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헌책방 고구마] 헌책과의 구수한 데이트 고구마와 하세요!
[헌책방 고구마] 헌책과의 구수한 데이트 고구마와 하세요!
- 정도영 기자
지하철 5호선 신금호역 1번 출구로 나와 농협방향으로 동행인과 두어 마디 너스레를 떨다보면 왼편으로 헌책방 고구마의 첫 번째 창고가 나타난다. 그리고 건물 밖까지 책을 꽂아둔 창고 위에 “지식연대/ 정보연대/ 정서연대/ 문화연대/ 생명연대/… 창고형 헌책방 고구마”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글 바다(?) 간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그곳 헌책방 고구마가 이 달의 문화발전소로 지정된(?) 곳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헌책방 고구마는 모두 네 곳의 창고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철역을 기점으로 하여 첫 번째 마주하는 곳이 바로 중고등 학생용 참고서, 수험서, 사전류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창고 입구부터 기자가 중고등학교 시설만 해도 필수품이었던 성문기본영어에서 정석수학까지 정겹지만 다시 들춰보기는 좀 머뭇거려지는 수험서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며 얌전히 쌓여 있다. 수험서 창고에서의 정겨움과 반가움이 고조를 이루기도 전에 우리는 두 번째 창고 앞에서 입을 다물 수 없게 된다. 바로 수험서와는 대치되었던 그래서 더 애착이 갔던 ‘만화’ 책들과 각종 잡지들이 차마 다 꽂히지도 못하고 길바닥까지 나와있으니 말이다. 이곳에서는 새소년에서 나온 각종 만화책들과 『보물섬』까지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폐간을 알려 마니아들을 슬프게 한 영화잡지 『키노』도 눈에 띈다. 사실 기자의 눈에 익은 책들은 아주 소량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언제 만들어지고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는 듣도 보도 못한 책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때마침 창고 정리하던 날이라 꼭꼭 숨어 있던 책들이 창고 앞 보도를 막고 헌책 특유의 향내를 뿜어내고 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가던 길을 멈추고 이 책 저 책을 고르며, 특별히 찾는 책을 고구마 식구들한테 물어보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맛보기일 뿐. 일반 성인 남성의 걸음으로 한 열 걸음만 더 가면 세 번째 창고 소설류, 인문학 등의 책이 보관된 종합 매장이 지하에 위치한다. 이곳이 바로 문학인은 물론 예비 문학도, 각계 연구자들이 주로 들르는 곳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부터 줄줄이 책이 쌓여 있다. 지하의 습기 냄새가 오래 묵은 종이냄새와 절묘하게 조화되어 헌책의 묘약처럼 방문객들을 금새 헌책에 매료되게 만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인문학 관련 논문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즐겨있던 시집이니, 소설책이니, 또 요리책, 여행가이드북, 심지어 대학교지, 과 학회지까지도 접할 수 있다. 책장과 책장 사이에도 책들이 쌓여있어 사이사이를 누비며 원하는 책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지나가다 떨어뜨린 책들을 제자리에 쌓아 놓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기어이 찾게 된 책과의 만남은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또 추억이 담긴 이런 저런 책들을 발견하고, 꺼내어 낯익은 표지를 대면하거나 쌓인 책들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잊지 못할 지면을 찾아 읽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고구마에서는 헌책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여느 대형 도서박람회를 관람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단, 유의할 점은 꺼내 읽은 책은 반드시 제자리에 꽂아 둬야 한다는 것.
어린이 책들과 전집류를 보관하고 있는 네 번째 매장은 길가에 위치한 다른 매장들과 달리 주택가로 좀더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는 아직 채 정리하지 못한 책들이 창고 바닥에서 천장까지 꽉 채워져 있다. 50년대 후반에 발간된 완역판 세계문학전집은 물론, 계몽사, 금성출판사로 대표되던 어린이 세계명작동화전집들도 눈에 들어온다. 사실 이곳은 단골이 아니면 접근이 쉽지는 않다.
이렇게 네 곳의 창고에 보관된 책들은 무려 35만권. 그러니 자료수집이 많은 각 분야 교수님들, 헌책 애호가 사이에서는 이미 고구마의 명성이 입소문으로 쫙 퍼져있다. 10년이 넘는 단골들도 100여 명에 이른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회의 이라크 파견문인 오수연씨도 이곳 단골이란다. 이외에도 고구마는 4만장 정도의 LP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판매는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방송국 음악 담당 PD들이 와서 대표님을 조르고 졸라 끝내 원하는 LP를 구해가기도 한다.
설마했던 그 책까지 바로 보내드립니다
이런 고구마가 세간의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 사이트를 오픈하고 온라인 구매가 가능해지면서다. 고구마는 1984년 ‘중앙서적’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사실 아직도 법적으로는 ‘중앙서적’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다. 그러다 97년 인터넷 사이트를 오픈하면서 고구마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은 것이다. 이범순 대표는 고구마로 이름을 짓게 된 배경을 “일단 우리 것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장백산, 고구려 등 20여 개 중 인터넷 시대에 맞춰 젊은 세대 감각에 맞은 것으로, 쉽게 기억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책하고는 전혀 안 어울리는 엉뚱한 것을 골라서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온라인 고구마에서는 원하는 책을 도서명, 저자, 출판사로는 물론, 출판년도, 번역자로도 검색이 가능하며, 재고 확인된 책은 온라인에서 바로 구매가능하며 입금만 확인되면 4일 이내에 집안에서 받아 볼 수 있다. 또 온라인으로 미리 주문하고 직접 찾아가서 책을 확인하고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턱대고 방문해서 원하는 책 목록을 고구마 식구들한테 들이밀면 두어 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그렇다면 책을 찾는 사람도, 책을 사는 사람에게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 여러 권의 책을 구입하고자 하면 미리 주문하는 것이 고구마에서의 기본 에티켓이다.
그렇다면 온라인 헌책방이 어디 고구마뿐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북○○, 책○○ 등의 온라인 헌책서점들이 많다. 그러나 고구마가 돋보이는 것은 바로 ‘헌책의 다양성’에 있다. 보통 헌책방들이 잘 나가는 책만 골라서 갖다 놓는 반면 고구마에는 이범순 대표가 20년간 지역을 가리지 않고, 가정집, 출판사, 고물상까지 직접 뛰어다니면서 구해온 고서, 희귀본, 절판본 등 흔히 만날 수 없는 책들하며, 혹 재고가 없는 것들도 게시판으로 부탁하면 설마 했던 책들까지 모두 만날 수 있다. 궁금하시면 지금 바로 들어가 보시라.
끝으로 고구마 인터넷 사이트 개편 소식 하나 더. 고구마 사이트는 97년에는 고구마를 단순히 홍보하는 수준이었고, 98년에 검색기능과 온라인 구매기능을 추가한 이래 한번도 보완 된 적이 없다. 하지만 학문의 경계가 허물어져가고 다양해졌기 때문에 분류코드도 더 세분화할 계획이란다. 특히 새로 개편된 사이트에는 경매 기능도 추가된다고 하니 원하는 책에 직접 가격을 매겨 흥정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Interview_ 헌책방 고구마 이범순 대표 인터뷰
설립동기
원래 시를 좋아했어요. 청계천이니, 동네 헌책방이니 많이 돌아다니면서 신동엽 시인의 책도 많이 봤죠. 그러면서 헌책방의 매력과 재미를 알게 됐고 군대 제대하고 그냥 헌책방을 직접 차려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헌책의 매력은
일단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죠. 또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만날 수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혀 예상치도 못한 보물급 책을 만난다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책 판매주기가 짧아요. 신간은 더욱 그렇고요. 금방 나왔다가 금방 절판되죠. 근데 헌책은 수십년 전 것도 만날 수 있어요. 그리고 전 주인의 흔적 체취도 느낄 수도 있죠. 의미 있는 밑줄이라던가 낙서 같은 거요. 또 뒷장 한쪽에는 단편적인 일기 비슷한 것도 있고요. 사랑했던 사람, 미워했던 사람에 대한 단상들도 만날 수 있고, 그런 즐거움이 짭짤하죠. 한 번 맛을 보면 환자가 되고 저도 환자예요.
헌책에 담긴 추억 하나
70년대 말 김지하의 『오적』을 울면서 읽었어요. 그래서 청계천 헌책방을 모조리 뒤지면서 돌아다녔는데도 못 샀어요. 결국 한 헌책방에서 베끼는 데만 5천 원을 줬죠. 그것도 빨리 베끼라고 재촉하는 주인의 구박을 받아가면서 말이죠. 그 당시 김지하 시집은 판매 금지서라 한 권에 2~3만원도 더 했죠. 그래도 못 구했으니.
운영하면서 보람과 힘든 점
시간이 돈인 요즘 세상에 몇 시간씩이고 검색하고, 찾아와서 기어이 원하는 책 찾아가는 손님들 보면서 힘도 받고 보람도 느껴요. 하지만 어렵게 구한 책을 도둑 맞을 때는 힘이 빠지죠. 옛날에는 학생들 많이 잡았어요. 아이들은 잘 가르치면 가능성 있잖아요. 유치하게 부모님께 돈 요구하고 그런 건 안 하고 두 달 내내 반성문 써오게 했죠.
밥 먹여 가면서 말이죠. 하하하. 사실 보안 카메라도 사다 놨는데, 고민되더라고요. 카메라를 단다는 것이 야박해 보이기도 하고, 저희 가게 찾아오는 손님들을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것도 할 도리가 아닌 것 같고. 잃어버리는 게 더 나은가 싶기도 해서 지난 겨울에 사다놨는데 못 달고 있어요.
앞으로 고구마의 운명은
솔직히 욕심은 있어요. 저도 장서 몇 백만 권에 도전하고 싶어요. 하지만 보관부터 시작해서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그래도 목표는 확실히 가지고 있어요. 규모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빠르면 내년쯤에 지역에 폐교 하나 얻어서 헌책 박물관을 만들 거예요. 폐쇄적이거나 일부 마니아들만의 놀이터가 아니라 일반 대중들 누구나 쉽게 접근해서 책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할거예요. 역시나 도둑이 겁나긴 하지만.
출처 : 컬쳐뉴스(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201&title_down_code=005&article_num=709&page=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