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툭 던져지는 느낌표, 예술!”

   ‘대중예술과 미학’ 박성봉

▲ 대중예술에 대한 미학적 분석 작업을 하고 있는 박성봉 경기대 교수. 학생들의‘전복적’사고를 높이 사는 그의 강의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순호기자 choish.chosun.com
“예술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일상생활에서는 이 용어를 ‘우와, 우리 엄마 김치찌게는 정말 예술이야!’라고 사용하지 않습니까. ‘이 음악 끝내주는데!’도 마찬가지구요. 저는 바로 이런 접근이 미학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라고 봅니다.”

‘대중예술과 미학’(일빛)을 펴낸 박성봉(50) 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 교수는 예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분류, 즉 고급예술의 진지성과 대중예술의 통속성이라는 이분법에 반론(反論)을 제기한다. 통속적인 것을 단지 진지함의 결여로 취급하고 무시하기엔 너무 구체적인 그들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중가요·만화·무협지·영화·TV드라마·추리소설 등이 감상적이고 도피적이며 때로는 거짓되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러나 수준 있는 대중예술은 엄청 치열하며 또 무지 솔직하지요. 무엇보다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니까요.”

박교수는 이를 ‘느낌표’라는 한 마디로 요약한다. 음악·미술이든 연극이든 각자가 접하면서 ‘!’로 와닿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는 이러한 대중문화 체험을 특징짓는 용어로 ‘뽕의 기운’을 줄여 ‘뽕끼’라는 도발적인 단어를 만들어 냈다. 우리를 사로잡는 기운을 뜻하는데, ‘뽕’은 마약의 속어이자 ‘뿅 간다’의 ‘뾰옹’이 어우러진 표현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대중예술의 가치를 군대 시절의 라면 맛에 비유한다. “최전방 막사에서 밤에 끓여먹던 퉁퉁 불은 라면이 하루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 라면의 영양성분이 비록 고급한정식과 비교할 순 없을 지라도 살다 보면 떡 벌어지게 차려놓은 밥상보다 그 라면 한 그릇의 기억이 절실한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대중예술의 ‘진부한’ 울림은 고급예술의 진지한 울림과 다르지만 그 진부함 속에는 삶을 살게 하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이른바 ‘장사가 되는’ 대중예술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그를 시류(時流)에 영합하는 학자쯤으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그는 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스웨덴의 명문 웁살라 대학에서 1983년부터 10년 동안 미학을 연구했다. “보수적인 대학 분위기에다 당시로서는 전인미답이었던 분야를 공부하느라 무척 외로웠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영어로 쓴 박사논문 ‘대중예술의 미학’은 단행본으로 출판되었고, 영미권의 주요 미학 학술지 3곳에 호의적 서평이 실리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대중예술의 이론들’ ‘등의 저서를 내며 대중예술에 대한 체계적인 미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에 나온 ‘대중예술과 미학’에서는 한편에서 전자오락을 새로운 예술 장르로 받아들이고, 다른 한편에선 아내를 두고 돌아서는 처용의 뒷모습에서 예술적 장엄미를 찾아낸다.

최근 케이블 TV를 통해 뒤늦게 ‘겨울 연가’를 보며 한류(韓流)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박교수는 ‘차분한 사유’를 강조한다. “감동받고 흥분만 해서는 소용없어요. 굳이 담론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저변에 흐르는 의미를 따져보는 훈련을 했으면 합니다.”

신용관기자 qq.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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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배고픔’덜어지나

순수 문인 지원액 늘어
시 한편 150만원 중·단편 600만원

순수 문학도 돈이 된다.

올해부터 문예지에 시 한편을 발표하면 150만원, 중-단편 소설 한 편은 600만원 받는다. 원고료를 제외한 문예진흥기금이다. 시인은 5번, 소설가는 한 해 2번씩 선정될 수 있다. 뛰어난 작품을 잇달아 발표한 시인이라면 연간 750만 원, 소설가라면 12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김병익) 문학분과 소위원회는 최근 이처럼 획기적인 창작지원책을 결정했고, 예술위는 전체회의를 거쳐 곧 발표할 예정이다.

예술위의 박성언 문학지원팀장은 “문예지 발표작에 대한 문예진흥기금이 지난해 3억 원에서 올해 15억원으로 늘어났다”며 “문예지 발표작이 문단 현황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잣대이기 때문에 지원액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지난해 문예지 발표작에 대한 지원액은 편당 시 40만원, 소설 200만원이었다.

예술위는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를 결성, 올해 다양한 문학 지원 사업을 펼친다. 예술위는 ‘우수문학도서선정보급사업’에 40억원을 투입, 시집 25종, 소설 20종 등 총 70여종의 창작도서를 각 1000~2000부씩 구입해 국공립 도서관과 문화소외계층 관련 시설 1000여 군데에 배포한다. 또한 예술위는 국내에서 발간되는 순수문예지 구입에 7억2000만원을 들여 전국 도서관 등 500군데에 보낸다.

예술위의 지원 예산이 늘었다고 하지만, 문학은 여전히 배고픈 행위다. 문화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문인의 월평균수입은 100만원 이하가 39.5%로 가장 많다. 하지만 문인의 65%는 문학 활동에 대해 만족한다고 대답해 결국 자부심으로 창작활동을 한다는 것.

대중 문화의 한류(韓流) 열풍 유지를 위해서라도 국고를 이용한 순수 문학 지원이 중요하다고 문인들은 주장한다. 민족작가회의 김형수 사무총장은 “문학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상상력과 인물을 제공하면서, 한국 영상 문화 르네상스의 원천을 제공했다”며 “이처럼 중요한 순수 문학의 생존을 시장 논리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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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6-02-2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렴요.. 문화와 예술은 국가 기간사업으로 대접받아야 합니다.

stella.K 2006-02-28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역시 승주나무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반가와요.^^
 

아주 오랜만에 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해서 방금 받았다. 근래에 들어 내 돈 내고 책 사 보기는 아주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우연히 신문에서 보고 찜했던 책이다. 이걸 이렇게 빨리 선택하게 될거라곤 나 자신도 생각 못했다. 얼마 전 사무처에서 삑사리 당하고 아무래도 이러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읽기로 작정했다.

내가 이 책에 결정적으로 끌린 건, 이 여자도 처음엔 나처럼 일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 어리둥절 했는가 보다. 그러는 사이 일은 다 남의 차지가 되었다니 어쨌다나...그랬던 사람이 어떻게 정글을 헤치고 월스트리트에서 정상을 차지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참고로 말하면 우리 사무처에 아직 새로운 직원은 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상한 일이지. 올듯 올듯하면서 안 오는 걸 보면...

 스티븐 킹은 그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요즘 소설의 흐름이 어떤지를 알기위해 최근에 나온 책들을 애독하라는 충고에 따라 샀다.

박범신, 이현수, 정미경, 정이현. 알만한 작가들의 작품이 수록되어있어 읽고 싶어진다. 방금 검색해 봤더니, <2006 오늘의 소설>도 벌써 나와있네. 또 사다 읽어야 하려나 보다.

 

 오늘로 부터 정확히 한달 후면 연극팀 후배년 생일인데 미리 신청했다. 걔가 빨간 머리 앤 광팬이다. 이 책도 괜찮다 싶어 선택한 건데 걔가 원하는 게 동서문화사의 9권짜리면 어쩌나? 나도 그 9권짜리를 생각 안한 건 아닌데, 이것도 괜찮겠다 해서 선택한 건데 어쩌지? 무르기도 뭐하고.

할 수 없다. 싫다고 하면 딴거 선물해 주고, 이 책은 내가 보던가 다른 사람 선물해 주지 뭐.

  

 피에쓰: 얼마 전 라주미힌님 책 배달 온 거 보조개 찍혔다고 툴툴거리셨던데,  오늘 온 책은 양호하다. 정말 누구 말마따나 알라딘 사람 편애하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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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인간 이순신’을 읽어낼까

‘칼의 노래’ 佛서 출판… 작가 김훈-번역자 양영란 만나다
김훈의 우려 “불어에는 助詞가 없어… 내 문장 제대로 전달될지”
양영란의 자평 “역사적 海戰의 영웅보다 실존적 고뇌·보편성 초점”

‘제 주인의 작은 내면의 움직임에도 따라 떨리는 그 칼의 울음은, 주인의 소리없는 울음에 답하여 노래가 된다.’(www.galli mard.fr).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권위있는 출판사 갈리마르가 23일 김훈씨의 소설 ‘칼의 노래’ 불어판(Le chant du sabre)을 서점에 깔았다. 갈리마르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칼의 노래’ 가 ‘전세계 문학 총서’(Du monde entier)의 신간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한국 현대소설로서는 처음이다. 같은 날 작가 김훈씨와 ‘칼의 노래’ 불어 번역자 양영란씨가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김훈 선생님이 서점에서 독자 사인회를 한다고 해서 찾아갔어요. 사인을 받기 위해 책을 내밀면서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싶으니, 연락처를 적어달라’고 했지요. 그렇게 처음 만나 2003~4년 본격적으로 번역 작업에 들어갔어요.”

▲ ‘칼의 노래’ 번역가 양영란씨(왼쪽)와 원작자 김훈씨.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서울대 불문학과를 나와 파리 3대학에서 불문학 박사과정을 마친 양영란씨는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칼의 노래’에 이어 현재 현기영씨의 소설 ‘지상의 숟가락 하나’도 불역 중이다.

‘칼의 노래’ 불어판에는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지도가 들어가는데, 역자 양씨의 노력으로 ‘일본해’가 아닌 ‘동해’라는 표기가 사용된다. 또한 ‘칼의 노래’에서 왜군이 중종의 왕릉을 파헤친 장면을 읽은 프랑스 편집자가 그 지점(임진왜란 당시경기도 광주, 지금은 서울 삼성동 선정릉)을 한국 지도에 표시하자고 했다. 편집자는 작가 소개서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했던 김훈은 ‘칼의 노래’를 쓰기 위해 그만 두었다”며 “이 책은 2001년 한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동인문학상을 받았다”고 적었다.


김훈씨는 “나는 프랑스어는 모르지만, 거기에는 조사가 없으니 내 원래 문장과 크게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글을 쓸 때 조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가장 고민한다. 나는 조사를 증오한다. 조사없는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털어놓은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소설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의 경우, ‘꽃은 피었다’로 썼다가 ‘꽃이...’로 고치고, 다시 바꾸기를 며칠 거듭했다. ‘꽃이’라고 쓰면 꽃이 핀 객관적 사실을 말하지만, ‘꽃은’ 이라면, 어딘가 뽕짝 같고, 주관적 정서를 투사하는 것이다. 조사가 없는 영어나 프랑스어에는 없는 고민이다.”

번역에서 주안점을 둔 것에 대해 양씨는 “해전을 다룬 역사 소설이 아니라,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지니는 실존주의적 고뇌와 시공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강조하고 싶었다”며 “프랑스는 실존주의 문학의 전통이 강한 나라니까 더욱 그러했다”고 밝혔다. ‘칼의 노래’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로 번역 출간됐고,영어와 중국어로 번역 중이다.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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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02-27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갈께요~~

stella.K 2006-02-27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야로님.^^
 
 전출처 : 라주미힌 > 탐나는 2월 25일

 

 

 

 

 

과학기술에 기반한 현대 산업문명에 대한 냉철한 비판서다. 미국의 작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저자는 세계적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통합’(국내에는 지난해 ‘통섭’이란 제목으로 출간)에 대한 비판적 서평 형식을 통해 현대 과학기술의 맹점을 파헤치고, 문명비판에까지 이른다.

저자가 ‘통섭’을 선택한 것은 윌슨이 우상파괴적 일을 하는 척하지만 실은 대중적인 과학정통주의를 대변한다고 보기 때문. 또 그가 ‘아는 것’은 물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가 산업주의 가치·심리의 전형이라는 것. 저자는 윌슨이 유전생물학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모든 인간·사회 현상을 해명코자 한다고 본다. 이는 과학자가 과학의 영역을 뛰어넘어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려는 과학주의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드러낸다는 지적. 윌슨이 자연과학·사회과학·인문학 등 지식의 대통합을 외치지만 이는 통합이 아니라 자연과학 하나가 장악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저자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는 시구절을 인용, 인간의 삶을 축소·환원이 아니라 확장시키자고 말한다. 즉 현대과학은 모래알에서 세계를 보지 못하고 그저 쪼개고 쪼개 최소단위로 환원하듯 삶도 기계적·예측가능한 것으로 다뤄 축소·환원시킨다는 것. 이제 과학기술과 한탕주의 기업정신의 결합으로 인한 폐해, 합법적 야만주의인 ‘경제 제일주의’에 의한 인간성과 생태계의 파괴 등을 극복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우리가 과학기술이 아니라 일하고 살아가는 생태계와 인간 공동체의 건강성을 우리 경제의 척도로 삼는 데서 시작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한겨레] 아깝다 이책

학창시절 행운의 편지 한 통 안 받아본 사람이 있을까?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숫자의 사람들에게 그와 동일한 편지를 보내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을 애써 무시하면서도 한동안 가슴 졸였던 기억이 난다. 편지 속에 등장하는 협박의 대상이 나라면 좀 대범하게 넘길 수도 있었을 터인데,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일 경우에는 고민이 더 커지곤 했다.

 그런데 이 책 <대중의 미망과 광기>를 진행하면서 행운의 편지가 비단 나에게만 고민을 안겨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0세기 초반 서양에서도 주기적으로 등장했다고 하니, 유서가 꽤 깊은 인류의 문화유산인 듯하다.

평소에는 합리적이고 현명한 개인이 집단행동에 가담하면서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 사례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어 왔다. 한 나라의 국민 대부분이, 심지어 한 대륙 전체가 광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충동적인 행동을 했던 일도 적지 않다. 1841년 초판이 발간된 찰스 맥케이의 <대중의 미망과 광기>는 이런 군중의 광기에 관한 책 가운데 대표적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언론인으로서 계몽주의자이며 이성의 신봉자였던 저자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집단 광기’ 현상을 다루고 그 원인을 분석했다.

많은 지식인을 망친 연금술, 거품회사에 대한 영국인들의 미친 듯한 투기,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찮은 일을 명예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살인을 합법화하던 결투 관습,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유령의 집에 이르기까지 그 폭과 범위가 매우 넓다.

흔히 고전은 ‘인구에 회자되지만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별로 없는 책’이라고 한다. 금융 투기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나 영국의 남해 버블 회사,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에 대해 언급하곤 한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책에는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출간된 시점이 19세기 중반이다 보니 대중이 미망에 사로잡히고 광기에 빠진 근현대 사례와 분석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나는 앞으로 이러한 약점을 보충해 좋은 짝을 이룰 수 있는 또 한 권의 책을 출간하겠다는 출판쟁이로서의 욕심을 갖고 있다.

인터넷매체가 눈부시게 발달한 요즘도 심심찮게 대중의 파워를 목도하곤 한다. 수천 마리의 모기떼가 갑자기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느리지만 엄청난 결과를 낳는 거대한 대중의 움직임. 사람은 혼자 있을 때는 분별력 있고 이성적이지만, 군중 속에 있으면 멍청이가 된다는 실러의 말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에피소드 하나. 나는 작년 가을께부터 신문을 거의 보지 않는다. 사무실에서는 물론이고, 집에서 받아보던 신문마저 구독을 중단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는 것에 환호하고 대통령 탄핵에 눈물 흘린 적도 있지만, 어느 순간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세상 일에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절망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눈 막고 귀 막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 하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 한발 물러나고 싶었다. 어쩌면 집단의 광기에서 벗어나려 또 다른 미망에 사로잡힌 것인지도 모른다. 이옥선/ 창해출판사 편집부장

 

 

 

 

 

 

권력 앞에선 똥이라도 먹었다

“속임수를 꺼리지 말라 반드시 전임자를 부정하라
포상은 퍼주지 말고 질질 끌어라 대신 통크게 포용할지어다”
조직생활 생존기술 한가득 권력 관심 없더라도 중국 고사 읽는 맛

“권력술이란 곧 처세술이다. 군주가 신하와 백성을 지배하고 경영하는 임기응변의 기술이며, 소위 말하는 최고권력을 획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곽말약)

정치권뿐 아니라 모든 사회조직은 정치적이다. 윗사람, 아랫사람, 동료 등이 하나의 권력장으로 연결돼 상호작용에 의해 움직인다. 사회조직에서 권력술은 최소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이며 최대한 권력을 획득하여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술이다.

<권력의 규칙>(한길사 펴냄)은 중국 고대 정계에서 추출해낸 권력의 쟁취, 관리, 안정 그리고 상실에 관한 규칙이다. 중국은 수천년에 걸쳐 수많은 왕조가 명멸하고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장에서 부침했다. 표본집단이 많은 까닭에 추출해 낸 규칙들은 상세할 수밖에 없어 목차가 길고 1, 2권 합해 950쪽이다.

기원전 494년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 왕 부차에게 잡혔다. 구천은 노예의 옷을 입고 유람가는 부차의 말 고삐를 잡았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아첨과 애교 등 온갖 방법으로 부차의 비위를 맞췄다. 한번은 부차가 병으로 눕자 병문안을 갔다. 마침 부차가 설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똥을 보면 병의 경중을 가릴 줄 안다면서 똥통 덮개를 열어 똥 한 움큼을 입에 넣고 야금야금 맛을 보았다. 그렇게 신임을 얻은 구천은 석방되어 월나라로 돌아갔다. 10년을 절치부심한 그는 힘을 얻어 오나라를 공격해 해원을 했다.

여기에서 뽑아낸 규칙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속임수를 꺼리지 말라’다. 이에 더해 △바보와 약자를 이용하라 △핵심 부위를 공격하라 △대가를 아끼지 말라 △미인계를 이용하라는 규칙을 전한다. 핵심 부위를 공격한 예로 당송 팔대가로 꼽히는 한유(한퇴지)를 들어, 정식관직에 오를 수 있는 이부의 시험에 세번 낙방한 끝에 경조윤 이실한테 낯간지런 청탁편지를 넣어 벼슬길을 뚫은 일화를 소개한다.

중국 고대 정치사에서 추출


역사상 가장 여색을 좋아했던 당 현종이 집권 초에는 궁녀를 풀어주고 승려들을 해산했으며 사치품을 불태운 사실을 아는가? 태평공주, 조모 무측천으로 인한 원성을 자신의 선정으로 치환하기 위해서였다. 역사상 중대한 영향을 끼쳤던 누명사건이나 오심판결들은 최고 권력자의 비위를 건드린 경우가 많아서 이것들은 후임자의 손에 넘어가면 중요한 권력 밑천이 된다. 뒤집기만 하면 후임자의 위상과 명예가 갑자기 욱일승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권력을 굳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임자를 부정하라’를 규칙을 도출한다. 이밖에 △위계질서를 엄하게 하라 △공덕을 선전하라 △속마음을 드러내지 말라는 규칙이 있다. 그러나 신비감과 외경심을 주기 위한 속마음 감추기는 뛰어난 군주한테는 신하를 지배하는 수단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권력을 잃는 길이 된다.

강력한 권력자는 권력의 유지를 위해 상벌의 두 수단을 구사한다. 상은 독려하고 유도하고, 벌은 두려움에 떨게 한다. 상은 주도권을 신하한테 주고 벌은 주도권을 군주의 수중에 붙들어 둔다.

▲ 권력을 위해서라면 핏줄도 아랑곳않은 무측천. 그는 당 고종의 후궁서열 3위인 소의였을 때 자신이 낳은 딸을 죽여 황후에 올랐다. 고종 만년에는 퇴출을 두려워해 태자였던 두 아들을 살해했고, 제위에 오른 두 아들을 끌어내린 뒤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대권독점 15년. 사진 한길사 제공
포상은 관직과 봉록으로 지배자의 여의봉이다. “항우는 남이 큰 공을 세워 마땅히 벼슬과 작위를 상으로 내려야 할 때 포상의 인장을 손바닥에서 굴리기만 하면서 상 주기를 아까워합니다.” 유방한테 투항해온 한신이 항우를 평한 말이다. 이에 비해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에 발탁하고 극진한 예를 갖췄다. 하지만 포상은 한번에 퍼주지 말고 질질 끌어야 한다. 관직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공을 세우려는 동력을 갖는 까닭이다. 또 관직을 줄 때는 기대치에 못 미치게 줘야 한다. 높은 자리를 얻으면 진취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내려는 의지에 녹이 슨다.

말 몇마디 눈물 몇방울의 힘

친절하고 자상한 말 몇 마디, 감동어린 눈물 몇 방울 등은 돈 안드는 무형의 포상. 그 효과는 고위 관직이나 고액 봉급을 능가한다. 연회에서 술에 취해 애첩을 희롱한 부하를 감싸주었고 그 부하는 진나라와의 전쟁 때 다섯 번이나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을 사로잡아오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초장왕, 부하의 몸에 난 종기의 피고름을 입에 대고 빨아냄으로써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전국시대의 유명한 군사가 오기의 예가 여기에 해당한다.

상벌은 비상한 경우일 따름. 일상적으로는 신하(부하)들을 자신을 중심으로 응집시키고 이탈을 방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조조가 북방의 군벌 원소와 맞붙었을 때 병력, 군량에서 완전히 열세였다. 조조의 부장들과, 후방의 대신들은 원소한테 편지를 띄워 조조가 패하기만 하면 귀순할 준비를 했다. 반년 뒤 전세가 역전돼 원소를 물리쳤는데, 원소의 군영에서 노획해온 문서에서 부하들의 편지가 발견됐다. 조조는 그것을 보지 않고 불태웠다.

과오는 묵히지 말고 바로잡아야

신하를 다룸에 통 크게 포용하라는 규칙이다.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 △신하의 힘이 과도하지 않도록 앞에서 띄워주고 뒤에서 깎아내려라 △파벌간 균형을 잡으라는 것도 권고사항.

일정한 직위에서 살아남으려면 공격 빌미를 없애면 되지 않겠는가. 드러나지 않으면 공격도 상처도 받지 않는다. 하여 △때를 알아 용기있게 물러날 줄 알아야 하고 △바람을 보며 노를 젓는 지혜가 필요하며 △작은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권불십년이라던가. 권력자가 더 이상 통치할 수 없을 때가 온다. 백성을 핍박하여 민심을 잃을 때, 사리에 어둡고 유약하여 통제력을 잃었을 때, 날마다 조금씩 권력을 침식당해 기반을 잃었을 때가 그러한 때다. 즉, 위는 아래로써 존재한다는 것. 권력자는 백성한테든 부하한테든 공명정대해야 하며, 과오는 묵히지 말고 즉시 바로잡아야 하고, 은혜와 위엄을 함께 동원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직사회에 속한 사람이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권력 자체에 관심없는 사람은 몹시 지루할 테지만 읽고나면 인용된 풍부한 고사가 지루함의 반을 덜었음을 비로소 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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