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에 들어왔더니 이게 있다.
이게 언제부터 있었을까? 어제도 없었던 것 같은데...

사실 이거 알라딘 서재 들어가면 오른쪽에 있긴하다.

그런데 개인 서재에서도 클릭해 볼 수 있으니 웬지 귀엽고 깜찍하다.

근데 이거 나만 볼 수 있는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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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16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 요런 팝업 붙여놓느라 셜연휴동안 사이트 오류 때문에 포스팅 댓글 좋아요 먹통이였어요. 자정부터 새벽 배송 ‘양탄자‘ 런칭하고 이벤트로 천원 주는 ㅋㅋ 짠돌이 꼼수 알라딘

stella.K 2021-02-16 16:37   좋아요 2 | URL
헉, 그랬나요? 전 그런 거 하나도 몰랐네요.
뭐가 잘 안 된다는 소리는 들었던 것 같은데 그게 이것 때문이란 말씀?!

오, 근데 새벽배송이란 게 생겼어요?
전 마*컬리만 새벽배송하는 줄 알았더니...
택배노동자들만 고생시키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신간만 그렇게 하는 거잖아요?
 

6.25 전쟁 때 남편을 잃은 여자는 아들 하나를 데리고 지금의 명동 유네스코회관 맞은쪽 골목 어귀 일본식 적산 가옥 1층에 '은성'이란 술집을 차리고 그곳의 주인이 된다. 그때는 전쟁 직후로 막대한 군수품(일명 PX 물품과 구호물자)이 남대문 도깨비 시장에 흘러들어 활성화되기 시작한 때였다. 멋 부리기 좋아하는 당대 문인들은 그곳에서 양복이나 트렌치코트, 모자 등을 사 걸치고 다방으로 출근해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다가 운 좋으면 원고료를 손에 쥐고 대폿집으로 몰려가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 무렵 대폿집은 그 이름만큼이나 사연도 갖가지였다. 이를테면 시인 조병화가 '포엠'이란 시를 썼는데 그가 자주 다니는 이름 없는 대폿집에 헌정해 그곳의 간판이 되었다. 폐허에서 주운 벽돌로 낮게 담을 쌓은 일명 '명월관'이라고 부른 노천 대폿집, 오로지 안주라고는 아지밖에 없어 '아지 스테이션'이라고 불리게 된 '무궁원' 등이 있었다. 그 가운데 '은성'도 그런 대폿집 중 하나다. 


이 '은성'엔 변영로, 천상병, 박인환, 전혜린, 이봉구, 윤용하, 김수영, 이전섭, 김환기, 문일영, 김기팔 등이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의 주인은 자신의 가게를 찾는 모든 사람에게 친구이자 누나이고 어머니가 되었다. 또한 그런 문화 예술인들에게 빈대떡을 부쳐주며 그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 주기도 했다. 문득 과연 장사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싶다. 주머니 사정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사정 보고 하는 것. 영혼을 위한, 영혼에 의한 영혼의 장사라고나 할까. 상처 난 마음에 음식만큼 위로가 되는 게 또 있을까. 그래서 사람은 소울 푸드를 찾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변영로가 아직 학생인 그 집 아들을 불러 술 배울 나이가 되었다며 잔에 막걸리를 따라 준다. 모르긴 해도 주인도 그것을 굳이 마다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원래 주도는 아버지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인데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없으니 아들이 주도를 배워야 한다면 그런 문인에게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알았을까? 담배 하면 공초 오상순이요, 술 하면 수주 변영로라는데 그런 그에게 주도를 배운다면 아들도 똑같은 술꾼이 되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도 제 운명이지 담담하게 받아들였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그렇게 첫 잔을 받아 든 은성 대폿집의 아들은 마신 후 잔에 남은 찌꺼기를 무심코 바닥에 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물론 그 순간만큼은 그게 실수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으레 남에게 건네받은 술잔에 술이 남아 있으면 바닥에 떨어내기도 하지 않는가. 그게 어찌 보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보는 입장에선 내가 주는 잔을 더럽다고 생각해서 떨어 버리는 건 아닌가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변영로는 그게 이니었다. 그는 은성 주인의 아들의 뺨을 한 대 때리며 "이 여사가 자식을 잘못 키웠구먼. 잔에 남은 곡식을 (땅바닥에) 버리다니." 하며 호통을 쳤던 것이다. 쌀 귀한던 시절 곡식을 땅에 버린다는 건 그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요즘 같으면 상상이 안 갈 일이다. 곡식 자체도 아니고 그것을 푼 물(?)에 지나지 않는데 그렇다고 남의 집한 아들의 뺨을 때리다니. 하지만 변영로가 권위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은성의 모자가 겸손해서일까 아무튼 그 후로 은성의 주인 아들은 절대로 남은 술을 바닥에 버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가 누군가 하면 우리가 잘 아는 국민 아버지 탤런트 최불암 씨다.    


그렇다면 이렇게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술찌꺼기를 땅바닥에 버렸던 이유만으로 뺨을 때렸던 변영로는 누구인가. 그는 시 <논개>를 쓴 시인으로 유명하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사실 알고 보면 시인 변영로는 거의 천재에 가까웠다. 1898년에 태어난 그는 1915년 조선중앙 기독교청년회 학교 영어반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6개월 만에 마쳤다고 한다. 1918년 <청춘(靑春)>에 영시 '코스모스(Cosmos)'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무엇보다 1919년에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1923년에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로 교단에 섰다가 1931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주립 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귀국을 한다. 이후 1933년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다 1934년 잡지 <신가정>의 주간을 지내다 광복 뒤 1946년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가 된다.


이처럼 변영로는 굉장한 엘리트였다. (농담이지만) 이런 사람이라면 아무리 귀한 집 자식이라고 맞을만하지 않을까. 더구나 유교 사상이 강한 나라에서. 아무튼 그 얘기는 최불암 씨가 유명해지면서 자주 회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불암 씨도 인터뷰 때 그런 질문을 받지 않았을까. 그때 왜 술찌꺼기를 땅에 버렸는지 (유명한 시인의 뺨을 맞으니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그러면 그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훗날 그의 자서전이나 평전이 나온다면 한 줄 정도는 그 일화에 대한 답을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은 그저 얼버무리듯 그 특유의 웃음소리를 들을 것만 같다. "글쎄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그냥 제가 나오는 '한국인의 밥상'이나 보시죠. 파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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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2-15 14: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명정 40년>은 저도 참 재미있게 읽었고, 아끼는 책입니다. ^^

stella.K 2021-02-15 14:16   좋아요 2 | URL
헉, 저 Falstaff 님의 서재에 있다고 오는 길인데...ㅋㅋ
그렇군요. 저도 나중에 읽어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2-15 15: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에는 제가 무척이나 문외한
인지라... 쩝...

stella.K 2021-02-15 15:52   좋아요 0 | URL
여기서 중요한 건 최불암입니다. 파하하하하~

cyrus 2021-02-15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주동 선생도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애주가에다가 머리가 좋았다고 해요. 양 선생은 누님의 글에 언급된 문인들과 한 번은 만나봤을 거예요. ^^

stella.K 2021-02-16 14:54   좋아요 0 | URL
당연하지. 나 어렸을 때 TV에도 몇번 나왔던 걸 기억해.
언변이 좋다고 하던데 난 워낙 어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장석주의 책 1권 보니까 양주동 선생이 그렇게 구두쇠였다고 하더군.
돈 안 주면 절대로 글을 쓰지 않았다고.ㅋㅋ

hnine 2021-02-1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님 저 시 우리 고등학교 국어책에 나왔던 것 기억나시죠? 시험문제에도 자주 나와서 한줄 한줄, 단어 하나 의미와 비유법등 공부할게 잔뜩이었던 시. 이 시를 왜 지금까지 그렇게 기억하게 만들었는지, 시험제도가 원망스러울따름입니다.
최불암씨와 은성에 관한 얘기는 방송에서 들어 알고 있었지요.

stella.K 2021-02-16 14:55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한번은 얘기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러니까 장석주 작가의 책에도 실렸겠죠.
물론 장석주 작가도 어딘가에 실린 이야기를 정리한 것일테지만.
그때 최불암 씨 왜 그랬는지도 얘기하던가요?
아, 그거 들었어야 했는데...ㅠ

이 시다뿐이겠습니까? 시를 시로서 배우지 못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엔 없을 것 같아요. 시를 느끼지 않고 해부하잖아요.
그러다 ‘논개‘ 노래로 나오지 않았나요? 이용이 불렀던 것 같은데...
7,80년대 시를 그대로 노래로 부르는 가수들이 몇 있었잖아요.
그때가 참 좋았는데. 아무리 케이팝이라고 하지만 요즘 아이돌들이
부르는 노래가 뭐 옛날 노래만한가요? ㅠ

hnine 2021-02-16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개는 이동기라는 가수가 불렀고, 제목은 논개이지만 가사가 다를거예요.
시를 그대로 노래로 부른 것으로 기억나는 가요는 송창식의 푸르른 날, 마야의 진달래꽃, 정미조의 개여울, 그 정도 밖에 기억이 안나네요.

stella.K 2021-02-16 19:11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저는 왜 그걸 이용이 불렀다고 생각했을까요?ㅋㅋ
그러니까요. 저 변영로의 시를 변형시켰을까요?
암튼 그 시절 가수들은 시를 그대로 부르기도 했고
가사 자체가 시 같은 것도 많았죠.
대표적인 게 양희은의 아침이슬이나 한계령이잖아요.
조용필이도 그렇고. 등등...
 

어제는 날씨가 춥지 않더니 하룻밤 사이에 다시 겨울로 곤두박질입니다.

하긴 예전 같으면 2월도 엄연한 겨울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점심으로 붕어빵을 사다 먹었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붕어빵을 파는데 주인 할머니가 못해도 한 10년 전부터 겨울이 시작되면

붕어빵 장사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천원에 4개를 팔았던 것 같은데 2년인가 3년전부터 3개를 팔더군요.

그래도 할머니가 인심이 좋아 많이 사면 두 개쯤 덤으로 주시곤 하셨습니다.

이번 겨울이 시작될 때 사 먹고 이제 사 먹었으니 올겨울은 이것으로 붕어빵과는 안녕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이번 겨울이 시작될 때 갔을 땐 덤을 주시더니 오늘 가니 덤을 안 주시더군요.

그래서 섭섭한 마음에 "덤 좀 주시죠." 했더니 마스크 낀 얼굴에 눈을 아주 잠깐 지그시 감는데 덤은 없다는 단호함이 느껴져 순간 좀 무안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곳은 천원에 두 개 판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들어 본 것 같긴 합니다. 그러니 반박도 못하고 하는 수 없이 에누리 없는 오천원어치 붕어빵을 들고 돌아와 엄니랑 먹으며 좀 전에 겪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이 할머니 돌아 오는 다음 겨울엔 천원에 두개 팔지 않을까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엄니는 두 개라도 팔면 좋겠다고 합니다.

평소 같으면 인심이 박하다고 뭐라고 했을텐데 붕어빵 파는데가 정말 흔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우린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사 먹으니 다행이다 싶은 거겠죠.

문득 붕어빵이 흔하게 팔지 않은 것도 코로나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붕어빵 같은 건 정말 우리나라에만 있는 서민 대표 간식인데 이게 파는 곳이 많이 없다니 아쉽긴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그 할머니 모쪼록 건강하셔서 돌아오는 겨울에도 변함없이 붕어빵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쓰고보니 염장인가요? 그렇다면 용서하시길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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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2-08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엔 역시 붕어빵이죠. ㅎㅎ
사서 그 자리에서 바로 먹으면 더 맛있는...

stella.K 2021-02-09 15:55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 따뜻하고 바삭한 식감을 놓치지 않으려면...!ㅎㅎ

잘잘라 2021-02-09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도 천 원에 두 개예요. 얼마 전까지는 2,000원에 다섯 개.. 아무튼 먹고 싶네요. 꿀꺽.

stella.K 2021-02-09 16:0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천원에 두 개하고 덤 주면 그게
왠지 기분이 좋죠. 그게 상술이라는 건데 말입니다.
그 할머니는 그런 요령을 생각 못하신 것 같은데
다음 겨울에도 덤 안 받아도 좋으니 세 개에 팔았으면 좋겠어요.
아님 2천원에 다섯 개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요.ㅋㅋ

희선 2021-02-09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덤을 주다가 주지 않으면 참 아쉬울 듯합니다 그것도 코로나19 때문이겠지요 그것도 이해해야겠네요 아니 덤 하나만이라도 주지... 그래도 할머니가 건강해서 다음 겨울에도 붕어빵 팔면 좋겠네요


희선

stella.K 2021-02-09 16:0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 할머니 아니면 어디가 사 먹을 때도 없는데 말입니다.
코로나 땜에 박해진 것도 있지만 지금은 폐업하려고만 하지
개업은 엄두를 못 내잖아요. 그래서 붕어빵을 더 엄두를 못 내는 건
아닐까 싶어요. 붕어빵은 크게 자본 들이지 않아도 될 텐데 말입니다.

cyrus 2021-02-1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냥 주는 대로 먹으려고요.. ㅎㅎㅎㅎ 가격이랑 개수에 신경 안 써요. 요즘엔 국화빵과 와플을 만들어 파는 곳도 찾기 힘들어요. 와플 한 개 2000원이면 두 개 사서 먹을 수 있어요. ^^

stella.K 2021-02-12 18:25   좋아요 0 | URL
그럼 와풀 하나가 천원이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왜 그런 간식들이 귀해졌는지 모르겠어.
이럴 때 장사했으면 꽤 쏠쏠할 것 같은데...
 

잡지를 별로 즐겨보지 않는 관계로 월간 <뮤지컬>을 오래 전에 두서너 권 보다 말았다. 뮤지컬 대본을 계속 썼다면 계속 봤을지도 모른다. 성격이 지랄같아서였을까 아님 운이 없어서였을까? 내가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데 이걸 계속 쓰나, 이런 잡지 보는 것도 마음만 심란하게 만드는 같아 관심을 끊었다.  

 

그러는 사이 코로나가 들었고 작년에 공연계는 거의 폭망하다시피 했다. 그게 참 마음이 아팠다. 사람의 앞날이 어찌될 줄 알고 그런 모진 마음을 먹었을까 후회도 했다. 비록 일은 안 하더라도 잘되길 바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다 며칠 전, 문득 공연계가 폭망인데 이런 잡지라고 제대로 나올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년 12월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 조승우가 그 마지막을 저렇게 장식하고 있다. 잡지 만들어 돈 벌었다는 출판사를 본적이 없는데 작년 같은 어려움에 12월호까지 냈다는 건 거의 기적 같은 일이 아닐까.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뮤지컬 공연 단체들이 줄줄이 공연을 취소하고 있을 때 이 잡지는 어떻게 버텼을까. 생각하면 짠하고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그래도 올핸 백신도 나오고 우리나라는 방역이 잘되는 매우 드문 나라중 하나니 하반기 정도엔 방역수칙 지켜가면서 공연을 다시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이 잡지도 다시 나오지 않을까. 암튼 너무 오래 휴간하지 않게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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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17 20: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발레는 온라인 공연으로 하고 갈라쇼는 신청한 팬들 뽑아서 온라인(아마도 비티에스 공연처럼)으로 연다고 하는데 뮤지컬은 스폰서 대기업 측에서 지원이 없나보네요 보통 패션 여성 잡지들은 대기업 계열 출판사에 소속되어 있어서 이런식으로 폐간이 안되는데 이제 마니아들이 보는 비주류 예술이나 특정 주제를 다룬 잡지들은 종이가 아닌 온라인 영상 유툽채널로 가야하나봐요

stella.K 2021-01-17 20:46   좋아요 2 | URL
저도 공연계에 대해선 별로 아는 바는 없네요.
미국이 작년에 단 한 건도 공연을 성사시킨 적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방역을 잘해서 다른 공연은 살살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슨지 외국 어느 단체가 해외 스케줄이 줄줄이 캔슬됐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가능해서 자가격리 기간 지켜가면서 공연했다는
얘기도 들었구요.
이런 잡지는 공연을 많이해야 낼 수 있는데 온라인도 뭐가 보여줄게
있어야 보여주지 않겠습니까?
요즘엔 언택트 공연 많이들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뮤지컬로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암튼 마음이 아프네요.ㅠㅠ

회개하는 마음으로 조금 아까 저 잡지 신청했는데
스콧님도 생각있으시면 한 권 사 보시는 것도...!ㅋㅋ

cyrus 2021-01-1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뮤지컬 마니아가 아닌 이상 이런 잡지가 있는 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저는 뮤지컬을 자주 보는 사람이 아니라서 잡지의 존재를 오늘 처음 알았어요. 공연 문화가 어느 정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이와 관련된 잡지도 다시 나올 거예요.

stella.K 2021-01-18 15:13   좋아요 0 | URL
나도 뮤지컬은 자주 못 봐.
넘 비싸서. 서민들도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이 제작되면 좋겠어.
모든 게 다 기승전코로나지.
빨리 일상을 되찾아야 할 텐데...

레삭매냐 2021-01-1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웨이에서 화이자 백신 맞고 수명이
죽었다는 기사를 보고 식겁했습니다.

백신이 만병통치약은 아닌가 봅니다.

stella.K 2021-01-18 15:16   좋아요 1 | URL
그럼요. 독감 백신도 안전하지 못해요.
그거 맞고 죽는 사람은 보도가 안 되서 그렇지
해마다 있어왔다고 합니다.
그래도 백신을 안 맞는 것 보다 맞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권장하는 것이고.
결국 확률게임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21-01-18 1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에 계간지 하나 1년 정기구독을 신청했는데 다들 어려운 가운데 다른 물건도 아니고 책이라서 신청했어요. 휴간 내지는 폐간을 한다고 하면 마음이 짠해지지요.
각종 공연도, 각종 강의도 빨리 정상화됐으면 좋겠어요. 저야 공연을 하는 게 아니라 구경 다니고 강의 수강을 하고 싶은 사람이지만, 그 분야 종사자들은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이렇게 어려운 시대를 우리가 살게 될 줄이야...

stella.K 2021-01-18 19:24   좋아요 1 | URL
아, 정말이어요. 이렇게 어려운 시대가 올 줄은...
그동안 어렵다, 힘들다했던 것도 엄살이었을까,
불평이었을까 그에 대한 벌은 아닐까 벼라별 상상을 다하게 되요.
그 잡지 만들었던 사람들은 지금 뭘하고 있을까요?ㅠ

근데 언니 정기구독 잡지 뭔지 궁금하네요. 흐흐

희선 2021-01-19 0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잡지가 오래 가지 않기도 하는 듯합니다 공연, 뮤지컬을 말하는 잡지는 2020년에 더 어려웠겠습니다 그래도 지난 12월호까지 냈네요 쉬는 게 오래 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공연하는 사람도 힘든 한해였겠습니다 2021년에는 괜찮아지기를 바랍니다


희선

stella.K 2021-01-19 18:12   좋아요 1 | URL
아마도 자구책들을 강구하겠죠.
올해는 나아질 거라고 믿습니다.^^

2021-01-19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1-01-19 18:13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알라딘에서 알아 봤어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돌이켜 보면 2020년이 밝았을 때 나름 좋은 해가 되길 우리 모두는 

빌었을 겁니다.

하지만 상상 유래가 없는 코로나 팬더믹에 올 한 해를 저당잡히고 말았죠.

아마 2020년도 이런 한 해가 될 줄은 몰랐을 겁니다.

 

벌써 오늘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까 만감이 교차합니다.

생각해 보면 2020년에게 미안하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린 훗날 올 한 해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2020년은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저 담담하게 지나가려 하지만

그래도 내심속으론 누구라도 사라져 가는 2020년에게 위로의 말을

걸어주길 바라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2020년이 누구에겐 천만 뜻밖으로 기쁨의 한 해였는지도 모르고,

누구에겐 슬픔과 아픔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는

2020년에게 고운 작별을 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내 인생을 위로하고 내일부터 또 새롭게 시작될 한 해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요며칠 전부터 아는 지인들에게 송년인사를 하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사느라고 수고했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일일이 다 전하지 못한 분들께도 이 페이퍼를 빌어 인사를 전합니다.

사느라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모쪼록 2020년 잘 보내주시구요,

2021년도 소망을 담아 예쁘고 사랑스럽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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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12-31 1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힘들었던 올 한해였던 만큼 내년에는 좀 더 행복한 나날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스텔라님께서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stella.K 2021-01-01 19:36   좋아요 0 | URL
막스무스님, 반갑습니다. 저의 서재에서 뵈니까 더 반갑네요.ㅋ
그래요. 막스무스님도 지난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새해가 밝았네요. 저도 올해 행복한 한 해로 기억되길
축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blanca 2020-12-31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왜 갑자기 울컥하죠. 스텔라님과 같은 마음을 가져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21-01-01 19:3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죠? 저도 코로나 핑계대고 2020년에게
너무 못해 준 것 같아 미안하더라구요.ㅠ
이제 2020년은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21년이 왔네요. 21년도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기쁘게 살아내면 마지막 날이 됐을 때 잘 보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브랑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선 2021-01-01 0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20년이 올 때는 다른 마음이었을 텐데, 그 해를 맞고 보니 코로나19로 이상한 한해가 됐네요 그렇게 길게 가리라고 생각도 못했군요 2020년, 아직 다 가지는 않았어요 음력이 있잖아요 바로 새해가 익숙해지지 않는데, 음력이 있어서 적응하는 시간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스텔라 님도 2020년 사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사는 게 별건가 싶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살고 한해를 보내는 건 대단한 일이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stella.K 2021-01-01 16:4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죠? 우린 2020년 13월을 사는 셈이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한 해의 진짜 시작은 봄이 시작되는 3월일지도 모르고,
한 계절을 3개월씩 나눈 것도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라고
하는 것도 같아요.
그러니까 우린 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지요.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자신에게 허락해 준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올해 무엇을 계획하셨든 모두 이루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21-01-01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어려운 한 해를 보냈습니다. 서로 토닥토닥 해 줘야 할 것 같아요.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스텔라 님이 뜻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리는 행복한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 ★ ★

stella.K 2021-01-01 16:48   좋아요 1 | URL
그럼요. 저도 언니 토닥토닥! ㅋ
수고 많으셨어요.
저도 감사했어요.
새해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근데 사진 또 바꾸셨네요. 빨강이 잘 어울리시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