 하나의 우스개 소리로 치부한다. 즉 아브라함이 90살이 될 때까지 고령으로 사라와 무수한 섹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골반 탈구와 부은 발목 말고는 아무것도 잉태하지 못했다(22p)고 쓰고 있다. 도대체 말인지 방귀인지 알 수가 없다. 저자는 아직 90 노인은 아닌 줄 아는데, 자식이 없는 90 노인을 그런 식으로 대놓고 비아냥거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저자 같으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다는 얘긴가? 저자의 인격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 밖에도 문제 되는 표현과 내용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다. 아무리 성경 에세이고, 유머와 독설의 카타르시스라고 하지만 성경이 이렇게까지 웃음거리로 전락시켜도 좋을지 의문스럽다.


물론 이 유머와 독설과 카타르시스를 위해 저자가 얼마나 웃기려고 눈물겹게 노력했는지 알 것 같긴 하다. 실제로 미국 독자들이라면 많이 웃었을 것 같긴 하다. 그들은 조금만 웃겨도 깔깔대고 웃지 않는가. 웃음의 포인트도 좀 다른 것 같긴 하다. 오래전 미국 시트콤을 보면 별 웃기지도 않은 장면에서도 관객들이 박장대소하고 하는 걸 보면서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은 너무 안 웃는다고 비판하곤 했다. 웃는 것조차도 비교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래저래 경직된 것 같긴 하다. 그 덕분에 모든 것을 할 수만 있으면 희화시키려고 하는 것엔 비판할 생각은 없는지 묻고 싶다.


아마존에서 5점 만점에 4.5를 받았다는 건 무슨 기준일까. 아마존엔 유머 도서 코너가 따로 있는 걸까? 그래서 유머 지수가 높아서 그런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건가? 어쨌든 그 기준이 의문스럽고 더구나 우리나라 집계는 아니다. 그런 것에 혹해서 책 구입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실제로 이 책에 대한 리뷰 점수가 대체로 높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성경은 너무 어려워 읽다가 포기했는데 이 책은 너무 재밌어 끝까지 읽었다는 식의 평가가 높다. 이해할 수가 없다. 의도했든 안 했던 저자는 너무 유머와 독설에 치중하다 보니 성경을 거의 날조하다시피 했는데도 그것에 대해 분노는커녕 문제제기도 할 생각이 없는가 보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아무리 유머도 좋다지만 원문은 침해하지 말아야하지 않는가. 더구나 성경이다.  


사실 성경이 쉽지는 않다. 성경뿐만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경전은 하나 같이 어렵다. 불경은 쉬운가? 코란은? 그래서 못 읽겠다면 그건 독자의 선택이지 그것을 어렵게 전해 내려온 경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종교가 됐는 그 신을 믿기로 작정했다면 그 신에 대해 말한 책에 도전해 보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다. 어떠한 경우에도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알고자 함에 있지 깔깔대고 웃고자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도 예기했지만 성경을 알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노력을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는다면 그건 줘도 못 먹는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우리나라 기독교 저서들은 얼마나 번역되어 있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나는 최근 한 성서 출판사에서 성경을 스토리텔링으로 푼 책을 한동안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그건 순 우리나라 저자들로만 구성해서 쓴 책인데 경탄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이 책들은 얼마나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모든 면에서 K가 거의 독점을 하다시피 했다. 하다못해 방역도 K 방역이라지 않는가. K 크리스천 출판물도 못지않을 텐데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과연 이 책을 읽었다고 성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까. 물론 관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말로 성경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어느 정도 그 권위를 인정받은 다른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를테면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이나 앞서 말한 <스토리텔링 성경>, <쉬운 말 성경> 같은 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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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7-15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성경 한번 볼까 하고 앞에만 보다 말았습니다 어떤 책은 이야기 식으로 돼서 다른 성경보다 재미있기도 했는데, 앞부분밖에 못 보다니... 지금은 그 성경이 없네요 성경도 재미있다고 말하고 싶었나 하는 생각이 조금 듭니다 나라마다 사람마다 웃는 게 다르기도 하지요


희선

stella.K 2020-07-15 15:32   좋아요 1 | URL
맞아요. 구약은 출애굽기 이후로 좀 재미가 없지요.
그래서 그부분만 때가 타 있잖아요.
성경을 좀 재밌게 읽을 필요는 있는 것 같긴한데
이 책은 좀 비추더군요.

저는 잘 웃는 편이 아닌데 한번 웃었다하면 마구 웃는
B형이랍니다.ㅋㅋ
 

원래 엄마와 딸은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죽했으면 전생에 원수가 부모 자식으로 만난다고 했겠는가.


지난 주말 첫째와 둘째 조카가 왔다. 첫째는 남자 아이(설마? 그만도 30대 초반의 직딩이다)라 좀 뚱한 편이고, 그 보다 한 살 아래인 여자 조카는 상냥하고 만만해서 좋다. 둘째는 지난 명절에 봤을 때만 해도 살이 좀 쪘다. 속으로 '쟤도 나잇살이 붙는구나.' 했는데 이번엔 홀쭉하고 예뻐져서 왔다. 얼마 전 안부 삼아 외할머니한테 전화를 한 모양인데 오지랖 넓은 엄마는 손녀 위로한답시고 "힘들지? 냉면 먹으러 와." 이러는 바람에 두 놈이 입맛을 다시며 외가에 온 것이다.     


둘째 조카는 원래 명랑하고 밝은 편이긴 한데 이번엔 더 밝아져서 왔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전화 왔다고 했을 땐 왜 새삼스럽게 전활까 무슨 일 있나 했는데, 냉면 먹으러 오란 말에 밝아진 것을 보면 녀석은 외할머니가 해 준 음식이 그리웠었나 보다. 더구나 엄마가 녀석들 어려서부터 꽤나 걷어 먹였다고 생각했는데 냉면은 아직 못 먹어봤다는 말이 새삼 놀랐다. 정말? 결국 우리 엄마 실력 발휘에 들어가 주시고, 조카들은 한바탕 홰를 치며 먹고 돌아갔다.


강릉 사는 언니와 같이 살지 않은 녀석들은 먹기 전 할머니표 냉면을 사진 찍어 보내기도, 그 전부터도 외가에 갈 거라고 자랑 꽤나 늘어놨었나 보다. 결국 언니가 뒤늦게 전화가 왔다. 언니로선 아이들에게 냉면을 해서 먹여줬으니 모른 척할 수 없으니 전화한지도 오래 돼 겸사겸사 했을 것이다. 엄마는 첫째에 대해선 살찐 것 외엔 그다지 할 말이 없는데, 둘째가 살이 빠진 것과 더 예뻐지고 성격이 밝아졌다며 칭찬을 했다. 그러면서 "걔는 참 지엄마 안 닮았어." 하며 한마디를 더 보탠다. 손주의 엄마라면 누구를 이름이겠는가. 바로 당신의 딸을 이름이다. 자식 가진 엄마들은 자신보다 자신의 아이를 칭찬해 주는 것이 더 좋다고 하던데 언니의 입장에서 친정엄마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빗대서 딸을 칭찬하면 어떤 기분일까. 


하긴 내가 봐도 둘째는 언니를 안 닮긴 했다. 언니는 데면데면한 것이 요즘 말로 츤데레 스타일이고 그건 우리 집 내력이기도 하다. 타고난 걸 어쩌라고. 또 알고 보면 그게 다 조상 탓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둘째가 주워왔을 리는 없고, 오래전 둘째가 갓 태어났을 때 우연히 언니네에서 언니의 시어머니를 뵌 적이 있다. 물론 언니 결혼식 때 뵌 적이 있긴 했지만 기억에 없었고 난 그때야 제대로 뵌 셈이다. 그분은 한마디로 얄상한 미인형이었다. 그땐 둘째가 친할머니를 닮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워낙 핏덩이였으니. 아이는 집안 그 누구라도 닮는다고 둘째가 자라면서 외모며 성격도 딱 친할머니 판박이다. 그러니 엄마는 둘째가 뚝뚝하고 츤데레인 외가를 안 닮아 다행이란 말을 그런 식으로 간단히 후려쳤으니 언니의 입장에선 친정 엄마가 딸을 칭찬해 준 마음은 고마운데 왠지 뒤가 찜찜할까 했을 것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건만. 그러자 언니는 걔가 얼마나 쌀쌀맞고 팩팩거리는지 아냐며 사실을 폭로한다.


그러고 보면 엄마와 딸은 뭔가 꼬인 관계다. 그러려니 해야지 뭐.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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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7-06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도 어딘가 꼭 닮은데가 있을걸요.

stella.K 2020-07-07 15:05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 핏줄이 어디 가겠습니까?
원래 집안 사람끼리는 툭툭하잖아요.ㅎㅎ

2020-07-07 0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7-07 15:08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ㅠ 그럴 때가 있죠.
쓸 때는 잘 썼으려니 해도 다음 날 일어나서 보면
또 들쑥날쑥한 게 보입니다.
그래서 또 다듬었습니다. 잘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ㅋ

페크pek0501 2020-07-07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엄마는 저를 제일로 친답니다. 그다음이 우리 애들이에요.
우리 애들한테 엄마를 힘들게 하지마,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ㅋ
누구는 손주들밖에 모른다고 하던데...

stella.K 2020-07-07 15:18   좋아요 0 | URL
언니가 맏이신가 봐요.
엄마도 손주가 좋긴한데 얘들이 지 엄마 가지고
놀리고 함부로 말하면 좋게
느껴지진 않나 봐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