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하얀 거짓말이 피었습니다

진해 벚꽃
김탁환 소설집|민음in|332쪽|1만원

소설가와 지식인은 모두 글쓰기를 통해 존재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글을 써서 살아간다. 좋은 소설가는 그럴 듯한 거짓말을 잘 꾸며내야 하고, 옳은 지식인은 그럴 듯한 참말을 논리정연하게 펼쳐야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탁환<사진>은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가르치는 교수로 활동하면서, 소설가와 지식인의 행복한 결합을 보여준다.

TV 드라마로 성공한 역사 소설 ‘불멸의 이순신’, 한국형 팩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방각본 살인 사건’과 같은 역사추리소설을 통해 김탁환은 한국 문단에서 본격 문학과 대중 문학을 잇는 중간 문학의 견인차로 꼽힌다. 김탁환은 스스로 “지식 소설가를 지향한다”고 밝혀왔다. 가령, 영정조 시대 지식인 집단을 다룬 ‘방각본 살인사건’은 전근대적 인물과 풍속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근대적 합리성의 산물인 추리 소설 기법으로 그 시대를 형상화한다. 그것은 역사라는 지식의 영토를 소설이라는 상상력의 영토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그의 역사 소설은 실록이나 야담의 소설화가 아니라, 사료에 대한 엄정한 지식에 현대적 허구를 결합시키는 것이란 점에서 ‘다빈치코드’류의 외국 팩션에 맞설 토종 팩션의 경쟁력을 과시한다.


그런데 김탁환이 등단 10년 만에 펴낸 첫 소설집 ‘진해 벚꽃’은 역사소설 모음집이 아니다. 소설 미학의 내적 완성을 지향하는 근대적 예술가 의식이 낳은 단편 소설들을 모았다. 각 작품들마다 주제와 소재는 다르지만, 다 읽고 나면 한 편의 성장 소설이 완성된다. 폐결핵을 앓던 어린 시절 책읽기에 푹 빠졌던 한 소년이, 아버지의 때이른 죽음을 겪고, 격동의 80년대 대학을 거쳐 소설가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 되기까지의 성장사가 각 단편들 속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집은 개인적 체험을 고백한 사소설도 아니고, 386세대의 후일담도 아니다. 소설가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소설은 현실을 어떻게 언어로 담아내는가, 소설이란 거짓말의 매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가 소설’에 가깝다. 역사소설가 김탁환의 또 다른 얼굴이자, 진솔한 얼굴을 보여준다. 진해 출신인 작가가 책 제목을 ‘진해 벚꽃’으로 붙인 까닭은 무엇일까. 한 작가의 내적(內的) 상처에 핀 흰꽃이 바로 소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글=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04-25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황진이> 읽고나서 처음에 얼굴 궁굼했는데 강연들을때 보고 놀랐습니다. 해군사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한 턱수염 있는 남자분이데요. 이제 카이스트로 옮기셨군요. 몇년후에 서울지역 대학으로 상경하시려나...

stella.K 2006-04-2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사람 책 벼르고만 있지 아직 한번도 못 읽어봤답니다. 올해 안에는 꼭 읽어보게 되겠지요?^^
 




2006년 KBS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다큐멘터리 '마음'은 '인간의 마음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서부터 시작된 탐구를 담고 있었다. 당시 시간 제약상 방영되지 않은 다량의 소중한 자료를 책으로 담고, 국내외 저명한 학자들이 소개하는 마인드 컨트롤 방법을 다뤘다.

책의 주제는 간결하고 명확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과 근거를 위해 뇌과학, 신경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등 과학의 여러 분야가 인용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의 정신력을 이끄는 마음의 존재를 과학적 실험과 이론으로 증명해보이고, 의학적으로 분석하는 절차를 제시한다. 그리고 마음의 신비하고 복잡한 작용을 실례와 뇌영상 사진을 통해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말레이시아 세노이 족은 꿈을 해석하는 오랜 관습이 있다. 1935년 말레이시아 세노이 족 마을을 방문한 미국의 인류학자 킬튼 스튜어트는 그들의 독특한 꿈의 해석에 주목했다. 세노이 족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족이 모여서 꿈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당시 세노이 족 마을은 범죄가 전혀 없었고 서로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전날 밤 꾼 그대로 다음 날 행동에 옮기기 때문이라고 킬튼은 해석했다.

전날 꿈에 마을의 누군가와 싸워서 다치게 했다면 다음 날 자기가 다치게 한 그 사람을 찾아가 꽃을 주면서 사과한다. 꿈에 누구와 사랑을 나눴으면 그 사람에게 가서 꿈 이야기를 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누구를 꿈속에서 살해했다면 다음 날 아침 살해된 그 사람에게 사과를 하고 그 사람과 같이 주술사에게 가서 악령을 쫓아내는 의식을 한다. --본문 183쪽 중에서



이영돈 -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및 동대학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호주 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대학원을 수료한 후에 1981년 KBS에 입사했으며, 91년 SBS 개국과 함께 SBS에서 일하다가 95년 KBS로 돌아왔다. 1999년부터 2002년10월까지 KBS 뉴욕 PD특파원으로 일했으며, 현재 '추적60분' 책임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프로그램으로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주병진쇼' KBS '일요스페셜' '생노병사의 비밀' '술 담배 스트레스에 관한 첨단 보고서' 등이 있으며, 한국방송대상 다큐멘타리부문('그것이 알고싶다'), 연예오락부문('주병진 쇼')과 한국언론상 기획보도부문('생노병사의 비밀') 등에서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추천의 말_마음을 다스리고 용서하자
프롤로그_마음, 그 위대한 유산

PART 1 기억과 무의식의 세계
Chapter 01 마음이란 무엇인가
Chapter 02 동물도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Chapter 03 갇혀 버린 마음
Chapter 04 마음, 몸을 지배하다
Chapter 05 뇌 안의 유령
Chapter 06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Chapter 07 희망이 최고의 약이다
Chapter 08 기도가 병을 고친다
Chapter 09 상상하면 이루어진다
Chapter 10 삶을 변화시키는 심리 전략
Chapter 11 감정이 건강을 좌우한다
Chapter 12 상상할 수 없이 깊은 무의식의 세계
Chapter 13 광고를 통해 본 무의식
Chapter 14 무의식에 새겨진 마음을 깨우다
Chapter 15 기억의 재발견
Chapter 16 공포도 기억이다
Chapter 17 기억을 버려라

PART 2 용서와 이완의 세계
Chapter 18 사람을 죽이는 분노를 다스려라
Chapter 19 이완의 기적들
Chapter 20 이완의 기적을 만드는 방법
Chapter 21 편안한 마음이 좋습니다
Chapter 22 마음 깊은 곳에서 이완하다
Chapter 23 명상하는 학교
Chapter 24 당신을 용서합니다
Chapter 25 용서함으로 아름다운 사람들
Chapter 26 용서를 위한 프로젝트

에필로그_ 아름다운 마음이 세상을 바꾼다
부록_ 무지개 명상_최면출산 스크립트 / 참고도서 / 「마음」 제작 관계자 리스트


1000원 할인 쿠폰되는데...!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6-04-22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보고 싶더라고요. 하지마 괘 비싸네요

프레이야 2006-04-2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비에서 보았어요. 마음은 가슴이 아니라 뇌 안에 있더군요. ^^

마립간 2006-04-2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차를 보니 빈서판이 떠 오릅니다. 시간있을 때 사서 읽고 비교해봐야겠습니다.

stella.K 2006-04-22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회부터 보진 못했지만 보면서 빠져들었던 프로였어요. 지를까 봐요.^^

비로그인 2006-04-24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리뷰가 3개 올라왔네요. 기자,피디들이 쓴책은 넓어도 깊이가 없던데. 날잡아서 반디에서 읽어 볼까. 비싼데 마일러지는 많이주네요.

stella.K 2006-04-24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저도 그점이 좀...^^
 

 

섹스, 거짓말, 그리고 스파이

음모자들
샨사 장편소설|이상해 옮김|현대문학|314쪽|9000원

프랑스어로 창작활동 하는 중국 작가 ‘샨사’

스파이 소설 통해 인간관계의 진실게임 추적

1989년 중국 천안문에서 학생 시위대를 이끌었다가 홍콩을 거쳐 프랑스로 망명한 37세 여성 아야메이는 현재 중국 정부를 위해 비밀 공작을 펼치는 에이전트다. 무술의 고수이기도 한 아야메이는 프랑스 총리의 보좌관인 유부남 마틀로를 유혹해서 애인관계로 만든다. 아야메이·마틀로의 루트를 통해 중국은 극비리에 프랑스로부터 무기를 사들이고, 그 대금은 프랑스 정계에 검은 자금으로 흘러 들어간다.

어느 날 파리의 룩상부르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아야메이의 아파트에 미국 CIA의 요원인 조나단이 접근한다. 바로 이 대목이 소설의 시작이다. 에펠탑 꼭대기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초대한 조나단이 다시 아야메이를 유혹하면서, 소설 속에 인물 삼각형이 꼭지점을 형성한다.

이 소설에서 세 인물의 삼각 관계는 21세기 지구촌의 강대국인 미·중·불 3국이 벌이는 국제 정치 게임의 축소판이 된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미래의 적으로 보지만 현재의 이익을 위해 우호 관계를 유지한다. 프랑스는 중국의 인권 탄압을 겉으로 비난하는 척 하면서 뒤로 무기를 판매해 중국을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호랑이로 키운다. 물론 그 틈바구니에서 국익을 챙긴다.

샨사는 스파이 소설 형식을 빌려 인간 관계의 진실 게임을 그리려고 했다. 세계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각 개인들은 꼭두각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고,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지난해 프랑스 추리 소설계에서 이런 평가를 받았다. “사랑이 지나치게 중요한 주제 중 하나지만, 서스펜스를 놓치지 않았다. 속임수도 교활했고, 문체의 순도가 대단했다. 오늘날 (국제 사회의) 암투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보여준 작품이다.”


오늘날 유럽에는 프랑스어로 창작 활동을 펼치는 중국인 작가들이 여럿이다. 동서양 문화 교류에 대한 공로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정회원이 된 프랑수아 쳉, 유럽 정신 분석학을 중국인의 해몽과 비교한 소설 ‘D의 콤플렉스’로 2003년 페미나상을 수상한 다이 시지에, 그리고 소설 ‘측천무후’ ‘바둑두는 여자’ 등으로 국내에도 고정팬을 확보한 샨사다. 문학성과 대중성의 조화를 이룬 작가로 꼽히는 샨사가 이번 신작 ‘음모자들’을 통해 하위 장르로 불리는 스파이 소설의 형식을 본격 차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 아야메이의 정체는 독자들에게 소설을 지탱하는 비밀로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다른 인물의 관점에서 그녀의 내면까지 묘사한다. 결국 타인과 타인끼리의 시선만 남아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모호해진다.

흥미로운 성격의 스파이 조나단은 독특한 상상력을 가진 남자다. 마치 작중 인물을 창조하려는 작가의 그것과 닮았다. 그는 비밀리에 상대의 아파트로 침입하면서 ‘각 자물쇠는 축소형 미로, 철학자의 두뇌, 여자의 성기’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런가하면 아야메이가 중국 경제 발전의 부작용을 비판하는 것은 마치 작가 샨사의 입장을 반영한 듯 하다. ‘상품들로 가득찬 백화점들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안마시술소와 이발소에서 매춘을 하는 소녀들의 비참함을 감추고 있어. 오염된 구름들 아래 타워들이 키재기를 하는 땅, 피상적인 쾌락을 찾아 로봇처럼 돌아다니는 사람들.’

작가는 현실 발언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삶이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가 새기게 되는 소리, 냄새, 희망의 설렘, 낙담의 한숨들은 어떤 것일까?”라는 생의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독자들은 마치 비누거품을 닮아 손에 잡히지않는 그런 디테일들을 찾아 나선다. “끊임없이 유전하는 이 세계의 유일한 관객”으로 남아 그것들의 순간적인 광채를 포착할 때까지.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6-04-2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정치물입니다 ㅠ.ㅠ

stella.K 2006-04-22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편견을 갖고 계시는군요. 그래도 샨사는 좋아요!^^

비자림 2006-04-2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샨사 좋아해요. 우연히 측천무후 읽고선 좋아서 천안문도 찾아 읽었죠.

stella.K 2006-04-2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천안문 읽고 좋아하게 됐어요!^^

플레져 2006-04-22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어요, 샨샤! 추천밥은 스텔라에게! ^^

stella.K 2006-04-22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큐!^^

다소 2006-04-22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샨사 좋아요~ 이 책 엄청 읽어보고 싶더군요. 이힛.

stella.K 2006-04-23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좋지요.^^
 

 

조선시대 사람들은 지금보다 3배 먹었다

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
한국고문서학회 지음|역사비평사|304쪽|1만7000원

서기(西紀) 23세기에 사는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살구꽃이 활짝 핀 18세기 조선의 평양. 오늘 밤 새 평안감사(平安監司)가 대동강에 십여 척 배를 띄우고 봄날의 밤을 즐긴다고 한다. 평양 주민들은 횃불을 들고 나와 뱃놀이를 구경하며 한바탕 축제를 벌일 것이다.

강변에 도착하니 이미 강 양안(兩岸)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그 중에서 가까운 남쪽 강변에 있는 사람들 224명의 옷차림을 관찰했다. 청(靑)·황(黃)·홍(紅)·갈(褐)·흑(黑). 갖가지 색깔의 옷차림이다. 이를 보면 ‘백의(白衣)민족’이란 말은 아마도 19세기 이후에나 나온 말일 듯하다.

지체 높은 양반들만 나온 게 아니다. 효심 깊은 젊은 상민(常民) 부부는 노(老)부모를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구경 나왔다. 젊은 남편은 맨 상투머리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은 그래도 체면이 있는지 두건을 썼다. 저 멀리 아이를 업은 젊은 남자는 푸른색 저고리에 잠방이 바지를 입었다. 상민들은 주로 저고리를 입고 벙거지를 쓴 차림새다. 하지만 형편이 좀 나은 상민은 양반의 도포보다 소매가 좁은 겉옷(창옷)을 걸쳤다. 천민(賤民)들도 나왔겠지만 옷차림으로는 구별이 안 된다.

양반은 도포를 입고 술띠(술이 달린 띠)를 매는 것으로 신분을 나타냈다. 갓은 양반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횃불을 든 상민 홰꾼들도 갓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중인(中人)들은 도포와 비슷하지만 허리 아래 주름을 잡은 ‘철릭’을 입고 있다. 하지만 중인도 술띠를 매서 양반과 잘 구별되지 않는다. 옷차림만 보면 조선의 신분제는 ‘반(班)-상(常)’의 ‘2신분제’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유롭게 뱃놀이 구경을 즐겼다. 정말 성대한 행사였다. 오죽하면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란 말이 있었겠나. 김홍도(金弘道)라는 화가는 이 행사를 그림으로 그려 후세에 전하겠다고 한다. 그는 그림에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달밤에 배 띄우고 노는 그림)’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람들이 뭘 먹었는지도 궁금하다. 이곳을 비롯한 북쪽 사람들은 조밥을 주로 먹는다. 남쪽 사람들은 쌀밥을 많이 먹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보통 아침과 저녁 두 끼를 먹었다. ‘점심’이란 말은 낮에 먹는 밥이 아니라 아무 때나 형식을 갖추지 않고 먹는 것을 말한다. ‘미암일기’ ‘묵재일기’ ‘양용기’ 등 옛 문헌에 쓰여 있다.

대신 식사량이 엄청나다. 한끼에 2.1홉(420cc)을 먹는다. 21세기 사람들이 먹는 양의 세 배다. 19세기말 ‘조선교회사’를 지은 서양인 달레는 “조선 사람들의 가장 큰 결점은 대식(大食)”이라고 했다. 반찬은 냉이·달래·버섯·고사리 등 주로 채소들이고, 두부나 고기는 아주 귀하고 특별한 음식이다.

사는 집은 깔끔하고 아담하다. 집터를 잡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는 일 하나하나에 공간을 생각한 지혜를 담았다. 세입자도 있다 하니 사람 사는 모양은 언제어디나 비슷한 것 같다. 수도 한양은 기와집이 60%를 차지한다고 하지만 시골집 대부분은 방이 두세 개 딸린 초가집이다. 1904년 호적안(戶籍案)에 따르면 경남 11개 군 4만5000호 가옥 중 3칸집이 52%, 2칸집이 37%, 4칸집이 8%였다. ‘초가삼간’이란 말은 그래서 생겼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니 너무도 생생해서 내가 과거를 다녀온 것인지, 원래 조선에 살다가 이곳에 온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한수기자 hslee@chosun.com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6-04-21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그릇에 밥이 수북하더군요.

stella.K 2006-04-2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水巖 2006-04-2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 가요.

stella.K 2006-04-2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Mephistopheles 2006-04-21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요즘 사람들처럼 육류는 많이 섭취 못했을꺼고...
하루에 두끼 먹고 살았다고도 하던데..^^

stella.K 2006-04-2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사람들이 못 먹고 살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안 더만요. 요즘 스웨덴 기자가 쓴 100년 전 한국을 묘사한 책을 읽고 있는데 제가 그 시절을 안 살아 봐서 다 못 사는 줄만 알았다는...ㅋㅋ.

라주미힌 2006-04-21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식은 오히려 먹을게 없어서 그렇게 됐다던데요. 있을 때 많이 먹자...
 

 

[잠깐! 이 저자] "장애 여성의 세상 바꾸기, 한번 해

보죠"

'오늘도 난, 외출한다' 김효진

▲ 김효진 작가
김효진씨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다. 마흔 넘어 결혼해서 3년 전 아이를 낳은 뒤 그가 새로 듣게 된 말이 있다. 아이와 길을 나서면 “몸도 성치 않은데 애는 왜 데리고 다녀요?”라는 걱정이 들려온다. 아니, 저런 몸에 결혼을 했나, 하는 노골적인 시선도 느낀다. 장애인이며 여성이자 어머니로 살아가기란 어떤 것일까. 김씨는 “친정어머니조차 결혼을 반대하셨다”며 아이를 낳아 키우며 ‘여성 장애인의 권익’에 새로 눈뜨게 됐다고 말한다. 신체 장애를 지닌 여성은 ‘무성(無性)’의 존재로 살아가도록 압박하는 세상의 편견과 정면으로 맞설 용기도 생겼다. 김씨가 쓴 ‘오늘도 난, 외출한다’(웅진지식하우스)에는 그렇게 세상 속으로 나오려는 한 여성의 체험과 생각이 실렸다.

“지체장애 신입생을 위해 건물 출입구를 고쳤다, 이런 게 남다른 미담으로 신문에 나지 않는 세상이 와야죠. 장애인 중에서도 여성 장애인은 성차별의 장벽을 하나 더 겪고 있어요. 장애가 없는 여성도 직업과 출산·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데 장애여성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내겠느냐는 거죠.”

억울하고 아픈 이야기를 쏟아놓는데 막상 얼굴은 웃음이다.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화단 위로 올라가 달라는 요구에도 “한번 해보죠” 웃으면서 목발을 내려놓는다. 짧게 자른 머리와 자그만 체구에서 에너지가 툭툭 터져 나온다. 한국장애인연맹 여성위원장으로 있는 그는 자신을 ‘장애인운동가’라고 소개한다. 2003년부터 3년간 ‘에이블뉴스’라는 인터넷 장애인신문에 ‘백발마녀전’을 연재하면서 일상에서 겪는 차별과 과제를 풀어내기도 했다.

‘모두’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학교 시절 내내 소풍이나 운동회를 포기했던 일, 딸의 결혼은 꿈도 못 꾸던 부모님이 “너는 커서 엄마·아빠랑 살자”고 하는 말에 상처 받았던 일, 장애인인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던 일, 4개월 된 갓난 아기를 안고 걸을 수도 업을 수도 없어 두문불출하던 일…. 장애 여성으로 그가 살아온 40여 년 세월은 늘 자신과의 싸움인 동시에 세상에 대한 도전이었다.

“지체부자유 학생이 있는 반을 무조건 1층 교실에 배정하는 것은 차별이다. 경사로를 만들면 같은 학년 친구들과 같은 층을 쓸 수 있다.” “장애인 맞선 행사는 왜 평일에 열리나. 장애인은 모두 직장도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린 것 아닌가.” 그의 주장은 바로 자신이 겪어낸 일들에서 비롯한다.

그는 이제 장애인 정책이 ‘시혜’가 아니라 기본권 보장과 행복추구권 확보라는 점에서 ‘환경 개선’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와 함께, 장애여성 운동을 벌여나갈 힘을 모으겠다는 생각이다. “영화나 TV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에서 장애여성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지켜보고 문제제기를 할 생각입니다. 휠체어에 앉은 가련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못 박히는 것을 거부할 겁니다.” 그는 뇌성마비 여성과 부랑아 남성의 ‘사랑’을 그렸다는 영화 ‘오아시스’를 장애여성에 대한 왜곡의 한 예로 들었다. 명백한 성폭행을 사랑으로 합리화한 것이나 장애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밑바닥’으로 고정했다는 점 등이다.

김씨는 이제 장애여성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바느질 교육이 아니라 운전 교육이 절실합니다. 아이 낳아 키우는 장애인 엄마들을 위한 육아·가사 도우미 지원도 필요합니다. 사회 변화만큼이나 장애 여성들도 변하고 있습니다.”

글=박선이 선임기자 sunnyp@chosun.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