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꿈이라면 나가서 뭐든 찍어라"

"맥도날드 주제로 다룬건 패스트푸드 대표이기 때문 비만은 미국의 새 전염병"
부산=어수웅기자 jan10@chosun.com
 


 


▲ 30일간 매끼마다 "수퍼 사이즈 주세요"를 외친 모건 스펄록 감독 부산=김용우기자 ywkim@chosun.com
30일 동안 한 끼도 빼놓지 않고 맥도날드 패스트푸드만 먹어댄 괴짜 감독 모건 스펄록(34)이 부산 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몸을 바친’ 다큐멘타리 ‘슈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와 함께다. 그는 올 1월 선댄스영화제의 다큐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고, 지금까지 20여 곳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건강을 회복하는 데만 14개월이 걸렸다는 이 ‘무모하고 용감한’ 감독을 10일 만났다.

―영화 찍는 동안 몸 상태는 어떻게 변화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1주일 만에 5㎏이 늘었고 한 달 뒤엔 12㎏이 증가했다.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압은 솟구쳤고 무기력증과 우울증까지 겹쳤다. 의사는 바로 실험을 중단하라고 했다. 어마어마한 고통 끝에 나온 영화인 만큼 모두들 즐겁게 보기 바란다.”

―지금은 괜찮나?“14개월 동안 식이요법과 운동을 통해 예전 몸무게와 건강을 되찾았다. 요리사인 여자친구가 한끼 한끼를 다 챙겨준 덕분이다.”

―왜 하필 맥도날드가 과녁이었나?

“특별한 이유가 있다. 미국에서 맥도날드는 패스트푸드 산업의 아이콘과 같다. 맥도날드가 시작하면, 버거킹, 웬디스, KFC 등이 다 따라한다. 비만은 미국의 새로운 전염병이고, 패스트푸드는 그 직접적인 원인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하고 싶었다.”

―맥도날드로부터 ‘소송’이나 ‘타협 제안’은 없었나?

“전혀. 그도 그럴 것이 모두 사실에 근거를 뒀기 때문에 소송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대신 영화 개봉 후 슬그머니 ‘슈퍼 사이즈’(가장 큰 사이즈) 메뉴를 삭제하기 시작했다. 올해 말까지 모든 매장에서 완전히 없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음식을 하나만 계속 먹으면 당연히 몸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가령 스테이크도 한 달 동안 계속 먹으면 몸이 망가질텐데.

“맥도날드는 하나의 단일한 메뉴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메뉴가 요리이며, 영양이 풍부한 식사라고 주장한다. 나 역시 (맥도날드의 대표 햄버거인) 빅맥만 먹은 게 아니라, 그들의 다양한 메뉴를 골고루 먹었다. 그런 후의 결과다.”

―미국에도 여러 사회문제가 있는데 그 중 ‘음식’과 ‘비만’을 선택한 이유는?

“나는 엄마가 매일 집에서 요리를 만들어주는 가정에서 자랐다. 또 여자친구는 강력한 채식주의자(Vegan)다. 그런데 요즘 미국인은 집에서 음식을 만들지 않고, 어쩌다 집에서 먹을 때도 주문한 패스트푸드 상자를 개봉할 뿐이다. 아이들도 그렇게 가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신으로서는 첫번째 장편인데 왜 하필 다큐였나.

“당연히 제작비 때문이었다. 돈이 없었다. 케이블 MTV용 단편을 하고 생긴 5만달러(약6000만원)를 가지고 찍었다. 당시 쓰던 장비도 다 재활용했다.”

―지금까지 무려 2700만달러를 벌었다니 이제 제작비 부담은 좀 줄었을텐데, 다음 영화도 다큐를 고집할 건가?

“대부분 내가 아니라 배급자가 벌었다(웃음). 물론 앞으로 상업영화도 찍을 거다. 하지만 나는 다큐가 자신의 주장을 자유스럽게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다른 상업영화는 모두 스폰서를 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큐는 아주 중요하다.”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했다고 들었는데.

“학교 졸업 후 우디 앨런이나 뤽 베송 등 유명 감독 밑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옆에서 함께 짐 옮기던 일꾼 하나가 ‘너는 장차 뭐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나는 “영화감독이 꿈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나야 이게 직업이지만, 너는 왜 이러고 있냐. 나가서 뭐든 지 찍으라’고 했다. 머리가 번쩍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단편부터 찍기 시작했다. 그때 결정하지 않았으면 아직도 짐 옮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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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 웃음이 끊이이지 않은 코메디 영화다.

작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출품작이라고 하는데.

글쎄, 경찰을 풍자했다고나 할까?

심각하지도 않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을 것 같은.

그러면서 디테일이 이토록 좋다니...!

스웬덴이었나? 아뭏든 유럽 영화도 이렇게 재밌었구나 싶어 놀라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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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urblue >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추측컨대, 당신들은 백만장자인 모양이다.

당신들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 ─ 미래가

당신들 앞에 환히 보인다. 당신들의 부모는

당신들의 발이 돌멩이에 부딪히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놓았다. 그러니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

계속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시대가 불안하여, 내가 들은 대로,

어려운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당신에게는 만사가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정확하게 말해 줄 당신의 안내자들이 있다.

어떤 시대나 타당한 진리와

언제나 도움이 되는 처방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은 모든 요령을 수집해 놓았을 것이다.

 

당신을 위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한

당신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일에 사정이 달라진다면

물론 당신도 배워야만 할 것이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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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밥헬퍼 > 얼음과 물의 경계에서 만난 나희덕과 기형도 시인

                               얼음과 물의 경계

                                                                 나 희 덕


  메멘트모리.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어느 수도원에선가는 이 말로 인사말을 대신한다고 한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안녕을 기원하는 세간의 풍속과는 달리 부재의 확인을 통해 존재를 성찰하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세간의 인사에 길들어 살아가는 나에게도 누군가 그런 인사를 건네는 날이 이따금 있기는 하다. 매년 삼월 첫째 주말, 기형도 시인의 묘소에 갈 때마다 내 안에 살아있는 그가 이렇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메멘트모리.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는 못했다. 나는 2학년 때 연세문학회에 들어갔는데, 그는 이미 졸업을 한 뒤라 술자리에서 몇 번 마주쳤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1989년에 그는 중앙일보 편집부 기자였지만, 그 후 석 달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 중앙일보 복도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주며 창밖의 희부연 풍경을 바라보던 모습이 내가 가장 가까이 본 모습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조금씩 엇갈린 인연이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십년 동안 그의 주기 때마다 묘소에 가는 것을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스럽기도 하다. 나는 그에 대해 추억할 무엇도 가지고 있지 못하며 그렇다고 내가 유별난 의리의 소유자인 것도 아니기에 말이다. 그것은 마치 신년을 맞이하며 해돋이를 보러 가는 것과 비슷하게, 봄이 오기 직전 어떤 죽음 하나를 만나러 가는 습관화된 의식 같은 것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나는 왠지 그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죽음은 결국 살아 잇는 자에 의해 유추되고 해석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의 죽음은 해마다 조금씩 다른 표정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의 묘소에 가려면 늘 지나치는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그 무렵이 되면 얼었던 물도 다 풀리고 나무마다 새싹이 돋아나곤 한다. 그런데 막상 그가 묻힌 산언덕에 이르면 왜 그리도 춥고 음산하던지 그의 죽음에 온통 살얼음이 박혀 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도 시린 느낌은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아마 그의 시에 유난히 많이 나오는 얼음과 눈(雪) 이미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에게는 안개나 구름조차도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이나 “희고 딱딱한 액체”(「안개」)와 다름없었다.

  “밤에 깨어 있음, 방안에 물이 얼어 있음. 손(手)은 영하 1도”(「새벽이 오는 방법」)라고 했을 때, 나는 그가 살았던 방의 윗목, 아니 늘 윗목인 삶을 떠올린다. 거기서 그는 시린 손으로 ‘겨울 판화’를 새기듯 시를 써나갔으리라. “내 몸은 얼음으로 꽉 찬 모양이다”(「聖誕木」)중얼거리며 성냥을 그어대기도 하고, 눈길 위에 떨어진 서류봉투를 주우며 “나는 불행하다/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 했다. 진눈깨비”(「진눈깨비」)라고 탄식하기도 한다.

  그때 그의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얼음과 진눈깨비는 실은 그의 눈물이 응결된 것이다. 세상을 너무 축복하였기에 거꾸로 매달려 외로운 천형을 견디고 있는 고드름처럼, 부단히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정신으로 말미암아 그는 오래도록 고통 받아야 했다.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노래하면서. 그는 녹아 흐르고 싶어 했으며, 그러기 위해 자신의 삶 속에 얼음처럼 박인 죽음의 그림자를 향해 힘겹게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러나 그가 지핀 불은 대체로 작은 성냥개비나 창백한 초 또는 램프에 붙여진 불이어서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은 이미 없어지고/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빈 병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10월」)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빈 병 또는 빈 방은 결국 그의 육체를 가두고 말았지만, 그의 시만은 오히려 결빙된 절망으로 빛나는 날을 가지게 되었고 수많은 영혼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특히 그의 범상치 않은 죽음의 에피소드를 둘러싸고 진행되어온 신비화가 없지 않았다. 그로 인해 그의 시는 일정한 부가가치를 얻은 대신 문학으로서는 갇힌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의 죽음 자체가 던진 충격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란 모든 대상을 빛바래게 하는 대신 적절한 거리를 베풀어줌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발견을 가능케 한다.

  십년 만에 전집으로 새롭게 묶인 그의 시들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얼음과 물의 경계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이십대의 나에게 그의 시는 결코 녹을 것 같지 않은 단단한 얼음이었다면, 지금의 나에게는 간절히 녹고자 한 영혼, 이미 녹기 시작한 영혼의 일렁임 같은 게 만져진다. 이것이 세월을 거슬러 흘러갈 수 있는 시의 고유한 힘인지, 젊음의 팽팽한 긴장에서 어느 정도 놓여난 내 마음의 반영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삶과 죽음의 경계란 물과 얼음의 경계처럼 단호한 듯하지만 끊임없이 삼투하면서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이 인사가 마침내 일상이 될 때까지 우리는 언 물과 얼지 않은 물 사이에서 오래 출렁거려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를 기억하는 일이 더 이상 죽음의 성채를 쌓는 일이 아니라 삶으로 죽음을 녹여내는 일이 될 때, 그와 그의 시는 무연한 강물처럼 자유스러워 질 것이다. 그 역시 「잎․눈(雪)․ 바람 속에서」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살아 있다. 해빙의 강과 얼음산 속을 오가며 살아 있다.”<나희덕, 반통의 물, 창작과 비평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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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잎. 눈[雪]. 바람 속에서

                                                              기 형 도


나무가 서 있다. 자라는 나무가 서 있다. 나무가 혼자 서 있다. 조용한 나무가 혼자 서 있다. 아니다. 잎을 달고 서 있다. 나무가 바람을 기다린다. 자유롭게 춤추기를 기다린다. 나무가 우수수 웃을 채비를 한다. 천천히 피부를 닦는다. 노래를 부른다.


나는 살아 있다. 解氷의 江과 얼음山 속을 오가며 살아 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은빛 바늘 꼽으며 분다. 기쁨에 겨워 나무는 목이 메인다. 갈증으로 병든 잎을 떨군다. 기쁨에 겨워 와그르르 웃는다. 나무가 웃는다. 자유에 겨워 혼자 춤춘다. 폭포처럼 웃는다. 이파리들이 물고기처럼 꼬리치며 떨어진다. 흰 배를 뒤집으며 헤엄친다. 바람이 빛깔 고운 웃음을 쓸어간다. 淸潔한 겨울이 서 있다.


겨울 숲 깊숙이 첫눈 뿌리며 하늘이 조용히 安心한다.

 

 

 

 

 

 

 


 

 

 

 

 

 

 

 

 

제임스 콜만, Country Ro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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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세상 최고의 고수가 되는 법

"손자병법"에서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고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 여유.
- 그에게는 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무게가 있다. 아직 덜 익고 서투른 사람은 어수선하고 바쁘기 마련이다.
어떤 상황이든 완전히 이해하고 장악한 사람은 그 경륜과 기술만큼이나 무게와 힘이 있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태산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 신중함으로 대안을 찾아내고 위기를 겪어 낸다.

2. 무게.
- 그는 자신의 칼날을 함부로 남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강태공은 “남과 다툴 때 번쩍거리는 칼을 쓴다면 훌륭한 장군은 아니다”라고 했다. 진정한 최고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뽐내지 않는다.

3. 겸손.
- 그는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신의 갈 길은 자신이 직접 선택하는 소신과 자신감이 있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칭찬한다면 최고 중의 최고는 아니다’라고 손자는 말한다.
자신이 정한 원칙과 소신은 타인의 칭찬이나 환호,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길을 걸을 줄 알아야 한다.

4. 비범.
- 손자는 진정 고수의 병법에는 일반인들의 상식적인 예측을 뛰어넘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일반인들의 상식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안목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진리가 실제로는 매우 담백하고 소박한 곳에 있는 것처럼 고수가 되는 길도 역시 그러하다.

중국의 지식체계 혹은 사상을 살피다보면 몇 가지 상념들이 떠오른다. 하나는 실용주의, 중국의 지식인은 전통적으로 지식 그 자체를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지식을 위한 지식을 추구하지 않았을 뿐더러 , 직접 인간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는 지식의 경우 중국철학자들은 역시 그것을 행하여 인간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우리는 종종 동양의 철학을 공자왈 맹자왈하는 공리공론이나 일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동양의 철학에서의 핵심은 시작도, 그 완성도 "실천"에 있다.
 
그러니 고수가 되는 길의 핵심도 결국엔 실천에 있겠지...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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