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지난 금요일 문화일보의 북리뷰에서 주목한 책은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열린책들, 2006)이었다. 저자의 이름에도 (귀족 출신임을 표시하는) '폰'이 들어가 있고, 제목에도 '우아하게'가 들어 있는지라 '가난해지는'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고 일단을 눈길을 주게 되는 책. 알고 보니 2005년 독일에서 출간되어 30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굳이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대열에 합류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독일 사회의 한 트렌드 정도는 읽게 해줄 만한 책이므로 우아한 손길마저 가져가도 무방하겠다. 문화일보와 국민일보의 자세한 리뷰를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6. 07. 21) '돈' 없이도 가능한 풍요로운 삶

-부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돈이 많다는 건 단순한 풍요를 넘어 여유와 자유와 멋과 아름다움 등을 총체적으로 의미한다. 그러나 문제는 부자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기는커녕, 세계 곳곳에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풍요의 시대는 끝났다는 신호가 번쩍인다. 이렇게 물질적인 풍요가 사라지면, 우리는 품위를 잃고 초라해 져야 하는가.



-몰락한 명문 귀족의 후손으로, 독일 유력지의 칼럼니스트로 일하다 구조조정을 당해 현재 프리랜서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는 저자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이 겪어본 결과, 여유와 멋과 자유와 만족과 아름다움과 우아함에서 부자보다는 가난한 것이 훨씬 나았다는 것이다(*저자에게 '가난'의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일단 모르겠다. 이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면 그의 '가난'은 물건너 간 건 아닐까?).

-책에 따르면 인간은 돈이 없어도, 아니면 최소한의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생활양식’과 ‘마음가짐’의 변화일 뿐이다. 진실로 부유해지고 싶은 사람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보다 황폐하게 만들 뿐인 것들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일’에 대한 생각이다. 종교개혁 이후 루터와 캘빈에 의해 ‘일’은 도덕적인 지위를 부여받고, 직업과 동의어가 됐지만 실은 여기에 문제가 많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근사한 주택과 자동차를 마련하나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돈을 위해 일에 묻혀 지내는 사이 아이는 훌쩍 커 버리고, 시간은 사라지며 스트레스와 심근경색으로 건강과 목숨을 잃기까지 하는데….

-집의 가치와 자동차, 휴가 여행 등에 대해서도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욕설이 튀어 나오게 되고, 과속을 유발하는 자동차는 실용적인 이유뿐 아니라 비용을 따져도 말이 되지 않는다. 오늘날 관광이라 불리는 것도, 겉보기엔 고상해 보이지만 사실은 기괴했던 속물들의 여행이 발전한 결과일 뿐이다(*이건 마음에 드는 멘트이군).

-외식, 매스미디어, 아이 키우기, 쇼핑 등등에서 가난뱅이가 부자보다 유리할 수 있는 이유를 설득력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풀어가던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경험한 부자의 사례를 중심으로 돈이 왜 행복의 걸림돌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를 진정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책을 끝맺는다.

-“삶을 보람있게 해주는 것들은 수중의 돈이 감소한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의 내적인 자주성은 결코 수입의 문제가 아니다. 박식함이나 예의범절도 마찬가지다. …정중함, 친절함, 다정함, 도와주려는 마음, 삶을 쾌적하게 해주는 모든 것은 무한할 수 있으며, 물질적인 여건과는 완전히 무관하다(*요컨대, 그가 말하는 바는 '가난하지만 우아한 귀족이 되는 방법'인 듯싶다). (김종락 기자)


국민일보(06. 07. 22) 가난,두려워 말고 즐겨라...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사는데 생활은 좀처럼 안정되지 않는다. 돈이 있으면 좀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벌어도 벌어도 돈은 늘 부족하다. 시간도 마찬가지.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잠드는데도 도무지 여유가 없다. 그뿐인가. 언제 해고될지 언제 파산할지 모른다. 실수를 하면,혹은 재수가 없으면 바로 추락이다. 풍요의 뒤에 가려진 위태로운 삶. 대량실업과 중산층 붕괴의 긴 그림자. 식은땀이 난다.

-우리는 지금 빈민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경쟁은 갈수록 치열한데 복지는 거꾸로 후퇴한다. 조만간 20%의 상류층에 들지 못하면 80%의 하류층이 되고 말 거라고 한다. 그래서 성공에 대한 책,부자에 대한 책이 넘쳐난다. 가난은 수치이고 하류층이 되는 건 재앙이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은 가난을 견딜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가난해진 삶에 깃든 행복을 발견하게 한다(*슈마허의 <자발적 가난>과 같이 묶일 만하다). 책은 200쪽 정도로 얇지만 신선하고 전복적인 관점,소비와 취향에 대한 근본주의적 태도,그리고 우아한 문체가 빛나고 있어 페이지마다 밑줄을 쳐야 하는 책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풍요로운 시대는 이제 완전히 지나갔다… 오늘날 가난해지는 사람은 자신만이 실패자라고 느낄 필요가 없다. 훨씬 더 포괄적인 과정의 일부로 가난해지는 것이며,따라서 그의 운명은 역사적인 차원을 가진다.”

-가난은 수치가 아니며 자신의 잘못도 아니다. 그것은 저자 쇤부르크의 경우만 봐도 명확하다. 쇤부르크는 독일의 권위있는 신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기자로 일하다가 2002년 정리해고를 당했다. 경제 불황 때문에 베를린에서만 1만명의 언론인이 일자리를 잃은 시절이었다. 중산층이었던 그의 삶은 하루아침에 하류층으로 떨어졌다. 집에 들어앉아 소위 ‘자유 저널리스트’가 된 그는 경제적 고통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그리고 인간의 품위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은 그가 가난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한 기록이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존재의 불안에 억눌리지 않고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고 집세를 지불하고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을 할 수 있는 한, 얼마든지 행복하고 우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삶의 목표가 돈이 아니라 행복이나 아름다움, 품위 같은 것이라면 가난은 그 목표를 이루는 데 걸림돌이 아니라 사다리가 된다. 가난이 우리 삶에서 비본질적인 것, 의미없는 것, 저속하고 해로운 것 등을 제거하기 때문이다(*비루하고 저속한 부자들이 많은 동네에선 더욱 그렇겠다).

-예컨대 집 문제를 보자. 크고 좋은 집들은 손님을 불편하게 한다. 작고 소박한 집에서 손님들을 불러놓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집은 얼마나 멋진가.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의 꼭대기 층에 산다고 기 죽을 것 없다. 계단 오르기는 심장 질환을 예방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자동차는 어떤가. 대도시에서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데 사람들은 자동차를 버리지 못한다. 그들은 기차와 지하철, 버스 등을 이용하면 더 많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걸 모른다.

-직업을 잃었다고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피할 이유는 없다. 외식 대신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 된다. 식사는 대화를 나누기 위한 사건이며, 그 사건의 중심은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아닌가. 가난하다고 운동을 즐기지 못하란 법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스포츠는 자연 속에서 빠르게 걷는 것이다. 러닝머신에서 두 발을 놀리며 멍청하게 화면을 응시하는 것보단 백 배 낫다.

-이런 질문도 해보자. 왜 휴가때는 반드시 해외여행을 떠나야 하는가? 소문난 영화라고 나도 봐야 하는가? 쇼핑한 물건 중 꼭 필요한 것은 얼마나 되나? 혹시 남들이 하니까 따라하고 있는 건 아닌가? 가난은 이런 습관들과 결별하는 계기가 된다. 이 결별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할 이유는 없다. 찬찬히 짚어보면 별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치우고 난 빈 자리에서 자기 취향이 살아나고 자기 주도적 생활이 시작된다. 우아하게 가난한 삶은 그렇게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이 아름답고 다른 사람들의 삶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마치 해방된 것 같았다. 부는 욕구의 문제이다. 이른바 우리의 욕구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심지어는 우리 본래의 욕구를 가로막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누구나 부를 누릴 수 있다. ”

-이 책이 가난을 무조건 옹호하거나 낭만화하는 건 아니다. 대다수가 가난해지는 빈민화가 현실이라면 가난한 삶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고, 가난한 생활방식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가난을 공포와 수치의 상태에서 윤리적인 미학적인 상태로 재규정했다. ‘우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가난의 심리학을 발견한 건 도스토예프스키였다. 쇤부르크는 가난의 미학을 개척하고자 하는 것).

-“넘치는 풍요의 시대에서 조금 유행에 뒤떨어졌던 많은 미덕들이 이제 결핍의 시대에서 다시 르네상스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자원 고갈,복지의 후퇴가 꼭 분배의 싸움으로 끝나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그것은 오히려 전혀 예상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의 재탄생.”

-우리는 과연 가난을 긍정하게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가난 속에서도 우아하고 품위있는 삶이 가능한 것일까? 나아가 지금의 욕구를 돌아보고 스스로 포기할 수 있을까? 이 사회에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는 충분하다.(김남중 기자)

06. 07. 23.

P.S. '자발적 가난' 혹은 '우아한 가난'이 정치적 구매력을 가질 수 있을까? 즉, 그러한 방향으로의 사회개혁을 위한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가난은 진보의 '역설적인' 화두가 될 수 있을까?(요즘 '진보의 대안'이라는 요구가 많이 제기되므로.) 개인적 차원에서 몇 사람이 우아를 떠는 일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것이 사회적인 흐름, 혹은 운동이 될 수 있느냐이다. 즉, '가난해지기 경쟁'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느냐. 우리가 탐욕이란 제 버릇을 남줄 수 있느냐 하는 것. 손쉽게 '예스'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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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6-07-26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구, 욕망을 억제해야지만 가능한 일로 보이는데요, 금욕적 종교인이 대부분인 이 땅에서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 예상되는데... '더' '더'에 힘쓰는 사회에서 '덜''덜'하다간 덜 떨어진 사람 취급 받기 십상일듯... 그래도 한 방 먹었습니다

stella.K 2006-07-26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전출처 : 물만두 > 뤼팽 어떤 식으로 볼 것인가.

첫째, 단편집만 본다!

 

 

1.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1907) 

 -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

   감옥에 갇힌 아르센 뤼팽

   아르센 뤼팽 탈출하다

   수상한 여행객

   왕비의 목걸이

   세븐 하트

   마담 엥베르의 금고

   흑진주

   셜록 홈스, 한 발 늦다

 

 

2. 뤼팽 대 홈스의 대결 (1908)

 - 첫 번째 에피소드: 금발의 귀부인

   23조 514번 복권

   푸른 다이아몬드

   셔록 홈스, 전투를 개시하다

   어둠 속의 희미한 빛

   납치

   아르센 뤼팽, 두번째 체포되다

 - 두번째 에피소드: 유대식 램프

   219

   259

 

 

6. 아르센 뤼팽의 고백 (1913)

 - 거울 놀이

   결혼 반지

   그림자 표시

   지옥의 함정

   붉은 실크 스카프

   배회하는 죽음

   백조의 자태를 지닌 여인

   지푸라기

   아르센 뤼팽의 결혼

 

 

11. 여덟 번의 시계 종소리 (1924)

 - 망루 꼭대기에서

   물병

   테레즈와 제르맨

   영화 속의 단서

   장-루이 사건

   도끼를 든 귀부인

   눈 위의 발자국

   메르쿠리우스의 신상(神象)

 

 

14. 바르네트 탐정 사무소  * 모리스 르블랑이 가장 좋아한 3대 작품

 - 진주알들의 행방 : 짐 바르네트

   조지 왕의 연애편지

   바카라 게임

   금이빨을 한 사나이

   베슈의 아프리카 탄광 주식(株式)

   우연이 기적을 만들다

   흰 장갑... 하얀 각반...

   베슈, 짐 바르네트를 체포하다

 

둘째, 모르스 르블랑이 가장 좋아한 3대 작품을 본다!

 

 

3. 기암성 (L'AIGUILLE CREUSE) (1909)

 

 

14. 바르네트 탐정 사무소 

 

 

12. 칼리오스트로 백작 부인 (1924)

 

세째, 돈 루이스 페레나가 등장하는 연작 시리즈를 본다!

 

 

8. 황금 삼각형 (1918)

 

 

9. 서른 개의 관 (1919)

 

 

10. 호랑이 이빨 (1923)

 

네째, 뤼팽이 탐정 역할을 하고 베슈 형사가 등장하는 작품!

 

 

14. 바르네트 탐정 사무소 

 

 

15. 불가사의한 저택 (1928) : 장 데느리스

 

 

16. 바리바 (1930) / 에메랄드 사건 (1930)

 

다섯째, 백작부인이 등장하는 작품 '- 뤼팽의 적임!

 

 

12. 칼리오스트로 백작 부인 (1924)

 

 

19. 백작 부인의 복수 (1935)

 

여섯째, 강력추천 3권!

 

 

4. 813의 비밀 (1910)

 

 

5. 수정 마개 (1912)

 

 

7. 포탄 파편 (1916)

 

일곱째, 더 읽으면 좋은 작품들!

 

 

13. 초록 눈동자의 아가씨(1926)  / 암염소가죽 옷을 입은 사나이(1927)

암염소 가죽 옷을 입은 사나이는 포우의 작품에 대한 르블랑의 오마쥬 작품이다.

 

 

17. 두개의 미소를 지닌 여인 (1932)

 

 

18. 강력반 형사 빅토르 (1933)

 

 

20. 아르센 뤼팽의 수십억 달러 외 (1939) / 아르센 뤼팽의 어떤 모험 (1911, 희곡)

국내외적으로 처음 번역 출판되는 작품임.

 

꼭지 : 그러니까 결론은 시리즈는 몽땅 보라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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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책과 램프사이] 정직한 회상의 힘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

 

밀도가 높은 문장을 읽고 싶을 때면 이성복의 산문집과 프랑소와 트뤼포의 영화들 그리고 아니 에르노의 소설들을 찾아 읽는다. ‘단순한 열정’이나 ‘아버지의 자리’도 좋지만, 내 손가락이 마지막으로 가 닿는 책의 제목은 ‘부끄러움’(열림원)이다.

스토리 창작 강의 첫 시간, 자신의 삶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곤 한다.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숙제를 제출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교수나 동급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끄러운 순간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성경 구절 비슷한 문장을 들려준다. “작가가 발가벗지 않고 어떻게 등장인물을 발가벗길 수 있으며, 작가가 죽지 않고 어떻게 등장인물만 죽일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얇은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좋은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은 화려한 손놀림이나 명석한 두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임을 ‘부끄러움’은 단숨에 보여준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넘었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로 소설을 시작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우리는 그녀가 못할 말이 없음을 알게 되고 과연 무슨 장면까지 쏟아놓을까 궁금해진다.

평생 감추고픈 치욕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각하거나 외면하거나 도피하는 방식으로 그 날 그 사건과 다시 부딪히려고 하지 않는다. 고통의 핵심으로부터 비켜서서 종교나 도덕 혹은 가족애에 의지한다.

그 사건을 겪은 아니 에르노에게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존재의 모든 것이 ‘부끄러움의 표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 상황은 그녀를 절망의 나락으로 이끈다. 그녀는 고백한다. “나에겐 어떤 일이건 일어날 수 있고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며, 부끄러움 뒤에는 오직 부끄러움만 따를 것이란 느낌.” 이 느낌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녀가 택한 것은 글쓰기다. 글쓰기가 어떻게 몸에 배인 부끄러움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또 하나의 가면이나 방패가 아닐까.

정직은 용기다. 그녀의 글쓰기는 망각과 외면, 도피로 얼룩진 기억들을 날카롭게 반성하면서, 자기 합리화의 지점들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아니 에르노는 주장한다. “회상도 하나의 체험이다.” 그녀는 과거의 감각을 일깨우는 섬세한 글쓰기를 통해, 어린 시절 겪은 충격적인 사건을 새롭게 체험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부끄러움의 탑이자 치유의 탑이다.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졌을까. 독자들이 이 작은 책을 읽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너그럽게 바라보고 용서하게 된다면, 아니 에르노의 노력은 헛되지 않으리라. 독자의 고통을 치유함으로써 자신의 구원까지 얻는 자, 그가 바로 작가이다.

김탁환 소설가·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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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동인문학상 심사위원!

올 여름 읽을 최고의 소설 다 모였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박완서·유종호·이청준·김주영·김화영·이문열·정과리)는 오는 10월 최종심에서 수상작을 결정한다. 심사위원회는 그 동안 7차례 심사 독회를 가진 끝에 현재까지 최종심 후보작 8권을 골랐다. 순수문학을 사랑하는 당신, 올 여름엔 이들 후보작들을 섭렵하면서 동인문학상의 향방을 나름대로 가늠해보는 것이 어떨까.

1월 독회에서 뽑힌 후보작은 김인숙 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창비), 조용호 소설집 ‘왈릴리 고양이 나무’(민음사), 이현수 장편소설 ‘신(新) 기생뎐’(문학동네). ‘그 여자의 자서전’은 “개인의 곰삭은 삶을 통해 곱씹어진 공적 세계를 잘 소화한 작가의 솜씨가 돋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왈릴리 고양이 나무’는 “작은 주제를 놓고 깔끔하게 쓰는 작가의 작품집”이자 “단편소설의 미학을 복원하는 모범생 같은 단편소설집”으로 불렸다. ‘신 기생뎐’은 장편 가뭄에 시달리는 문단에 내린 단비처럼 여겨졌다. “독자뿐만 아니라 소설가들도 전부 봐야 할 소설이다. 기생의 소리, 춤, 음식, 어느 하나라도 소홀함이 없이 다 맛을 부여해서 재미있게 썼다.”


2월 독회의 주인공은 최수철의 장편소설 ‘페스트’(문학과지성사)와 김애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창비). 1980년대부터 묵직한 소설을 발표해 온 최수철은 “현대인의 정신적·심리적 공황과 우울증, 그로 인해 야기되는 자살 충동 등 현대인의 병리를 심도 있게 다뤘다”는 평을 들었다. 1980년대에 태어난 신예작가 김애란은 심사위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상황 속에서 어떤 말이 태어난 것이 아니고, 말 한 마디를 표현하기 위해 상황을 만든다. 장면만 제시하고 지나가는 TV 드라마와 같은 소설”이란 것.

3월 독회에서 후보작을 고르지 못한 심사위원들은 4월에 복거일의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손’(문학과지성사)을 최종심에 올렸다. “복거일은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지식과 야만(맹신)의 대립을 그리려고 했다. 우리 사회를 끌고 가는 민족주의적 정서, 감정적 분노와 싸운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것이 아닌가.”

5월 독회에서는 젊은 작가 김중혁의 소설집 ‘펭귄뉴스’(문학과지성사)가 씩씩하게 최종심에 올랐다. 정보화 시대 이전의 삶과 사물의 가치를 유비쿼터스 세대의 감각으로 재조명한 책이다. “인터넷 시대의 문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한다. 소재가 참신하고 문장에 속도감이 있다.” “정말 재미있다. 파편화된 사물과 우연을 연결시키기 위한 필연의 지도를 찾는 정신의 유희라고 부를 수 있다.”

이어 6월 독회에서 윤영수의 소설집 ‘소설 쓰는 밤’(랜덤하우스 중앙)이 선정됐다. 종합병원의 4인 병실에 입원한 환자와 그 주변 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는 세태소설집이다.“요즘 작가들은 자기 얘기하기 바쁜데, 윤영수는 전지적 작가의 시점을 보기 드물게 활용했다. 등장 인물들을 장기 두듯 다루는, 이처럼 당당한 작가는 근자에 처음 본다.”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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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7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6-07-07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나에게 질문하게 하는 책을 골라라

자기계발서 잘 골라 잘 읽는 법

달고 부드러운 것만을 좋아하지 말라

자기계발 서적이 대단히 가벼워지는 경향이 있다. 변화에 대한 강박과 나아질 것 없는 일상의 괴리가 피로감으로 몰려오면서 술술 넘어가는 책들이 선호되고 있다. 그러나 책을 덮자마자 책의 내용이 가볍게 증발해 버려서는 안 된다. 실행은 단단해야 한다. 그것은 쓰고 딱딱하고 고될 때가 많다. 그러므로 독자에게 아부하는 달콤한 책은 그저 디저트일 뿐이다. 디저트로 배를 채우지 말라.

발 밑을 보라

좋은 자기경영서는 먼저 조고각하(照顧脚下), 즉 “자신의 다리 밑을 보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마커스 버킹엄의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청림출판)은 내가 가지고 태어난 강점에 대하여 심도 있게 질문함으로써, 그것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있는 자신에게 분노하게 만들어 준다. 개혁은 현재에 대한 분노라는 강력한 에너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책을 읽을 때, 늘 자신의 현재 위치를 직시하고, 이 자리에 안주하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한 일임을 스스로를 설득하여 변화를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인생을 ‘해야 할 일’로 채우지 말라

인생이 ‘하고 싶은 일’로 가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좋은 책이다. 리처드 볼스의 ‘당신의 파라슈트는 어떤 색깔입니까?’(동도원)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연결해 줌으로써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구체적 지침서로 훌륭하다. 자기경영은 곧 단행이다. 실행으로 몰고 가는 구체적 방법론을 제공할 수 있어야 훌륭한 실용서이며, 책을 읽고 현장에서 실험해 보는 사람이 훌륭한 독자다. 책 속에 등장하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찾아내어 내면화 시킬 수 있어야 많이 배우게 된다.

하루를 바꿔내야 한다

자기경영의 진수는 하루를 바꿔 삶 전체를 바꿔내는 것이다. 하루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떼어 자신에게 흠뻑 쓸 수 있는 건강한 중독을 만들어 내는 법을 터득하게 도와주는 책은 훌륭하다. 책을 덮고 그 다음 날 스스로 정해진 시간에 자신이 계획한 일을 하게 된다면 하루를 잘 보낸 것이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 그럴 수 있으면 ‘긍정적 중독’이라는 훌륭한 유산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시장가치뿐 아니라 존재가치를 높여주는 책이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인간의 상품화를 통해 교환가치에 치중하게 만들어 왔다. 아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빠가 부자인가 아닌가가 더 중요해졌으며, 사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열쇠가 몇 개인가가 더 중요해지면서 천박해졌다. 기억해야 할 것은 시장경제는 사회적 신뢰 없이는 번영할 수 없으며, 신뢰는 역설적으로 비상업적 관계로부터 생성된다는 점이다. 즉 시장경제는 신뢰를 소비할 뿐 신뢰의 창출에 기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업주의가 판을 치면 반대로 사회적 신뢰는 고갈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이레)은 살면서 우리 속에 소중한 것들이 죽어가는 것을 경계하고, 죽음의 순간에서 꼭 하고 싶은 그 일을 지금 바로 하라고 촉구한다.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바라보자 그것은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고 우리는 문득 삶과 존재의 기쁨으로 어쩔 줄 모르게 된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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