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조광화 희곡집] 悲劇精神의 復活(上)

 

서문에 대신하여 - 悲劇精神의 復活




1/

연극창조는 나의 열정과 표현의지에 의해 행해진다.




2/

의지는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를 돌아 보면 쓸쓸하다. 나의 연극은 인간의 의지와 존재를 깨닫고 체험하고 싶은 수행의 과정이다.




3/

극작가들은, 연출가들은, 그리고 배우들은 시대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4/

어떤 이들은 연극을 통해 부를 얻고자 하고, 이름을 얻고자 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 연극 자체를 위하여 사는 자는 얼마나 있을까. 아니면 연극함으로써 존재하는 자는 있는가. 그저 그의 호흡이 연극인 자는 있는가? 연극은 연극하는 사람의 삶에 어떠한 기여를 해야 하는가?




5/

연극은 심장에서 머리로 그리고 이제는 눈으로 옮겨 갔다. 나는 머리의 연극도 감각의 연극도 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연극을 가슴으로 되돌리고 싶다. 그 방법론은 신화시대에 숨어 있는 원형에 대한 탐구다.


이 시대의 연극은 브레히트와 사실적 심리주의에 병들어 있다. 그들에 의해 연극을 보면서 이해하고 생각하려 드는 관성이 생겼다. 모든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어야 속이 편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감성으로 연극을 감상하는 것이 힘겨워졌다.


혹자는 감각으로 연극을 만드는 것을 감성적 작업과 혼동한다. 감각적 연극은 우리의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열정과 유리되게 만든다. 감각적 연극의 효과는 쓸쓸함의 확인이다.


원형적 연극은 우리가 진실로 바라는 욕망과 열정을 드러 내고 자극하는 연극이다. 너의 열정이 시키는 대로 터뜨리라. 원형적 연극의 감상에는 논리나 감각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니,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진다. 뛰는 심장의 박력에 온몸을 맡겨야 한다. 그 태도가 감성적 접근이다.


6/

카리스마 CHARISMA


ㄱ.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傳導上의 기능. 불가사의한 일을 하고 병을 고치며 예언하는 능력 등을 가리키는 말.

ㄴ. 사회의 지배자나 지도자의 선성불가침한 神威的 권위.


동아출판사의 국어사전에 나오는 해석이다.


7/

카리스마는 무엇으로부터 나오는가? 연출의 카리스마와 배우의 카리스마는 어떻게 다른가?


연출은……. 끊임없는 정열, 스테미너, 샘솟는 창조력, 자유분방한 상상력, 강력한 추진력, 치밀한 조직력, 그리고 사람을 끌어당기고 휘어 잡는 지도력…….


배우는……. 범접 못할 분위기, 영적 신비로움, 그 앞에 무너질 것 같은 기운, 보여지는 것 이상의 어떤 존재, 다의미의 표정, 단호하고 범상찮은 움직임들, 한편 지극히 평범하여 친근한 인간미 등등…….


8/

대중성과 예술성, 그 미묘한 화해.


고도의 예술적 경지를 이룩하여 존경받고자 하는 욕망,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하고 쉬운 이야기로 가능한 많은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동시에 존재하여 연극인들을 괴롭힌다.


9/

연극은 시대를 역행하는가?


이 시대는 영상과 정보의 시대다. 그리고 조직이 무너지고 있다.


전세계는 상업주의로 통일된다. 첨단의 이데올로기는 생명론적 세계관이다. 비경제적이고 소비적인 인간관계로 끈적거리는 연극단체들은 깔끔한 문화에서 점점 소외되고 있다. 보수적이다 못해 후진의 혐의까지 받고 있다. 연극은 새로움과는 멀다. 연극이 보여 주고 말하는 것들은 거의가 구태의연하다.


유일한 희망은 생명론적 우주관이다. 연극은 가장 생명에 충실할 수 있다. 그러나 연출 중심의 연극은 얼마나 생명으로부터 멀어졌었던가. 기호에 가까운 연출미학의 범람은 기계적 배우들을 양산시킨다.


작가는 더 이상 미래지향의 세계관을 제시하지 못한다. 소설의 작가는? 영화작가는? 이 시대는 무엇이건 절대적인 것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분위기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주장은 불온하고 위험스럽게 보여지는 것이 아닌가? 보통 말하는 권위의 실종이고 권위에의 거부다. 인터넷의 작가들은 표면적으로 절대적이지 않다. 사용자들의 자의적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0억이 사용자라면, 인터넷은 10억을 사로잡는 이데올로기다. 컴퓨터와 영상정보는 가장 자율적임을 위장하는 가장 강력한 절대다.


연극은 무엇을 주장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위기를 맞았다. 주장하면 관객은 거부감을 일으킨다. 주장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 흥미를 일으킬 수 없다.




10/

무거움이 모멸당하고 있는 이 시대에 남은 두 가지 무거운 주제.


1. 대중과 개인의 대립.

2. 남자와 여자의 대립.




11/

연극은, 특히 드라마는 무거움의 대표였다. 전통적으로 드라마의 주류는 비극이다. 드라마를 통해 인생의 심각한 문제들을 생각했었다.


연희적 연극들은 인생의 의미보다 볼 거리 제공이 주목적이었다. 극장주의적 연극은 좀더 발랄해지는 경향으로 간다. 그러나 가벼움의 영역은 연극 고유의 것이 아니다. 수많은 경쟁자들은 가벼움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한편, 심각한 연극을 거부하는 이때에, 이 시대의 마지막 무거움들을 가볍게 다뤄 낼 수 없을까? 아니 역으로 철저히 무거워 그 특이성을 무기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이 관객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 될까?


가벼움에 대한 선호요, 나만의 스타일을 가지려는 경향, 그러면서도 보수적인 지금의 관객들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 어려운 과제다.




12/ 96. 7. 8

집단이 표출하는 에너지. 개인으로 보자면, 늑대인간처럼, 시대와 동떨어진 어느 개인이 보여 주는 경이와 충격은 집단의 경우에도 가능하다. 스즈끼는 이질적 집단과의 충돌로 인한 연극적 경험을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만 얘기한다면, 늑대인간처럼, 신기함만을 쫓을 우려가 보인다. 문제는 그 집단만의 문화적 파워와 대중의 보편적 의사소통 체계와의 조화다. 그래서 스즈끼는 가부끼 집단의 기호화된 연극언어를 언급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집단은, 어떤 집단성으로, 어떤 연극언어를 만들어 낼 것인가?


13/ 96. 10. 30

신화는 일정한 문화집단을 유지시키는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신화는 그 성운들의 무의식이 구현된 것이라기보다 성원들의 무의식을 의식화시키기 위한 교묘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성원들은 신화를 통해 집단의 바라는 바를 자신이 바라는 바로 믿게 된다.

나는 신화에 매혹당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은 원형에 매혹당하고 있었다. 신화는 역사 이후의 체제유지에 필요한 일종의 이데올로기라면, 원형은 역사 이전의, 조직 이전의 생명체로서의 개인이 갖는 동물적 욕구와 의지다. 어떤 ‘조작된 신화’는 집단의 유지를 위해 원형의 바라는 바를 왜곡 변형한다. 원형은 신화의 힘에 의해 억압당한다.


나는 그렇게 억압당하여 고통받고 있는 동물적 원형에 주목한다. 그 동물적 원형들은 때로 신화적 세계를 위협하고 파괴시킬 수도 있다. 때문에 어떠한 집단의 신화를 위협하는 동물적 충동을 되살리려 했을 때, 그 집단의 방어적인 공격은 충분히 예상된다. 나는, 이미 그 신화의 방어벽을 호되게 당하고 있다.


내 작품들에서, [꽃뱀…….], [오필리어], [여자의 적들(가마)], [남자충동], 가족의 신성함을 해치는 설정들, 특히 친족을 살인하는 설정들은 가족신화에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교육받은 신화를 한 꺼풀 벗겨보면, 생명력으로 가득 찬 인간의 참모습이 있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나는 신화에서 출발하였지만 사실 ‘조작된 신화’와 정면으로 싸워야 할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자, 이 신화의 벽을 어쩔 것인가?




14/ 96. 11. 1.

문화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형식이 치밀해지고 기교가 세련되어진다. 그러나 그럴수록 형식과 기교를 있게 한 에너지와 정서가 가려진다.


문화가 발전한다는 것은 두 가지 방법으로서다. 하나는 고도로 세련된 방법론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좀더 많은 사람들에 공유되도록 공통의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늘려 간다는 것이다. 전자는 일반 대중이 향수하기에 어려워지고, 후자는 대중 취향에 아첨하게 된다. 어느 것이든 문화를 촉발시켰던 그 무엇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이다.


서구의 연극이 그러한 길을 걸어 한계에 부딪쳤다. 잘 만들어지고, 세련된 공연이지만 에너지를 상실해 간다. 연극은 더 이상 개발해 내야 할 새로운 방법이 별로 남아 있질 않아 보인다.


그럴 때에 해답의 한 방법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연극의지를 촉발시켰던 그 무엇으로. 그것은 생의 의지다. 진정한 연극의 가치는 배우가 발산하는 ‘생체 에너지’를 호흡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문화를 의심하고, 신화의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순수했던 몸의 바라는 바를, 영혼의 저 깊은 속에 감금되었던 원형들에 주목할 필요가 절실하다.




15/

내 연극의 주인공들은, 이상주의의 억압 속에 사그라지는 ‘생의 의지’로 고통받은 자들이다.


역사상 존경받는 문화작가들은 거의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나 싶다. 그들이 페시미즘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조차도. 왜? 작가들은 나름으로 이 세상을 파악하여, 희망을 보면 본 대로, 부족함을 느끼면 그것을 메꿔 줄 이상향을 꿈꾸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작가란 기실 꿈꾸는 자가 아닌가.


또한 그 문화의 수요층인 독자들로서도 고단한 현실을 이겨 나가게 할 가치있는 수단은, 작품 속의 이상향들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 이상주의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문학유산은 긍정적이고 온건하고 인간의 비전을 옹호해 온 것이다. 참으로 비관주의적인 작가에서조차 이 비관적인 삶에서 탈출하고자 의자하고 지혜를 짜내는 가련한 노력들을 보아 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강한 의지를 가진 주인공이 등장할수록 독자들은 열광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참으로 그러나, 이상주의자가 제시한 비전은 항상 우리를 약간씩 앞질러 간다. 아, 맛볼 수 없는 이상향이여! 그들은 변명하기를, 꿈을 꾸고 있는 인간이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망각하고 있다. 저 멀리 이상향을 바라보느라 여기 이곳에 있는 누추하고 추악한 실존을 망각하고 외면하고 있다. 이상주의의 극은 페시미즘에 다름 아닌가.


꿈꾸는 일은 소중함에 틀림없다. 그러나 미래의 달콤함에 마취되어 실존의 나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의 추악함 비열함을 정면으로 응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모습이기에. 바로 나이기 때문에.


이상주의의 달콤함에 젖어 버린 이 시대도 때로 실존을 그려 내기는 한다. 그러나, 그들이 수용하는 실존이란 고작, 왜소하고 소극적인 인물들이다. 만약, 실존의 가장 강렬한 특징인 ‘생에의 의지’를 위선적 신화로 위장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 낸다면, 이상주의자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게 될 것이다. 순수한 생의 의지는 이상주의자들의 비전을 일시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파괴적 열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으로 그러나, 우리에게 ‘생에의 의지’가 이다지도 약화되어 가는 것을 방관한다면 삶은 얼마나 허탈한 것이 되고 말 것인가. 아무튼 지금 이 시대처럼 실존이 푸대접받던 때는 없었을 것이다.




16/

꿈을 실현시켜 주는 드라마 주인공들은 보통 영웅적 인간형들이다. 온갖 역경을 뚫고 초인적 의지를 관철시킨다. 나는 영웅을 탄생시키기 위한 희생들에 주목한다. 영웅 스스로의 희생이 아니라, 영웅 주변의 희생을…….


신화의 주인공들은 영웅들이다. 그들은 한 민족이나 국가를 탄생시키고 인류를 구원하기도 한다. 마땅히 존경받을 인물상들이다. 지금까지도 이야기거리의 주인공들은 거개 영웅의 변형이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을 내세울지라도 무언가 훌륭한 면모를 통해 감동시킨다. 영웅이 이야기의 주인공임은 고대나 현대나 별 변화가 없다.


그러나 영웅은 극소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웅에 의해 희생당하거나, ‘영웅 지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산다. ‘짐’이라니!


‘햄릿’, 그는 가족의 불화를 가족 내에서 끝내지 못하고, 그 영웅적 성격으로, 플로니어스 일가를 몰살시킨다. 난 레어티즈와 함께 분노한다. 레어티즈가 햄릿보다 비열하고 못난 행동으로 스스로의 죽음을 재촉했다고 아무리 웅변해도, 햄릿의 딱한 비극적 처지보다는 레어티즈의 비열한 분노에 더욱 공감한다.


보라! 영웅, 그 선한 자들의 횡포를! 나는 분노한다. 그가 아무리 긍정적 가치를 지녔더라도, 그의 힘으로 나의 가치가 위협받는다면.




17/

우리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가치들은 정말 타당한가. 혹시, 우리들의 생명을 죽여 가고 있는 것은 아니가. 신화처럼 자리잡은 건전한 시민의식은 우리 대다수를 위한 것인가? 혹시, 소수의 영웅이나, 그 영웅에 빌붙어 사는 무리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18/ 96. 11. 9.

정의는 없다. 권력은 있다. 정의는 권력자들의 체제 유지적 이데올로기다. 정의를 주장하는 모든 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권력에 봉사한다. 이것이 세계다.


선악은 없다. 미추는 있다. 악은 불쾌함을 일으키는 모든 것들이다. 관객들은, 미학적 묘사에 성공한다면, 무대의 인물이 아무리 악마일지라도 매료당한다. 이것이 예술이다.


세계나 예술이나 그 얼마나 허위로 가득 찼는가. 온통 허영 덩어리들이다. 신화만큼이나 조작의 냄새가 농후하다. 심지어, 나 또한 세계와 예술에 많은 부분 봉사한다. 구역질이 난다.


어떻게 해야 나의 참 생명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19/

연극에서 문학성과 공연성의 싸움. 무엇이 더 연극의 본질인가 하는 논쟁이라 할 수도 있다. 텔레비전, 영화, 멀티미디어의 공격에서 살아 남고자 하는 연극인들의 악전고투가 연극만의 것을 찾으려는 노력의 배경이다.


지금 이 시점, 그러한 노력들은 연출가 중심의 다양한 퍼포먼스적 성과물들로 해결점을 찾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지나친 공연성 추구는 너무나 많은 자리를 연출가들에게 양보함으로써, 쇼가 되어 간다. 연출가들은 기본적으로 방법론자들이다.


연극의 본령은 인간이다. 특히, 인간의 본질, 깊은 곳의 열정, 생명력이 나의 관심사다. 생명이 껍데기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지쳐 쓰러진 모습도 나의 묘사 대상이다. 연극의 논쟁들은 인간을 보이기 위한 이념이요, 장치요, 기교요, 아이디어이고, 심지어 잔재주일 뿐이다.


결국, 연극의 본질에 가까운 영역은 배우다. 배우를 통해 인간의 열정을 되살려 내는 일, 그것이 연극의 본질이다. 그에 비하면 공연성도 문학성도 하위개념이다. 문학성의 지나친 사변도, 공연성의 지나친 쇼도 모두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인간의 본질이 아닌 다른 무엇에 집착하면 할수록, 이미 그것은 연극 아닌 다른 어떤 장르로 향하는 것이다.


연출도 작가도, 배우를 돕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배우는 마땅히 자신의 생명을 찬양할 줄 알 만큼 정열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생명이 방해받을 때 분노하거나 좌절할 줄도 아는 예민함을 지녀야 한다.




20/

生 그 자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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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 위에 섰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


책상위에 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거야.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도 봐야 해.

틀리고 바보 같은 일일지라도 시도를 해봐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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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4-07-16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 갈게요~~^^*

tnr830 2004-07-16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퍼갈께요

비연 2004-07-16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감동이 전율처럼 느껴지네요...
로빈 윌리암스가 이런 배역도 멋지게 소화해내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구요.
저도 냉큼 퍼감다~~^^
 
 전출처 : 마립간 > [퍼온글] 통일국호 Corea

“C-코리아, 통일조국의 지름길”
 COREA 되찾기 연대회의 첫 포럼 가져
COREA 국호개정운동의 의미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29일 오후 2시 서울 경희대 종합강의동 509호에서 열린 ‘통일국호 COREA되찾기연대회의 제1차 포럼’ 참가자들은 국호개정운동이 제국주의 잔재로부터 벗어나 민족적 자주성을 발현시키려는 운동이며 조국의 통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운동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COREA 국호개정운동은 8천만 민족의 운동

박인주 서울 흥사단 대표는 COREA 국호개정운동에 대해 “남과 북이 통일이후 구호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운동이며 남.북.해외를 아우르는 8천만 민족의 한민족 공동체를 구성하여 통일뿐만 아니라 문화공동체, 역사공동체로서 이 지구촌에 민족적 자존심을 드높일 수 있는 운동이다”고 설명했다.

첫 발제자로 나선 김승국 평화운동가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옛 국호, 지명 되찾기 운동에 대해 역사청산을 통한 통합, 통일, 화해를 시도하고 있는 의미 있는 운동이라고 평가하고 “북조선을 조센징이라 부르거나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에 대한 일본인들의 위협감을 담아 ‘북’이라 부르는 등 조선인을 폄하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의도를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칭하는 이름은 일본인들의 세계관을 담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 김승국 평화운동가의 설명이다.

이어 COREA란 명칭이 중립통일국가의 국호로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단일기에 COREA를 새겨 아테네 올림픽에서 사용한다면 멋진 운동이 될 것이라 제안했다.

오정윤 한국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COREA 국호개정문제를 역사회복과 결부지어 발제했다.

오정윤 소장은 일제시대를 살아왔던 역사가들이 사대적인 역사관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해방이후 주류 세력으로 자리잡은 친미세력들에 편승해 북한의 역사를 배제한, 반 쪼가리 역사서를 기술해왔다고 지적하고, COREA 국호개정운동을 시작으로 남북 시대사를 새로이 정리해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이어 “K-코리아가 과거를 상징한다면 C로 시작하는 코리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80년대 이후 새로운 흐름을 주장하는 사람, 즉 미래의 코드”라 설명하고 기존의 친일, 반공, 친미의 역사의식과 그들 세력의 비호아래 누렸던 권력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주류가 국내문제와 주변국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COREA 국호개정운동은 고구려사를 기본 축으로 한 고조선-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대륙사의 복원을 의미하며 이는 속국의식, 패배주의, 소아주의를 버리는 첫 걸음인 동시에 동북아 허브를 지향하는 움직임이란 것이 오정윤 소장의 주장이다.

COREA를 되찾아야 하는 이유는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에 맞서기 위한 것

장의균 민예총 남북문화예술교류위원장은 국호 COREA를 되찾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에 맞서기 위함이라 설명하고 인터넷이 사회전반을 이끄는 ‘신 유목사회’를 맞아 우리 문화의 원류인 유목문화의 바탕에 깔려있는 시스템을 되살리기 위해 먼저, 우리의 본디 영문 표기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현석 COREA 연대회의 실무위원장은 한국사회가 시민들이 주도 하에 민주주의를 건설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운동이 다시 제도권으로부터 편입되면서 ‘위로부터의 민주화운동’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하고 광화문 촛불로부터 다시금 시작되고 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사회의 담론들이 COREA 국호개정 문제로 모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화운동의 발전과정을 잘 계승하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 주체성들을 미래에 맞게끔 재창조하는 과정 속에서 COREA 국호개정운동을 봐라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7천만 겨레가 함께 고민하는 생활 속 운동으로 자리잡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현석 실무위원장은 국호개정 문제를 북측과 함께 논의하기 위하여 북 민화협과 금강산에서 공동행사를 하자고 합의한 바 있으나 룡천역 사고로 중단되었으며, 이후 북측이 이 문제를 오는 8.15 행사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남측은 아테네 올림픽에서 단일기에 COREA를 새기고 함께 응원하는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과 북은 COREA 공동행사를 2005년 다시 제안키로 했다.

송 위원장은 이외에 서명운동 등의 일상 캠페인, 정기적인 COREA포럼 개최, COREA운동의 취지를 대중과 교감하는 교육사업, 강연회 등의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성근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사무차장은 이에 덧붙여 2003년 8월 남북학자들이 모여 학술회의를 열고 COREA가 고유 국호였으니 통일국호로 사용하자고 합의한 바 있으나 그 이후 긴밀한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진척되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베이징 등 제3국에서 모여 학술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전국대학생 5월 한마당’에 참가중인 학생들과 통일연대 한상렬 대표 등 시민사회단체 인사 40여명이 참여했으며, COREA 연대회의 첫 포럼을 계기로 이후 포럼을 활성화 시켜 국호개정운동이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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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출연 : 게리 올드만, 위노나 라이더, 안소니 홉킨스, 키아누 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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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7-0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또 퍼가두 되지용??

mira95 2004-07-07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우리 필이 통했나 봐요. 저도 어제 앤 올렸는데...

panda78 2004-07-0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화 느낌의 앤이네요. 좋다.. ^^

플레져 2004-07-07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지 않으면 안될.........와.........앤, 잘 지내는구나...^^

진/우맘 2004-07-07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다이아나도, 안녕?

tnr830 2004-07-0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만화 넘 좋아해요ㅎㅎㅎ
저두 퍼갈께요^^
침대맡에 창문있는 집에서 살고픈 꿈을 꾸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