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의 위기] 예전만 못하지만 '소설의 시대'는 계속 된다
1970~1980년대 사회 모순 고발·대하 역사물 '선풍적 인기'
2000년대 더욱 젊어지고 다채로워져 … 개인 이야기가 주류

‘머나먼 쏭바강’은 1970년대의 대미를 장식한 베스트셀러였다. 1978년 계간 ‘세계의 문학’이 주관하는 제2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박영한의 이 장편은 한국군도 참전하여 남의 전쟁 같지 않은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휴머니즘 소설이다.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던 박영한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전쟁의 고통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고 했다. 간행한 출판사(민음사)에 갈 때마다 인세라면서 돈을 주더라는 것이다. 그는 화수분처럼 그런 일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경제적으로 산업화 시대였던 1970년대는 소설적으로도 산업화 시대에 값했다. 1960년대까지는 수천 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는데, 1970년대에는 5만부 이상으로 그 기준이 올라갔다. 그때의 베스트셀러가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1973), ‘도시의 사냥꾼’(1977),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1974), 조해일의 ‘겨울 여자’(1977) 등 이른바 호스티스 소설에 국한된 현상이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황석영의 ‘객지’(1974),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1976),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한수산의 ‘부초’(1977),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1977), 이병주의 ‘낙엽’(1978), 이청준의 ‘잔인한 도시’(1979)와 같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나 산업사회의 문제적 국면을 예리한 산문정신으로 파고들었던 다수의 뛰어난 작품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기 때문이다.

▲ '한국 문학의 산실'이라 불리는 출판사 '문학동네'가 펴낸 소설 작품들

이 목록에는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1973), 이청준의 ‘소문의 벽’(1973), 최인훈의 ‘광장’(개정판·1973), 이제하의 ‘초식’(1974),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 이병주의 ‘지리산’(1978), 홍성원의 ‘광대의 꿈’(1978),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1979), 김성동의 ‘만다라’(1979) 등등 우리 소설사를 빛낸 다수의 작품도 추가될 수 있다.

정치적 억압과 자유, 경제적 질곡과 평등, 분단 상황과 초극, 거친 실존적 조건과 불안, 여성성 등 당대의 중심 가치들을 산문정신이 가로지르며, 시대를 고뇌하고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는 독자들과 더불어 의미 있는 소통을 하면서 당당하게 ‘소설의 시대’를 열었던 것이 1970년대의 풍경이었다.

‘시(詩)의 시대’로 출발한 1980년대에도 ‘소설의 시대’는 그치지 않았다. 역사와 현실과 문화에 대한 폭넓고 깊은 성찰의 이야기들이 줄곧 그 시대의 이야깃거리로 관심을 끌었고 문화적으로 의미있는 화두가 되었다. 1970년대 말에 나온 ‘지리산’ ‘만다라’ ‘사람의 아들’이 줄곧 베스트셀러를 이어갔고 ‘젊은 날의 초상’(1982), ‘영웅시대’(1985),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등 일련의 이문열 소설들이 독자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에는 어두운 시대 상황과 관련하여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1981), 이동철의 ‘꼬방동네 사람들’(1981), 김홍신의 ‘인간시장’(1981), 김신의 ‘대학별곡’(1983) 등이 관심을 끌었다.

대하소설이나 역사소설에 대한 독자의 폭넓은 지지 또한 1980년대의 풍경이었다. ‘남과 북’(홍성원), ‘불의 제전’(김원일), ‘겨울 골짜기’(김원일), ‘태백산맥’(조정래), ‘영웅시대’(이문열) 등 분단소설과 ‘토지’(박경리), ‘장길산’(황석영), ‘객주’(김주영), ‘타오르는 강’(문순태) 등의 대하 역사소설이 1980년대의 밤을 밝힌 목록들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 사회에서 여성성의 문제를 매우 섬세한 문체와 특징적 어조로 다룬 ‘유년의 뜰’(1981)과 ‘바람의 넋’(1986) 등 오정희 소설을 비롯하여 양귀자, 최윤, 신경숙 등 여성 작가들의 소설이 새로운 서사 지형을 예고했다. 신(新)중산층의 속물 근성을 집요하게 파헤친 ‘짐승의 시간’(1986)을 비롯한 김원우의 소설들과 분단 상황과 현실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1984)이나 이창동의 ‘소지’(1987)도 문제작이었다. ‘마음의 우주’의 풍경을 자유자재로 보여준 박상륭의 실험소설 ‘죽음의 한 연구’(1986), 현실에 대한 타자의 형식으로 실험적인 서사 궤적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구축한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1983)를 비롯하여 최수철의 ‘공중누각’(1985), ‘화두, 기록, 화석’(1987) 등도 1980년대 소설사를 빛낸 실험소설이었다.

전체적으로 1980년대는 10년 내내 지속된 ‘이문열 현상’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 방식의 소설이 독자와 소통하면서 한국 문학의 자산을 튼실하게 다졌던 시대였다. 역사와 분단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새로운 방식으로 폭넓게 모색했고, 노동 해방과 민족 해방에 대한 서사적 염원도 어지간했으며, 중산층이나 여성성에 대한 탐문과 소설의 실험성에 대한 도전도 소설의 시대를 지속시킨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방면에서 큰 변화가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후기 산업사회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와 소련의 해체와 동구권 변화 등 세계사적 지각변동 등과 더불어 1990년대는 전혀 다른 시대를 예고하는 듯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을 목도하면서 이제 소설에서 ‘영웅시대’는 가고 ‘군웅할거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도 1990년대 초반에 있었다.

과연 그랬다. 문학적으로 일부 주요 작가들에 의해 시대정신과 문학정신이 추동되던 시대는 가고 다수의 작가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른 문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의 풍경이었다. 특히 박완서, 오정희, 양귀자, 최윤, 김형경, 신경숙, 공지영, 은희경 등 많은 여성 작가의 작품이 각광을 받아 본격적인 여성소설의 시대를 연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이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박완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양귀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공지영), ‘깊은 슬픔’(신경숙), ‘새의 선물’(은희경) 등이 장안의 지가를 올렸다. 이청준의 ‘서편제’, 조정래의 ‘아리랑’, 안정효의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도 1990년대 독자들의 애호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문단의 논의와는 별개로 ‘소설 동의보감’(이은성), ‘소설 목민심서’(황인경), ‘소설 토정비결’(이재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김진명), ‘베니스의 개성상인’(오세영), ‘아버지’(김정현) 등은 대형 밀리언셀러로 사회학적 사건이 되기도 했다.

요란한 밀레니엄 시기를 거쳐 2000년대가 되었다. 한국 소설은 더욱 젊어졌고 다채로워졌다. 시대정신과 더불어 호흡하던 1970~1980년대와는 달리 개인의 작은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그야말로 ‘소설’이 되었다.

후기 산업시대, 정보화 시대의 환경과 매체 변화 및 문화 상황의 변화 등 여러 요인이 작은 이야기로서의 ‘소설’의 시대를 부추겼다. 레퍼토리는 다양해졌지만 작은 이야기들은 넓고 깊은 공감대를 확보하기 어렵게 되었다. 독자들의 선호나 독서 태도도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2004년에 젊은 작가 김영하는 문단이 인정하는 유력 문학상 세 개를 한꺼번에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그는 1970년대 말 박영한 같은 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었다. 아무리 상을 많이 받고 비평적인 조망을 많이 받아도 그는 ‘2만부 작가’였다. 그러니 출판사에 갈 때마다 인세를 받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김영하가 “예전에는 소설의 시대가 있었다네”라며 자조적으로 읊조리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는 즐겁게 소설을 쓴다.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설의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우찬제 문학비평가·서강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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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6-08-31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외국소설보다 한국소설이 많이 팔려서 우리나라 작가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음 좋겠어요.. ^^ 한국소설 좋아요..~

stella.K 2006-09-0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외국소설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작가들 잘 쓰는 사람은 아주 잘 쓰더라구요. 우리나라 소설도 많이 읽어주긴 해야할 것 같습니다.^^
 

[한국 소설의 위기] "한국 소설 '상상의 날개' 맘껏 펼쳐라"
개인의 일상 ·내면세계 좁히는 작은 이야기만으론 한계

▲ 한 대형서점에서 소설책을 읽고 있는 여성
허황하지 않은 미래 예측이 있을까? 미래 예측은 그것이 현실화하지 못해 허황해지기도 하지만, 당시 통념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허황한 것으로 취급 당하기도 한다. 소설에 대한 예측 또한 미래 예측의 일반적인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래도 예측이란 것을 해봐야 한다면, 나는 우리 한국 소설이라고 해서 ‘우리 한국’의 관점과 배경에서만 그 앞날을 예측하려는 것은 착오라는 점을 먼저 강조해야겠다. 1980년대 한국 소설, 혹은 1990년대 한국 소설을 전망하는 자리라면 또 모른다. 지금은 서사(이야기) 장르의 변화 과정 가운데서 소설의 앞날을 내다봐야 할 때가 아닌가?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세상을 재현하는 문화 양식이 이야기이고, 이야기 욕망이 인류에게서 소멸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렇지만 소설이 변함없이 인류에게 필요하며 또 영광을 누리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 역할과 영광을 다른 이야기 장르가 맡고 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서사 장르의 역사에서 소설은 근대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인쇄술의 도움을 받아 탄생했다. 사회의 보편적 가치 질서를 부정하는 문제적 주인공을 내세워 진정한 가치의 부재를 고발하고 은연중 그것을 희구하게 한다는 점에서 시대와 불화하는 장르라는 인식이 깊다. 하지만 소설이 근대사회로부터 온갖 후원을 받아 영광을 누렸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중세의 로망스(용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하는 식의 기사 연애담)와는 달리 구체적 일상세계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는 대중적 문학형식으로 출발해 19세기에는 사회학, 또 20세기에는 심리학을 통해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 왔으며, 그러는 중에 소설은 고급문학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 어느 순간이었던가? 다른 이야기 장르가 등장해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시작했는데, 영상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새로우면서도 어느새 익숙해진 장르로부터 소설이 대중을 되찾아오기는 힘들 것이다. 대중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고 그래서 밀리언셀러가 다시 나오거나 우리 사회에 영향력 있는 발언권을 가진 작가가 문득 나오기도 하겠지만, 대중은 대중이어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좀더 적합한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근원적인 역전은 불가능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해도 좋다.

아마도 서사 장르의 역사는 영상(현재 시청각)을 중심으로 한 재현을 넘어서서 오감(五感) 전체를 재현해내는 가상현실(시뮬레이션) 같은 쪽으로 펼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서사 장르의 중심이 옮겨가는데도 소설이 이야기 장르로서 계속 생산·유통될 수 있을까? 소설을 읽고 쓰고 함으로써 형성되는 ‘소설 공동체’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문학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식의 보조 혹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까? 자칫하면 현재의 지원 방식이 소설을 간신히 연명하는 이야기 장르로 만들고 결국에는 박물관에 밀어 넣게 될지 모른다. 활로를 모색하는 동안 외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우리 삶의 무대가 전지구화하고 테크놀러지의 위력이 날로 더해지는 상황에 대응할 만한 상상력의 개발은 포기하고 안주하도록, 혹은 이즈음 만연한 개인의 일상과 내면세계로 좁혀 들어가는 작은 이야기만이 그래도 살 길이라고 하는 퇴행적 의식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는 한때 영광을 주었으나 이제는 치욕을 주고 있는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에 소설이 투정부리는 식이 아니라, 제대로 도전하면서 새로운 대중을 출현시키고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더불어 그 동안 소설이 근대사회와 한몸이 되어 배척했던 것들에 화해의 손을 내밀면 원군이 되어 주리라는 기대도 하면서.


구광본 문학평론가· ‘소설의 미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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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여년 전 ‘도미 부인’을 누가 탐했나


“백제 사람 도미는 민간의 작은 백성이지만 그 아내는 용모가 아름답고 절개를 지키기로 이름 높았다. 왕이 그 아내를 취하려 하자, 그녀는 계집종을 단장시켜 대신 왕을 모시게 했다. 노한 왕이 도미의 두 눈을 멀게 하고 작은 배에 태워 강물에 띄워 보냈다. 아내가 강으로 달아나 통곡하고 있을 때 작은 배 한 척이 뭍에 닿았다.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러 남편을 만나 고구려로 가 궁핍 속에서도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

초기 삼국시대의 사화(史話) 중에서 ‘도미 이야기’처럼 부부 사이의 애틋한 정과 신의를 담은 이야기도 드물 것이다. 1937년 월탄 박종화의 단편소설 ‘아랑의 정조’, 2002년 최인호의 소설 ‘몽유도원도’와 이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숱하게 재창조됐던 이 이야기의 원전은 전설집이 아니라 정식 역사서인 ‘삼국사기’ 도미열전(都彌列傳)이다. 소장 고대사학자인 박대재(朴大在) 박사(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최근 신라사학회 발표문 ‘삼국사기 도미열전의 세계’를 통해 이 ‘실제 이야기’에 담긴 세 가지 미스터리를 분석했다.


도미 이야기의 ‘왕’은 흔히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사로잡혀 죽음을 당했던 백제 21대 개로왕(蓋鹵王·재위 455~475년)으로 여겨졌다. 열전에 잔학무도하게 묘사된 모습이 역사상의 실정(失政)과 들어맞기 때문. 그러나 박 박사는 “원문에 개루왕(蓋婁王)이라고 기록된 것을 뒤집을 근거는 없다”고 말한다. 백제 제4대 왕인 개루왕(재위 128~166년)은 ‘삼국사기’ 본기에 “성품이 공손하고 행동이 단정했다”고 기록돼 있어 도미열전의 ‘왕’과는 다른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절대 권력자로서의 이성적인 왕’과 ‘한 여자를 얻기 위해 집요함을 보이는 감정적인 왕’은 같은 인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도미와 그 아내가 배를 타고 달아난 곳은 어디일까? 현재 도미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는 곳은 서울 광진구·강동구, 경기 하남, 충남 보령, 경남 진해 등 전국 여러 지점으로 일부 지역에선 행사까지 열리고 있다. 하지만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이 초기 백제의 왕성으로 유력해진 지금, 우선 보령과 진해는 지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도미 부부가 상봉한 ‘천성도’는 임진강이나 예성강 하류의 섬이라는 것이 정설이니 이들 부부가 탄 배는 한강 하류로 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왕성을 황급히 빠져나온 도미의 아내가 배를 탄 곳은 풍납토성 서남쪽, 지금의 송파구 잠실 부근 한강변 어느 곳이라 보아야 한다.


과연 도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기록에 ‘호적에 편제된 작은 백성(편호소민·編戶小民)’이라 돼 있어 그 신분은 ‘양인(良人) 농민’ 정도로 생각돼 왔다. 그러나 과연 일반 농민이 계집종(婢子)을 거느릴 수 있었을까? 박 박사는 “신분상으로는 소민(小民)이라 해도 상당한 경제력을 갖춘 계층일 것”이라 말한다. 배를 타고 바다 쪽으로 달아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마한의 하호(下戶)는 중국 군현과의 교역에 종사하던 상인 계층으로 생각되는데, 도미는 바로 이들의 일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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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작 12편 확정

정미경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김종광 ‘낙서문학사’ 최종심 합류

2006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작 12편이 확정됐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박완서 유종호 이청준 김주영 김화영 이문열 정과리)는 최근 제9차 심사독회를 갖고 정미경 소설집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생각의 나무)와 김종광 소설집 ‘낙서문학사’(문학과 지성사)를 최종심에 합류시켰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출간된 신간 소설 단행본 40여 권을 놓고 매달 독회를 가진 심사위원회는 이미 ‘그 여자의 자서전’(김인숙) ‘신(新)기생뎐’(이현수) ‘왈릴리 고양이 나무’(조용호) ‘페스트’(최수철) ‘달려라, 아비’(김애란) ‘보이지 않는 손’(복거일) ‘펭귄뉴스’(김중혁) ‘소설 쓰는 밤’(윤영수) ‘틈새’(이혜경) ‘딸꾹질’(송은일) 등 10편을 최종심에 올려놓았다.

정미경은 등단한 지 5년 만에 장편 ‘장미빛 인생’으로 오늘의 작가상, 단편 ‘밤이여, 나뉘어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 2000년대 문학에서 가장 무서운 속도로 뜬 여성작가다. 최종심에 오른 소설집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는 각기 다른 단편들을 실었지만, 기본적으로 ‘일상의 가면 뒤에 숨은 삶의 실체’를 세련된 냉소주의로 그려냈다.

▲ (왼쪽부터) 정미경, 김종광
“여성주의 소설은 흔히 풍속에 저항하거나, 그 풍속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뉘는데, 정미경 소설은 풍속 넘어서기를 보여준다”(유종호)

정미경 소설의 남다른 특징은 ‘이국적인 것의 내면화’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동안 외국을 무대로 한 한국 소설은 외국 풍경과 겉돌았지만, 정미경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가 가는 외국이 전부 우리 삶의 현장인 듯 느끼게 한다.”(박완서)

김종광의 소설집 ‘낙서문학사’는 ‘입심이 좋은 젊은 작가의 등장’이란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문학은 낙서에서 출발했다’는 관점으로 제도화된 문학의 고정 관념을 뒤집으면서, 다층적이고 다성적인 소설 구성을 실험한 소설집이다. “소설을 쌓았다가 허무러뜨리는 기법이 주목할 만하다. 자본에 침식당한 문학의 상업주의를 비판하면서, 경건한 문학의 불필요한 측면도 공격한다. 하지만 최근 우리 문학에서 보기 힘든 따뜻함도 보여준다.”(김화영)

“김종광은 구어체 소설의 색다른 맛을 보여준다. 우리 소설은 전부 ‘다’로 끝나니까 낭독하기에 좋지 않다. 나도 어미 변화를 준 구어체 소설을 써보았는데 200자 원고지 50장을 넘어가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종광의 형식 실험은 대단하다.”(이청준)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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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펜 ‘인디 라이터’의 탄생

非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제조기
대학교수·전문가 대중과 멀어질때
‘在野의 지식인’들 출판시장 장악

민속학자 주강현(51)씨는 인세(印稅)로만 1년 평균 1억원을 번다. 45만부가 팔린 ‘우리문화의 수수께끼’를 비롯해 그가 쓴 20여권의 책은 서점가에서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올해에도 벌써 ‘돌살’ ‘두레’ ‘관해기(觀海記)’ 등 5권의 책을 냈다.

역사평론가 이덕일(45)씨는 지난해 인세 수입 2억원을 올렸다. 올해는 이 기록을 깰 전망이다. 지난 3월 출간한 ‘조선최대갑부 역관’ 한 권만으로 한 달에 16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조선왕 독살사건’ ‘조선선비 살해사건’ 등 올해 잇달아 내놓은 책들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순항 중이다.

오직 ‘글’로만 승부하는 ‘인디 라이터’들이 출판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인디 라이터’는 고정급을 받는 대학교수나 전임연구원이 아니면서 인문·사회·과학 분야 등에서 단지 글만 써서 생활하는 독립저술가들이다. 원래 ‘인디(indie)’는 대형기획사나 프로덕션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음반이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하지만 이제 출판 분야에서도 ‘인디’ 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으로 150만부 판매를 기록한 역사 분야의 박영규(40)씨, ‘다시 쓰는 택리지’의 저자 신정일(52)씨, ‘강호(江湖) 동양학’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조용헌(45)씨, 미술 분야의 이주헌(45)·노성두(47)씨, 경제분야에서는 ‘1인 기업’으로 자칭하는 공병호(46)씨, ‘미래교양사전’을 낸 과학저술가 이인식(61)씨 등이 대표적인 ‘인디’들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인디 라이터’가 출현한 가장 큰 이유는 글로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출판시장 규모가 커진 때문이다. 또 인터넷 시대가 ‘인디’의 출현을 촉진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인식씨는 “정보사회 진입으로 누구나 전문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된 반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첨단정보를 쉽게 해설하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지식인 사회의 위기에서 그 배경을 찾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만의 암호식 글쓰기, ‘끼리끼리식 교수채용’ 등으로 대학의 전문 지식인들이 대중과 멀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주강현씨는 “대학의 관료주의적 보수성이 ‘인디’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이들 ‘인디 라이터’들은 공통적으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융합(fusion)을 추구한다. ‘인디’ 대부분이 학자 아니면 저널리스트 출신인 것도 그 때문이다. 주강현·이덕일·노성두·조용헌씨 등은 아카데미즘에서 ‘인디’로 방향을 전환한 경우다. 독일에서 미술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노성두씨는 “1994년 귀국 후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한 것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신문사 기자와 칼럼 활동 등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인디’로 전향한 경우도 있다. 이인식·박영규·이주헌씨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아예 처음부터 ‘인디’에 뛰어드는 작가들도 늘고 있다. 지난 5월 첫 책 ‘제국의 후예들’을 쓴 정범준(36)씨, ‘특별한 동물 별 이야기’를 낸 동물칼럼니스트 김소희(31)씨, ‘엽기 조선왕조실록’을 출간한 이성주(31)씨 등 30대 젊은 필자들도 자신의 분야를 개척하며 ‘인디’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인디 라이터’로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덕일씨는 “인디 라이터의 삶은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굴러가는 자전거와 같다”며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채 모터를 달고 쉽게 가려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한수기자 hs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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