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잠시도 쉬지 않는 화학공장"

다이앤 애커먼 ’뇌의 문화지도’ 출간

사람들은 예술 작품 앞에서 작가와 자신을 괴롭힌다. 놀랍고, 아름답고, 뭔가 있어보이지만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냐”라며 작가에게, 감독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냥 즐겁게 받아들여도 되는 일이지만 인간의 좌뇌는 반드시 뭔가 의미가 있어야한다며 고집스럽게 “왜?”라고 묻기 때문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스완네 집 쪽으로’ 편에서 겨울날 어머니가 건넨 마들렌느 과자를 차에 적셔 맛보는 순간, 어릴 때 마들렌느를 먹던 숙모 집과 그 주변의 분위기, 촉감, 소리의 폭포 속으로 이동했다고 썼다.

뇌의 생성과 진화를 살펴본 책 ’뇌의 문화지도’(작가정신 펴냄)에서 저자 다이앤 애커먼은 뇌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느낌과 생각과 욕망들이 개울처럼 흐르는 꿈의 공장이자 주름진 옷장, 공모양의 뼈 속에 들어있는 작은 폭군”이라고 부른다.

“잘 잊혀지지 않는 노랫가락이 머무는 곳도, 갈망이 계속 옆구리를 찔러대는 곳도 그 곳이다. 뇌는 잠시도 쉬지 않고 분주하게 대화를 나누는 복잡한 화학공장이다. 뇌는 또 자그마한 번개들이 여기저기서 번쩍이는 공간이다. 뇌는 겨우 몇 초 사이에 실존주의를 생각할 수도 있고 자신의 탄생과 죽음을 생각할 수도 있다.”

천억 개에 달하는 뇌속의 뉴런, 수지상돌기, 축색돌기 등은 작은 접촉점(시냅스)을 통해 악수하듯 의사를 소통해 의식을 만들고 행동을 빚어내는 능력이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적인 그림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것은 ’시계란 딱딱하고 각지다’라고 패턴화하고 있는 우리의 뇌가 녹아내린 시계를 보고 낯설고 당황해 거듭 확인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겐 무려 천 개나 되는 자아가 있다”고 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어린시절부터 유전자의 자극을 받고 탄생하는 자아가 사랑스럽고, 괴상하고, 유치하고, 어른스럽고, 치졸한 여러가지 모습을 띠게 되는 과정도 소개된다.

분노, 스트레스, 아드레날린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뇌가 그것들을 어떻게 누그러뜨리는지, 넘쳐흐르는 감정을 말로 가두고, 잘 떠오르지 않는 기억들을 말로 구슬리는 뇌의 능력도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자아’에서 탈출해 인간을 다시 쓴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뇌 과학자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을 만 하다.

셰익스피어는 ’소문’을 “추측, 질투, 억측이 부는/파이프”라고 묘사했다. ’키스’는 “굶주린 뱀이 얼어붙은 물을 만난 것처럼/위안이 되지 않는 것”이었고, ’리처드 2세’에서 왕은 “시간을 세는 시계”로 변신해서 “내 생각은 하찮고, 한숨과 함께 삐걱거린다”고 탄식했다.

이런 묘사는 “셰익스피어가 소란한 와중에도 정신을 집중할 수 있고 단어와 감각적인 기억을 재빨리 찾아내 이미지로 사용할 수 있는 재능, 신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향해 열려있는 뇌”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베스트셀러 ’감각의 박물관’을 냈던 저자는 이번에도 해박한 과학적 지식과 시인같은 감수성, 깊은 철학적 사유의 세계를 과시하며 독자를 유혹한다.

원제 ’An Alchemy of Mind’. 김승욱 옮김. 476쪽. 2만2천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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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4-21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이름이 예뻐요. ^^

stella.K 2006-04-2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 다이앤을 좋아하시나요?
 

 

[김탁환의 책과 램프사이] 口碑文學은 미래문학이다

한국인의 삶과 구비문학

구비문학은 모든 문학의 할머니요 손자다. 기록문학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서정과 서사를 전했다는 점에서 고전문학의 첫머리에 서야 하고, 기록문학의 위기가 논의되는 지금도 채팅과 게시판 댓글을 통해 구어(口語)를 닮은 기기묘묘한 문장들이 잉태된다는 점에서 현대문학의 끝머리에 놓인다.

얼마 전 48회 국어국문학대회 디지털 스토리 텔링 분과 회의에서 좌장을 맡은 적이 있다. 그때 게임을 즐기는 젊은 대학원생들을 제외하고 좌석을 꽉 채운 교수들은 구비문학 전공자였다. 신화부터 게임까지 그들의 관심은 깊고 넓었다.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무척 많은 사용자가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의 다국적 네트워킹을 이야기‘판’의 구조와 비교하고, 롤랑 바르트의 ‘현대의 신화’를 참고하여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스타 신화’와 ‘물신(物神) 신화’를 분석한 것도 바로 그들이다.

                            18명의 구비문학 전공자들이 참여한 ‘(서대석 외 지음·집문당)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전통의 보존과 계승, 전통의 현대적 변용, 현대와 미래의 구비문학. 총론을 쓴 서대석 교수에 따르면, “구비문학은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나아가 미래문학에 두루 걸쳐 있는 보편적이고도 기초적인 문학의 영역”이다. 설화가 소설이나 동화로 재탄생하는 장면이나 창작판소리의 탄생도 흥미롭지만, 현대인의 삶을 구비문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제3부가 가장 눈길을 끈다.

심우장이 분석한 ‘현대 유머의 존재양상과 미적 특성’을 보자. 유머는 인터넷 글쓰기의 근간이다. 풍자와 해학에서부터 말장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머가 탄생하고 옮겨 실리다가 소멸한다. 예전에는 유머를 전달하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야 했지만, 지금은 골방에 틀어박혀서도 쌍방향성이라는 디지털 매체의 장점에 기대어 세계인과 유머를 공유할 수 있다.

대중가요를 민요와 연결해서 분석한 장유정의 논의도 신선하다. ‘트로트’를 일본근대음악과 비교하던 기존 방식을 훌쩍 뛰어넘어, 가수 김용우나 이상은의 최근 작업에서 가요와 민요의 행복한 만남을 꿈꾼다. 시(詩)와 노래(歌)를 분리하지 않고 ‘시가(詩歌)’로 통합하여 바라보는 관점이 있기에, 대중가요까지 문학연구 대상으로 아우른 것이다.

▲ 김탁환·소설가
구비문학 전공자들은 또한 사이버 공간에 관심이 매우 많다. 미학적 완결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연구자들에게 이 공간은 형편없는 이야기들이 득실대는 오물통이지만, 구비문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공간은 탐험을 기다리는 신천지이자 디지털로 몸단장한 이야기판이다. 무더운 여름날 시골 노인정을 돌며 수첩에 일일이 적고 사진을 찍고 모았던 이야기들이, 웹마다 그득그득 쌓여 있는 것이다.

이 재미난 고민거리를 구비문학 전공자들에게만 맡겨두지 말자. 지금이라도 당장 줄기세포 이야기, 월드컵 이야기를 찾아서 정리하고 따져보자. 여기 문학의 새로운 성운(星雲)이 있나니!

김탁환 소설가·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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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꿀꿀할 땐 빨간 립스틱 바르거

나…

>> 장 필립 투생 ‘사랑하기’
>> 콜린 러시 ‘벌거벗고 수영하고…’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노래한 류시화 시인을 굳이 인용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상대방의 부재(不在)만이 우리를 가깝게 해주고, 곁에 붙어 있으면 오히려 이별을 가속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생 선배들이 읊조렸던 “이 웬수야!”라고 할 때 웬수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벨기에 소설가 장 필립 투생(Jean-Philippe Toussaint)이 쓴 경장편 ‘사랑하기’(Faire l’amour)를 흐린 주말에 읽으시면, 우리가 연인으로 만난다는 것과 그리고 헤어진다는 것의 그 꿀꿀함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 해드릴 것입니다. 이 소설은 만난 지 7년 된 남자와 여자가 주인공입니다. ‘마리’라고 불리는 여자는 국제적 명성을 가진 프랑스의 의상 디자이너입니다. 남자는 백수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가끔 사진 찍는 일을 하는 것으로 묘사는 돼 있습니다만.

두 사람은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 도쿄로 떠납니다. 그들은 이 여행이 사실상 이별 여행이 될 것이란 점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주쿠에 있는 한 호텔에서 새벽 3시쯤 비장한 섹스를 하는데, 동시에 머리 속에는 이런 중얼거림이 떠돕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정사를 나눴던 게 몇 번이었던가? 잘 모르겠지만 자주였던 것 같다. 자주….”(14쪽)

두 사람은 고통스럽고 불순하고 비극적인 섹스를 통해 고독한 쾌락과 슬픔을 오래된 화상(火傷)처럼 온몸에 친친 동여맵니다. 공격적인 방식으로 벌거벗은 상대의 치골을 마찰시키다가, 그리고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다가 두 발로 상대를 밀쳐내고 등 뒤에 이렇게 외칩니다. “역겨워. 당신이 역겹다고.”

뿌옇게 김이 서린 백미러를 통해 빗속에 홀로 서 있는 그(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이별을 했던 경험이 있으신 분들께는, 이 소설이 나른나른한 쾌감 절정의 독서 체험을 제공해드릴 것 같습니다. 저도 연전에 인터뷰한 적이 있는 장 필립 투생의 조용한 목소리가 금세 묻어나올 것만 같은 차분한 문장, 초절정의 관능 미학으로 재현되는 동작들, 그리고 현미경을 들이대듯 한 극사실적 점묘 화법도 압권입니다. 이재룡 교수(숭실대)의 맛깔나는 번역 솜씨는 초특급이구요.

술꾼이 통음과 해장국을 미리 세팅하듯, 그리고 사우나의 열탕은 냉탕 때문에 존재하듯, 꿀꿀함을 업그레이드한 다음엔 반드시 콜린 러시(Colleen Rush)의 산문집 ‘벌거벗고 수영하고, 중력에 저항하기’(Swim naked, defy gravity & 99 other Essential things)를 읽어보셔야 합니다. 이 책은 여성들에게 발칙·발랄·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100가지 팁을 알려주고 있는데요, 아마 독자들은 데굴데굴 구르거나 혹은 아하, 라며 무릎을 치거나 두 가지 동작만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우선 “누드와 물은 원초적으로 우리를 사로잡기 때문에” 벌거벗고 수영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차에 치어 죽은 동물처럼 기분이 꿀꿀할 때는 ‘쌔’빨간 립스틱을 바르라 하고요, 뻥! 하고 고급 샴페인 터뜨리기, 땡빚을 내서라도 비행기 1등석 이용해보기, 미친 척하고 무지개색 양말을 신고 출근하기, ‘거기’ 털 깎기, TV코드 뽑아버리기…등을 권합니다.

아, 저자는 또 ‘전신 마사지 받기’를 권하면서 20대에 최소 한 번 이상 전문가에게 마사지를 받는 건 사치가 아니라 필수라고 하네요.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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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아직 풀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책 읽기의 정독, 오독의 문제에 대한 답변도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예 글쓰기 훈련방법으로 들어가다니! 이런 방식의 수순이 책읽기에 얼마큼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글쓰기를 알면(코끼리 콧등에 박힌 작은 점 만큼일지라도)책읽기가 한결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글쓰기 책을 읽는다. 하도 글쓰기 강좌가 많고, 글쓰기 달인으로 가는 지름길까지 안내해 주는 도서들이 많아서 독자는 글쓰기 관련 책을 선택하는 일부터 고개를 휘두를 지경이다. 브라질 아마존 강 밀림처럼 다양무변하게 포개진 서점의 그 많은 책 중에서 글쓰기 안내자를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게 만나는 일이란 밀림에서 뱀과 맞닥뜨리지 않는 일보다 더 어렵다. 인터넷의 무한정 보급과 핵폭발보다 더 폭발력이 무서운 개인 블로거들의 대량양산으로 글쓰기는 이제 지상 최대의 세계 정복 ‘전략’의 한 종목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오죽하면 ‘글쓰기 전략’이라고 제목을 턱하니 붙인 책이 다  나오는가. 전략이 나왔으니 밀림 어딘가에 글 쓰는 일을 정복할 ‘전술’도 숨어있을 것이다. 글 쓰는 일이 얼마나 골머리가 부셔지는 일이라서 전략이니 전술이니 하는 전투용어가 동원된단 말인가. 그럼에도 하루에 수 억 명의 사람들이 그 지겨운 글을 쓴다. 글쓰기는 더 이상 전문 작가들의 고유명사가 아니다. 글을 쓰는 행위에는 종이와 펜, 또는 컴퓨터와 프린터, 고전적인 것을 좋아한다면 줄이 바뀔 때 딩동 소리를 내주는 타자기로 글을 써도 된다. 폴 오스터는 타자기로 빵도 구워 먹었는걸! 휴머니즘적인 글, 리얼리티적인 것, 이데올로기와 경제 논리, 아동의 정서, 판타지와 권선징악. 이도저도 다 짜여진 틀이 싫으면 낙서 같은 아포리즘의 섬광으로 한 권의 책을 쓴다. 물론,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글쓰기는 바로 당신의 인생과 그 인생에서 탄생하는 산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에서 말하는 글쓰기의 ‘특별한 비법’이란 색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이 가는 방향대로 자유롭게 흐르도록 놓아두면서 멈추지 말고 계속 쓰라는 말씀으로 첫 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일관한다. 저자의 에필로그가 끝나는 268쪽까지 수만 글자의 단어와 수천의 문장이 말하는 것은 단 한마디의 반복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믿으며 계속 써라!” 글쓰기의 전략전술치고는 너무 실망스러운가? 좀 더 그럴듯하고 폼을 재는 힌트를 기대한 독자는 실망할 것이다. 실망한 독자에게 저자는 말한다. “그래도 멈추지 말고 써라!” 우리가 나무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글쓰기를 이해하는데 아주 좋은 유도방식이다. 나무를 알려면 인터넷 검색자료를 찾거나 나무와 관련된 다른 책을 열심히 읽으며 될지도 모른다. 풍부한 나무 상식이 생긴 자신을 흐뭇하고 대견하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곧장 등산화를 신고 숲으로 들어가 나무를 만나고 그것을 만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무를 알려면 나무가 있는 숲으로 가야한다. 글을 잘 쓰려면? 당연히 글을 계속 써야한다. 단순한 결론, 명쾌한 답변이란 언제나 질문 속에 숨어있다. 그것을 멀리 폭풍우 치는 낯선 들판까지 방황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서야 깨닫는 것이 인간이다.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19쪽)

“무언가를 은유하기 위해 당신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일을 하지 말라”-(72쪽)

“마음속에 무수히 난 많은 길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들판으로 달려가지는 말라”-(103쪽)

“찻잔 하나에도 아주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130쪽)

“글쓰기는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에 불을 지피는 행위다. 종이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147쪽)

“심장 전체로 글을 써라”-(215쪽)

“글쓰기는 숨을 쉬는 것과 같다.”-(218쪽)


글쓰기 전략전술치고는 너무나 단순한 대답을 해 준 저자는 그 훈련방법 제시 또한 다분히 명상적인 답변을 들려준다. 1)모호하고 안개 같은 표현 대신에 사물의 대상이 지닌 이름을 불러주고, 2)생각을 확장시키면서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을 시각화로 서술하란다. 3) 문장구조에서 벗어나 상상력의 힘을 빌리자. 멈추지 말고 계속 쓰면 글의 품질에 의심을 갖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러면 붓을 놓자. 이건 내 방식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뇌가 수소폭탄처럼 폭발할지도 모르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논다. ‘논다’는 의미에 대하여 저자의 표현을 잠시 빌리면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재료를 정성껏 준비해서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글쓰기 방식에 비유하는 대목이 책에 나온다.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라 슬로 푸드다. 요리는 천천히 익어가야 진국이 우러난다? 그렇다면 사골 국처럼 뼛속까지 우려먹는 글이란 어떤 글인가? 앞에서 답이 나왔다.


어떤 글이든, 자신의 글은 한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글이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웃기거나 괴롭거나 외로운 모습과 분노하고 행복한 삶의 얼굴이 글자와 함께 한다. 최소한 나와 당신이 아마추어라는 딱지를 영원히 떼지 못한다하더라도 글을 쓰면서 자신의 욕구를 배출하는 자위수단으로 삼고 있는 한 그렇다. 책을 읽으면서 기대했던 신비의 ‘명약’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은 시들하다. 글쓰기의 ‘불로초’를 구한다면 진시황의 무덤에 가서 묻자. 단, 진시황은 책을 죽인 장본인임을 기억해야 한다.


명문장이 책 한권에 가득하다. 저자는 선(禪)과 글쓰기를 연결했다.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배경으로 깔고 삶 전체를 관통하는 큰 그림위에 글쓰기라는 하나의 모티브를 장식한다. 장식으로 얹어진 글쓰기 훈련방법이 시니컬하지 않으면서 현학적이지 않아서 긴장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하지만 글을 읽는 일도 어려운데 글을 쓰는 방법을 듣는 일에까지 신경을 닳고 싶지는 않다. 세상의 모든 것이 글의 재료다. 그러니 옷 장속에 개켜둔 낡은 털 잠바부터 책상위에 어질러 놓은 연필 토막과 밤 아홉시에 피아노를 치는 위 층 여자를 흉보는 이야기까지 모두 글로 쓴다. 평범한 것으로 부터 출발하는 삶. 긍정하는 삶. 따지고 보면 인간은 원래 홀씨 하나로 출발했다. 인간은 우주 전체의 한 부분이다. 다시 저자의 종교적인 입담을 빌려서 말하자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니까”-(177쪽) 글쓰기를 꿈만 꾸지 말고 천국으로 달려가자. 인생은 한 장의 넓은 도화지이고 내가 쓰는 글은 그 위에 그려지는 그림이다. 천국의 그림! 좀 못생긴 천국이면 어떠냐! ‘종이에서 걸어 나와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외로운 나의 글쓰기다.


부기) 번역이 잘 되어서 글자가 눈에 착착 감겼다. 저자가 워낙 윤기 자르르한 명문장을 구사한 탓이겠지만 옮긴이의 실수가 눈에 띄지 않는 몇 안 되는 반가운 책이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이 책을 검색해보니 옮긴이 이름이 작은 화면에는 ‘권진욱’이라고 나온다. 물론 내가 지닌 2005년도 판에도 권진욱이라고 써 있다. 하지만 책 제목을 입력한 메인 화면에는 ‘권경희’라는 옮긴이의 다른 이름이 나온다. 어절씨구? 약력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동일인물로 보인다. 그런데 번역이 훌륭했다고 흐뭇해하는 독자에게 이 두 개의 이름은 우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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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19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가져가겠습니다
 
 전출처 : 니르바나 > 참 아름다운 사람

                         

장일순의 방 한 쪽에 신문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다.

전두환의 얼굴이 보이는 그 신문을 가르키며 장일순이 말했다.

"저이가 위험한 사람이야. 우리가 저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해야 돼"

저이란 전두환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전두환뿐이 아니었어. 박정희도 김일성도 늘 같이 대했어.

늘 말씀하셨지. 그 사람들 잘 되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된다고."

 

누군가 방황을 할 때 우리는 두 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다.

하나는 욕이나 비난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부디, 잘 되라고 비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적이라도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빌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짜 얻어야 하는 것은 누굴 이기는 게 아니라 평화로운 삶이기 때문이다.

 

혼자 뉴스를 보는 경우 아직까지 혼잣말로 촌평을 하지 않고 묵묵히 쳐다보지만,

가끔 아내와 함께  정치인이 대한 보도를 볼 적마다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해 심한 말까지

서슴지 않고 내뱉곤 한다.  늙어가는 증세인가...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 장일순 선생의 말씀을 듣고 내 행동에 반성을 한다.

 

원주에는 1군 사령부가 있다. 1군사령관은 별이 넷인 4성 장군이다.

새로 부임해 온 1군 사령관이 인사를 하러 장일순의 집에 들렸다.

늘 있는 일이었다.

각 기관의 장은 새 부임지에 가면 그 지방의 유지를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것이 상례였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사령관이 장일순에게 나이를 물었다.

서로 나이를 주고받고 나서 장일순이 말했다.

"저보다 아래시군요. 제가 말을 놓아도 되겠습니까?"

소탈하면서도 서슴없는 제안에 장군은 거절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장일순은 이렇게 사람들이 단 계급장이나 쓰고 있는 모자 벗기기를 잘했다.

평신도이면서도 사석에서는 신부라도 나이가 아래면 그냥 아우님이라 불렀고, 위면 형님이었다.

지학순 주교도 사석에서는 형님이었다.

 

과연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어떤가 생각해보니 선생과 달리

사람들이 걸친 위의에 맞추어 사람들을 대하며 살고 있었다. 단 한 차례의 예외도 없이

과연 사적으로 만날 경우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있다손쳐도

나보다 나이어린 목사나 전도사에게 말을 놓을 껏 같지않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장일순에게 과연 아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리집 주인은 내가 아니고 저 양반이야. 나야 건달이고 하숙생이지"

장일순에게  아내는 또한 선생님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이렇다.

"혜월은 이렇게 말씀하셨지. '아이들 말이라도 옳으면 따라야 한다'고

남자는 원래 구녁이 많은데 그때마다 아내가 일침을 가하듯 딱딱 찔러준다네.

뭐냐하면 그런 점에서 아내는 선생님이시지."

목사 이현주가 처음  부인과 함께 선생을 찾아 뵈었을 때, 부인이 자리를 뜨자,

"저 사람이 보살일세. 잘 모시게"

 

오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기념절이다.

예수님이란 과연 누구이신가.

나는 선생의 말씀을 빌어 말하고 싶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등 조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보살로 모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그리고 장일순 선생은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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