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나오는데 비가 많이 온 관계로 버스를 탈까하다가 지하철을 타자했다. 지하철을 타려면 교회 입구에서 발을 돌려 한층을 내려가야 한다. 그러니까 난 애초에 그러기로 했다면 한층을 더 올라 올 필요가 없고 그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발길을 돌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키가 작달막한 한 남자 집사님이 갑자기 나 있는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혹시 내가 예전에 알고 있는데 얼른 알아 보지 못하는 걸까? 아님 내 뒤에 누군가 있어 그에게 알은 척을 하려고 저러나? 어쨌든 쉽게 알은 척을 못하고 못 본 척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 정말 나에게 볼 일이 있었다. 그는 내가 방역을 위한 체크를 안하고 예배 드리러 가는 사람으로 오인을 한 것이다. 물론 난 즉시 해명을 했다. 버스 탈까 하다가 지하철을 타려고 다시 내려가는 것 뿐이라고. 금방 오해는 풀렸지만 뭔가 모를 찜찜함이 한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언제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물론 방역 차원에서 예민하게 지켜보는 게 맞는 것 같긴한데 뭔가 감시 받았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엿 같았다. 더구나 그는 그렇게 오해가 풀렸는데도 사과 한 마디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물론 감시사회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 때문에 더욱 심해진 것 같다. 안전을 담보로 사람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게 어쩔 수 없다지만 코로나가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생각해 보라. 코로나 감염자들. 집이나 카페에서 넋놓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코로나에 감염됐다는 문자라도 받으면 얼마나 당황할 것인가. 순간 모든 것을 중단하고 공안에 체포되듯 끌려가 어딘가에 격리된다고 생각하면 옛날 전체주의 사회와 무엇이 다른가. 

 

지난 번에 교회에 감염자가 발견되서 2주간 폐쇄되기도 했는데 2주간 현장 예배를 드릴 수 없게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짜증 보단 그 감염자가 그날 어느 좌석에 앉아서 예배 드렸는가가 나중에 모니터링 되어 보고되기도 했는데 좀 서늘했다. 물론 그 사람에 대해선 나이와 성별 정도외엔 알려진 게 없는데 그렇더라도 그 사람도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이고, 그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마냥 가슴만 쓸어내릴 수마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이 언제 코로나에 걸릴지도 모르고 안 걸린다해도 잠재적 환자 취급 받고 감시 받고 있다는 걸 이렇게 피부로 느껴야 한다는 게 정말 인류의 비극 같다. 그저 빨리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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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10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 간에 불신이 자리하게 되는, 우리가 요즘 특이한 경험을 하고 있는 거죠.
코로나로 인해 잃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를 만나 본 지도 오래되었어요. 올해 들어 한 번도 못 만났으니까요.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stella.K 2020-08-10 14:14   좋아요 0 | URL
역시 코로나 이후 사람을 자유롭게 못 만난다는 게
제일 아쉬운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그나마 저는 지인 둘을 2월무렵에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땐 이렇게 확산될 줄 몰랐죠. 잠시있다 사그러들 줄 알았는데.
유럽 사람들 왜 마스크 안하려 하는지 이해되기도 해요.
거긴 워낙 개인주의 사회잖아요. ㅋ

2020-08-10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0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3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3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0-08-14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상한 팬데믹 시절,
뉴노멀이라는 이름의 규제
들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stella.K 2020-08-15 11:10   좋아요 0 | URL
그렇죠. 뉴노멀, 뉴노멀 하는데
과연 이러고 살아야 하나...?
물론 적응하기 나름이고 적응을 잘하는 자가
살아남는다잖아요. 그래도 감시받고 통제 받는 건 정말 싫습니다.
확실히 디스토피아의 세상인 것 같습니다.ㅠ
 

매미는

그렇게 폭우가 쏟아부었는데도

쓸려내려가지 않고

나무에 착 달라 붙어

잠시의 소강 상태를 틈타

울어대곤 했다.

 

그런 걸 보면

다시 한 번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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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05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우! 매미를 보시고 멋진 생각을 뽑아내셨군요.

정채봉 작가가 쓴 책에 일본의 한 센베 과자 가게 주인 이야기가 나와요. 결코 어제와 같은 센베는 굽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이에요. 그리고 ˝오늘은 기도드리고 싶은 센베가 구워졌어요.˝ 하고 자기가 구워 파는 과자에 만족스러워한다는 거죠.

이처럼 저도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됩니다. ㅋ

stella.K 2020-08-05 14:37   좋아요 0 | URL
근데 매미가 어제 잠깐 울더니 울지 않아요.
아무래도 이번 폭우 때 떨려내려가지 않았나 싶어요. 어떡해요...ㅠㅠ

언니는 참 은근 책을 많이 읽으시는 것 같아요.
그런 내용의 책이 있었군요.
저도 그래요.ㅠ

2020-08-08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08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08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09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0-08-09 19: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딱 지금 그 삘링을
느꼈는데...

이미 적어 주셨었네요.

놀랍습니다.

stella.K 2020-08-09 19:29   좋아요 1 | URL
ㅎㅎ 이심전심이네요.
전 의외로 그런 거에 민감해요.
여느 때 같으면 지금 시끄럽게 울 텐데
올핸 많이 울지도 않더군요.
다음 주말이면 말복인데
앞으로 얼마나 울어 줄까 싶기도 해요.
지금 못 울면 영영 못 울 텐데.
그렇게 울기까지 7년을 기다린다잖아요.
매미 입장에선 정말 서글픈 일이죠.
그래도 벌써 귀뚜라미가 울기도 해서 좀 놀랐어요.ㅋ

북프리쿠키 2020-08-14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면 주위에 웃는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네예~ 우리라도 실컷 웃고 사입시더 ㅎㅎ 말복에 원기 보충하십쇼^^

stella.K 2020-08-14 18:44   좋아요 0 | URL
앗, 쿠키님이닷!!
그렇지요. 근데 울 때 눈물 흘리는 것도 사람 밖에 없지 않나요?
하긴 황소도 눈물을 흘린다는 것 같은데 본 적이 없네예.ㅋ
그러게요. 어느 새 말복이네요.
여름도 다 갔습니다. 물론 늦더위가 남아 있긴합니다만
늦더위쯤이야.ㅋㅋ
쿠키님도 원기 보충하시길...^^
 

몇년 간 장마중 가뭄이랬다고 마른 장마가 계속 되더니 올해는 장마 값을 톡톡히 한다. 정말 비에 갇힌 느낌이다. 이런 날씨가 12일까지 갈거라고 하던데 이런 긴 장마는 지난 1987년의 기록을 깬 거라나 뭐라나. 정말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저 12일까지는 안 가길 바랄뿐이다.

 

어제는 일찍 자려고 했는데 tv에서 <어디선가 누군가의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립없니 나타난다 홍반장>을 한다기에 안 볼 수가 없어서 봤다. 김주혁만 살아 있었어도 안 보거나 조금 보다가 말았을텐데 괜히 안 보면 서운할 것 같아 봤다. 

 

 

사실 그는 살아생전엔 딱히 좋아했던 배우는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너무 일찍 죽었고 허망하게 죽었다. 죽고나니 생각나는 배우가 됐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제법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아직 그의 추도일이 되려면 몇달 남았는데 tv에선 왜 방송을 하는 건가 의아스러웠다. 별 생각없이 방송한 것 같다. 내가 너무 민감했나?

 

사실 이 영화를 이번에 처음 본 건 아니다. 오래 전에 본 기억이 난다. 그땐 처음 봐서 그런가 그냥 재밌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월이 흘러서일까 영화가 좀 별로란 생각이 든다. 뭐 촌스러운 건 차치하고라도 이 영화는 결코 여성을 위하거나 배려한 작품이 아니다. 보고 있으면 은근 화가난다. 김주혁이 맡았던 홍반장을 위해 상대 배역인 윤혜진(엄정화)을 바보로 만드는 참 허접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랑을 이루려면 상대의 눈에 많이 띄라는 법칙이 있긴 하다. 영화는 이 법칙을 노골적으로 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치과 의사라면 나름 똑똑할 텐데 여기선 뭐하나 재대로 하는 것이 없는 멍청한 의사로 나온다. 그래서 위험할 때마다 홍반장이나와 해결해 주고 거기서 사랑을 느낀다는 컨셉인데 왜 여자는 도움 받기를 좋아하는 나약한 존재라고 19세기적 사고 방식을 유지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서 도와준다면 그건 고마운 일이지 사랑을 느낄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여자에게 그렇게 친절을 베풀면 사랑할 거라고 착각하는가 보다.

 

더구나 홍반장도 그렇다. 그렇게 많이 여자를 도와줬는데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다. 바보거나 고자이거나. 난 여자의 생김이나 재산과 학력 유무와 상관없이 그저 순수한 마음에서 도와주는 거라고 하다면 그건 영웅심으로 똘똘뭉쳤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여자는 더 못 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들어 혜진이 운전을 하고 가다가 뒷차에 받힌다. 그리 크게 흠이 난 것이 아니라 미안하다는 사과만 받으려고 했는데 영화적 재미를 위해설까? 받힌 차가 사과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양아치짓을 한다. 여자는 관용을 베풀려는 거였는데 그런 양아치가 도로 위를 질주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만만하게 나와선 안 되는 거였다. 또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관용을 베풀면 오해 받는다. 날 좋아하나 하고. 아무튼 그럴 땐 법대로 하지고 하곤 경찰이라도 불러댔어야 했다. 물론 그러면 여자가 빡빡하게 군다고 또 뭐라고 그러겠지. 우리나라 법체계가 여자에게 호락호락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해도 욕 먹고 저렇게 해도 욕을 먹는 상황이라면 여자는 무조건 처음부터 말랑말랑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게다가 치과 간호사는 홍반장에 대한 정보를 물어다 주는데 어디서 듣고 썰을 푸는지도 명확치 않을뿐만 아니라 혜진은 그걸 꽤나 관심있게 듣고 있는데 보고 있노라면 사랑에 대한 관심 보단 속되게 보인다. 더구나 홍반장네에서 술을 마시고 거기서 잠을 잔게 그렇게도 대단한 것이어야 하는 건지. 어떤 영화는 전혀 세월을 안타고 10년, 20년 뒤에 봐도 여전히 좋다고 감탄하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는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 평점도 좋고 칭찬일색이던데 문제 의식을 가지고 봐야지 무조건 좋은 게 좋다는 식은 좀....

 

시나리오를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감독이 썼을지도 모르지) 전혀 여물지도 않고 로맨틱 코미디라면 여성 관객을 겨냥했을텐데 도무지 어느 한 장면도 여성스러운 가치가 빛났던 장면이 없다. 세상은 나쁜 놈이 사는 세상이다. 그래도 여자를 구하는 건 남자 밖에 없다는 걸 애써 주입하려고 했다. 이런 허접한 영화는 정말 사양하고 싶다. 그래도 김주혁을 생각해 끝까지 봐주려고 했는데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웬 공익광고를 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이 영화는 나와는 인연이 없는 영화였나 보다 예전에도 끝까지 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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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3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8-04 14:30   좋아요 1 | URL
아유, 왜요. 댓글이란 게 원래 아무 말이나 자유롭게 하는 건데요.
늘 제 서재에 무플이 안 되도록 항상 앞장 서 주셔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ㅎ

<새>를 했었군요. 원래 명작도 자세히 보면 구멍이 있다잖아요.
운이 좋으셨네요. 그러고 보니 <새>도 그렇지만 히치콕의 영화를 본지가
꽤 되네요. 사춘기 때 <사이코> 보고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히치콕은 확실히 대단한 사람 같아요.

비둘기 모여 있으면 좀 으시시하긴 하죠? 색깔도 그렇고.ㅋ

레삭매냐 2020-08-04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정말 영화를 많이 봤었는데
이제 영화 그리고 음악은 다 오래 전
추억으로만 간직하게 되었네요.

대신 책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
으니, 감지덕지해야 할까요.

짚어주신 대로 인연이 없는 영화가
있더라구요. 아마 의지박약이 문제가
아닐까 싶지만. 영화는 내리 달려야
하니깐요. 책은 뭐 읽다 말다를 거듭
해도 상관 없지만.

stella.K 2020-08-04 18:06   좋아요 1 | URL
의지박약...? 제가요...?
흥! 왕삐짐입니다. ㅋㅋ
그렇긴 하죠. 영화는 내리 달리는 맛이 있어야 하죠.
그래서 영화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정말 영화가 그렇게 많아도 한 큐에 보기는 참 쉽지 않더군요.
책도 그렇긴 하지만 어쩌다 뇌에 청량감을 부여하는 책 만나면
영화나 음악은 잠시 꺼둬도 되죠.^^

레삭매냐 2020-08-04 15:21   좋아요 1 | URL
아니 무신 말쌈을...

ㅎㅎ 의지박약의 화신인 저
자신에 대한 자백인 것을 !!!

이래서 주어를 정확하게 써야
하는 거군요 ~

moonnight 2020-08-04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영화 앞에 좀 보다가 짜증나서 껐던 기억 나요 -_-

stella.K 2020-08-04 14:41   좋아요 0 | URL
맞아요. 특히 이번에 보니까 엄정화를 완전 똑똑한 바보로
만들어 놨더군요. 열 받았어요.
모르긴 해도 감독이 가부장을 못 벗어난 사람은 아닌가 해요.

transient-guest 2020-08-07 0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당시에 이런 류의 코미디가 많았던 것 같아요. 한국영화는 발전도 엄청나게 했지만 시기별로 비슷한 영화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홍반장도 당시에 꽤 화제였는데 사실 그저 그랬어요.

stella.K 2020-08-07 14:05   좋아요 1 | URL
그랬나요? 암튼 이 영화 정말 빡쳤어요.
그 영화를 보면 그 감독이 보이죠.ㅋㅋ
 
나, 살아남은 자의 증언 - 위장된 3차 대전과 잃어버린 청춘의 녹슨 파편
김정옥 지음 / 늘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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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패러디한 거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뭔가의 흥미를 유발한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가 연극 연출을 했다고 한다. 일반인들에겐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이 방면으론 거의 대통령급 되시겠다.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며 한때는 회장까지 역임하셨다니 말이다.


이 책은 저자의 자전 에세이인데 스스로를 회색분자라며 젊은 시절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떠나 얘기할 수 없구나 싶다. 더구나 저자는 자본주의 인텔리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삶을 살았다. 예술을 사랑해서 중앙대학을 거쳐 서울 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전쟁 중 프랑스 유학을 할 정도니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는 프랑스에 도착하자 비로소 자유를 만끽했고 그 나라의 높은 예술 수준에 푹 빠져 공부했다. 그 점은 독자인 나도 부럽긴 하다. 무엇보다 비슷한 또래의 프랑스인들이 자신은 파시스트니 공산주의니하며 서슴없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데 놀랐다고 한다. 저자는 좌우익 어디에도 설 수 없는데 말이다. 좌도 우도 선택할 수 없지만 설혹 선택했다 해도 그것을 드러내기엔 우리나라는 얼마나 위험하며 용기가 필요한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지금은 우리나라 교육 수준이 높아져 외국에서 유학을 오기도 하지만 역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교육 개방의 기회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또 학생 때 구맥회 멤버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그 유명한 구인회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하니 지적 허영과 호기로움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세대인 한국전쟁에 대해 많은 회의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로 인해 그가 아는 적지 않은 사람이 죽거나 사상 때문에 북으로 갔다. 그러면서 전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려고 했다.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하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인데 거기에 어찌 명백하고 타당한 이유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아직도 찾지 못한 희생자의 뼈골이 얼만데. 그 숫자만큼이나 규명되지 않은 진실이 숨어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전쟁에 대해 묻고 있다. 하지만 마땅한 답을 구하지 못한 채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특히 맥아더와 트루먼의 관계 그 사이에서 낀 우리나라의 운명을 조명한 부분은 개인의 에세이로만 다룰 건 아니라고 본다. 어찌 보면 이 책은 개인은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조망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역사학자의 것 마는 아닐 뿐만 아니라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이런 증언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나의 역사 지식은 일천하다 못해 통탄할 정도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을 내기 전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이고 조언을 듣고자 했다. 그러자 지인들은 좀 산만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는데 잘 쓰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책을 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저자가 연극계에 종사를 해서 그런지 글이 간결하고 이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저자가 살아온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많이 짧지 않나 싶다.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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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밤이면 EBS2에서 하는 강연 프로를 계속 듣고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강연>, <마스터>, <클래식>을 연이어 방송하고 있는데 유명 강사진의 강연을 들을 수 있어 좋다.

 

나는 한동안 이것을 보느라 다른 방송은 거의 못 볼 지경이었는데 그렇다고 매번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건 아니다. 보다가 깜빡 잠이 드는 경우도 많다. 밤에 불 끄고 누워서 들으니 그럴 수 밖에. 또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원래 강의든 강연이든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듣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난 학교 때 공부를 못 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예나 지금이나 관심 있는 건 책으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니 강연을 듣는다는 건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도 밤마다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건 불꽃이 팡팡 터지는 느낌이다. 한밤의 향연이라고나 할까.

 

암튼 지금까지 가장 오래 편성을 한 건 강신주의 강연이다. 매일 25분씩 한 주에 네 번, 4주를 강연했으니.  

 

첫날 강신주 교수를 봤을 때 그가 아닌 줄 알았다. 일부런지 아니면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살이 엄청 빠졌다. 그러다 보니 얼굴에 굵은 주름도 보인다. 특히 이마. 한 10년 전쯤 그의 독자와의 만남에서 봤을 땐 거의 깍두기 머리에 약간은 촌티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살이 빠지니 세련된 것도 같고. 늙은 것도 같고, 암튼 묘한 조화다.

 

그는 이번 강연에서 아낌의 인문학을 강연했는데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고 아껴달라고 한다. 들으면서 과연 그렇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린 사랑 포화 상태에 있지 않나? 그것도 말로만. 사랑과 아낌이 같은 것 같기도 하지만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은 뭔가 그득히 채움이지만 아낌은 오히려 빼고 깎는 느낌이다. 

 

아무튼 그 문제의 강연집이 최근 책으로 나왔다. 읽어보고 싶긴한데 오래 전 <감정수업>을 사 놓고 읽지도 않았다. 읽으려면 그것부터 읽어야겠지.

 

어제 알라딘 TV에서 그가 나온 걸 봤다. 난 그가 그렇게 웃기는 줄은 몰랐다. 이렇게 웃기는 사람이라면 K 본부에 나올 땐 꽤 근엄하게 하고 나오는 거다. 입담이 장난이 아니다. 

 

요즘 어찌어찌하다 보니 웃기는 책을 많이 읽게 됐다. 요즘 대세는 잘 생긴 것 보다 웃기는 거라고 하던데. 책도 문장이 좋은 것 보다 웃기는 게 대세는 아닌가 싶다. 작가도 웃길 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니. 웃기지 못하는 작가는 작가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박상영 작가 알라딘 TV 고정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던데 뭐 어디 가면 굶겠냐마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 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주나? 본인이 그렇게 바라는데 고정시켜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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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7-30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거 라디오 방송으로 조금 들은 적 있어요 아침 11시부터 12시까지 텔레비전 방송으로 한 걸 라디오 방송으로 해주는 거예요 텔레비전 방송보다 좀 늦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게 텔레비전 방송이어서 목소리만 들으면 누군지 몰라요 처음에 이름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하지 않을 때도 있더군요 그렇게 잘 듣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네요 예전에는 그 말 안 한다고 그러더니 지금은 넘쳐나죠 그래도 진심이겠지요 저는 거의 안 하지만...


희선

stella.K 2020-07-30 14:39   좋아요 1 | URL
아, 그게 라디오에서도 하는군요.
저는 라디오는 잘 안 듣는지라......
이런 프로 좋긴한데 새삼 드는 생각은 모든 강연자가
다 강연을 잘하는 건 아니구나 싶어요.
어떤 사람은 좀 헤멘다 싶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강연 잘하고 그걸로 돈 버는 사람 좀 부럽긴 하더군요.
강신주도 어떤 땐 좀 헤멘다 싶은데 그래도 이 사람 강연 들으면서
철학을 좀 알아야겠구나 싶더군요.

syo 2020-07-30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깐 봤는데, 진짜 상영님 말 겁나 잘하던데요?? 부러웠다.....

stella.K 2020-07-30 14:44   좋아요 0 | URL
스요님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ㅎㅎ
입담 좋은 사람 보면 부럽긴하죠.
알라딘 TV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긴한데
의외로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안 보는 사람도 있긴한가 봐요.
박상영 작가 웃기니까 급관심이 가더군요.
공중파에선 어쩌면 그리도 점잖던지 깜빡 속고 있었습니다.
알라딘 TV 끝까지 봐요. 웃겨요.팧하하하하~

페크pek0501 2020-07-30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강신주 님의 책을 사 놓고 훑어보기만 하고 정독을 못한 1인입니다.
저는 밤에 일찍 누으면 오디오북을 듣거나 유튜브로 강의 들어요. 눈을 감고요.
눈을 쉬게 해 줘야 할 것 같아서요.ㅋ

stella.K 2020-07-30 21:27   좋아요 1 | URL
앗, 저도 방금 언니 서재에 다녀왔는데...ㅎㅎ

진짜 그 프로 정말 좋은 게 눈감고 듣기만 해도 된다는 거예요.
그러다 잠 들면 땡이지만...ㅋ
물론 어떤 강연은 재방송도 해서 나중에 챙겨보기도 하죠.
그건 아직 올레 TV에서 다시보기 서비스를 안 해 주더라구요.ㅠ

후애(厚愛) 2020-08-01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월이에요^^
이제 무더위 시작인 것 같습니다.
대구는 비가 그리 많이 내렸는데도 시원하지가 않았어요.
습도가 있어서 불쾌지수에요.
건강 챙기시고요, 시원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20-08-01 14:57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8월이 가장 덥다고는 하지만 입추가 있고,
말복이 있고, 여름의 끝이 보이는 달이기도 하죠.
조금만 견디면 될 것 같습니다.
모쪼록 수술 잘 받으시고 건강히 여름 나십시오.^^

Mirrr 2020-08-16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서든 자주 보고 싶은 박상영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